사랑방 이야기

미국 존 에프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과 범인과 배후, 재클린 증언

반헬싱 2023. 5. 22. 22:23

미국 존 F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과 진짜 범인, 암살파일, 재클린의 증언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대통령은 과연 누구한테 암살을 당했을까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아폴로 달착륙 프로그램 등 많은 개혁정책을 추구하면서 전미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케네디대통령은 1963년 11월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매우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했는데요.

 

표면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의 존 F. 케네디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에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리 하비 오스월드가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날, 리 하비 오스월드는 댈러스시내의 한 교과서 보관건물 6층에 숨어있다가 케네디대통령의 차량이 지나가던 시점에 총 세발을 쏘아서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했던 것인데요.

 

이같은 오스월드의 케네디대통령 암살에 대해 오랫동안 여러 가지 석연치않은 의문점등이 계속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오스월드는 도주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그로부터 2일 후, 텍사스주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석연치않게 사망하고 맙니다.

 

오스월드를 죽인 잭 루비는 마피아와 관련이 있는 자였는데, 그는 재판을 받던 도중에 석연치않은 이유로 감옥에서 병사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은 외형적으로는 리 하비 오스월드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CIA의 음모설, FBI의 개입설 등 여러가지의 음모설이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케네디의 죽음은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케네디대통령 암살에 있어서 CIA 음모론이 크게 제기되었는데, 그 당시 공산주의국가 쿠바와 소련의 연대로 인해 미국의 안보는 큰 위협을 받고있었습니다.

 

이에 CIA는 케네디대통령에게 가짜 태러를 일으켜서 쿠바와 공산권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명분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평화를 원했던 케네디대통령이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그는 암살당했습니다.

 

CIA는 케네디대통령이 CIA를 해체하려한다고 불안해하는 상태에서, 이같은 CIA의 제안을 거부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CIA가 배후에서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하도록 공작을 꾸몄다는 설입니다.

 

당시는 냉전시대로,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특히 CIA 공산주의종주국인 소련을 극도로 혐오했는데,

케네디대통령이 소련에 평화제스처를 보내는 등, 소련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불만이 컸습니다.

 

이러한 케네디대통령의 소련에 대한 굴종적인 모습,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있었던 CIA가 케네디대통령 암살을 기획했다는 설입니다.

 

그런데, 여기 케네디대통령 암살에 관해 매우 신빙성 높은 증언이 나오고 있어서 큰 주목을 끌고있습니다.

 

◆ 케네디대통령 죽음의 진실을 밝힌 부인 재클린의 증언

 

암살 당시 케네디대통령은 46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직을 3년을 재직한 후, 재선을 1년 정도 남긴 상태였습니다.

당시, 젊고 유능한 대통령으로 재선이 확실시되던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많은 미국인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케네디대통령의 암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워런위원회가 구성되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지 해병대출신의 교과서 보관직원에 불과했던 오스월드가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할 만한 특별한 목적이나 정치적 동기도 찾지못했고,

그 배후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암살범도 또다시 다른 자에게 살해당하고 그 살해범도 감옥에서 죽는 등 매우 석연치않은 의혹점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워런위원회는 섣불리 오스월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음으로써,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지 48년 후인 2011년도에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증언한 충격적인 자료가 공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한 사람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라고 증언해서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케네디대통령의 맏딸인 캐롤라인은 케네디의 암살의 비밀이 담긴 테이프를 전격 공개했습니다.

 

이 비밀테이프에는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몇 개월 후에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가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와 8시간동안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비밀테이프에는 놀랍게도 케네디대통령을 죽인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힌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즉, 이 비밀테이프에서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는 케네디를 암살한 자는 린든 존슨 부통령이라고 명쾌하게 증언하고 있어서,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을 죽이도록 뒤에서 조종한 배후인물이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라고 재클린여사는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린든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하도록 사주했던 것일까요?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가 밝힌 당시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62년 10월, 미국을 발칵 뒤짚어놓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첩보정찰기에 의해서,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가 건설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미국의 앞마당에 소련의 핵미사일기지가 건설된 것으로, 이것은 미국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쿠바땅은 미국의 마이애미 해변의 바로 코 앞에 있는 매우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당시는 냉전시대로,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경쟁 등 모든 부문에서 세계 패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이 예민한 시기에 소련의 핵을 배치할 수 있는 미사일기지가 미국의 코앞인 쿠바땅에 전격 배치되었던 것으로, 이것은 미국에 있어서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미국과 소련간에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되자, 케네디정부의 강경파들 사이에서 우리가 먼저 소련과 쿠바에 선제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들이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존슨부통령과 미군장성등 강경파들은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소련과 쿠바에 선제공격을 감행해야한다는 강경대응 주장들을 내놓았는데요.

 

그렇지만, 케네디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만일 쿠바사태로 인해 미국이 군사공격을 감행하게 되면, 제3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고 판단했고,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흐루시초프 소련서기장을 직접 만나 협상을 진행해서,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않겠다는 조건으로 쿠바에서 소련의 미사일기지를 철수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대통령이 이렇게 쿠바미사일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하자, 존슨부통령 등 케네디정부의 강경파들은 케네디대통령에게 큰 불만을 갖게되었습니다.

 

존슨부통령을 위시한 강경파 장성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케네디대통령이 소련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초강대국인 미국의 위신이 크게 추락하게 되었다고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케네디대통령의 유약한 외교정책을 크게 비난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케네디대통령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계획마저 세우고 있었고, 실제로 1965년도까지 베트남에서 미군을 전부 철수시킨다는 플랜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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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존슨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군수산업이 밀집해있는 텍사스출신으로,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변자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존슨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전쟁이 일어나야만 자신들의 정치적 텃밭인 텍사스의 군수산업이 크게 부흥할 것이고, 그래야만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굳건해질 뿐만 아니라, 정치후원금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슨부통령과 강경파들은 텍사스주의 군수산업체와 서로 공생하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의 전쟁반대 정책과 베트남에서의 미군철수정책에 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평화만을 외치면서 소련등 공산국가에 유약하게 대응하고있는 케네디대통령을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 당시 존슨대통령 등 강경파들 사이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소련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케네디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위신을 떨어뜨렸다!’는 자조섞인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이렇게 존슨부통령과 강경파 장성들 사이에 케네디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점점 고조되어 나갔습니다.

 

즉, 쿠바 미사일사태로 미국과 소련간에 전쟁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위기사태에서 케네디대통령이 흐루시초프와 만나 회담하면서, 미국과 소련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데땅트시대가 열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과 소련 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전쟁위험이 사라지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게된 군수산업체 관계자들과 그들의 비호세력인 존슨부통령 등 강경파세력은 케네디대통령에 대해 깊은 반감을 품게됩니다.

 

결국 이렇게 케네디대통령의 정책에 반감을 품게된 존슨부통령과 강경파세력이 비밀리에 케네디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모의했고, 그들의 암살음모에 의해서 케네디대통령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재클린여사가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의 전모입니다.

 

재클린여사의 주장에 의하면, 케네디대통령을 지지세가 약한 텍사스주 댈러스지역을 방문하도록 강력히 주장한 자도 바로 존슨부통령이라고 합니다.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이 지지기반이 약한 텍사스에 가서 연설해야만 다음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케네디대통령이 텍스스로 가도록 유도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의 재선을 돕기위해서가 아니라, 존슨부통령의 계획 아래 케네디를 살해하기 적합한 장소인 달라스로 케네디대통령을 유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쿠바의 미사일사건과 베트남의 미군철수 등 소련과 미국의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군수업체가 몰려있던 텍사스에서는 케네디의 인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던 상황에서,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을 텍사스 달라스로 유인해서 손쉽게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케네디대통령은 존슨부통령의 주장대로 텍사스주의 달라스로 유세하러 방문했다가 오스월드가 쏜 총에 맞아 전격 암살당하고 맙니다.

 

케네디대통령은 오스월드가 쏜 총 두발을 머리와 목에 맞고 곧바로 사망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이 전격 사망함으로써, 부통령인 린든 존슨이 궐위된 대통령직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즉, 케네디대통령의 사망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바로 존슨부통령이었지요.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이 죽자마자, 달라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대통령취임선서를 서둘러 진행했습니다.

존슨부통령은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달라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서둘러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던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선서를 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 당시 재클린여사의 눈에는 마치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의 죽음을 기다린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존스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을 뿐만아니라, 64년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해서 당선되는 행운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케네디대통령이 죽지않고 계속 살아있었다면, 존슨부통령은 대통령직 승계도 불가능했을 뿐만아니라, 64년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도 나갈 수 없던 처지였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네디대통령의 사망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바로 존슨부통령이었지요.

그러므로,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의 배후인물이라는 재클린여사의 주장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남편 케네디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재클린여사를 바로 옆에 세워놓고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선서를 하는 존슨부통령의 모습이 매우 뻔뻔스러워 보인답니다.

 

이렇게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는 여러가지 근거를 대면서 존슨부통령을 케네디대통령 암살의 배후인물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재클린은 이런 육성테이프를 자신이 죽은 후 50년 동안 공개하지 말 것을 유언했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가족을 향한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케네디도서관의 금고에 보관되어왔던 재클린의 육성테이프는 2011년 케네디의 맏딸 캐롤라인에 의해서 전격 공개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1963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존 F 케네디대통령, 그는 과연 존슨부통령의 음모에 의해 암살당한 것일까요? 케네디대통령의 죽음의 진실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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