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김형자의 프로필,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이혼사유, 두번째 남편

 

오늘은 70,80년대 원조 글래머스타 김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70대의 장년층이 되었지만, 사실 김형자는 70,80년대에 뭇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원조 글래머스타였습니다.

 

김형자는 1970년도 TBC 공채 10기 텔런트로 데뷔하면서 연기를 시작하였고, 그 시대에 맞지않게 큰 키와 잘 빠진 육감적인 몸매로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섹시스타였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형자를 70년대의 이효리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효리가 찍었던 망고음료 CF의 원조모델은 바로 김형자이기 때문이지요.

 

김형자는 20대의 젊은 시절에 비키니가 잘 어울리는 비키니여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각선미 좋고, 육감적인 매력을 풍기면서 70년대를 주름잡았던 CF퀸이었고, 당시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섹시스타였습니다.

 

김형자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비롯해 ‘씨받이’ ‘감자’ ‘0번 아가씨’ 등 여러편의 애로영화에 출연해서 매력적인 볼륨몸매를 과시하며 자신의 섹시한 매력을 뽐내면서,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장본인이었지요.

 

김형자는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미모와 다양한 캐릭터의 배역을 잘 소화해내는 탄탄한 연기력을 발휘하면서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전천후 여배우로 인정받았고,

70,80년대에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쳤던 그녀는 제20회, 제2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자로서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김형자는 70년도에 데뷔한 이래 2012년도까지 총 107편의 드라마와 58편의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작품활동에 매진해왔는데, 김형자는 가히 우리나라 연기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만하답니다.

 

70년대에 김형자는 키가 크고 훌미끈하게 생겨서, 길거리에서 쫒아오는 남자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고 해요.

 

하루는 김형자가 명동거리를 걷고있을 때, 한 떡둑꺼비 같은 남자가 그녀를 따라오더니, ‘시간 좀 내줘요’ ‘한번만 만나줘요!’하면서 데이트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형자는 친구들과 피서를 떠나기 위해 가고있었는데, 명동길거리에서 느닷없이 한 남자로부터 데이트신청을 받았던 겁니다.

 

너무도 바빴던 김형자는 ‘어머! 왜 이러니!’ 하면서, ‘지금은 내가 피서를 가야하니, 피서갔다 돌아오는 20일 경에 저기 있는 한일다방에서 만나자’라고 말하면서 그 남자를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서를 갔다온 김형자는 그 남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김형자가 TBC방송국에 입사를 했는데, 복도에서 그 때 자신에게 데이트신청을 했던 그 남자와 마주쳤다고 하는데요, 그 남자는 바로 이덕화라고 합니다.

 

1년전 자신을 따라왔던 이덕화와 TBC방송국에서 연기자로 함께 만났으니, 두사람 모두 그때 일을 상기하면서 함께 웃었다고 합니다.

 

◆ 김형자의 프로필, 부모님의 이혼, 어린시절의 환경

 

출생 - 1950년 9월 18일생. 나이 72세

출생지 - 충청남도 대전시

키 - 164cm, 몸무게 - 56kg

혈액형 - A형

학력 - 서울여자고등학교

데뷔 - 1970년 TBC 10기 공채탤런트

종교 - 불교

자녀 - 무

 

김형자는 1950년도에 충청북도 대전에서 딸부잣집의 넷째딸로 태어났는데요.

김형자의 부모님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회였던 1930년대에 연애결혼을 했던 흔치않은 케이스입니다.

 

군수의 딸이었던 어머니와 부잣집 아들이었던 아버지 두분 모두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금수저분들인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흔치않은 자유로운 연애를 해서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김형자부모님은 원래 황해도에 살고있다가 남한의 대전으로 이주해왔고, 이주해오자 마자, 어머니는 김형자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김형자 위로 딸만 셋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낳아주길 간절히 바랬지만, 어머니는 또다시 딸인 김형자를 낳았던 겁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얻지못한 아쉬움 때문에, 그녀에게 ‘형’자 돌림에 아들 자(子)를 붙여서, ‘김형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김형자에게 아들노릇을 하라는 의미에서 ‘형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겁니다.

 

그 후, 아버지는 사업을 하기위해 서울로 상경했는데, 오랫동안 서울간 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7살난 김형자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해서 아버지를 찾아보았답니다.

 

어머니와 김형자는 아버지가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진 한 동네를 찾아갔고, 그곳의 한 다방에 들어갔는데요.

그 다방의 마담으로부터 아버지의 집주소를 알아낸 어머니는 곧바로 그 집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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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집에는 김형자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산림을 차려서 함께 살고있었고, 그 여자는 아버지의 자식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눈이 발칵 뒤집힌 김형자의 어머니는 그 집으로 들어가서 신발짝으로 그 여자를 때리면서, 그여자와 대판 싸웠다고 합니다.

 

즉, 사업을 하러 서울로 갔던 김형자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부인 몰래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자식까지 낳았던 겁니다.

 

그이후로 김형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절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크게 실망한 어머니는 그 때부터 아버지와 완전 갈라섰고, 다섯명의 딸을 혼자의 힘으로 키워왔다고 합니다.

 

김형자가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 혼자의 힘으로 다섯명의 자녀를 키웠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렵고 가난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형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빨리 커서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형자는 1970년 21살의 나이에 TBC 공채탤런트에 뽑혀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74년 TBC드라마 맏딸로 데뷔한 후, 청순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큰 두각을 나타내면서 70,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탤런트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김형자는 데뷔한 지 1년도 채 안된 1974년도에 자신이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새 집을 사드리면서 그녀가 평소에 마음먹은 데로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다했으며, 고생하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합니다.

 

◆ 김형자 두번의 결혼과 남편, 이혼 및 이혼사유

 

김형자는 안방극장과 영화계를 오고가면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 극의 재미를 이끌어가는 감초 같은 연기자로 명성을 떨치면서, 연기자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연예인의 삶을 살아왔던 김형자의 사생활도 과연 행복했을까요?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여배우의 삶과는 달리 김형자는 사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형자는 두 번의 결혼을 하였고, 또한 두 번의 이혼을 한 슬픈 과거를 갖고있습니다.

 

또한 결혼생활 중에 얻었던 두명의 자식이 모두 죽는 아픈 기억도 갖고있지요.

 

김형자는 70년대 전반 당시에 진실로 사랑했던 남자가 한명 있었고, 그남자와 결혼약속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어머니는 딴따라가 우리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오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극심한 반대를 하셔서, 결국 그 남자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 1978년 김형자는 영화배우 김경수와 첫번째 결혼을 하게됩니다. 김형자는 첫사랑을 잊기위해서 홧김에 김경수와 결혼을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배우 김경수와 결혼을 한 김형자는 10년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치만 않았답니다.

 

남편은 결혼 20일만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혼외자식까지 낳았고, 외도를 말리는 그녀에게 구타하고 폭행하면서도 계속 외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람기 많은 남편과 10년을 함께 산 김형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하게 되자, 결국 1988년도에 이혼하고 맙니다.

 

김형자의 첫번째 남편과의 8년간의 결혼은 그야말로 불행 그 자체였습니다.

남편은 틈만 나면 숱하게 바람을 피웠고, 가까스레 김형자는 두 번의 임신을 하였지만, 첫번째 아기는 김형자의 뱃속에서 숨을 거뒀고, 두번째 아기는 출산직 후 숨졌다고 합니다.

 

이혼한 그 해에 김형자는 4살 연하인 최길규PD와 재혼을 했는데, 이 두 번째남편은 마더콤플렉스가 있는 좀 연약한 남자였다고 하네요.

 

김형자는 자신의 일을 책임감있게 하지못하고 게으른 성격의 남편을 애들 야단치듯이 야단을 쳤고,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반항을 하면서 두사람간의 다툼이 심화되었다고 합니다.

 

김형자는 TV와 영화계에서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많이 해서 돈도 넉넉히 벌었지만, 남편은 게으름을 피우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돈을 벌어오지 않아서, 김형자와 남편간에 다툼과 마찰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김형자는 나중에 그때를 회고하면서, ‘남편이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했더라면, 내가 많이 밀어줬을텐데, 자기일을 제대로 못하더라,

한번 단추를 잘못 꿰면, 계속 잘못 꿰게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남편이 일을 하려는 마음이 없어서, 두사람간의 갈등이 반복된 점을 무척 아쉬워했답니다.

 

결국 김형자는 두번째 남편과도 1998년 또다시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답니다.

 

두번째 이혼할 때에는 김형자는 남편이 진 빚을 다 갚아주고, 남편이 먹고살 수 있도록 집과 살림살이까지 마련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혼한 지 한달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려서 김형자를 놀라게 했답니다.

 

이렇게 김형자는 아버지의 외도를 겪었을 뿐만아니라, 자신의 두 번의 결혼실패를 겪고난 후, 이제 남자라면 징글징글하다면서,

또다시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되살아날 것 같아서, 앞으로는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번의 결혼실패를 겪은 김형자는 솔로가 된 지 20여년 동안 나름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혼 후에 혼자가 된 김형자는 비록 자신에게 가족은 없지만, ‘나는 이제 나만 생각하면 되고, 오직 나만 건강하면 되고, 나를 위해서 살면 되니까, 다른 것에 대해선 걱정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거 같다고 말했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저사람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 ‘어떻게 혼자서 살까?’라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지만, 건강하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오히려 혼자 살아도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고 김형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김형자이지만,

연기자로서 1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등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그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김형자의 용기와 긍정적인 마인드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김형자님! 앞으로도 방송에서 더욱 활발한 방송활동을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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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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