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음악
4인조혼성그룹 아바(ABBA)의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탈퇴이유와 히트곡, 이혼사유
반헬싱
2022. 5. 10. 20:39
4인조 혼성그룹 아의 리드보컬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의 이혼사유, 탈퇴이유, 히트곡 'SOS'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 1950년 4월 5일, 나이 73세, 국적 스웨덴
아바 활동 시기 : 1972년 ~ 1982년, 재결합 2018년 ~ 현재
ABBA 멤버 -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메인보컬), 애니프리드 린스태드 (보컬), 비요른 울바에우스 (기타, 보컬), 베니 앤더슨 (키보드, 보컬)
1970년대 달콤하고 경쾌한 음악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아바(ABBA)는 당대의 전설적인 4인조 혼성그룹이었답니다.
1972년부터 스웨덴에서 그룹을 결성해 음악활동한 시작한 아바(ABBA)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팝그룹으로 성장해나갔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바(ABBA)는 1974년 유로비전송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70년대 초반 ‘Ring Ring’을 시작으로 하여 ‘워털루’ ‘허니 허니’ ‘맘마미아’ ‘페르난도’ ‘댄싱퀸’ ‘SOS’ 같은 명곡들을 발표하면서, 전세계의 음악팬들의 가슴을 완전 사로잡으면서, 세계 최고인기의 팝그룹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가히 70년대는 4인조 혼성그룹 아바(ABBA)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앨범 판매량만 3억 4천만장을 판매한 아바(ABBA)는 72년도부터 82년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 시대를 풍미해나갔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인종을 초월해서, 그리고 연령과 세대, 성별을 초월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최고의 팝그룹은 아바(ABBA)였으며, 아바는 70년대 당시 최고의 화두였고, 최고의 아이콘이었답니다.
70년대 당시, 아바는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인기 3인조걸그룹 쿨시스터즈가 아바(ABBA)의 노래 ‘Ring Ring’를 번안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쳤을 정도랍니다.
이렇게 1972년도에 데뷔해서 10년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아바였는데, 아바는 돌연 1982년도에 해체되고 맙니다.
인기절정의 시기에, 더군다나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진출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해가던 아바(ABBA)가 갑자기 해체된다고 발표하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되는데요.
아바(ABBA)가 갑자기 해체발표를 한 이유는 바로 아바의 리드보컬인 아그네사 때문이었답니다.
◆ 아바의 해체이유,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
그룹 아바의 메인보컬이었던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룹 아바(ABBA)가 큰 인기를 끄는데 견인차역할을 했던 아바의 핵심멤버였습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목소리도 아름다웠지만, 웨이브진 금발의 아름다운 머릿결과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로 아바 멤버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있었지요.
이렇게 사실상 그룹 아바를 이끌어가는 핵심멤버인 아그네사 팰트스코그가 갑자기 은퇴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인기절정의 시기에 왜 갑자기 그룹 가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던 걸까요?
아바(ABBA)는 원래 4인조 남녀 혼성그룹이었지요. 특히 멤버 두쌍이 서로 연인관계, 부부관계로 더욱 유명하답니다.
여성 메인보컬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와 기타를 담당하던 비요른 울바에우스가 서로 연인관계였으며, 여성 보컬 애니프리드 린스태드와 키보드를 담당하던 베니 앤더슨도 연인사이랍니다.
이렇게 두 연인이 함께 그룹 아바를 구성하고 있었고, 아바 활동 중에 두 연인은 결혼까지 하며 부부가 된답니다.
두쌍의 부부커플은 아바의 음악을 만들고 환상의 하모니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특히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그룹활동 중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범적인 커플로 팬들의 큰사랑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부부커플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사이는 삐꺼덕거리기 시작했답니다.
남편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내 아그네사 펠트스코그
한 인터뷰에서,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남편 비요른은 집에서 24시간 중 20시간동안 곡을 쓰느라, 저와는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남편 비유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답니다.
언제부턴가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공식석상에서 서로에 대한 비판을 하는가 하면, 공식석상에서 두사람 사이에 어두운 표정이 자주 포착되었으며, 부부가 함께 정신상담소를 다닐 만큼, 부부사이가 나빠졌다는 소문이 퍼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마침내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전격 이혼을 발표하게됩니다.
비요른은 이혼 2년만에 다른 여자와 재혼했고, 결국 1982년 아바는 활동중단을 선언하며 해체하고 맙니다.
10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서 최고인기의 혼성그룹으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아바가 해체된 가장 큰 이유는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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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의 해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대중들은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사유에 대해 알고 싶어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이혼한 지 2년도 체 되지않아서 비요른이 너무 빨리 재혼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비요른의 외도 때문에 이혼했다고 추측했으며, 비요른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가 지난 후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그네사와 비요른이 이혼한 것은 아그네사의 모성애 때문이었습니다.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1973년 딸 린다를 낳았는데요. 딸 린다가 1살이 되던 해 ‘워털루’가 크게 히트하면서 아바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바는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세계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콘서트를 치르느라 엄청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 유럽대륙을 여행다니면서 보통 한달 이상 집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그네사는 딸 린다를 직접 키울 수가 없었고, 보모에게 맡겨서 양육했답니다.
당시 세계투어를 다니던 아바는 보통 한번 투어를 다니면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 투어를 다녀왔을 때, 딸 린다는 엄마 아그네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아그네사는 자녀양육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답니다.
이 당시 아그네사는 아바의 리더인 남편 비요른에게 세계 투어기간을 2주로 줄여줄 것을 요구했는데요.
이 당시 아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며, 아바는 유럽대륙 뿐만 아니라, 호주와 미국 등 여러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공연을 펼칠 예정이기 때문에, 비요른은 아그네사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그네사는 가수로서 활동보다는 딸 린다를 직접 양육하는 엄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고, 세계투어 때문에 아그네사와 남편 비요른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77년 둘째아들 피터를 출산하면서, 두사람 사이에 자녀양육 문제는 더욱 큰 갈등요소가 되고맙니다.
미국투어를 앞두고,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았던 남편 비요른과 자녀양육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던 아내 아그네사 사이에 의견충돌로 인한 심각한 갈등이 생겼답니다.
아그네사는 가수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엄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결국 아그네사는 남편 비요른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며, 계약만료 후 아바를 떠나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러니까, 아그네사가 남편 비요른과 이혼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그네사의 자녀에 대한 모성애 때문이었습니다. 아그네사는 자녀양육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 남편 비요른과 이혼을 선택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 아그네사는 가까운 나라로 투어를 다닐 때에는 꼭 딸 린다를 데리고 다녔고,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982년 아바(ABBA)가 전격 해체된 후, 아그네사는 딸과 아들을 직접 양육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이혼한 후에도, 아그네사는 아빠 비요른의 집과 5분 정도 가까운 거리에 집을 마련해서, 아이들이 아빠와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또한 아그네사는 딸 린다와 함께 캐롤송을 부르는 크리마스 앨범을 내는 등, 엄마로서 철저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1년 칼 매그너스 팜에 의해서 아바의 전기에 대한 책 ‘밝은 빛 어두운 그림자’가 출간되면서, 아그네사와 비요른부부의 진짜 이혼사유가 밝혀졌고, 아그네사의 끈끈한 모성애에 많은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돈과 명예, 가수로서의 성공보다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한 아그네사의 뜨거운 모성애에 대해 전세계인들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바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평범한 엄마의 길을 선택한 아그네사를 존중해주고, 응원해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후 40년이 지난 2021년도에 놀라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바(ABBA)는 해체한 지 40년이 지난 2021년도에 다시 완전체가 되어서 컴백무대를 가졌답니다.
비록 나이가 70이 넘은 흰머리가 난 아그네사를 비롯한 비요른, 애니프리드,베니 앤더슨 등 아바의 전맴버가 다시 모여 아바를 결성하고 컴백공연을 가져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답니다.
어느덧 73세가 된 아그네사는 과거 자녀의 양육을 위해 이혼을 선택한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과 같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함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아그네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모성애가 강한 엄마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그네사가 이혼한 이유, 그리고 아바가 해체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그냥 끝낸다면 좀 섭섭하지요! 70년대 최고의 팝그룹 아바의 신나는 노래 한 곡 쯤은 들어보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아바의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자 아바의 최고의 히트곡인 'SOS'를 마지막으로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이 노래를 들어보신다면, 아바가 왜 70년대의 최고의 팝그룹인지, 그리고 아바 멤버 중 아그네사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요정인지를 충분히 실감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바의 히트곡 'SOS'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XTS47c6I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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