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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윤미라의 젊은시절 미모와 결혼안한 이유, 양말공장사장과 불륜스캔들

반헬싱 2024. 6. 23. 12:36

70년대 글래머스타 여배우 윤미라의 젊은시절 미모와 결혼안한 이유, 양말공장사장과 불륜스캔들

 

우리나라의 탁월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70~80년대를 풍미했던 글래머여배우가 한명이 있는데요. 바로 여배우 겸 탤런트 윤미라입니다.

 

윤미라는 70년대만 해도 섹시미와 관능미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섹시스타였답니다.

 

지금은 드라마에서 주로 어머니나 아줌마역할을 하고 있지만, 젊은시절에 윤미라는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셀레이게 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글래머스타였답니다.

 

청순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스타를 ‘청순글래머’라고 하는데, 70년대의 윤미라가 바로 ‘청순글래머’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답니다.

 

윤미라는 70년대 당시 동양적인 외모의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었던 시절에, 커다란 눈동자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매우 이국적인 미모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윤미라의 커다랗고 부리부리한 눈동자는 수많은 남성관객들의 마음을 녹이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70년대 당시 무척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답니다.

 

윤미라는 69년 영화 ‘사랑하고 있어요’로 데뷔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섹시글래머스타로 각광을 받았고, 41편이 넘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랍니다.

 

그리고 윤미라는 한때 미국 허리우드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왔을 정도로, 그 미모가 외국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았답니다.

 

윤미라는 1세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세명의 스타가 은퇴하였던 1972년도부터 70년대 후반까지 한혜숙과 함께 우리 연예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인기여배우였지요.

 

이렇게 한 시대를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여배우로 주름잡았던 윤미라가 실은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아름다웠던 그녀가 미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시나요?

 

놀랍게도 윤미라는 오랫동안 촉망받는 여배우로서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결혼을 하지않은 독신녀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혼한 게 아니라, 결혼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윤미라는 완전무결한 미혼녀입니다.

윤미라는 1951년생으로서 지금 나이가 73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싱글로 혼자살고 있다고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남자들이 눈이 삐어도 한참 삔 것 같습니다. 이런 미녀를 독신으로 살 게 만들다니!

 

한때에 대한민국을 뒤흔들 정도로 초절정 미모를 간직하면서 수많은 남심들을 셀레이게 했던 글래머스타가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신으로 살고있다니 말입니다!

 

여배우 윤미라가 결혼을 하지않은 데에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여배우 윤미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해부해보도록 하겠어요!

 

◆ 윤미라의 프로필과 출연영화

 

나이 - 1951년 12월 18일 (73세)

신체 - 168cm, 몸무게 55kg

출생지 - 전북 정읍

학력 - 광주여자고등학교

가족 - 2남 3녀 중 장녀

 

윤미라는 어렸을 적부터 미모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윤미라에게 여배우가 되어보라구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어렸을 적부터 남들과 다른 두드러진 미모와 섹시한 관능적인 매력을 듬뿍 갖고있었던 윤미라는 동네미인으로 소문이 났구요.

 

1969년 당시 김수용감독 등 우리나라 감독들이 합동으로 신인여배우 모집하는 공고를 냈는데, 여고를 갓졸업한 윤미라는 신인여배우 모집에 응모하여,

5,000명이 지원하는 선발대회에서 윤미라는 16명 중 한명으로 당당히 뽑혔답니다.

 

1969년도에 영화 '사랑하고 있어요'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윤미라는 그 후 여러편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동하다가

1973년 영화 '처녀사공'에 남궁원과 함께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크고 시원시원한 눈과 이국적인 마스크로 브라운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윤미라는 70년대 후반까지

'아내들의 행진' '바보 용칠이' '황금마담' '딸삼형제' '여수대탈옥' '옥중녀' '부초' 등 수십편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가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지요.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겸비한 윤미라는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과 인기를 얻었고, 77년도에는 영화 '고가'로 '대종상'의 최우수 여우상을,

78년에는 영화 '부초'로 '백상 예술대상'의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합니다.

 

이 70년도의 시기가 윤미라의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시기에 윤미라는 신트로이카 3인방에 견줄만큼 높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70,80년대 섹시한 여배우가 엄유신, 이미지, 윤미라 등 세명이 대표적이었는데, 그 중 단연 윤미라가 가장 크게 각광을 받던 여배우였답니다.

 

윤미라의 키는 168cm로 70년대에는 웬만한 모델보다 더 큰 키에 볼륨몸매를 갖고 있었고,

한국판 마릴린 몬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윤미라의 섹시미와 관능적인 몸매는 정평이 나 있답니다.

 

특히 윤미라는 영화 '남사당'에서 섹시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하면서, 많은 남자들의 로망으로 자리잡았답니다.

 

윤미라는 78년대 후반에 허리우드의 테렌스 영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오 인천'에 스카우트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1978년도에 영화 '007'을 만들었던 명감독 테렌스 영이 연출하는 허리우드 영화 '오! 인천'이 한국에서 로케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을 한국여배우 중에서 선발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테렌스 영감독은 '오! 인천'의 여주인공을 뽑기위해 한국여배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는데요.

 

한국의 내노라하는 여배우들 30명이 응모해서 모두 떨어지고 난 후, 윤미라가 31번째로 응모해서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여배우 최초로 윤미라가 드디어 허리우드영화에 진출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당시 윤미라의 개런티는 5천만원이었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에 해당되는 커다란 금액이었다고 해요.

 

자기 혼자의 실력으로 당당히 허리우드영화에 스카웃되었던 윤미라는 영화촬영을 막 시작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유부남과의 불륜사건'이 터져나오게 된답니다.

 

윤미라가 유부남인 양말공장 사장과 눈이 맞아서 연애를 했다는 것이지요.

이 불륜스캔들로 인해서 윤미라의 허리우드영화 진출은 모두 무산되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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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 인천'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서 본격적으로 허리우드영화에 진출하려던 윤미라의 꿈은 때아닌 '불륜스캔들'로 인해서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답니다.

 

◆ 윤미라의 유부남과 불륜스캔들 사건

 

이렇게 윤미라는 70년대에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면서 대표적인 섹시글래머 스타로 각광을 받았는데,

그만 70년대 후반 뜻하지 않게 불륜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답니다.

 

70년대 후반에 터진 윤미라와 양말공장 사장과의 '간통사건'이 그것인데요.

 

윤미라가 대종상과 백상 등 좋은 상들을 휩쓸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펼쳐나갈 무렵인 70년대 후반에

그녀는 양말공장 사장과의 불륜사건으로 인해서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답니다.

 

윤미라가 유부남과 불륜을 맺어서 간통으로 고소를 당했던 겁니다.

지금은 간통죄가 없어졌지만, 70년대만 해도 간통죄는 엄청 커다란 죄악이었으며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았답니다.

 

더욱이 대중적으로 모범을 보여야만 하는 연얘인이 간통죄에 휘말린다면 그 스캔들만으로는 그여배우는 여자연예인으로서 생명이 끝나는 겁니다.

 

1979년 29세의 윤미라는 35세의 양말공장 사장 홍씨와 간통을 한 혐의로 홍씨의 부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답니다.

그런데 윤미라는 단순한 간통혐의 말고도 사기죄로도 함께 고소를 당하고 말았지요.

 

홍씨의 주장에 의하면, 자신은 윤미라와 78년도에 10차례에 걸쳐서 동침을 했고, 돈 10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미라가 빌려간 돈을 전혀 갚지않는다는 이유로 홍씨는 그녀를 사기죄로 고소했답니다.

그러자 윤미라는 자신과의 사적인 부분을 모두 까발린 홍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맞고소를 했답니다.

 

이렇게 고소사건으로 인해서 두사람의 관계가 드러나자, 홍씨의 부인이 두사람을 상대로 '간통죄'로 고소하기에 이른 겁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법정에서 '간통죄'와 '명예훼손죄' 그리고 '사기죄' 등 여러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답니다.

 

홍씨가 1,000만원의 돈을 빌려줬다는 주장에 대해서, 윤미라는 200만원은 자신을 동생으로 삼은 기념으로 그냥 준 것이고,

나머지 800만원은 어머니의 사업자금으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윤미라는 홍씨가 자신에게 돈 1000만원 중 800만원을 빌려준 것은 인정했답니다.

그렇지만 윤미라는 홍씨가 주장하는 자신과의 동침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답니다.

 

윤미라는 돈을 빌린 적이 있지만, 홍씨와 동침은 결코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답니다.

남자쪽에서는 여러번 동침을 했다고 주장하고, 여자쪽에서는 절대로 동침을 하지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윤미라와 홍씨는 서로간 다른 주장을 하면서 팽팽하게 맞서면서 재판을 받았답니다.

두사람이 서로간에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판은 무지하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결국 재판은 3년을 끌게 되며, 그 기간 동안 윤미라는 일체의 연기활동을 하지 않은 채로 재판에만 몰두하게 된답니다.

 

결국 3년이 지난 후에 윤미라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법원에서는 윤미라의 간통혐의가 없다는 것과 사기죄가 아니라는 것을 선고하게 됩니다.

 

윤미라는 유부남 홍씨와의 '간통사건' 재판에서 비록 승소는 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많이 실추되고 맙니다.

허리우드진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때아닌 간통사건에 휘말린 윤미라는 수년 동안 영화도 찍지못하고 그녀의 이미지만 크게 실추되고 맙니다.

 

아뭏튼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윤미라는 명예를 회복할 수는 있었지요.

윤미라는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난후,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기생활을 해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답니다.

 

윤미라와 홍씨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두사람은 광고를 찍는 문제로 만났는데 홍씨가 윤미라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답니다.

그래서 두사람은 친하게 지내는 관계가 되었는데요. 이당시 홍씨는 자신이 유부남인 사실을 숨기고 윤미라를 만났던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홍씨가 유부남인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윤미라는 곧바로 홍씨와 결별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홍씨는 돈까지 주면서 정성을 다한 윤미라가 자신을 매몰차게 차버리자, 그것에 앙심을 품고서 그녀와의 관계를 친한 신문기자에게 모두 까발리고 만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홍씨는 윤미라를 사기죄로 함께 고소를 한 것이지요.

 

아뭏튼 사건이 일단락되고 난 후, 윤미라는 다시 영화 출연제의를 받았고, 영화 '여자의 이 아픔을'에 출연하면서 제기에 성공할 수 있었답니다.

 

◆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

 

윤미라에 관해서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이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것일 겁니다.

윤미라는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최고의 미녀여배우였는데, 도대체 결혼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그녀는 왜 결혼을 하지않았던 걸까요?

 

 

전성기때의 윤미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고 합니다. 모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70년대 윤미라의 인기는 지금의 '소녀시대'의 인기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윤미라는 왜 결혼을 하지않았을까요?

 

윤미라가 결혼을 하지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자기집안의 사실상 가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미라는 집안의 맏딸이자 가장으로서 아래로 2남 3녀의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지요.

 

사실상 가장이었던 윤미라는 가족들의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했고,

5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모두 공부시키고 대학까지 보내는 등 그녀가 모든 동생들의 양육을 책임졌다고 합니다.

 

밖에서는 바쁘게 연기활동을 하면서, 집에서는 동생들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하면서, 바쁘게 생활했던 윤미라에게는

한가롭게 남자들과 연애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연기와 동생들 양육에만 전념을 쏟다보니, 접근해오는 남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윤미라는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매우 극심해서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에도 지극정성을 다했답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을 부양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그녀는 남자와 만나는 것 자체를 멀리했던 겁니다.

어쩌면 윤미라의 도도하면서도 완고한 성격도 그녀가 독신으로 살도록 하는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성격이 도도하고 완고한 사람은 이성과 연애하기가 무척 힘들답니다.

 

그리고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또다른 이유는 그녀를 간통사건에 휘말리게 했던 홍씨에 대한 실망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윤미라는 처음에는 홍씨가 총각이라는 거짓말에 속아서 그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리고 홍씨의 여러가지 비열한 행동을 보고는 남자에 대한 실망감이 엄청 컸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처럼 만나서 데이트를 한 남자에 대해서 커다란 실망감을 갖게된 그녀는 남자전체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남자에게 크게 데이고 실망한 그녀는 그 후에 남자를 멀리했을 것이고, 남자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한 남자에 대한 불신감은 자칫 남자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번질 수 있답니다.

 

이렇게 윤미라는 다섯명이나 되는 동생들 뒷바리지하느라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놓쳐버렸고,

더욱이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남자에 대해서 커다란 불신감을 생겼던 것 등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인해서 결혼을 멀리하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실들을 토대로 해서 추정을 한 것일 뿐이고요.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진짜이유는 오직 윤미라의 가슴속에만 간직되어 있을 것이고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윤미라는 불륜스캔들을 극복하고 난 이후부터는 영화보다는 주로 tv드라마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최근까지도 드라마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은 그녀는 드라마에서 어머니역이나 아주머니역으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드라마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7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독신으로 살고 있는 그녀는 '외롭지 않냐?'라는 질문에 애인은 없지만, 주변에 남자친구들이 있어서 외롭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알고지내는 남자친구들은 그녀를 만날 때면 꼭 부인과 함께 나온다고 합니다.

70이 훨씬 넘은 윤미라는 아직도 결혼에 대한 핑크빛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윤미라는 얼마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결혼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우회적으로 결혼에 대한 소망을 피력했답니다.

 

70이 훨씬 넘은 그녀가 아직도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윤미라는 한번쯤은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자선사업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답니다.

 

70, 80년대에 최고의 섹시글래머 스타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윤미라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는 좀 안타까운 사연을 전혀드렸는데요.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도 매우 당당하고 활기차게 방송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어서,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지게 보입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윤미라는 정말 멋지고 대단히 매력적인 배우라고 느껴진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서 계속 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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