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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트로이카여배우 남정임의 영화와 결혼, 남편, 사망원인
반헬싱
2024. 6. 26. 10:36
60년대 트로이카여배우 남정임의 영화와 남편, 사망원인
남정임 1945년 7월 21일 ~ 1992년 9월 2일. 48세에 유방암으로 사망
오늘은 1960년대에 청춘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던 남정임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 영화의 가장 큰 중흥기는 60년대이지요. 이 시기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가장 크게 번성했던 시기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60년대에는 대단한 스타들이 많이 배출되었답니다.
남성배우들은 신성일을 비롯해 신영균, 남궁원, 최무룡 등 거물급배우들이 이 시기에 활동하면서, 우리영화계의 중흥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여배우로는 최은희, 김지미 같은 고전미인상을 가진 여배우들이 60년대에 주연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고전미인상과는 다른 신선감있고 세련된 여배우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답니다.
60년대에 새롭게 우리영화계에 세명의 여배우들이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바로 60년대 트로이카 또는 1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리우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3인방들이랍니다.
과거의 인기여배우 최은희, 김지미가 우리한국의 전통적인 미인상이었다고 한다면,
이들 트로이카 3인방은 좀 더 개성있고 세련된 미모를 발산하는 미녀여배우들로서, 60년대 우리영화계에 신선감을 안겨다주면서, 우리영화산업의 번영을 이끌어나갔던 주역들이랍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세련된 미모와 청순한 미모로 남성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여배우가 있었는데, 바로 60년대 청순미의 아이콘인 남정임이랍니다.
1세대 트로이카 여배우 삼인방은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미녀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세대 트로이카 여배우중에서 문희를 최고의 미인으로 꼽는 경향이 있지요.
그렇지만, 가장 개성있는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가장 청순한 미모를 발산했던 남정임도 출중한 미모를 갖고있었고, 그 당시 대중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게 사실이랍니다.
문희와 윤정희는 보편적인 미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정임은 두 미녀여배우와는 다른 신선함과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고, 트로이카 3인방 중에서 가장 청순한 미녀로 평가되면서, 유독 젊은이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던 여배우입니다.
그러니까, 트로이카 세명의 여배우들이 모두 예쁜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남정임이 가장 세련된 미모를 갖추고 있었고, 가장 개성있는 캐릭터를 갖고 있었기에 그녀는 유독 젊은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60년대에 가장 청순한 미모를 발산하며 수많은 청춘영화들에 출연해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남정임은 60~70년대에 가장 개성있는 여배우, 가장 청순한 미녀여배우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의 청순미인은 이영애이고, 2010년대의 청순미인은 정유미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청순미인의 시발점은 바로 60, 70년대를 풍미했던 남정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녀는 청순미녀의 레전드급이랍니다.
남정임은 60, 70년대에 수많은 청춘영화에 출연해서 ‘청춘물의 아이콘’으로 불리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당대의 톱스타였답니다
.
문희가 슬픈 멜로영화에 주로 출연하면서, 슬프고 비련한 여주인공 역할을 많이 했던 반면,
남정임은 청춘영화에 출연해서 명랑하고 발랄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으며, 청춘스타의 아이콘같은 존재감으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 남정임의 영화들
남정임은 1966년도에 영화 ‘유정’으로 데뷔했고, 그 후 ‘학사기생’ ‘망향’ ‘빙점’ ‘어느 여배우의 고백’ ‘풍운의 검객’ ‘초연’ ‘일월’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60, 70년대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여배우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특히 남정임은 로맨스멜로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그 시대에 실험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검객무협영화와 형사액션영화에도 많이 출연해서, 다양한 연기활동을 펼침으로써, 많은 남성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67년도의 ‘풍운의 검객’ 69년도의 ‘십오야’와 70년대의 ‘팔도검객’ 등의 영화는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는 박진감 넘치는 검객무협영화로서, 남정임은 이런 검객뮤협영화에 출연하여 멋진 검객여전사의 색다른 매력을 선보여서 특히 젊은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60년대 당시에 홍콩에서는 검객무협영화가 많이 유행했었는데, 홍콩무협영화에 영향을 받았던 우리나라 영화계에도 한국토종의 검객무협영화들이 많이 제작했었고,
박노식과 남정임이 주연으로 많이 출연하면서, 한국무협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형성되기도 했답니다.
이러한 검객무협영화들은 단순히 흥미만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가슴에 찡하게 만드는 감동을 함께 선사해주는 대단한 명작품들로서,
개성있는 캐릭터가 강한 남정임이 열연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었답니다.
남정임이 이러한 검객무협영화에 신비로운 검술을 선보이는 여전사로 출연해 열연을 펼침으로써, 그 당시 젊은 남성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끌었답니다.
개성있는 캐릭터가 강했던 남정임이었기에 이같은 고난도의 검객여전사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었고, 만약에 문희나 윤정희가 이같은 검객무협영화에 출연했더라면, 소화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특히 ‘팔도검객’과 ‘심오야’에서 현란한 검술을 선보이면서 악당들과 검술대결을 펼쳤던 남정임은 ‘검객여전사’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신비롭고도 신선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많은 남성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불러일으켰답니다.
60~70년대에 멜로연기 뿐만아니라, 액션연기도 함께 완벽하게 연기했던 여배우로는 단연 남정임이 최고였답니다.
그런점에서 남정임은 다른 여배우들과는 차별화될 수 있었고, 가장 개성이 강한 여배우로 각인될 수 있었답니다.
청순한 미모의 여배우가 칼을 손에 쥐고, 현란한 무술을 연기하면서 멋진 스펙터클을 선보인다면, 젊은 남성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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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임은 로맨스영화, 검술무협영화, 액션형사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서 연기의 폭을 넓혀갔으며,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중에는 당대의 명작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남정임은 사극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68년도의 영화 ‘요화 장희빈’이랍니다.
이 ‘요화 장희빈’은 남정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모든 여배들이 가장 선호하는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절세의 미인인 ‘장희빈’역을 맡는 것이랍니다.
당대의 가장 빼어난 미녀여배우에게만 배역이 주어진다는 ‘장희빈’역을 남정임이 당당히 꽤참으로써, 그녀가 6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당대의 최고 미녀여배우로 각인될 수 있었답니다.
1대 장희빈은 김지미였고, 남정임은 김지미의 뒤를 이어서 2대 장희빈역을 연기함으로써, 60년대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각인될 수 있었답니다.
참고로 3대 장희빈은 좀 의외지만 윤여정이 맡았고, 4대 장희빈은 이미숙, 5대 장희빈은 전인화였습니다.
역대 장희빈 중에서, 미모와 연기력, 개성을 모두 함께 갖추고 있었던 남정임이 가장 예뻤다고 느껴집니다.
경기도 광주출생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었던 남정임은 1965년도에 실시한 영화 ‘유정’의 여주인공 공개모집에 응모하여, 무려 1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당선되었는데, 그녀의 출중한 미모가 여주인공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러니까, 남정임은 첫 데뷔작부터 여주인공을 맡았을 정도로 그녀의 빼어난 미모는 대단했었답니다.
원래 이름이 이민자였던 그녀는 데뷔작 ‘유정’에 출연하면서, 여주인공 이름인 ‘남정임’을 자신의 예명으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리고 남정임은 해마다 30여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녀가 은퇴한 1971년도까지 총 250편의 영화에 출연했답니다.
그녀는 미모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연기력도 대단히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66년부터 그녀가 은퇴한 71년도의 6년 동안이 남정임의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6년동안 250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을 정도로, 화려한 영화활동을 벌였던 남정임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초절정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에서는 큰 인기와 명성을 떨쳤던 남정임이지만, 그녀의 사생활만큼은 예상외로 행복하지만은 않았답니다.
◆ 남정임의 결혼과 이혼, 폭행스캔들
인기절정인 1971년도에 남정임은 재일교포 임방광과 결혼을 하면서, 영화계에서 은퇴를 하게 된답니다.
당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고있었던 남정임은 성공한 재일교포 출신의 사업가 임방광과 세종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1,000명이 넘는 그녀의 팬들이 결혼식장에 몰려오는 등 그녀의 호화로운 결혼식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화려한 결혼식은 3년만에 파경을 맞게 된답니다. 남정임은 남편 임방광의 사업부진으로 인해서 서로간 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남편과 이혼한 남정임은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답니다.
남정임이 첫남편 임방광과 이혼한 구체적인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혼해서 남편이 사는 일본의 시댁으로 들어가 살았던 남정임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정임은 남편의 시댁에서 운영하는 도쿄의 한식당(불고기집)에 종종 동원되어서 서빙일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시부모님이 그녀를 식당으로 불러내어 서빙일에 그녀를 마구 부려먹었다고 하며,
이러한 고된 시집살이와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이 부부간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결국 남정임은 남편과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3년만에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답니다.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렸지만 허망하게 이혼하고 돌아온 남정임은 1976년도에 영화계에 다시 복귀했고, 영화 ‘나는 고백한다’에 출연하면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답니다.
그리고 남정임은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등 이혼 후에 다양한 연기활동을 펼쳐나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혼실패 후에,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대중들의 반응은 무척 싸늘했답니다.
그녀가 복귀한 후,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 모두 흥행에 실패하였고, 그녀는 과거와는 달라진 영화판도에 적응을 못하면서, 실의에 빠지게 된답니다.
남정임은 77년도에 드라마 ‘여고동창생’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에 출연할 당시에,
갑자기 뜻밖의 폭행사건이 터지게 된답니다.
1977년 1월27일, 남정임은 칼에 머리가 찔리고 얼굴과 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게 된답니다.
경찰이 출동하였고, 경찰조사가 이뤄지게 되었는데, 그 조사에서 남정임은 오빠에게 얻어맞아서 상처가 생겼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정임의 상처가 너무 심했고, 그녀의 가족들마다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경찰은 보다 심도놓은 수사를 벌였답니다.
경찰의 치밀한 수사 끝에, 오빠에게 맞았다는 남정임과 오빠의 진술은 거짓임이 드러나게 되었답니다.
남정임은 오빠에게 맞은 게 아니라, 그녀의 애인이자 동거인이었던 노승주에게 얻어맞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겁니다.
남정임은 자신의 집에서 학원이사장 출신인 애인 노승주와 동거하고 있었는데, 밤에 늦게 귀가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노증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남정임의 연기생활이 파탄이 날까봐, 그녀와 오빠는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거짓증언을 한 남정임과 오빠는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되어, 경찰에 입건되어 형사재판까지 받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이같은 남정임의 폭행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세상이 떠뜰썩해지면서, 그녀에게 매스컴의 호된 비판이 쏟아졌답니다.
이 스캔들이 터진 당시에 남정임은 일본에 있는 남편과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고, 그냥 별거만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답니다.
그래서 남정임은 매스컴으로부터 더욱 심한 도덕적인 비난을 받았던 겁니다.
이처럼 사회적인 지탄을 받게 되자, 남정임은 약을 먹고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답니다.
결국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남정임은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방송출연정지를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남정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폭행사건의 주범인 애인 노승주와 1978년도에 재혼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답니다.
노승주와 결혼한 후 남정임은 연예계에서 은퇴하였고,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낳아 기르면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남편 노승주는 대한도시가스 대표이사를 맞는 등 성공가도롤 달려갑니다.
그런데 운명의 신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나 봅니다. 한번의 결혼실패 후, 다시 재혼해서 안락한 삶을 살아갔던 남정임은 1989년도에 갑자기 유방암에 걸리게 된답니다.
유방암에 걸린 그녀는 3년동안 병마와 싸우면서 재기의 꿈을 꾸었지만, 그녀는 결국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1992년도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암과 투병하는 와중에서도 남정임은 자신의 일생을 담은 영화를 찍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아쉽게도 남편과 두자녀를 남겨놓고는 4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남정임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까지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당대의 신데렐라 같은 여배우였답니다.
그녀의 연기활동 시기는 짧았지만, 그녀는 200편이 넘는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겨놓았고, 60, 70년대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여매우로 많은 대중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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