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열, 리칭, 악화 주연의 중국무협영화 협사행내용줄거리, 홍콩미녀여배우 리칭의 사망원인, 고독사, 70년대 고전 홍콩무협영화 추천

 

우리나라에서 70년대는 고전무협영화나 무술권법영화가 최고의 인기를 끌던 장르였습니다.

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관객들이 홍콩무협영화를 보기 위해서 서로 앞다퉈서 극장가로 몰려갔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홍콩의 최대자본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에서 제작한 무협영화들이 최고의 히트를 치던 시기였습니다.

 

70년대에는 특히 쇼브라더스사에서 제작한 검객무협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붐을 형성했는데, 그 중에서도 나열, 왕우, 리칭, 정패패 등이 주연을 맡은 무협검객영화들이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 흥행을 주도해나갔습니다.

 

70년대 초반 홍콩 쇼브라더스사의 대표적인 무협스타 나열과 홍콩의 대표적인 미녀스타 리칭, 그리고 악화가 열연한 ‘협사행’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협사행’은 당시 홍콩무협영화의 정수를 보여준 대단한 걸작품입니다.

 

홍콩의 대표적인 무협배우 악화가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인 재상을 죽이는 협객 비도왕으로 열연을 펼쳤고, 로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나열은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선보이면서 악화의 뒤를 쫒는 포도청무사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악화가 맡았던 비도왕 쿠잉은 사악한 탐관오리들을 제거하는 민중들의 영웅이자, 의로운 협객입니다. 그렇지만 악화가 맡았던 비도왕 쿠잉이 한나라의 재상을 암살했기 때문에, 포도청관리인 판이의 역을 맡은 나열이 살인범 악화를 붙잡기 위해서 그의 뒤를 끝없이 쫒아갑니다.

 

그리고 여배우 리칭은 이 영화에서는 여검객이 아닌 여성스럽고 가녀린 여인의 역할을 맡아 비도왕 악화를 사모하는 청순미 넘치는 미모로 애절하고도 멋진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수많은 남성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여관집의 딸 슈니앙으로로 분한 리칭은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무도한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면서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던 시대적 영웅이자, 의로운 협객 쿠잉 즉, 악화를 짝사랑하는 가녀린 여인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악한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면서 살인범으로 몰려 숨어지내는 비운의 영웅 악화, 그리고 살인범 악화를 붙잡기 위해서 그의 뒤를 끝없이 쫒아가는 포도청무사 나열, 그리고 의로운 협객 악화를 짝사랑하면서 그의 곁에 영원히 머무르고자 하는 순정의 여인 리칭의 삼각관계가 아름답게 그려지는 고전 무협영화가 바로 ‘협사행’이지요.

 

영화 ‘협사행’은 범인을 뒤쫒는 사나이 나열, 살인을 저지르고 쫒겨다니는 영웅 악화, 비운의 영웅 악화를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가녀린 여인 리칭이 서로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멋지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여준 정통무협영화입니다.

 

서로 숱한 결투를 펼치지만 끝내 승부를 보지못하는 나열과 악화는 처음에는 서로를 죽여야되는 원수의 관계였지만,

나중에는 두사나이 사이에 야릇한 우정이 싹트면서 급기야 나열은 살인범 악화의 체포를 포기하고 자신의 벼슬을 내던지는 의리의 사나이의 모습을 전격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걸작품입니다.

 

이 고전무협영화 ‘협사행’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고, 홍콩과 동남아시아에서 개봉되면서 공전의 대히트를 친 영화입니다. ‘협사행’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지 않은 이유는 엄청나게 높은 수입단가 때문입니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거의 주름잡다시피할 정도로 수많은 무협영화들을 제작하고 히트시킨 쇼브라더스사에서 갑질을 부려 영화 ‘협사행’의 수입단가를 터무니없이 높은 단가를 책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배급사에서 이 영화의 수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70년대 당시 홍콩무협영화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영화 ‘협사행’의 여주인공 리칭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71년대도에 홍콩여배우 리칭은 엄청난 절정의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도 그녀의 영화 ‘스잔나’가 개봉되어 대히트 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습니다.

 

리칭은 60~70년대에 활동한 홍콩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서, ‘도검’ ‘빙천협녀’ ‘아랑곡의 혈투’ ‘철수무정’ ‘보표’ ‘스잔나’ 등 수많은 걸작품에 출연해서 당시 아시아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인기를 톱스타였습니다.

 

 

특히 67년도에 제작된 영화 ‘스잔나’를 비롯한 수많은 홍콩 무협영화에 출연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남아에서 큰 인기와 명성을 쌓으면서 그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의 요정같은 미녀여배우입니다.

 

아뭏튼 리칭은 60~70년대에 홍콩영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최고 인기여배우였습니다. 특히 리칭은 67년도에 출연한 멜로영화 ‘스잔나’로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 ‘스잔나’에서 리칭은 뇌종양에 걸려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슬프고도 가련한 소녀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영화 ‘스잔나’는 엄청난 디히트를 치게되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71년도에 이 영화가 상영되어 29만명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 해 최다 관객동원의 금자탑을 세웠던 영화입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리칭신드롬’과 ‘스잔나신드롬’현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리칭은 1970년대 전반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스타였고, 동시에 아시아의 최고미녀스타였답니다.

 

그렇게 한국의 수많은 올드팬들의 마음속의 연인으로 자리잡았던 리칭은 72년도에 한국의 신필름 대표인 신상옥감독에게 스카우트되면서 한국으로 건너와 무려 세편의 영화에 출연하기까지 합니다.

 

리칭은 1972년도에 한국으로 건너온 후 영화 ‘리칭의 여선생’ ‘반혼녀’ ‘흑야광주’라는 세편의 신상옥감독 영화에 출연했고, 이 영화들은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치면서, 우리나라에서의 리칭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게 된답니다.

 

특히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영화 ‘리칭의 여선생’은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치면서 리칭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스타로 각광받게 된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렇게 60~7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녀여배우 리칭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화 ‘스잔나’와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등 수많은 걸작품에 출연해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절정의 미녀스타 리칭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 리칭의 일생과 독신으로 살게 된 이유 -

 

그럼, 지금부터 리칭이 과거 살아온 이력과 리칭이 불행해진 이유와 독신으로 살게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리칭은 1948년도에 상하이에서 출생했지만, 부모님을 따라서 곧바로 홍콩으로 이주했습니다.

소녀시절 때부터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리칭은 당시 홍콩과 아시아의 최대자본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에서 개최한 공개오디션에 응모하여, 무려 50 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쇼브라더스의 연극학교에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쇼브라더스사의 연극학교에는 리칭 외에도 정패패와 진평, 강청 등 쟁쟁한 동기생들이 함께 있었는데, 이들 중에서도 청순한 미모와 열정적인 연기력을 갖춘 리칭은 단연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면서 쇼브라더스사의 간편여배우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리칭은 1964년 영화 ‘옥당춘’에 단역배우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첫데뷔하였고, 이후 ‘어미인’ ‘철면황제’ ‘도검’ ‘스잔나’ 등의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예쁜 얼굴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65년도에 리칭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어미인’은 홍콩과 동남아시아에서 엄청나게 대히트치면서, 리칭은‘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미 이때부터 리칭의 뛰어난 연기력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았고, 리칭의 엄청난 인기는 지속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7년도에 불세출의 멜로영화 ‘스잔나’에 출연해 열연을 펼치면서 리칭은 최고의 인기여배우로 각인되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달리게 된답니다.

 

그후에도 리칭은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빙천협녀’ ‘14인의 여걸’ 등 비중 높은 여러 무협영화들에 출연해 무협전문 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면서 70년대 전성기를 이어나갔으며, 명실상부한 홍콩의 최고미녀스타로 자리매김합니다.

 

리칭은 70년대 당시 홍콩과 한국을 오가면서 연기자로서 최고의 전성기시대를 열어나갔는데, 이 당시 리칭은 총 54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그녀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크게 히트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리칭에게 서서히 불행이 닥쳐오게됩니다.

 

리칭은 1979년도에 10년동안 사귀어왔던 애인이자 버스회사 사장인 뇌각엽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자 큰 실의에 빠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1983년도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고 영화계에서 완전 은퇴하게 됩니다.

 

리칭은 80년도를 전후해서 그녀가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사람인 애인과 어머니를 모두 잃게되자, 엄청나게 큰 상실감에 빠졌고, 이 때부터 상실감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 도박장에 드나들게 됩니다.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리칭은 마카오에 있는 카지노도박장에 드나들면서, 도박에 완전히 빠지게됩니다.

 

리칭은 자신이 평생동안 모았던 엄청난 돈을 마카오의 카지노도박장에서 도박으로 모두 탕진해버렸고 그녀는 완전 파상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영화계를 은퇴한 후, 허전함과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시작했던 도박이 리칭을 완전히 파멸로 몰아넣었던 겁니다.

 

한때 동양 최고의 인기여배우였던 리칭은 도박에 중독되어서 전재산을 탕진하고, 가난뱅이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그 후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리칭은 홍콩의 스타벨리라는 보잘 것 없는 시영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리칭은 한 때 ‘쇼브라더스사’의 공동회장인 후인교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유부남인 후인교와는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가지못했고, 한 때의 염문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리칭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애인도 잃고 전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리칭은 사실상 생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남은 여생을 살아갔다고 합니다.

 

2000년대 전반까지 홍콩매체에 의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리칭은 홍콩의 스타벨리라는 싸구려 임대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리칭은 결혼을 했다는 뚜렷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고, 주변사람들이 전해주는 소식에 의하면, 그 임대아파트 주변에서 좀 뚱뚱해진 리칭이 항상 혼자서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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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볼 때에, 사랑했던 첫사랑과의 사별, 그리고 전재산의 탕진으로 인해 크게 실의에 빠졌던 리칭은 그 후에도 결혼하지 않고, 계속 독신으로 살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리칭의 사망과 사망이유 -

 

한 때 아시아에서 톱스타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불멸의 스타 리칭이 2018년 2월 23일날 홍콩섬 빡콕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안타깝게도 사망했다고 합니다.

 

2018년 2월 23일날, 경찰은 홍콩섬 빡콕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있는 리칭을 발견했습니다.

 

이 임대아파트에서 리칭은 오래동안 혼자서 살아왔는데, 리칭이 오랫동안 모습이 보이지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주변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경찰은 문을 부수고 그 아파트로 진입들어갔는데, 그 아파트에서 리칭이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왕년의 홍콩스타인 리칭이 71세의 나이로 ‘고독사’한 것이어서 그녀를 좋아했던 수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주변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리칭은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오고 있었는데, 암이 악화되어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리칭이 살고있었던 아파트는 임대아파트로서 이 임대아파트에서 리칭은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고 하며, 그녀가 사망했을 때에 그녀의 임종을 지켜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리칭은 만년에 매우 외롭고도 고달프게 혼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60~70년대에 홍콩과 아시아에서 홍콩을 대표하는 미녀여배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리칭이었지만, 그녀가 평생을 혼자 독신으로 살아왔다는 것도 믿겨지지않을 뿐만 아니라, 71세의 나이에 고독사했다는 사실이 더욱 믿어지지않을 따름입니다.

 

리칭이 사망한 것을 발견한 것은 2018년 2월 23일이었는데, 그녀가 죽었을 당시에 그녀의 임종을 지켜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죽은 리칭을 발견했을 때에는 리칭은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리칭은 사망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경찰에 의해서 발견되었던 것이지요.

 

또한 생전에 리칭을 보았다는 목격자들도 리칭이 항상 혼자서만 다녔고, 혼자서 지냈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리칭이 숨겨둔 애인이나 자식이 있었다는 소식도 전혀 없기 때문에, 그녀가 평생 혼자서 독신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리칭이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를 수개월 동안 내지못해서, 그 아파트 주인이 리칭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어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리칭은 임대료를 무려 1년 동안 내지못했다고 합니다.

리칭이 말년을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리칭은 정말로 말년을 매우 외롭고 비참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칭은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 방송이나 외부에 일체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키지않고 은둔생활을 해왔다고 하며, 말년에는 암에 걸려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71세의 나이에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 ‘협사행’ 줄거리 -

 

백성들을 수탈하고 괴롭히는 탐관오리이자 재상인 얀이 길거리에서 어떤 괴한의 공격을 받고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재상을 암살한 괴한은 대중들로부터 의로운 협객이자 영웅으로 존경을 한몸에 받는 비도왕 쿠잉입니다.

비도왕 쿠잉은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가렴주구를 일삼는 악덕한 재상을 살해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오히려 존경과 찬사를 받게됩니다.

 

비도왕 쿠잉은 백여명이 넘는 수행포졸들을 거느리고 행차하는 얀재상에게 단신으로 접근하여 재상을 죽이고, 포졸들을 물리치는 엄청난 쾌거를 이룩합니다.

 

그런데, 그 재상을 호위하던 호위무사 판이는 자신이 모시는 재상이 암살당하는 참사를 겪었기 때문에, 조정으로부터 심한 문책을 받았고, 그 살인범 쿠잉을 잡아온다는 조건하에 풀려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포도청 관리 판이는 살인범 비도왕 쿠잉을 잡기위해서 추격대를 결성해 쿠잉의 뒤를 쫒기 시작합니다.

만일 포도청 관리 판이가 재상살인범 쿠잉을 잡아오지 못한다면, 그는 조정으로부터 처형을 당할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이때부터 비도왕 쿠잉과 그를 잡으려는 판이간에 쫒고쫒기는 대추격전이 벌어집니다.

비도왕 쿠잉은 악화가 맡았으며, 그를 쫓는 포도청무사 판이는 나열이 맡았습니다.

 

포도청관리 판이는 산속 깊은 곳의 한 절간에서 쿠잉을 찾아냈고, 쿠잉과 결투를 벌이지만, 쿠잉의 비범한 검술실력에 밀려서 끝내 쿠잉을 잡지못하고 놓쳐버립니다.

 

비도왕 쿠잉은 피신을 하는 과정에서 요기를 하기 위해서 슝화군에 있는 씬핀여관에 들릅니다. 그런데 그 씬핀여관의 식당에서 자신을 잡으로 다니던 포도청무사 판이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포도청관리 판이는 비도왕 쿠잉의 얼굴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쿠잉은 판이와 결투를 벌일 때에 변장을 하고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씬핀여관의 주인에게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딸 슈니앙 즉, 리칭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주민들은 재상을 암살한 비도왕 쿠잉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못된 탐관오리들을 척결하는 정의로운 협객으로 생각하면서, 쿠잉을 매우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관집 딸 리칭은 평소에 정의로운 협객인 비도왕 쿠잉을 마음속으로 몹시 흠모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비도왕 쿠잉과 그를 잡으려는 포도청관리 판이가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포도청무사 판이는 전에 한번 싸운 적 있는 쿠잉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고는 체포하기 위해 결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포도청무사 판이에게 목격된 쿠잉은 자신은 쿠잉이 아니라 산동성에서 온 관리 송활롱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것을 듣고있던 리칭은 쿠잉을 자신의 사촌오빠 송활롱이 맞다고 맞장구치면서, 쿠잉의 편을 들어주었고, 리칭의 센스있는 행동 때문에 쿠잉은 포도청무사에게 체포당한 뻔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그 후 비도왕 쿠잉과 포도청무사 판이가 그 씬핀여관에 함께 묶으면서 서로를 감시하게 되며, 리칭의 쿠잉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주민들을 약탈하고 살육을 자행하는 악한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얼룽산의 악당들이었습니다.

 

얼룽산의 악당들은 마을에 첩자를 내려보내서 산동성에서 온 송활롱이 있다는 첩보를 전해듣고, 송활롱을 없애기 위해서 부하들을 출동시켰습니다.

사실, 조정에서는 얼룽산의 악당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관리 송활롱을 내려보냈는데, 진짜 송활롱은 마을 어귀에서 얼룽산무리들에게 습격을 받고 죽고말았습니다.

 

진짜 송활롱을 죽고 없고, 비도왕 쿠잉이 가짜 송활롱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얼룽산의 악당들은 쿠잉이 진짜 송활롱이라고 믿고 그를 없애기 위해서 부하들을 출동시킨 겁니다.

 

대규모의 얼룽산 무리들이 씬핀여관으로 쳐들어갔고, 그 여관에서 악당들과 조우한 쿠잉과 포도청무사 판이가 서로 협력해서 악당들과 한판 대결을 펼쳤습니다.

 

서로 쫒고쫒기는 원수지간이었던 쿠잉과 포도청무사 판이가 얼룽산 악당이라는 공동의 적과 마주치면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고, 두사람은 서로 협력하에 얼룽산의 무리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얼룽산의 두목은 자신이 보낸 부하들이 쿠잉과 전투를 벌여서 모두 죽게되자, 그가 강자임을 깨닫고는 장난의 여덟괴수들을 불러들여 쿠잉을 죽일 것을 청탁합니다.

 

한편, 쿠잉과 같은 여관에서 함께 묶고있는 포도청무사 판이는 여전히 쿠잉을 재상살해범이라는 의심을 거두지않고 있으며, 그를 계속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얼룽산에서 보낸 장난의 여덟괴수가 씬핀여관에 있는 쿠잉에게 쳐들어갔고, 두 세력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싸움에 포도청무사 판이가 뛰어들었고, 결국 쿠잉은 판이의 도움을 받아서 장난의 여덟괴수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얼룽산의 악당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쿠잉과 포도청무사 판이 사이에 야릇한 우정이 싹트게 되었고, 두사람은 서로에 대해 깊은 신뢰감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룽산의 악당들은 리칭을 자신들의 소굴로 납치해갔고, 리칭이 납치당한 것을 알게된 쿠잉과 포도청무사 판이가 함께 얼룽산으로 쳐들어가서 그들과 한판 대결을 펼치게됩니다.

 

얼룽산의 악당들과 최후의 결전에서 결국 쿠잉과 포도청무사 판이는 승리를 거두게됩니다.

쿠잉을 체포하려던 포도청무사 판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계급장을 떼어내버리면서 쿠잉의 체포를 전격 포기하였고, 쿠잉과 리칭의 결합을 축복해주면서 그곳을 떠나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과거 그렇게도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영원한 스타 리칭이 71세의 나이로 초라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고독사했다고 하니,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70년대에 홍콩의 최고의 미녀스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리칭이 말년에 초라한 임대아파트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다고 하니, 대단히 안타까울 따름이며, 정말 심각한 인생의 무상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리칭, 나열, 악화 주연의 무협영화 ‘협사행’의 줄거리와 리칭의 사망에 관한 슬픈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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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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