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입양아 정인이 학대사망사건과 사망이유, 아기 학대이유, 양부모 신상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로부터 학대와 구타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서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202010월, 2살밖에 안된 아기 정인이가 누군가로부터 엄청난 폭행과 구타를 당한 끝에 숨지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는데요.

 

2020101316개월된 입양아 정인이는 양모와 함께 있는 상태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큰 충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졌고,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미 정인이는 숨이 멎은 상태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정인이의 몸에 대해 CT촬영을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정인이의 두개골과 쇄골, 갈비뼈 등 총 12개의 뼈가 골절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정인이는 12군데의 골절 뿐아니라, 복부안의 췌장과 장간막이 파열되어 있었고, 복부속에는 피가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12군데의 뼈골절 중에는 일주일전, 2개월전, 3개월전에 입었던 뼈골절도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공식적인 사망이유는 외력에 의한 장파열이라고 합니다.

 

정인이가 사망했던 당시에, 정인이는 집에서 양모 장씨와 단둘이 함께 있었는데요.

 

양모 장씨의 주장에 의하면, 정인이가 밥을 안먹고 보채는 바람에,

자신이 정인이를 두손으로 잡고 흔들다가 실수로 떨어뜨리는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정인이가 의자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양모는 정인이가 숨진 것은 두팔로 흔들다가 실수로 놓쳐 발생한 단순한 사고사라고 주장하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정인이 양모의 주장이 거짓임을 나타내주는 여러가지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요.

 

정인이에 대한 부검결과에 따르면, 사망 당시 정인이의 복부에 가해진 충격은 73kg의 체중을 가진 성인이 돌진하면서 가격을 했을 때에, 나타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라고 합니다.

 

또한 달리는 자동차가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치었을 때에, 가해지는 정도의 충격이라고 합니다.

 

 

만일 양모의 주장대로 정인이를 안고 흔들다가 떨어뜨려 의자에 부딪쳤다면, 경미한 타박상을 입을 뿐, 이 정도의 강한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정인이의 몸의 여러곳의 뼈가 골절되고, 몸의 곳곳에 시퍼런 멍자국들이 나 있었는데, 이것은 누군가가 정인이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행을 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따라서 정인이를 흔들다가 실수로 떨어뜨렸다는 양모의 주장은 거짓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검찰, 정인이 사망사건을 법원에 공소 제기

 

경찰은 정인이가 숨진 후, 정인이의 양모를 학대치사죄의 혐의로 구속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정인이의 양부는 학대 방조죄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답니다.

 

그리고 이번에 검찰이 정인이 학대사망사건을 법원에 공소제기를 했습니다.

이번에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었는데요.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작년 6월 양모는 생후 11개월된 정인이의 왼쪽 어깨뼈를 때려서, 왼쪽 어깨뼈가 골절되었습니다.

또한 기부스를 한 정인이 어깨를 강하게 밀쳐서, 아이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게해서 뒷머리부분이 7cm나 골절되었습니다.

 

또한 허벅지와 옆구리를 때려서, 허벅지 넓적다리뼈와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또한 그 후에도 정인이를 때려서 우측 넓적다리 부분이 골절되었고, 또한 우측 9번째 늑골이 골절되었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양모는 최소한 정인이를 8차례 이상 학대한 정황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정인이는 어깨를 다쳐서 기부스를 했는데, 또다시 그 기부스한 정인이를 강하게 밀쳐서, 정인이머리를 바닥에 부딪치게해 머리에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양모는 남의 눈에 잘 띄지않는 정인이의 등과 다리, 옆구리 배부분에 집중적으로 폭행을 가했습니다.

  

아니, 1살밖에 안된 어린 아기를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이렇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때렸다고 하니, 정말 천인공노할 패륜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인이는 입양된 후, 5개월 동안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대와 폭행을 당한 흔적이 나왔다고 합니다.

  

정인이는 20196월에 태어났고, 20202월에 8개월되던 시기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인이는 입양된 후 한달 뒤부터 정인이 몸에서 종종 학대와 구타를 당한 여러 흔적들이 발견되었고

그 때부터 죽기 전날까지 몸의 여러곳에서 시퍼런 멍자국과 상처들이 3일 간격으로 계속해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정인이의 양모는 정인이를 입양한 후 한달 뒤부터 아기가 죽는날까지 정인이에게 반복적인 학대와 폭행을 지속해왔던 겁니다.

 

또한 경찰은 아파트 CCTV 영상자료를 확보했는데, CCTV 영상자료에서 양모의 정인이 학대정황들을 여러건 확인했다고 합니다.

 

- 양모가 정인이가 탄 유모차를 확 밀쳐서 유모차가 엘리베이터벽에 쿵하고 부딪치게 함.

 

- 외식을 나갔을 때, 양부모와 친딸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정인이 혼자만 몇시간 동안 차안에 방치함.

 

- 양모가 정인이 목덜미를 감아올려서, 엘리베이터내부 벽에 있는 손잡이위에 올려놓음.- 만약에 떨어질 경우, 정인이는 뇌진탕 및 두개골파열로 사망할 수도 있다.

 

- 양모가 마치 짐짝 나르듯이 정인이를 양손으로 잡아올려 차에 태움.

 

- 정인이가 울자, 양모가 정인이가 탄 유모차를 뒤집어 엎어버림.

 

주변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저녁 7시가 되면 양모 장씨는 정인이를 달래서 제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독방에 정인이를 혼자 두고, 아기가 혼자 울다가 지켜서 자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양모는 입양아 정인이를 입양한 한 달 뒤부터 숨지는 그날까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대와 폭행을 가해왔고, 만싱창이가 된 정인이는 입양된 지 8개월만인 작년 1013일날 숨지고 말았는데요.

 

그리고 1013일날 정인이가 사망한 당일날에도 또다시 양모의 폭행은 이어졌답니다.

 

오전 9시부터 아이가 밥을 먹지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이 시작됐고, 거의 1시간 동안 폭행이 계속되었는데

양모에 의해서 심한 폭행을 당한 정인이는 복부속의 췌장과 장간막이 파열되면서, 그 충격으로 숨졌습니다.

 

사망 당일, 정인이의 복부에 가해진 충격은 체중 73kg의 성인이 돌진하면서 타격하는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이 충격으로 16개월 배기 아기의 췌장과 장간막이 파열되면서 아기는 사망했습니다.

  

 정인이는 작년 2월달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는데, 어린이집 교사들은 입양후 한달뒤인 3월부터 정인이의 몸에서 학대와 폭행을 당한 흔적들을 발견하였고경찰서에 학대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같은 학대와 폭행은 죽날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정인이의 몸 여러곳에서 시퍼런 멍자국들이 노출되고, 얼굴에 난 상처들이 노출되자, 어린이집과 아동보호기관, 그리고 소아과 의사에 의해 세차례에 걸쳐서 경찰에 아동 학대신고가 이뤄졌습니다.

 

세 번의 학대신고와 경찰의 무혐의처분

 

그렇지만, 세차례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모두 정인이 양부모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렸고, 불쌍한 정인이는 다시 양부모에게 돌려보내졌습니다.

 

양부모는 아이의 몸에 난 멍자국은 아이의 몸에 원래부터 있던 몽고반점이라고 거짓변명을 했고

이같은 변명에 넘어간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양부모에게 그 때마다 무혐의처분을 내린 겁니다.

 

정인이에 대한 세번째 학대신고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20일 전인 923일에 이뤄졌는데요.

만일 이때에 경찰이 양부모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벌여서 양부모를 학대혐의로 체포했더라면, 불쌍한 정인이의 죽음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정인이가 숨지기 20일 전인 923일날, 정인이는 두달만에 다시 어린이집에 등원했는데

이 당시 정인이의 몸무게가 두달 전보다 1kg이 줄어드는 등 기아상태의 아이처럼 삐쩍 말라있었습니다. 아이의 몸도 시커멓게 변해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가 제대로 걷지못하는 등 건강상태가 나빠진 것을 확인한 보육교사는 병원 소아과에 아이를 데려가서 진찰을 받게했고

아이를 검진한 소아과의사는 아이의 몸 여러곳에서 폭행과 학대를 당한 흔적들을 확인한 후, 경찰에 학대신고를 했습니다.

 

시퍼런 멍자국과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정인이 몸상태를 발견한 의사가 경찰에 학대신고를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경찰은 양부모에게 무혐의처분을 내렸고, 정인이는 또다시 지옥과도 같은 양부모의 집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이렇게 세번째 학대신고가 묵살된 후 20일이 지난 후, 정인이는 끔찍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세번째 학대신고가 이뤄졌을 때, 경찰이 제대로된 수사를 벌여서 양부모의 학대혐의를 밝혀냈더라면, 정인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무척 안타깝습니다.

  

당시 학대신고가 있었을 때, 출동했던 경찰관은 양부모와 아기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하며, 양부모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렸습니다.

 

 

 

세 번의 학대신고를 수사한 세명의 경찰관 모두 한결같이 양부모와 아이의 애착관계가 좋다는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양부모를 조사했던 경찰관들은 오직 양부모의 주장만을 받아들였고, 양부모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렸던 겁니다.

 

정말, 한심하고 안이한 경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이런 말도 안되는 수사를 벌였던 한심한 경찰은 양천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이라고 합니다.

 

이 세 번째의 학대신고를 경찰들이 묵살하면서, 가엾은 정인이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 양부와 양모 장씨의 성격과 신상

 

정인이 양부모는 모두 경북지역의 목회자의 자녀들이며, 두사람 모두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입니다. 

양모 장씨의 아버지는 경북지역의 목사이며, 어머니는 그 교회 부설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그리고 양부 안씨와 양모 장씨는 경북 포항에 있는 한 대학교의 대학원 캠퍼스커플로 결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양모는 이 대학의 통역대학원을 이수했습니다.

 

특히 양모 장씨는 미국유학을 다녀왔으며, 미국의 한 입양단체에서 해외입양 봉사활동을 한 경력도 갖고 있습니다.

 

 양부모 장씨와 안씨 사진

 

양부 안씨는 기독교방송국의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며, 양모 장씨는 현재 통역일을 하고 있습니다.

 

양모 장씨는 밥하는 걸 싫어해서, 종종 음식을 배달시켜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고 합니다.

 

양부모가 직접 낳은 친딸이 있는데, 양모 장씨는 자신의 친딸을 돌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친딸을 키웠다고 합니다.

 

양모 장씨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모 장씨는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종종 자신의 친딸에게도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양모 장씨는 분노조절장애를 갖고있어서, 과거 한때 병원에서 정신과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양모 장씨는 평소 과시욕이 매우 심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방송국의 행정직원에 불과한 남편의 직업을 유명한 방송국PD라고 자랑한 적이 있으며

또 대학에서 법학과를 전공한 동생을 변호사라고 거짓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이유 -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이유로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가설, 양모는 자신이 낳은 친딸에게 여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정인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사실 양모 장씨는 첫딸을 낳은 뒤에, 둘째딸은 낳지않고 입양하겠다고 주변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양모 장씨는 첫딸을 낳은 후, 더이상 아기출산을 꺼려했지만, 친딸과 같이 놀아줄 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정인이를 입양한 것이랍니다.

 

 

두 번째 가설, 또다른 일각에서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한 것은 디딤돌대출을 쉽게 받으려는 목적으로, 다자녀혜택의 신청자격을 얻기 위해서라고 주장이 제기되고있습니다.

 

양부모의 연봉이 6000만원으로 디딤돌대출 신청자격에서 탈락되자, 아이를 입양할 경우 연봉 7000만원으로 상한선이 올라가 연봉제한에 안걸리게 되고, 대출금액의 한도도 크게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같은 은행대출에서 다자녀 대출혜택을 얻기 위해서, 억지춘향이격으로 마음에도 없는 정인이를 입양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양모는 주변지인에게 아이와 정이 안붙어서 큰일이다. 입양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정인이 입양한 것을 후회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충동적인 성격에다 분노조절장애를 갖고있는 등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양모가 남의 아이를 입양해 키운 것 자체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아마도 양모 장씨는 충동적인 마음으로 정인이를 입양했다가, 점점 아이를 키우면서 손이 많이 가는 것을 상당히 귀찮아했을 것이고

아이양육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정인이에 대한 학대와 폭행으로 풀었다고 보여집니다.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8개월 동안 양육되었던 16개월배기 정인이는 양부모에게 반복적인 학대와 폭행을 당한 끝에,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뱃속의 여러 장기들이 파열되는 충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양모 장씨, 학대치사죄 혐의로 재판에 회부

 

경찰은 양모 장씨를 학대치사죄혐의로 입건했고, 양부 안씨는 학대방조죄의 혐의로 입건해 불구속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양부 안씨는 정인이 사망사건이 알려진 후, 직장이었던 기독교방송국에서 해고처리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16개월 입양아에게 반복적인 학대와 폭행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한 양모 장씨에 대해 경찰이 살인죄가 아닌 학대치사죄’ 혐의로 입건한 것에 대해, 각계각층으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양모 장씨가 사실상 정인이를 고의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살인죄로 처벌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가해자의 신상공개와 살인죄적용을 주장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 청원은 한달 동안 23만명의 동의를 받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있습니다.

 

양모 장씨는 아직까지도 정인이의 죽음은 단순한 실수로 인해서 일어난 사고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고 당일 정인이의 몸에 난 11군데가 넘는 골절상과 뱃속의 여러 장기들이 파열된 것은

이 사고가 단순한 자유낙하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엄청난 타격을 당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인이 뱃속의 췌장파열은 돌진해오는 자동차가 보행자를 치었을 때에 발생하는 충격과 동일한 정도의 충격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양모의 사고사주장은 단순히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한 거짓변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모의 주장대로 정인이의 죽음은 단순한 실수로 떨어뜨려서 발생한 사고사일까요

아니면 양모가 고의성을 갖고 정인이에게 강한 타격을 가해서 사망에 이르게한 살인행위일까요?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한 양부모에 대한 첫재판이 13일날 열린다고 합니다.

 

16개월밖에 안된 정말 어리고 불쌍한 입양아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대와 폭행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그 파렴치한 가해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며

최고의 형벌로엄벌에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정인이학대사망사건21세기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최고로 잔인하고 파렴치한 살해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16개월배기 가엾은 정인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반드시 합당한 판결을 내려서, 살인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두눈 똑바로 뜨고, 법원에서 그 파렴치한 가해자들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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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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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UFO출몰사건, 청와대 UFO 출현사건의 전모, 우리나라의 UFO 목격담과 증언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고있는 분야가 바로 UFO사건 파일이다.

오늘은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우리나라의 UFO목격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여러분들 혹시 청와대 UFO출몰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

우리나라의 서울 즉, 청와대 상공에서도 정체불명의 UFO가 갑자기 출몰해서,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1976년도에 실제로 일어났던 청와대 UFO출몰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76년경 서대문 금화시민아파트에 살았던 안희석씨는 학교를 가기위해 광화문부근을 걸어가던 중

갑자기 하늘에서 새하얀 빛을 뿜어대는 여러개의 미확인 괴비행체를 목격했다.

 

서울 상공의 광화문부근의 하늘에 맨처음에는 서너대의 발광체가 나타나더니,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그 발광체는 9대가 되었고, 곧이어서 3대가 더 늘어나 12대의 발광체로 늘어났다.

 

76년도 1014일날 오후 530분경, 안희석씨는 서울 광화문 상공에 떠있는 찬란한 빛을 발광하는 12개의 발광 비행체를 목격했는데

그 발광물체는 광화문 상공에서 반타원형을 그리듯 둥그렇게 12대가 줄을 지어서 일렬로 나열했다고 한다.

 

 

그 당시 미확인 발광물체들은 원래 서대문상공에서 나타나서 광화문과 청와대방향으로 동시에 12대가 서서히 이동해왔고, 광화문과 청와대상공에서 한참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고 한다.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의 상공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12대의 미확인 발광물체가 떠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무척 놀라면서도 신기해했다.

 

더군다나 서울의 광화문과 청와대부근은 그 어떤 비행물체도 비행할 수 없는 비행금지구역인데

저 미확인 비행물체는 정체가 뭐길래 저렇게 대담하게도 서울의 비행금지구역에 떡하니 들어올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과 청와대일대의 상공에 정체불명의 괴비행물체가 12대나 떠있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자

청와대와 서울의 수도방위사령부에서는 이같은 사실이 보고되었고, 곧이어 지상으로부터 그 발광체를 향해서 수백발, 수천발의 대공포가 발사되었다.

  

그 당시 안씨가 보았던 그 미확인 비행물체는 530분부터 640분까지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상공지역에서 장시간 떠있었으며, 지상의 방공포대에서 수천발의 대공포가 그 비행물체를 향해 발사되었다고 한다.

 

안씨가 그때 목격했던 12대의 미확인 비행물체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곳을 지나가는 항공기나 군용기였을까, 아니면 외계에서 날아온 외계인의 UFO였을까?

 

 

그런데, 안씨가 광화문상공에서 정체모를 12대의 발광 비행물체들을 목격했던 그 당시, 라디오 뉴스에서는 다음과 같은 소식이 보도되었다.

 

 

뉴스에서는 보잉707 화물기 한 대가 일본 오사카쪽으로 가던 중 실수로 수도권 비행금지구역에 접근해왔고, 곧이어 우리군의 대공포대가 경고용으로 10여발의 포탄을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우리의 국방부는 미국의 NWA 항공사소속 보잉707 화물기 한대가 일본 오사카쪽으로 가던 중 실수로 항로를 이탈해서, 청와대 위쪽을 지나가는 사고를 일으켰고, 그래서 우리군이 경고용으로 발포를 했다고 발표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완전 거짓말이었다. 그 당시 MBC 라디오방송 젊음을 가득히를 진행하던 이수만씨 또한 서울의 상공에서 여러대의 괴비행물체가 나타났고

서울에 있는 군포대에서 수많은 포탄을 발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당시 서울 상공에 나타난 12대의 괴비행물체를 목격했던 사람은 안희석씨 외에도 이수만씨도 목격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명의 사람들이 함께 목격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76, 서울 청와대 상공에 출연한 괴비행물체의 목격담과 증언들

 

그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서울 상공에 나타난 12대의 괴비행체에 향해 서울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대공포대에서 무려 수천발의 포탄(발칸포)을 발사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서대문인근의 부대, 그리고 서울외곽에 있던 여러부대에서 엄청 많은 대공포들을 그 괴비행물체에 발사했고

하늘에는 12개의 발광 비행체들과 그 곳으로 발사되는 수천발의 포탄들로 인해 마치 불꽃놀이 같은 멋진 장면들이 펼쳐졌다고 하며, 발포되는 폭격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사방에 엄청 크게 울려퍼졌다.

 

  

청와대상공의 미확인비행물체를 향해 수천발의 포탄이 동시에 발사되었는데, 그날 오후 530분부터 640분까지 총 3번에 걸쳐서 수많은 대공포가 발사되었다고 안씨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안씨는 금화산 중턱에 환한 빛을 발광하는 미확인 비행물체 12대가 나타난 후, 금화산 뒤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화산 뒤쪽에는 청와대가 있으므로, 12대의 미확인비행물체가 향하는 곳은 청와대였다.

 

그렇다면, 19761014일 서울의 청와대 상공에 나타난 12대의 괴비행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서울의 상공위에 나타났던 12개의 괴비행물체는 바로 미확인비행물체 UFO였다.

 

그때 그 UFO를 목격했던 목격자는 안씨 외에도 이수만씨, 장경순씨, 이경수씨 등 그 UFO를 생생히 목격했던 사람들은 여러명이 존재한다.

 

티모시굿이 1978년도에 출판한 책 일급비밀을 넘어서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청와대 UFO 출몰사건의 자세한 사항이 기록되어있다.

 

티모시굿은 여러나라의 국가기밀자료를 탐사하고 폭로하는 일을 진행해왔던 사람으로, 특히 그는 세계각국의 UFO 비밀문서를 추적하고 탐사하는 명실공히 국제적인 UFO전문가였다.

 

티모시굿이 78년에 출판한 책에는 청와대 UFO출몰사건’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76년도 여러대의 UFO가 한국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의 상공에 갑자기 나타났고, 곧바로 군포대에서 수많은 대공포탄을 발포하였지만, UFO에 단 한발도 맞히지 못했다 

 

그날 라디오방송을 통해 정부는 오후 612분과 41분 등 두차례에 걸쳐서 NW소속 항공기에 경고사격을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그 NW소속 항공기는 그 시간에 서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경기도 하남시의 상공을 날고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정부의 발표가 거짓임이 드러났다.

 

또다른 목격자 이경수씨는 그날 여러대의 UFO가 서울 상공에 떠있는 것을 보았고, UFO에 대해 수많은 포탄이 발사되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이경수씨의 목격에 의하면, UFO들은 경복궁 상공에 떠있었는데, UFO들을 항해서 수많은 대공포들이 발사되었고, 경복궁 상공에 떠있던 10대 이상의 UFO들은 서서히 대학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날 서울 상공에 괴비행체가 나타났고, 그 괴비행체들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안씨외에도 이수만씨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격했었다.

 

여러명의 목격자들의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서울 상공에 나타난 UFO들은 서울의 서대문 상공에서 처음 나타났고

UFO들은 서서히 서북쪽방향으로 이동해서 청와대와 광화문 상공을 지나갔고, 그 후 그 UFO들은 대학로쪽으로 이동해가면서 그 불빛이 희미해지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던 것이다.

 

  

갑자기 서울의 청와대상공에 나타난 후, 군포대에서 수천발의 발칸포를 발사했는데도 전혀 끄떡하지 않았고,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했다.

 

 

그 당시 우리군이 그 UFO를 향해 수천발의 대공포를 발포했음에도 불구하고 12대의 UFO 중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했고오히려 죄없는 시민들이 그 유탄에 맞아서 큰 피해를 당했다.

 

시민 한명이 군이 발포한 유탄에 맞아서 사망했고, 또한 31명의 시민들이 유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우리군에서는 이 괴비행물체들이 북한에서 내려보낸 특수전투기 편대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기 몇 개월 전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하는 등 남북간의 긴장상태가 최고도로 올라가는 등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상공과 광화문상공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서울의 상공을 휘집고 다녔던 그 UFO들의 정체는 무었이었을까?

 

UFO들은 무슨 이유로 서울과 청와대상공에까지 침투해들어온 것일까? 

 

그 당시 우리군에서 수천발의 대공포를 발사했는데도, UFO들은 전혀 티끌만큼도 손상을 입지않았다는 점에서

그 비행물체는 인류가 만든 비행물체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아마도 우리보다 문명이 훨씬 더 발달한 외계의 비행물체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76년도 그 당시에 안희석씨 외에도 장경순씨, 이경수씨, 이수만씨 등 여러명의 사람들이 서울상공을 날고있는 12대의 UFO들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에, 76년도에 발생한 청와대 상공의 UFO출현사건은 사실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95년 9월 경기도 가평에서 기자가 민가의 상공을 날고있는 UFO를 포착해 찍은 사진.

 

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대와 똑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헡것을 보았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목격자들은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고, 서로 단 한번도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사전에 말을 맞췄을리가 없다.

  

그런데, 청와대 UFO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미국 LA에서도 일어났다고 한다.

 

1942, 225, 미국 LA 상공에서도 여러대의 발광하는 비행물체가 출연했었다.

2차세계대전이 한창일 당시에, 미국 LA의 상공에 정체를 알 수 없는 15대의 발광물체가 나타나서 큰 소동이 벌어졌었다.

 

1942년도 225일 정체를 알 수 없는 15대의 발광물체들이 미국 LA의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서 상공에 계속해서 떠 있었고

즉각 미군에서는 1430발의 대공포를 발사했었지만, 그 괴비행체들은 전혀 손상되거나 격추되지 않았고 멀쩡했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괴비행체들은 서쪽하늘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당시 이 괴비행체 출몰사건을 보고받았던 LA시장은 나중에 퇴임한 후, 기자와의 인터뷰시간을 가졌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그 당시 LA상공에 나타났던 괴비행체들의 정체는 UFO가 틀림없다고 증언했다.

 

1942년도 미국 LA 상공에 나타난 UFO출몰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의 청와대 UFO출몰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본다.

 

청와대 UFO출몰사건을 탐사해왔던 그것이 알고싶다제작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실확인을 위해서 우리 정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그 당시의 기록은 국가기관 어디에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1976년 서울의 여러지역과 청와대상공에 12대의 UFO들이 출연했고, 동시에 우리군에서 수천발의 대공포를 발사해서 1명의 사망자와 31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던 청와대 UFO출몰사건이었는데

우리 국가기관의 그 어디에도 그 기록들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국가기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대중정부 이전의 대통령기록들은 정권의 부패나 비리사항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기록들을 삭제해버렸다고 한다.

 

아뭏튼 1976년도에 발생한 청와대상공의 UFO출몰사건은 비록 정부기록물을 볼 수 없지만

안희석씨, 장경순씨, 이수만씨등 여러명의 목격자들의 목격담과 생생한 증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정사실로 보아야 한다.

 

1976년도 이전에도 청와대 부근에 UFO가 무려 4번이나 출몰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76년도의 UFO 출몰사건은 처음이 아니라그 이전부터 여러번에 걸쳐서 외계인의 UFO들이 청와대와 광화문상공에 나타났었다고 하며

UFO전문가에 따르면, 청와대와 광화문상공은 UFO가 자주 출몰하는 'UFO스탓'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가평 UFO출몰사건과 팔공산 UFO출몰사건, 수락산 UFO출몰사건등 꽤 여러건의 UFO출몰사건들이 발생한 역사가 있다.

 

- 팔공산 UFO출몰사건

 

1980년도 3월에 팀스피리트훈련을 하던 우리공군 전투기 두대가 팔공산부근에서 엄청난 광채를 뿜어대는 UFO와 조우한 적이 있었고, 우리공군의 두 대의 전투기가 그 UFO를 추격하는 추격전이 한시간 정도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리공군 조종사가 본 UFO는 엄청난 광채를 뿜어내는 전조등이 달린 타원형의 UFO였다고 하며

그 때 우리 전투기에 타고있던 임병선대령은 너무도 선명하게 그 UFO를 직접 목격하고 추적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UFO는 우리 전투기들을 마치 비웃듯이 수직강하와 수직상승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운행하였고, 그리고 오랫동안 공중에서 정지상태로 머물러있었다고 하는데

우리지구상에는 공중에서 정지상태로 오랫동안 머물수 있는 비행물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당시 우리 전투기조종사 두명이 팔공산부근에서 목격한 이 타원형의 비행물체는 외계인의 UFO가 틀림없다고 추정된다.

 

이 당시 임병선대령 등 우리공군 조종사가 이 타원형의 UFO를 속초에서부터 추격해서 팔공산부근까지 그 UFO와 함께 나란히 비행하면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UFO를 목격한 사례인데

우리 전투기와 UFO간에 총격전은 없었고, 단지 서로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함께 비행을 하면서, 관찰만 했다고 한다.

 

우리공군의 전투기들과 40분 동안 추격전을 벌였던 이 타원형의 UFO는 속초부근에서 날아와서 팔공산까지 온 다음, 동해바다쪽으로 비행하면서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 당시 속초에서 팔공산부근까지 우리공군기와 함께 비행했던 괴비행물체는 우리 전투기의 2배 정도 크기의 UFO였고, UFO표면에는 많이 달려있는 전조등으로부터 눈부실 정도로 엄청난 빛을 품어내었고

수직상승과 수직낙하를 자유자재로 했을 뿐만아니라 공중에서 수십분 동안 정지한 상태로 정지비행을 하는 엄청난 묘기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 팔공산 UFO추격사건은 임병선대령 등 두명의 전투기조종사들이 무려 40분 동안 직접 UFO를 목격한 사건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UFO와 조우한 사건으로 기록된 유명한 UFO추격사건이다.

 

- 수락산 UFO출몰사건

 

또한 2017년도에 우리나라 의정부의 수락산에서 UFO가 출몰했던 수락산 UFO출몰사건도 발생했었다.

 

수락산 UFO출몰사건2015년도에 우리나라의 UFO헌터로 유명한 허준씨가 직접 의정부에서 수락산의 전신탑부근으로 날아오르는 한 대의 UFO를 촬영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던 유명한 UFO출몰사건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UFO스팟지역인 의정부시 수락산 송전탑부근에서 20158월에 엄청난 광채를 발광하는 UFO가 갑자기 출몰해서 

1분동안 그 송전탑부근을 왔다갔다 활공하는 모습이 허준씨의 캠코더에 촬영되었고, 이렇게 수락산의 송전탑부근를 활공하던 그 UFO1분 뒤에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 당시 수락산의 송전탑부근에 나타났던 UFO는 눈부실 정도로 엄청난 빛을 발광했으며

UFO모습이 허준의 캠코더에 너무도 선명하게 찍혔기 때문에, ‘수락산 UFO출몰사건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증명된 사례이다.

 

 

이 때에 수락산의 송전탑부근에 나타난 UFO는 엄청난 빛을 발광하는 전형적인 타원형형태의 UFO였고, 허준씨 외에도 주변의 몇몇의 사람들도 함께 목격했던 사건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UFO가 출몰했던 UFO출몰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다.

 

청와대 UFO출몰사건과 팔공산 UFO추격사건, 수락산 송전탑 UFO출몰사건 등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에 걸쳐서 UFO들이 출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의 몇몇 지역에 왜 UFO가 자주 출몰하는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지만, 현재로서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일단의 UFO들이 우리나라의 특정지역에 계속해서 출몰하는 것은 엄염한 현실이자 팩트이며

UFO를 촬영한 생생한 동영상까지 있으니,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2019년 관악산에 출몰한 2대의 UFO사진

 

아무래도 이같이 UFO들이 우리나라의 특정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남북분단으로 동아시아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고,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대응한 한국의 첨단무기개발 등으로 인해 항상 전쟁의 위험과 긴장이 높아지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과 북한을 감시하기 위해서 일단의 외계인세력이 이렇게 종종 UFO들을 파견해서, UFO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발생한 UFO출몰사건들을 소개해드렸는데

마지막으로 2015년도에 허준이 의정부에서 촬영한 수락한 송전탑의 UFO출몰사건 동영상을 올려드리면서 이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2015년도 의정부시 수락한 송전탑 UFO출몰사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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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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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토끼 신발장 살인사건,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몽타주

사랑방 이야기 2019. 12. 23. 21:54

 

신정동 부녀자연쇄살인사건의 전모와 범인, 엽기토기 신발장 범인 몽타주

 

세상에는 참 어이없고, 잔혹한 살인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2005년도와 2006년도에 참 특이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세상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만들었는데, 바로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이 그것이다.

 

범인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과 전혀 연고가 없는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해서 유기해버린 잔혹한 사건이다.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방송되어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는데, 다른말로 해서,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도 많이 알려져있다.

 

이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은 2005년도와 2006년도에 일어난 여성 2~3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묻지마 살인사건이지만,

지금까지도 범인을 전혀 검거하지 못하고, 범인의 그 어떤 단서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미제살인사건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해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바로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고 불리우는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사건은 부녀자 묻지마 살인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아무 죄없는 부녀자 2~3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하고, 유기한 2000년대의 가장 잔인하고 충격적인 살인사건인 신정동 연쇄살인사건, 엽끼토끼 살인사건의 전모를 소개해볼까 한다.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전말

 

2005년도 신정동의 주택가단지 옆 골목길에 있는 쓰레기투기지역에, 커다란 살포대가 버려져있었는데, 쓰레기청소원이 그 살포대에서 숨져있는 젊은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 쌀포대에 시신이 되어 담겨져있던 여성은 바로 20대의 권양이었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타난 권양은 자신의 시체유기지역으로부터 2km  정도 떨어져있는 신정동 주택가에 살고 있던 평범한 직장여성이었다.

 

200666일 현충일날, 권양은 감기에 걸려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대낮에 외출했는데, 그 후에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권양은 그 다음날에 자신이 집으로부터 2km 떨어진 쓰레기투기지역에서 마대에 담겨진 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시신으로 발견된 권양의 시신의 상태는 매우 처참했다고 한다. 그녀의 몸은 벗겨졌다가 급하게 다시 입혀진 것처럼 매우 허름하게 옷이 입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의 가슴부분은 누군가한테 물린 자국이 나 있었고, 등쪽에는 누군가로부터 맞은 멍자국이 나 있었고, 그녀의 몸속에서는 두툼한 휴지와 생리대 두개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권양 시신의 몸에서는 남자의 정액이나 그 어떤 유전자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두팔은 끈으로 결박당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그녀의 목에는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듯한 경부압박의 흔적이 나타나 있었다.

국과수의 검사결과, 권양은 누군가에 의해서 구타를 당한 뒤, 경부압박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 누군가가 그녀를 납치해서자신의 비밀가옥으로 끌고가서 그녀를 목을 졸라서 살해하고, 그녀의 몸을 훼손한 후에 그녀의 시신을 쌀포대에 담아서 쓰레기장에 내다버린 것이다.

 

그런데, 권양의 몸에서 범인의 유전자DNA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살해한 범인을 전혀 특정할 수가 없었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권양은 대낮인 3~4시경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주택가의 골목길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납치당해서, 그들의 비밀가옥에 끌려갔을 것이고, 그 곳에서 그들에게 농락을 당한 후에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권양이 밖에 나갈 때에 평범한 옷차림에다 돈을 전혀 갖고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가 전혀 돈많은 티를 낸 것도 아니고, 실제 돈도 전혀 갖고가지 않았는데, 누가 무슨 이유로 그녀를 백주대낮에 납치해서 살해를 했던 것일까?

 

더욱이 권양은 성격이 매우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주위사람들과 사적인 교류도 전혀 없고, 남들과 원한을 사는 일도 전혀 없는 평범한 직장여성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귀는 남자친구도 없어서, 주변사람들과의 원한이나, 남자와의 치정애 의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한다.

 

돈 때문도 아니고, 치정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권양은 묻지마 살해를 당한 것은 아닐까?

 

 

숨진 권양 사진

 

이것이 첫 번째 신정동 부녀자살해사건이고, 두 번째 신정동 부녀자살해사건이 또다시 일어난다. 

권양이 살해당한 후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0511월경, 40대의 주부 이씨가 살해를 당한 후, 신정동의 한 식당옆에서 마대속에 담겨진 체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40대의 주부 이씨는 이날 직장에서 퇴근한 후, 저녁 7시 이후 신정전철역애서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CCTV에까지 찍혔는데,

신정역 밖으로 나온 이후, 곧바로 누군가에게 납치된 후에 사라져버렸고, 그 다음날 신정동 식당 옆에서 싸늘한 시신이 되어 유기된 체로 발견되었다.

 

두번째 희생자인 주부 이씨는 몸의 여러 군데에 멍자국이 나 있었고, 그녀의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 있었을 정도로 누군가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흔적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이씨의 두손도 끈으로 결박당한 흔적이 나 있었고, 40대 주부 이씨의 죽음도 역시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경부압박 질식사'란 목졸려서 살해당한 것을 말한다.

 

살해당한 주부 이씨는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왔던 남편과 자식이 있는 평범한 주부직장인으로서, 주변사람이나 직장동료들과 전혀 갈등이나 원한관계가 없는 유순하고 아주 성실한 성격의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한관계도 전혀 없는 주부 이씨를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토록 처참하게 살해해서 유기해버린 것일까?

 

또한 주부 이씨의 몸에서도 범인의 유전자DNA나 그 어떤 범인의 흔적도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부 이씨 살해사건도 현재까지 범인의 단서조차 잡지못한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주부 이씨가 납치되기 직전 신정역에서 나오는 CCTV 사진

 

이처럼, 신정동에서 두명의 무고한 여성들이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유기당하는 연쇄살인사건이 6개월 간격으로 연속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신정동에서 발생한 두 여성의 살해사건은 공통점이 많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권양살해사건과 이씨살해사건 모두 신정동이라는 같은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두 여성의 시신유기지역이 서로 1.8km밖에 안 떨어져 있다.

 

또한 권양살해사건과 이씨살해사건 모두 경부압박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으로, 살해방법이 동일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권양살해사건과 이씨살해사건 모두 그 시신의 몸에서 여러군데 멍자국이 나 있다는 등 누군가로부터 구타를 당한 흔적이 나 있는점과 살해당한 후 마대자루에 담겨져서 쓰레기투기지역에 유기되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살해당한 두 여성 모두 끈으로 손을 결박당한 흔적이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처럼 권양살해사건과 이씨살해사건은 모두 범행수법이 동일하고, 그 시신투기지역이 신정동이라는 같은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같은 공휴일에 발생했다는 점,

또한 두 여성 모두 신정역과 신정동 주택가의 길거리에서 납치를 당했다는 점,  

 

또한 두 여성 모두 등과 복부에 심한 구타를 당한 흔적이 있다는 점  등 두사건이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두 사건이 동일인에 의해서 일어난 살해사건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권양과 이씨의 시신 포대 사진

 

살해를 당한 권양과 이씨는 모두 성격이 내성적이고 온순하고 성실해서, 주변사람들과 원한관계를 맺은 일도 없고,

른 남자와 치정에 의한 관계도 없기 때문에, 두 여성이 살해를 당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두 사건 모두 매우 황당하고 특이한 살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정동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은 이런 점 때문에, 어떤 남자들의 여성혐오로 인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보통 살인사건들의 가해자들은 자신이 죽인 사람의 시신을 그 자리에 두고 도망가거나, 또는 그 시신을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깊은 산속에 파묻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의 두 피해자 시신들 모두 남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주택가의 쓰레기투기지역이나, 식당옆에 버젓이 버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범인들이 자신들의 범행의 결과물인 시신들은 남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고자 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 투기했다는 점이 매우 이례적이고 특이한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두 여성 모두 범인으로부터 심한 폭행과 구타를 당한 후,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 특징이며, 두 여성 모두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없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그래서 두 여성을 죽인 범인은 평소에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진 남자들의 무차별인 묻지마 살인이 아닌가 판단된다.

  

◆ 세번째 신정동납치 살해미수사건 발생 

 

그런데, 신정동에서는 이 두 여성이 살해당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또다시 다른 여성애 대해 또다른 납치와 살해시도가 발생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두 번째 신정동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난 2006년도 531일 또다른 여성 박씨는 신정역 부근에서 의문의 남성에 의해서 납치를 당하는 희귀한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박씨는 오후 3시경에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신정전철역에 내려서 약속장소로 가던 중에, 어떤 남성으로부터 길거리에서 납치당했다는 것이다.

 

신정역 걸거리에서 다가온 그 남자는 박씨에게 바짝 달라붙어서 흉기(커터칼)를 그녀의 옆구리에 대고, 그녀에게 소리치면 죽인다고 협박한 후, 겁에 질린 그녀를 강제로 납치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 범인은 백주대낮에 대담하게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전철역 부근에서, 박씨를 흉기로 위협해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간 것이고, 박씨는 꼼짝없이 그들의 아지트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박씨는 범인에 의해서 강제로 범인의 집으로 보이는 주택가 골목길의 반지하방으로 끌려들어갔고, 그 곳에는 범인 외에도 또다른 중년남성이 한명 더 있었다고 한다.

그 중년남성은 범인에게 그 여자는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했고, 그 범인은 칼을 갖고 있었으며, 그녀를 죽여 버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번째 신정동납치사건은 살인미수로 끝이 났고, 그녀는 기적적으로 그들의 아지트로부터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비밀가옥에 갇혀있던 박씨는 그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자신은 그 범인들에 의해서 꼼작없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씨는 정신을 바짝차리고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그 범인이 화장실에 갔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범인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와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반지하방에서 몰래 빠져나온 박씨는 곧바로 그 집 2층으로 올라갔고, 너무도 경황이 없었던 그녀는 2층집 현관앞에 있는 신발장 뒤에 숨었다.

그리고 곧바로 뛰쳐나온 범인들은 밖으로 뛰어나가서 그녀플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밖이 조용해진 틈을 타서, 박씨는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 대문밖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주택가 골목길을 정신없이 뛰어서 달아났던 그녀는 한 초등학교 앞에서 멈춰섰고, 그 곳에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세번째 피해여성 박씨에 의해서,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탈출한 박씨는 너무도 넋이 나가고 심한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 날의 범인에 대한 것들을 거의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범인에게 납치당한 후, 삶과 죽음의 고비에 서있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박씨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간 상태라서, 그 공포스러웠던 순간들을 대부분 기억에서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박씨는 자신이 끌려갔던 범인의 집이나 범인의 인상착의 같은 결정적인 단서들을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어서, 그 후 범인을 전혀 검거하지 못했고,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아있게된 것이다.

 

♠ 신정동연쇄살인사건 범인의 몽타주과 엽기토끼 신발장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난  후, 충격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박씨는  그때의 범인들에 대한 기억들을 어느정도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의 기억에 의하면, 범인은 키가 175cm 정도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30대 중후반 나이의 남성이라고  한다. 2006년도의 사건이니까, 지금쯤 범인의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 되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범인은 아이라인 같은 눈화장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고, 눈썹이 검고 짙은 모습이다.

 

범인의 몽타주

 

그리고 박씨가 그 집 2층의 난간으로 도망갔을 때, 그녀가 숨었던 신발장에는 '엽기토끼' 그림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범인이 살던 집은 신정동 주택가에 있는 다세대 택집이었고, 범인은 그 다세대주택집의 지하방에 살고있었고,

그 집 2층집 현관앞에 있는 신발장에는 '옆기토끼' 그림이 선명하게 붙어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씨는 범인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단서들은 기억해내지 못했고, 여기까지가 박씨가 기억해내는 것의 전부이다.

 

그녀가 그 집 2층 난간으로 도망가서 숨은 신발장 위에는 아이들이 만든 모조화분이 놓여져 있었고,

그 신발장에는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을 다른말로 '엽기토끼 살인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은 신발장

 

신정동에 살았던 분들 중에서, 지하실방이 딸린 다세대주택의 2층집현관 앞에 옆기토끼 스티커가 붙어있는 그 집을 보신분들은 경찰서에 제보주시길 바란다.

 

백주대낮에 길가던 여성들을 흉기로 위협해 자신들의 집으로 납치한 후, 두명의 무고한 여성들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하고 살해한 끔찍하고 엽기적인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두명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붙잡지 못하고, 범인의 단서조차 찾지못한 미제살인사건으로 남아있다.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은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고, 연고도 없는 전혀 모르는 여성들을 길에서 납치해서 살해한 묻지마 살인사건으로서,

여성혐오감을 가진 잔인하고 흉폭한 두 남성들에 의해서 이뤄진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다.

 

백주대낮에 길가던 여성들을 납치해서 살해하는 이런 흉폭한 범죄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들 두명의 잔인한 살인범들은 반드시 검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신정동의 다세대주택 2층집의 신발장에서 엽기토끼 스티커를 본 적이 있거나,

위에서 설명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용의자를 목격하신 분들은 경찰서에 지체없이 신고해주시기 바란다!

 

2000년대 살인사건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엽기적인 사건으로 악명이 높은 '신정동연쇄살인사건'의 단서가 하루빨리 포착되어서,

잔혹한 범인들이 반드시 검거되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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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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