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국무협영화, 70년대 홍콩의 미녀여배우 하리리의 ‘봉비비(철낭자)’ 줄거리와 내용, 홍콩무협영화 추천
오늘은 60~70년대에 홍콩무협영화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미녀여배우 한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60,70년대에 홍콩무협영화계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이면서, 홍콩을 대표하는 여검객으로 맹활약했던 배우 하리리입니다.
하리리는 1971년도에 홍콩영화 ‘봉비비’에 출연해서 멋진 활극을 선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리리는 리칭과 함께 홍콩 쇼브라더스가 운영하는 남극학원 출신의 여배우로서 60,70년대에 리칭과 미모와 연기면에서 라이벌구도를 형성하면서 맹활약했던 불세출의 홍콩 여배우이지요.
하리리는 당시 홍콩에서 최고의 미녀라는 호칭을 들을 만큼,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리칭이 중국고전적인 미인이라면, 하리리는 현대적이면서 세련된 미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당시 아시아의 수많은 남성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리리는 홍콩무협영화 ‘봉비비’에서 원톱으로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그녀의 뛰어난 미모를 발산하면서 화려하고 멋진 연기력을 펼쳐보이는데, 가냘퍼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무술액션을 선보여서 많은 무협팬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무협영화 ‘봉비비’에서 하리리는 아름다운 미모 못지않게 통쾌하고 절도있는 검술액션을 선보였던 아름다운 여전사로 분해 통쾌하게 악당들을 쳐부수는 정의로운 여검객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입니다.
‘봉비비’의 여주인공 하리리는 170cm 늘씬한 키와 관능적인 몸매를 갖추고 있어서 홍콩에서 60년대부터 수많은 로맨스 영화와 무협영화들을 찍으며 인기의 고공행진을 이어왔던 홍콩의 대표적인 글래머 미녀여배우로 명성이 높았는데,
우리나라에도 하리리가 주연을 맡은 ‘18인의 여걸’ ‘봉비비’ ‘애노’ ‘처녀수첩’ 등이 수입되어 개봉됨으로써, 하리리의 높은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매우 인기가 높았던 여배우입니다.
하리리는 영어명은 리리 홍이며, 1946년생으로 ‘동양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라고 불리울 정도로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매력을 지닌 당대의 톱미녀 여배우입니다.
하리리는 60년대 중반 홍콩 쇼브라더스사에 입단해서 화려한 배우생활을 펼쳐나가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쇼브라더스사에서 은퇴하면서 쇼브라더스사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60,70년대의 최고의 미녀스타입니다.
하리리는 1971년도에 제작된 영화 ‘봉비비’ 우리나라 영화 제목으로는 ‘철낭자’에 출연 대활약을 펼치면서, 특히 남성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지금까지도 많은 무협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있는 보기드문 미녀여배우입니다.
60,70년대에 홍콩무협영화계를 대표하는 최고인기 여배우 두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명은 리칭인데 반해, 다른 한명은 바로 하리리가 아닐까 합니다.
하리리는 1946년 11월 26일 중국 남경에서 출생했지만, 2살 때에 대만으로 이주를 합니다. 하리리는 어린 시절에 대만의 전설적인 여배우 이려화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의 꿈을 키워나갔는데,
그녀는 17살 때에 홍콩 쇼브라더스사의 연구생으로 발탁되면서, 리칭, 정패패와 함께 쇼브라더스사로부터 연기수업을 받게됩니다.
하리리는 1965년도에 영화 ‘산가인연’으로 첫데뷔를 하였고, 그리고 같은 해에 정패패와 공동주연을 한 영화 ‘난서지가’에 출연해 이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리리는 1966년도에 영화 ‘문소신’에 출연해서 당시로서는 엄청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라노출의 연기를 펼쳐서,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주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엄청난 관능미와 요염미를 선보인 하리리는 이 후 애로여배우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이 후 무협영화의 전문여검객으로 수많은 무협액션영화에 출연하면서 홍콩무협영화계를 대표하는 액션여배우로 이름 떨치게 됩니다.
그리고 하리리는 1967년도에 홍콩의 ‘여성판 007’이라고 불리우는 영화 ‘철관음’에 출연해서 멋진 활약을 펼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이 영화의 대히트로 인해 하리리는 60년대 홍콩의 최고의 인기여배우로 발돋움하게 되는데요,
또한 하리리는 1967년도의 영화 ‘금검은구’에 왕우, 나열등과 함께 공동주연으로 출연해 맹활약을 펼치면서, 무협영화의 전문여검객으로 이름을 크게 떨치게 됩니다.
그리고 하리리는 1968년도에 영화 ‘화월춘야’에 리칭과 함께 출연해, 관능적이고 농염한 연기를 펼치면서, 또한번 대중들로부터 열띤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1971년도에는 하리리는 영화 ‘여살수’에 출연하는데, 이 영화에서 하리리는 여자킬러로 나와서 무자비한 액션을 펼치면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영화에서 하리리는 수녀복장을 한 채,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당히 파격적인 장면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경, 쇼브라더스사의 트로이카라고 할 수 있는 리칭과 정패패, 하리리는 모두 같은 시기에 영화계에 데뷔를 했으며, 모두 다 무협영화계에서 열띤 활약을 펼치면서 톱스타로 우뚝 서게됩니다.
우리나라에 문희, 윤정희, 남정임이 60년대 트로이카여배우를 형성했다면, 같은 시기에 홍콩에서는 리칭, 정패패, 하리리가 홍콩의 트로이카 여배우를 형성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드디어 1960년대 후반, 하리리와 리칭, 정패패의 트로이카가 3각 경쟁체제를 형성하면서 ‘스크린의 여왕’자리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도래하게됩니다.
이 시기에 홍콩영화계에서는 리칭과 정패패, 하리리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세명의 여배우가 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누가 ‘스크린의 여왕’이라고 명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세명의 여배우 모두 홍콩영화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청순하면서 여성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는 리칭을, 세련되면서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점에서는 하리리를, 정열적이면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는 정패패를 꼽을 수가 있는데,
세명 모두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펼쳐나가면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어느 한명을 최고의 인기스타라고 말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세명 모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리리는 이처럼, 현대물, 멜로물, 뮤지컬, 첩보물, 무협물 등 여러분야에서 연기를 펼쳐나가는 매우 다재다능한 배우로 맹활약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리리는 1971년도에 영화 ‘봉비비’ 한국명으로는 ‘철낭자’에 출연해 맹활약을 펼치는데요,
‘봉비비’는 중국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과거의 여자검객 봉비비를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로, ‘봉비비’의 여주인공을 맡은 하리리는 미모와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이 당시 최고의 글래머스타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성감독 고보수가 연출을 맡은 영화 ‘봉비비’에 원톱주연으로 출연한 하리리는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검을 든 여검객 역할을 맡았는데,
이 영화 ‘봉비비’는 선이 굵고 대담한 연기력을 선보인 하리리의 연기와 매력에 홀딱 빠지게 만드는 70년대의 진정한 걸작품으로 칭송받는 영화입니다.
이토록 청순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배우가 저토록 험악하고 난해한 검술액션을 멋지고 화려하게 펼치다니! 정말 하리리의 검술액션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며,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못지않게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에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답니다.
이 영화에서 너무도 멋지고 당찬, 그리고 화려한 검술액션 연기를 펼친 하리리는 정패패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제 정패패의 시대는 가고, 하리리의 시대가 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하리리는 이 영화 ‘봉비비’에서 너무도 멋지고 인상적인 검술액션 연기를 펼치면서,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영화 ‘봉비비’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친언니가 길거리에서 누군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를 당했고, 분노에 찬 그녀의 여동생 봉비비가 복수를 하기 위해서 검을 들었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친언니를 성폭해 살해한 성폭행범이 자신의 약혼남이 밝혀졌고, 하리리는 자신의 약혼남은 물론 그녀의 시어머니와도 복수의 혈투를 벌입니다.
참, 여러분! 제 유튜브채널을 구독해주시고, 좋아요도 눌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구독 하나하나가 제가 동영상을 만드는데 큰 힘이 됩니다!
‘봉비비’에서 엔딩장면에서 두 여인이 벌이는 치열한 결투는 남성 위주의 무협영화에서는 보기드문 명장면으로 평가되면서 영화의 가치를 더욱 더 높이게됩니다.
영화 ‘봉비비’는 우리나라배우 남석훈이 하리리의 상대역인 김씨도령으로 나와서 능글맞고 방탕한 역할을 아주 잘 연기해주어서 극의 재미를 높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하리리와 남석훈의 서로 대조적인 연기가 극의 재미를 높여주고 있어서 꽤 볼만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봉비비’가 1972년도 4월 20일날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되어 52일간 상영되면서 10만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부산, 대구 등 지방도시에서도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당시 하리리는 리칭에 버금가는 상당히 높은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한국의 수많은 남성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70년대 초반 하리리는 한국남성들의 마음속의 연인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하리리는 1971년도에 현대판 맬로물 ‘연애도적’ ‘처녀수첩’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그녀의 도회적이면서 세력된 매력을 흠뻑 발산하면서, 역시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하리리는 1972년도에는 영화 ‘14인의 여걸’에 출연해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또한번 큰인기를 끌게됩니다.
영화 ‘14인의 여걸’은 엄청난 자금과 엄청나게 많은 배우들 등 엄청난 물량과 고도의 기술력을 투입한 홍콩영화계의 걸작 중의 최고걸작품으로 홍콩영화계에 길이 남을 만한 대작입니다.
영화 ‘14인의 여걸’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서 추석시즌에 서울의 대한극장, 부산의 부영극장등에서 개봉되어 무협팬들을 크게 열광시킨 영화입니다.
이 영화 ‘14인의 여걸’에는 홍콩의 유명한 여배우들이 총출동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화입니다.
리칭, 능파 등 수많은 인기여배우들이 출연해서 열띤 연기를 펼쳤지만, 그래도 단연 하리리의 연기력이 가장 크게 눈에 띄었으며, 내용상으로는 하리리의 연기와 매력이 가장 크게 돋보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14인의 여걸’ 또한 하리리의 영화라고 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리리는 1974년도에 선박재벌 조세광과 결혼하면서, 영화 ‘무의’를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하면서, 많은 무협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결혼 후, 하리리의 소식이 가끔 전해졌는데요, 하리리는 1남 3녀를 낳았는데, 하리리의 남편 조세광은 바람둥이로 유명했습니다.
남편 조세광은 애인이 많았는데, 미인대회 출신의 미녀를 애인으로 데리고 다녔을 뿐만아니라, 그의 여비서도 남편과 내연관계를 맺고있으며, 조세광은 여러명의 젊은 애인을 만나면서 바람을 피워서 하리리의 속을 썩였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리리는 남편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사업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리리는 80년도부터 의류사업에 이어 상해에서 고급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 조세광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이 때 남편의 애인들이 상속과 재산분할 문제로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하리리는 조강지처의 위세로 남편의 첩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리리는 쓰러진 남편을 위해 극진한 병간호를 해나갔으며, 그녀의 정성어린 병간호에 감동받은 남편은 자신의 과거를 반성했으며, 결국 남편은 2016년도에 사망하면서 하리리와 자녀들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겨줬습니다.
하리리는 쇼브라더스사에서 총 47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현대물, 멜로물, 뮤지컬, 첩보물, 무협물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하리리는 정말 요염하면서도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홍콩 쇼브라더스사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하리리를 쇼브라더스사를 상징하는 간편여배우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 하리리의 ‘봉비비’ 줄거리 -
봉비비의 언니는 남편이 사고로 죽자, 아들을 데리고 처갓집으로 떠납니다. 봉비비의 언니가 아들과 함께 산악길을 내려가는 도중, 마침 그곳에 사냥을 나온 김씨 호족의 아들과 조우합니다.
김씨는 몇몇 부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왔고 마침 그곳에서 자신의 화살로 토끼를 쏘아 맞춰서 잡습니다.
그런데, 김씨 도련님이 쏜 화살에 맞은 토끼가 봉비비 언니의 아들 앞에 떨어졌고, 아들은 그 화살맞은 토끼를 집어들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시비가 붙었고, 김씨 일행이 와서 자신이 쏜 화살에 맞은 토끼를 들고있는 봉비비 언니 아들을 때리면서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떠오려고 갔다고 돌아온 봉비비 언니는 이 광경을 목격했고, 즉시 아들이 들고있는 토끼를 김씨 일행에게 돌려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문제가 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씨는 봉비비 언니를 보고 혹심을 품었고, 그는 완력으로 봉비비 언니를 쓰러뜨린 후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성폭행을 당하지않으려는 봉비비 언니와 성폭을 하려는 김씨 도련님간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봉비비 언니의 완강한 저항에 분노한 김씨 도련님이 그만 봉비비 언니의 목을 졸라서 그녀를 살해했습니다.
이 당시 아들은 김씨가 자신의 어머니를 성폭행당하면서 죽는 과정에서 몰래 그곳을 떠나 달아나버렸고, 그 아들은 외갓집인 봉비비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이모인 봉비비에게 자신의 엄마가 악한들에게 성폭행당한 후 살해당한 것을 일러바칩니다.
봉비비는 조카와 사병들을 데리고 언니가 살해당한 곳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언니를 살해한 자의 화살을 발견했습니다. 그 화살에는 ‘김씨’라는 성이 새겨있었고, 조카가 그곳에서 범인들이 ‘신안읍’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렇다면, 언니를 살해한 범인은 ‘신안읍에 사는 김씨’라는 것입니다.
봉비비(하리리)는 남장을 한 채 조카를 데리고, 언니 살해범을 찾기위해서 곧바로 신안읍으로 향했습니다.
봉비비와 조카가 신안읍에 도착한 후,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있었는데, 마침 그 음식점 옆집에 있는 기생집에서 봉비비 언니를 살해한 김씨 도령이 부하들과 함께 술파티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김씨 도련님이 기생집에서 객기를 부리는 과정에서 활을 쏘았는데, 그가 쏜 화살이 옆집에 있는 음식점의 처마밑에 박혔고, 봉비비와 조카는 그 화살을 보았고, 그 화살이 죽은 언니 옆에 있던 ‘김씨’성이 찍힌 화살과 동일한 화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그 화살을 쏜 주인공은 봉비비의 언니를 죽인 범인이었습니다.
봉비비는 즉시 옆집의 기생집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그 화살을 쏜 주인공 즉, 김씨 도령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그 기생집에서 봉비비는 자신의 언니를 죽인 범인인 김씨 도령과 그의 부하들과 칼싸움을 벌였습니다. 봉비비 입장에서는 자신의 친언니를 죽인 범인을 만났으니, 칼싸움을 통해 원수를 갚아야하는 입장이었지요.
기생집에서 갑자기 침투한 봉비비와의 김씨 도령간의 결투가 벌어지면서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검술솜씨가 뛰어난 봉비비는 순식간에 김씨 도령의 부하 십여명을 칼로 쓰러뜨리면서 엄청난 칼솜씨를 보여주었고, 이윽고 김씨 도령을 붙잡았는데,
그 김씨 도령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고는 그 김씨 도령이 바로 자신의 약혼남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친언니를 무자비하게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이 다름아닌 자신의 약혼남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친언니 살해범이 자신의 약혼남이라는 사실을 안 봉비비(하리리)는 이같은 기막힌 현실 때문에, 그만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자신의 약혼남이자 친언니 살해범을 그냥 살려주느냐, 아니면 언니 살해의 죄를 물어 죽이느냐의 기로에 선 봉비비는 순간적으로 무척 갈등하고 고심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엄마를 살해한 범인을 죽여달라는 조카의 외침을 듣고 그녀는 자신의 약혼남을 단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지요.
사실, 봉비비와 약혼남 김씨 도령은 서로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기로 어렸을 때에 부모님들 간에 서로 약혼을 했습니다.
친언니를 죽인 약혼남 김씨 도령은 장차 봉비비의 남편이 되어야할 봉비비의 정혼남이었습니다.
그 증표로 봉비비와 약혼남은 어렸을 적에 서로 똑같은 목걸이를 갖고있었는데, 그녀가 갖고있는 목걸이와 똑같은 목걸이를 김씨 도령도 갖고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래서 봉비비는 자신의 약혼남인 김씨 도령을 그냥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봉비비는 여관에서 밤새토록 잠을 못이루면서 큰 고민을 했습니다. 자신의 약혼남인 김씨 도령을 붙잡아서 죽일지, 그냥 살려둘 지를 놓고 말이지요.
그렇다고, 자신의 친언니 살해범을 약혼남이라는 이유로 그냥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봉비비는 자신의 약혼남인 김씨 도령을 다시 붙잡아서 자신의 친언니 살해범으로 죄를 묻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봉비비는 그 다음날 김씨 도령이 살고있는 김씨도령의 산채로 혼자서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장차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 분과 시아버지가 될 분을 모두 만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에, 봉비비는 김씨 도령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김씨 도령을 칼로 겨누면서 붙잡았습니다.
봉비비는 김씨 도령을 친언니 살해범으로 관아로 넘기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미래의 며느리가 될 여인이 갑자기 자신의 친아들을 칼로 겨누면서 관아로 끌고가는 모습을 본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봉비비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김씨 도령이 자신의 친언니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김씨 도령을 친언니 살해범으로 관아에 넘기기로 했다는 말도 함께 해주었습니다.
봉비비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김연백이 자신의 친언니를 살해한 살해범이라고 말하고는 그를 관아로 끌고가서 처벌받게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연백의 어머니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그녀의 체포요청을 묵살하고 부하들을 불러서 그녀를 가지못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봉비비와 김씨 산채의 무사들간에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봉비비는 놀라운 검술실력을 발휘하면서 혼자서 수십명의 무사들을 물리쳤고, 김연백을 체포해서 그 산채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자, 김연백의 어머니는 봉비비에게 끌려간 자신의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추격대를 구축해서 봉비비의 뒤를 추격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와 자신의 친언니를 살해한 살해범을 단죄하기 위한 봉비비 간의 치열한 한판 대결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두 여자 사이에 피튀기는 치열한 검술공방전이 펼쳐지면서 극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려줍니다.
두 여자간의 치열한 한판 승부 도중에 도망치려던 김연백이 봉비비가 던진 칼에 맞아 숨을 거두었고, 또다시 펼쳐진 두 여자간의 치열한 검술대결에서 결국 봉비비가 시어머니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되어버립니다.
영화 ‘봉비비’는 여배우 하리리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미모와 그녀의 화려한 무공을 펼치는 여전사로서의 매력을 모두 발휘한 아주 재미있는 홍콩무협 걸작품입니다.
봉비비는 자신의 친언니 살해범인 김씨도령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언니에 대한 복수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조카가 김씨도령에게 죽임을 당하는 쓰라린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지금까지 1971년도에 제작되어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쇼브라더스사의 대표적인 홍콩무협영화 하리리 주연의 영화 ‘봉비비’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