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한혜숙의 젊은 리즈시절의 미모, 70년대 청순미인, 최근근황, 결혼하지않은 이유

 

한혜숙 - 1951년 8월 20일생 나이 68세

 

연예인 중에 대표적인 골드싱글이 있는데요. 바로 70년대에 인기 미녀스타로 풍미했던 한혜숙입니다.

한혜숙은 70년대에 우리나라 TV드라마에서 최고로 인기가 높았던 탤런트였답니다.

 

한혜숙은 1970년대 TV드라마는 물론 CF광고모델로서도 활발한 활약을 펼치면서, 70년대의 우리나라 미녀여배우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감이었지요.

 

70년대에 드라마스타로는 김자옥도 있었고, 김영애도 있었지만, 한혜숙이 가장 예쁘고, 가장 섹시한 여배우로서 많은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답니다.

 

1970년대 초반 드라마 ‘꿈나무’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하명중과 호흡을 맞추었던 한혜숙은 그야말로 아주 여성스러운 ‘청순글래머’의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청순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춘 ‘청순글래머’의 원조는 바로 한혜숙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의 우리 연예계의 미인으로는 김태희, 송혜교를 꼽을 수 있는데, 한혜숙은 1970년대에 가장 대표적인 미인으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한혜숙은 지금의 김태희와 송혜교보다 훨씬 앞선 70년대에 원조미인으로 불리워졌던 여배우랍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미인의 계보를 설명하자면, 60년대에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트로이카여배우들이 주름을 잡았고,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의 신트로이카가 각광을 받았지요.

 

그런데 구트로이카여배우들과 신트로이카여배우들 사이의 중간시기인 70년부터 75년까지는 한혜숙이 가장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한혜숙은 1970년도에 MBC 문화방송에 제2기 탈랜트로 데뷔를 하였는데,

71년도에 또다시 KBS의 드라마 주연급탈랜트 모집에 응모해서 당선되었는데, 무려 3500 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1위로 뽑혔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3500 대1의 경쟁률에서 당선된 역할을 KBS드라마 ‘꿈나무’의 여주인공역이었고, 이 ‘꿈나무’에서 청순하고 참신한 이미지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한혜숙의 얼굴은 그 당시 다른 연기자들의 얼굴과는 다른 모습이었지요.

70년대 당시만 해도 TV드라마에서 동양적인 이미지의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는데,

한혜숙은 서구적인 마스크와 세련된 이미지를 갖고 방송에 나왔다는 자체가 대단한 센세이션이었답니다.

 

그 당시 다른 여배우들보다는 키도 더 크며, 날씬한 에스라인에다 서구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고, 새로운 스타일의 미인으로 각광을 크게 받았답니다.

 

한혜숙의 키는 164cm인데, 70년대 당시에는 여자로서는 상당히 큰 키에 속했답니다.

 

그 당시 한혜숙과 입사동기인 김자옥은 동양적인 미인소리를 들었지만, 한혜숙은 서구적인 미녀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두 여배우가 그시대에 가장 큰 인기를 끌면서 서로 연기경쟁을 벌였답니다.

 

한혜숙은 71년도에 그녀의 첫대뷔작인 ‘꿈나무’에서 청순한 여고생으로 분해 참신하고 청순한 매력을 선보이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리고 75년도에 우리 TV드라마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에 역시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당대 최고의 인기탤런트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서구적인 시원시원한 마스크에 콧날이 오똑한 그녀의 모습은 도도하면서도 가존심 강하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공주 또는 귀족녀 같은 인상을 풍기면서, 많은 남자들의 로망 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70년대 초중반은 한혜숙이 가장 큰 인기를 끌던 시기였고, 그시대의 대표적인 미인으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한혜숙이 70년대에 얼마나 잘 나갔냐 하면, 한혜숙은 원조 빅3 스타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혜숙은 길이 남을 만한 3개의 대작품에서 최초로 주인공을 맡았다는 겁니다.

 

‘구미호’와 ‘춘향전’ 그리고 ‘토지’의 주인공을 최초로 맡았던 원조가 바로 한혜숙이라고 합니다. 물론 다 TV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이랍니다.

 

70년대애 TV드라마에서 1대 구미호역을 한혜숙이 맡았고, 역시 1대 춘향이역을 그녀가 맡았을 뿐만아니라, 1대 ‘토지’의 여주인공 서희역을 한혜숙이 맡았다고 합니다.

 

‘구미호’와 ‘춘향전’, ‘토지’의 여주인공역할은 오직 톱스타만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인데, 그 배역을 한혜숙이 최초로 맡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혜숙은 3대 걸작품의 원조 여주인공이라고 하는데요.

 

‘구미호’와 ‘춘향전’ ‘토지’는 한혜숙이 출연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TV드라마로 리바이벌되면서, 또다시 계속해서 만들어졌는데요.

 

한혜숙이 이들 3대 명작품에 초대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연기를 잘해내었고, 그 기초를 튼튼히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이들 3대 명작품이 계속해서 리메이크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원조가 또하나가 더 있습니다.

 

화장품 CF광고는 모든 여자연기자들의 최고의 꿈이랍니다. 여자로서 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화장품 광고모델로 발탁이 되면, 톱스타로 발전할 수 있는 지름길을 얻는 셈이지요!

 

그래서 모든 여자연기자들은 화장품 광고모델에 발탁되기를 갈망하고 있는데요.

한혜숙은 1971년도에 최초로 아모레 화장품광고를 찍어서, 아모레 화장품 광고 모델의 원조가 되었답니다.

 

한혜숙은 71년도 KBS 데뷔함과 동시에, 아모레 하이톤 화장품 광고모델에 발탁되어서, 아름다움을 맘껏 뽐냈답니다.

 

3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한혜숙이 선발되자, 태평양화학 화장품회사에서 그녀의 세련된 미모를 높이 평가하고 그녀를 화장품광고 전속모델로 선발했던 겁니다.

 

한혜숙은 71년도에 태평양화학의 화장품모델로 선발되어서 3년 동안 전속모델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미인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한혜숙을 광고모델로 발탁했던 태평양화학은 지금의 퍼시픽화장품 회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장품회사이지요.

 

이로써 한혜숙은 최고의 미인만이 맡을 수 있는 ‘춘향전’의 춘향이와 ‘토지’의 서희역, 아모레화장품의 전속모델 등을 모두 꾀참으로써, 70년대 당시에 당대 최고의 미녀탤런트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70년대에, 포린텍스 옷감 광고모델과 대포린 이불광고모델, 비바리 허벌샴푸 광고모델 등 여러가지 CF광고모델을 맡아 찍으면서, CF퀀으로도 명성을 높여나갔답니다.

 

원래 여자연기자가 미모가 뛰어나고 인기가 좋으면,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물론 CF모델도 많이 찍게 되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 1971년 당시의 한혜숙의 프로필

 

나이 - 21살

키 - 164cm, 몸무게 51kg

5남매 중에 맏딸

최종학력 - 덕성여고 졸업

 

1970년 mbc 방송국 데뷔, 1971년 kbs 방송국 데뷔

kbs 10기 탤런트 모집에 수석으로 합격

취미 - 등산

종교 - 불교

 

위의 프로필은 1971년도에 발간한 주부생활에 실린 한혜숙의 프로필입니다.

 

한혜숙의 키 164cm는 지금의 여자 키로도 중키가 넘는 키로서, 70년대 당시에는 여자들 중에서 매우 큰 키에 속했으며, 70년대 중반 당시 다른 여자연기자들에 비해서, 한혜숙이 가장 날씬하고 우월적인 몸매를 갖고있었다고 합니다.

 

얼굴 뿐아나라 몸매도 뛰어난 한혜숙이었기에, 그래서 남성팬들이 더욱더 한혜숙에 열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혜숙은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하면서, 톱스타의 입지를 굳혀나갔으며, 이후에는 영화에도 출연해서 호평을 받았답니다.

한혜숙은 70년대 후반 영화 ‘족보’와 ‘상록수’ 같은 대작품에 출연해서, 선굵은 연기를 벌여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놓기도 했었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혜숙이 출연한 영화들이 별로 많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이 흥행에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혜숙은 성격이 매우 꼿꼿하고 보수적인 성품이어서,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호스티스영화들에 출연하는 것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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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외모와는 달리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을 가진 한혜숙은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벗는 연기를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에, 그 당시 유행하던 호스티스물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혜숙은 영화에는 별로 출연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TV드라마에서는 최고로 인기를 끌면서 각광을 받았답니다.

 

한혜숙은 1970년대의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로 명성이 높았던 만큼, 성격도 매우 꼿꼿하고 도도한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지고 있답니다.

 

80년대 초반에 한혜숙의 도도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1980년대 초반부터 KBS방송국에서는 모든 연기자들이 명찰을 걸고, 방송국에 출입하도록 규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여의도에 있는 KBS본관에 한혜숙이 현관으로 들어왔는데, 그날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원이 한혜숙에게 표찰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한혜숙은 깜빡잊고 명찰을 갖고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한혜숙이 명찰을 안갖고 왔다고 말하면서 그냥 지나치려고 하자, 그 젊은 경비원이 한혜숙의 출입을 완강히 저지시켰다고 합니다.

80년대 초반이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혜숙을 다 알고있던 시기였지요.

 

그러자, 화가 단단히 난 한혜숙은 자신의 하이힐을 벗어서 그 젊은 경비원의 머리에다 세차게 찍어버렸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의 하이힐에 얻어맞은 그 젊은 경비원은 머리에 피까지 흘리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소위 80년대 초반 ‘한혜숙의 경비원 폭행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경비원의 머리를 하이힐로 찍고난 후, 한혜숙은 그 경비원에게 ‘너, 진짜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라고 말하고는 방송국으로 올라갔다고 하네요.

 

한혜숙이 예쁜 얼굴만큼, 매우 도도하고 대쪽 같은 그녀의 성품을 매우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이 겉으로 드러난 청순한 미모와는 달리, 성격은 매우 강하고 대쪽같은 성품을 지녔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70, 80년대 전성기를 지나서, 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많지는 않지만, 간간히 드라마에 출연을 계속해왔는지요.

 

2006년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여주인공의 어머니역을 맡아서 열연을 펼쳐서 극의 완성도를 높여놓았는데, 이 드라마로 연기대상 백상을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윤정희와 이태곤의 젊은 두 남녀주인공을 제치고, 어머니역의 한혜숙이 연기대상을 받은 것이어서, 그녀의 연기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시청률이 40%를 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2009년도 MBC 드라마 ‘보석비빕밥’을 끝으로 더이상 드라마에 출연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 한혜숙,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이유

 

한혜숙은 70년대 가장 매혹적인 여배우였지만, 또한 누구보다도 의혹점이 많은 여배우랍니다.

그녀에 대한 가장 큰 의혹점은 한혜숙이 지금까지도 한번도 결혼을 하지않고 혼자 독신으로 산다는 점이랍니다.

 

70, 80년대에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고, 돈과 명예도 얻을 만큼 얻었던 한혜숙이 혼자 살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한혜숙은 지금까지 평생을 혼자 독신으로 살아왔다고 하니, 정말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한국의 대표적인 골드싱글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70, 80년대에 탁월한 미모와 글래머스한 몸매, 뛰어난 연기력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기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혜숙은 2000년대 초반에 한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

한혜숙은 자신의 연기생활에는 100% 만족한다고 밝혔지만, 한 여자로서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답니다.

 

여자로서의 삶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한혜숙이 가슴속에 결혼을 하지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아픔과 회한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혜숙이 나이 30살 때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요. 아버지는 임종하기 전에,

한혜숙에게 ‘내가 죽고나면 네가 이 집안의 가장이 된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이 하고, 네가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잘 돌봐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이런 아버지의 유언을 가슴속 깊이 새겨놓았던 것인데, 그녀가 몇십년간 연기활동을 벌여오면서,

단 한번도 스캔들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녀가 아버지의 유언을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혜숙은 동생이 4명이나 있는 집안의 장녀랍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한혜숙이 자기집안의 가장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요. 한혜숙의 어머니는 가정밖에 모르시는 분이셨다고 해요.

 

한혜숙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연기활동을 하면서, 동생들을 극진히 돌봐주고 동생들의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해왔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네명의 동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면서 모든 경비를 혼자서 다 짊어졌으며, 사실상 가장노릇을 완벽하게 수행해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혜숙이 밖에서는 연기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살았고, 안으로는 4명의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남자를 만나 연얘를 할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가장노릇을 하느라, 네명의 동생들을 간수하느라, 연기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던 한혜숙이었기에, 그녀는 연얘에 대해 관심을 끊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하게 되면, 이성을 만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위해서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이성을 만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젊었을 때에 실제로 경험했던 사실이랍니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노총각이 되고 말았지요.

 

아마 한혜숙도 네명의 동생들을 모두 잘 뒷바라지해서 대학까지 다 보내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전념하다 보니, 자신이 결혼해야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결국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동생들 뒷바리지하는 것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한혜숙은 천사와 같은 마음씨를 지닌 대단한 여성이라고 느껴진답니다.

 

그리고 그녀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 또한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도록 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고 여겨진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하며, 신앙심이 대단히 깊다고 합니다.

한혜숙의 깊은 신앙심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게 했던 또다른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세상에 때묻지않고, 자신을 항상 정결히 하면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강한 신앙심과 뚜렷한 주관이 그녀가 독신으로 살도록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사실 한혜숙이 전혀 연얘를 안한 것은 아니랍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절색의 미녀인데, 한혜숙을 남자들이 가만 나뒀겠습니까? 한혜숙이 젊은 시절에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소위 ‘칠공자’라고 불리워졌던 집안 좋고, 재력좋고 잘생긴 재력가의 남자였는데, 그 남자가 어찌나 끈질기게 한혜숙을 쫒아다녔는지, 한혜숙은 그만 그 남자에게 완전 질려버렸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계속 거절해도 그 남자가 끝도 없이 계속 대쉬하는 바람에, 한혜숙은 남자 전체에 대한 불신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깨끗하고 패어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완고하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어서,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쉬하는 그런 남자는 딱 질색이라고 합니다.

 

결국 한혜숙은 그 남자를 완벽하게 거절해서, 다시는 곁에 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한혜숙은 총 세 번에 걸쳐서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혜숙은 무척 도도하고 콧대가 센 여자였고, 완고한 성품이었기에 남자와 연예하는 것이 서툴렀다고 하네요.

 

자기관리를 잘하는 한혜숙은 세 번에 걸쳐 사귄 남자들과는 깨끗하게 헤어지고, 뒤끝없이 정리해버렸다고 합니다.

보수적이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한혜숙은 남자를 오래 사귀지않고 빨리 정리했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평소에도 시간만 나면, 절에 가서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성격도 보수적인데다가, 불교에 대한 신앙심도 깊은 그녀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함에 의해서, 자기 스스로를 독신의 늪에 가둬높지 않았나 생각된답니다.

 

완벽한 삶을 추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중에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카톨릭신앙심이 깊은 여성신도는 자신은 하나님과 결혼했다고 하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혜숙도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틀림없이 비구니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지인들에게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한혜숙의 보수적이고 강한 신앙심,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리고 네명의 동생들을 끝까지 뒷바리지하겠다는 책임감 또한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던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대를 풍미했을 만큼 최고의 미모를 바탕으로 70년대 톱스타로서, 수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는 현실이 무척 낮설게만 느껴진답니다.

 

한혜숙은 1951년생으로 이제 나이가 74세가 되었네요. 그런데 한혜숙은 젊은 시절 못지않은 미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혜숙이 박정희대통령에게 당했다는 루머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70년대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펼쳐나갈 무렵에, 박정희대통령에게 얼굴 예쁜 많은 여배우들이 당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었답니다.

 

사실 박정희대통령에게 당한 여배우들이 한두명이 아니지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있는 비밀이랍니다.

한혜숙도 박대통령에게 끌려가서 강제로 S폭행을 당했다는 루머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확인되지않은 루머일 뿐이며, 너무 맹신하지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혜숙이 가장 잘 나갔던 시절은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펼쳤던 70년대와 겹치는 시기였기에, 한혜숙이 박정희대통령에게 당했다는 루머는 나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의 서슬 퍼런 독재정치가 펄쳐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같은 루머는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한혜숙은 2007년 드라마 ‘보석비빔밥’을 끝으로 그 이후에는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은둔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들리는 전언에 의하면, 한혜숙은 어머니가 몸이 몹시 편찮으셔서 어머니 병 간호에 전념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혜숙은 틈틈이 절에 다니면서 불공드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과거에 한 방송에서 한 말이 뒷가에 멤돈답니다.

한혜숙은 한 방송에서 ‘자신은 아직도 남자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으며, 남자와 팔장을 끼고 덕수궁돌담길을 함께 거니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한혜숙이 좀 더 젊은 나이에 저런 꿈을 꾸었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재벌부인이 되고도 남았을 겁니다.

한혜숙이 지금의 나이에도 소녀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하니, 그녀는 정말 순수한 여성성을 잃지않은 것 같습니다.

 

한혜숙은 최근 연기활동 대신 각종 불교행사에 참여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원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은 한혜숙은 연기활동은 포기한 체, 불교행사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원로배우들의 사망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어서 걱정인데, 아무쪼록 한혜숙이 탈랜트로서 다시 대중들앞에 나타나서 활동하는 모습 보고싶습니다!

 

하루빨리 한혜숙이 은둔생활에서 벗어나서 다시 방송에 복귀해서, 드라마에서 멋지게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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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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