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죽지않았다, 생존설과 죽음의 비밀, 카를로 크레스피신부

미스터리 파일 2022. 7. 5. 22:30

히틀러는 죽지않았다, 히틀러의 생존설의 근거와 죽음의 비밀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던 전쟁의 원흉 아돌프 히틀러!

이 잔혹한 학살자 히틀러는 1945년 연합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해들어오자,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매우 놀라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아돌프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때에 죽지않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2차세계대전 때에 히틀러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시키고, 남몰래 베를린의 벙커를 빠져나와서 비밀리에 배를 타고서 남아메리카로 도주했다고 합니다.

 

평생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을 잔뜩 실고 남미로 도망쳐온 히틀러는 그 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을 전전하다가 한 시골마을에 정착해 천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남아메리카에서 95세까지 살다가 자연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모니 르네 게레이로 디아스라는 작가가 쓴 ‘브라질의 히틀러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작가는 평생동안 나치스와 히틀러를 추적한 후, 히틀러가 2차대전 후에도 오랫동안 생존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 CIA가 보유하고 있는 ‘코드명 CIMELODY-3'라는 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 이 비밀보고서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당시 그의 애인 애바 브라운과 함께 남몰래 베를린의 지하벙커를 탈출했고, 그 후 배를 타고서 아르헨티나로 건너가서 10년 넘게 오랫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돌프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에 패배한 후,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권총자살로 사망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CIA의 비밀보고서에 나온대로 정말로 히틀러가 탈출에 성공해서 남아메리카에서 천수를 누리고 살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놀랍고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인류는 70년 동안 속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봉인이 해제된 이 CIA의 비밀보고서에는 히틀러의 친위대 대원의 증언이 담겨있었는데, 그 친위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히틀러는 2차대전 패배 후에도 남몰래 남아메리카로 도망친 후, 10년 뒤인 1955년도에도 콜롬비아에 생존해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밀로 보관해오던 CIA의 비밀보고서가 봉인해제되면서, 히틀러의 생존설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으며, 세상에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 히틀러의 생존설, 에콰도르 성당의 신부설

 

그런데, 최근에 히틀러의 생존설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일을 탈출한 아돌프 히틀러가 남아메리카로 가서, 에콰도르의 한 시골마을에 정착한 후, 신부로 오랫동안 생존해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1957년 에콰도르의 시골마을 쿠엔카에 아주 오래된 성당 하나가 있었는데, 이 성당에 어느날 카를로 크레스피라는 신부가 부임해온답니다.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이 쿠엔카의 성당에서 성직자로 재직하면서, 마을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자애로운 삶을 살아갔고, 그 때문에 마을주민들로부터 두터운 존경과 신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사는 빈곤한 주민들을 보면,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갔기에, 마을주민들로부터 엄청난 존경과 지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는 마을주민들로부터 ‘파더 크레스피’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이 마을에 온 지 25년만인 1982년도에 90세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카를로 크레스피신부가 사망한 후 장례식 때에는 무려 2,000명의 조문객들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 방문자들은 오리지널 게르만족의 후예들처럼 큰 키에 금발의 남성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카를로 크레스피신부 장례식장에 온 2,000명의 사람들은 적어도 에콰도르나 남아메리카 사람들은 아니었으며, 대부분 유럽본토 독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제3세계를 다스리던 아돌프 히틀러가 평소에 아리안족 순혈주의를 그렇게도 강조했는데, 그가 강조했던 아리안족은 순수한 게르만족을 의미한답니다. 게르만족은 원래 파란눈을 가진 금발의 키가 큰 민족이지요.

 

에콰도르의 보잘 것 없고 작은 시골마을의 늙은 신부 한사람이 죽었는데, 2,000명이 넘는 외지인들이 방문해서, 조문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며, 잘 믿어지지 않는 사실입니다.

 

무슨 유명한 연예인이 사망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외지인들이 방문할 수 있었을까요?

 

카를로 크레스피신부가 사망한 후, 갑자기 그 곳으로 비행기 두 대가 도착했으며, 그 비행기에서 내린 의문의 사람들이 성당의 지하실로 들어가서 값비싼 예술품들을 모두 비행기에 실고 떠나갔다고 합니다.

 

평소에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엄청나게 많은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 예술품들은 모두 성당의 지하실에 보관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시골마을의 노쇠한 신부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값비싼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는지도 큰 의문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를로 크레스피신부가 소장하고 있던 많은 예술품들

 

우리가 알고있는 사실은, 아돌프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때에 프랑스 파리박물관과 미술관을 비롯해서 유럽의 많은 점령국가들에서 수많은 값비싼 예술품들을 탈취해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히틀러가 탈취해간 예술품들은 무려 500만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에콰도르의 작은 시골마을의 카를로 크레스피신부가 비행기 두 대에 실을 정도의 수많은 값비싼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 여러가지 정황들을 미루어볼 때, 아돌프 히틀러와 일치하는 점들이 많습니다.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크레스피신부가 소장한 예술품과 히틀러가 소유했다고 알려진 예술품들이 서로 일치하는 것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콰도르의 여러 신문에는 ‘카를로 크레스피신부가 아돌프 히틀러다’ 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당시에도 에콰도르를 비롯해 여러 남미국가들의 신문에는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를 아돌프 히틀러와 동일인일 것으로 추정하는 기사들이 많이 실렸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돌프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때에 연합군과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해들어오자,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애인 애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틀러의 시신은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불태워져서 유골만 남겨졌다고 하는데요. 먼저 베를린으로 진격해들어갔던 소련군이 히틀러의 지하벙커에서 히틀러의 유골을 찾아내어 소련으로 가져간 후, 소련의 국가보관소에 은밀하게 보관되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도에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연구팀이 히틀러의 두개골을 가져다가 DNA로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히틀러의 두개골이 40세 미만의 여자의 것으로 판명이 났답니다.

 

2차세계대전 때에 히틀러의 지하벙커에서 찾아낸 히틀러의 두개골이 여자의 것으로 판명이 나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히틀러의 두개골이 여자의 것으로 밝혀진 이유를 전혀 알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여자였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히틀러의 두개골을 여자의 것으로 몰래 바꿔치기한 것인가 하는 둘 중의 하나이겠지요.

 

히틀러가 정말로 여자였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습니다. 히틀러의 외모나 목소리를 들으면, 결코 히틀러가 여자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히틀러의 유골이 여자로 판명이 났을까요?

 

어떤 목적하에, 누군가가 히틀러의 유골을 여자의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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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죽지않았는데, 마치 히틀러가 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유골로 가져다가 히틀러의 유골인 것처럼 위장을 하였고, 히틀러 자신은 몰래 독일을 탈출했던 겁니다.

 

웬델 스티븐슨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의 육군대령 출신의 참전용사인데,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일주여행을 다녔고, 그 여행 중 우연히 에콰도르의 쿠엔카에 들렀다가, 그 마을 성당에서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를 만난 후, 놀라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웬델 스티븐슨은 자신이 본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아돌프 히틀러와 동일인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웬델 스티븐슨은 히틀러의 사진과 크레스피신부의 얼굴사진을 함께 놓고 비교해보았더니, 두사람이 동일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로, 카를로 크레스피신부와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사진을 비교해보면, 정말로 크레스피신부는 히틀러의 눈과 코의 윤곽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고기를 절대로 먹지않고 채식만 하는 채식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히틀러도 채식주의라고 합니다.

카를로 크레스피신부와 히틀러 두사람 모두 채식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카를로 크레스피신부와 히틀러

 

카를로 크레스피신부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이탈리아어를 잘했는데, 히틀러의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운 히틀러도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크레스피신부가 살았던 쿠엔카마을은 전쟁에서 패망한 후, 이주한 나치 고위간부들이 많이 살았던 은신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크레스피신부가 살았던 그곳으로 평소에 독일사람들이 많이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크레스피신부는 사망했을 당시의 나이가 90세로, 1889년생인 히틀러의 나이도 90대 초반으로 서로 나이가 엇비슷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카를로 크레스피신부와 아돌프 히틀러는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때, 죽은 것처럼 위장한 후, 독일을 탈출해 에콰도르의 시골마을의 신부로 신분세탁을 해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카를로 크레스피신부와 아돌프 히틀러의 유전자DNA를 대조해보면, 두사람이 동일인임을 확실하게 판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크레스피신부 사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크레스피신부의 유골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크레스피부의 유골뿐만 아니라 무덤 자체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크레스피신부의 신분 노출을 꺼리는 누군가가 그의 유골및 무덤을 감쪽같이 없애버렸던 겁니다.

크레스피신부의 무덤이 사라졌기 때문에, 크레스피신부가 히틀러와 동일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없어져버려서 너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지역에서 히틀러에 대한 목격담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195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히틀러를 보았다는 목격담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1956년 한 여인이 아르헨티나 이날코의 대저택에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가정부로 일한 적이 있다는  놀라운 증언을 했습니다.

 

그 여자가정부는 이날코의 한 저택에서 한달동안 가정부로 일했는데, 그 집은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이 함께 사는 저택이였고, 그녀는 가정부로 일하면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을 수시로 목격했다고 하며, 아르헨티나의 그 저택은 히틀러의 은신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 남아메리카지역에서 히틀러를 목격했다는 목격담과 증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때에, 유럽의 여러 나라와 식민지에서 수많은 고가의 보물들을 약탈해갔고,

그렇게 모은 보물들을 모두 남아메리카의 망명지로 갖고가 팔아서 생활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부인과 함께 호화로운 망명생활을 이어나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히틀러로 추정되는 인물을 찍은 사진

 

결론, 미국 CIA에서 비밀문서 해제로 내놓은 보고서에서 분명히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때에 죽지않고, 남아메리카로 망명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카를로 크레스피신부와 히틀러가 서로 동일인임을 나타내는 공통점을 많이 갖고있다는 점.

그리고 히틀러의 시체가 진짜 히틀러의 시신이 아니라, 여자의 시신으로 확인된 점.

 

그리고 히틀러를 아르헨티나로 날라다주었다는 독일 조종사의 증언이 있다는 점 등,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당시 죽지않고 남미지역으로 망명해서 생존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근거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히틀러가 생존했다는 생존설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정말로 히틀러가 죽지않고 탈출해서 남미지역으로 망명해서 살았다면, 이러한 히틀러의 생존정보가 미국이나 소련 등 연합국의 수뇌부에 전달되었을텐데, 왜 연합국 수뇌부는 히틀러를 죽이지않고 천수를 누릴 수 있게 살려두었을까요?

 

2차세계대전 막바지, 전쟁에서 참패할 것이 명백해지자, 히틀러는 연합국의 수뇌부와 비밀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연합국인 미국, 소련의 수뇌부와 비밀협정을 체결해서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받았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연합국 수뇌부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망명을 보장받는 대가로, 당시 독일이 개발한 최고성능의 최첨단 무기들의 설계도를 모두 연합국에게 넘기기로 했다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다른 나라들은 꿈도 못꾸고있던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 비행접시, 초기단계의 원자폭탄등, 심지어 타임머신의 설계도까지도 모조리 미국과 소련 등 승전국의 수뇌부에 제공해주었고,

그 댓가로 히틀러는 생명을 보장받고 비밀리에 남아메리카지역으로 망명해서 깊은 산속의 은신처에서 생존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히틀러와 애바 브라운이 죽기 직전, 지하벙커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여기서 비행접시와 타임머신, 원자폭탄은 실제로 히틀러가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고, 100%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개발을 해놓은 상태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뭏튼 이러한 비밀거래로 히틀러는 생명을 보장받고 비밀리에 남아메리카지역으로 망명을 가서, 신분세탁을 거친 후, 90대 초반까지 천수를 다 누리면서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그리고 독일의 최첨단 무기와 최첨단 과학기술의 설계도를 전달받은 미국은 독일의 최첨단 기술들을 발판으로 해서, 세계초강대국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물론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때에 죽지않고 생존했었다는 생존설은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보아서 가능성은 높지만, 100%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뭏튼 여러가지 정황근거들로 보아서,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때에 죽지않고 다른나라로 망명해서 계속 생존해갔다는 생존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차세계대전의 주범인 아돌프 히틀러가 죽지않고 망명해서 살아갔다는 생존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히틀러의 생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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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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