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여행하기 관광코스와 명소, 나로도해수욕장, 팔영산오토캠핑장 이용료, 남열해수욕장
전라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고흥군은 거의 4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곳으로 한반도 남쪽 끝자락의 아름다운 해양도시이며, 애머랄드빛 드넓은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서 한반도의 하와이를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여름휴양지이다.
또한 고흥은 봄에는 유채와 벚꽃 감상하기, 여름에는 시원한 해수욕으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가을에는 유자의 풍경을 감상하고, 겨울에는 철새도래지 관광으로 사계절 내내 다양한 테마로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전천후 관광도시이다.
고흥의 아름다운 명산으로 소문난 팔영산의 운치를 감상할 수 있고 팔영산 바로 아래에 있는 팔영산오토캠핑장에서 여장을 풀고 한적한 숙박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고흥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한 나로도항에 가서 싱싱한 삼치회와 산낙지회로 먹는 즐거움의 정수를 느낄 수 있고 유람선관광도 즐길 수 있다.
♣ 고흥 명소별 관광코스
▶ 유자공원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에 있는 유자공원은 녹동항 가는 2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특산품 전시판매장과 유자공원이 나뉜다. 늦가을, 유자공원이라는 팻말을 따라 유자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사방에 펼쳐진 유자밭을 만난다. 유자밭 사이사이로 석류를 심어 노란 유자와 붉디붉은 석류, 감까지 뒤섞여 나름대로 운치 있는 유자 산책로이며 사진찍기에도 좋은 배경을 얻을 수 있다.
▶ 나로도항 유람선
유람선을 타려면 나로도항으로 간다. 이 항구는 오래전에는 삼치 파시(삼치 어장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에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갈 정도로 부자 마을이었으며, 한때는 고흥군 세수의 3분의 1을 충당했다고 한다. 오전 8시가 되면 해산물과 산낙지 경매가 시작된다. 나로도항에는 횟집이 많아 맛있는 산낙지회를 즐길 수 있으며 횟감만 별도로 구매할 수도 있다.
나로도항에 있는 유람선을 타고 해안구경, 바다구경으로 관광의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쑥 솟은 바위와 벌렁 드러누운 바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꼭두여, 카멜레온바위, 사자바위, 용굴, 쌍굴 등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나로도유람선상에 실컷 감상할 수 있다.
하반마을에 들어선 우주센터를 배 안에 서 볼 수 있다. 유람선은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관광유람선이므로 예약이 필요하다. 2시간 소요, 1만5000원.
▶ 나로도해수욕장, 상록수림
고흥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또하나의 작은 섬이 붙어있는데 이곳이 나로도이다. 나로도해수욕장은 은빛의 눈이 찬란한 백사장과 그림같은 노송들이 즐비해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나로도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기는 기분은 마치 남태평양이 하와이도 부럽지 않다.
나로도해수욕장에 있는 운치있는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길게 뻗은 백사장의 한쪽부분에 운치있는 서있는 상록수림에는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70여 종이 어우러져 있는데 봉긋 솟아오른 젖무덤 같다.
숲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해서 피서하기에 그만이다.
▶ 남열해수욕장, 용암마을
나로도 여행을 마친 다음 영남면으로 이동하면 남열해수욕장이나 용암마을 등 아름다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어차피 고흥은 거의 사면이 바다에 둘러쳐져 있어서 어디를 가도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날 수 있어서 여름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남열해수욕장은 파도가 높아 어린이는 주의가 필요하다. 해안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용암마을을 만난다.
용바위는 제주도의 용바위 해안이나 고성의 상족암을 연상케 한다. 용이 바다에서 용바위를 발판삼아 등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은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바다 낚시터이기도 하다.
▶ 팔영산 능가사
마지막으로 팔영산 능가사를 답사한다. 능가사는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혔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22년(1644)에 정현대사가 다시 세운 후 능가사라고 했다.
고흥반도를 떠나기 직전, 해가 질 무렵이라면 중산리나 남양리의 낙조를 감상해보자. 반나절 정도 시간을 잡아 녹동항 맞은편의 소록도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 팔영산오토캠핑장
고흥 10경 중 하나인 경치좋은 팔영산 숲속에 펼쳐져있는 팔영산오토캠핑장이 있어서 고흥여행에 장기 체류할 때는 팔영산오토캠핑장에서 숙박을 하면 편안하게 휴식도 하고 관광도 즐길 수 있다.
팔영산오캠핑장은 현대식 시설로 지어져서 편리한 캠핑을 즐길 수 있는데 공동취사실과 화장실, 샤워실, 전기도 사용할 수 있으며, 마치 북유럽 관광지에 온 것처럼 조경시설도 잘 꾸며져 있어서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으로 숙박과 관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천연잔디를 깔아 산책하기에도 좋으며, 축구장과 운동장이 있어서 아이들도 마음껏 뛰어놀 수도 있다.
근처에 어린이놀이터가 잘 구비되어 있어서 가족동반에도 좋고, 가까운 곳에 내천이 흐르고 바로 앞에는 팔영산이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어서, 산과 물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팔영산 안쪽에 팔영산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파전을 안주삼아 동동주 한 잔 하는 것도 운치를 더해준다.
- 오토캠핑장 이용료 -
주중 15,000원 주말 19,000원 전기사용료는 별도로 4,000원 추가요금을 지불해야함.
팔영산 오토캠핑장 주소 - 전남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130-4
♣ 축제∙행사 정보
고흥우주항공체험전 매년 7월 말~8월 초 고 흥군 공설운동장 일원. 녹동바다불꽃축제 매년 5월 중순 녹동항 특 설 무대. 녹동청년회의소 나로도 수산물축제 매년 10월 중순 봉래면 나로도항 물양장. 도화헌미술관 연 염색 체험이 가능하다.
♣ 숙박 정보
팔영산자연휴양림 - 영남면 우천리.
빅토리아호텔 - 도화면 발포리.
하얀노을 - 동일면 봉영리.
프라자모텔 - 봉래면 신금리.
동백장 - 봉래면 신금리.
진보각 - 봉래면 신금리.
♣ 고흥 맛집, 식당 정보
포두식당 - 한정식 1만~2만원 선.
감미횟집 - 두원면 대진리. 붕장어 1만5000원.
진미회관 - 봉래면 신금리. 회와 매운탕.
순천횟집 - 봉래면 신금리. 회와 매운탕.
광주식당 - 도양읍 봉암리.
♣ 고흥 장소별 교통코스
호남고속도로 주암 IC - 27번 국도 - 송광사 입구 - 벌교 - 고흥읍 - 유자공원∙특산품 전시 판매장 - 읍내로 나와 15번 국도 - 나로1대교 - 외나로도 상록수림 - 나로도항(유람선, 우주센터) - 77번 국도
바로 김두한의 부하들로서 김두한조직에서 김두한을 제외하고는 싸움으로 2인자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무서운 주먹을 휘둘러온 김경수와 털빠진 개고기, 그리고 김두한의 부하들 40명이 정팔사무실로 박차고 들어왔다.
이들은 정팔에게 ‘더이상 시간을 질질 끌지말고 김두한 우미관조직의 휘하로 들어올 것을 약속하라’고 말하면서 만일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않는다면, 신의주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이것은 사실상 두목 정팔을 비롯한 신의주의 모든 주먹들이 김두한의 부하로 들어오라는 것인데, 정팔로서는 자존심상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팔사무실 뒷방에 앉아서 이 이야기를 듣고있던 시라소니가 문을 박차고 나왔고, 그는 김두한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시라소니는 ‘내레 신의주 토박이 시라소니야, 너희들 어데서 굴러먹던 아새끼들이네! 너희들이 대체 누구간데 갑자기 신의주로 쳐들어와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기야?’ ‘더이상 신의주에서 말썽부리지말고 당장 꺼지라우! 너희들이 순순히 돌아간다면 내레 이번 행패는 없던 일로 할끼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두한의 오른팔인 김경수는 ‘이게 어디서 굴러먹던 말뼉다귀야! 조선천지를 전부 점령한 김두한의 우미관조직에 당장 들어오라우! 만일 우리요구를 듣지않는다면, 너희들 모조리 두들겨패서 완전 병신을 만들어줄꺼야!’라고 맞받아쳤다.
더 이상 말로서는 통하지않는다고 판단한 시라소니일행과 김두한부하들은 사무실 밖으로 나와서 결국 패싸움을 벌이게됐다.
사무실 밖에서 시라소니일행과 김두한부하 수십명이 서로 뒤엉켜서 한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양측에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그러자, 갑자기 시라소니가 앞으로 나서면서 김경수와 털빠진 개고기에게 ‘너희들이 김두한조직의 대표자들인 것 같은데, 더 이상 부하들을 희생시키지말고 너희들이 직접 나와 맞승부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시라소니의 제안대로, 시라소니와 김두한이 파견한 돌격대의 대장격인 김병수와 털빠진 개고기가 대결을 벌이기로 했다.
김두하조직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주먹이 쎄다고 정평이 난 김경수가 먼저 시라소니에게 그의 오른쪽 강편치를 날렸다.
시라소니의 박치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김경수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그대로 뒤로 자빠져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털빠진 개고기가 개거품을 물고 달려들면서 시라소니에게 강력한 왼주먹을 날렸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털빠진 개고기의 주먹을 살짝 피한 시라소니는 털빠진 개고기의 턱에 강력한 오른주먹을 날렸고, 주먹을 맞고 고개를 숙인 털빠진 개고기의 복부를 그대로 오른쪽무릎을 찍었는데, 그는 ‘억’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배를 부여잡고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조금 전에 시라소니의 박치기를 맞고 쓰러졌던 김경수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나서 공격자세를 취했다.
김경수는 털빠진 개고기를 쓰러뜨리고 한숨을 몰아쉬고 있던 시라소니에게 강력한 왼손주먹을 날렸고, 이를 보지못했던 시라소니가 그의 펀치를 정통으로 맞고 뒤로 쓰러졌다.
그런데, 뒤로 쓰러진 시라소니가 쓰러진 상태에서 강력한 박치기가 가해왔다.
시라소니는 김경수의 왼주먹을 턱에 얻어맞고 그 충격으로 뒤로 쓰러졌는데, 쓰러지는 반동을 이용해서 시라소니는 용수철처럼 땅으로부터 튕겨져나오면서 그대로 김경수의 이마를 들이받아버렸다.
‘쿵’하는 마찰음소리와 함께 시라소니는 몸전체를 수직으로 날려서 그대로 김경수의 이마를 들이받았고, 시라소니는 쓰러지려는 김경수의 복부를 다시한번 무릎찍기로 그대로 찍어버렸다.
시라소니의 정광석화와도 같은 박치기에 이른 무릎찍기에 그대로 당한 김경수를 그대로 다시한번 쓰러졌고,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김경수와 털빠진 개고기는 김두하조직에서 김두한 다음으로 주먹이 쎄다고 알려진 김두한주먹조직을 대표하는 주먹들인데도 불구하고,
시라소니와의 맞대결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시라소니의 박치기와 무릎찍기 기술에 걸려서 싸움이 시작된 지, 10분 만에 그대로 뻗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돌격대장 두명을 완전히 재압해버리자, 나머지 김두한부하들은 시라소니의 실력과 위세에 눌려서 더 이상 공격을 못하고 그만 기가 꺽이고 말았다.
이때에 정팔의 부하들 30여명이 김두한부하들에게 돌진했고, 이로써 정팔부하들과 김두한부하들 간에 치고박는 피터지는 전투가 벌어졌다.
사기가 크게 꺾인 김두한부하들을 패싸움에서 점점 수세에 몰리면서 후퇴하더니, 전의를 완전 상실한 체, 그대로 모두 달아나버렸다.
1940년도에 벌어진 정팔조직과 김두한조직의 한바탕 패싸움에서, 시라소니의 신출귀몰한 실력 덕분에, 정팔조직이 완벽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한반도의 대부분의 지역을 재패한 김두한은 마지막 남은 신의주를 점령하기 위해서 자신의 선별된 부하 40명을 신의주로 파견해서 패싸움을 벌였지만,
시라소니의 두둑한 배짱과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완전히 기가 죽은 그의 부하들은 수십명의 부상자만 발생시킨 체, 전원이 도망치듯이 서울로 쫒겨오고야 말았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김두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서 노발대발했다.
지방으로 진출했던 김두한부대는 이때까지 단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이 승승장구해왔다.
서울을 비롯해 수원, 인천, 대전, 대구, 목포, 광주, 부산지역까지 완전 점령하였고, 그뿐만 아니라, 북쪽의 개성과 원산, 평양까지 점령하면서 패배를 전혀 몰랐던 김두한부대는 완전히 연전연승해나가는 무적함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완전 승승장구하면서 한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해왔던 김두한부대가 저 국경의 조끄마한 도시 신의주에서 김경수와 털빠진 개고기라는 두 거물급 주먹들이 시라소니라고 하는 이상한 놈에게 덜미가 잡혀서 완전 개박살나고 말았다니, 김두한으로서는 참으로 믿기가 힘든 사실이 아닐 수가 없었다.
김경수 등 김두한부하들은 김두한에게 ‘그 시라소니라고 하는 놈은 어찌나 빠르고 센지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싸운 놈 중에서 이렇게까지 쎈 놈은 정말 처음 봅니다.’라고 말했다.
김두한의 경호책임자로 임명될 정도로 김두한조직에서 싸움실력을 인정받았던 김경수가 시라소니와의 맞대결에서 제대로된 공격도 해보지못하고 보기좋게 KO당하고 말았으니, 시라소니의 싸움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두한조직의 사실상 2인자였던 김병수와 돌격대장인 털빠진 개고기를 시라소니 혼자서 상대해서 그들 모두를 완벽하게 KO시켰다는 것 자체는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조선천하의 주먹계를 거의 대부분 점령하다시피한 김두한조직에게 다른 지역의 주먹패들은 대부분 복종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시라소니 만큼은 그들의 침투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맞서서 싸웠다는 것 자체가 시라소니가 얼마나 배짱이 쎄고, 강한 싸움꾼인지를 증명해주는 좋은 실례라고 하겠다.
여기서 참고로 시라소니의 키는 176cm이고, 김두한의 키도 176cm이어서 두사람이 키가 똑같다.
나이는 시라소니가 1916년생으로 1918년생인 김두한보다 2살이 더 많다. 1940년도 당시 김두한은 23인데 반해, 시라소니의 나이는 25살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김두한은 더 이상 부하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시라소니라는 놈을 직접 손보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신의주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김두한은 자동차 스프링을 갈아서 엄청 날카로운 칼을 만들었고, 그 칼을 가슴속에 넣어둔 체, 부하 수십명을 대동하고 열차를 타고서 시라소니를 요절내기 위해 직접 신의주로 찾아갔다.
김두한일행이 신의주에 도착해 시라소니의 행적을 알아보았지만, 그 당시 시라소니는 이미 신의주를 떠났고, 만주 봉천으로 가있었다.
시라소니가 만주 봉천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두한일행은 다시 열차를 타고서 봉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만주 봉천역에 도착한 김두한일행에게 갑자기 일본경찰들이 들이닥쳐 불심검문을 실시했고,
그 불신검문에서 김두한의 가슴속에 숨겨져있던 칼이 발각되었고, 그 때문에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만나보지도 못한 체, 그대로 경성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경성에서 일본경찰로부터 요주의인물로 낙인찍힌 김두한은 여행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열차에서 일본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김두한은 일본경찰에 의해서 곧바로 경성으로 압송되고 말았다.
일본경찰의 개입으로 인해서, 남한지역의 최고의 싸움꾼으로 군림했던 김두한 대 북한지역의 최고의 싸움꾼인 시라소니간의 조선 최고의 주먹자리를 놓고 일대일 맞승부를 벌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만일 이 때에 김두한이 일본경찰의 불신검문에 걸리지않고 봉천으로 시라소니를 찾아가서 시라소니와 실제로 맞대결을 벌였다면, 과연 누가 이길 수 있었을까?
이 당시 김두한이 경찰의 불신검문에만 걸리지 않았다면, 조선최고의 주먹자리를 놓고 만주에서 김두한과 시라소니간의 역사적인 맞대결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두사람의 대결이 일본경찰의 개입으로 인해 끝내 이뤄지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게 생각된다.
그런데, 김두한 대 시라소니의 대결은 이로부터 6년이 지난 1946년도에 서울 한복판인 우미관에서 또다시 벌어지게된다.
1946년 2월경, 서울 종로 우미관에 있는 종로회관에서 시라소니와 김두한은 마치 운명처럼 서로 조우하게 되었고, 또다시 두사람 간의 운명을 건 맞대결이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펼쳐지게된다.
◆ 서울 경성에서의 시라소니 대 김두한의 대결
신의주에서 활동하던 정팔이 공산당의 탄압을 이기지못하고 동생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왔고, 정팔은 명동의 중앙극장을 무대로 해서 조직활동을 전개해나갔다.
그런데, 명동의 또다른 세력인 이화룡일파에게서 힘과 위세에서 밀리면서 그 존재감이 쇠락해지게된 정팔의 중앙극장파는 자신들의 세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신의주에 있는 시라소니를 모셔올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황병관, 맨발의 대장 같은 거물급주먹들이 많이 포진하고있는 명동파가 정팔의 중앙극장파를 파워면에서 압도해나가자, 수세에 몰리게된 중앙극장파의 정팔은 힘의 균형을 이루기위해서 신의주로 특사를 급파해서 시라소니를 급하게 모셔오게 된 것이다.
경성으로 온 시라소니는 오자마자 ‘디금 서울에서 누가 제일 쎄디?’라고 일갈하면서 서울의 주먹세계의 일인자에 대한 자신의 지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또한 시라소니는 명동에서 활개치고 있던 이화룡파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서 일부러 이화룡의 본거지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당시 2인자 행세를 하고있던 맨발의 대장 이영순에게 일대일 맞대결을 신청했다.
맨발의 대장 이영순은 키가 190cm나 되고 발의 크기가 37cm나 되는 그야말로 엄청난 괴력을 갖춘 거인이었다.
싸움에서 발차기가 주특기인 맨발의 대장은 한 싸움에서 자신의 오른발로 상대방을 걷어찼고, 그 상대방이 쓰러지면서 뇌진탕을 일으켜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의 발차기 한방에 상대방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맨발의 대장은 그 이후부터는 싸울 때는 꼭 신발을 벗고 싸우는 버릇이 생겼다. 그만큼 맨발의 대장의 발차기킥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이화룡파의 본거지를 찾아간 시라소니는 대뜸 맨발의 대장에게 자신과 일대일 맞대결을 벌이자고 제안을 했다.
맨발의 대장이 흔쾌히 응하지않고 조금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자, 시라소니는 그에게 겁쟁이라고 놀리면서 약을 올렸다.
서로 10m를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시라소니 대 맨발의 대장, 그러자 시라소니는 ‘자 간다!’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4m를 달려나가면서 그대로 공중걸이 박치기로 맨발의 대장의 이마에 들이받아버렸다.
‘딱’ 하는 둔탁음과 함께 맨발의 대장의 ‘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쓰러지는 맨발의 대장의 가슴팍에 또다시 시라소니의 오른발 무릎찍기가 작렬했다.
시라소니는 불과 2초 사이에 공중걸이 박치기와 무릎찍기의 공격을 동시에 가했고, 이를 얻어맞은 맨발의 대장은 제대로된 공격 한번 못해보고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리고 말았다.
오른발킥 한방으로 상대방을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다는 맨발의 대장이 자신의 주특기인 킥을 전혀 사용해보지도 못한 체, 시라소니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박치기와 무릎찍기 연속공격을 받고 그냥 대자로 뻗어버리는 개망신을 당하고만 것이다.
뻗어버린 맨발의 대장은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한 체 혼절해 있었는데, 비로서 10분이 지난 후에 겨우 일어난 맨발의 대장에게 시라소니가 다가가서 ‘영순이, 고마워, 덕분에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내레 몸 한번 잘 풀었어, 내레 오늘 술한잔 사갔어!’라고 말했다.
시라소니가 이화룡파의 실력자 맨발의 대장을 KO시키면서, 명동에서 이화룡파와 정팔파간의 세력균형이 이뤄지게 되었고, 이화룡파는 더이상 정팔파를 무시할 수 없게되었다. 극적으로 이화룡파와 정팔파간의 화해모드가 형성되었다.
1946년의 어느날, 시라소니는 신의주출신의 고향친구이자 역도선수인 이영환과 함께 술을 마시러 우미관에 있는 종로회관으로 들어갔다.
시라소니가 서울에 온 후, 김두한의 아성이자 아지트인 우미관입구에 있는 종로회관을 방문한 것인데, 이것은 어찌보면 시라소니가 김두한의 나와바리를 침범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 당시는 주먹조직들간의 나와바리가 형성되어 있었고, 상대방의 나와바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지역 주먹조직의 사전허락을 받아야하는 시대였다.
시라소니가 사전허락도 전혀 없이 김두한의 본거지인 종로회관으로 들어간 것은 어찌보면 김두한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시라소니가 다른 장소도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김두한의 아지트인 종로회관을 찾아간 것을 두고, 시라소니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시라소니는 자신보다 쎄다는 사람이 있으면, 기어코 그를 찾아가 도전해서 반드시 꺾어버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다!
싸움에 있어서 자존심이 엄청 쎈 시라소니는 자신보다 더 강한 주먹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 스스로 그 강자를 찾아가 꺾어놓음으로써 스스로 일인지하(一人地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싸움꾼으로 남길 원했다.
이 당시 시라소니가 우미관의 종로회관에 들어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쫙 퍼졌고, 그 소식은 꼬붕들에 의해서 김두한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 당시 김두한은 서대문에서 지인들과 만나 술 한잔 걸치고난 후, 다시 우미관본거지로 돌아왔을 때였다.
우미관극장으로 들어간 김두한은 동생들에게 ‘어이, 오늘 종로회관에서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라고 말했고, 동생들은 ‘멀리 갈 것 없이 그냥 이곳에서 막걸리나 한잔 마시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두한은 다시 ‘아냐, 오늘을 그냥 종로회관에 가서 술마시고 싶어!’라고 동생들을 종용했고, 결국 김두한을 위시로 해서 신영균, 문영철, 김무옥, 김삼수, 홍만길, 종로꼬마, 털빠진 개고기, 김관철, 김경수 등 그의 동생들 10여명과 함께 종로회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두한일행이 종로회관으로 들어섰고, 김두한과 잘 알고지내던 역도선수 이영환은 김두한을 보고 인사를 나눴다.
두사람이 인사를 나누자, 이영환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시라소니가 김두한일행쪽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자, 김두한의 왼팔 김경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김두한에게 ‘형님, 저놈이 바로 시라소니예요!’라고 말했다.
과거 6년전, 김두한대원들을 이끌고 신의주까지 가서 직접 싸웠던 시라소니의 얼굴을 톡톡히 기억하고 있던 김경수가 그곳에 와있던 시라소니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해낸 것이다.
네놈이 감히 호랑이굴로 제발로 쳐들어와, 너 오늘 정말 잘 만났다!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줄 그리 알아!’라고 일갈했다.
사실 김두한은 이날 꼬붕의 보고를 통해 시라소니가 종로회관으로 들어온 것을 이미 알고있었고, 그래서 싸움 잘하는 중간보스급 동생 10명을 거느리고 종로회관에 들어온 것이다.
김두한은 시라소니에게 일갈을 퍼부어서 과거에 자신의 동생들을 두들겨팼던 그를 혼내주고 손을 봐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시라소니가 ‘네가 김두한이냐!’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김두한에게 ‘어라, 이게 서울인사법이라고 이거지, 내레 경성의 최고오야붕이 김두한이라는 얘긴 많이 들었디, 그런데, 님자가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 욕지거리를 하다니, 처음 신고식치고는 이거 좀 심하구만!’
내레 일전에 서울의 똘마니들이 신의주에 와서 하도 설치길래, 손 좀 봐준 것 뿐인데, 그것이 못마땅하다면 이거 잘 됐구먼, 우리 이렇게 만났으니 누가 더 쎈디 밖으로 나가서 한번 붙어보자우!’라고 말하면서 김두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라소니가 이렇게 도발적인 말을 하자, 김두한부하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부하들 중에서 김두한의 경호를 맡고있던 김관철이 시라소니를 향해 돌진했다.
덩치가 남산만 한 김관철은 시라소니를 향해 달려갔고, 솥뚜껑만한 오른쪽주먹을 시라소니의 턱을 향해 날렸다.
그러자, ‘퍽’하는 둔탁음이 울렸고, 그 이어 ‘윽!’하는 소리와 함께 김관철의 거구의 몸이 그래도 거꾸러지고 말았다.
분명히 주먹을 내뻗은 사람은 김관철인데, 오히려 대자로 뻗어버린 사람은 시라소니가 아닌 김관철이었다.
시라소니는 김관철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오는 김관철을 향해 공중으로 치솟으면서 박치기를 가했고, 박치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김관철의 옆구리에 그대로 무릎치기로 찍어버린 것이다.
시라소니의 연속공격을 받은 김관철은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시라소니의 공격에 키 185cm에 몸무게 120kg이나 되는 거구의 김관철이 쓰러지자, 김두한과 그의 동생들은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10여명의 김두한의 동생들은 시라소니를 한꺼번에 공격하기 위해 김두한의 그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시라소니와 김두한일행 간의 누가 먼저 공격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태가 잠시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김두한으로부터 뜻밖의 다음과 같은 말이 터져나왔다. 김두한은 갑자기 껄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시라소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으로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라소니란 사람이 우리구역에 들어왔다기에 어떤 사람인가 한번 보고싶어서 이렇게 나왔던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김두한은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인데, 우리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지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명동의 이화룡과도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있습니다. 저보다 연배이시니 앞으로 제가 형님으로 대우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시라소니에게 화해를 권했고, 시라소니도 흔쾌히 김두한의 화해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두사람은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그 날 종로회관에서 밤새도록 함께 술을 마시면서 함께 밤을 지세웠다.
이렇게 시라소니와의 대결을 펼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김두한은 싸움 대신 화해하는 쪽을 택했다. 김두한은 싸움도 잘하지만, 싸움 못지않게 두뇌회전과 상황판단이 무척 빠른 사람이다.
김두한은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활동하는 시라소니와 싸워서 이겨야 본전이고, 만일 진다면 오야붕자리를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마는 상황에서,
그를 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적당히 구슬려서 그와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욱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 그 결과 김두한은 시라소니와의 화해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때의 상황을 놓고 많은 호사가들은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비굴하게도 무릎을 꿇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자신의 경호원 김관철을 단 두방의 공격으로 KO시키는 장면을 본 후,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겁을 먹고 시라소니와의 맛대결을 회피한 것이라고 평가를 한다.
시라소니가 김두한의 나와바리 한복판에 들어가서 10명이 넘는 김두한일행과 당당하게 맞서면서 김두한으로 하여금 싸움을 회피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시라소니의 두둑한 배짱과 용력만큼은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아뭏튼 시라소니가 분명히 김두한에게 도전을 했고, 이 도전을 김두한이 회피했기 때문에, 비록 두사람이 싸우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승부는 낫다고 보며, 분명히 시라소니의 판정승이라고 본다.
만일 이때에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화해를 청하지않고 대결을 펼쳤다면, 과연 누가 이겼을 것인가?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만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일대일 맞대결을 펼쳤다면, 시라소니가 김두한을 KO시켰을 것이라고 본다.
김두한은 ‘잇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주먹 한방의 위력이 매우 대단한 사람이며, 발차기도 잘하는 싸움의 달인이다.
그런데, 김두한은 주로 일대일싸움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시라소니는 천진에서 카네미야일당과 40 대 1의 대결을 벌여서 이겼던 사람이다.
김두한이 비록 일대일싸움을 잘하는 싸움의 달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에서 보듯이 시라소니는 수십명과 대결을 펼쳐서 모두 물리쳤을 정도로 싸움기술에 있어서는 신과도 같은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고 엄청 빠른 사람이다.
만일 시라소니와 김두한이 일대일 맞대결을 펼쳤다면, 시라소니가 엄청 빠른 스피드를 이용
해서 쏜살같이 달려들어 공중걸이 박치기로 김두한을 KO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시라소니의 정광석화와도 같은 박치기공격에는 김두한의 강한 주먹도 무용지물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몸전체의 체중을 실어서 날아가서 받아버리는 공중걸이 박치기는 주먹 위력의 3배~5배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으며, 김두한이 내뻗는 주먹보다 시라소니의 박치기의 위력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만일 두사람이 실제 대결을 벌인다면 여지없이 시라소니의 KO승으로 끝이 난다고 본다.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두뇌회전이 빠른 김두한이 자신에게 도전의사를 피력한 시라소니에게 적당히 화해를 요청해서 그 위기를 피해나갔다고 본다.
한국 최고의 주먹황제라고 불리워졌던 김두한과 동양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명성을 떨쳤던 시라소니간의 맞대결이 벌어질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김두한의 석연치않은 기권으로 두사람간의 역사적인 맞대결이 이뤄지지않음으로써 진정한 한국 최고의 주먹을 가려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만일 이 때에 김두한과 시라소니간의 일대일 맞대결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정말 승자가 누가 되었을지 무척 궁금하기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