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미남배우 신성일의 영화와 사망, 사망이유, 애인 김영애와의 외도, 사진

 

신성일 - 193758(나이 83), 174cm

 

금세기 들어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에 가장 커다란 기여를 했던 미남배우는 신성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2018년도는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한 해가 아닐 수 없는데요.

우리나라의 영원한 청천스타이자 최고의 미남배우인 신성일이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지요.

 

2018114, 신성일은 전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 페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춘미남스타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폐암으로 사망해서, 수많은 올드팬들에게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답니다.

 

신성일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펴력했고, 방송에까지 출연해서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올드팬들은 그가 곧 폐암을 극복하고 쾌차할 것이라는 큰 기대감을 갖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방송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던 신성일이 며칠전에 갑자기 폐암이 악화되어서 응급실로 옮겨졌고, 114일 새벽에 응급치료를 받는 중 폐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신성일의 폐암사망 소식은 무척 이례적이고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신성일은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해왔고, 운동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지요.

 

오랫동안 건강관리를 잘 해왔던 신성일이 폐암진단을 받았을 때에, 본인 뿐만아니라 가족들까지도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평소에 아침마다 조깅을 해왔고, 헬스장에서 계속 몸을 단련시켜왔고, 음식도 철저히 가려서 먹는 등,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신성일은 20176월에 갑자기 심한 기침이 났고, 입에서 핏덩어리를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본 결과, 그는 폐암 3기의 진단을 받았다고 합 겁니다.

 

신성일은 이미 1982년도에 담배를 끊었고, 그 후 지금까지 36년동안 전혀 담배를 피지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신성일의 폐암진단은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뭏튼 폐암진단을 받은 신성일은 그 때부터 전라도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계속 항암치료를 받아왔던 겁니다.

 

폐암진단을 받았을 때에, 그의 막내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신성일은 딸에게 울지 말거라, 나는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3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렇게 살아남았다’ ‘나는 반드시 암을 극복해내는 기적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면서, 암극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말 병원에서 신성일은 폐암수술을 받았는데, 종양크기가 1/3로 작아지는 등 많이 호전되어서, 쾌차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호전될 기미를 보였는데도, 2018년도 들어서서 작아졌던 종양이 다시 크게 확대되면서 신성일의 건강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던 겁니다.

 

많은사람들은 담배를 끊고 오랫동안 흡연을 하지않고 살아왔던 신성일이 폐암에 걸린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는데요.

사실 신성일의 폐암에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신성일의 아버지가 폐질환으로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 신성일이 폐암으로 사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로부터의 유전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신성일은 폐암진단을 받았던 2017년부터 15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신성일은 엄앵란과의 사이에 12녀의 자녀를 두고 있고, 현재 세자녀 모두 결혼해서 일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성일의 장남인 강석현은 영화배우를 거쳐서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해서 지금은 제작자로 활발한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고, 신성일의 딸은 연예인 매니저일에 몰두하고 있답니다.

 

신성일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왕년의 대스타이자, 청춘스타였습니다.

 

신상옥감독이 스카웃한 신성일은 60~70년대에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한국 최고의 미남스타로 인기를 한몸에 받아왔고,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특히 신성일이 1964년도에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이 빅히트를 치면서, 허리우드의 제임스 딘처럼 반항아의 아이콘이자, 청춘스타로 우뚝 솟아오르면서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사실 신성일의 맨발의 청춘이전까지의 영화들은 가족영화, 전쟁영화 같은 고루한 내용의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신성일이 첫출연한 맨발의 청춘때부터 청춘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겼났고, 이후 신성일이 계속해서 출연한 청춘영화들은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신성일은 그 시대의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답니다.

 

신성일은 60년대에 신영균과 함께 가장 많은 작품에 출연해서, 우리영화산업의 중흥을 이끌어갔던 최고의 청춘스타였답니다.

 

60년도에 데뷔한 신성일은 80년대까지 로맨스빠빠’ ‘김약국의 딸들’ ‘청춘교실’ ‘사나이의 눈물’ ‘맨발의 청춘’ ‘겨울여자’ ‘별들의 고향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남겨놓았지요.

신성일이 일생동안 총 출연한 영화수는 무려 524편이나 된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출연이지요.

 

신성일은 인기절정의 시기인 1964년도에 배우 엄앵란과 위커힐에서 세기적인 결혼식을 올려서 화제가 되었고, 그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만 4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총 20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는데, 특히 64년도에 배신이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했을 때에,

두사람은 정열적인 키스씬을 찍으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된 두사람은 12녀의 자녀를 낳으면서 수십년 동안 부부로서 함께 살아왔답니다.

   

신성일의 외도, 애인 김영애와의 불륜스캔들

 

그런데 이러게 외형적으로는 부인 엄앵란과 잉꼬부부로 소문이 날 정도로 좋은 금슬을 자랑했던 신성일이 결혼생활 중 여러번에 걸쳐 외도를 했다고 알려져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성일은 자신이 쓴 자서전에서 외갓여성과 외도한 사실을 고백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신성일의 외도상대는 70년대 당시 잘 나갔던 유명아나운서였던 김영애였습니다.

 

신성일은 70년대의 미모와 지성을 갖춘 미녀아나운서 김영애와 수년간 연인관계로 유지해왔다고 고백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반대중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는데, 신성일과 엄앵란은 이미 78년도부터 별거를 해왔다고 합니다.

 

두사람은 이혼은 하지 않고, 별거를 해왔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은 신성일과 엄앵란이 금슬좋은 부부로만 인식해왔던 겁니다.

사실 두사람의 부부간의 사랑은 78년도에 끝났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며, 대외적인 체면 때문에 이혼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사람은 40년간을 따로 살아왔던 겁니다.

   

신성일이 인기절정의 시기에 부인 엄앵란 몰래 사귀었던 애인은 누구였을까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도상대 여성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는데요.

 

신성일 자서전에 따르면, 신성일이 70년대에 외도를 했떤 그의 애인은 명동의 볼링장에서 만난 미모의 아나운서출신 김영애라고 합니다.

 

신성일은 한창 연기활동을 하고있던 70년대에, 종종 동료연기자들과 명동의 볼링장을 찾아서 볼링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신성일과 볼링장에 함께 갔던 동료배우는 신영균과 남궁원, 윤일봉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었지요.

 

70년도의 어느날 신영균과 남궁원, 윤일봉, 신성일의 네명이 그 볼링장을 찾아서 볼링을 하고 있을 때에,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 그 볼링장으로 들어왔고, 신성일과 그녀는 눈이 마주쳤다고 합니다.

 

  70년대의 신성일과 애인 김영애 사진

 

그 여성은 70년대 잘 나갔던 동아방송의 미녀아나운서 김영애였으며, 신성일은 김영애의 미모에 홀딱 반했다고 합니다.

 

김영애는 원래 동아방송의 아나운서였는데, 그 당시는 휴직계를 내고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중에 있었고, 마침 그날 방학을 맞아서 서울로 들어와서 친구들과 볼링장을 찾은 겁니다.

 

당시 신성일은 영화 안팎에서 윤일봉과 경쟁을 하고있던 시절이라, 윤일봉이 먼저 선수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재빠르게 김영애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명함과 전화번호를 건내주었다고 하는데요,

 

신성일은 영화촬영 때문에, 그 다음날 부산에 내려가야되는 상황이었는데, 자신의 숙소가 되는 부산의 극동호탤의 주소를 김영애에게 알려주었고, 그곳에서 만나자고 데이트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거짓말처럼 김영애는 부산의 극동호텔방으로 신성일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신성일과 김영애는 연인관계가 되어서, 수시로 만남을 갖고 연애를 해왔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국내에서는 얼굴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국내보다는 주로 외국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국제영화제 참석한다는 핑계로 신성일은 김영애와 함께 미국이나 유럽에서 자주 만나서 밀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엄연히 부인 엄앵란이 있었는 유부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청춘스타로서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있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드높은 인기에 힘입어서 신성일은 김영애같 은 미녀아나운서와 외도를 즐길 수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 후 신성일은 애인 김영애와 한국과 외국을 오고가면서, 2년 동안 데이트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신성일과 김영애의 밀월관계는 몇 년만에 파탄이 나고야 맙니다.

두사람 관계가 파탄이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김영애의 임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느날 김영애의 전화를 받고 나간 신성일에게 김영애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통보했답니다.

임신사실을 전해들은 신성일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그 때부터 신성일은 김영애를 1년 동안 전혀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두사람의 만남이 끊어졌던 1년 후에, 신성일과 김영애는 다시 극적으로 재회를 했습니다.

 

1년만에 다시 만난 신성일과 김영애는 프랑스 파리로 마지막여행을 함께 했고, 그 여행은 두사람간의 이별여행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때 신성일을 다시 만난 김영애는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지, 머리를 빡빡 깎고 나왔다고 하네요.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등 유럽에서 한달동안 꿈같은 데이트여행을 즐긴 신성일과 김영애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완전 결별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그 후 한참 시간이 지난 1985년도에 신성일의 애인 김영애는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김영애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신성일은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내가 더 잘 해줄 걸 그랬다며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부인 엄앵란과 세명의 자식들이 있는 유부남인데도 불구하고, 신성일이 외도를 했다는 사실이 몹씨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신성일과 젊은 나이에 사망한 김영애의 사연이 조금은 슬프고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왜일까요?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500편이 넘는 영화들에 출연했던 신성일은 가히 우리영화사에 있어서 최고의 인기스타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영화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명배우임이 틀림없습니다.

 

 신성일은 우리나라 남자베우 중에서 524편이나 되는 가장 많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다작배우로 유명합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성일이 말년에는 별로 행복하지않은 여생을 산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신성일은 2000년대에 들어서서 정치에 입문해서, 국회의원 출마 3수를 거친 후인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서 거의 영화를 찍지않았던 신성일은 2013년도에 영화 야관문에 출연했는데, 당시 77세의 나이로 손녀뻘인 배슬기와 파격적인 배드씬을 벌여서 또다시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답니다.

 

영화 야관문에서 77세이 신성일과 28살의 배슬기는 49세의 나이차이를 뛰어넘는 매우 대담하고 뜨거운 배드신을 벌였답니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신성일은 더이상 영화를 찍지않았고, 그는 경상북도 영천에 성일가라는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자연속에 파묻혀서 오랫동안 전원생활을 즐겨왔습니다.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별거를 해온 상태라서, 오랫동안 경북 영천에서 혼자서 생활해왔답니다.

 

그런데 신성일은 2017년도에 폐암에 걸려 투병중인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서 큰 놀라움을 주었는데, 그 당시 신성일은 폐암 3기라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하며,

3기는 매우 심각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확률이 20~30%밖에 안되는 상황이었지요.

 

그리고 신성일은 폐암수술 등 항암치료를 받는 등 재활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지만, 결국 암을 극복하지 못한 체, 201811월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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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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