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라 카, 율 브린너 주연의 허리우드 뮤지컬영화 ‘왕과 나’ 줄거리, 율 브린너의 사망원인
1956년도에 제작된 유명한 허리우드 고전영화 ‘왕과 나’는 당대의 명배우 율 브린너와 데보라 카가 열연했던 흥미진진한 뮤지컬 영화이다.
18세기 중엽 태국의 시암왕국의 왕실을 배경으로 하는 허리우드영화로, 영화내용 자체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주인공으로 나온 율 브리너의 카리스마 넘치는 박력넘치는 연기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준다.
그리고 율 브린너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 데보라 카의 황홀한 아름다움과 명품 연기는 영화의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고 있다.
허리우드 고전영화 중에서도 최고로 품질이 높고 잘된 영화를 꼽으라면, 두 개를 꼽을 수가 있는데, 바로 ‘십계’와 ‘왕과 나’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허리우드 고전영화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동의하실 거라고 믿는다.
1956년 작품 ‘왕과 나’는 율 브린너가 실제로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아 순회공연을 해왔던 작품인데,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율 브린너가 더욱 실감나게 연기를 잘 소화해냄으로써, 영화의 재미와 품격을 한층 더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율 브린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솟아오르면서 50~60년대 수많은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그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간다.
특히 율 브린너의 트레이드마크인 빡빡 대머리는 바로 이 영화 ‘왕과 나’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이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율 브린너는 그때부터 계속 빡빡 대머리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왕과 나’의 품격와 재미를 올려놓아준 또 한명의 배우가 당대의 미녀스타 데보라 카이다.
청순하고도 우아한 매력의 소유자 데보라 카는 가정교사 안나 역할을 맡아 왕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과 왕실 예의범절문제로 보수적인 시암왕과 티격태격 충돌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서서히 키워나가는 로멘틱한 구도가 재미있고 상큼하게 그려지고 있다.
겉으로는 매우 엄격하고 고집쎈 태국의 왕이지만, 근대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시암왕(율 브린너)에게 서서히 매료되어가는 영국의 우아한 미망인 데보라 카의 명품연기가 한층 돗보이는 흥미진진한 영화이다.
미국 허리우드 영화계에서 당대 최고의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기의 달인 율 브린너의 카리스마 넘치는 영화가 바로 ‘왕과 나’이면서,
허리우드에서 가장 고전적인 미인으로 알려진 데보라 카의 우아한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영화 또한 ‘왕과 나’이다.
1940~60년대 최고의 기품있는 우아한 배우로 손꼽혔던 데보라 카는 원래 영국 스코틀랜드출신의 여배우다.
영국에서 연극과 영화에 번갈아가면서 출연하면서 우수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데보라 카는 ‘흑수선’에서 청순하고도 기품있는 수녀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 ‘흑수선’의 히트로 데보라 커는 단번에 헐리우드로부터 초청장을 받고, 허리우드의 MSM영화사에 영입되어 수많은 명작들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과 우아한 미모를 발산하면서 허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다.
데보라 카는 허리우드로 이적해서 훌륭한 명작품들에 여러편 출연했는데, ‘퀴바디스’ ‘왕과 나’ ‘여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어페어 투 리멤버’ 등 당대의 손꼽히는 걸작품에 출연해서 큰 명성과 인기를 얻게된다.
데보라 카는 영화에서 고상하고, 기품있는 정숙한 귀부인의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나중에 데보라 카는 자신의 역할이 너무 고고한 스타일로 정형화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데보라 카의 미모가 위낙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고품격의 우아한 미모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녀의 이미지가 귀부인스타일로 고착화되던 중, 데보라 카는 1953년 ‘지상에서 영원으로’란 영화에 출연해,
바람난 유부녀 역할을 맡아 버트 랑카스타와 해변에서의 파격적인 키스씬을 벌여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해주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요염하면서도 대담한 러브신연기는 데보라 카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연기변신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매우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데보라 카는 위에서 열거했듯이 허리우드 역사상 길이남을 만한 수많은 걸작품들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카데미상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불운한 여배우였다.
물론 그녀가 아카데미상에 6번이나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정작 상은 한번도 타내지못했다.
그런데 1994년도에 미국영화협회에서 ‘흠잡을 데 없는 우아함과 아름다움, 완벽한 연기로 영화에 기여한 데보라 카’라고 그녀를 칭송하면서, 뒤늦게 ‘오스카공로상’을 수여함으로써, 데보라 카의 오랜 염원과 한을 풀어주었다.
사실 데보라 카는 우아한 미모와 더불어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혀리우드의 몇 안되는 훌륭한 여배우인데,
그녀가 왜 젊은 시절에 아카데미상을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는지가 큰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데보라 카는 두 번째 남편인 피터 비에텔과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킨슨병으로 2007년 10월16일에 잉글랜드 서포크에 있는 자택에서 8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가 사망했을 때, 영국의 BBC방송국은 영국의 가장 성공적인 수출품이자 영국의 아름다운 장미가 졌다고 전하면서, 깊은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율 브린너는 60~70년대에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야성미가 넘치는 박력있는 연기력으로 전세계에 수많은 팬덤을 보유했던 허리우드의 전설적인 명배우이다.
빡빡머리와 날카롭게 노려보는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눈매를 간직한 율 브린너는 '왕과 나' '십계' '솔로몬과 시바여왕' '황야의 7인' ‘아나스타샤’ 등 굵직굵직한 걸작품들에 출연해서,
명품연기를 선보여주었던 허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연기자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율 브린너가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국적인 마스크로 유명했는데, 그의 혈통에는 몽골리안이 섞여있다고 하는 점이다.
즉, 그의 할아버지는 러시아계였고, 그의 친할머니는 몽골계인 브리야트인이라고 하며, 따라서 그는 어렸을 적에 만주에 살면서 ‘타이제 칸’이라는 몽골식 예명을 쓰기도 했다.
율 브린너는 블라드보스토크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부친이 만주와 한국을 오가면서 벌목사업을 했기 때문에, 율 브린너는 유년시절 한 때 한국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율 브린너가 만년에 한국과 아시아를 많이 그리워했었다고 그의 아들 록 브린너가 전하기도 했다.
율 브린너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4개국어에 능통한 매우 다재다능한 재능을 지닌 배우로, 13세 때부터 프랑스 파리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고, 한 때는 서커스단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서커스묘기를 부리다 떨어져 부상을 입은 것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무대에 진출하면서 연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국적인 마스크를 가졌다는 이유로 뮤지컬 ‘왕과 나’의 태국왕으로 전격 캐스팅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명배우로의 길을 걷게 된다.
율 브린너는 1985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원인은 폐암때문이라고 한다.
율 브린너는 매일같이 담배를 하루 1~2갑씩 피우는 대단한 꼴초였고, 주변사람들이 그의 흡연을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담배를 피웠다.
결국 그는 폐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 그 때부터 금연을 했지만,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폐암으로 인해 65세로 사망했다.
◆ 왕과 나의 줄거리 내용
18세기 중반 인도차이나반도의 시암왕국(지금의 태국)의 몽쿠트왕은 영어와 라틴어 능통한 왕으로 자신이 다스리는 시암왕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영국과 ‘보링조약’을 체결하고,
자유무역을 허용하고 자발적으로 서방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는 개혁조치를 단행하는 매우 합리적이고 영특한 왕이다.
시암왕은 외세의 힘에 무조건 굴복하여 경제권을 상실당한 다른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왕국의 주권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발적으로 개방 및 개혁정책을 추구하면서 시암왕국의 근대화를 주도해나가게 된다.
시암왕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영국출신의 미망인 데보라 카를 가정교사로 영입해서 왕실에서 함께 기거하도록 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게된다.
자유분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영국여인과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엄격한 시암왕 율 브린너는
자녀들에 대한 예절교육과 왕실전통을 놓고, 서로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불타오르는 걸 느낀다.
겉으로는 퉁명스럽고 귄위주의 적이지만, 부드럽고 깊은 속마음을 지닌 시암왕에게 서서히 매료되어가는 데보라 카와 그녀의 우아한 미모에 역시 빠져가는 시암왕은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묘한 사랑의 마법에 빠지게 된다.
사랑은 국경과 지위를 초월한다는 명언이 실감나는 영화인데, 문제는 두사람이 사랑의 묘약에 빠져갈 무렵 결국 사소한 오해가 발생하게 되고, 우아한 영국미망인 데보라 카는 시암왕을 떠나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안타깝게도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는 영화다.
결국 한 왕국의 통치자로서 시암왕은 사랑보다는 자신의 조국과 전통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고, 영국미망인은 관습과 관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떠나가게 된다는 다소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코미디요소와 오페라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이다.
영화 ‘왕과 나’는 영국미망인 안나가 저술한 자서전을 각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화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여인 안나가 태국의 시암왕국을 방문해서 실제로 실존인물인 차크리 왕조 4대 국왕인 몽쿠트 왕(1804~1868)과 겪었던 사실을 영국으로 돌아와서 저술한 자서전이 바로 영화 ‘왕과 나’의 시나리오가 됐다.
당시 안나가 자서전을 소개했을 때, 태국 시암왕국에서는 안나와 몽구트왕의 로멘스를 전면 부정했다고 한다.
태국의 근대화를 이끈 위대한 개혁군주인 몽구트왕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지, 아니면 안나의 자서전에 허구가 가미되었는지는 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뭏튼 역사상으로 실존했던 태국국왕과 영국인 가정교사 간의 로멘스라는 주제 자체가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시키에 충분한 만큼,
이것이 연극으로 먼저 만들져서 큰 반향과 인기를 끌면서, 56년도에는 영화로제작되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고, 허리우드 고전영화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걸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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