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칭, 강대위, 적룡 주연의 홍콩(중국)무협영화 ‘보표’의 내용과 줄거리, 60년대 고전 중국검객무협영화 걸작선 추천

 

오늘은 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홍콩무협영화 ‘보표’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영화 ‘보표’는 60~70년대에 홍콩에서 맹활약했던 무협배우 강대위와 적룡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전형적인 검객무협영화입니다.

그리고 60~70년대에 한국 등 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홍콩최고의 미녀스타 리칭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입니다.

 

영화 ‘보표’는 당시 홍콩의 쇼브라더스사에서 가장 촉망받던 감독인 장철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아시아 최대자본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에서 만든 정통무협영화입니다.

 

영화 ‘보표’는 보물을 운송하는 표국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보물을 강탈하려는 악당들과 그 보물을 지키려고 하는 협객들간의 싸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주 흥미진진한 중국무협영화이지요.

 

영화 ‘보표’는 강대위와 적룡, 그리고 리칭이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때론 서로 사랑하고 때론 서로 질투하면서 이렇게 삼각관계를 맺는 남녀주인공 3인이 서로 사랑의 줄다리기를 펴는 동시에 보물을 강탈하려는 악당들과 대혈전을 벌이는 아주 리얼하고 실감나는 정통무협영화입니다.

 

이 중국무협영화 ‘보표’는 1969년도에 제작되어 홍콩등 동남아시아에 상영되면서 엄청난 인기와 흥행성공을 거두었던 홍콩무협영화 가운데서도 아주 보기드문 역작이자, 걸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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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표’에서는 ‘강대위’라는 새로운 신진무협스타가 새롭게 출연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무명배우였던 ‘강대위’는 이 영화 ‘보표’에서 맹활약을 펼치면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무협톱스타로 발돋움했던 불세출의 남자무협배우입니다.

 

60년대 후반 홍콩 최대자본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사’는 당시 한창 최고의 인기스타로 주가를 높여가던 배우 왕우와 개런티문제로 심한 갈등이 생기면서 왕우가 쇼브라더스사를 떠날 기미를 보이자, 왕우를 대체할 수 있는 차기 남자주연배우감을 물색했는데,

그 때 쇼브라더스 제작진의 눈에 들어왔던 배우가 준수한 외모와 날렵한 몸매를 갖고있던 호남형 남자배우 강대위였습니다.

 

왕우가 떠나고난 후, 그 빈자리를 채우기위해서 신진배우 강대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촬영을 강행해서 만든 영화 ‘보표’가 개봉된 후, 예상외로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강대위는 일약 톱스타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즉, 영화 ‘보표’는 신진 호남아 강대위와 또다른 신인배우 쾌남아 적룡,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미녀스타 리칭, 이렇게 3대 톱스타가 출연해서 야심차게 만든 정통무협영화로, 당시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끌면서 홍콩영화계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자리매김했던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 ‘스잔나’의 개봉으로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면서 한창 인기절정의 물이 오를대로 오른 청순미인 리칭이 함께 출연함으로써, 화려한 무협액션에 달콤한 로맨스를 가미해서 완성도 높은 무협걸작품 ‘보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보표’는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아시아에서 홍콩무협영화가 크게 인기를 구가하던 무협영화의 전성기시대에 만들어진 쇼브라더스사의 야심작으로, 흥행에도 크게 성공한 당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그리고 ‘보표’를 홍콩무협영화의 3대 걸작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화 ‘보표’는 쇼브라더스사의 완성도 높은 대표적인 걸작품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보표’는 잘 짜여진 스토리구성과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화려한 검술액션, 스릴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상황, 그리고 스팩터클하고 눈부실 정도로 현란하면서도 멋진 배경등이 잘 꾸며져있어,

영화 ‘보표’는 70년대 전후에 만들어진 무협영화 중에서도 최상급 레벨에 속하는 뛰어난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작품입니다.

 

더욱이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아 실험적으로 투입된 강대위와 쾌남배우 적룡이 리칭을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등 연애의 갈등구조를 형성하면서 보여주는 사랑과 애증, 질투와 경쟁의 상황들이 정통무협영화에서 결여되기 쉬운 인간미와 로맨스를 적절히 잘 안배함으로써, 무협액션과 로맨스가 양립하면서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 보기드문 로맨스 무협액션영화의 걸작품이랍니다.

 

영화 ‘보표’를 통해서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발탁된 신예배우 강대위는 고독한 검객의 이미지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연기를 선보여주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었고,

명감독 장철은 냉혹하고 처절한 무협액션을 실감나게 연출함으로써, 영화 ‘외팔이검객’ 이후 또하나의 장철표 걸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보표’의 성공으로 신인배우였던 ‘강대위’와 적룡은 단번에스타덤에 올랐고, 이 후 두사람은 ‘신외팔이검객’ ‘자마’ ‘13인의 무사’ 등 여러편의 홍콩무협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맹활약하게 됩니다.

 

영화 ‘보표’에서는 두 강력한 스타 강대위와 적룡 사이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리칭이 있었는데, 리칭은 영화 ‘스잔나’의 대성공으로 이미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인기스타였습니다.

 

리칭은 영화 ‘보표’에서 가녀린 심성을 지닌 청순한 여인인데, 그녀는 무적장의 우두머리 은장주의 외동딸로서, 젊은 무사 적룡의 애인이자, 약혼녀였지요.

 

그런데, 리칭은 어느날 떠돌이검객 강대위를 우연히 목격하고난 후, 그에게 흠뻑 빠져들어서 그를 자신의 표국으로 끌어들였고,

이후 리칭은 자신의 약혼자 적룡과 강대위 사이를 오고가면서 위험한 사랑의 줄타기를 하면서 곡예와도 같은 사랑의 삼각관계를 형성해나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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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칭은 약혼자 적룡보다는 외로운 떠돌이검객 강대위를 더욱더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되었는데, 이를 눈치 챈 약혼자 적룡이 강대위에게 대결을 신청하여 두사람간의 결투가 벌어지게 만든 위험한 여인이자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아뭏튼 리칭은 자신과 약혼한 적룡보다 남에게 굴복하지않는 꼿꼿한 성격의 고독한 협객 강대위에게 마음을 뻬앗기고 그에 대한 연정을 품게되었는데, 강대위가 무적장의 우두머리 은장주가 보물을 운반하는 도중 악당들을 만나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의 목숨을 구해주고 대신 악당들과 싸우다고 장렬하게 전사하자, 그의 시신을 감싸안고 대성통곡하게 됩니다.

 

1969년도의 중국무협영화 ‘보표’는 강대위의 화려하고 멋진 검술액션과 리칭의 요염하면서도 청순한 미모가 어우려져 멋진 대스팩터클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진진한 홍콩무협영화입니다.

 

또한 강대위, 적룡, 리칭의 삼각관계에서 뿜어져나오는 사랑과 애증, 질투의 러브스토리도 꽤 볼만한 영화입니다.

 

60년대의 홍콩무협영화 ‘보표’는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팬분들이라면, 꼭 반드시 보아야할 무협영화의 걸작품으로서 강력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강대위는 1947년생으로 유명한 배우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에 아역배우로 활동하다가 1969년도에 영화 ‘사각’과 ‘보표’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강대위는 배우였던 형 친페이가 무술감독에게 추천해서 무명배우로 활동하다가, 나열이 주인공으로 출현한 영화 ‘철수무정’에 조연급으로 출연하면서 얼굴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강대위는 1969년도에 영화 ‘보표’에 주연으로 출연해 열연을 펼치면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쇼브라더스사의 간판배우로 부상했고, 그 후 홍콩에서 수많은 무협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게됩니다.

 

그리고 강대위는 1970년도에는 영화 ‘복수’에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강대위는 1974년도에는 영화 ‘흡독자’로 감독으로 데뷔를 했고, 그 후 ‘신독비도’ ‘권격’ ‘대결투’ ‘13인의 무사’ ‘흑객’ 등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연기와 감독을 넘나들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습니다.

 

- 보표의 줄거리 -

 

‘보표’의 줄거리는 국가의 보물 운송을 책임진 무적장 일당과 이 보물을 탈취하려는 악당 비호채의 채주 초굉 일당간에 벌어지는 대결을 내용으로 하고있습니다.

 

무적장의 장주 은장주는 원래 무술고수였으나, 최근에 심한 부상을 당해서 무공을 잃어버린 상태였는데, 조정으로부터 은자 20만냥을 낙양까지 운송해달라는 지시를 받게되어 큰 고민에 빠집니다.

 

결국 자신의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은자 20만냥 운송작업을 받아들이게됩니다.

그런데, 비호채의 두목 초굉은 이 사실을 알고서 보물 탈취계획을 세웠고, 은장주일행이 지나가는 길목인 고탑 근처에 수많은 부하들을 매복시켜서 은자 운송대를 습격할 채비를 갖춥니다.

 

한편 자신의 부상으로 은자 운송작업에 차질을 빚게되자, 은장주는 자신의 딸 운표표(리칭)과 그녀의 약혼남인 젊은 무사 항현(적룡)을 운송대에 전격 투입하게됩니다.

 

이때 떠돌이검객 낙의(강대위)가 무적장에 찾아와서 하룻밤 묶을 잠자리와 한끼 식사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무적장에서는 떠돌이검객 낙의(강대위)를 비호채에서 보낸 끄나풀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고, 그를 무적장에서 쫒아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떠돌이검객 낙의(강대위)를 처음 본 은장주의 딸 리칭은 자신도 모르게 낙의에게 연정을 품게되었고, 낙의를 설득해서 은자 운송대에 합류하게 만든답니다.

 

결국, 운표표와 약혼남 적룡, 떠돌이검객 낙의(강대위)를 스카우트한 무적장의 은장주일행은 보물 운송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물 운송대가 고탑을 지나갈 무렵, 갑자기 비호채의 악당들이 운송대를 습격했고, 보물을 빼앗으려는 일당과 보물을 지키려는 일당간에 목숨을 건 한판 대혈투가 벌어지게됩니다.

 

이 때 떠돌이검객 낙의(강대위)는 운송대를 도와 비호채의 악당들과 치열한 결투를 벌이면서 악당들을 하나둘씩 통쾌하게 물리칩니다.

 

그런데, 영화 ‘보표’는 마지막장면이 명장면입니다.

떠돌이검객 낙의는 들판에서 악당들을 전부 다 물리치면서, 은장주와 딸을 구출해냈습니다.

 

그런데, 고탑 안에는 아직도 비호채의 초굉 일당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고탑 안에는 리칭의 약혼자 적룡이 혼자서 초굉일당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떠돌이검객 낙의가 고탑 안에 들어가면, 그곳에 숨어있는 수십명의 초굉 부하들과 싸워야하고, 어쩌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전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떠돌이검객 낙의가 리칭의 약혼자 항현(적룡)을 구출해주기 위해서 굳이 수십명의 초굉 부하들이 잠복해있는 고탑안으로 혼자서 들어가서 싸워야할지 망설였고, 그는 자신이 고탑안에서 적들과 싸우다 죽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떠돌이검객 낙의는 리칭의 요청을 받고 수십명의 초굉 부하들이 잠복해있는 고탑안으로 혼자서 들어갔습니다.

 

떠돌이검객 낙의(강대위)가 고탑으로 올라가면서 악당들과 처절한 혈투를 벌여서 거의다 물리쳤지만, 마지막 상황에서 몰래 매복해 있던 적병들이 쏜 화살 세대를 맞고 결국 그는 목숨을 잃게됩니다.

 

결국, 보물 운송대는 도적패들을 모두 물리치면서 무사히 보물을 지킬 수 있었지만, 도적패들을 물리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낙의(강대위)가 고탑안에서 악당들과의 마지막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게됩니다.

 

즉, 낙의는 자신의 연적인 리칭의 약혼남인 항현(적룡)을 구하기 위해서 고탑안으로 들어가서 혈투를 벌이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고말았습니다.

 

즉, 강대위는 리칭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던 자신의 연적 적룡을 구해주고, 자신은 죽고맙니다.

 

떠돌이검객 낙의가 7층고탑에서 벌이는 악당들과의 대결장면을 정말 일품입니다.

낙의가 7층고탑을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그곳에 숨어있는 악당들과 벌어지는 혈투장면은 스릴 만점이며,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정말 대단한 명장면이며, 무척 감동적입니다.

 

무협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무협팬분들은 ‘보표’의 7층고탑에서 벌어지는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반드시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영화 ‘보표’에서 60, 70년대의 중국무협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60,70년대  홍콩의 최고의 미녀스타 리칭

 

오늘은 1969년도에 제작된 리칭, 강대위, 적룡 주연의 홍콩 로맨스무협영화 ‘보표’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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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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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로례 주연의 중국무협영화 옥중도의 내용과 줄거리, 70년대 고전 홍콩무협영화

 

영화 ‘옥중도’는 71년도에 개봉한 대표적인 홍콩무협영화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던 70년대 당시 우리 대중들의 유일한 오락거리는 단연 영화였습니다.

 

특히 70년대에는 홍콩무협영화들이 물밑듯이 밀려들어오면서 큰 인기를 끌면서 커다란 붐을 형성하던 시기였습니다.

홍콩무협영화나 쿵푸영화들이 물밑듯이 밀려오면서 50~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전국의 개봉관들을 점령하다시피 했습니다.

 

왕우의 외팔이검객으로 촉발된 홍콩무협영화의 열풍은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갔고, 71년도에 ‘옥중도’를 비롯해 ‘스잔나’ ‘아랑곡의 혈투’ 등의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한국영화계의 붐을 주도해나갔습니다.

 

70년대는 홍콩무협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했던 홍콩영화의 전성기시대였습니다.

그 와중에 71년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영화 ‘옥중도’는 대단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홍콩무협영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70년대 중국무협영화 ‘옥중도’는 당시 홍콩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인 시사가 여주인공역을 맡았고, 당시 홍콩의 대표적인 무협배우 나열이 남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친 영화입니다.

 

당시 무협영화의 히어로인 나열은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선보여서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고, 매력적인 청순미인 시사는 섬세하고도 열정적인 연기액션을 펼쳐서 남성관객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당시 여주인공 시사는 송나라의 재건을 위해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펼치는 여전사 바이 야르역을 맡아서 열연을 펼쳤는데요.

여주인공 시사는 깜찍하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듬뿍 발산하면서, 깜찍발랄한 연기를 펼쳐서 영화를 보는 재미와 흥미를 크게 배가시켰구요.

 

로례라고도 불리워졌던 남주인공 나열은 떠돌이무사역을 맡아서 시사를 따라다니면서 송나라의 복원을 위한 독립운동을 뒤에서 도와주는 해결사역할을 맡으면서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선보이면서,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여주인공 시사는 어려서부터 무용과 발레를 배워서 몸이 매우 유연하고 무협영화에서 필요한 발차기 등 무술액션을 잘 소화할 능력을 갖추고있어서 무술액션을 멋지게 펼칠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시사는 그당시 무협영화의 여검객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여검객 1호 정패패의 뒤를 이을 제2세대 여검객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습니다.

 

정패패는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많은 홍콩무협영화에 출연해서 여검객으로 분해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펼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죠,

 

하지만 정패패가 70년대 전반 결혼을 하면서 영화계를 떠나자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여검객을 필요로 했는데, 그 때 나타난 여배우가 바로 시사였습니다.

 

시사는 대만출신의 여배우로 어려서부터 무용과 발레를 배워서 몸이 탄탄하면서도 매우 유연했기 때문에 정패패의 뒤를 이어서 무협영화의 여검객으로 활동하기에 매우 적합했던 여배우였습니다.

시사는 1953년생으로 71년도 영화 ‘옥중도’를 찍을 당시에 고작 19세의 앳된 미소녀시절인데도 불구하고, 비중높은 여검객 역할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펼쳤습니다.

 

홍콩 쇼브라더스의 감독들은 정패패의 뒤를 이을 여검객으로 시사를 전격 발탁했고, 십대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여러편의 무협영화에 출연시켜서 멋진 검술액션을 펼치도록 했습니다.

 

여배우 시사는 감독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70년대에 ‘혈부문’ ‘종규낭자’ ‘옥중도’ ‘흑점’ ‘여포쾌’ ‘생사투’ 등의 여러편의 무협영화에 출연해서 멋진 활약을 펼치면서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은 시사를 ‘제2의 정패패’ ‘여검객 2호’라고들 불렀습니다.

 

시사는 1979년 이후 자유계약배우로 자유의 몸이 되자, 고국인 대만으로 돌아와 83년도부터 ‘애지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85년도에는 ‘비연경룡’이라는 시리즈물에 출연했는데, 이 시리즈물에서 시사는 여주인공역을 맡아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귀염성 있는 매력적인 얼굴에 깜찍발랄하게 생긴 용모를 지닌 시사는 무협영화에서 절도있고 화려한 검술액션 등 남성들 못지않은 엄청난 스케일의 고난도 액션연기를 펼쳐서, 당시 한국남성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습니다.

 

저렇게 연악하고 여성스럽게 생긴 여배우가 어떻게 저렇게 엄청난 고난도의 무술액션을 펼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매우 고난도의 절도있는 액션연기를 펼침으로써, 무협영화의 흥미를 더욱 배가시켰던 여배우가 바로 시사였지요.

 

한편으로는 여성스럽고 깜찍한 연기를, 다른 한편으로는 악당들을 때려부수는 여검객의 무자비한 액션연기를 펼치는 냉혹한 여전사의 연기를 펼친 시사는 ‘옥중도’에서 팔방미인의 면모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남성관객들로부터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옥중도’에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한 나열 또한 영화에서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선보여서 영화의 흥미를 배가시켰습니다.

 

다른이름으로 ‘로례’라고도 불리웠던 나열은 60~70년대에 홍콩무협영화를 이끌어나갔던 전설적인 인기배우이지요.

나열은 ‘철수무정’ ‘아랑곡의 혈투’ ‘옥중도’ ‘여포쾌’ 등 많은 무협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악당들을 쳐부수는 정의의 검객역할을 맡으면서 한국팬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명배우이지요.

 

‘옥중도’에서 나열은 송나라의 재건에는 관심이 없는 한량이자 떠돌이 바랑둥이무사로 나오는데, 그는 비범한 무예를 갖춘 뛰어난 무사입니다.

 

나열은 우연히 마주친 시사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송나라의 복원을 위해서 목숨 바쳐서 독립운동을 펼치는 여러 송나라 지사들의 절개 높은 저항운동에 감명 받아서, 자신도 독립저항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정의로운 검객역할을 하게 된답니다.

 

특히 나열은 마지막장면에서 사랑하는 여인 시사를 위해 감옥의 육중한 철문에 깔려죽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될 정도로 대단한 로맨티스트로 열연합니다.

 

‘옥중도’는 말괄량이 여동생처럼 생긴 시사가 송나라의 복원을 위해서 절도 높고 멋지고 화려한 검술액션을 펼치는 재미있는 70년대판 고전무협영화입니다.

 

중국무협영화 ‘옥중도’는 나열과 시사가 각각 남녀주인공을 맡았으며, 구문종과 방면, 당적 등 홍콩의 관록파배우들이 출연했을 뿐만아니라, 한국배우 김기주가 일인이역을 맡아 원나라의 대원사로 등장해서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쳤고 한국배우 진봉진도 함께 출연해 열띤 연기를 펼진 한홍 위장합작영화입니다.

 

여주인공 시사는 88년도에 대만투자회사 흥원그룹의 대표 심장성과 결혼하면서 영화계에서 은퇴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사는 결혼한 지 2년도 채 안된 1989년도 12월에 성격차이로 남편과 이혼한 후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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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시사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불행한 결혼생활이었으며, 남편과 헤어진 후에는 다시는 전남편을 보지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연예계를 떠난 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시사는 그 후 불교강연을 다니면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홀어머니밑에서 자란 시사는 현재도 90이 넘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의지하면서 함께 살고있습니다.

 

 

- 옥중도의 줄거리 -

 

‘옥중도’는 몽골족의 공격에 의해 송나라가 멸명했을 당시, 멸망한 송나라를 복원할 계획을 가진 송나라 지사들의 독립저항운동을 그린 영화입니다.

 

때는 1279년 송나라가 몽골족의 원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으로 원나라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송나라의 애국지사들은 서로 비밀리에 모여서 국가재건을 위한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송나라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문승상이 포로로 잡혀서 감옥에 투옥되자, 리우산과 송나라의 왕자 루씨푸, 그의 동생 루야푸를 중심으로 하는 여주인공 바이 야르 등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투옥된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해서 결사대를 결성하게 됩니다.

 

산속의 오솔길에서 낮잠을 자고있던 나열은 묘령의 아름다운 여인 시사를 발견하고 그녀의 미모에 홀딱 반했는데, 그 때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못된 네명의 몽골족병사들이 그녀를 욕보이게 위해 쫒아가자, 자신이 갖고있는 도끼를 휘둘러 이들 몽골족병사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그녀를 구해줍니다.

 

이렇게 나열의 무예로 자신을 욕보이려는 네명의 병사들을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사는 전혀 나열(르 허루)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냥 제갈길을 가고맙니다.

이에 격분한 나열은 이 때부터 시사의 뒷꽁무니를 졸졸 쫒아다니게 되는데요.

 

나열이 그녀의 뒤를 쫒아가본 결과, 시사는 송나라의 복원을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비밀저항단체의 한 단원임을 알게됩니다.

 

이 비밀저항단체는 감옥에 투옥된 송나라의 정신적 지주인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있었고, 실제로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한 비밀결사대를 꾸몄고 거기에 시사가 단원으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시사가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한 비밀결사대의 단원으로 활동가자, 나열은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서 자진해서 그 비밀결사대에 들어가 활동하게 됩니다.

 

비밀결사대가 감옥에 갇힌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비밀결사대는 일부러 몽골여인들을 능욕하는 흉내를 내서, 스스로 감옥에 끌려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나열도 몽골호위대장과 시비가 붙어서 감옥에 끌려들어갑니다.

 

또다시 나열과 시사가 감옥에서 만났습니다. 시사는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해서 스스로 감옥에 들어왔고, 나열은 몽골호위대장과의 시비 때문에 감옥에 끌려들어왔습니다.

 

나열은 사랑하는 여인 시사와 감옥에서 만난 것에 오히려 행복해했고, 그녀의 문승상 구출작전을 적극 도와주기로 마음먹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비밀결사대는 간수를 매수해서 열쇠를 획득한 후 옥문을 풀고 밖으로 빠져나와서,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해 몽골족병사들과 치열한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비밀결사대가 몽골족병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문승상을 구출해냈지만, 구출된 문승상을 가짜였습니다.

비밀결사대가 문승상을 구출해낼 것을 미리 예측한 몽골측에서 문승상을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비밀결사대는 감옥에서 몽골군에게 포위된 체,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시사도 몽골군간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다리에 칼을 맞는 부상을 당하는데요.

이때 나열이 나타나서 그녀를 등에 업고 몽골군들을 물리치면서 그 현장을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붙잡혔다가 풀려난 루대협이 문승상의 새로운 거처를 알아냈습니다. 몽골측은 문승상을 몽골군수장 대원사 장군의 집에 가둬뒀습니다.

 

그래서 송나라 저항단체는 새롭게 문승상 구출 비밀결사대를 다시 구성해서, 문승상을 구출해내기 위해서 대원사장군의 집으로 쳐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몽골측의 계략이고 함정이었습니다. 몽골측은 일부러 문승상 거처정보를 흘려보내어서 이곳으로 저항단체가 들어오도록 유인한 다음, 그곳에 몽골군을 매복시켜서 송나라 저항단체를 한꺼번에 몰살시킬 계획을 갖고있었습니다.

 

송나라 비밀결사대가 힘들여서 대원사장군의 집으로 침투해 들어갔을 때, 그곳에 이미 기다리고있던 수많은 몽골군대에 포위되어 양측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소수의 비밀결사대와 몽골군 대군과의 목숨을 건 한판 결투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대원사 장군은 비밀결사대에 항복을 하면 살려주겠다고 투항을 권유하지만, 비밀결사대는 항복을 하지않고 끝까지 맞서 싸워나갑니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나열의 눈부신 맹활약으로 비밀결사대는 간신히 그 집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저항단체는 문승상이 다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정보를 알게됩니다.

비밀결사대는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몽골의 감옥으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웁니다.

 

비밀결사대는 몰공군으로 변장을 한 체 다시 감옥으로 침투해 들어갔고, 감옥에 갇힌 문승상을 풀어주려고 하다가 송나라 비밀결사대인 것이 들통이 났고, 다시 비밀결사대와 몽골군간에 치열한 결투가 벌어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사는 그곳에서 탈출에 성공하지만, 나열은 시사의 탈출을 도와주다가 그만 육중한 철문에 깔려죽게됩니다.

나열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감옥까지 따라가서 전투를 벌였을 뿐만아니라 그녀를 구해준 후,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마는 진한 로맨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감옥에서 벌어지는 비밀결사대와 몽골군간의 목숨을 건 일당 백의 전투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옥중도’는 ‘문승상 구출작전’을 주도하는 무림의 고수 나열과 여검객 시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감옥’이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숨막히는 피의 혈전이 처절하게 펼쳐지는 멋지고 아름다운 정통무협영화입니다.

 

‘옥중도’는 다른 무협물과는 달리 남주인공이 철문에 깔려 죽는 강렬한 여운의 엔딩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입니다.

 

영화 ‘옥중도’는 1971년도에 우리나라에 수입되어서 서울 허리우드극장에서만 27일간 상영되어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부산극장과 태화극장에서 7만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했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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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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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우먼의 여주인공 린다 카터의 프로필과 젊은시절의 미모와 몸매, 나이와 근황

 

미국드라마 ‘원더우먼’에서 빼어난 미모와 아름다운 육감몸매로 전세계의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여배우가 ‘린다 카터’지요.

 

2020년도에 상영된 영화 ‘원더우먼 1984’에는 이스라엘의 여배우 겔 가돗이 주연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원래 ‘원더우먼’의 원조여배우는 겔 가돗이 아니라 ‘린다 카터’랍니다.

 

미모나 몸매로 볼 때에도 지금의 ‘원더우먼’ 여주인공 겔 가돗보다는 70년대에 활동했던 ‘원더우먼’의 미녀스타 ‘린다 카터’가 훨씬 더 예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176cm의 큰 키에 환상적인 볼륨몸매, 청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린다 카터는 70년대 중후반 ‘원더우먼’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멋진 연기를 펼쳐보이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70년대 최고의 글래머스타였습니다.

 

지금의 겔 가돗은 178cm의 큰 키에 미스 이스라엘출신이지만, 70년대의 린다 카터는 176cm의 키에 미스월드대회 본선까지 출전했던 미스아메리카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겔 가돗은 키는 178cm로서 매우 큰 편이지만, 몸매자체는 글래머가 아니고 밋밋하다는 평을 받지만,

70년대의 스타 린다 카터는 176cm의 큰 키에 글래머스한 명품 볼륨몸매를 지니고 있어서, 린다 카터야말로 역대 원더우먼 중 최고의 섹씨스타이자 글래머스타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겔 가돗은 가슴이 빈약하다면서 네티즌들의 악플에 몹시 시달리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린다 카터는 가슴이 상당히 크고 풍성해서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최고의 섹씨스타로 명성이 높다는 점에서, 린다 카터야말로 진정한 원더우먼이자, 원조 원더우먼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겔 가돗이 주연으로 출연한 ‘원더우먼 1984’는 린다 카터가 1975년도에 출연한 미국드라마 ‘원더우먼’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서, 이미 린다 카터가 연기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70년대의 작품 ‘원더우먼’의 높은 명성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음으로써,

린다 카터의 후광을 톡톡히 보면서 원더우먼 스타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즉 린다 카터가 미리 닦아놓은 원더우먼의 후광을 크게 받았다는 점에서, 겔 가돗은 린다 카터의 아류스타라는 평가를 면치못하고 있답니다.

 

그런점 에서, 70년대의 ‘원더우먼’의 원조인 린다 카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겔 가돗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원더 우먼’의 원조스타 린다 카터는 70년대 최고의 미녀이자, 최고의 글래머스타였습니다.

 

75년도에 미국드라마 ‘원더우먼’에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79년까지 무려 4년 동안 열연을 펼친 린다 카터는 당시 최고의 청순미녀스타이자, 글래머스타로서 전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 린다 카터의 프로필, 삶과 경력

 

- 린다 카터의 프로필 -

 

출생일 - 1951년 7월 24일생, 나이 72세

출생지 -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직업 - 가수겸 배우

키 - 176cm

배우자 - 론 사무엘스(77년~82년), 로버트 알트만(84년~21년, 사별)

자녀 - 아들 제임스 알트만(88년생), 딸 제시카 알트만(90년생)

 

과연 린다 카터의 삶도 그녀가 맡은 캐릭터 원더우먼처럼 화려하고 멋졌을까요?

오늘을 원조 원더우먼이었던 린다 카터의 삶과 경력,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원래 린다 카터는 1972년도에 어머니의 권유로 미스월드대회 출전권이 달린 '미스월드 USA' 대회에 출전해 1위로 입상하였고, 실제 영국에서 열린 미스월드대회에도 출전해 준결승전까지 올랐을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이미 국제적으로도 검증을 받은 바가 있지요.

 

린다 카터의 원래 연예계경력은 원더우먼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이 방영되기 20년전인 6살 때에 처음으로 TV에 출연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린다 카터는 원래 연기쪽보다는 음악쪽에 더욱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린다 카터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진지하게 가수로서의 진로를 고민했습니다. 이 시기에 린다 카터는 ‘저스트 어스’라는 밴드그룹에서 보컬을 맡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이 밴드에서 마림바, 어쿠스틱 기타, 콩가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 후 린다 카터는 두명의 친척들과 함께 ‘렐러티브즈’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역시 보컬을 맡아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리고 린다 카터는 ‘렐러티브즈’의 맴버로 활동하기 위해 집을 떠나서 공연투어 행렬에 올랐답니다.

 

밴드 ‘렐러티브즈’는 신인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꽤 좋았습니다. 초창기에 린다 카터는 삼촌이 운영하던 식당에서 박봉을 받았지만, 인기가 높아지자 매일 공연비로 50달러씩 벌어들었다고 합니다.

 

‘렐러티브즈’가 인기가 매우 높아지자, 이들은 라스베가스의 사하라호텔의 카지노라운지에서 3개월동안 머무르면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린다 카터는 나이가 18세였고, 카지노 출입기준인 21세보다 한참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부엌쪽문을 통해 남몰래 공연장에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사촌들과 함께 집을 떠나서 공연투어를 하면서 뮤지션의 길에 올랐지만, 린다 카터는 학업을 게을리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공연활동을 하면서도 고등학교에서 우등생으로 뽑기도 했고, 라스베이거스의 바쁜 공연활동에도 불구하고 아리조나주립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기도 했습니다.

 

린다 카터는 뮤지션과 학업 양쪽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그야말로 천재소녀였습니다.

 

린다 카터는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그녀는 밴드활동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서 아리조나주립대학을 자퇴하고, 전업뮤지션이 되기로 결정합니다.

 

대학을 자퇴한 그녀의 진로에 대해 부모님이 큰 걱정을 하게되자, 린다 카터는 자신이 밴드공연으로 번 돈을 계속 부모님께 송금해드렸을 정도로 효녀였습니다.

 

린다 카터의 밴드는 그 후 뉴욕과 미국 남부지역을 순회하면서 공연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뮤지션들을 만나 화성학과 음악이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며 견문과 식견을 높여나갈 수 있었죠.

 

그런데, 미국 중서부지역에서 공연활동을 벌여나가던 린다 카터는 갑자기 가수로서 회의감에 빠지게 됩니다.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게될 지에 큰 회의감에 빠져든 린다 카터는 공연활동을 중단하고, 다시 부모님집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린다 카터는 가수로서 활동을 하되, 연기활동도 함께 병행할 결심을 하게된답니다.

 

파랗고 아름다운 눈, 뚜렷한 이목구비, 176cm의 큰 키에 글래머스한 볼륨몸매를 가진 린다 카터는 자신의 뛰어난 미모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모델 에이젼시에 입사하게됩니다.

 

그런데, 모델활동 한달만에 린다 카터는 미스 피닉스, 미스 애리조나, 그리고 미스월드의 미스아메리카대표로 뽑히게됐고, 1972년도의 국제미인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하여 준결승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개의 미인대회에서 입상하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으며, 뭔가 가슴속에 공허함을 갖고있었다고 합니다.

 

모델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린다 카터는 다시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요. 이 때 그녀는 연기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린다 카터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찰스 콘래드로부터 연기레슨을 받으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후, 린다 카터는 몇편의 TV드라마에 출연하였지만,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못했었죠.

그러다가, 린다 카터는 1975년도에 그녀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회심의 TV드라마 ‘원더우먼’에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게 됩니다.

 

린다 카터는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버릴 70년대의 걸작드라마 ‘원더우먼’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그녀의 인생이 완전 바뀌어버립니다.

 

‘원더우먼’은 워너브라더스와 DC코믹스가 합작해 만든 새로운 슈퍼히어로 TV시리즈물로 이 드라마에 출연한 린다 카터는 자신의 빼어난 미모와 아름다운 조각몸매, 그리고 완벽한 연기력으로 원더우먼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스타덤에 오르게됩니다.

 

린다 카터는 드라마 ‘원더우먼’에서 공주같이 청순한 미모와 슈퍼파워를 가진 여자슈퍼맨으로 등장해, 사악한 악당들을 하나둘씩 물리치는 통쾌하면서도 짜릿한 액션씬을 펼쳐보이면서,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환희와 감동을 안겨주었고, 드라마 ‘원더우먼’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됩니다.

 

‘원더우먼’에서 린다 카터가 맡은 배역은 '다이애나 프린스'라는 여성으로 다이애나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 파라다이스에서 온 공주입니다.

이 파라다이스섬은 일반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지능과 훨씬 더 강한 파워, 영원히 늙지않는 아마존 여전사들이 사는 곳이지요.

 

그런데, 2차세계대전 당시 이 섬 파라다이스에 미국인조종사가 탄 비행기가 불시착하였고, 조종사는 여전사들에 의해서 구조된 후, 극진한 간호를 받은 끝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미국조종사를 다시 미국으로 데려다줄 안내자가 필요했는데, 지능과 파워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다이애나공주(린다 카터)가 그 안내자로 선택되게 됩니다.

 

다이애나는 미국국기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 모양대로 만든 자신의 슈트를 만들어입고,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힘의 원천인 금빛 허리띠, 총알을 튕겨내는 무쇠팔찌,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황금포승줄 등을 사용하여, 사악한 악당들을 모조리 일망타진하는 엄청난 슈퍼우먼의 대 활약을 펼쳐나간답니다.

 

그런데, 70년대 린다 카터가 활동했던 원더우먼의 캐릭터는 지금처럼 공격적 전투력에 걸크러쉬한 섹시미가 넘치는 전사캐릭터가 아닌 지극히 여성적이면서 청순한 매력을 풍기는 청순글래머 스타일의 원더우먼이었고,

그 원더우먼의 역할을 린다 카터가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드라마 ‘원더우먼’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대히트를 치게되며, 린다 카터는 70년대 최고의 글래머스한 청순미인으로 큰 각광을 받게된답니다.

 

린다 카터가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원더우먼’은 1975년도에 방영되었다가 너무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76년도에 다시 시즌2가 방영되었고, 77년도에 또다시 시즌3가 제작되어 방영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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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70년대에 린다 카터가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원더우먼’이 있었기에, 2020년 겔 가돗이 출연한 ‘원더우먼 1984’가 린다 카터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더우먼’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겔 가돗은 자신의 인기상승에 큰 견인차역할을 해준 원더우먼의 원조스타 린다 카터에게 큰 고마움을 느껴야할 것 같습니다.

 

‘원더우먼’은 원래 DC 코믹스회사의 고문인 윌리엄 마스턴이 1941년도에 만든 만화영화가 그 원작이라고 합니다.

이 만화영화를 각색해서 1967년도에 린다 해리슨이 주연을 맡아 최초의 드라마 ‘원더우먼’이 제작되었답니다.

그리고 1974년도에 캐시 리 크로스비가 주연으로 출연해 두 번째 ‘원더우먼’ 드라마가 제작되어 상영되었지요.

 

그런데, 위의 두 여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원더우먼은 그 내용이 진부할 뿐만아니라, 복장이나 액션이 세련미가 없고, 고루해서 별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1975년도에 마침내 린다 카터가 주인공을 맡은 세 번째 시리즈 ‘원더우먼’이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주인공으로 나온 린다 카터의 눈부신 미모와 팔등신 볼륨몸매, 세련미 넘치는 멋진 액션과 감칠맛 넘치는 연기와 환상적인 매력발산으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역대 원더우먼 작품의 주인공 중에서 린다 카터가 단연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원더우먼 여배우라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70년대 당시 ‘원더우먼’의 여주인공 린다 카터는 신이 빚은 여배우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원더우먼으로 분한 린다 카터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는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충분히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 숏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gbVqWnm4xk 

 

◆ 린다 카터의 결혼과 남편, 최근 근황

 

린다 카터 총 두 번의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은 그녀의 매니저였던 론 사무엘스와 결혼하였는데, 결혼한 지 5년만에 성격차이로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린다 카터는 1984년에 변호사인 로버트 올트먼과 재혼해서 1남 1녀의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최근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왔는데, 린다 카터의 남편 올트먼은 21년도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린다 카터는 1951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72세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그녀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그녀는 젊은 시절 못지않은 아름다운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주고있습니다.

 

린다 카터는 2000년대 들어와서도 드라마 ‘스몰빌’ ‘폴아웃4’ ‘슈피걸’ 등 여러 TV시리즈에 출연하는 등 꾸준히 방송활동을 계속 벌여오고 있습니다.

 

최근 린다 카터와 관련된 새로운 근황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린다 카터는 겔 가돗의 ‘원더우먼 1984’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요.

 

린다 카터가 드라마 ‘원더우먼’ 이후 51년만에 ‘원더우먼 1984’에 출연해서 큰 주목을 끌었는데, 이 영화에서 린다 카터는 아스테리아 역할로 카메오로 잠깐 등장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던 많은 팬들이 그녀의 짧은 분량에 섭섭함을 크게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겔 가돗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원더우먼 3탄에 또다시 린다 카터가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2020년도에 상영된 ‘원더우먼 2탄’에 이어 린다 카터가 ‘원더우먼 3탄’에도 또다시 출연한다고 하니, 그녀를 좋아하는 수많은 남성팬들의 가슴이 몹시 설레일 것 같은데요!

 

패티 젠킨스 감독이 타이틀롤을 맡은 겔 가돗 주연의 ‘원더우먼1’은 2017년도에 상영되었으며, ‘원더우먼2’는 2020년도에 상영되어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패티 젠킨스 감독과 겔 가돗이 손잡고 또다시 ‘원더우먼3’를 다시 제작한다고 하며, 이 작품에 원더우먼의 원조인 린다 카터가 출연한다는 소식입니다.

 

‘원더우먼3’ 출연 확정에 대해 린다 카터는 ‘내 인생의 이 시간에 이 선물이 나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정말 멋지다’

‘당신의 삶이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고, 당신 안에 원더우먼이 살아있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출연소감을 밝혔답니다.

 

‘원더우먼3’는 2021년도에 제작을 시작하여 지금 한창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2023년도 후반경에는 ‘원더우먼3’가 상영될 수 있지않을까 합니다.

70년대 최고의 청순글래머스타 린다 카터가 과연 ‘원더우먼3’에서 어떤 모습으로 활약할지 큰 기대감을 갖고 상영될 그날을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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