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여배우 김지미의 프로필과 미모와 나이, 출연영화, 네번의 결혼과 남편 최무룡, 나훈아
김지미는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으로 60~70년대를 풍미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인여배우랍니다.
김지미는 우리영화의 중흥기였던 60년대에 가장 큰 인기를 끌면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던 한국영화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급 여배우이지요.
김지미는 동양의 리즈 테일러라고 불리웠을 만큼, 그 아름다운 미모로도 큰 명성을 떨쳤는데,
1959년도에 한국을 방문했던 허리우드의 명감독 존 포드는 한 영화행사장에서 김지미를 보고, ‘아시아 최고의 미인’이라고 극찬을 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답니다.
이렇게 김지미는 한국의 고전적인 미인의 대명사이자, 60년대의 최고의 인기여배우로서 무려 7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한국영화의 산 증인이랍니다.
특히 김지미는 남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김지미는 지금의 성형미인들과는 달리 얼굴 한군데도 뜯어고치지 않은 완벽한 자연산 미인으로 유명하답니다.
60~70년대에 여성들에게 김지미를 닮았다고 하는 말은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였다고 할 만큼,
김지미는 미모면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미인으로 평가를 받아왔으며, 그야말로 김지미의 미모는 당시 한국미인의 최고의 클라스였지요.
우리나라 연예계에서 당대 미모의 원탑이라고 불리우는 여배우는 단 두명뿐인데, 바로 김지미와 정윤희입니다.
정윤희는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 시기의 최고미인이라고 불리워졌는데 반해, 김지미는 60년대의 최고미인으로 불리워졌을 만큼, 김지미는 당대에 다른 여배우들을 압도할 만큼 최고의 원탑 미인이었으며,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60년대 허리우드의 최고의 미녀로 불리웠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동격의 미모를 지녔다고 해서,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우면서 수백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김지미는 신영균, 신성일과 함께 60~70년대에 한국영화를 부흥시킨 최고의 주역이었답니다.
◆ 김지미 프로필과 출연영화
- 김지미 프로필 -
출생일 - 1940년 7월 15일생, 나이 83세,
출생지 - 대전광역시 신탄진동
키 - 160cm
몸무게 - 48kg
종교 - 천주교
학력 - 덕성여자고등학교
본명 - 김명자
배우자 : 이종구 (1991년–2002년), 나훈아 (1976년–1982년), 최무룡 (1963년–1969년), 홍성기 (1958년–1962년)
자녀 - 2녀
출연 영화 - 700편
데뷔 - 57년 영화 ‘황혼열차’
김지미는 18살 나이에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 영화계에 데뷔를 했습니다.
그런데, 김지미의 데뷔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김지미는 여고생이었던 18살 때에 미국에 유학가는 큰오빠를 배웅하러 외출했는데, 명동 길거리에서 그녀를 본 김기영감독이 그녀의 미모를 보고 홀딱 반했다고 합니다.
김기영감독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지미의 미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경국지색의 미모를 보유했다고 합니다.
김기영감독은 김지미에게 다가가 곧바로 배우권유를 했고, 김지미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지미는 오빠를 뒤따라서 미국유학을 갈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김기영감독의 끈질긴 캐스킹제안에 얼떨결에 김지미는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김지미는 여고생이었던 1957년도에 18살의 나이로 ‘청춘열차’에 데뷔하게 되었고,
이후 멜로물, 시대극, 형사물, 액션영화, 미스터리물 등 700편이나 되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국영화계 역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답니다.
즉, 김지미는 요즘 아이돌의 데뷔와 유사하게, 길거리 캐스팅의 첫번째 주자였던 셈이지요.
김지미는 58년도에 19세의 나이로 출연한 영화 ‘별아 내가슴에’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영화 ‘별아 내가슴에’는 홍성기감독이 자신이 발탁한 김지미를 주인공으로 영입해서 직접 출자하고 연출해서 만든 영화였는데,
당시 17만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무명에 지나지 않았던 김지미는 하루아침에 톱스타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이후 김지미는 ‘대원군과 민비’ ‘육체의 길’ ‘카츄사’ ‘장희빈’ ‘춘향전’ 등 명작품에 주인공으로 계속 출연하면서,
요염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객들에게 큰 감명을 안겨주면서 흥행에 대성공을 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어나가게 됩니다.
김지미는 57년도에 데뷔해서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전반에는 최은희, 문정숙과 3자경쟁구도를 형성했고,
60년대 중후반에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트로이카 3인방과 경쟁구도를 형성하면서 연기활동을 벌여왔는데요.
60년대 중반에 혜성처럼 나타난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트로이카 3인방이 큰 인기를 끌면서 영화계를 주도해나가는 상황에서, 최은희, 문정숙 등 기존여배우들은 2진으로 물러난데 반해,
김지미는 이들 신흥주자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면서, 60, 70년대까지 ‘북경열차’ ‘장록수’ ‘자유부인’ 등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해 명연기를 보여주면서, 연기자로서의 인기와 명성을 계속 이어나간 전천후 여배우의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김지미의 전성기였던 시절은 60, 70년대인데, 이 시기에 김지미는 한 해에만 무려 30여편의 영화를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 배우들은 한 해에 영화 한 두편 찍는게 고작이지요.
60, 70년대에 김지미는 한번에 3~4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었다고 합니다.
하루 중 오전 4시간은 A영화를 찍고, 오후 4~5시간은 B영화를 찍었고, 저녁2~3시간은 C영화를 찍는 등 하루를 3,4등분으로 갈라서 서로 다른 영화를 동시에 찍었다고 하며, 이런식으로 김지미는 한 해에만 30편의 영화를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김지미는 68년도에만 32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또한 69년도에도 역시 32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70년도에만 36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로,
이 시기는 그녀의 인기와 명성이 절정에 다다랐던 시기였는데, 58년부터 75년도까지 17년 동안이 그녀의 최고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그런데,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에 소위 호스티스영화 같은 벗는 애로영화들이 유행해나가자, 김지미는 벗는 영화에 환멸을 느끼면서 이 때부터 점점 영화출연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지미는 지미필름이라는 영화제작사를 창립하여 영화제작에 몰두했으며,
1992년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를 마지막으로 영화배우로서 은퇴한 후,
그 후에도 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등을 겸임하면서 영화계 안팎에서 활발한 활동을 계속 벌여오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미남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신성일도 영화 524편에 출연하면서 남자배우로서 최고의 신기록을 세웠지만,
김지미는 이보다 훨씬 많은 70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니,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지미는 그녀가 데뷔한 1957년부터 1992년도까지 총 700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우리나라의 최고의 다작 배우라는 신기록을 세웠으니, 그녀는 우리나라 영화사에 있어서 살아있는 레전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지미의 네 번의 결혼과 남편들
김지미는 60, 70년대 당대의 최고의 미녀배우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그녀의 남성편력도 매우 화려한 편입니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8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였다고 하지만, 한국판 리즈 테일러인 김지미는 총 4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였답니다.
김지미의 첫 번째 남편은 홍성기감독이고, 그녀의 두번째 남편은 최무룡이며, 세 번째 남편은 나훈아이고, 그녀의 네 번째남편은 이종구박사입니다.
김지미는 18살 때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출한 12살 연상의 홍성기감독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홍성기감독의 계속되는 영화제작 실패와 두사람의 불륜과 외도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4년만에 이혼하고 맙니다.
이 당시 김지미는 18살이라고 하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보니, 남편이나 가정의 중요성을 미처 느끼지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닥친 외도스캔들로 인해 갑작스럽게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김지미는 당시 톱스타였던 최무룡과 여러편의 영화에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친해졌는데, 두사람이 함께 홍콩으로 영화촬영을 갔다가 불륜스캔들을 일으키게 됩니다.
김지미와 최무룡이 각각 남녀주인공으로 같은 영화를 많이 찍으면서 부쩍 가까워졌고, 결국 두사람은 정이 들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이 시기에 김지미는 겹치기 영화촬영 때문에 너무 바빠서 남편을 일주일에 한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같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미남배우 최무룡은 매일같이 함께 했기에, 금새 서로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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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친해진 김지미와 최무룡은 연인관계가 되었고, 홍콩에서 밀회를 하던 두사람의 관계가 들통이 나면서, 김지미와 최무룡은 1962년도에 최무룡의 아내 강효실로부터 간통혐의로 고소당하고, 구속되고 맙니다.
보수적인 관념이 강했던 1960년대 초반에 최고의 인기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각각 배우자를 둔 두사람이 간통사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엄청난 초대형 스캔들이 되어버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졸지에 두사람은 간통혐의로 구속된 후, 김지미는 자신의 집을 팔아서 강효실에게 위자료로 300만원을 지급해서 합의를 한 후, 두사람은 두달 만에 석방된답니다.
어차피 간통으로 인해 각각 자신의 배우자와 이혼하게된 김지미와 최무룡은 곧바로 재혼을 하였으며, 슬하에 딸 한명을 두면서 금슬좋게 잘 살았는데요.
훗날 김지미는 최무룡과의 결혼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김지미는 ‘당시 최무룡과 자신의 속상한 속사정을 털어놓는 얘기를 하다가 정이 들었는데,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수습해야 하니까, 같이 안살 수 없게 된 거다’라고 말했답니다.
즉, 김지미와 최무룡은 처음부터 결혼할 의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수로 저지른 한 때의 불장난이었는데,
두사람이 함께 한 사실이 온천하에 알려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두사람이 결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무룡이 무리하게 영화제작에 뛰어들면서 두사람 사이에 마찰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두사람이 결혼을 한 후, 최무룡은 영화배우에서 영화제작자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최무룡은 김지미가 사재를 털어서 지원해준 돈으로 ‘한많은 석이엄마’ ‘나운규의 일생’ ‘제3지대’등 15편의 영화들을 제작했지만, 그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게된답니다.
이렇게 거듭된 최무룡의 영화흥행 실패로 김지미의 사재는 바닥이 나고, 최무룡은 3,000만원의 엄청난 빚을 지게됩니다.
이렇게 최무룡이 제작한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거액의 빚을 지게되자, 두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최무룡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명언을 남긴 채, 결국 두사람은 결혼한 지 6년만인 1969년에 이혼하고 맙니다.
그리고 김지미의 세번째 남편은 7살 연하의 가수 나훈아입니다.
김지미와 나훈아가 정식으로 결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훈아를 김지미의 세 번째 남편이라고 하기가 좀 그렇지만, 두사람이 함께 6년 동안 동거한 것은 사실이고 사실상 사실혼이기 때문에, 남편이라고 해도 무방하답니다.
지금은 연상연하커플이 흔하지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그 당시만 해도 연상의 여자가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 자체가 엄청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습니다.
김지미와 나훈아가 서로 만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나훈아가 파티가 열리는 김지미의 집에서 노래를 몇 번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두사람은 서로 의남매지간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훈아가 군대를 다녀온 뒤, 일이 없던 시기에 두사람은 서로 왕래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신탄진에서 김지미의 오빠가 공장을 운영했는데, 그 공장을 김지미가 여러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고, 이때에 나훈아가 김지미를 따라서 여러번 신탄진을 함께 방문하면서 두사람간의 애정이 싹텄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지미와 나훈아가 신탄진의 거처에서 함께 있는 현장이 기자들에게 목격되면서 또다시 스캔들이 터졌고,
그 스캔들에 두사람이 함께 엮이면서 결국 김지미와 나훈아는 결혼을 선언하게 되었답니다.
김지미와 나훈아는 1976년도에 함께 동거를 시작했고, 알콩달콩하게 잘 살았으나, 동거한 지 6년만인 1982년도에 갑자기 결별을 하게됩니다.
두사람의 이혼사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지미가 훗날 나훈아를 만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두 사람간의 말못할 커다란 마찰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지미는 ‘내가 나훈아를 만난 것은 잘못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나훈아와의 동거를 몹시 후회하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과 나훈아가 동거함으로서 딸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다른 이혼사유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김지미는 시골에서 식당이나 운영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랬지만, 나훈아는 가수에의 꿈을 버리지못하고 가수로의 복귀를 꿈꾸웠다고 하며,
이러한 심한 입장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긴 것이 두사람이 결별하게된 이유라고 합니다.
두사람이 헤어질 때에 나훈아는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는 혼자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김지미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위자료로 주면서, 통 크고 호탕한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그런데, 나훈아는 김지미와 이혼한 뒤, 곧바로 14살 연하의 여가수 정수경과 연애를 시작했고, 4년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답니다.
김지미가 나훈아와의 만남을 후회한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나훈아의 행위에 큰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지미는 나훈아와 결별한 후,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내오다가 1991년도에 이종구박사와 네번째 결혼을 하게됩니다.
이 당시 이종구박사는 김지미에게 하루에 두장의 러브레터를 보냈을 정도로 김지미에게 열정적으로 구애를 해왔다고 합니다.
이런 러브레터 구애가 8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이종구박사의 열정과 집념에 감동받은 김지미는 결국 결혼을 허락하고 말았답니다.
김지미는 심장질환의 전문의였던 이종구박사와 또다시 재혼을 했고, 두사람은 금슬좋은 부부로 11년 동안 알콩달콩 잘 살아갔답니다.
그렇지만, 11년 동안의 기니간 결혼 끝에, 김지미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김지미는 집안에서 무조건 남편에게 순종만해야 하는 그런 아내역할과 따분한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지미는 원래 조신한 스타일이 아니라 호탕하고 보스기질이 강한 여장부성격이었기 때문에, 이종구박사가 원하는 가정적인 여성이나 순종적인 주부가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않았다고 합니다.
김지미가 20,30대였다면, 진작 이혼했었을 텐데, 나이도 많고, 또한 네 번째 결혼이다 보니, ‘그냥 참고 조용히 살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참고 또 참아왔지만, 결국 뒤늦게 후회를 하고 이혼을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김지미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11년동안이나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것에 대해 무척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혼한 후, 지금 그녀는 너무나도 자유롭고 마음이 편안하다고 합니다.
김지미는 자신이 네 번의 결혼을 한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를 했습니다.
김지미는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있는 남자 등과 다 살아봤지만 남자 별거 아니더라, 남자는 다 어린애이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자녀를 함께 자녀를 낳아 길렀던 최무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자신의 소회를 밝혔답니다.
김지미는 현재 나이 84세이고, 흐르는 세월도 어쩔 수 없는 듯 머리가 희끗희끗한 백발에도 얼굴에 팬 주름이 가득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젊었을 때의 아름다운 미모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는 자신이 네 번의 결혼과 이혼한 것에 대해서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자유로운 몸이 된 지금이 더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한다고 합니다.
얼굴은 지극히 여성적이며 예쁜 그녀이지만, 대장부같이 통이 크고 호탕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당대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불리우면서 700편이나 되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우리나라의 톱여배우로 군림해온 김지미의 화려한 삶과 네번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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