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를 홀린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의 삶과 죽음과 최후, 예언

사랑방 이야기 2022. 11. 22. 22:09

황후를 홀린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의 삶과 죽음과 최후, 예언

 

라스푸틴 1869년 1월 22일 ~ 1916년 12월 29일

 

러시아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예언자로 알려졌던 요승 라스푸틴! 라스푸틴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으며, 또한 러시아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라스푸틴은 러시아황제를 조종하고, 러시아제국의 국정을 제멋대로 농단하면서 러시아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데 기여했던 요승이었다.

 

오늘은 러시아말기에 니콜라이 황제의 국정에 참여한 후, 러시아국정을 어지럽히면서 러시아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러시아의 요승이자, 파계 수도자인 라스푸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한 농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학창시절 학업에는 관심이 없어서 공부를 제대로 마치지는 못했다.

특히 방랑벽이 심했던 라스푸틴은 18세 때부터 떠돌이생활을 하였는데, 스스로 수도승을 자처하면서 러시아전역을 방랑하였다.

 

라스푸틴은 1887년 19세 때 프라스코비야 두브로비나를 만나 결혼을 했고, 7명의 자녀를 낳아 키웠지만, 단 세명의 자녀만 살아남았다.

 

라스푸틴은 스스로 수도승을 자처하면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터키의 카파도키아 등 세계의 여러곳의 성지를 떠돌아다니면서 영적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1900년대 초, 라스푸틴은 오랜 방랑생활을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왔고, 강신술과 신지학 등 여러가지 사이비 종교활동과 특유의 카리스마와 유창한 말주변으로 귀족들을 사로잡으면서, 일약 러시아 사교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특히 라스푸틴은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설법과 독특한 종교이론으로 러시아 귀족부인들의 큰 추앙을 받으면서, 러시아귀족사회의 인기사교남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러시아사교계에서 승승장구하던 라스푸틴은 귀족 비루보아부인의 천거를 받아서 니콜라이 황제와 황후를 알현할 수 있는 접견기회를 얻게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떠돌이 수도승에 불과했던 라스푸틴은 황제부부를 접견한 후, 러시아제국의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국정실세로 급부상하게 되는데 !

 

떠돌이승 라스푸틴이 러시아국정의 최고의 실력자로 올라서게된 이유는 단지 병석에 누운 러시아 황태자와 만난 지극히 우연한 조우 때문이었다.

 

◆ 괴승 라스푸틴, 황태자의 병을 호전시킨 공으로 최고실력자로!

 

1905년 당시, 니콜라이 황제와 알렉산드라황후의 유일한 아들이자 황태자인 알렉세이가 혈우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 당시, 라스푸틴이 특유의 강신술로 난치병도 치료할 뿐만아니라, 신기한 주술능력으로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있었는데,

이를 전해들은 알렉산드라황후는 라스푸틴을 황실로 불러들여서 알렉세이황태자의 혈우병을 진료해줄 것을 간청했다.

 

황후의 부름을 받고 급기야 황실로 입궁한 라스푸틴은 혈우병을 앓고있는 황태자를 위해 자신의 특유의 치료방법인 기도를 통해서 황태자의 병을 호전시키는데 성공했고, 그 때부터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황제부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되었다.

 

이 때 라스푸틴이 황태자의 병세를 호전시킨 것은 그의 치료법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단지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즉, 과거부터 계속 혈우병을 앓아왔던 알렉세이 황태자에게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투약을 해왔고, 그런 그간의 치료행위가 계속 쌓여서 서서히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그 약들의 효능이 발휘되는 시점이 라스푸틴이 치료한 시점과 우연히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찮게도 라스푸틴이 치료하자마자 황태자가 기적과 같이 병석에서 일어나자, 니콜라이 황제부부는 라스푸틴을 ‘신의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절대적인 신임을 하게되었다.

 

이처럼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총애를 독차지하게된 라스푸틴은 황실의 백그라운드를 무기로 러시아국정에 사사건건 관여하면서, 급기야 내정을 좌지우지하는 국정 최고의 실력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백그라운드를 등에 업고 졸지에 국정의 실력자로 급부상한 라스푸틴은 수상과 장관들을 제멋대로 임명하고 파면하는 등 인사전횡을 일삼았고, 이 때부터 러시아제국의 국정은 라스푸틴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게 되었다.

 

또한, 라스푸틴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러시아의 농민들에게 생계유지하기에도 힘들 만큼의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농민들에게 총탄을 퍼붓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라스푸틴의 국정농단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자, 그 당시의 재상인 코콥초프가 라스푸틴의 축출을 건의했는데,

오히려 코콥초프재상이 니콜라이황제의 미움을 받아서 파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였으니, 이 당시에 라스푸틴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당시 라스푸틴은 황궁의 많은 여자들을 농락하고 성추행하였을 뿐만아니라, 20명의 사생아까지 두었을 정도로 방탕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해왔지만, 황제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시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적으로도 무능했던 니콜라이 황제와 내성적인 성격의 알렉산드라 황후는 오히려 신비주의 성직자인 라스푸틴에게 깊이 매료되고 그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국정농단과 부당한 처사를 제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두둔하고 비호하는데에만 열중했을 뿐이다.

 

러시아가 공산주의혁명으로 멸망당하는 순간까지도 니콜라이 황제의 네명의 공주들은 라스푸틴을 신처럼 떠받들었을 뿐만 아니라,

라스푸틴 사진을 부적처럼 가슴속에 지니고 있었다고 하니, 사이비종교가 라스푸틴의 권세와 신드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시기에는 라스푸틴이 황후와 동침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동침설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고, 라스푸틴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퍼져나온 소문에 불과하다고 본다.

 

알렉산드라 황후는 자신의 아들인 황태자가 혈우병에 걸려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있었기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의 병을 치유해줄 능력이 있는 라스푸틴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고,

아들의 병치료에 도움을 주는 라스푸틴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면서 그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가까이에 두면서 그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던 상황이었다.

 

아들의 병치료 때문에,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을 가까이에 두고 절대적으로 신임하면서 그에게 많은 특권을 주고 그의 활동을 비호하는 바람에,

러시아국민들 중 상당수 사람들은 지나치리만큼 라스푸틴에게 의지하는 황후와 라스푸틴과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두사람이 동침하는 연인이라는 황당한 루머를 퍼뜨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사이에 태어난 딸들인 공주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는데, 라스푸틴은 공주들이 잠옷바람으로 있는 방에도 자주 드나들 정도였다고, 라스푸틴과 황실가족은 대단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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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은 공주들 앞에서는 매우 경건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도 공주들은 라스푸틴을 남동생의 병을 고쳐준 ‘착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치료술을 신기해하면서 그를 은인같은 존재로 생각하면서 따랐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나중에 일부사람들은 라스푸틴과 공주들과의 관계도 의심해서, 라스푸틴이 공주들을 범했다는 황당한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라스푸틴과 니콜라이황제가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가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실제 사례가 하나 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이 초기에 독일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하면서 러시아군이 수세에 몰리게되자,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독일과의 평화협정을 하기위해서 전선으로 출정한 적이 있다.

그 때에 라스푸틴은 황제에게 ‘남부전선에서 공세를 펼친다면,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느님이 계시해주셨습니다’라고 전하면서, 전쟁을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라스푸틴의 이같은 계시를 전해들은 니콜라이 황제는 러시아장군들과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지속해나갈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러시아군은 독일군에게 대패했고, 러시아의 곡창지대를 모두 독일군에게 빼앗기면서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뿐만아니라, 이로인해 백성들의 세금이 상승하고 국가재정은 파탄나면서,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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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승 라스푸틴의 말 한마디에 니콜라이황제는 꼭두각시처럼 놀아났고, 그 결과 러시아경제와 재정이 파탄상태에 빠지면서,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렇게 라스푸틴의 국정농단과 횡포로 국정이 파탄상태로 가고있는데도 불구하고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에 대한 신임을 결코 거두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에 대한 비판을 막아주고 비호해주는데 급급했다.

 

◆ 라스푸틴의 최후와 사망원인

 

그런데,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세등등했던 라스푸틴에게 최대의 정적이 나타났다.

 

당시 러시아의 명망가문인 유수포프가문의 후계자이자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인 펠릭스 유수포프공작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유수포프는 러시아 대대로 총망받는 유력한 가문이었기에,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의 딸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와 결혼함으로써, 니콜라이 황제의 조카사위가 되었다.

 

그런데, 유수포프공작은 오래전부터 라스푸틴에게 심한 원한을 품고있었다. 유수포프공작이 라스푸틴에게 원한을 갖게된 이유는 라스푸틴이 그에게 심한 모욕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한 파티장에서 만난 라스푸틴이 유수포프공작에게 ‘당신은 게이가 아닌가, 나는 당신같은 게이가 정말 싫다!’라면서 엄청난 모욕적인 언사를 가한 적이 있었다.

 

원래 유수포프의 부모는 딸을 간절히 원했는데, 원치도 않았던 아들 유수포프를 얻었다.

 

그래서 유수포프부모는 유수포프를 어릴 때부터 여자애의 옷을 입히는 등 여장을 자주 시켰고, 사람들이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유슈포프는 여장이 잘 어울렸고, 외모 또한 예쁘장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유수포프는 종종 여장을 하고 다녔는데, 그 때문에 유슈포프에게 ‘가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

심지어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여장을 한 유수포프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말을 했을 정도로 유수포프는 여장이 잘 어울렸다.

 

그런데, 한 파티장에서 여장을 한 유수포프를 본 라스푸틴은 ‘변태처럼 여장을 하다니, 정신이상자가 아닌가! 같은 남자로서 정말로 한심하고 창피하다’라고 난폭하게 비난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심하게 모욕을 했다.

 

또한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의 여장사실을 황궁과 귀족사회에 널리 소문내고 돌아다녔고, 이 때문에 미래가 촉망받는 잘생기고 점잖은 귀족청년이라는 유수포프의 숭고한 이미지와 명예는 크게 실추됐고, 그는 엄청난 모욕감에 사로잡혔다.

 

심지어 라스푸틴은 파티장에서 유수포프의 부인 이리나공주의 미모를 보고 흑심을 품고 찝적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이를 본 유수포프는 엄청난 분노감을 느끼고 결국 라스푸틴에 대한 암살을 계획하게 된다.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다른 황족들을 끌어들여서 라스푸틴을 함께 암살할 음모를 꾸몄다.

 

1916년 12월 30일,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을 자신이 주최하는 귀족들의 파티에 초대했고, 그에게 맛있는 케이크와 와인을 대접했다. 그런데 그 케이크와 와인에는 치사량에 해당하는 청산가리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보통 청산가리를 먹으면 5초 이내에 사망하는 게 원칙인데, 놀랍게도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은 라스푸틴은 죽기는커녕,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등 2시간 넘게 살아있었다.

 

결국, 유수포프가 권총을 꺼내어 라스푸틴에게 총을 쏘아서 그를 쓰러뜨렸다.

 

그런데 총을 맞은 라스푸틴은 죽지않았고, 오히려 그는 유수포프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르면서 대항했는데, 이를 본 다른 귀족이 다시 그를 향해 총을 쏘았는데도 불구하고 라스푸틴은 여전히 죽지않고 파티장밖으로 도주하였다.

 

그러자, 유수포프와 일행들은 밖으로 쫒아가서 도망치는 라스푸틴을 붙잡았고, 몽둥이와 쇠사슬로 라스푸틴을 때려 쓰러뜨린 후, 네바강 아래로 던져서 익사시켜버렸다.

 

그런데, 네바강에 던지기 전까지 라스푸틴이 살아있었다는 놀라운 기록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부검해본 결과, 라스푸틴의 사인은 총상이 아니라, 익사였다고 한다.

 

청산가리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많은 총을 맞고서도 라스푸틴은 살아있었다는 것인데, 총을 맞고 물에 빠진 라스푸틴은 총격에 의한 충격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익사해서 사망했다고 하니, 그의 초인적인 체력에 경악을 금치못할 뿐이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주술을 부렸거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라스푸틴에게 먹인 청산가리의 양은 5명을 죽일 수 있는 다량의 청산가리였다고 한다.

 

죽는 순간에도 초인적인 저력을 과시한 라스푸틴의 죽음의 과정은 정말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유수포프공작이 라스푸틴에 대한 암살을 기획했던 것은 국정농단을 일삼는 라스푸틴을 제거함으로써 위기에 빠진 러시아를 구하겠다는 구국의 일념 때문이었다고 스스로 주장했다.

 

그렇지만, 유수포프가 라스푸틴을 암살했던 진짜이유는 구국의 일념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유수포프는 라스푸틴 암살 사실이 밝혀지면서 살인죄로 체포되었지만, 국정농단으로 러시아를 몰락하게 만든 공공의 적을 죽인 만큼, 정상이 참작되어서 살인죄로 처벌받는 대신에 유럽으로 추방되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 라스푸틴의 예언

 

라스푸틴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자신이 러시아의 귀족에게 살해된다면, 앞으로 25년동안 러시아에서는 형제들이 형제들을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등 내란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한 라스푸틴은 ‘나는 내년 1월 1일까지 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러시아의 황제의 일족이 자신을 살해한다면, 2년 내에 러시아황제의 일족, 가족,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라스푸틴이 죽기 직전에 내놓은 그의 유언(예언)들은 대부분 적중되면서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라스푸틴은 자신이 1917년 1월 이전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는 실제로 1916년 12월 29일날, 귀족들에게 살해당했으므로, 그의 사망예언은 놀랍게도 그대로 적중되었다.

 

또한 라스푸틴은 자신이 살해당한다면, 2년 내에 니콜라이 황제와 가족들이 모두 죽게된다고 예언을 했는데, 실제로 그가 죽은 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났고,

1918년 7월 17일에 니콜라이 황제와 가족들은 러시아혁명군에 의해서 처형당했으므로, 라스푸틴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라스푸틴은 자신이 살해당한다면, 앞으로 25년동안 러시아에서는 형제들이 형제들을 서로 죽이는 등 내란이 일어난다고 예언했는데,

실제로 그가 죽은 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났고, 그리고 오랫동안 러시아내에서 황실옹위군인 백군과 공산주의혁명군인 홍군으로 나눠져서 서로 전쟁을 벌이면서 서로 죽이는 등 엄청난 참극이 벌어졌다.

 

라스푸틴은 러시아황실에 침투해서 국정을 농단하고 폭정을 일삼으면서, 러시아의 몰락을 이끌었던 희대의 요승이자, 타락한 수도승이었다.

 

라스푸틴의 국정전횡으로 인해서 러시아 황제체제는 종말을 고했는데, 라스푸틴이 죽자마자 러시아에 공산주의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에는 황제체제보다 더 무서운 볼셰비키 전체주의정권이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라스푸틴에 의해서 황제체제가 무너지면서 러시아에 공산주의 독제체제가 들어서게 된 것은 러시아국민이나 세계인류에게나 모두 너무나도 나쁜 재앙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라스푸틴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모두 러시아 국민들과 세계인류에게 나쁜 세상을 남겨준 도움이 안되는 괴물같은 요승이자, 타락한 미친 수도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스푸틴’과 지금의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의 이름 뒷글자 두 개가 일치하는데, 우크라이나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세계인류에게 엄청난 에너지난과 곡물상승 같은 심각한 경제적 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푸틴대통령!,

 

푸틴대통령이 러시아를 멸망으로 이끈 라스투틴과 이름 뒷글자가 일치하는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푸틴대통령이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군이 패배한다면, 러시아는 패전국가가 되어 사실상 국가기능이 마비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는데,

이렇게 푸틴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러시아가 몰락한다면, 푸틴대통령은 제정러시아를 멸망으로 이끈 라스푸틴의 후신 즉, 제2의 라스푸틴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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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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