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히트팝송)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 'Sometimes' 노래듣기, 동영상

 

2000년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세계 최고의 디바는 누구일까요? 2000년대에 'Sometimes'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큐티섹시한 아이돌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999년도부터 2010년까지 10년 동안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장 대표적인 아이돌 팝가수랍니다.

 

역대 미국의 많은 팝가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가수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꼽을 만한데, 그녀가 발표해서 히트시켰던 히트곡들은 ‘Baby One More Time’과 ‘Oops! I Did It Again’ ‘Toxic’ ‘Womanizer’ 'Sometimes'수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없이 많이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지금의 10대 20대 세대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라났고,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서 꿈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팝여가수라고 할 수 있지요.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해주었던 세계적인 팝뮤지션이라고 할 만 하답니다.

2000년대에 10년 동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가수가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라고 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억장의 음반을 판매한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그녀의 라이벌이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판매한 5,000만장보다 두배 더 많은 판매고를 올렸기에,

2000년대에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최고의 디바는 단연 브리트니 스피어스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이처럼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00년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음악활동을 펼쳤던 최고의 디바라고 평가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뛰어난 음악활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생활만큼은 평탄하지 못했으며. 그녀의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20대 초반 결혼해서 두번씩이나 이혼을 했고, 심지어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기기까지 했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음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결혼생활을 계속 불행한 나날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녀는 두번째로 결혼한 남편 케빈 페더라인과 2년만에 이혼을 하고 난 후, 알콜중독에 빠지는가 하면, 세번씩이나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 매우 기이한 행동을 벌여서 그녀의 많은팬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전남편과 이혼으로 인해 충격과 아이들 양육권에 대한 소송 때문이었을까요?

그녀는 2007~2008년도에 머리를 삭발하고는 세번에 걸쳐서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 여러가지 스캔들과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자신은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자살해야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한 때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약물중독과 알콜중독 때문에, 그녀의 두 아들 양육권은 전남편 캐빈 페더라인에게 넘어갔고,

그녀는 전남편 캐빈에게 두 아들에 대한 양육비로 매달 4,400만원을 지급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돈을 잘 버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남편 캐빈은 두아들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챙기고 있으니,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전남편 캐빈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사적으로는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이지만, 그녀의 음악적 재능과 열의는 엄청 대단해서 2012년 여덟번째 정규앨범 발표한 이후.

2016년도에는 아홉번째 정규앨범 ‘Make Me’를 발표하는 등 최근까지도 열정적이고 왕성한 음악활동을 벌여오고 있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그녀의 초창기시절에 크게 히트시켰던 노래 'Sometimes'가 아닐까해요!

'Sometimes'는 99년도에 발표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첫번째 정규앨범인 'Baby One More Time'의 수록곡이랍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 초창기시절,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요정처럼 귀엽고 예쁘장하면서도, 또다른 한편으로는 색시하면서 요염한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19살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풋풋한 매력을 보여주었던 시절의 히트곡이 바로 'Sometimes'랍니다.

 

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Sometimes'는 바로 우리나라의 인기걸그룹 소녀시대의 서현이 불러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곡이랍니다.

소녀시대가 2013년 비틀즈코드에 출연했을 때에, 서현이 'Sometimes'를 멋지게 불러서 많은 청중들을 놀라게했던 바로 그 노래랍니다.

 

◆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최근 근황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21년 12살 연하의 세 번째 남편 모델 샘 아스가리와 결혼했는데, 최근 둘 사이에서 불화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뜬금없이 자신의 보디가드와 휴가를 떠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4월 1일 푸에르토리코에 한 남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그 남자는 자신의 보디가드라고 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그 지역의 한 카페에 들러서 그 보디가드와 함께 다정하게 음료수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같은 차를 타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신의 남편과 불화설이 나도는 가운데, 다른 남자와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어서, 그녀가 세 번째 남편과 혹시 이혼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편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16년도에 세 번째 남편 샘 아스가리와 '슬럼버 파티' 뮤직비디오에서 만나서 데이트를 시작했고,

21년 6월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부부가 되었는데, 두사람은 결혼한 지 14개월만인 22년 8월달에 전격 이혼했습니다.

 

아마도 두사람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신의 보디가드와 여행을 떠난 것이 문제가 되어 이혼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그런데,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혼한 후 곧바로 새로운 열애설에 휩싸였는데요. 그녀의 새로운 남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집에서 화장실청소와 쓰러기수거를 담당했던 가사도우미 폴 리차드 솔리즈여서 큰 화제가 되고있습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초창기시절의 풋풋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Sometimes'를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Sometimes 노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0bPrt69rag 

 

Sometimes / 가사와 해석

 

you tell me you're in love with me

당신은 나에게 말하죠 당신은 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That you can't take your pretty eye away from me

그래서 나에게서 당신의 아름다운 눈을 뗄 수 없다고 말이죠

 

it's not that i don't want to stay

내가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는건 아니랍니다

 

But everytime you come too close

하지만 항상당신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i move away

난 떠나 버리지요

 

i wanna believe in everything that you say

당신이 말하는 건 모두 다 믿고 싶어요

 

Cuz it sounds good but if you really want me,

왜냐면 당신의 말은 너무나 달콤하니까요 하지만 진정 날 원한다면

 

move it slow

서둘러 떠나지 마세요

 

There's things about me you just have to know

당신이 나에 관해서 알아야 할게 있거든요

 

**반복

 

Sometimes I run

때로 난 도망치고

 

Sometimes I hide

때로는 숨어 버리죠

 

Sometimes I'm scared of you

때로는 당신이 두렵기도 하지요

 

But all I really want is to hold you tight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건 당신을 꼭 껴안는 것

 

Treat you right,be with you day and night

당신을 잘 대해주고,낮이나 밤이나 항상 당신과 함께 있는것

 

Baby, all I need is time

그대여,나한테 필요한 건 시간 뿐 이랍니다

 

I don't wanna be so shy, Everytime that I'm alone I wonder why

수줍어하긴 싫은데,혼자일 때마다 왜 수줍어 하는지 궁금해져요

 

Hope that you will wait for me

당신이 날 기다려주기를 바래요

 

You'll see that you're the only one for me

당신이 나의 유일한 사랑이란건 알게 될겁니다

 

I wanna believe in everyrthing that you say

당신이 말하는 건 모두다 믿고 싶어요

 

Ah cuz it sounds so good

아,왜냐면 그 말은 너무나 달콤하니까요

 

But if you really want me, move it slow

하지만 진정 날 원한다면 서둘러 떠나지 마세요

 

There's things about me, you just have to know

당신이 나에 관해서 알아야 할게 있거든요

 

Just hang around and you'll see

그냥 주변에 계세요 그러면 당신은 알겁니다

 

There's no where I'd rather be

내가 머물 곳이 당신 외에 없다는 걸알게 될거에요

 

if you love me,trust in you

날 사랑하다면,날 믿어주세요 내가 당신을 믿는 것처럼 말이예요

 

All I really want is to hold you tight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당신과 꼭 껴안는 것

 

Be with you day and night

밤낮으로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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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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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뉴튼존 사망과 사망이유, 히트곡 ‘Hopelessly Devoted to You’피지컬노래듣기

 

영국이 낳은 70,80년대 최고의 미녀팝가수 올리비아 뉴튼존이 유방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올리비아 뉴튼존은 7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미팝계의 '신데렐라'로 불리우면서 전세계 팝송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 시대의 대표적인 미녀아이돌이었죠.

 

지금도 7080세대의 마음속의 연인으로 남아있는 미녀팝스타 올리비아 뉴튼 존이 안타깝게도 8월 8일 항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2018년도에 척추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이어오다가 암이 악화되어 8일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남편 이스털링은 ‘올리비아가 오늘 아침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목장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히 잠들었다’고 그녀의 사망소식을 알렸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사실 1992년도에 이미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며, 그 후 투병생활을 계속해서 어느정도 암을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후 암이 다시 재발하고 다시 암투병생활을 반복해왔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암퇴치운동에 앞장서면서 암극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열심히 전개해나갔는데요.

 

그러나, 그녀는 4년전에 척추암 진단을 받고 또다시 고통스러운 암투병생활을 해왔는데, 결국 암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만 73세(우리나라 나이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 올리비아 뉴튼 존의 프로필

 

출생일 - 1948년 9월 26일생, 나이 75세

출생지 -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

키 - 168cm

국적 - 호주, 영국

학력 - 고졸(더 유니버시티 하이 스쿨)

장르 - 팝 컨츠리, 소프트 락

남편 - 맷 라탄지(84~95), 존 이스터링(2008~2022)

자녀 - 딸 클로이 라탄지

직업 - 가수, 작곡가, 환경운동가, 동물보호가

데뷔 - 66년도 영국에서 첫싱글 'Till You Say You'll Be Mine' 발표로 데뷔

 

올리비아 뉴튼 존은 ‘If Not for You’를 비롯해 ‘Have You Never Been Mellow’ ‘Don't Stop Believin’ ‘매직’ ‘제너두’ ‘Hopelessly Devoted to You’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해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70년대의 최고의 미녀디바랍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아름다운 미모, 세련된 매너, 뛰어난 가창력의 3박자를 골고루 갖춘 70년대의 최고의 미녀팝가수입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원래 영국에서 출생하였는데, 외할아버지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 막스 보른이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대학교수인 영국의 뼈대있는 가문출신입니다.

 

올리비아 뉴튼존의 첫히트곡은 ‘Let Me Be There’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서, 이 노래의 히트로 인해 우리나라에 올리비아 뉴튼 존의 팬들이 많이 생겨나는 계기를 마련한 곡이랍니다.

이 곡의 히트로 그녀는 그래미 최우수 여성컨트리 보컬상을 수상하면서, 미국팝계와 아시아에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답니다.

 

그리고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74년도에 발표한 ‘I Honestly Love You’가 빌보드차트 1위를 올라 크게 히트하게 되면서, 스타덤에 오르게된답니다.

 

또한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75년도에 발표한 ‘Have You Never Been Mellow’의 히트로 또한번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곡은 빌보드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세계적인 팝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된답니다.

 

얼굴이 예쁘고 인기가 좋은 팝가수는 으레껏 영화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마련이지요.

아름다운 미모와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지닌 올리비아 뉴튼 존은 영화사 '파라마운트 픽처스'에 스카웃되면서 존 트라볼타와 함께 뮤지컬영화 ‘그리스’에 첫 출연하게 됩니다.

 

그런데, 천생가수였던 올리비아 뉴튼 존이 처음으로 출연한 뮤지컬영화 ‘그리스’가 흥행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78년도에 제작비 60억원에 만든 영화 ‘그리스’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성공으로 무려 4,100억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면서 최고의 뮤지컬영화로 명성을 높혔는데요.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은 존 트라볼타와 함께 고등학생역으로 출연해 풋풋한 사랑을 나누면서 멋진 노래와 춤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70년대 후반의 최고의 뮤지컬영화였는데, ‘그리스’의 흥행성공과 함께 이 영화의 주제가도 엄청난 히트를 치게된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그리스’의 영화출연과 함께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불러서 주제가 또한 공전의 히트를 치게된답니다.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주제가는 ‘Hopelessly Devoted to You’로서, 이 노래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히트를 친 곡이랍니다.

 

‘그리스’에서 청순하고 지고지순한 여고생 샌디의 연기를 해내면서, 헤어진 남자친구 존 트라볼타를 그리워하면서 집 앞의 잔디밭에서 올리비아 뉴튼 존이 ‘Hopelessly Devoted to You’를 부르는 모습은 이 영화의 최고의 하이라이트장면이며, 정말 압권이었답니다.

 

영화 ‘그리스’의 주제가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Hopelessly Devoted to You’는 영화와 함께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공전의 대히트를 쳤고,

올리비아 뉴튼 존은 한국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청순한 미녀스타로 깊이깊이 각인시켰던 추억의 아름다운 노래랍니다.

 

오늘날 올리비아 뉴트 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Hopelessly Devoted to You’이지면, 이 노래 외에도 또 하나의 히트곡이 더 있는데, 바로 ‘Physical’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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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뉴튼 존의 ‘피지컬’은 그녀의 히트곡 중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노래이며, 올리비아 뉴튼 존을 대표하는 그녀의 진정한 대표곡입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81년도에 ‘Physical’을 발표해서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대히트를 쳤는데, ‘피지컬’은 빌보드차트에서 무려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이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역동적이면서도 섹시하게 춤을 추면서 ‘피지컬’을 부르는 장면은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팬들의 가슴에 설레이게 했으며, 그녀는 이 노래의 히트로 단번에 섹시의 심볼 같은 존재감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의 10주 연속 1위 신기록은 1992년 보이즈 투 멘의 "End of the Road"가 나오기 전까지, 11년 동안 최장기간 1위곡이라는 신기록을 보유한 곡이 되었답니다.

 

‘Hopelessly Devoted to You’가 올리비아 뉴트존의 청순한 미모를 돗보이게 했던 노래라고 한다면, ‘피지컬’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관능적이면서 섹시한 매력을 크게 어필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Hopelessly Devoted to You’는 은은하면서도 애절함이 묻어나오는 슬픈 느낌의 발라드같은 노래라고 한다면, ‘Physical’은 생동감 넘치면서, 달콤하면서도 감미로운 댄스풍의 노래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의 두 노래 ‘Hopelessly Devoted to You’와 ‘피지컬’이 올리비아 뉴튼 존의 최고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올리비아 뉴튼 존의 히트곡으로는 ‘매직’이 있는데, ‘매직’은 영화 ‘제너두’의 삽입곡으로 1980년도에 빌보드 차트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한 곡이지요. 또한 영화 ‘제너두’의 주제가 ‘제너두’도 크게 히트한 곡입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84년도에 무용수출신의 연하의 남편 매트 라탄지와 결혼하면서 일시적으로 연예계에서 은퇴하였지만, 9년이 지난 1995년도에 이혼하면서 다시 연예계로 복귀하게 됩니다.

매트 라탄지와 사이에 딸 한명이 있는데, 이 딸 클로이 라탄지가 올리비아 뉴튼 존의 유일한 자녀입니다.

 

남편 존 이스터링과 올리비아 뉴튼 존

 

그리고 올리비아 뉴튼 존은 2008년도에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두 번째 남편 존 이스터링과 재혼해서, 남부캘리포니아에 전원주택을 마련해서 잉꼬부부처럼 꿀떨어지는 금슬을 자랑하면서 결혼생활을 잘 유지해 왔습니다.

 

◆ 올리비아 뉴튼 존의 유방암 재발과 암 악화로 사망

 

그런데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92년도에 갑자기 유방암에 걸렸고, 그 때부터 오랜 세월동안 암투병생활을 해왔습니다.

한때 그녀는 유방암을 극복하고, 건강한 몸으로 환경운동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2008년도에 자신의 암투병 극복을 계기로 해서, 기금을 조성해 호주 멜버른에 ‘올리비아 뉴튼 존 암센터’를 건립했고, 이 암센터를 중심으로 암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지원사업과 암 연구사업을 함께 진행해오는 등 암퇴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습니다.

 

그런데, 2016년도에 이미 극복한 줄 알았던 유방암이 다시 재발하였고, 2018년도에는 유방암이 척추에까지 전이되면서, 그녀의 암이 더욱 악화되면서 또다시 암투병을 하게된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웠던 팝의 여왕 올리비아 뉴튼 존이 다시 재발한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8월 8일 자신의 저택에서 암 악화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올리비아 뉴튼존은 그래미상을 4번이나 수상했고, 빌보드 차트 1위에 7곡을 진입시켰으며, 음반 1억장 이상 팔린 70,80년대의 최고의 아름다운 디바였고, 7080세대의 영원한 마음속의 연인이었습니다.

 

7080세대의 영원한 마음속의 연인 올리비아 뉴튼 존의 죽음에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최고의 히트곡인 ‘Hopelessly Devoted to You’와 ‘피지컬’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올리비아 뉴튼 존의 ‘Hopelessly Devoted to You’ 노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oCY80x5VQg 

 

 

 

올리비아 뉴튼 존의 ‘ Physical’ 노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khSQFNRn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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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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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혼성그룹 아의 리드보컬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의 이혼사유, 탈퇴이유, 히트곡 'SOS'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 1950년 4월 5일, 나이 73세, 국적 스웨덴

아바 활동 시기 : 1972년 ~ 1982년, 재결합 2018년 ~ 현재

 

ABBA 멤버 -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메인보컬), 애니프리드 린스태드 (보컬), 비요른 울바에우스 (기타, 보컬), 베니 앤더슨 (키보드, 보컬)

 

1970년대 달콤하고 경쾌한 음악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아바(ABBA)는 당대의 전설적인 4인조 혼성그룹이었답니다.

 

1972년부터 스웨덴에서 그룹을 결성해 음악활동한 시작한 아바(ABBA)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팝그룹으로 성장해나갔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바(ABBA)는 1974년 유로비전송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70년대 초반 ‘Ring Ring’을 시작으로 하여 ‘워털루’ ‘허니 허니’ ‘맘마미아’ ‘페르난도’ ‘댄싱퀸’ ‘SOS’ 같은 명곡들을 발표하면서, 전세계의 음악팬들의 가슴을 완전 사로잡으면서, 세계 최고인기의 팝그룹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가히 70년대는 4인조 혼성그룹 아바(ABBA)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앨범 판매량만 3억 4천만장을 판매한 아바(ABBA)는 72년도부터 82년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 시대를 풍미해나갔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인종을 초월해서, 그리고 연령과 세대, 성별을 초월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최고의 팝그룹은 아바(ABBA)였으며, 아바는 70년대 당시 최고의 화두였고, 최고의 아이콘이었답니다.

 

70년대 당시, 아바는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인기 3인조걸그룹 쿨시스터즈가 아바(ABBA)의 노래 ‘Ring Ring’를 번안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쳤을 정도랍니다.

 

이렇게 1972년도에 데뷔해서 10년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아바였는데, 아바는 돌연 1982년도에 해체되고 맙니다.

 

인기절정의 시기에, 더군다나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진출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해가던 아바(ABBA)가 갑자기 해체된다고 발표하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되는데요.

 

아바(ABBA)가 갑자기 해체발표를 한 이유는 바로 아바의 리드보컬인 아그네사 때문이었답니다.

 

◆ 아바의 해체이유,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

 

그룹 아바의 메인보컬이었던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룹 아바(ABBA)가 큰 인기를 끄는데 견인차역할을 했던 아바의 핵심멤버였습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목소리도 아름다웠지만, 웨이브진 금발의 아름다운 머릿결과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로 아바 멤버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있었지요.

 

이렇게 사실상 그룹 아바를 이끌어가는 핵심멤버인 아그네사 팰트스코그가 갑자기 은퇴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인기절정의 시기에 왜 갑자기 그룹 가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던 걸까요?

 

아바(ABBA)는 원래 4인조 남녀 혼성그룹이었지요. 특히 멤버 두쌍이 서로 연인관계, 부부관계로 더욱 유명하답니다.

여성 메인보컬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와 기타를 담당하던 비요른 울바에우스가 서로 연인관계였으며, 여성 보컬 애니프리드 린스태드와 키보드를 담당하던 베니 앤더슨도 연인사이랍니다.

 

이렇게 두 연인이 함께 그룹 아바를 구성하고 있었고, 아바 활동 중에 두 연인은 결혼까지 하며 부부가 된답니다.

 

두쌍의 부부커플은 아바의 음악을 만들고 환상의 하모니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특히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그룹활동 중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범적인 커플로 팬들의 큰사랑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부부커플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사이는 삐꺼덕거리기 시작했답니다.

 

남편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내 아그네사 펠트스코그

 

한 인터뷰에서,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남편 비요른은 집에서 24시간 중 20시간동안 곡을 쓰느라, 저와는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남편 비유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답니다.

 

언제부턴가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공식석상에서 서로에 대한 비판을 하는가 하면, 공식석상에서 두사람 사이에 어두운 표정이 자주 포착되었으며, 부부가 함께 정신상담소를 다닐 만큼, 부부사이가 나빠졌다는 소문이 퍼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마침내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전격 이혼을 발표하게됩니다.

 

비요른은 이혼 2년만에 다른 여자와 재혼했고, 결국 1982년 아바는 활동중단을 선언하며 해체하고 맙니다.

 

10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서 최고인기의 혼성그룹으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아바가 해체된 가장 큰 이유는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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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의 해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대중들은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사유에 대해 알고 싶어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이혼한 지 2년도 체 되지않아서 비요른이 너무 빨리 재혼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비요른의 외도 때문에 이혼했다고 추측했으며, 비요른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가 지난 후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그네사와 비요른이 이혼한 것은 아그네사의 모성애 때문이었습니다.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1973년 딸 린다를 낳았는데요. 딸 린다가 1살이 되던 해 ‘워털루’가 크게 히트하면서 아바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바는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세계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콘서트를 치르느라 엄청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 유럽대륙을 여행다니면서 보통 한달 이상 집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그네사는 딸 린다를 직접 키울 수가 없었고, 보모에게 맡겨서 양육했답니다.

 

당시 세계투어를 다니던 아바는 보통 한번 투어를 다니면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 투어를 다녀왔을 때, 딸 린다는 엄마 아그네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아그네사는 자녀양육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답니다.

 

이 당시 아그네사는 아바의 리더인 남편 비요른에게 세계 투어기간을 2주로 줄여줄 것을 요구했는데요.

 

이 당시 아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며, 아바는 유럽대륙 뿐만 아니라, 호주와 미국 등 여러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공연을 펼칠 예정이기 때문에, 비요른은 아그네사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그네사는 가수로서 활동보다는 딸 린다를 직접 양육하는 엄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고, 세계투어 때문에 아그네사와 남편 비요른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77년 둘째아들 피터를 출산하면서, 두사람 사이에 자녀양육 문제는 더욱 큰 갈등요소가 되고맙니다.

 

미국투어를 앞두고,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았던 남편 비요른과 자녀양육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던 아내 아그네사 사이에 의견충돌로 인한 심각한 갈등이 생겼답니다.

 

아그네사는 가수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엄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결국 아그네사는 남편 비요른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며, 계약만료 후 아바를 떠나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러니까, 아그네사가 남편 비요른과 이혼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그네사의 자녀에 대한 모성애 때문이었습니다. 아그네사는 자녀양육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 남편 비요른과 이혼을 선택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 아그네사는 가까운 나라로 투어를 다닐 때에는 꼭 딸 린다를 데리고 다녔고,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982년 아바(ABBA)가 전격 해체된 후, 아그네사는 딸과 아들을 직접 양육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이혼한 후에도, 아그네사는 아빠 비요른의 집과 5분 정도 가까운 거리에 집을 마련해서, 아이들이 아빠와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또한 아그네사는 딸 린다와 함께 캐롤송을 부르는 크리마스 앨범을 내는 등, 엄마로서 철저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1년 칼 매그너스 팜에 의해서 아바의 전기에 대한 책 ‘밝은 빛 어두운 그림자’가 출간되면서, 아그네사와 비요른부부의 진짜 이혼사유가 밝혀졌고, 아그네사의 끈끈한 모성애에 많은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돈과 명예, 가수로서의 성공보다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한 아그네사의 뜨거운 모성애에 대해 전세계인들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바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평범한 엄마의 길을 선택한 아그네사를 존중해주고, 응원해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후 40년이 지난 2021년도에 놀라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바(ABBA)는 해체한 지 40년이 지난 2021년도에 다시 완전체가 되어서 컴백무대를 가졌답니다.

 

비록 나이가 70이 넘은 흰머리가 난 아그네사를 비롯한 비요른, 애니프리드,베니 앤더슨 등 아바의 전맴버가 다시 모여 아바를 결성하고 컴백공연을 가져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답니다.

 

어느덧 73세가 된 아그네사는 과거 자녀의 양육을 위해 이혼을 선택한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과 같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함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아그네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모성애가 강한 엄마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그네사가 이혼한 이유, 그리고 아바가 해체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그냥 끝낸다면 좀 섭섭하지요! 70년대 최고의 팝그룹 아바의 신나는 노래 한 곡 쯤은 들어보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아바의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자 아바의 최고의 히트곡인 'SOS'를 마지막으로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이 노래를 들어보신다면, 아바가 왜 70년대의 최고의 팝그룹인지, 그리고 아바 멤버 중 아그네사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요정인지를 충분히 실감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바의 히트곡 'SOS'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XTS47c6I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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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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