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혼성그룹 아의 리드보컬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의 이혼사유, 탈퇴이유, 히트곡 'SOS'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 1950년 4월 5일, 나이 73세, 국적 스웨덴

아바 활동 시기 : 1972년 ~ 1982년, 재결합 2018년 ~ 현재

 

ABBA 멤버 -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메인보컬), 애니프리드 린스태드 (보컬), 비요른 울바에우스 (기타, 보컬), 베니 앤더슨 (키보드, 보컬)

 

1970년대 달콤하고 경쾌한 음악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아바(ABBA)는 당대의 전설적인 4인조 혼성그룹이었답니다.

 

1972년부터 스웨덴에서 그룹을 결성해 음악활동한 시작한 아바(ABBA)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팝그룹으로 성장해나갔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바(ABBA)는 1974년 유로비전송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70년대 초반 ‘Ring Ring’을 시작으로 하여 ‘워털루’ ‘허니 허니’ ‘맘마미아’ ‘페르난도’ ‘댄싱퀸’ ‘SOS’ 같은 명곡들을 발표하면서, 전세계의 음악팬들의 가슴을 완전 사로잡으면서, 세계 최고인기의 팝그룹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가히 70년대는 4인조 혼성그룹 아바(ABBA)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앨범 판매량만 3억 4천만장을 판매한 아바(ABBA)는 72년도부터 82년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 시대를 풍미해나갔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인종을 초월해서, 그리고 연령과 세대, 성별을 초월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최고의 팝그룹은 아바(ABBA)였으며, 아바는 70년대 당시 최고의 화두였고, 최고의 아이콘이었답니다.

 

70년대 당시, 아바는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인기 3인조걸그룹 쿨시스터즈가 아바(ABBA)의 노래 ‘Ring Ring’를 번안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쳤을 정도랍니다.

 

이렇게 1972년도에 데뷔해서 10년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아바였는데, 아바는 돌연 1982년도에 해체되고 맙니다.

 

인기절정의 시기에, 더군다나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진출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해가던 아바(ABBA)가 갑자기 해체된다고 발표하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되는데요.

 

아바(ABBA)가 갑자기 해체발표를 한 이유는 바로 아바의 리드보컬인 아그네사 때문이었답니다.

 

◆ 아바의 해체이유,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

 

그룹 아바의 메인보컬이었던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아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룹 아바(ABBA)가 큰 인기를 끄는데 견인차역할을 했던 아바의 핵심멤버였습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목소리도 아름다웠지만, 웨이브진 금발의 아름다운 머릿결과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로 아바 멤버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있었지요.

 

이렇게 사실상 그룹 아바를 이끌어가는 핵심멤버인 아그네사 팰트스코그가 갑자기 은퇴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인기절정의 시기에 왜 갑자기 그룹 가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던 걸까요?

 

아바(ABBA)는 원래 4인조 남녀 혼성그룹이었지요. 특히 멤버 두쌍이 서로 연인관계, 부부관계로 더욱 유명하답니다.

여성 메인보컬 아그네사 팰트스코그와 기타를 담당하던 비요른 울바에우스가 서로 연인관계였으며, 여성 보컬 애니프리드 린스태드와 키보드를 담당하던 베니 앤더슨도 연인사이랍니다.

 

이렇게 두 연인이 함께 그룹 아바를 구성하고 있었고, 아바 활동 중에 두 연인은 결혼까지 하며 부부가 된답니다.

 

두쌍의 부부커플은 아바의 음악을 만들고 환상의 하모니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특히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그룹활동 중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범적인 커플로 팬들의 큰사랑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부부커플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사이는 삐꺼덕거리기 시작했답니다.

 

남편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내 아그네사 펠트스코그

 

한 인터뷰에서, 아그네사 팰트스코그는 남편 비요른은 집에서 24시간 중 20시간동안 곡을 쓰느라, 저와는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남편 비유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답니다.

 

언제부턴가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공식석상에서 서로에 대한 비판을 하는가 하면, 공식석상에서 두사람 사이에 어두운 표정이 자주 포착되었으며, 부부가 함께 정신상담소를 다닐 만큼, 부부사이가 나빠졌다는 소문이 퍼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마침내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전격 이혼을 발표하게됩니다.

 

비요른은 이혼 2년만에 다른 여자와 재혼했고, 결국 1982년 아바는 활동중단을 선언하며 해체하고 맙니다.

 

10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에서 최고인기의 혼성그룹으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던 아바가 해체된 가장 큰 이유는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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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의 해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대중들은 아그네사와 비요른의 이혼사유에 대해 알고 싶어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이혼한 지 2년도 체 되지않아서 비요른이 너무 빨리 재혼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비요른의 외도 때문에 이혼했다고 추측했으며, 비요른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가 지난 후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그네사와 비요른이 이혼한 것은 아그네사의 모성애 때문이었습니다.

 

아그네사와 비요른은 1973년 딸 린다를 낳았는데요. 딸 린다가 1살이 되던 해 ‘워털루’가 크게 히트하면서 아바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바는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세계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콘서트를 치르느라 엄청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 유럽대륙을 여행다니면서 보통 한달 이상 집을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그네사는 딸 린다를 직접 키울 수가 없었고, 보모에게 맡겨서 양육했답니다.

 

당시 세계투어를 다니던 아바는 보통 한번 투어를 다니면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 투어를 다녀왔을 때, 딸 린다는 엄마 아그네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아그네사는 자녀양육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답니다.

 

이 당시 아그네사는 아바의 리더인 남편 비요른에게 세계 투어기간을 2주로 줄여줄 것을 요구했는데요.

 

이 당시 아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며, 아바는 유럽대륙 뿐만 아니라, 호주와 미국 등 여러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공연을 펼칠 예정이기 때문에, 비요른은 아그네사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그네사는 가수로서 활동보다는 딸 린다를 직접 양육하는 엄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고, 세계투어 때문에 아그네사와 남편 비요른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77년 둘째아들 피터를 출산하면서, 두사람 사이에 자녀양육 문제는 더욱 큰 갈등요소가 되고맙니다.

 

미국투어를 앞두고,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았던 남편 비요른과 자녀양육에 더욱 충실하고 싶었던 아내 아그네사 사이에 의견충돌로 인한 심각한 갈등이 생겼답니다.

 

아그네사는 가수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엄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결국 아그네사는 남편 비요른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며, 계약만료 후 아바를 떠나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러니까, 아그네사가 남편 비요른과 이혼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그네사의 자녀에 대한 모성애 때문이었습니다. 아그네사는 자녀양육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 남편 비요른과 이혼을 선택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 아그네사는 가까운 나라로 투어를 다닐 때에는 꼭 딸 린다를 데리고 다녔고,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982년 아바(ABBA)가 전격 해체된 후, 아그네사는 딸과 아들을 직접 양육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이혼한 후에도, 아그네사는 아빠 비요른의 집과 5분 정도 가까운 거리에 집을 마련해서, 아이들이 아빠와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또한 아그네사는 딸 린다와 함께 캐롤송을 부르는 크리마스 앨범을 내는 등, 엄마로서 철저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1년 칼 매그너스 팜에 의해서 아바의 전기에 대한 책 ‘밝은 빛 어두운 그림자’가 출간되면서, 아그네사와 비요른부부의 진짜 이혼사유가 밝혀졌고, 아그네사의 끈끈한 모성애에 많은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돈과 명예, 가수로서의 성공보다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한 아그네사의 뜨거운 모성애에 대해 전세계인들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바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평범한 엄마의 길을 선택한 아그네사를 존중해주고, 응원해주었답니다.

 

그런데, 그 후 40년이 지난 2021년도에 놀라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바(ABBA)는 해체한 지 40년이 지난 2021년도에 다시 완전체가 되어서 컴백무대를 가졌답니다.

 

비록 나이가 70이 넘은 흰머리가 난 아그네사를 비롯한 비요른, 애니프리드,베니 앤더슨 등 아바의 전맴버가 다시 모여 아바를 결성하고 컴백공연을 가져서,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답니다.

 

어느덧 73세가 된 아그네사는 과거 자녀의 양육을 위해 이혼을 선택한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가족과 함께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과 같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함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아그네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모성애가 강한 엄마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그네사가 이혼한 이유, 그리고 아바가 해체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그냥 끝낸다면 좀 섭섭하지요! 70년대 최고의 팝그룹 아바의 신나는 노래 한 곡 쯤은 들어보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아바의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자 아바의 최고의 히트곡인 'SOS'를 마지막으로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이 노래를 들어보신다면, 아바가 왜 70년대의 최고의 팝그룹인지, 그리고 아바 멤버 중 아그네사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요정인지를 충분히 실감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바의 히트곡 'SOS'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XTS47c6I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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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감미로운 샹송) 실비 바르탕의 노래 ‘마리짜강변의 추억’ & ‘시바의 여왕’ 노래듣기

 

오늘은 감미로운 샹송 한곡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우리나라에서 샹송이 크게 유행했던 시기는 70년대이지요. 특히 프랑스에는 유명한 샹송가수들이 우리나라에 알려지면서 70년대에 샹송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살바토레 아다모와 에디트 피아프 등 쟁쟁한 샹송가수들의 노래가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특히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샹송가수를 꼽으라면 실비 바르땅을 꼽을 수 있지요.

 

샹송의 문외한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샹송의 진정한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던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의 샹송의 여제 실비 바르땅이라고 할 수있답니다.​

 

샹송은 아주 먼 나라의 낮설은 노래라고 느껴졌던 시기였는데, 이 샹송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노래라는 것을 일깨워졌던 가수가 바로 실비 바르탕이었답니다.

 

실비 바르땅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프랑스의 샹송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갖게해준 샹송의 메신저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비 바르탕의 히트곡인 ‘마리짜강변의 추억(La Maritza)’은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아온 샹송 1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비 바르땅의 또다른 히트곡 '시바의 여왕'도 한국과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샹송명곡 '시바의 여왕'은 70년대 당시 FM라디오의 김세원의 가요산책의 시그널음악으로도 사용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실비 바르땅을 세계적인 샹송스타로 만들어준 곡은 바로 ‘시바의 여왕’과 '마리짜강변의 추억' 등 이 두곡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실비 바르땅의 '마리짜강변의 추억'은 1968년도에 발표되어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크게 히트했던 명곡인데, 50여년이 지금까지도 올드팬들에게 가장 감미롭고 달콤한 추억의 샹송으로 가슴 깊이 남아있는 곡입니다.

 

실비 바르탕의 대표적인 히트곡인 '마리짜강변의 추억'은 다음과 같은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소재가 되는 마리짜강변은 불가리아 이스크레츠에 있는 큰 강입니다.

그리고 실비 바르땅은 원래 프랑스인이 아니라 불가리아에서 출생한 불가리아인입니다.

 

그런데, 실비 바르땅이 소녀시절에 살었던 그 당시의 불가리아는 공산주의국가로 시민들을 심하게 탄압했던 자유가 없었던 억압적인 나라였기에, 실비 바르땅은 8살 때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공산주의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을 오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샹송가수로 성공하면서 프랑스의 샹송스타가 된 실비 바르땅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담아서 고향에 있던 마리짜강변을 소재로 해서 '마리짜강변의 추억'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담아 만들어 불렀던 '마리짜강변의 추억'이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히트를 했고, 실비 바르탕은 세계적인 샹송스타로 우뚝 솟아올랐던 겁니다.

 

1968년 실비 바르땅은 ‘마리짜강변의 추억’을 만들어 부름으로써, 불가리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노래했고,

‘마리짜강변의 추억’은 세계적으로 대히트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알려져서 60, 70년대를 대표하는 샹송의 레전드가 되었던 겁니다.

 

공산주의국가였던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유의 갈망을 담아 노래했던 '마리짜강변의 추억'이 수많은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세계적인 샹송명곡으로 널리 애창되게 된 특별한 사연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실비 바르탕은 ​프랑스내에서 음반이 가장 많이 팔린 가수로 유명하답니다.

 

그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가수 실비 바르땅의 '마리짜강변의 추억'과 '시바의 여왕'을 계속해서 들어보도록 하겠어요!

 

​​

 

실비 바르땅의 ‘마리짜강변의 추억’ 뮤직동영상

 

www.youtube.com/watch?v=xhstAjPjdJM

 

 

 

 

실비 바르탕의 '시바의 여왕' 노래 동영상

 

www.youtube.com/watch?v=wiubtt7JVRI&list=PLzam3LKS7qXDXvrAV41sp8b4hKj5ndIuZ

 

 

 

 

 

 

시바의 여왕 가사

 

그녀가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어요

날 이끌어 주길 바래요

나의 인생을 망쳐버린 날 미치게하던 그 행동~

내 마음은 끝없는 추억에 파묻혀,

아무리 물어 보아도 헛소리를 할 뿐

 

돌아 와서 그대의 왕국을 재건해 주세요

그대는 나의 시바의 여왕

돌아와서 나에게 베풀어 주세요

그대를 조금만……

나는 다른 시선을 받아 들이려고 애써봤죠

그러나 다른 발소리를 기다릴 수는 없었죠

 

들리나요

의심할 것도 없이

그대는 우리 두사람의 추억으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져 있을 거예요

내 탓인지. 아니면 그대의 탓인지

내가 본의는 아니지만

그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은~

 

와서 그대의 왕국을 되찾으세요

그대, 사바의 여왕이여

다시 오셔서 내게

아주 적은 적선이라도 베풀어 주세요

와서 그대의 왕국을 되찾으세요

그대가 이 왕국에서 다시 살기를

그는 고대하고 있어요

그대, 사바의 여왕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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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샹송번안곡 가수 이숙의 눈이 나리네노래 동영상 / 가사, 아다모의 원곡 통블라네주(tombe la neige)’

 

올해 첫눈이 언제 내렸을까요?

2021년도에는 예년보다 첫눈이 매우 늦게 내려서 많이 아쉬움이 남았는데요.

 

2021년도의 첫눈은 1210일에 내렸답니다.

자고 일어나니 창밖에 야트막히 쌓인 첫눈을 보니, 좀 아쉬움도 생기지만, 그래도 드디어 금년도에 첫눈이 내렸다는 반가움에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첫눈이 오면, 마치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신나고 설레는 마음이 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첫눈이 이세상의 모든 오염된 공기와 추한 모습들을 모두 가려주고, 깨끗하게 정화해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산과 들을 새하얗게 물들어놓는 첫눈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낭만적이고 황홀하게 만들어주는 신비한 마력을 갖고 있어요!

 

이처럼 겨울이 다가오고 첫눈이 오면, 항상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지요.

바로 이숙의 노래 눈이 내리네가 첫눈이 올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겨울의 전주곡이지요.

 

 

70년대 중반에 나온 이숙이 불러서 크게 히트했던 노래 눈이 내리네입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눈이 오면, 항상 제일 먼저 듣게 되는 추억의 노래가 바로 눈이 내리네가 아닐까 합니다.

 

원래 이숙의 노래 눈이 내리네는 프랑스의 샹송가수 아다모가 먼저 불러서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던 명곡이지요.

 

이숙의 눈이 내리네는 아다모의 히트곡 통블라네주(tombe la neige)’를 국내가요로 번안해서 만들어 이숙이 발표하여, 70, 80년대에 크게 히트했던 대중적인 노래입니다.

 

이숙의 허스키하고 매혹적인 목소리와 눈이 내리는 낭만적인 이미지가 잘 조합이 되어서, 애절하면서도 황홀한 멜로디가 풍겨나오면서 우리들의 가슴을 적시는 70년대의 명곡이 바로 이숙의 눈이 내리네입니다.

 

가수 이숙은 정말 70,80년대를 허스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풍미했던 전설적인 여가수이지요.

 

 

 

70년대 초반 우리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숙은 길옥윤작곡가에 스카웃되어서1974년도에 샹송번안곡인 눈이 내리네를 발표해 크게 히트하면서, 전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불세출의 가수이지요.

 

이숙은 작곡가 길옥윤과 손잡고 70년대에 큰 활약상을 보였는데, ‘우정’ ‘슬픔이여 안녕’ ‘나를 잊으셨나요등의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인기높은 대중적인 가수였죠.

 

특히 이숙은 다른 가수들이 전혀 흉내낼 수 없는 허스키하고 우렁찬 목소리와 탁월한 가창력으로 진정 실력있는 가수로서 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랍니다.

 

그녀의 허스키하고 우렁찬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의 국보급 목소리를 지닌 가수라는 대단한 칭송을 받았었고

거기다가 그녀의 탁월한 가창력은 그녀를 톱가수의 반열에 올라놓기에 충분했었지요.

 

특히 70년대 중반 이숙은 눈이 내리네와 또다른 곡 눈이 나리네를 발표해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허스키보이스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이숙이 발표한 샹송번안곡 눈이 내리네와 순수한 국내 창작곡 눈이 나리네가 동시에 히트하면서, 이숙은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국보급 가수로 70년대를 풍미했었답니다.

 

그런데, 이숙은 70년대 후반 섹스폰 연주자와 결혼했다가 곧바로 이혼하면서, 불행이 찾아왔고

80년대 초반 가수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우리가요계를 떠나서 많은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겨놓았답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 이숙은 10년 동안의 미국이민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왔고, 2008년 국제심판 박동안씨와 재혼해서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이숙은 간간히 가요무대나 콘서트7080에 출연해서, 왕년의 히트곡 눈이 내리네우정을 다시 불러서, 많은 올드팬들로 하여금 옛 추억과 향수에 젖어들게 하고 있답니다.

 

 

참고로, 이숙이 눈이 내리네는 프랑스의 인기 샹송가수 살바토레 아다모가 63년도에 발표해서 크게 히트했던 ‘tombe la neige(통블라네주)’를 번안해 발표한 곡이랍니다.

 

감미롭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지닌 살바토레 아다모는 60, 70년대에 프랑스와 유럽에 여러곡의 히트곡들을 발표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전설적인 미남 샹송가수랍니다.

 

허스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지닌 아다모의 노래를 허스키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를 지닌 이숙이 번안해 불러서 크게 히트함으로써

이숙의 눈이 내리네와 함께 아다모의 원곡 ‘tombe la neige(통블라네주)’가 동시에 히트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답니다.

 

 

 

이숙의 눈이 내리네는 정말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아름다운 곡입니다.

 

70년대 중반에 발표되어 지금까지 우리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불리워졌고,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아왔던 애창가요는 이숙의 눈이 내리네가 아닐까 합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고요하고 적막한 12월의 겨울밤에 이숙의 눈이 내리네를 들으면서, 겨울밤의 낭만적인 정취와 향수에 푹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숙의 눈이 내리네노래 동영상

 


 

 

 

 

 

 

이숙의 눈이 나리네노래 동영상

 


 

 

 

 

 

아다모의 ‘tombe la neige(통블라네주)’ 노래 동영상

 

 

 

 

 

 

 

 

 

이숙 눈이 내리네 가사

 

눈이 나리네 당신이 가 버린 지금

눈이 나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

 

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

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눈이 내리는 외로운 이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나는 외로운 소녀

 

하얀 눈을 맞으며 떠나 버린 이 길에

하얀 눈만 내리네 수북 수북 쌓이네

 

하얀 눈만 내리네 수북 수북 쌓이네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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