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남배우 아랑 드롱의 경호원 마르코비치 살인사건의 범인, 부인들

 

오늘은 프랑스의 최고미남배우와 관련된 음모와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60,70년대의 최고 미남배우를 한명 꼽으라면, 단연 프랑스의 알랭 들롱을 꼽을 수가 있지요.

60,70년대에 프랑스의 갱단영화와 범죄사회물 영화에 자주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알랭 들롱은 전세계의 모든 여자들이 흠모했던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였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프랑스의 범죄사회물 영화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 때 프랑스영화에 단골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가장 멋지고 잘생긴 미남배우 알랭 들롱!

그의 잘생긴 얼굴과 멋진 연기를 보고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홀딱 반해서, 단번에 알랭 들롱의 한국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답니다.

 

60,70년대에 ‘태양은 가득히’ ‘암흑가의 두사람’ ‘빅건’ ‘볼사리노2’ ‘시실리안’ ‘레드선’같은 유명한 걸작품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당대의 미남스타 알랭 들롱은 당시 동서양을 통틀어 잘생긴 남자의 대명사였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기적인 미남스타로 동서양을 초월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알랭 들롱이 뜻밖에도 의문의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맙니다.

 

6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근교의 이블린 쓰레기장에서 잠자리를 찾고있던 노숙자가 쓰레기장 구석에서 뜻밖의 사람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쓰레기장 구석에서 침대보에 둘러쌓인 죽은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요.

 

노숙자의 신고에 의해서 출동한 경찰의 조사결과, 그 시신의 주인공은 세르비아출신의 31세 남성 ‘스테판 마르코비치’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테판 마르코비치는 프랑스의 유명한 미남배우 알랭 들롱의 경호원이었습니다.

 

아니, 왜 알랭 들롱의 경호원이 31살의 젊은 나이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일까요?

 

경찰은 알랭 들롱의 경호원인 마르코비치의 주검에 대해 누군가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규정한 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게 됩니다.

 

마르코비치가 죽기직전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그를 보디가드로 고용한 알랭 들롱이었고, 당연히 경찰은 알랭 들롱을 참고인으로 출두시켜 조사하게 됩니다.

 

60,70년대 잘생긴 미남자의 대명사이자, 유명한 프랑스배우였던 알랭 들롱이 자신의 경호원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조사까지 받게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게 됩니다.

 

알랭 들롱은 자신이 고용한 자신의 개인경호원이 피살된 체, 시신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경찰은 알랭 들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알랭 들롱이 마르코비치를 처음 만나게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랑 드롱은 1962년 세르비아에서 영화 ‘마르코 폴로’를 촬영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촬영장부근에서 두 갱단간의 치열한 패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패싸움을 자세히 보니, 한명의 건장한 남자가 다른조직의 남자들 17명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고, 그 남자가 17명의 남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혼자서 매우 용감하고 민첩하게 다른 갱단 남자들 17명을 쓰러뜨린 그 남자가 바로 스테판 마르코비치였고, 알랭 들롱은 스테판 마르코비치를 전격적으로 자신의 경호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알랭 들롱은 경호원으로 고용한 마르코비치를 자신의 친동생처럼 아까주면서 잘 대우해주었습니다.

 

당시 알랭 들롱은 상류층 사교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그 때마다 마르코비치를 데리고가서 사교파티에 참석하게 했을 정도로, 마르코비치를 잘 챙겨주었습니다.

 

이렇게 알랭 들롱은 자신의 경호원 마르코비치와 형·아우하면서 아주 끈끈한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 알랭 들롱, 자신의 경호원 마르코비치 사망사건의 살해용의자로 지목

 

그런데, 마르코비치 시신 발견 5일 뒤, 경찰은 돌연 알랭 들롱을 참고인에서 용의자로 전환시켰답니다.

경찰이 갑자기 알랭 들롱을 마르코비치 살해용의자로 전환시킨 이유는 마르코비치가 죽기 전에 동생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었답니다.

 

마르코비치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건 알랭 들롱과 마르칸토니에 의해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고, 이 편지의 내용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알랭 들롱이 살해용의자로 의심받게된 것입니다.

 

마르코비치는 생전에 알랭 들롱과 또다른 사람 마르칸토니가 자신을 살해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있었는데요.

마르칸토니는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의 마피아출신의 거물급 갱단간부이며, 알랭 들롱과 매우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마르코비치의 사망일은 9월 22일이었고, 그 때에 알랭 들롱은 프랑스 남동부 생트로페에서 영화 ‘태양은 알고있다’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르코비치가 사망한 날, 알랭 들롱은 분명히 남동부 생트로페에서 영화촬영을 하고있었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확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알랭 들롱이 친구 마르칸토니를 사주해서 마르코비치를 살해했다고 알랭 들롱을 살해 사주용의자로 지목했는데요.

 

즉, 알랭 들롱 자신이 직접 살해한 것이 아니라, 절친 마르칸토니를 시켜서 살해했다는 것인데요.

 

경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알랭 들롱은 왜 자신의 경호원 마르코비치를 살해한 것일까요?

 

알랭 들롱이 마르코비치를 살해한 이유는 바로 마르코비치와 알랭 들롱의 부인 나탈리 들롱때문이라고 합니다.

 

마르코비치는 알랭 들롱의 부인 나탈리 들롱을 몰래 만나 정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사람의 불륜관계를 눈치 챈 알랭 들롱은 곧바로 경호원 마르코비치를 해고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쫒겨난 마르코비치는 나탈리 들롱의 나체사진과 속옷사진 등을 알랭 들롱에게 편지에 동봉해 보냈고, 이것을 대중에게 공개할 수도 있다고 협박하면서, 알랭 들롱에게 여러차례 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즉, 마르코비치는 알랭 들롱의 부인 나탈리 들롱과 불륜관계를 맺고있었고, 그녀와 찍은 불륜장면 사진을 언론에 팔 수 있다고 협박해서, 알랭 들롱에게 거액의 돈을 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알랭 들롱으로서는 정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인데요!

 

마르코비치의 이같은 배은망덕한 행동에, 알랭 들롱으로서는 정말 기가 막히고 괘심했습니다.

 

밑바닥생활을 하던 마르코비치를 데려다가 경호원으로 채용하고, 친동생처럼 끔찍이 아껴주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마르코비치는 알랭 들롱의 부인과 불륜을 맺었을 뿐아니라, 나체사진을 미끼로 협박까지 해댔습니다.

 

이러한 마르코비치의 배은망덕한 행동에 분개한 알랭 들롱이 갱단요원이자 친구인 마르칸토니에게 마르코비치를 살해할 것을 사주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경찰이 마르코비치의 살해용의자로 알랭 들롱을 지목한 이유입니다.

 

마르코비치는 침대보에 쌓인 체, 쓰레기장에 버려졌는데요. 경찰은 그 침대보와 똑같은 침대보를 구입한 모든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했는데, 총 8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침대보를 구입한 사람의 명단에는 놀랍게도 알랭 들롱의 절친 마르칸토니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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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알랭 들롱의 사주를 받은 마르칸토니가 마르코비치를 살해했다는 경찰의 주장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경찰은 마르코비치사망과 관련해 구체적인 혐의가 확인된 마르칸토니를 먼저 구속했답니다.

 

그런데 마리코비치 살인사건과 관련해 전혀 뜻밖의 인물이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바로 프랑스수상을 지낸 적이 있고,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나선 조르주 퐁피두였답니다.

 

경찰이 마르코비치의 차를 수색하던 중, 마르코비치의 차안에서 퐁피두부인 클로드 퐁피두의 나체사진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부인 클로드 퐁피두가 남편이 아닌 외간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있는 사진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조르주 퐁피두는 드골정부에서 수상까지 지냈던 유력한 정치인이었는데, 나중에 드골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수상직을 사임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수상에서 사임한 퐁피두는 후에 차기대통령후보로 전격 나서면서, 드골대통령과 차기대통령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정적관계가 되었는데요.

 

퐁피두가 대통령에 출마하려던 찰나에, 갑자기 퐁피두부인의 음란스캔들이 터진 겁니다.

 

퐁피두부인의 나체사진이 발견되면서, 마르코비치가 파티에서 퐁피두의 부인 클로드 퐁피두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루머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차기 대선후보에 나선 조르주 퐁피두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게된답니다.

 

그런데, 조르주 퐁피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이 스캔들은 드골정권이 대선후보로 나선 자신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 거짓으로 만들어낸 정치조작극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전 파리경찰청장 뤼시앵은 다음과 같은 양심선언을 했는데요.

뤼시앵은 15년 전 마르코비치가 죽은 후, 드골정권의 지시를 받고 자신이 풍피두부인의 가짜음란사진을 만들어 퍼뜨렸다고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그당시 조르주 퐁피두가 수상직에서 물러난 후 차기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를 하자, 퐁피두의 지지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샤를 드골대통령은 자신의 비밀정보기관 SDECE를 이용해서 퐁피두의 부인 클로드 퐁피두의 가짜 음란사진을 만들어 가짜스캔들을 터뜨렸다는 겁니다.

 

실제로 상부의 지시를 받은 뤼시앵 전경찰청장은 퐁피두부인과 매우 닮은 40대의 금발매춘부를 발굴했고, 그녀의 음란사진을 촬영해서 퍼뜨리면서, 퐁피두부인 음란스캔들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고백했답니다.

결국, 퐁피두는 반대세력의 정치공작에 의해서 마르코비치사건에 연루된 것일뿐, 마르코비치살인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그러니까, 드골정권에서 퐁피두에게 큰 타격을 주기 위해서, 가짜로 퐁피두부인 스캔들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퐁피두부인의 음란스캔들은 드골정권의 정치공작에 의해서 가짜로 만들어진 가짜스캔들임이 15년만에 명백히 밝혀졌답니다. 결국 퐁피두는 1969년도에 대선에 출마해서 프랑스대통령에 당선이 되지요.

 

마르코비치는 상당한 지능범이었는데요. 알랭 들롱은 마르코비치를 동생처럼 아끼면서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에 데리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알랭 들롱과 함께 파티장에 참석했던 마르코비치는 알랭 들롱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있었습니다.

 

마르코비치는 파티장의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알랭 들롱과 여자들이 술에 취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모습들을 모두 카메라로 촬영해놓았고, 그 사진을 미끼로 해서 알랭 들롱에게 큰돈을 달라고 협박을 가했습니다.

 

이 당시 마르코비치는 도박에 빠져있었고, 자신의 도박빚이 점점 불어나니까 알랭 들롱을 만만하게 보고 이런 협박과 범죄행위를 서슴치않고 해댄 것입니다.

 

아뭏튼 마르코비치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알랭 들롱은 경찰로부터 여러차례에 걸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르코비치 살인혐의로 구속된 후 기소되었던 마르칸토니는 증거불충분으로 11개월만에 석방되었답니다.

 

7년에 걸친 재판과정에서 알랭 들롱은 자신은 마르코비치 살인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끝까지 부인을 했고, 결국 마르코비치 살인사건은 범인은 전혀 밝혀지지않은 채, 미해결사건으로 남게됩니다.

 

그리고 강력한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던 알랭 들롱도 무혐의판정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1985년도에 마르칸토니는 ‘누가 마르코비치를 죽였나’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서 마르칸토니는 마르코비치살인사건에 대해 아주 모호한 말로 결론을 지었는데요.

 

‘마르코비치 살인범에 대해서는 나(마르칸토니)와 알랭 들롱, 그리고 신 이렇게 세사람만이 그 진실을 알고있다’라고 ~

 

마르칸토니는 마르코비치살인사건에 대해 자신과 알랭 들롱 두사람만이 그 진실을 알고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런데, 마르칸토니는 2010년도에 돌연 사망했기 때문에, 이제 마르코비치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알랭 들롱 한사람뿐입니다.

 

그리고 알랭 들롱은 마르코비치살인사건의 진실에 대해 끝까지 함구할 것이며, 그 진실을 무덤까지 갖고갈 것입니다.

 

과연 마르코비치의 살인범은 누구일까요? 세계적인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정말 마르코비치의 살인범일까요?

경찰이 구체적인 증거를 잡지못했기 때문에, 알랭 들롱과 마르칸토니가 혐의에서 벗어났을 뿐이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마르코비치 살인범으로 두사람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뭏튼 세계적인 미남배우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알랭 들롱이 살인범으로 의심을 받았던 충격적인 마르코비치살인사건은 현재까지도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 알랭 들롱의 부인들

 

알랭 들롱은 총 네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알랭 들롱의 첫 번째 부인은 독일 출신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이지요. 알랭 들롱은 1958년도에 영화 ‘사랑은 오직 한 길’에서 로미 슈나이더와 만나 사랑에 빠졌답니다.

두사람은 곧바로 약혼을 하면서 동거에 들어갔지만, 1963년 5년의 열애 끝에 두사람은 결별하고 맙니다.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결별한 이유는 알랭 들롱이 외도해서 사생아를 낳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탈리 들롱과 알랭 들롱

 

알랭 들롱의 두 번째 부인은 프랑스의 유명한 여배우 나탈리 들롱인데, 나탈리 들롱과는 1964년부터 1969년까지 5년동안 부부생활을 유지했는데, 나탈리 들롱이 알랭 들롱의 유일한 법적부인이라고 합니다.

 

알랭 들롱은 총 4명의 부인을 두었지만, 그녀들 중 유일하게 혼인신고를 한 공식부인은 나탈리 들롱이 유일합니다.

이것은 알랭 들롱이 두번째 부인인 나탈리 들롱을 그만큼 끔찍하게 사랑했었기 때문이랍니다.

 

알랭 들롱 스스로 나탈리 들롱을 상대로 혼인신고까지 해서 정식부인으로 삼았던 것은, 그녀와 진짜로 백년해로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랭 들롱의 이런 생각은 뜻밖의 경호원 마르코비치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결국 두사람은 마르코비치 살인사건으로 인해 서로 심각한 상처를 받고 헤어지고 맙니다.

 

두사람 사이에는 안소니 들롱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안소니 들롱은 현재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랭 들롱이 가장 오랫동안 동거해온 여인은 미레유 다르크이며 알랭 들롱과 미레유 다르크는 무려 15년 동안이나 관계를 지속했을 만큼 매우 끈끈한 사이였는데, 두사람은 1982년 돌연 결별하고 맙니다.

두사람이 결별한 이유는 미레유의 지병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헤어진 이후에도 두사람은 오랫동안 좋은관계를 유지해왔으며, 2017년도에 미레유 다르크가 사망했을 때, 알랭 들롱은 무척 가슴 아파했다고 합니다.

 

또한 알랭 들롱은 미국여가수 마리안느 페이스풀고도 염문을 뿌렸고, 프랑스의 섹시심벌 브리지트 바르도와도 뜨거운 염문을 뿌리기도 했답니다.

 

알랭 들롱은 1987년도에 21세의 네덜란드의 모델 로잘리 판브레멘와 만나 15년간 동거생활을 했답니다.

알랭 들롱과 로잘리 사이에 딸 아누슈카 들롱과 아들 알랭 파비앙 들롱을 낳았지요, 그리고 현재 성인이 된 아들은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60, 70년대 세계적인 미남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알랭 들롱이 연루된 경호원살인사건과 그의 부인들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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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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