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의 업적과 사망원인, 기무라와의 대결동영상

사랑방 이야기 2018. 6. 27. 14:03

 

프로레슬링의 영웅 역도산의 일생과 사망원인, 기무라와의 경기

 

역도산 1924~ 1963년, 키 181cm, 몸무게는 110kg

 

역도산은 우리나라의 레슬링계의 최고의 거장이자, 일본 프로레슬링의 기반을 닦아놓은 인물이다.

한국과 일본의 레슬링계에서 역도산만큼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인물은 또 없을 것이다.

 

만일 역도산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레슬링이나 일본의 레슬링은 탄생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역도산은 한국과 일본의 레슬링역사에 가방 큰 족적을 남겼던 위대한 레슬러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60~70년대에 래슬링의 붐을 일으켜놓았던 김일도 역도산의 수제자였고, 일본 프로레슬링의 실력자 안토니오 이노끼와 자이언트 바바 모두 역도산의 제자들이었다.

 

이렇게 20세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던 인물들을 모두 키워냈고,

동북아지역에서 프로레슬링의 흥행성공을 이룩했던 역도산은 한국과 일본의 프로레슬링의 기반을 닦아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1950년대에 일본에는 두명의 조선인 출신의 영웅이 존재했는데, 그 하나가 바로 실전가라데로 전일본 가라데고수들을 벌벌 떨게 했던 최배달이며, 또다른 한사람은 바로 일본프로레슬링계의 영웅 역도산이었다.

 

두사람은 모두 1950년대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최배달은 일본가라데계를 석권했던 불패의 가라데맨이었고, 역도산은 일본 프로레슬링을 창설하고는 수많은 강자들을 물리치면서 일본 프로레승링의 중흥을 이룩해냈던 인물이다.

 

이렇게 한사람은 일본가라데맨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고, 또다른 사람은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기반을 확립한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는데,

두사람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서, 한판 대결을 펼칠 뻔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바로 역도산의 프로레슬링 경쟁자였던 일본의 기무라선수 때문이라고 한다.

 

이 게시글에서는 역도산이 기무라와의 경기로 인해서 최배달과 서로 적대관계가 되었던 이야기와 역도산이 사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역도산, 일본에서 최고의 프로레슬러가 되다

 

원래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이었던 역도산은 한국에 있을 때는 꽤 실력있는 씨름선수로 활동했었고, 원래 역도산집안 전체가 씨름선수들이었다고 할 정도로 힘이 좋고 괴력이 뛰어난 장사집안이었다.

 

원래 한국이름이 김신락인 역도산은 1940년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스모선수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나갔는데,

49년도에 역도산은 안타깝게도 스모대회 정상의 직전에서 좌절을 맛보았고, 결국 스모를 그만두게 된다.

 

그런데 역도산이 스모를 그만둔 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고, 그에게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술집에서 역도산과 우연히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던 상대방은 프로레슬러인 해롤드 사카타였는데, 두사람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지만,

서로 막상막하의 실력으로 싸움은 승부가 나지않았고, 결국 서로의 엄청난 힘에 감탄한 두사람은 서로 화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프로레슬러의 소개로 인해서, 역도산은 마침내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역도산은 먼저 미국으로 진출해서 미국인들과 프로레슬링경기를 치르면서, 기술과 실력을 연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프로레슬링 경력을 기반으로 해서 NWA프로모터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NWA 프로모터의 자격을 얻은 역도산은 일본으로 돌아와서 1951년도에 일본프로레슬링협회를 창설했고, 본격적인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게 된다.

 

50년대 초반 당시 불모지와 같았던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도입해서 프로레슬러로써 왕성하게 활동했던 역도산은 가라데촙이라는 자신만의 신무기를 개발해내었다.

 

역도산은 그의 전매특허인 강력한 힘과 가라데촙으로 미국의 샤프형제를 제압하는 등 수많은 미국의 프로레슬러들을 물리쳤고, 마침내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역도산은 1951년도부터 1962년도까지 11년 동안 수많은 프로레슬링경기를 치렀고, 미국과 유럽의 강호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서 모두 물리치는 등 연전연승을 기록했고, 일본에서는 최고의 스포츠선수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역도산은 전설적인 미국의 프로레슬러인 루 테즈에게 도전했는데, 당시 루 테즈는 936승이라는 연승행진을 이어나갔던 미국 프로레슬링계의 거장이었다.

 

역도산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가라데촙을 연속적으로 퍼부어서, 루 테즈를 맹렬히 몰아부친 끝에, 루 테즈를 당당히 제압해서 WWA 레슬링챔피언의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일본인들은 엄청나게 환호했고, 이로써 역도산은 일본인들의 최고의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역도산이 일본에서 최고의 레슬러로 인기를 끌고있을 무렵에, 역도산은 그의 태그매치 동료이자 라이벌인 기무라와의 경기가 열리게 됐다.

 

역도산 대 기무라의 경기

 

기무라 마사히코는 원래 일본 유도계의 최고실력자였고, 전일본유도대회에서 숱하게 우승을 차지했던 유도의 신 같은 존재감이었고 일본무도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유도의 달인이었던 기무라는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초기에는 그는 역도산과 한팀이 되어서, 미국레슬러들을 상대로 여러차례 태그매치를 치러나가면서 함께 호흡을 이뤄나갔다.

 

이렇게 한동안 역도산과 동반자관계를 형성했던 기무라는 어느정도 프로레슬러로서의 경력이 쌓이자, 자신만의 독자적인 프로레슬링단체를 만들었고, 마침내 역도산과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다.

 

독립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프로레슬링단체를 만든 기무라와 역도산은 서로간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고, 서로 일본 최고의 레슬러의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두 선수인 역도산과 기무라간의 경기가 치러진다면,

일본에서 최고의 흥행카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과 함께 일본 프로레슬링관계자들은 두선수간의 라이벌전 경기를 전격 추진하게 되었다.

1954년 역도산 대 기무라선수간의 역사적인 라이벌전 경기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사실 이 경기는 사전에 각본이 짜여진 쇼경기였다.

 

두선수 모두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프로레슬러였기 때문에, 두 선수의 위신이 구겨지지 않는 범위내에서, 세 번의 경기를 치러서 111무승부의 경기를 만들어내도록 사전에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도에 역도산 대 기무라의 첫번째 경기가 열리게 되었는데, 이 경기는 서로 무승부로 결과가 나오게끔 사전에 합의가 이루어진 경기였다.

 

그런데 역도산 대 기무라간의 실제경기가 시작되고 난 후,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역도산이 기무라를 코너에 몰아넣고 엄청나게 구타를 가하고 두들겨팼던 것이다.

 

경기 초반에는 역도산과 기무라가 정상적인 레슬링기술로 경기를 진행해나갔지만, 경기가 종반전에 접어들었을 무렵에, 마치 격투기경기인 것처럼 역도산이 기무라를 코너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두들겨패는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 종반전에 접어들자, 역도산이 기무라를 마치 샌드백처럼 일방적으로 주먹과 발로 두들겨팼던 것이다.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기로 서로 약속해놓고, 역도산은 왜 기무라를 이토록 두들겨 팬 것일까?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 역도산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역도산은 처음에 약속했던 데로 기무라와 각본대로 경기를 치러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역도산 자신과 기무라가 서로 레슬링기술을 주고받으면서 경기를 진행해나갔는데, 경기 종반전 11분경에, 기무라가 갑자기 자신의 급소를 발로 찼다고 한다.

 

갑자기 급소를 얻어맞고서 너무나도 화가난 역도산은 기무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그때부터 상대로 진짜 승부를 펼쳤다는 것이다.

 

, 역도산의 주장은 기무라가 먼저 약속을 깼기 때문에, 자신도 약속을 깨고 자신의 실력대로 실전경기를 펼쳤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역도산의 주장은 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가 자신의 실력대로 진짜경기를 펼쳤다고 하는데, 종반전 1140초경에 기무라가 역도산에게 발로 차고난 후,

그 후부터 역도산은 자신의 가라데촙과 주먹으로 기무라를 난타했고, 주저앉은 기무라의 얼굴을 수차례 발길질로 무차별 가격했다.

 

역도산의 발차기를 여러차례 머리에 얻어맞은 기무라는 곧바로 실신하고 말았고, 이로써 역도산은 기무라를 상대로 완전한 ko승을 거둔 것이다.

 

이런 역도산의 행동에 다음과 같은 분석이 나온다.

이 당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흥행을 위해서, 일본레스링계의 두거장인 역도산 대 기무라의 경기를 만들었다.

 

두선수가 사전에 무승부로 하자고 각본을 짜고 합의를 했지만, 일본의 최고의 프로레슬러 뿐만아니라,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를 꿈꾸고 있었던 욕심많은 역도산은 자신의 라이벌인 기무라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도륙내어서,

다시는 자신의 아성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심 갖고 있었다고 본다.

 

다시는 자신의 아성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역도산은 기무라를 코너에 몰아넣고 주먹과 발길질로 무타별 난타를 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약속한 데로 각본경기를 치르려고 했던 기무라는 거의 무방비상태로 역도산의 기습적인 난타공격을 받고,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뭏튼 역도산이 사전 약속을 깬 것이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기무라를 그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역도산은 자신이 최고의 레슬러라는 스포츠라이터를 한몸에 받기위해서, 약속을 어기고 기무라를 배신하고 두들겨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실력으로 볼 때는 역도산이 기무라보다 한 수위였다고 본다. 그 경기의 초중반전의 내용을 보더라도, 역도산이 힘과 기술에 있어서 기무라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만일 두선수가 진짜경기를 펼쳤다고 한다면, 분명히 역도산이 이겼을 것이다.

 

역도산으로서는 프로레슬링의 흥행을 위해서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의 선수와 무승부로 경기를 치르는 것에 내심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역도산이 기무라와 사전 약속한대로 각본경기를 치러나갔다.

 

그러다가 종반전에 기무라의 발길질 도발을 당한 후에, 역도산의 본성이 되살아난 것이고, 역도산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기무라를 무참히 깨버리고 자신이 일본 최고의 레슬러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어했던 것이다.

 

아뭏튼 결과적으로 역도산이 합의를 깨고, 승리를 쟁취했으니,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일본에서 최고의 유도선수로 전국민적으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기무라가 수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도산에게 샌드백처럼 처참하게 두들겨 맞다가 기절까지 하는 대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 기무라전으로 인해서, 역도산은 또다른 조선인영웅인 최배달과 서로 원수지간이 된다.

왜냐하면 최배달은 기무라와는 매우 절친한 친구사이였고, 최배달도 역도산과 기무라경기가 사전합의된 각본경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두사람의 경기가 각본에 의한 쇼경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역도산이 갑자기 약속을 깨고 자신의 친구인 기무라를 무참히도 두들겨팬 것을 본 최배달은 눈에 불이 났고, 엄청나게 분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배달은 친구인 기무라의 복수를 하기위해서, 역도산에게 도전하게 된다. 몇 달 후에 나이트클럽에서 역도산을 만난 최배달은 역도산에게 도전의사를 밝혔다.

 

그곳은 역도산이 단골로 드나들었던 동경의 나이트클럽이었고, 그날 역도산은 나이트클럽의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려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 순간 느닷없이 최배달이 무대로 올라와서 역도산에게 도전의사를 밝힌 것이다.

 

최배달의 갑작스러운 도전을 받은 역도산은 깜짝 놀랐는데, 그다음에 역도산은 매우 비겁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최배달이 무대에 올라와서, 역도산에 맞대결을 펼치자고 도전을 한 순간, 역도산은 마이크의 쇠파이프를 잡고 최배달에게 겨누었다고 한다.

 

최배달은 역도산이 자신의 도전을 받고, 정정당당하게 맨주먹으로 응해올 것을 기대했는데,

맨주먹 대신에 쇠파이프를 잡고 휘두르는 역도산의 비겁한 모습을 본 최배달은 역도산에게 비겁자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결국 최배달과 역도산의 대결을 벌어지지 않았지만, 최배달의 도전에 무기를 들고 대항한 역도산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과거에는 서로 친분이 있었던 두 조선인 최배달과 역도산은 기무라와의 경기로 인해서, 서로 철천지 원수 같은 앙숙지간이 되었다.

   

역도산의 사망과 그 이유, 음모론

 

역도산은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를 창설했고, 일본 프로레슬링의 흥행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역도산은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링선수로서 세계챔피언까지 지냈지만, 그는 매우 석연치않은 이유로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렇게도 강했던 역도산이 한참 활동해야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진짜이유는 무엇일까?

 

196312월 도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역도산은 야쿠자똘마니인 무라타 가쓰시와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졌고, 그 야쿠자가 휘두른 단도를 배에 맞고 병원에 입원 후에 사망하고 만다.

 

그당시 역도산이 나이트클럽의 화장실에서 야쿠자 똘마니와 시비가 붙어서 그를 두들겨 팬 것인데, 얻어맞은 그 야쿠자 무라타는 곧바로 칼을 꺼내어 역도산의 배를 찔렀고, 복부에 부상을 입은 역도산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이 당시 역도산을 칼로 찌른 무라타는 야쿠자조직인 스미요시 가이의 단원이었는데, 그가 역도산에게 몇 대 맞은 후에 작은 단도로 역도산의 배를 찌른 것이다.

 

이 당시 역도산이 사망하게 되는 과정에는 많은 의혹점이 노출되고 있다.

역도산이 칼을 맞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에는 회복중에 있었다고 한다.

 

128일 역도산이 칼에 찔린 후에,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후인 1215일 역도산이 갑자기 숨을 거뒀다고 한다.

 

역도산이 수술을 받아서 회복되던 중이었는데, 회복되던 사람이 갑자기 악화되어서 숨졌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욱이 역도산이 칼에 찔린 후에 받았던 수술을 성공적이었고, 수술을 받은 후 회복된 역도산의 몸상태도 매우 좋았다고 한다.

 

이처럼 수술을 받은 후에 역도산은 신문도 읽었다고 하며, 병실에서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프로레슬링흥행을 위해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수술 후에 회복상태에 있던 역도산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고, 갑자기 숨졌다고 하니,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사인은 화농상 복막염이라고 하는데, 상처를 받은 소장부위에 다시 부작용이 생겨서 사망했다고 한다.

 

역도산의 부인은 역도산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의료진의 의료사고 때문에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일각에서는 이러한 역도산의 죽음에 대해서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음모론에 의하면, 당시 역도산은 일본 우익정치인들과 야쿠자들이 서로 공모해서 죽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역도산은 남북문제와 민족화해문제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역도산은 1960년대에 여러차례에 걸쳐서 남한과 북한을 왕래했었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남북한 공동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프로레슬링대회를 개최할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큰성공을 거둔 역도산은 일본국민들의 최고의 영웅으로 올라섰는데, 그런 역도산이 60년대 접어들면서, 남북한 화해와 한반도통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남북한 화해를 위해서 여러분야에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 역도산은 일본인행세를 하였고, 일본인들의 영웅이었는데, 그런 역도산이 갑자기 남북한 화해와 한반도통일에 관심을 갖는 민족주의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자,

일본 우익정치인들은 역도산의 변절에 크게 실망을 했고, 야쿠자를 사주해서 변절자 역도산을 제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하며, 결국 역도산은 야쿠자조직인 스미요시 가이의 단원인 무라타에게 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일본인의 절대적인 영웅이었던 역도산이 민족주의자로 변절된 행동을 하자,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우익 야쿠자조직이 서로 공모해서, 변절자 역도산을 제거했다고 하는 것이 음모론의 내용이다.

 

40세의 젊은 나이에 매우 석연지않은 죽음을 맞이한 역도산의 죽음에 대해서, 이 음모론이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두 번의 수술을 받고 두 번의 수술이 모두 다 성공했고,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 회복해가고 있던 역도산이 갑자기 악화되어 숨졌다고 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힘들며, 보이지 않은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50년대 일본과 한국의 프로레슬링의 기반을 닦고, 레슬링의 흥행을 성공시켰던 한국과 일본의 가장 위대한 프로레슬러 역도산은 정말 안타깝게도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역도산은 50~60년대에 세계프로레슬링계에서 최고의 레슬러임에는 틀림없고, 이렇게 훌륲한 선수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역도산이 왜 훌륭한 선수였는지는 아래의 경기동영상을 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도산 대 기무라 경기동영상

 

 

 

 

 

 

역도산 vs 루 테즈의 경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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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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