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윤미라 결혼하지 않은 이유, 젊은시절의 미모, 불륜사건 스캔들

 

윤미라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매력적인 미녀여배우로, 특히 영화를 통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이지요,

 

지금은 장년의 나이라서 주로 드라마에서 아줌마역할을 하고 있는데, 70~80년대만 해도 윤미라는 장안에 소문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던 몇안되는 대표적인 미녀여배우였답니다.

 

70~80년대 윤미라는 한국의 마릴린 몬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배우로서 큰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였답니다.

 

윤미라는 70년대에 최고의 스타였던 김지미와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왕성한 배우활동을 벌였었고

당시 최고의 미남배우였던 신성일, 남궁원, 윤일봉과 함께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당대를 대표하는 섹시하고 관능적인 여배우로서 명성을 떨쳤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사로잡으면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매력적인 미인여배우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주로 어머니 같은 조연역할을 하고 있으니, 정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답니다.

 

 젊은 리즈시절 윤미라의 사진

 

그럼, 7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글래머스타인 윤미라의 젊은 리즈시절의 연기활동이야기와 그녀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어요!

 

윤미라의 출연영화

 

윤미라는 1969년도에 영화 사랑하고 있어요에 단역배우로 처음 데뷔하게 되었어요!

 

윤미라는 69년도에 처음 데뷔했고, 70년대에 영화배우로서 많은활동을 했기 때문에, 70년대 배우라고 할 수 있구요

물론 그녀는 80년대에도 활동을 벌였지만, 윤미라는 70년대에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가장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였답니다.

 

윤미라가 영화배우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탁월한 미모 때문이랍니다.

윤미라는 고등학교 시절에 그녀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소문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윤미라는 이미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모를 떨쳤다고 하는데, 73년도 초등학교 시절에 그녀는 리틀미스코리아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다고 합니다.

 

윤미라는 광주여고를 나왔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의 눈에 확 띄일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기에

주위사람들로부터 영화배우로 데뷔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던 윤미라는 어떻게 보면 등 떠밀려서 배우로 데뷔하게 된 케이스랍니다.

 

여자가 얼굴이 예쁘면, 주위에서 다 알아보고 그녀에게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윤미라는 젊었을 시절, 커다란 키에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커다란 눈에 조각으로 빚은 것 같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세련된 미인이었답니다.

 

70년대에 20대의 시절을 보낸 윤미라의 키는 168cm로서, 상당히 볼륨있고 날씬한 몸매를 갖고있어서, 섹시한 매력까지 듬뿍 풍기는 윤미라는 70년대의 최고의 글래머스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70년대에 키가 168cm이라고 하면, 지금의 여자아이돌 평균키보다 더 큰 키로서, 여배우로서 천부적으로 탁월한 몸매를 타고났으며

얼굴 또한 서구적이고 세련된 미모를 갖고 있어서, 그 당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여배우였답니다.

 

70년대에 등장한 신트로이카 삼인방들과도 경쟁하면서, 전혀 밀리지않았을 정도로 윤미라는 연기력도 출중하고, 미모도 탁월했던 당대의 글래머미인이랍니다.

 

윤미라는 73년도에 영화 처녀뱃사공에 출연해서, 매우 참신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이 영화의 히트로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라게 된답니다.

  

그리고 윤미라는 77년도에 영화 고가에 출연해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 영화로 그녀는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스타급 여배우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답니다.

 

또한 윤미라는 78년도 영화 엄마없는 하늘 아래에서 명품연기를 선보여서 백상최우수 여자연기상을 따내면서, 성공한 여배우로서 승승장구해나갑니다.

 

이처럼 윤미라는 69년부터 80년까지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가면서, 영화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냅니다.

 

이 시기에 윤미라는 매일같이 남성팬들로부터 수백통의 러브레터를 받았다고 하며, 그녀의 높은 인기 때문에 우편배달부가 매일같이 수백통의 편지를 나르느라 다리가 통통 부을 정도라고 합니다.

 

윤미라는 조각같은 미모와 풍만한 육체, 그리고 섹시하고 글래머스한 매력을 풍기면서, 한국 최고의 섹시스타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답니다.

오죽하면 윤미라에게 한국판 마릴린 몬로라는 닉네임이 붙었겠습니까?

 

이 당시 윤미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여배우로서 미국에도 소개되었다고 하며, 허리우드영화에도 진출할 기회가 왔습니다!

, 윤미라는 1979년도에 우리나라배우로서는 최초로 허리우드영화에 스카웃되어서, ‘! 인천이라는 영화까지 찍었다고 합니다.

 

영화 ! 인천은 당시 570억이라고 하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한국전쟁을 소제로 한 영화로서, 허리우드영화사에세 제작한 영화인데

이 영화에 다른 수많은 여배우들을 제치고 윤미라가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스카웃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007영화를 만들었던 유명한 테렌스 영감독이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허리우드 연출가들이 참여한 이 영화 오 인천에 여주인공으로 한국여배우를 물색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소문을 듣고 윤미라도 이 영화 여주인공 오디션에 31번째로 참가했는데, 테렌스 영 등 허리우드 제작진이 윤미라의 탁월한 미모를 보고, 단번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윤미라는 당시 한국의 기라성 같은 많은 여배우들을 제치고, 당당히 여주인공자리를 꽤찰 수 있었답니다.

 

당시 미국제작자들의 눈에는 윤미라가 한국 최고의 미인으로 각인되었던 겁니다

당시 윤미라의 게런티는 5,000만원이었는데, 이 때가 1979년도인데, 당시 물가를 감안한다면 지금 돈으로 10억원이 넘는 큰 금액입니다.

 

지금 톱클라스의 배우들이 게런티로 10억원을 받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윤미라가 이 허리우드영화를 통해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영화 ! 인천에 출연을 시작하려할 때, 윤미라에게 엄청난 스캔들이 터졌고, 바로 간통스캔들이 터져버린 겁니다.

 

갑자기 간통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윤미라는 다 잡아놓았던 허리우드영화 출연이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윤미라의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 후반에 갑자기 터져버린 윤미라의 간통사건 스캔들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어요!

 

윤미라의 양말공장 사장과 간통사건 스캔들

  

미국허리우드에 진출할 정도로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윤미라는 이 스캔들이 터짐으로써, 최고의 정점에서 밀려나, 어두운 나락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맙니다.

 

한국최고의 스타이자 허리우드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데, 이 스캔들 하나로 윤미라의 세계진출이 발목이 잡히고, 그녀의 인생이 확 뒤바꾸어버립니다.

 

윤미라의 간통사건 스캔들은 1979년에 일어난 스캔들로서, 당시 29세였던 윤미라는 34세의 홍문웅과 함께 간통혐의로 피소되어서, 재판을 받았던 사건이랍니다.

 

당시 양말공장 사장이자 유부남이었던 홍문웅은 윤미라와 연인관계로 교제를 해왔는데, 자신과 윤미라는 10여차례나 동침을 했다고 홍씨가 한 주간지기자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홍씨는 자신이 윤미라와 정을 통한 후, 1천만원을 빌려주었는데, 윤미라가 빌려간 돈을 갚지않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당시 홍씨는 윤미라와 함께 찍은 사진까지 그 주간지기자에서 보여주었고, 그 주간지기자의 보도에 의해서, 윤미라와 홍씨의 이같은 불륜사실이 대대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세상은 발칵 뒤짚어졌답니다.

 

윤미라는 자신과 동침했다고 주장한 홍씨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를 해서, 두사람은 치열한 법정다툼을 벌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홍씨의 부인 권씨가 윤미라와 홍씨를 간통혐의로 고소하면서, 윤미라와 홍씨의 간통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게 되었답니다.

 

, 윤미라는 자신과 동침했다고 주장한 양말공장 사장 홍씨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를 했고

동시에 윤미라는 홍씨의 부인 권씨에 의해서 간통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윤미라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었는데, 서울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두사람이 간통했다는 혐의가 불충분하다.

둘째, 설사 두사람이 간통을 했다고 하더라도, 두사람이 동거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돈을 주고받고 몇 번 바람핀 것으로, 이것을 간통으로 볼 수 없다.

 

이 두가지가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가 윤미라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내린 판시내용이랍니다.

 

이 때는 70년대 후반으로, 판사의 판단으로 미루어볼 때에, 서로 좋아하면서 동거를 할 정도로 두사람이 끈끈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간통으로 인정하는 것이 이 당시의 인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사람이 돈을 주고받으면서 정사를 벌인 것은 간통으로 보지않는다는 것으로, 지금의 가치관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뭏튼 윤미라는 불구속결정으로 구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간통재판을 받게되었고, 무려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윤미라가 홍씨를 고소한 명예훼손소송에서는 승소를 했고, 홍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가, 최종심에서는 벌금 5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답니다.

 

그런데, 윤미라 간통사건에서는 또다른 쟁점이 하나 있는데, 홍씨가 윤미라에게 돈 1,000만원을 빌려주고 받지못했다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재판에서 윤미라는 자신이 홍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만큼은 인정했습니다.

윤미라는 200만원은 홍씨가 자신을 동생으로 삼은 기념으로 그냥 준 것이고, 나머지 800만원은 어머니사업 자금으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리고 윤미라는 홍씨가 빌려준 800만원은 고의로 안갚은 게 아니라, 사정이 여의치않아서 아직 갚지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답니다.

  

200만원을 동생으로 삼은 기념으로 그냥 준 것이라고 하는 윤미라의 주장과 동침을 하면서 200만원을 준 것이라는 홍씨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부분이라서, 이 부분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과연, 윤미라의 주장이 맞을까요, 아니면 홍씨의 주장이 맞을까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윤미라가 간통사건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하니, 윤미라가 돈받은 부분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뭏튼 79년도에 터진 윤미라의 양말공장 사장과의 간통사건 스캔들로 인해서, 윤미라는 무려 3년동안 기나긴 재판을 받았고, 비록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인기로 먹고사는 윤미라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고 말았답니다.

 

이당시 배우는 공인으로서 대중들의 모범이 되야하고, 높은 도덕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시대랍니다.

여배우가 간통사건에 휘말린 것 자체만으로도 사실여부를 떠나서, 인기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간통스캔들 이후에도 윤미라는 3편의 영화에 더 출연하였지만, 그녀는 이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인해서 톱스타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잃게 되었고, 82년 이후에는 더 이상의 영화출연을 하지않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윤미라와 양말공장 사장 홍씨와의 간통스캔들의 알려지지않았던 뒷얘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사실은 윤미라와 홍씨가 교제한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양말공장 사장 홍씨가 윤미라와 만나 사귈 당시에,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속이고, 총각인 것처럼 행세를 해서, 윤미라와 교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홍씨가 유부남인 사실이 탄로가 났고, 윤미라는 유부남인 홍씨와 곧바로 결별을 했습니다.

윤미라가 자신을 매몰차게 차버리고 만나주지 않자, 크게 분개한 홍씨는 복수심에 불타서, 윤미라와의 밀월관계를 폭로함으로서, 그녀에게 복수를 한 것입니다.

 

남녀간의 관계가 만날 때에는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상대이지만, 헤어지고난 후에는 원수가 되어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70년대 만해도 40여편의 영화에 주연급으로 계속 출연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래머 미녀스타로 각광을 받았던 윤미라였지만

간통스캔들 때문에, 이미지가 크게 깎어어서 80년대에는 고작 3편의 영화출연을 끝으로 더 이상 영화출연이 불가능하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윤미라는 영화배우에서 TV드라마로 활동영역을 옮겼고,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드라마에서 각광받는 중견탤런트로 제2의 연기인생을 펼쳐나가게 된답니다.

 

윤미라는 82년부터 단막극 열녀문을 시작으로 해서,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새벽’ ‘한지붕 세가족’ ‘정 때문에’ ‘소문난 칠공주’ ‘굳세어라 금순아’ ‘그대 없인 못살아등 수많은 인기드라마에 출연해서

풋풋한 중년아줌마 역할을 거침없이 해오는 등 매우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82년도에 탤런트로 전향한 이후부터 2019년까지 윤미라가 출연했던 드라마는 무려 75편이나 될 정도이니, 이제 윤미라는 드라마의 여왕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스크린에서는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신 같은 여주인공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탤런트로 전향한 후에는 초기 몇작품을 빼놓고는 드라마에서 거의 아줌마, 주인공 어머니 등 조연역할을 도맡다시피해서, 윤미라는 자존심이 상할 만 하지만

이제는 중년배우로서 조연이 갖고있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배역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보람을 갖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윤미라,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이유

 

그런데, 윤미라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않고 혼자 산다고 합니다. 이 점이 정말 이해하기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70년대에 허리우드영화사에 스카웃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글래머스타로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녀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미라는 1951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70세인데, 그녀는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지요.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한가지로 단정지어서 말하기는 힘듭니다.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로 몇가지를 들 수 있는데요.

 

첫째, 그녀는 집에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노릇을 해오는데 몰두한 나머지, 연애를 멀리한 것이 결혼하지 않게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미라는 두명의 남동생과 두명의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부양하는 등 가족들을 먹여살리는데 몰두한 나머지, 남자와의 연애는 소홀히하고 멀리했던 겁니다.

 

그리고 윤미라가 벌이들인 돈의 관리를 어머니가 도맡아해왔다고 하며, 윤미라는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받아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효녀였던 윤미라는 어머니가 싫어하는 행동을 일체 하지않았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고 책임지는 일에 몰두하느라, 결혼할 시기나 기회를 놓친 것으로 판단됩니다.

 

둘째, 70년대 말에 터진 양말공장 사장과의 간통사건 스캔들이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라고 판단됩니다.

 

윤미라는 이 사건이 생기기전까지는 인기절정의 최고의 스타였고, 여배우로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양말공장 사장과의 간통사건에 휘말리면서, 무려 3년동안이나 기나긴 재판을 받아오면서, 그녀의 불륜사건이 대한민국 전체에 퍼져나갈 정도로 모든 이에게 알려져서, 그녀는 엄청난 이미지의 타격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 양말공장 사장 홍씨는 자신이 유부남인 것을 숨기고 그녀에게 접근한 것어서

아마도 윤미라는 이 간통스캔들로 인해 엄청난 마음의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이 사건으로 인해 남자에 대한 환멸감을 크게 느꼈을 겁니다.

 

남자에 대한 환멸감, 남자에 대한 환상이 무너진 그녀가 더 이상 남자로 인한 충격과 상처를 받지않기 위해서, 그사건 이후에 남자를 의도적으로 멀리하였을 것이고

그러한 생활이 고착화되면서 시간을 계속 흘러서 혼기를 놓친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일에 완전 적응한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지금의 윤미라 사진

 

한번 남자와의 잘못된 교제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큰 낭패를 보았던 윤미라는 마음속에 커다란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고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와 환멸감 때문에, 윤미라는 의도적으로 더이상 남자와의 만남을 피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에 대한 환멸감은 남자와의 연애에 대한 체념감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에는 계속 독신의 삶에 완전 적응해버린 겁니다.

이것이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장년기에 접어든 현재의 윤미라는 영원히 독신으로 살아가길 원할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윤미라는 몇해전에 방송에 나와서, 자신은 아직도 결혼할 꿈을 꾸고있다는 말을 했답니다.

 

윤미라는 방송에서 자신의 결혼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답니다.

 

윤미라는 앞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결혼을 하면 남편과 함께 자선사업을 하면서 살고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70년대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글래머스타가 지금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다는 자체가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웠던 윤미라가 젊었을 때에 터진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지금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윤미라가 독신으로 사는 이유는 여배우에게 최고의 도덕성을 요구해온 우리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색안경을 끼고 보는 눈 때문은 아닐까 자문하게 됩니다.

 

윤미라가 자신의 말대로, 머지않아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서, 꼭 결혼에 골인해서, 더욱 행복한 여생을 즐겼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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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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