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살해사건의 진실와 범인, 실제 사진과 아들, 박정희

사랑방 이야기 2020. 10. 19. 20:06

 

정인숙 피살사건의 내막과 전모, 살해범은 누구인가, 박정희와의 관계

 

오늘은 역사저널에서도 방영된 바가 있는 정인숙 피살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해요!

 

정인숙 살인사건은 박정희대통령이 통치하던 제3공화국의 최대의 정치스캔들로 유명했던 사건입니다.

 

정인숙은 60년대 당시 고급 요정에 근무했던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으로서, 그녀는 당시 정재계의 수많은 실력자들을 상대했던 고급 호스티스로 유명세를 떨쳤던 여인이지요.

 

정인숙은 1970317일 밤 11시경 합정동 부근 강변3로에서 자동차를 몰고가던 중 의문의 남자들로부터 두발의 총격을 받아서 살해되었고

이것은 제3공화국을 온통 뒤흔들어놓았던 최대의 미스테리 살해사건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정인숙 살인사건은 당시 방년 26살의 꽃다운 나이의 정인숙이 갑자기 괴한으로부터 살해당한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은 당시 그녀의 차를 운전했던 그녀의 친오빠 정종욱이 살해범으로 지목되면서,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줬던 미스테리 살인사건입니다.

 

정인숙 사진

 

정인숙 피살사건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정인숙이라는 여인의 정체를 설명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정인숙의 정체, 그녀는 누구인가?

 

살해당했던 정인숙의 수첩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60년대 후반 당시 정치계와 경제계의 실력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수십명의 명단이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인숙의 수첩에는 심지어 박정희대통령의 연락처까지도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고급 정치인콜걸 내지인 고급 정치인로비스트였을까요?

 

정인숙의 정체가 궁금한 까닭은 그녀가 제3공화국의 최고권력층 인사들을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도 상대했던 엄청난 관록을 지닌 여인이었기 때문이랍니다.

  

당시 제3공화국의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경호실장, 그리고 공화당의 유력한 정치인들, 재벌총수들 등등 

그녀의 수첩에는 보통사람들은 결코 만날 수 없는 정치계와 경제계의 거물급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빽빽이 적혀있었다고 하니

정인숙이 그당시 얼마나 대단한 여성이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정인숙은 원래 고급 요정의 호스티스로 명성을 떨쳤던 여인이지요. 정인숙은 장안에 빼어난 미모를 갖춘 손꼽히는 미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여인이었지요.

그리고 정인숙은 영어회화 실력도 상당히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럼, 정인숙이 어떻게 해서 3공화국의 최고권력층에까지 접근해서 커다란 권세와 명성을 누리게 되었는지, 그녀의 인생역정과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정인숙은 원래 명지대학교를 중퇴했는데, 그녀는 외부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자신이 마치 이화여대를 나온 것처럼 학벌을 속였다고 합니다.

 

정인숙의 집안이 원래는 떵떵거리며 잘살았던 집안이었는데, 대구부시장이었던 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이 때부터 정인숙의 성격이 삐뚤어지고 제대로된 공부를 하지못하여 그녀가 이화여대에 진학했으나 낙방한 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서울문리사범대학 즉, 지금의 명지대학교에 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정인숙은 어려서부터 매우 도도하고 자존심이 무척 강한 성격이었는데, 그녀는 한 때 미스코리아가 되는 걸 원했지만, 집안의 결사반대로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정인숙은 배우가 되길 희망했으며, 배우가 되는 길을 찾기위해 충무로를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대학시절인 63년도에 시나리오작가 장사공을 만나서 열애를 하면서 교제를 시작하고, 급기야 두사람은 동거까지 하였으나, 두사람은 1년 만에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정인숙은 이미 20대 초반 시절에 작가 장사공을 만나 동거까지 하였으니, 사실상 장사공이 정인숙의 첫사랑이었고, 첫 번째 남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정인숙의 아버지는 장사공을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정인숙을 잘 맡아달라고 여러번 부탁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사공이 시나리오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되자, 두사람 사이에 금이 가고 결국 결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인숙은 배우의 꿈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 후 잠깐 모델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인숙이 배우와 모델일을 알아보기 위해서 자주 충무로를 드나들었고, 충무로의 한 다방에서 그녀의 미모를 보고 감탄했던 김마담이 그녀에게 접근해와 요정에서 일할 것을 권유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정인숙은 20대 초반의 젊은나이에 김마담이 운영하는 요정에서 접대부의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정인숙이 요정에서 접대부로 일하게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된답니다.

정인숙은 타고난 요염하고 섹시한 미모로 요정의 뭇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그녀의 줏가가 크게 올라갑니다.

 

또한 정인숙은 빼어난 미모 못지않게 뛰어난 영어회화 실력을 갖고 있어서, 그녀는 얼마뒤 북한산자락에 있는 최고의 비밀요정 선운각으로 스카웃되어 갑니다.

 

그런데 이 선운각은 60년대 당시 최고 권력층인사들과 재계의 실력자들이 드나드는 비밀요정이었고, 일반인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고급 비밀요정이었지요.

 

선운각

 

정인숙은 정치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선운각에서 일하면서, 공화당정부의 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서 한동안 교제를 했고, 또한 그 고위인사를 통해서 공화당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정부와 공화당의 고위직 인사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잠자리를 한 정인숙은 그때부터 유력정치인들의 성적 노리개감으로 전락하게 된답니다.

 

일각에서는 요정을 전전하는 정인숙을 일컬어 고급정치인 콜걸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미모와 관능미가 워낙 빼어났던 정인숙은 요정계에서 금방 유명해졌고, 선운각 등 여러 요정들을 오가면서 그녀의 몸값은 크게 높아졌고

돈을 많이 벌게된 그녀는 씀씀이가 커지고 사치를 일삼았으며,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녀의 콧대는 더욱 높아지고 더욱 도도해졌습니다.

 

당시 청와대모임을 비롯한 고위직 정치인모임에서 전국에서 미모가 뛰어난 여인 200명이 차출되었는데, 그 중에서 미모순으로 다시 최종 20명을 선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20명 중에서도 특히 미모가 뛰어난 여인 5명을 최종적으로 선발했는데, 그 최종선발된 미인 다섯명 중에서 정인숙의 미모가 단연 1등이었다고 합니다.

 

3공화국이 통치하던 60년대 중후반 당시 정인숙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정인숙은 비록 원래의 꿈인 영화배우로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그녀는 오히려 요정계로 진출해서 요정계의 최고의 미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정치인들 사이에 최고의 미녀기생으로 추앙받으면서 큰 명성을 떨치게 된답니다.

 

그당시 서울 장안에서 선운각과 옥류장 등 내노라하는 고급요정에서는 정인숙을 데려가지 못해서 난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60~70년대에는 요정정치가 크게 횡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유력정치인들과 정부의 고위급 각료가 요정에서 만나서 정치협상과 회의를 하면서, 한 국가의 정책들을 결정하는 등 국가의 최고의사결정이 요정에서 이뤄지던 시대였습니다.

 

박정희대통령도 종종 요정에서 정치인들을 만나서, 국가의 주요한 정책들을 협의하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 60년대 요정은 최고권력층 인사들이 함께 모임을 갖고 최고의사결정을 협의하고, 내리는 정치의 요람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60~70년대의 정치를 요정정치가 횡행하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요정정치의 한가운데에 정인숙이 있었으며, 정인숙은 60년대 요정정치의 최고의 꽃이었습니다.

 

선운각 등 내노라하는 고급요정에서 최고의 인기여성이 된 정인숙은 그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 때부터는 정부의 A급 고관대작들만을 상대했습니다.

 

 

이처럼 고급요정에서 일하던 정인숙은 나이 20대 전반의 어린 나이에 빼어난 미모 하나로, 공화당정부에서 내노라하는 고위층정치인들과 교분을 쌓아나갔고 몸을 섞었습니다.

 

이 시기에 정인숙이 상대했던 남성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최고위급 권력층인사들이라고 하는데

그녀가 남긴 수첩에 나오는 박종규 경호실장, 이후락 주일대사,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의 고위 정치인들은 물론 재벌회장님등도 그녀가 상대했던 유력인사들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 외에도 정인숙의 상대남으로 정일권국무총리가 유력하게 떠올랐으며

박정희대통령 또한 그녀의 수첩에 적혀있었으므로 그녀가 접대했던 남성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정인숙은 필동에 있는 자택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있었고, 가까운 곳에 살고있는 오빠 정종욱이 그녀의 자동차운전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정인숙은 낮에는 필동집에서 한가한 휴식을 취하면서 밤이 되면 요정에 출입하거나, 최고위급 정치인들을 상대로 화려한 밤의 향락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정인숙은 정일권 국무총리의 내연녀! 아들 출산

 

그런데, 이렇게 고급요정을 오고가면서 유력정치인들을 만나 교제를 하던 정인숙으로부터 최대의 스캔들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여러 정치인들을 편력했던 정인숙은 최종적으로 제3공화국의 두 번째서열인 정일권국무총리를 만나서 동침을 하게됩니다.

 

유독 정인숙을 총애했던 정일권국무총리는 정인숙의 집을 자주 드나들면서 주변사람들의 눈에 목격되기도 했을 정도로정일권과 정인숙의 관계는 각별했기 때문에

1960년대 후반에 정인숙은 사실상 정일권의 내연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인숙은 정일권총리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게되었고, 그녀는 아이의 임신사실을 널리 퍼뜨리게 됩니다.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있었던 정일권은 정인숙의 출산을 극렬히 말렸으나, 정인숙은 출산을 감행했습니다.

 

1968년에 요정 선운각의 최고미인 접대부였던 정인숙은 아들 성일을 낳았지만, 그녀의 아들출산이 소문나게 되면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될 것을 두려워한 공화국 권력층에서는 그녀를 강제로 미국으로 출국시켜버렸습니다.

 

그당시 정인숙이 낳은 아들이 정일권 또는 박정희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게 퍼져나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난처해진 공화당권력층에서는 그녀의 입을 막기위해서 그녀를 미국으로 출국시켜버린 겁니다.

 

이렇게 권력층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이주했던 정인숙은 미국에서 아들을 키우면서 살아가게 되었는데요.

한국의 권력층에서는 그녀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소문을 내지말고 조용히 살라고 당부했고, 그녀에게 풍족한 생활비까지 지급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시끄러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조용히 살 줄로만 알았던 정인숙은 미국 교민사회에서 자신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한국의 최고지도자라고 소문내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정인숙은 아들을 낳은 후부터, 주위사람들에게 내 말 한마디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떠벌이고 다녔고, 자기 아들의 아버지가 국가 최고지도자라고 소문내고 다녔습니다.

 

야당인 신민당의원들은 이같은 정인숙스캔들을 국회와 언론에 살포하면서, 한국사회는 정인숙 스캔들로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는 정인숙이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정일권이라는 소문과 아버지가 박정희라는 소문이 동시에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정인숙 때문에, 당시 공화당정부의 권위와 도덕성이 크게 손상되어버리자, 공화당정부는 정인숙에게 압력을 가해서 미국으로 출국시켜 버렸던 겁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출국한 정인숙이 이번에는 미국의 교민사회에서 또다시 자신의 아들이 최고지도자의 아들이라는 소문을 내고 돌아다녔던 겁니다.

 

1969년도에 정인숙이 미국으로 출국한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최고지도자 즉, 박정희의 소생인 것처럼 떠벌이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정인숙은 693월에 일본에 다녀온 후, 그 해 10월에 미국 워싱턴으로 가서 3개월 동안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3개월 동안 지낸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정부당국의 당부를 무시하고 그녀는 19701월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정인숙은 아들을 낳은 후에는 고급 요정출입을 중단하였지만, 대신 그녀는 타워호텔이나 샤보이호텔 등 고급호텔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정인숙은 호텔나이트클럽과 카바레를 드나들면서 돈을 흥청망청 쓰고다녔고, 숱한 뭇남성들을 만나서 잠자리를 가지는 등 문란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인숙은 그녀가 죽은 마지막날에도 남산에 있는 타워호텔 나이트클럽을 방문했으며,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한 후 호텔을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그녀가 호텔을 나간 1970317일 밤의 오후 11시경 정인숙은 오빠 정종욱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가던 중, 그녀는 합정동 절두산근처의 도로에서 총격사고를 당해 그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합정동 절두산부근을 운행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남자들이 차를 정차시키면서 그녀와 오빠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의문의 남자들은 자신이 정일권의 심부름으로 말을 전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자, 정인숙오빠가 창문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그 남자는 정인숙에게 권총 두발을 발사했고, 이어서 오빠 정종욱에게도 총격을 가했습니다.

 

 

 

 

정인숙은 현장에서 머리와 가슴에 두발의 총격을 당해서 그대로 사망하였고,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에 관통상을 당하는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습니다.

 

정종욱은 곧바로 주변에 있던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구조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경찰이 이 사건을 수사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정인숙과 함께 차에 있었던 친오빠 정종욱이 정인숙 살해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수사 일주일 후, 검찰은 정종욱이 정인숙을 쏜 살해범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인데요.

 

검찰은 정종욱은 문란한 행실을 이어가는 여동생 정인숙의 잘못을 충고했는데도 정인숙이 오빠의 말을 듣지않고 오히려 오빠에게 심한 폭언을 하자

화가난 오빠가 그녀를 살해한 후,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종욱은 수감 당시와 출소 이후에 자신이 여동생 정인숙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고, 자신의 무고함을 오랫동안 하소연했습니다. 

 

과연 그녀의 친오빠인 정종욱이 여동생 정인숙을 살해한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당시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정부에서 파견한 정보부요원들이 살해했으면서도 죄없는 정종욱을 살해범으로 몰아서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한 것일까요?

 

당시 최고권력층의 콜걸로 활동한 정인숙 스캔들을 덮으려는박정희정권의 공작에 의해서 정인숙이 피살되었다는 것이 진실에 더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정인숙이 박정희정권에 의해서 살해당했다면, 그녀가 살해당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정인숙은 미국으로 간 뒤, 아이의 아버지가 청와대에 있는 분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 정인숙이 아이의 아버지로 가장 높으신 분, 즉 박대통령을 언급했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불경죄로 인해서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서 살해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녀가 미국으로 출국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한국 정부당국의 당부를 무시하고 정인숙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국내에서도 또다시 자신이 낳은 아들은 최고지도자의 아들이라고 자랑하면서, 행세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정인숙의 이러한 떠벌림이 계속해서 최고권력층의 귀에 들어가고, 정인숙이 퍼트린 소문이 박정희대통령의 귄위와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다고 판단한 중앙정보부당국은 정인숙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당시는 대통령선거가 1년 밖에 안남은 상태였기에, 정인숙이 퍼뜨린 소문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박정희에게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중앙정보부나 경호실의 공작에 의해서 정인숙이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정인숙 피살 후에, 정인숙자택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수첩에서 무려 27명의 정관계 실력자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는 것이 발견되어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수첩에는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경호실장과 그 외의 여러명의 장관, 차관급 인사들과 5대 재벌회장과 유력한 정치인등 

27명의 명단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고 하는데, 정인숙이 얼마나 대단한 요부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참 그녀의 수첩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연락처도 함께 적혀있었다고 하네요!

 

그 당시 정인숙이 박정희대통령의 애첩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며,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답니다.

 

정인숙이 정일권총리 뿐만아니라 수많은 정관계 실력자들과 사귀고 있었던 시절인데, 그녀가 그 당시 최고권력자인 박대통령과 관계를 맻지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정인숙이 낳은 아들은 누구의 소생일까?

 

그럼, 정인숙이 낳은 아들은 정일권의 아들일까요 아니면 박정희의 아들일까요?

 

분명한 것은 정인숙이 낳은 아들은 정일권과 박정희 두사람 중 한사람의 아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유전자검사를 하지못했기 때문에, 정인숙이 낳은 아들이 두사람 중 누구의 아들인지는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오직 정인숙만이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정인숙의 아들은 박정희대통령보다는 정일권총리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정인숙의 아들의 외모가 전국무총리 정일권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성일이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지 2주일 만에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정성일이 소송취하의 조건으로 정일권으로부터 9억원의 돈을 받았다는 점도 두사람이 부자지간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소입니다.

  

실제로 1991년 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후, 정일권전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인숙 아들 정성일은 주변 친척들로부터 자신의 아버지는 전국무총리 정일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정일권에 대해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요.

 

 

 

 그런데 첫 소송은 정성일이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끝이 났고, 2년 뒤에 정성일은 두 번째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는데

친자확인 소송 중에 정일권 전총리가 사망하면서, 끝내 정인숙 아들 정성일의 친아버지는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반론도 존재합니다.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정성일의 아버지는 박정희라고 주장했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정인숙의 아들이 정일권아들이라는 소문과 박정희아들이라는 소문이 함께 나돌았는데

만약 정성일이 정일권의 아들이 맞다면, 정일권총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중앙정보부가 정성일을 살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일권은 실권이 전혀 없는 껍데기뿐인 국무총리일 뿐이었고, 아무런 실권도 없는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살해공작을 펼칠 부하들은 없었을 겁니다.

 

한 여인을 무참히 살해할 정도로, 또한 그로인한 정치적 파장이 상당할 텐데도 불구하고

정인숙을 무참하고 살해했을 정도라면, 아무 실권도 없는 정일권 보다는 더 높은 권력자를 보호하기 위한 살해공작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여러분은 정인숙 아들이 누구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인숙은 제3공화국의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과 교제를 했던 희대의 요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진실로 사랑했던 한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정인숙이 살해당하기 며칠 전에, 그녀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인숙의 이 한마디가 그녀가 진실로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바로미터라고 보여집니다.

 

‘요즘 여러가지 머리 아픈 일 때문에, 못 살겠다’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그립고, 잊혀지지 않는 남자다

 

정인숙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장사공을 진실로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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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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