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혜숙의 출연작품과 독신의 삶을 사는 이유, 나이
70년대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미모로 큰인기를 끌었던 미모의 여배우 한혜숙을 기억하시나요?
동양여성 답지않게 큰 키에 세련되고 청순한 미모로 70년대의 수많은 남성들을 설레이게 했던 당대의 미모얼짱인 한혜숙은 연기자로서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높은 명배우랍니다.
70년대 초반 혜성처럼 우리 연예계에 등장했던 한혜숙은 각종 드라마와 CF모델을 휩쓸고 다니면서, 당시 우리 연예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예쁜 미모의 여배우로 명성을 떨쳤답니다.
60년대를 주름잡았던 인기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모두 은퇴하고 난 후, 무주공산이된 우리 연예계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한혜숙이 트로이카 여배우의 뒤를 이어서 새로운 세련된 미녀상을 선보이면서,
70년대 당시 가장 주목할 만한 여배우로 큰 스포트라이터를 받았답니다.
그럼 70년대에 우리 연예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대표적인 얼짱여배우 한혜숙에 대해서 포스팅해볼까 합니다.
한혜숙은 1970년도에 MBC와 KBS에 동시에 탤런트로 뽑히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는데, 한혜숙은 70년도에 MBC에 김자옥과 함께 데뷔해서 김자옥과는 동기 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그 이듬해에 KBS에 다시 탤런트로 데뷔하게 되는데, 당시 KBS TV드라마인 ‘꿈나무’ 오디션에 응모하여,
무려 3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여주인공자리를 꿰차는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꿈나무’의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이 당시 ‘꿈나무’ 여주인공 응모경쟁률인 3500대 1의 경쟁률에서 1위를 한 한혜숙의 기록은 아마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경쟁률기록이 아닐까 합니다.
그 당시 동양적인 미모를 중시하던 보수적인 풍토에서 한혜숙은 큰 키에 오똑한 콧날 등 서구적이면서 세련된 미모가 ‘꿈나무’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 ‘꿈나무’는 당시 신세대계층인 고등학교 남학생과 여학생간의 순수하고 때묻지않은 우정과 사랑을 그린 학생드라마로,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주제와 참신한 내용으로 KBS에서 아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명드라마였답니다.
이 드라마 ‘꿈나무’에서 첫주연을 맡은 한혜숙은 인기 미남배우 하명중과 함께 열연을 펼치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서, 안방극장의 인기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답니다.
당시 교복을 입고나온 한혜숙은 서구적인 세련미에 더해 청순하면서도 깔끔한 미모가 무척 돗보였고, 과거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미인계보를 이어나갈 신세대 미녀스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답니다.
드라마 ‘꿈나무’의 큰 히트로 스타덤에 올라서게 된 한혜숙은 그 이후 각종 인기드라마에 계속 출연하면서, 자신의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계속 어필해나가면서 인기스타의 자리를 굳혀나가게 됩니다.
70년대 전반 당시 한혜숙의 미모는 지금의 김태희의 미모에 비견될 정도로, 큰주목과 호평을 받았으며,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셀레이게 했습니다.
한혜숙은 백옥같이 하얀 살결에 뚜렷한 이목구비와 서양인같이 오똑한 메부리코와 초롱초롱한 눈 등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샤프하면서도 세련된 미모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기에, 7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스타라는 닉네임이 붙게되었답니다.
한혜숙의 키는 164cm인데, 한국여성의 평균신장이 지금보다 훨씬 작었던 70년대에 이 정도의 키는 지금의 170cm와 맞먹을 정도로 큰 키에 속했답니다.
그당시 TV안방극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트로이카 세명의 여배우들이 있었는데, 바로 김자옥과 이효춘, 그리고 한혜숙이 그 주인공이었는데요.
이 세명의 미녀스타들이 우리 TV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의 주인공을 꿰차고 있었는데, 이 들 중에서 한혜숙이 가장 키가 컸고 몸매가 가장 글래머스하고 아름다웠답니다.
따라서 한혜숙은 이 시기에 세련된 미모와 더불어 큰 키와 글래머스한 몸매, 그리고 탄탄한 연기력까지 더해져서, 7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답니다.
한혜숙은 신기록을 가장 많이 세운 여배우로 유명하답니다.
한혜숙이 70년대에 드라마 ‘구미호’와 ‘춘향이’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 여자연기자들이 톱스타로 올라설 수 있는 관문이 되는 드라마가 세편이 있는데요. 바로 ‘구미호’와 ‘춘향이’ 그리고 ‘토지’의 서희역이랍니다.
이 세편의 유명드라마는 워낙 유명한 명작품들이라서, 계속해서 리메이크되는 작품들이랍니다.
이 세편의 드라마에의 여주인공으로의 발탁은 톱스타가 될 수 있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 세편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여배우들은 모두가 톱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혜숙은 70년대에 ‘구미호’와 ‘춘향이’ ‘토지’에서 모두 여주인공자리를 맡았으며, 한혜숙은 1대 구미호, 1대 춘향이역을 맡은 원조배우랍니다.
한혜숙이 TV드라마에서 최초로 선보인 ‘춘향이’에서 최초로 춘향이역을 맡았다는 것은, 당시에 그녀의 미모와 인기가 얼마나 높이 평가를 받았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영화에서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인 김지미와 문희 같은 대스타들만이 춘향이역을 맡았었는데, TV드라마에서는 한혜숙이 ‘춘향이’역의 첫테이프를 끊은 것이라서, 당시 한혜숙의 비중은 최고의 스타인 김지미와 문희에 맞먹을 정도로 대단히 컷었다고 평가할 수 있답니다.
한혜숙은 드라마 ‘토지’에서 주인공 서희역할을 맡았는데, 역대 토지 드라마에서 한혜숙이 가장 서희역에 잘 어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가장 예쁜 서희였다고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당시 한혜숙과 같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남자배우들 중에 한혜숙을 짝사랑했던 배우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혜숙의 성격은 대단히 자존심이 강하고 도도한 성격이었으며, 외모와는 달리 매우 직선적이면서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한혜숙은 주변의 따르는 남자배우들을 모두 멀리했고
자신에 대해 철저히 관리했기 때문에, 당시에 한혜숙은 스캔들 없는 배우로 유명했답니다.
당시 일반인 중에도 한혜숙을 짝사랑하고 스토킹하는 남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한 남성은 70년대 당시 거의 매일같이 한혜숙의 집을 찾아와서 그녀를 미행했으며, 심지어 한혜숙의 집 담벼락에 한혜숙의 이름을 적고 빨간 토마토로 하트모양을 새겨넣어서, 한혜숙을 깜짝 놀라는 만드는 소동까지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70년대 당시 한혜숙은 많은 남성배우들과 일반남자들의 커다란 로망의 대상이었답니다.
지금은 수많은 매이커의 화장품들이 많이 있지만, 70년대 전반 당시에는 화장품은 3개 정도 밖에 없던 시절이라서,
최고미녀로 공인받을 수 있는 ‘CF의 꽃’인 ‘화장품모델’에 발탁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데뷔한 지 1년밖에 안된 1971년도에 당시 가장 인기좋았던 화장품인 아모레 하이톤화장품의 전속모델로 발탁되었고, 73년도까지 무려 3년 동안 아모레 화이톤화장품의 CF모델로 활동을 이어나갔답니다.
나중에 톱스타로 활동했던 유지인과 정윤희 등도 모두 화장품 전속모델 출신들이랍니다. 지금이나 과거나 여자연기자가 화장품모델에 나온다는 것은 톱스타로 가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은 화장품광고 외에도 여러 종류의 CF광고에 많이 출연했는데, 섬유회사 광고, 이불광고, 파이롯트 만년필광고, 비바라 샴푸광고 등
1970년대 내내 수많은 CF광고들에 출연했는데, 한혜숙은 그야말로 70년대 CF의 여왕이나 다름없었답니다.
이렇게 멋지고 새련된 미모로 각광받았던 한혜숙은 그 후 ‘꽃피는 팔도강산’ ‘노다지’ 등 유명드라마에 계속해 주연급으로 출연해서 높은 인기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답니다.
토지의 한혜숙
그런데 한혜숙의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습니다. 한혜숙은 TV드라마에서는 높은 인기를 끌면서 그녀의 출연드라마들도 크게 히트를 쳤지만, 영화쪽에서는 별로 큰 활동을 펼치지 못했답니다.
한혜숙이 본격적인 연기를 펼쳤던 70년대 중반 이후의 우리영화계는 전통영화가 시들어갔고, 새로운 장르인 여자호스티스 영화와 애로영화들이 주류를 이었던 시기랍니다.
한혜숙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김자옥 등은 호스티스 영화에 곧잘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한혜숙은 보수적인 성격 탓에 이런 호스티스영화에 출연을 고사하거나 벗는 연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별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한혜숙이 출연한 영화도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관이 뚜렷하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던 한혜숙의 성격탓에, 그녀는 TV드라마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아쉽게도 영화배우로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답니다.
한혜숙이 출연한 영화 ‘상록수’ ‘족보’ ‘최후의 증인’ 같은 영화들은 작품성은 뛰어났지만, 사회문제를 다루는 교시적인 성격의 영화들이라서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TV드라마에는 계속 출연하면서 뛰어난 연기자로서의 명성을 계속 이어나갔는데, 70년대를 넘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까지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어나갔답니다.
한혜숙은 80년대, 90년대를 아우르면서 계속 연기활동을 이어나갔는데, ‘황금의 탑’ ‘금잔화’ ‘이 여자가 사는법’ ‘천사의 분노’
그리고 2000년대에도 한혜숙은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등 명작품에 출연해서 중후하고 후덕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답니다.
특히 한혜숙은 2005년도의 인기드라마인 ‘하늘이시여’에서 개성있고 인상적인 명연기를 선보임으로써, SBS 연기대상 시상에서 대망의 ‘대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답니다.
젊었을 때에는 빼어난 ‘미모’로 한몫했던 한혜숙은 2000년대 이후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는 기품있고 중후한 연기력으로 다시 큰 각광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70, 80년대의 우리연예계의 대표적인 미인여배우로 각광을 받았던 한혜숙에게 한가지 의문점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답니다.
그렇게 높은 인기와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그녀가 지금까지도 계속 독신으로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시대를 풍미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졌다면, 벌써 진작에 재벌가의 며느리로 들어갔어야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한혜숙은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의혹스러운 부분이랍니다.
♣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이유
70, 80년대 세상을 뒤흔들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와 안방극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척 궁금하기 짝이 없답니다.
미모가 안된다면 모르겠지만, 70년대 초반에 3500대 1의 경쟁률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얼짱미모를 보유한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을까요?
한혜숙이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표면적인 이유는 두가지 정도 된답니다.
하나는 그녀의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또다른 하나는 그녀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고 여겨진답니다.
한혜숙은 1951년도 부산에서 5자매 중 맏딸로 태어났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척 엄격한 성향을 갖고 있어서, 어려서부터 한혜숙을 엄격하게 훈육했다고 합니다.
또한 한혜숙은 29세의 나이에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20대 중반의 한혜숙에게는 부양해야할 4명의 여동생들이 있었으며, 그 당시 한혜숙은 4명의 여동생들을 모두 양육하고 교육시켜야할 사실상의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한집안의 가장이 된 한혜숙은 자기자신을 철저하고도 엄격하게 관리해나갔으며, 오직 일과 가족부양에만 전념해나갔다고 합니다.
가족들을 모두 책임져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사로잡힌 한혜숙은 연기활동을 하면서도, 근검절약을 해나가면서 동생들을 모두 양육해나갔고 대학까지 보내는 등 가족들 부양에 전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보수적이면서 완고한데다가 동생들 부양에만 신경을 집중시켰던 한혜숙은 어쩌면 연애라는 것을 ‘사치’라고 느꼈을 수도 있었다고 보여진답니다.
이렇게 동생들 부양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자신에게 너무도 엄격했던 한혜숙은 많은 남성들의 프로포즈를 전부 거부했을 것으로 보여진답니다.
한혜숙이 현재까지 독신으로 있지만, 사실 한혜숙도 젊었을 때에는 연애를 전혀 안한 것은 아니랍니다.
한혜숙이 스스로 밝혔던 내용인데, 그녀는 젊었을 때에 3번 정도 연애를 했었다고 합니다.
70, 80년대의 대표적인 미인이었던 그녀가 아무리 성격이 엄격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한번도 연예를 안할 수가 있겠어요?
즉, 젊었을 때의 한혜숙은 총 세명의 남자들과 연애를 했었고 그 중에는 좋은 감정을 가졌던 상대도 있었다고 해요.
그들 중에는 소위 7공자에 해당하는 대단한 스펙을 지닌 남자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남자가 어찌나 끈덕지게 한혜숙을 쫒아다니면서 끈적댔는지, 한혜숙은 이 남자의 그런 끈질긴 대쉬에 오히려 질려버렸다고 합니다.
다른 여자들은 어느정도 배경이 좋은 남자가 자신을 끈질기게 대쉬해오면 좋아했을텐데, 한혜숙은 보통여자들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여성이랍니다.
자신을 좋다고 끈덕지게 데쉬해오던 배경이 좋은 7공자에게 한혜숙은 너무 질린 나머지 보기좋게 차버렸다고 합니다.
그 때에 못이기는 척 하면서, 그 남자의 대쉬를 받아줬더라면, 한혜숙은 지금쯤 아들 딸 낳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을 겁니다.
이것은 한혜숙의 성격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녀는 엄격하고 완고하고 깐깐하면서, 상당히 콧대가 센 성격이었답니다.
이렇게 깐깐하고 완고한 성격을 지닌 한혜숙은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길 바라는 그 당시의 남자들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겁니다.
70~80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여자가 어느정도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면서 순종하는 스타일이 대세였던 시대였으며, 남자들은 그렇게 순종적인 여자들을 좋아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의 성격의 또다른 단면을 보여주었던 사건으로 경비구타사건이 있답니다.
1981년도에 여의도 방송국에 출입할 당시에는 방송국 경비의 파워가 막강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방송국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모든 연기자들은 명찰을 달고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며, 경비가 매일같이 엄격하게 명찰을 검사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연기자라고 하더라도, 명찰을 달고있지 않으면 경비는 그 연기자를 결코 방송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경비들이 매우 깐깐하게 통제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혜숙이 명찰을 달지않고서 방송국으로 들어왔고, 당연히 경비는 명찰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답니다.
그 당시가 1981년도라 한혜숙은 유명텔런트라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있었을 때였지요.
한혜숙은 자신에게 명찰제시를 요구하는 경비에게, ‘나는 한혜숙인데, 당신,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라고 말했고, 그 경비는 ‘당신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고 말하면서, 계속 명찰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자, 두사람간에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 경비가 끝까지 출입을 막아서자, 화가난 한혜숙은 자신의 구두의 뾰쭉한 힐로 그 경비의 머리를 때렸다고 합니다.
어렇게 한혜숙의 구두굽으로부터 얻어맞은 경비는 머리에 피까지 흘렸댜고 합니다.
한혜숙의 성격이 얼마나 대쪽 같고 도도하며, 깐깐한 성격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 이야기는 텔런트 김형자가 직접 전해들었던 그 당시에 매우 유명했던 실화라고 합니다.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로도 유명하답니다.그녀의 어머니가 불교신자였고,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명한 사찰을 많이 내왕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답니다.
한혜숙은 계속해서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리면서, 자신을 보다 더 엄격하고도 철저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성격자체가 워낙 깐깐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였답니다.
그녀는 자신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엄격하게 관리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그녀의 완벽주의와 종교적 신념 때문에 남자들과의 만남을 멀리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답니다.
이것은 종교적 신념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기 힘든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녀들은 하나님과 결혼했다고 생각하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고 수녀원에서 절개를 지키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간답니다.
절에 계속 다니면서 불공을 많이 들여왔던 한혜숙도 마치 수녀들처럼, 자신이 부처님과 결혼했다고 생각하면서 동생들 부양과 불공에만 전념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답니다.
실제로 한혜숙은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자신은 ‘비구니’가 될 것이라고 방송에서 말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 한마디야말로 한혜숙이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진짜이유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혜숙은 미국 센디에이고에 대규모의 땅을 구입해서, 그곳에다 절을 짓도록 그 땅을 불교계에 무상으로 기부했다고 합니다.
다음생에서는 연기자 되지 않고, 비구니가 되겠다고 하는 그녀의 말한마디가 가슴에 찡하게 울려퍼진답니다.
그 정도로 한혜숙은 불교적인 신앙심이 무척 강하다고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해본다면,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도출되어 나온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엄격한 교육과 스파르타식 규율, 타고난 보수적이면서 완벽제일주의 성격, 그리고 불교의 금욕주의적 신념과 가치관, 이런 제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한혜숙으로 하여금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스스로 금욕적인 생활을 몰두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자들을 멀리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특별한 이유와 환경 때문에, 7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스타였던 한혜숙은 안타깝게도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신으로 살아오게 된 것이랍니다.
물론 안타깝다는 것은 우리의 판단일 뿐이고, 독신으로 살고있는 한혜숙 자신은 스스로 현상태에 만족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혜숙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암자를 하나 지어 보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도 있으며, 그곳에 복지시설을 하나 지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적도 있답니다.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면서 이런 특별한 사상을 갖고있는 한혜숙은 아뭏튼 보통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느껴진답니다.
이렇게 완고한 한혜숙도 한때에는 핑크빛 스캔들 루머에 휩쌓인 적도 있답니다.
한혜숙이 한창 젊었을 때에, 그녀와 정주영이나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루머가 퍼진 적도 있었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시절에, 엄청난 공포정치로 일반시민들을 압박하고 탄압했던 그 서슬퍼런 70년대의 시절에, 박정희는 그 당시 잘 나갔던 여러명의 미모의 여배우들을 건드렸다고 하는 루머가 있었답니다.
일반인들에게 숨겨졌던 궁정동의 안가는 박정희가 여배우들을 데려다가 유희를 즐겼던 곳으로 알려지기도 했답니다.
한혜숙도 그 중의 한명이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답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팩트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답니다. 단지 몇몇 사람들의 육성증언만이 있을 뿐이고,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당시 초법적인 권력을 휘둘렀던 박정희가 많은 여자들을 건드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어쩌면 당대의 최정상급 인기여배우였던 한혜숙도 도매급으로 함께 연관되어서 그러한 루머에 휩쌓이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박정희와 한혜숙의 스캔들루머는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라겠습니다.
물론 한혜숙은 이같은 루머는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정했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1951년생으로 지금 나이가 68세가 되었네요. 그렇지만 그녀는 최근까지도 젊었을 때의 미모를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아름답고 중후한 자태를 잃지않고 있습니다.
한혜숙은 2009년 드라마 ‘보석비빔밥’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는 더이상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않고 있습니다.
전언에 따르면, 한혜숙은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지금 어머니의 병간호에 열중하면서 집에서 쉬고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틈나는 데로 절에 찾아가서, 정성껏 불공을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모든 주변상황이 잘 정리되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찮고서, 방송에 다시 출연해서, 그녀의 완숙하고 중후한 연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팬의 한사람으로서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한혜숙이 방송에서 말한 한마디가 떠오르는데요.
‘나는 연기자로서는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여자로서는 실패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라고 한혜숙은 말했답니다.
장년의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못한 여성으로 남았다는 것을 실패했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또한 한혜숙은 ‘나는 아직도 언젠가는 좋은 남자와 만나 결혼하는 꿈을 꾸고 있다’ 라고 한 방송에서 직접 말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직접 이 말을 한 것을 보면, 한혜숙은 원래 독신주의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깐깐하고 완고한 성격, 불교적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더불어 동생들을 모두 뒷바라지 하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한혜숙은 혼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한혜숙이 아직도 결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이것은 대단한 반전으로 정말 놀랍기만 하답니다.
그녀가 다시 방송에 출연해서 보다 더 기품있고 완숙한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한혜숙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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