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우드의 최고미인 여배우, 비비안 리의 영화와 죽음

 

 

비비안 리 - 1913~1967

국적 - 영국

신체사항 - 161cm, 몸무게 47kg

데뷔작 - 1935년 영화 'Things Are Looking Up'

 

 

역대 허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최고 미녀여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영화평론가들이 허리우드미인을 논할 때, 가장 빼어난 미인으로 손꼽는 여배우가 있는데, 바로 비비안 리입니다.

 

역대 허리우드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청순미인을 손꼽는다면, 비비안 리를 꼽을 만큼, 그녀는 왕년의 허리우드의 미녀의 대명사였답니다.

 

몇해 전에 영국에서 실시된 영국 최고의 미녀여배우를 뽑는 앙케이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당연히 최고의 미녀 로 뽑힐 것으로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앙케이트조사에서 최고미녀로 뽑힌 여배우는 비비안 리였습니다.

 

2000년대만 해도 미국영화사이트에서 해마다 세계최고의 미인여배우를 선정하는 행사를 해왔는데, 여기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최고미인 1위를 오랫동안 휩쓸어왔는데, 영국에서만큼은 전혀 달랐답니다.

 

영국에서는 100% 미인소리를 듣던 리즈 테일러를 제치고 비비안 리가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뽑혔던 것으로

영국사람들이 비비안 리를 얼마나 대단한 미인으로 생각하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며, 비비안 리는 가히 허리우드 미녀여배우의 대명사라고 할 만 하답니다.

 

참고로, 비비안 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두 영국태생이랍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나중에 미국 허리우드영화계에 진출하면서, 미국국적을 취득했었지요.

 

영국인들은 30~50년대를 영화배우로 큰 족적을 남겼던 영국인 출신 비비안 리를 그녀가 사망한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영국 최고의 미인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비안 리의 대표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데, 비비안 리가 이 영화에 출연했을 당시에 뉴욕타임스지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 비비안 리에게는 따로 연기력 같은 건 필요없고,

단지 그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에게 크나큰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고 그녀의 탁월한 미모를 극찬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비안 리는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 외에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탁월한 미모만으로는 전세계인들의 눈과 가슴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전설적인 미인여배우입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아무리 대단한 미녀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을 평가절하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비비안 리는 미모도 출중했지만, 그녀의 연기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비비안 리는 출중한 미모 외에도, 관객들의 혼을 사로잡을 정도의 뛰어난 연기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세계인들이 비비안 리를 더욱더 잊지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미인으로 찬사를 받았던 매혹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의 영화와 사랑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비비안 리는 세계 최고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애수에 출연해서, 눈부신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전세계인들에게 엄청난 환희와 감동을 안겨주었던 배테랑급 명배우였답니다.

 

전세계의 남성들의 가슴을 한없이 설레이게 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간직했을 뿐만아니라, 혼을 불사르는 열혈 연기력을 갖추고 있는 비비안 리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천재적인 여배우였답니다.

 

저는 2000년대 이후에 비비안 리 만큼 빼어난 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을 지닌 허리우드여배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답니다.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외에도, 영국에서 여러편의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안나 카레리나’ ‘애수같은 굵직굵지한 명작품에서 열연을 펼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전세계인들의 로망으로 우뚝 솟아오르며, 한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였답니다.

 

그녀의 조각 같은 미모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지만, 신들린 듯한 그녀의 빼어난 연기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었고, 세계인들의 극찬을 받았답니다.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완벽하게 갖추었던 비비안 리는 한번도 타기도 힘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무려 두번씩이나 타내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녀는 실로 40~50년대의 허리우드영화계의 보물 같은 존재감이었습니다.

 

비비안 리는 1939년도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첫 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2년 후인 1951년도에 또다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두 번씩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엄청난 쾌거를 이룩해냈답니다.

 

비비안 리가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함으로써, 그녀가 단순히 얼굴만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혼과 정신을 모두 불사르는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전천후 여배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비안 리는 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세계영화계에서 길이 남을만한 화려한 족적을 남겼지만, 그녀의 사생활만큼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비비안 리가 출연한 명작품과 그녀의 영화인생, 그리고 그녀의 사랑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어요!

 

비비안 리가 출연한 영화

 

 

비비안 리가 출연해서 히트친 영화로는 여러편 있지만, 그 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애수가 재일 유명하답니다.

 

비비안 리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큰 명성을 떨쳤지만, 그녀가 출연한 또다른 영화 애수를 더욱 감명깊은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비비안 리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서 깜직하고 도도한 미녀 스칼렛 오하라의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솟아올랐지요

 

이 당시 비비안 리는 14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답니다. 물론 그녀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이유는 그녀의 출중한 미모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비비안 리는 1940년도에 또다른 영화 애수에 출연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는 또다른 애절함과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독특한 이미지를 심어놓았고, 관객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주었답니다.

 

 

영화 애수에서 청순하고 가련하면서 슬픈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 비비안 리는 우수에 찬 미인, 고뇌하는 미녀의 이미지를 선보이면서, 연기변신에 성공했고

우아하면서도 우수에 찬 미인의 캐릭터를 관객들의 가슴에 강렬하게 심어놓으면서,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흥행에 대성공하게 된답니다.

 

비비안 리는 영화 애수에서 슬픔이 가득찬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맡아 연기를 펼쳤는데, 얄궂은 운명의 굴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게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애절한 여인의 캐릭터를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열연을 펼치면서, 전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감동적으로 연기해낸 비비안 리의 열혈연기로 인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애수는 세계적인 걸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영화 애수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비안 리가 워털루다리에서 돌진해오는 트럭을 향해서 달려가면서 자살하는 장면을 최고로 가슴 아픈 장면이자, 명장면으로 꼽는다고 합니다.

 

비비안 리가 열연을 펼친 영화 애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슬프고 가슴아픈 비련의 러브스토리 10에 꼽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영화라고 합니다.

 

- 영화 애수의 숏줄거리 -

 

2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의 영국 런던에 사는 마이러 레스터(비비안 리분)은 런던에서 활동하는 발레단의 무희였는데, 그녀는 워털루다리위에서 독일공군의 공습싸이렌을 듣고

지하대피소를 대피하는 도중 멋지고 잘생긴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분)대위를 만나게되고, 두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두사람이 결혼약속을 하고 크로닌대위가 다시 전쟁터로 떠나간 후, 오랫동안 그를 기다리던 레스터(비비안 리분)는 크로닌대위가 전쟁터에서 사망했다는 사망통보를 받고 크게 낙심하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남자를 사귀었다는 이유로 발레단단장의 미움을 사서, 발레단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슬픔과 실직으로 인한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자포자기상태에 빠진 레스터(비비안 리분)는 결국 길거리의 여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자를 꼬시기 위해서 역전으로 갔던 그녀는 그 역에서 방금 열차를 타고나온 크로닌대위를 만나게 된답니다.

 

전장터에서 죽었다던 크로닌대위가 죽지않고, 다시 살아돌아온 것입니다

꿈에도 잊지못했던 애인 크로닌대위를 다시 만난 레스터(비비안 리분) 자신의 매춘의 사실을 숨기고, 애인 로버트 테일러와 약혼식까지 올린답니다.

  

결혼을 하루 앞둔 날에, 너무도 착하고 순수했던 레스터(비비안 리분)는 자신의 과거 매춘사실 때문에, 엄청난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고

급기야 그녀는 애인 로버트 테일러와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에 가출해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져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자신의 과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했던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를 실감나게 연기해준 비비안 리의 명품연기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답니다.

 

영화 애수에서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비비안 리의 우수에 찬 이미지는 전세계인의 가슴 속에 깊은 인상과 커다란 감동을 새겨넣으면서, 영화 애수는 불후의 명작이 될 수 있었고, 비비안 리는 우수에 찬 미인, 고뇌하는 미인이미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감이 되었답니다.

 

실제로 영화 애수1950년대 625전쟁이 벌어질 당시에, 우리나라의 부산에서 개봉되어서, 전쟁에 지친 수많은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 애수는 그렇게 비비안 리라고 하는 스타탄생을 위한 전당의 역할을 하였고, 비비안 리의 또다른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주었던 대단한 명작이라고 할 만 하답니다.

 

그런데, 정작 비비안 리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데요

 

비비안 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하게 된 계기에도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원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역은 비비안 리가 아니라, 폴레트 고다드라는 여배우였답니다.

폴레트 고다드는 전형적인 고전미인으로서 찰리 채플린의 부인이면서 코미디영화계의 명배우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폴레트 고다드를 스칼렛역으로 낙점하고 영화촬영을 개시하기 직전에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은 우연히 허리우드에 놀러온 비비안 리를 보고, 그 미모에 홀딱 반해버린 나머지, 곧바로 여주인공을 폴레트 고다드에서 비비안 리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폴레트 고다드도 당시 허리우드에서 상당한 미인으로 명성이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비비안 리가 워낙 빼어난 미모로 다른 여배우들을 압도한 나머지, 그녀를 제치고 주인공역을 따냈던 겁니다

참고로 그 당시 폴레트 고다드는 찰리 채플린의 부인이었다고 합니다

 

젊었을 시절의 비비안 리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할 당시에, 비비안 리의 허리둘레가 19인치였다고 알려졌는데, 그녀의 가는 허리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여성들이 비비안 리처럼 가느다란 허리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다이어트를 하면서, 세계적인 다이어트붐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비비안 리의 실제 허리사이즈는 19인치가 아니라, 23인치였다고 합니다. 비비안 리의 19인치 허리는 영화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수치라고 합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허리우드 역사상 다섯손가락에 꼽힐 만한 세계적인 걸작품이라는 대단한 평가를 받고있는데요.

 

원래 비비안 리는 영국에서만 연기활동을 했는데, 휴가차 허리우드로 놀러왔다가,우연히 제작자의 눈에 띄여서 출연하게 된 허리우드 첫작품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엄청난 쾌거를 이룬 겁니다.

  

그리고 로렌스 올리비에와 결혼을 한 후에, 비비안 리는 허리우드로부터 지속적으로 영화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그녀는 가정을 돌보기 위해서 영화출연은 자제했답니다. 그리고 비비안 리는 틈틈이 연극무대에 올라 연기활동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연기활동 없이 소강상태로 지냈던 비비안 리는 영화 안나 까레리나에 출연해서 열연을 펼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51년도에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면서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답니다.

 

이렇게 19편의 적은 영화에만 출연한 그녀였지만,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모면에서나 연기력면에서 비비안 리는 100년에 한번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뛰어난 여배우라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비비안 리 자신은 톱스타가 되는 것을 원하지않았다고 하며, 자신의 미모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비비안 리는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 많이 출연했었답니다.

 

비비안 리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죽음, 사망이유

 

평생 19편이라고 하는 적은 영화에 출연했는데도, 그녀는 애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세기적인 걸작품에 출연함으로써, 여배우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비비안 리는 사생활에서도 행복했을까요?

 

비비안 리는 원래 1932년도 19살 나이에, 13살 연상의 귀족이자 변호사인 허버트 리 홀먼과 첫번째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보수적인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결혼생활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비안 리는 연극 햄릿에 출연해 열연을 펼쳤던 영국미남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를 보고 홀딱 반했고, 두사람은 함께 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답니다.

 

서로 아직 유부녀와 유부남이었던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는 서로에게 홀딱 반한 후 동거생활을 시작했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개봉된 후에, 각자의 배우자와 이혼한 후, 두사람은 전격 결혼하게 됩니다.

 

1940년도에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는 결혼식을 올렸고, 한동안 두사람은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갔습니다. 그렇지만, 두사람간의 사랑과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답니다.

 

몸이 원래 허약한 체질인데다가 담배를 지나치게 좋아했던 비비안 리는 1945년도에 폐결핵으로 쓰러졌고, 그 때문에 뱃속의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는 슬픔을 겪게 된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아이를 유산했던 비비안 리는 유산으로 인한 큰 충격으로 인해 조울증에 걸렸고

비비안 리는 조율증으로 인해서 남편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심한 히스테리와 폭언, 폭력을 휘두르는 등 거칠고 난폭한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조울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비비안 리는 심한 히스테리를 부리고, 반복해서 심한 폭언과 폭력을 행하지만

로렌스 올리비에는 인내하면서, 그녀의 병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오랫동안 참고 노력했지만, 비비안 리의 히스테리와 병세가 더욱 심해지면서, 두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답니다.

 

비비안 리와의 불행한 결혼을 더이상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던 1959년도에 로렌스 올리비에는 마침내 비비안 리와 이혼을 하였고

그 이듬해인 1961년도에 30세 연하의 여배우 조안 플로라이트와 재혼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답니다.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는 비비안 리의 병 때문에, 19년간 이어왔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두사람은 남남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난 후, 비비안 리도 연하의 배우 존 메리베일과 잠시동안 로멘스에 빠지지만

그녀는 결국 마음속의 연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잊지못하면서 조울증과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만 갔고, 지나친 흡연으로 인해 다시 재발한 폐결핵을 앓다가, 1967년도에 자신의 저택에서 외롭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을 거두었을 당시 그녀는 55세의 젊은 나이였고, 비비안 리의 사망원인은 지나친 흡연으로 인한 폐결핵으로 인한 쇼크사였답니다.

 

세기적인 명배우들이었고, 세기적인 사랑을 한 것으로 유명한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레비에의 사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두사람의 사랑은 무척 뜨거웠고, 거의 2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원래의 배우자를 배신하고, 새롭게 선택한 사랑은 영원할 수는 없으며, 결국 불행한 결말을 낳는다고 하는 뼈아픈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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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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