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순미인 여배우, 이영애의 젊은시절 미모와 영화, 나이, 남편 정호용

 

오늘도 한 때 우리나라 최고의 미녀라고도 불리워졌던 추억의 미녀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에는, 저의 블로그의 연예인핫토픽에서는 우리나라 70년대의 미녀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녀여배우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제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풍미했더너 우리나라 최고의 미녀여배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어요!

 

90년대 초에 연예계에 데뷔해서 산소같은 여자로 우리연예계를 뜨겁게 달구웠던 미녀여배우가 있었지요.

 

90년대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연예계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미녀여배우 이영애입니다.

 

이영애는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동양최고미인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외국사람들도 인정하는 대표적인 동양미인이지요.

 

90~ 2000년대의 우리 연예계를 논할 때에,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여배우가 바로 이영애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숱한 미녀여배우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까지 현존하는 여배우 중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한국형 미인여배우를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영애를 첫손에 꼽는답니다.

 

그만큼, 이영애의 미모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이미 공증받은 지 오래되었답니다.

 

그리고 2010년도경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미녀여배우를 뽑는 앙케이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가장 예쁜 여배우 1위에 이영애가 뽑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에, 여러차례에 걸쳐서 실시된 한국의 최고미인 여배우를 뽑는 앙케이트조사에서 이영애와 김태희가 주로 뽑히곤 했답니다.

 

이영애는 미모 뿐만아니라, 연기력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여배우인데,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한류를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입니다.

 

이영애가 출연해던 대장금이 아시아를 넘어 아랍과 유럽지역에서까지 엄청난 히트를 치는 바람에, 이영애는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적인 대스타로 우뚝 올라섰는 여배우이지요.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영애를 소개할 때, 항상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는데, 바로 동양최고 미인이라는 수식어랍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이영애를 동양최고의 미인으로 규정짓기까지 했을 정도로 이영애의 미모는 최상급이었답니다.

 

외국인들은 이영애를 보고, 가장 한국적인 우아한 미인이라고 극찬을 했고요. 특히 이영애는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도 유독 한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로도 유명하답니다.

 

이영애의 트레이드마크는 청순미인의 콘셉인데, 이영애는 90~2000년대를 대표하는 청순형 미인으로도 명성이 높답니다.

 

이영애의 미모와 연기활동

 

학창시절부터 워낙 미모가 출중했던 이영애는 지인의 권유로 CF모델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영애는 어렸을 때부터 미모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동학교 때마다 학생잡지의 표지모델로 계속 발탁되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영애는 1990년에 투유초콜렛의 모델로 발탁이 되어서, 홍콩스타 유덕화와 함께 찍은 투유초콜렛 광고촬영을 하면서, 정식으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답니다.

 

그리고 이영애는 계속해서 CF광고 모델로 활동했는데, 지금은 퍼시픽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태평양화학의 마몽드화장품의 전속모델로 발탁되어서

화장품모델로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그녀의 눈부신 미모를 만천하에 과시했답니다.

 

 90년대 화장품모델로 나온 이영애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배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 청초한 미모가 정말 대단했었답니다.

 

이영애는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에, 모든 여자연예인들의 꿈의 로망인 화장품모델로 먼저 데뷔해서, 그 청순한 미모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1993년도에 이영애는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하십니까?’로 텔런트로 정식 데뷔를 했습니다.

 

댁의 남편은 어떠하십니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우월적인 미모를 발산했던 이영애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인형같이 예쁘고 깜찍한 신인여배우로 자리매김합니다.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하십니까는 이영애의 첫 데뷔작이었는데, 이영애가 주인공은 아니고 조연급이었지만

마치 공주처럼 조각 같은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이영애는 단연 그 드라마에서 가장 환하게 빛나는 빛과 같은 존재감이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같이 깜찍하고 예쁜 이영애의 눈부신 미모는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답니다.

 

이 드라마에서 이영애는 도도하면서 재능을 갖춘 도회적인 미인, 세련된 미인이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답니다.

 

1990년대에 이영애는 화장품모델을 하면서 산소같은 미인으로 각인되었고, 드라마에서는 도도하면서, 우아한 도회적인 미인으로서 미모를 한껏 발산했습니다.

 

이영애는 1991년도부터 2000년까지 11년 동안 태평양화학(현 퍼시픽)의 화장품모델로 활동했는데, 그녀는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 가장 최장 기간 동안 화장품모델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화장품모델은 최고미인으로 공인받을 수 있는 최고미인의 상징물 같은 자리이지요.

그래서 모든 여자연예인들은 화장품모델 자리를 얻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실제로 화장품모델을 한 여자연예인들은 모두다 톱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70년대의 정윤희와 유지인, 80년대의 원미경, 황신혜 같은 미녀애배우들은 모두 화장품모델을 통해서, 스타덤에 올랐던 여배우들입니다.

 

이영애가 화장품모델을 최장기간 했다는 것은 그녀의 눈부신 미모를 우리방송계에서 공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영애는 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무수히 많은 CF광고를 찍었는데, 그야말로 브랜드 높은 CF광고는 이영애가 싹쓸이했을 정도입니다.

 

커피광고’ ‘LG카드광고’ ‘자이아파트 광고’ ‘KT광고’ ‘참이슬 고’ ‘퍼시픽화장품광고등 이영애가 출연한 광고는 무려 240편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자연기자들 중에서 단 한편의 CF광고도 찍못하는 여배우들이 수두룩한데, 그녀는 무려 240편이나 되는 CF광고를 찍었고, 그래서 이영애는 ‘CF이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습니다.

 

이영애가 이처럼 고급브랜드의 CF광고를 많이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만이 갖고있는 순수하고 고결한 이미지, 청순하면서도 눈부신 미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영애가 우리나라에서 세운 최다 광고모델 기록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지금 또는 앞으로 CF광고를 240편 이상 찍은 배우가 나온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사료되며, 만일 그 기록을 깬 배우가 나온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영애가 활동하던 90~2000년대의 시기에는 이영애 말고도 채시라, 고소영, 심은하 같은 인기 좋은 미녀스타들도 있었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 최고의 청순미인은 이영애라고 보여집니다.

 

솔직히 이영애는 관능적인 매력이나 섹시한 매력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목련꽃처럼 때묻지않은 청초함과 청순한 미모를 가진 이영애이기에, 그녀를 우리나라 청순미인의 넘버원이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이영애만이 갖고있는 그녀만의 독보적인 매력인 청순한 미모때문에, 그많은 광고주들이 앞다투어서 이영애를 자신들의 광고모델롤 발탁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답니다.

 

이렇게 240편이나 되는 많은 광고모델을 찍으면서, 이영애는 많은 돈을 벌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영애는 자신이 번 돈을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금으로 많이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영애는 알게 모르게 소문내지 않게, 많은 돈을 자선사업에 썼다고 하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찾아가서 거침없이 거액의 돈을 자선금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몇 년 전 휴전선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폭파사건 때에도, 다리를 잃은 두명의 병사들에게 아낌없이 거액의 돈을 선뜻 내놓았던 그녀의 자선활동은 널리 알려졌었죠.

 

이처럼 이영애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심성도 매우 곱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 이영애의 프로필 -

 

출생 - 1971131일생. 현재 이영애 나이 50

키 164cm, 몸무게 50kg

데뷔 - 90년 광고모델 투유초콜릿으로 데뷔

학력 -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 석사

남편 - 정호영

자녀 - 아들 하나 딸 하나

종교 - 불교

소속사 - 굳피플

 

그리고 이영애는 광고모델 외에도 90년대에 여러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해서, 탄탄한 연기경력을 쌓아나갔답니다.

 

이영애는 90년대에 질주’ ‘서궁’ ‘동기간’ ‘의가형제’ ‘내가 사는 이유등 작품성 있는 여러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그녀만의 커리어를 쌓아나갔지요.

 

 이영애는 1997년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 출연해 종전의 공주같은 이미지와는 다른 술집작부역을 맡아서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주었답니다.

 

그리고 1999년도의 드라마 초대에서는 사랑과 일을 병행해가는 능력있고 멋진 커리어우먼의 역을 실감나게 펼치면서, 시청자들에게 연기력을 갖춘 미녀연기자로 거듭나게 된답니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이영애는 CF모델로는 인기가 좋았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녀는 연기력이 부족한 예쁜 연기자일 뿐이었지요.

 

그런데, 드라마 초대에서 이영애는 신들린듯한 열혈연기를 펼침으로서, 비로서 그녀의 우수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드라마 초대를 분깃점으로 해서, 얼굴만 예쁜 영혼없는 연기자에서, 미모와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연기파 연기자로 거듭나게 된답니다.

 

이영애는 드라마 초대에서 연기력과 미모를 모두 인정받으면서, 그 이후 엄청난 히트행진을 이어가게 된답니다.

사실 이영애는 1993년도부터 드라마를 찍었지만, 히트를 친 작품은 거의 없었답니다.

 

이영애가 뛰어난 연기자로서 인정받았던 것은 1999년도의 드라마 초대때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9년부터는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모두 크게 히트해나가면서, 이때부터 이영애는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2000년대 드라마 불꽃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영애는 또한번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드라마도 크게 히트를 쳤을 뿐아니라, 이영애도 시청자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이영애는 90년대 초반부터 CF광고모델로 각광을 받았지만, 연기자로서는 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서 빛을 보개된 것입니다.

 

드라마 초대불꽃두편의 드라마를 통해서 스타덤에 오른 이영애는 그 후에는 영화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해서 히트를 치게됩니다.

 

그리고 이영애는 2000년대 그녀의 일생을 뒤바꿔줄 대단한 감독 박찬욱과 손을 잡고,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이영애는 영화 공동경비구역에 출연해서, 단발머리한 예쁘고 지성미 넘치는 여자수사관의 역할을 깔끔하게 잘 소화해내어서, 영화도 크게 히트했을 뿐만 아니라, 이영애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면서 큰 호평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이영애는 선물’ ‘봄날을 간다등의 영화에서도 완숙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계속해서 히트행진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영애는 자신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줄 대작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대장금입니다.

2003년도에 MBC의 사극드라마 대장금에 출연해서, 눈부신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뛰어난 장금이의 연기를 선보여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답니다.

 

대장금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여주었던 이영애

 

이영애는 사극 대장금에 출연해서, 숱한 난관과 역경에 시달리면서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결국 궁궐의 의녀로서 대성공을 거두게되는 여주인공 장금이의 캐릭터를 아주 완벽하게 연기해냄으로써, 엄청난 찬사와 박수갈채를 받았답니다.

 

이영애가 출연한 대장금은 완성도가 높고, 작품성이 뛰어난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사극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장금이를 멋지게 연기한 이영애의 뛰어난 연기로 인해서, ‘대장금은 더욱 멋지고 재미있는 세계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답니다.

 

대장금의 시청률은 무려 50%나 되었다고 하니, 대장금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이영애의 열혈연기와 청순한 미모에 힘입어서 대장금의 작품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었고, 특히 이영애의 청순한 미모는 전세계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답니다.

 

대장금은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그리고 심지어 아랍국가들과 아프리카, 유럽국가들에 수출되어서, 국제적으로 크게 히트를 치면서, 이영애는 세계적인 한류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참고로 드라마 대장금은 90개 국가들에 수출되어 방영되었는데 무려 30억명의 세계인들이 시청했다고 하며

홍콩에서는 50%의 시청률을, 이란에서는 70%의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이영애의 젊은 리즈시절 동안 그녀의 화려한 연기인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지금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시는 이영애의 사적인 부분인 연애와 결혼, 그리고 최근 근황에 대해서 소개해보기로 하겠어요.

 

 

이영애의 결혼과 남편

 

이영애에 관한 가장 큰 관심사는 그녀의 결혼과 남편, 자녀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영애는 2003년도에 출연한 '대장금'이 엄청나게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인 한류스타로 등극할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톱스타로 올라선 이영애는 2006년도에 촬영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끝으로 더 이상의 연기활동을 하지 않게됩니다.

 

이 시기는 이영애가 가장 인기가 좋았던 인기절정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연 '대장금''친절한 금자씨' 두편에 출연한 후, 더이상 연기를 중단했고, 아주 오랜시간 동안 칩거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당시 이영애가 출연한 드라마 '대장금'의 대히트로 인해서 아시아를 넘어서 아랍과 아프리카, 동유럽에까지 한국의 톱 미녀여배우로 알려지면서

그녀는 국제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는데, 정작 본인은 공식석상에 나오지않고, 잠적을 해서 많은팬들의 궁금증을 야기시켰답니다.

 

그리고 몇 년동안 잠적을 했던 이영애는 20098월 하와이에서 갑자기 군수사업가 정호영과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려서, 대중들을 놀라게 만들었답니다.

 

대중들은 세계적인 한류스타로 등극한 이영애가 또다른 작품에 출연해서 연기활동을 이어가길 열망했지만, 몇년 후에 나타난 그녀는 소리소문 없이 결혼식을 올렸던 겁니다.

2009824일 이영애는 정호영과 하와이의 한 호텔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이영애는 만인의 연인이 되기를 거부했고, 재미교포사업가 정호영의 아내로 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이영애는 대외적으로는 숨겨왔던 사실인데, 사업가 정씨와 무려 15년 동안이나 사랑의 꽃을 피워왔다고 합니다.

 

이영애의 남편 정호영은 미국 시카고대학과 일리노이공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에서 사업팀장으로 근무한 후, ‘한국밸통신이라는 IT회사를 설립해서, 대표이사로서 사업을 해왔던 무기상입니다.

 

정호영은 무기상으로서, 우리 군대에 무기부품을 납품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던 재력가입니다.

 

그러니까 정호영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방위사업체의 사업가이고, 엄청난 자산가로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정씨는 방위사업체 한국레이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남편 정호영과 이영애의 나이차이가 무려 20년이나 난다고 하네요. 지금 이영애의 나이는 50세인데 비해, 남편 정호영의 나이는 70세라고 합니다.

 

이영애가 20년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정씨와 결혼한 것을 보면, 이영개가 남편 정호영을 무척이나 사랑했나 봅니다.

실제로 이영애는 정씨와 무려 15년 동안이나, 기나긴 열애를 해오면서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었지만, 끝내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이영애는 탤런트로 활동하던 90년대 중반부터 정씨를 알게되었고, 정씨와 15년간 기나긴 사랑을 이이온 끝에,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영애와 정씨는 1990년대 중방 이영애가 마몽드화장품 CF를 찍고 있을 때에 정호영의 친구인 광고기획사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당시 정씨는 이영애의 '산소같은 여자'라는 신선한 이미지에 마음이 끌렸고, 이영애는 정씨의 자상하고 듬직한 오빠같은 모습에 마음에 끌렸다고 합니다.

정씨는 이 당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군납품사업 규모를 확장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두사람이 좋은 관계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IMF가 터지면서 정씨의 사업에 큰 위기가 찾아왔고, 사업이 어려워졌던 정씨는 이영애와의 관계를 끊고, 돌연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이영애와 정씨는 수년동안 서로 헤어져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이영애는 정신적으로 무척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영애가 정씨와의 이별의 슬픔을 잊기위해서, 유럽으로 한달동안 배낭여행까지 떠나갔을까요?

실제로 이영애가 쓴 자서전 '아주 특별한 사랑'에는 그녀가 유럽에서 한달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이영애가 정호영을 아주 끔찍히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대목이지요.

 

그리고 이영애는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에, 미국에 가서 정씨와 다시 재회를 했습니다.

 

몇년동안 관계가 끊어졌던 두사람의 관계는 이때부터 급속도로 다시 가까워졌고, 두사람은 다시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정씨와 어렵게 다시 재회를 한 이영애는 정씨와 결혼한 계획을 세웠고, 몇년동안 결혼준비를 한 끝에, 2009년 두사람은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영애와 정씨의 결혼은 무려 15년 동안 기나긴 만남을 이어온 끝에, 여러번의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의미깊은 결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답니다.

 

이영애의 한남자만을 사모해온 그녀의 높은 정조의 마음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답니다.

 

남편 정호영과 이영애

 

이영애가 15년동안 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한 것이어서,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이영애의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영애의 남편 정씨가 과거에 한 때 심은하와 약혼까지 했던 경력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2001년 정씨는 심은하와 약혼까지 했지만, 결국 서로간의 의견이 맞지않아서 정씨와 심은하는 파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씨는 먼저 이영애와 사귀었다가, 잠시동안 심은하를 만났고, 심은하와 헤어지고난 후, 또다시 이영애를 만나서 결혼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정씨 한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영애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또한 정씨는 과거 이혼한 경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아뭏튼 두사람이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이영애의 남편 정호영이 원래 이영애의 스폰이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씨가 원래 이영애의 스폰이었다가 나중에 두사람이 연인관계가 되었다면, 그것은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영애와 남편 정씨는 결혼한지 2년만인 2011년도에 토끼같이 귀여운 쌍둥이남매를 출산했답니다.

얼마전 이영애는 '가로채널' 방송에 쌍둥이 남매와 함께 출연해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답니다.

 

이영애의 최근 근황과 영화출연

 

이영애가 쌍둥이남매를 낳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영애의 쌍둥이남매는 벌써 10살이 되었고, 이제 초등학교 3년생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영애의 쌍둥이딸은 이영애를 쏙 빼닮아서 무척 예쁘답니다.

 

이영애-정씨부부는 원래 경기도 양평 문호리에 있는 커다란 전원주택에서 살았는데, 최근 자녀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서울 한남동으로 이사를 왔답니다.

 

그런데 쌍둥이남매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넗은 대지가 있는 양평 문호리의 집을 무척 그리워한답니다.

 

방송 '가로채널'에서는 이영애는 쌍둥이남매를 데리고 양평 문호리의 고향집을 방문해서, 쌍둥이남매의 향수를 달래주는 등 가족간의 훈훈한 일상을 보여줬습니다.

 

이영애가 오랜만에 방송에 다시 출연해서, 쌍둥이남매와 함께 알콩달콜 재미나게 사는 모습이 정말 보기좋았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영애의 최근근황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2019년도에 이영애는 영화 나를 찾아줘에 출연해서 열연을 펼쳤답니다.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이후 실로 14년만에 영화에 복귀했다는 그 자체가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인데, 이영애는 영화 나를 찾아줘에 주인공으로 전격 출연해서 제2의 연기인생을 펄쳐나가고 있답니다.

 

영화 나를 찾아줘6년전 실종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애환과, 끝없는 아들을 찾아나서는 어머니의 진한 모성애를 그려낸 영화로, 이영애의 완숙한 연기력이 빛나는 작품으로, 휴머니즘과 스릴이 함께 혼합된 휴먼스릴러물입니다.

 

이영애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스크린에 복귀했다는 점이 환영할 만한 일인데, 앞으로 이영애가 TV안방극장에도 다시 나와서, 그녀의 멋진 연기를 선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영애가 주연으로 출연한 대장금의 속편이 다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데, 너무 지나친 욕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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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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