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영애의 연기와 결혼과 이혼, 황토팩사업과 사망원인

연예인 핫토픽 2020. 12. 27. 20:05

 

영화배우 김영애의 연기와 결혼과 남편, 이혼사유, 황토팩사업과 사망이유

 

김영애 1951421~ 201749

 

오늘은 70, 80년대에 연기파배우로서 우리드라마와 영화계에 한획을 그었던 김영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김영애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역사를 같이 했다고 할만큼, 우리나라 TV드라마에 많이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여왕같은 존재감입니다.

 

김영애는 동양적이면서 단아한 미모와 아름다운 미성,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우리나라의 팔방미인 같은 연기자였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서 맹활약했던 전천후 연기자였습니다.

 

김영애가 출연한 TV드라마는 KBSMBC, SBS를 모두 합쳐 무려 120편이나 될 정도로 엄청 많습니다.

 

김영애는 70년대 전반 사극 '민비'에 출연해 민비역을 맡으면서 스타덤에 올랐는데, 당시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미모의 여자연기자가 출현했다고 해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김영애는 73년도와 80년도, 82년도 이렇게 세번씩이나 사극드라마에서 민비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녀는 완벽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민비전문 배우라는 대중들의 엄청난 찬사와 호평을 받으면서 큰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녀는 드라마 의친왕에서의 민비, ‘풍운에서의 명성황후 민비그리고 조선왕조 오백년에서의 소현왕후 등 

특히 사극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열혈 명품연기를 선보이면서사극드라마의 인기를 높여놓는 견인차역할을 했으며, 사극과 현대극을 두루 오가면서 대단한 연기활동을 펼쳐왔답니다.

 

 

김영애는 드라마 외에도 64편이 넘는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70, 80년대에 그녀는 TV드라마와 영화계 양쪽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 양쪽을 오가면서 연기하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쁜 연기활동을 벌여왔고

이처럼 그녀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그녀의 탁월한 연기력과 완벽한 미모 때문이었지요.

 

70,80년대 당시, 그녀에게 어떤 배역이 주어지더라도 한번 김영애가 연기에 몰입하기만 하면, 마치 신들린 듯한 열혈연기를 펼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와 인기를 최상의 경지에 끌어올리는 정말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던 배우가 바로 김영애였답니다.

  

 

김영애는 71년도에 MBC 수사반장에 캐스팅되면서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2016년 그녀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까지 총 120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김영애는 우리나라 연기역사상 가장 많은 배역을 훌륭히 소해내었던 최고의 다역배우이자, 연기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고의 연기력에다,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않을 정도의 완벽한 미모를 지니고 있는 김영애는 70,80년대에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하면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청춘스타였습니다.

 

이렇게 김영애는 71년도부터 2016년도까지 무려 46동안의 긴 연기활동을 벌여왔던 연기의 달인같은 존재감이었는데, 반면 그녀의 결혼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않은 측면이 있답니다.

 

그래서 46년 동안 열혈연기자로서 활동해왔던 우리나라 드라마의 여왕 같은 존재감인 김영애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녀의 황토팩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어요.

 

김영애의 불륜스캔들과 결혼과 이혼사유, 재혼

 

김영애는 연기자로서 우리연예계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될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그녀의 사생활도 연기 못지않게 파란만장 그 자체였습니다.

 

 

김영애는 70년대에 mbc에 입사해서 민비’ ‘수선화’ ‘사미인곡등의 인기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해 열혈연기를 펼치면서, 한창 주가를 크게 높여가고 있을 시기에, 갑자기 유부남과의 불륜스캔들이 터져버립니다.

 

김영애는 MBC 간판연기자로서 큰 인기를 끌고있을 75년도에 유부남인 음악가와 간통사건이 터져서 간통죄로 고소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녀의 연기인생에 큰 치명상을 입게됩니다.

 

지금은 간통죄가 없어졌지만, 간통죄가 존재했던 70년대의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서 미혼녀 연기자가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는 범죄이자,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김영애의 이 불륜사건으로 그녀는 우리연예계에서 퇴출될 위기를 겪었지만, 기적적으로 그녀는 다시 소생할 수 있었고, 계속 연기자로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답니다.

 

당시 박동선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여자연기자들이 줄줄히 퇴출되었던 시기였는데

재벌2세였던 박동선이 엄청난 금품을 뿌리면서 많은 여배우들을 농락한 것과는 달리, 김영애와 교제했던 상대남은 가난한 밴드마스터였습니다.

 

김영애가 교제했던 상대남이 가난한 음악인이라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면서

오히려 두사람의 정사는 순수한 사랑으로 인식되었고, 동시에 김영애에 대한 동정여론이 커지면서 그녀는 기적적으로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김영애는 자신과의 불륜스캔들의 상대남이었던 음악가 이씨와 1979년 전격 결혼을 치르면서 반전이 일어났고, 아들까지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영애의 상대남이 이씨는 원래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지만, 그는 전처와 이혼을 하고 새롭게 김영애와 재혼을 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스캔들을 일으켰던 두사람이 한순간의 불장난이 아니라, 서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이였다는 것이 두사람의 결혼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이때 김영애와 결혼했던 남편 이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민우는 나중에 성장해서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조피디의 여동생을 만나 결혼하면서 김영애와 조피디는 사돈지간이 된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혼해서 백년해로할 것 같았던 김영애와 남편 이씨는 한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았지만, 2000년도에 두사람은 이혼하고 맙니다.

 

김영애와 남편 이씨의 이혼사유는 성격차이라고 밝혀졌는데, 남편 이씨의 김영애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의심 등으로 인해서 두사람 사이에 마찰과 불화가 생겼고, 결국 두사람은 21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김영애가 이혼할 당시에, 김영애가 다른 남자배우와 외도를 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게 없기 때문에, 김영애의 외도는 누군가가 지어낸 루머라고 여겨집니다.

 

김영애는 90년대 후반에 건강이 나빠지면서 우울증 등 몇가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 수련원을 방문해서 기치료를 받게되는데요.

그녀가 방문했던 수련원에서 두 번째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기치료전문가 박장용씨였습니다.

 

 

한 수련원에 머물면서 박장용씨로부터 기치료를 받았던 인연으로 김영애는 박장용씨와 가까워졌고, 결국 김영애는 2002년도에 5년 연하의 박장용과 재혼을 하게 됩니다.

 

야심차게 시작한 김영애의 황토사업의 성공과 실패, 췌장암 발생

 

이 당시 김영애는 직접 황토미용 체험을 하면서, 황토사업에 큰 관심을 갖게되었고남편 박장용과 의기투합해 2002년도에 황토팩 미용제품을 생산·유통하는 황토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답니다.

 

김영애는 34년 동안 해오던 연기자생활에서 은퇴를 선언한 체, 남편과 함께 황토사업에 올인했습니다.

 

김영애는 갱년기를 맞아 건강이 나빠지면서 우연히 황토흙에 대한 관심을 갖게된 것이 계기가 되어

전라북도 정읍에 황토이미용 제품을 생산하는 황솔바이오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황토사업을 추진해나갔답니다.

 

김영애는 세계최초로 황토를 재료로 한 황토미용팩을 개발해내었고, 이 황토미용팩을 특허까지 받아서 자신의 공장에서 전매생산을 하게됩니다.

 

2000년대 전반 우리나라에 황토붐이 크게 일어나면서, 김영애가 시작한 황토사업으로 황토팩, 황토미용용품, 황토입욕 조성물등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연일 승승장구해나갔고

 

2002년도에 그녀의 사업은 매출 25억원을 달성하는가 싶더니이듬해에는 매출 250억 달성, 급기야 2006년도에는 매출 1500억원으로 급신장하면서 상당한 성공을 이루게 된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요!

김영애가 생산해내는 황토팩이 미국과 호주에까지 수출되면서 그녀의 황토사업이 큰 호황을 이루는 와중에, 갑자기 황토팩 쇳가루 함유 고발이 보도되면서, 큰 논란이 일어나게됩니다.

 

김영애의 황토사업이 절정을 이루면서 잘 나가던 무렵인 2000년대 중반, 이영돈PD가 진행하는 KBS 시민고발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 함유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김영애의 황토사업은 큰 타격을 받게됩니다.

 

그 당시 여러 매스컴을 통해서 황토팩제품에 기준치를 상회하는 중금속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면서, 황포팩 중금속 인체유해 논란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지게됩니다.

 

그리고 김영애가 판매했던 황토팩 미용용품의 엄청난 양의 반품세례가 쇄도했고, 김영애는 엄청난 사업적 경제적 손실을 입게되고, 결국 김영애의 황토팩사업은 쫄딱 망하게됩니다.

 

 

 

 이렇게 그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황토팩사업이 풍비박산나자, 김영애와 남편 박씨 사이에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관계도 매우 나빠지면서, 두사람은 결혼 6년만에 전격 이혼하게 된답니다.

 

이영돈PD의 보도로 인해서 너무 막대한 피해를 입게된 김영애는 이영돈PD를 상대로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등 재판을 벌여나갔고, 김영애는 최종적으로 재판에서 유해성이 없다는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그녀는 남편도 잃고사업도 망하는 등 이미 모든 것을 잃고난 후였기 때문에, 재판에서의 그녀의 승리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답니다.

 

황토사업의 실패라는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른 김영애는 이혼한 후, 사업에서 완전 손을 떼고 다시 연기자로 복귀하게 됩니다.

 

2010년경에 다시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김영애는 아테나:전쟁의 여신’ ‘로열패밀리’ ‘해를 품은달등의 인기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다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김영애가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촬영하는 때에, 자신이 췌장암에 걸려 투병중이었지만, 그녀는 촬영이 완전 종료된 후에 자신이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세상에 밝혔습니다.

 

황토팩 사업의 실패로 인해 심한 정신적 충격과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김영애는 그 후유증으로 2012년도에 췌장암 판정을 받았고, 연기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췌장암환자로 투병생활을 병행하게 된답니다.

 

해를 품은 달촬영 당시, 김영애는 암투병 사실을 끝날 때까지 숨긴 채로 연기를 해나갔는데

그녀는 마지막 쓰러질 때까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연기자의 자세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영애는 촬영이 종료된 후, 병원으로 직행하여 췌장암수술을 받았는데, 그녀는 무려 9시간이나 되는 대수술을 받은 끝에 완치판정을 받고 암을 이겨냈습니다.

 

이렇게 암에 걸려 속으로는 끙끙 앓아가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자신의 맡은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김영애의 연기자로서의 높은 장인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사업실패, 이혼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밤에 잠을 자지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1년 동안 수면제를 계속 복용해왔는데, 한 때는 수면제를 먹고 전혀 깨어나지 못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답니다.

 

 

 

야심차게 시작한 황토사업 실패와 두 번의 결혼실패, 그리고 췌장암 발생 등 갖은 우여곡절을 다 겪은 김영애는 자신의 천직은 연기자라고 판단하고, 마지막 남은 여생을 다시 연기활동에 올인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연기자로서 재기의 삶을 살았지만, 2014년도에는 간암판정까지 받으면서 김영애의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고말았지요.

 

수술을 받은 후에, 6개월만에 다시 드라마에 복귀하여, ‘메디컬 탑팀’ ‘닥터스9편이나 되는 드라마를 찍으면서,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갔는데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김영애는 2017년도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촬영하는 도중 췌장암이 다시 재발하게 됩니다.

 

그녀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촬영하는 도중, 갑자기 췌장암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외출증을 끊어가면서 연기를 해내어서, 남은 50부작을 모두 소화해내는 연기투혼을 불살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연기투혼을 불살랐던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말았답니다.

 

췌장암에 걸려 마지막 사망선고를 받았던 김영애는 죽기 전에 영정사진을 찍는 등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제 모든 것을 다 정리를 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 ‘죽음 앞두고 아까운 건 오직 연기뿐는 마지막 맨트를 남겼습니다.

 

 

췌장암투병 중에도 촬영에 임하는 등 마지막 연기투혼을 보였던 김영애는 결국 201749일날 암이 악화되어, 67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김영애는 그녀가 죽은 후인 201753일에 백상 예술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고같은해 1231일에는 KBS 연기대상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답니다.

 

김영애는 120편이 넘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여왕이었고, 연기의 달인이었지요.

 

우리연예계 역사상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로서 우리나라의 연예계분야에 커다란 기여를 했던 김영애였지만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사업실패 때문에, 말년을 불행하게 살았다는 점에서 큰 안타까움이 남는 여배우입니다.

 

그녀가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고, 사업에 진출하지 않고, 그냥 순수한 연기자로서만 평생을 살았다면

김영애는 뛰어난 연기자, 진정한 예술인으로서 존경과 찬사를 받으면서 지금도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배우입니다.

 

김영애의 죽음으로 인해서, 이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와 이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를 다시는 만나보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 때문에

그리고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는 뛰어난 연기자를 잃었다는 점에서, 우리연예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으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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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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