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김자옥의 젊은시절의 미모와 출연영화, 사망원인, 남편
김자옥 프로필
김자옥 - 1951년 10월 11일 ~ 2014년 11월 16일
김자옥 키 - 156cm
출생지 - 부산
남편 - 오승근, 최백호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자녀 - 아들 하나, 딸 하나
종교 - 기독교
데뷔 - 70년 MBC 공채탤런트 2기
오늘은 과거 70, 80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운 마스크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큰 즐거움을 주었던 추억의 여배우 김자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김자옥은 2010년대 이후에는 드라마에서 아줌마, 어머니역할 등 중년역할을 많이 했지만, 그녀도 70, 8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였고, 인기도 상당히 높았답니다.
김자옥은 70,80년대를 TV와 영화계 양쪽을 오가면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전설적인 인기여배우라고 평할 수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2014년 11월에 64세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인한 폐암합병증으로 사망하고 말아, 대중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던 여배우입니다.
김자옥은 총 25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뿐아니라, 무려 102편이나 되는 드라마에는 출연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기파 연기자였다고 평할 수 있답니다.
김자옥은 70,80년대의 우리나라 안방극장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맹활약했던 트로이카 탤런트 중 한명이랍니다.
7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우리 안방극장에서는 한혜숙, 김영애, 그리고 김자옥 등 세명의 미녀배우들을 트로이카 삼인방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쟁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는데요.
그 당시에 김자옥은 한혜숙과 김영애를 능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을 뿐아니라, 연기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던 연기자였습니다.
당시 영화계의 트로이카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었지만,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TV안방극장의 트로이카는 단연 한혜숙과 김영애, 김자옥이라고 평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당시 70,80년대를 풍미했던 트로이카여배우들보다 오히려 김자옥이 더 높은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당시 절정의 인기를 끌고있었던 정윤희의 1980년도의 1년 수입은 1,400만원이었던데 반해, 김자옥의 1980년도의 수입은 2,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연수입은 그 배우의 인기의 척도라는 점에서, 트로이카의 핵심 미녀여배우였던 정윤희보다도 김자옥이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끌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답니다.
김자옥은 죽기 전까지 무려 102편이나 되는 엄청난 편수의 드라마에 출연한 것만을 보더라도,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과 높은 인기는 이미 공증받았다고 평할 수가 있답니다.
김자옥은 70년도에 MBC 2기 공채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해, 71년도 MBC드라마 ‘심청전’에 주연으로 출연, 큰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심청전’에서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선하고 가녀린 심청이의 역할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김자옥은 이 첫작품으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 MBC의 간판탤런트가 된 김자옥은 ‘한중록’ ‘수선화’ ‘들장미’ ‘하얀 민들레’ ‘종점’ 등 수많은 명작품에 출연해 큰 두각을 나타내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해 나갑니다.
김자옥은 70,80년도에 수많은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출연해 주가를 올렸을 뿐만 아니라,
90~2000년도에도 그 여세를 몰아서 수많은 드라마에 계속 출연해 높은 인기를 끌어나갔던 우리 안방극장의 ‘드라마의 여왕’ 같은 존재감이었습니다.
또한 70,80년대에는 김자옥은 드라마 뿐만아니라 많은 영화에도 출연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70년대 후반 ‘미스양의 모험’ ‘O양의 아파트’ ‘영아의 고백’ ‘상처’ ‘목마위의 여자’ 등 야한 애로영화에도 여러편 출연했는데,
이 당시 그녀가 출연한 애로영화와 맬로영화의 대부분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녀는 맬로영화의 인기스타로서 큰 명성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70,80년대 당시 김자옥이 여러편의 영화에서 흥행에 성공했던 이유는 청순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미모,
그리고 가녀리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독특한 그녀만의 카리스마, 뛰어난 연기력 등 스타가 갖출 수 있는 모든 재능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랍니다.
김자옥은 뼈대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자옥의 아버지는 유명한 시인인 김상화입니다.
김자옥의 아버지 김상화는 유명한 서정시인이자 음대교수이며, 중앙극장의 상무이사를 지내신 다방면에서 재능이 많았던 문예가이셨고, 인물도 상당한 미남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김자옥은 자신의 아버지가 애인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버지로서는 빵점이라고 말하면서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바람을 많이 피우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잦은 부부싸움을 하셨다고 말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인기가 많았던 아버지 김상화시인에게는 주변에 여자가 많았는데,
심지어 집에까지 찾아와서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극성을 부리는 여자들도 여러명 있었다고 합니다.
바람 피우는 아버지와 그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어머니간에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자주 보면서 자랐던 김자옥은 그것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고, 일찍부터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갖게되었다고 합니다.
◆ 김자옥의 결혼과 남편, 이혼사유
이렇게 70,80년대에 드라마와 영화계를 오가면서 큰 활약을 펼치면서 그 시대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던 김자옥은 1980년도에 가수 최백호와 전격 결혼을 발표하게됩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여배우와 인기가수의 결혼이란 점에서 큰 화제를 모으면서 결혼을 했던 김자옥과 최백호 두사람은 평생 해로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으로 큰 기대감을 모았답니다.
그런데 대중들의 기대감과는 달리 김자옥과 최백호는 고작 결혼 3년 만에 전격 이혼하면서 또다시 큰 화제를 모으게 되는데요.
김자옥과 최백호가 이렇게 빨리 이혼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가지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김자옥은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은퇴를 하였는데, 실제로 김자옥은 결혼한 1980년도에 은퇴선언을 했고, 몇 년간 연기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김자옥은 은퇴한 지 1년 6개월만에 다시 브라운관에 복귀해서 드라마 ‘사랑의 조건’에 출연해 연기활동을 재개해나갑니다.
김자옥이 이처럼 은퇴한 후 다시 연기활동을 재개했던 것은, 그녀가 결혼해 한남자의 아내로서 평생을 사는 것보다 그녀의 연기자로서의 갈망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김자옥이 연기를 재개한 것에 대해 남편 최백호는 별로 탐탐치않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자옥은 결혼 후에도 연기에 대한 꺾이지않는 갈망을 호소했었는데, 남편 최백호의 허락하에 단 한편의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조건하에 드라마에 출연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드라마출연을 재개하면서 김자옥의 연기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더 크게 활활 타올랐으며, 그 이후에도 김자옥은 또다른 드라마 ‘아내’에 다시 출연하는 등 연기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해나갔답니다.
이렇게 결혼 후 연기은퇴를 번복하면서 다시 연기활동을 재개해나갔던 김자옥은 결혼 3년 만에 최백호와 전격 이혼을 하게됩니다.
그 당시 김자옥과 최백호 두사람은 서로간의 성격차이가 심해서 이혼했다는 표면적인 이혼사유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판단해보면, 김자옥과 최백호가 이혼하게 된 사유는 김자옥의 연기활동 재개 때문에 두사람간의 일어난 갈등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이혼사유가 퍼진 적이 있는데요.
최백호가 김자옥과 결혼한 뒤, 그는 일본프로덕션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해 방송국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요.
그 당시 최백호는 주최측이 주선한 일본의 한호텔에 머물렀었는데, 그 호텔방에서 최백호는 무심코 비디오를 틀어 감상했는데, 그 비디오에서 김자옥이 나오는 애로비디오를 보고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상당히 수위가 높다고 알려진 그 애로비디오를 본 최백호는 그녀에게 너무 실망해서 곧바로 김자옥과의 이혼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김자옥비디오 이야기는 그 당시 시중에 퍼진 루머일 뿐이며, 사실로 확인되거나, 검증된 적은 없기때문에, 사실여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아뭏튼 김자옥과 최백호는 결혼한 지 3년만인 1983년도에 전격 합의이혼하였고, 놀랍게도 그 이듬해에 두사람 모두 다른 배우자와 재혼을 하게됩니다.
김자옥은 가수 오승근과 재혼을 했고, 최백호는 10년 연하인 손소인과 재혼을 했답니다.
한번씩 이혼을 경험한 김자옥과 최백호는 이혼한 뒤에 각각 1984년도에 다시 재혼하여 새로운 배우자와 오히려 더욱 금슬좋게 잘 살고있습니다.
두사람 모두 이혼한 후, 더욱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잘 살고 있다고 하니, 이혼한 것이 두사람에게는 오히려 득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네요.
김자옥은 오승근과 결혼을 했는데, 당시 오승근은 전처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김자옥은 그 딸을 친딸처럼 잘 키웠다고 합니다.
서로 한번씩 이혼한 아픔을 겪은 두사람 김자옥과 오승근은 재혼한 후, 오순도순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면서 알콩달콩 잘 살아갔으며, 연예인부부의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면서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답니다.
김자옥의 두 번째 남편 오승근은 김자옥과 나이가 동갑이며, 70년대 중반 ‘금과은’이라는 듀엣을 결성해 ‘빗속을 둘이서’라는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던 포크송 가수출신입니다.
그런데 80년도에 ‘금과은’을 해체한 후, 솔로로 전향한 후 한동안 트로트가수로 꾸준한 가수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 김자옥, 대장암 발생과 항암투병, 사망원인
이렇게 새롭게 재혼을 하면서 금슬좋게 살아갔던 김자옥과 오승근부부에게 1990년대말 커다란 위기가 찾아옵니다.
원래 오승근은 가수활동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사업인 인테리어사업과 여행사사업을 물려받아 두사업을 같이 병행하고 있었는데,
90년대 후반 INF사태가 발생하면서 그의 사업들이 모두 부도가 났고, 무려 70억원의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답니다.
이 때에 김자옥은 꾸준히 TV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방송활동을 계속해와서 경제적으로는 어느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남편의 사업실패와 부도로 인해서 김자옥도 적지않은 경제적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승근은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사업부도를 겪었을 때에 아내 김자옥에게는 피해가 가지않도록 최대한 배려했었다고 주장했지만,
남편이 사업부도로 70억의 빚을 지게되었는데, 부인의 입장에서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렇지만 오승근은 2003년도에 트로트곡 ‘있을 때 잘해’를 전격 발표해 이 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트로트가수로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고, 두사람은 다시 금슬좋은 부부로 잘 살아가게됩니다.
그런데, 2008년 김자옥은 무심코 받은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진단을 받게되며, 이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당시 김자옥은 대장암수술을 받았으며, 그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져서 김자옥은 대장암을 극복했다고 알려졌답니다.
그리고 대장암을 극복한 김자옥은 이후에도 여러편의 TV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여났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드라마, 영화뿐만아니라, ‘지붕 뚫고 하이킥’과 ‘꽃보다 누나’ 같은 예능프로에도 출연하는 등 매우 건강한 모습과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 대중들은 그녀가 대장암을 완전 극복했다가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방송활동하던 시기에, 김자옥은 과거에 앓았던 대장암이 임파선과 폐로 전이되면서 암의 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태가 되어있었답니다.
그동안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실제로 김자옥은 대장암세포가 다른 여러 장기로 전이되면서, 방사선치료를 28차례나 받았을 정도로 계속해서 항암치료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김자옥은 대장암이 발병한지 6년이 지난 시점인 2014년도에 대장암이 폐로 전이되어 폐암이 크게 악화되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결국 2014년도 11월 16일 64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김자옥은 거의 7년동안 대장암을 앓고 있으면서도 방송에서는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않았고, 겉으로는 항상 명랑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하니, 대중들의 그녀의 병이 그토록 심각한지를 알 수가 없었는데, 그녀의 정신멘탈이 얼마나 강한지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연기욕심이 많았던 김자옥은 자신이 죽기 1년 전인 2013년도에도 예능프로 ‘꽃보다 누나’와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 출연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이 당시 김자옥은 항암치료를 받는 고통스러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능과 드라마에 출연해 항상 밝고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속으로는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한시대를 풍미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자가 60대 중반의 나이에 대장암과 폐암에 걸려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1971년도부터 2013년도까지 무려 120편이 넘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만능연기자 김자옥은 60대 중반의 나이에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남으로써, 많은팬들에게 커다란 안타까움과 슬픔을 남겨놓았답니다.
한편 김자옥은 오승근과 재혼해서 아들 한명을 낳았으며, 오승근 전처 소생인 딸과 자신이 낳은 아들 등 1남 1녀의 자녀를 남겨놓았습니다.
김자옥이 사망하고 난 뒤 한달뒤인 2014년 12월말, 방송3사에 진행한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방송3사는 모두 그녀에게 ‘공로상’을 수여해서 김자옥의 연기자로서의 평생공로를 기렸습니다.
김자옥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도 사랑스러운 ‘예쁜 공주’ 그리고 ‘영원한 소녀’ 같은 천진난만한 이미지의 배우였고,
항상 대중과 함께 가까이 할 수 있는 다정하고 친근감 있는 여배우이었기에, 그녀의 죽음이 더욱 슬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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