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우드의 세기적인 미녀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프로필, 영화, 결혼하지 않은 이유, 동성연애자, 연인 미미 폴락

 

그레타 가르보 프로필

 

출생일과 사망일 - 1905918~ 1990415

출생지 - 스웨덴 스톡홀름

국적 - 미국, 스웨덴

- 170cm

데뷔작 -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

결혼 - 비혼

무자녀

별명 - 은막의 여왕

 

오늘은 20세기 전반 미국 허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금발미녀배우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그레타 가르보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20세기 전반 세계최고의 금발미녀이자 최고의 명배우로 큰 명성을 날렸던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인 여배우가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그레타 가르보이지요.

 

그레타 가르보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양영역을 오가면서 주옥같은 명작품을 많이 남겼던 허리우드의 위대한 명배우로, 

전세계인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20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입니다.

 

 그녀는 1924년 스웨덴에서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로 영화계에 처음 데뷔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허리우드에 진출하면서 육체와 악마’ ‘사랑’ ‘로맨스’ ‘안타 크리스티’ ‘그랜드호텔’ ‘춘희’ ‘안나 카레리나등 

수많은 명작품에 출연하여, 아름다운 미모와 탁월한 연기력으로 전세계인들로부터 엄청난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 세기적인 톱여배우였습니다.

 

특히 그레타 가르보는 영화 마타하리에 출연해서 그녀 특유의 뇌쇄적인 매력을 발산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북유럽 여성답게 170cm의 커다란 키와 금발의 웨이브진 머릿결, 그리고 환상적인 푸른눈과 얼음장같이 차가운 미모로 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는데

그녀가 연기활동을 벌였던 1920~30년대는 그야말로 그레타 가르보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그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녀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세계인들을 매료시키면서 20~30년대를 풍미했던 허리우드 최고의 미녀스타 그레타 가르보가 사실은 동성연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원래 미국인이지만, 스웨덴에서 태어났는데, 무성영화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미녀스타였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차가운 눈빛과 도도한 매력을 풍기면서 마타하리’ ‘춘희’ ‘안나 카레리나같은 수많은 걸작품에 출연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기준으로 2차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는 그레타 가르보의 시대이고, 2차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는 마릴린 몬로의 시대라고 평할 정도로, 20세기 전반은 그레타 가르보의 전성시대였답니다. 

 

세기적인 미녀배우 그레타 가르보, 평생 결혼하지 않은 이유

 

그런데, 세계 최고의 미녀배우로 폭발적인 인기와 명성을 누렸던 그레타 가르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세계최고의 재벌이나 최고의 미남배우와 혼인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되었는데요.

 

그렇지만 그레타 가르보는 결혼을 포기한 채,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20세기 전반의 최고의 금발미녀, 최고의 명배우로서 명성이 높았던 그레타 가로보의 숨겨져왔던 사생활이 전격 공개되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죽기 전에 남겼던 몇통의 편지가 공개되었고, 그 편지 안에 그녀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놀라운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돈많은 부호와 귀족들은 서로 앞다튀서 그레타 가르보에게 보석선물과 함께 청혼하였지만, 그녀는 이 모든 청혼과 유혹들을 뿌리쳤고, 한 평생을 독신으로만 살기를 고집했었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한창 전성기시절이던 1941두얼굴의 연인이라는 영화를 마지막으로 촬영한 후,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후, 은둔생활에 들어갔답니다.

 

그 당시 그레타 가르보는 36살로 한창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인기절정의 시기였는데, 그녀는 갑자기 은퇴를 한 후, 전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오랜 칩거생활을 이어나갔는데요.

 

그녀는 은퇴한 후, 평생 결혼도 하지않고 평생 독신으로 외로운 삶을 살아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겁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크라크 게이블, 존 길버트, 명지휘자 스토포프스키, 로버트 테일러 등 당대의 명배우등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지만, 단 한차례도 결혼을 하지않았답니다.

 

20세기 전반 최고의 미녀배우이자 명배우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이러한 그녀의 특이한 삶이 정말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답니다.

 

세기적인 미녀라고 불리 정도로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가 왜 한평생을 혼자 살았을까요?

 

 돈많은 재벌과 멋진 미남배우들이 수없이 청혼을 했는데도, 이 모든 프로포즈를 다 뿌리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갔다는 것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90년 수많은 의혹 속에 그레타 가르보는 86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그녀가 죽기전에 남겨놓았던 한통의 편지로 인해서 그녀가 동성애자임이 밝혀져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원래 동성애자였다!

 

그레타 가르보는 왜 인기절정의 시기에 갑자기 은퇴하였는지, 그녀의 은퇴이유를 놓고 큰 논란에 휩쌓이기도 했답니다.

 

항간에서는 그레타 가르보가 성형을 잘못해서 성형부작용으로 은퇴했다는 설과 연합군과 나치의 이중스파이를 했다는 이중스파이설 등 여러가지 의혹들이 불거지기도 했지요.

  

1940년대 초 전성기 시절에 그레타 가르보가 36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은퇴한 것도 커다란 미스테리였고

그녀는 은퇴한 후 50년 동안 일체 그 어떤 방송출연도 하지않은채, 끝까지 은둔생활을 한 것도 역시 미스터리 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몇통의 편지로 인해서 그레타 가르보가 은퇴한 이유가 밝혀지게 되었답니다.

 

그레타 가르보(우측)와 한때 연인관계였던 존 길버트(좌측), 존 길버트는 그레타 가르보에게 청혼한 후 거절당하자, 낙심한 끝에 자살로서 생을 마감함.

 

그레타 가르보가 인기절정의 시기에 갑자기 은퇴한 이유는 그녀의 동성애인 미미 폴락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2006년 미미 폴락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 미미 폴락이 그레타 가르보와 서로 교환했던 편지를 공개하면서, 두사람이 서로 동성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2살 연상의 스웨덴여배우인 미미 폴락과 친하게 지내면서 동성연인으로 발전했는데

동성연인이었던 미미 폴락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스웨덴 남자배우와 결혼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미미 폴락과 그라테 가르보와 동성연인 관계임이 남편에게 들통이 났고, 이 때문에 미미 폴락이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는데

두사람의 동성연인관계가 공개되어 매스컴으로부터 큰 조명을 받는 상황이 되자, 미미 폴락을 지켜주는 길은 자신이 은퇴하는 길이라고 판단한 그레타 가르보는 결국 은퇴를 했다는 겁니다.

 

이 당시 그레타 가르보는 자신이 대중들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진다면, 미미 폴락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미미 폴락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레타 가르보는 인기절정의 시기에 주저함없이 전격 은퇴를 선택했던 겁니다.

 

이렇게 그레타 가르보가 은퇴한 후, 그녀는 서서히 매스컴과 대중들로부터 잊혀져갔고, 그녀의 동성연인 미미 폴락도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기에, 그녀의 고통도 사그라들 수 있었답니다.

  

그레타 가르보의 동성연인으로 밝혀진 미미 폴락은 스웨덴출신으로 그레타 가르보와 학교동기이며, 스웨덴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레타 가르보와 미미 폴락은 그저 절친한 친구관계였지만, 실제로 두사람은 서로 동성연애를 하는 뜨거운 연인관계였다는 사실이 두사람간에 주고받은 편지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은 미미 폴락에게 계속해서 사랑의 사연을 담은 러브레터를 보냈으며

이러한 두사람간에 오간 러브레터가 미미 폴락의 남편에게 발각되었고, 이 때문에 미미 폴락이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의 동성연인 미미 폴락

 

그리고 매스컴으로부터 연일 미미 폴락이 그레타 가르보와의 동성연애 때문에 이혼당했다는 구설이 계속 회자되어 나오자

그레타 가르보가 스스로 은퇴를 선택하면서, 이같은 매스컴의 구설로부터 그녀의 사생활을지켜주고자 했다는 겁니다.

   

20세기 전반, 허리우드를 대표했던 미녀여배우인 그레타 가르보는 당시 미남배우 존 길버트와 사귀기도 했으며, 존 길버트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답니다.

 

그리고 그레타 가르보로부터 거절당한 존 길버트는 얼마 지나지않아 자살로서 생을 마감했는데, 사실 존 길버트의 자살이유는 그레타 가르보에 대한 사랑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모리스 스텔라감독, 아코스타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녀를 짝사랑했었고, 그들도 대부분 그레타 가르보에게 청혼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1940년대에 그레타 가르보는 사진작가 세실 비튼과 핑크빛스캔들로 유명한데, 그레타 가르보와 세실 비튼은 한때 사귀었던 연인관계였지요.

그런데, 어느날 그레타 가르보가 세실 비튼에게 일방적인 결별선언을 했고, 세실 비튼은 떠나가는 그녀에게 마지막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레타 가르보는 세실 비튼에게 자신을 영원히 잊어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별을 상징하는 노란장미꽃을 주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레타 가르보에게 처참하게 버림을 받은 세실 비튼은 그녀가 준 노란장미꽃을 간직한 체, 그녀를 잊지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갔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청혼했던 부와 명예를 갖춘 뛰어난 배우자감들을 모두 매몰차게 거절했던 차가운 미녀 그레타 가르보

이렇게 그레타 가르보가 독신만을 고집했던 진짜 이유가 바로 그녀의 동성연인 미미 폴락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한시대를 풍미했던 세기적인 미녀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녀가 자신의 동성연인을 위해 배우생활에서 은퇴했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 더욱 놀랍기만 합니다.

 

당시 여러명의 남자배우들과 감독들의 자살의 원인이 되었을만큼 뛰어난 미모를 간직했던 세기적인 미인 그레타 가르보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모두 외면한 체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면서 평생 외롭게 살아갔고, 죽을 때에도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외롭게 죽었습니다.

 

평생 독신과 은둔생활을 해왔던 그레타 가르보는 199086세의 나이로 뉴욕의 자신의 집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불운한 미녀여배우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배우들이 부러워할만큼 그레타 가르보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곁에 두지 못한 체, 평생 독신으로 외로운 삶을 살아가야만하는 모진 운명을 그녀 스스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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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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