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최고의 싸움꾼 시라소니 이성순의 싸움실력과 기술, 박두성

사랑방 이야기 2018. 3. 15. 23:24

 

한국최고의 싸움꾼 시라소니의 싸움신화, 140의 대결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을 꼽자면 과연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과거 TV에서 무풍지대야인시대를 방송하면서, 해방전후의 우리나라 싸움꾼과 주먹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파를 탔었다.

 

방송에서도 나왔듯이 해방전 법보다는 주먹이 앞섰던 시기에, 내노라하는 주먹들이 자신의 나와바리를 구축하고 거침없는 주먹들을 휘둘러왔다.

 

특히 주먹들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구마적, 신마적, 김기환, 상하이박, 김두한 등 쟁쟁한 주먹들이 등장해서 피비린내 나는 주먹대결을 펼치면서 주먹조직의 오야붕으로 명성을 떨치곤 했다.

 

그런데 해방전 후에 막강한 주먹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들 주먹들 말고도, 홀로 조선의 산천초목을 누비면서 전설과도 같은 놀라운 주먹신화를 창조했던 또하나의 대단한 싸움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해방전후 조선의 최상위 레벨의 주먹세계를 이끌었던 구마적, 신마적, 김기환, 김두한 등의 주먹들보다 항상 혼자서 거침없이 싸워왔던 시라소니 이성순이 최고의 싸움꾼이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그의 전력을 평가해보더라도 조선시대 역사상 시라소니만한 대단한 싸움꾼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시라소니가 왜 조선최고의 싸움꾼’ ‘한국최고의 싸움꾼에 등극할 수 있었는지, 사라소니가 걸어왔던 과거의 전설과도 같은 그의 싸움스토리를 전개보도록 하겠다.

 

시라소니는 일제강점기 때에 신의주에서 활동하면서 북한지역의 난다긴다하는 주먹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1936년경 중국으로 진출해서 일본야쿠자 등 기라성 같은 국제주먹들을 제압하고 동양최고의 주먹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해방 이후 남한으로 건너와서 서울에 정착했던 인물이다.

 

본명이 이성순인 시라소니는 191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고, 이미 10대 후반에 신의주의 내노라하는 주먹들을 제압하고 신의주의 강력한 주먹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북한지역의 난다긴다하는 주먹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면서 21살의 나이에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던 불세출의 박치기제왕이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중국대륙에 진출하면서, 주먹 하나로 기라성 같은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면서 그의 주먹신화를 이어갔으며,

중국과 만주에서도 천재적인 싸움기술을 발휘하여 수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동양최고의 주먹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대단한 싸움천재이다.

 

과거에 주먹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쟁쟁한 주먹들도 시라소니가 평안도와 만주. 중국에서 이루어놓았던 싸움신화에는 명함도 못내민다는 것이 정설이며,

그만큼 시라소니가 이룩한 싸움전력은 정말 화려하고 대단했으며,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은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조선최고의 주먹이라고 불리웠던 김두한도 시라소니와 비교하더라도, 결코 시라소니의 눈부신 전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이다.

 

주로 서울과 인천지역에서 활동했던 김두한과는 달리 시라소니는 평안도를 넘어 만주와 북경, 상해와 천진 등 사실상 한반도와 중국전체가 그의 독무대나 다름없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상을 펼쳤다는 점에서 김두한과도 비교가 된다.

 

특히 시라소니는 만주에서 혼자서 소총 같은 무기를 든 80명의 신마적 조직원들과 대치했던 일화는 정말 대단한 일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두한은 이런 눈부신 일화가 별로 없고 주로 일대일 싸움만을 펼쳐왔다.

 

그리고 김두한이 경성의 오야붕이 된 후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같은 지방주먹들을 제압해나가면서 전국구 주먹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실상은 김두한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라, 김두한의 부하들이 김두한 대신 싸워나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두한이 경성(서울)을 넘어 전국구 주먹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두한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사실 수백명의 그의 부하들의 역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라소니 이성순은 항상 혼자서 싸워나갔고, 신의주, 만주 봉천, 북경, 천진, 상해 등 중국대륙에서도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만나 그의 특출한 싸움기술로 모조리 꺾어버리는 눈부시고 혁혁한 싸움전과를 이룩해나갔다.

 

정말 신화와 같은 1 40의 싸움에서도 시라소니는 혼자서 싸워나갔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이점에서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많이 구별되는 것이며, 만약 두사람이 싸운다면 당연히 시라소니가 이길 것으로 판단된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싸움에서의 자존심이 엄청 강한 사람이다. 시라소니는 상대방과 싸울 때에는 상대의 숫자가 몇 명인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무작정 싸우러가는 스타일로서,

정말 배짱이 두둑한 싸움꾼이고,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다.

 

시라소니는 자신보다 강한 주먹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반드시 그를 찾아가서 반드시 쓰러뜨리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야심만만한 싸움꾼이었다.

 

여기까지 시라소니의 개론학을 열거했는데, 이제부터 시라소니의 각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시라소니는 무척 빠른 스피드와 천부적으로 타고난 강한 힘과 강철주먹을 갖고 있었고, 또한 그는 대단한 싸움기술과 싸움능력을 갖고 있어서, 주먹으로서 갖춰야 될 삼박자인 힘과 스피드, 테크닉을 모두 갖춘 완벽한 싸움꾼이었다.

 

시라소니는 일제시대 때에 나라를 잃고 차별받는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수많은 일본야쿠자들과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면서 그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한과 울분을 풀어나갔다.

 

여기에서는 시라소니가 신의주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떠올랐던 세건의 주먹신화를 소개해드리겠다.

이 세건의 싸움은 모두 실화이며, 시라소니가 조선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대결이었다.

 

    신의주에서 출생한 시라소니는 사실 어렸을 적부터 골목에서 숱한 싸움을 벌여나갔었다.

이렇게 싸움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성장한 시라소니는 20살 전후의 시기에 평안도에서 악명 높았던 두명의 주먹계의 거물들과의 싸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 중 한명이 바로 칼잡이 김장손이라고 또다른 한명은 평안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이었다.

 

 

시라소니, 칼잡이 김장손과의 목숨을 건 대결

 

시라소니가 신의주에서 칼잡이 김장손과 싸운 전과는 정말 주먹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주먹이 강한 강자라고 하더라도, 또한 무예실력이 뛰어난 고단자라고 하더라도 칼을 가진 상대방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승산이 없는 것이다. 칼을 갖고 덤비는 상대에게는 천하장사도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라소니는 신의주에서 칼잡이로 소문난 김장손과 목숨을 건 한판대결을 펼쳤었다.

1936년도 시라소니가 21살 되던 해였는데, 신의주의 중심가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셨던 시라소니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이렇게 술에 거나하게 취한 시라소니는 저녁때가 되자, 술집을 나서서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술에 취한 시라소니가 뜻하지 않게 매우 이상한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그당시 신의주 중심가에는 유명한 요리집이 하나 있었는데, 이 요리집의 주방장으로 있는 김장손은 신의주에서 가장 악명 높은 칼잡이였다.

 

김장손은 왕년에 신의주를 주름잡았던 대단한 싸움꾼이었고, 이젠 요리집에 들어가서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종종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말썽꾼들을 수도없이 두들겨 패면서 또다시 유흥가를 주름잡는 난폭한 칼잡이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그 요리집에서 술을 먹다가 난동을 부리던 5명의 양아치들이 김장손에 걸려서 모두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맞고는 쫒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김장손은 싸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칼을 잘 쓰는 칼잡이로도 유명한데, 그가 몹시 화가 나게 되면,

그는 사시미칼을 집어들고 덤빈다고 하며,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완전 죽음목숨이 되는 것이다.

 

또한 김장손은 칼을 써서 사람을 해친다고 하더라도, 그는 철저한 친일파로서 일본경찰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일본경찰의 후광을 업고있는 그를 처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시라소니가 술에 취한 상태로 밤길을 걷다가 그만 골목이 꺾어지는 지점에서 실수로 한 여자와 부닥치고 말았다.

 

어두운 밤에다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시라소니는 꺾어지는 골목길에서 실수로 어떤 여성과 부닥치고 말았고, 그여성은 충돌의 충격으로 잠시 주저앉았지만 큰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시라소니의 실수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시라소니가 부닥친 그 여인은 다름아닌 칼잡이 김장손의 애첩이었다. 신의주에서 악명 높은 칼잡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장손의 애첩인 그여자 또한 김장손 못지않게 성깔이 사납기로 유명한 여자였다.

 

그여인과 부닥치자 마자, 시라소니가 곧바로 정중하게 사과를 했지만, 그 성깔 사나운 여성은 시라소니에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을 뿐만아니라,

곧바로 김장손에게 달려가서, 마치 시라소니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처럼 거짓말로 김장손에게 고해바친 것이다.

 

바쁘게 길을 걸어가다가 골목이 꺾어지는 부분에서 상대방과 부딪치는 일은 사실 흔한 일이고, 크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그 여성은 이같은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려서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시라소니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애첩의 거짓된 참소를 전해들은 김장손은 엄청나게 화가 났으며, 곧바로 시라소니를 뒤쫒아왔다.

 

그런데 그는 맨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그가 가장 화가 많이 났을 때에만 사용한다는 사시미칼을 오른손에 쥐고 시라소니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시라소니가 신의주 유흥가에서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선 냇가를 건너가야 한다.

시라소니가 이 냇가를 막 건넜을 적에,

냇가 건너편 쪽에서 김장손의 우레와 같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냇가 건너편에 다다른 김장손은 시라소니를 발견하고는 시라소니에게 시라소니 이 망나니새끼, 감히 내 여편네를 두들겨팼어!’ ‘너 이제 나한테 죽었어!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줄 그리알아!’라고 말했다.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확대되었다. 신의주에서 가장 성질이 못되고 잔인하다고 소문난 김장손이 칼까지 갖고왔으니, 시라소니로서는 사과를 한다고 한다고 해도 전혀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칼을 가진 김장손과 맨손의 시라소니가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서로 10m 넓이의 냇가를 가운데에 두고 냇가의 이쪽은 시라소니가, 냇가의 건너편은 김장손이 있었다.

김장손은 사시미칼을 휘두르면서 냇가를 막 건너려고 하고 있었고, 시라소니는 잠자코 김장손과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칼을 쥔 김장손이 냇가를 건너와서 칼을 휘두르면 제아무리 뛰어난 싸움꾼인 시라소니라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관건은 김장손이 냇가를 건너기 전에 싸움을 끝내야 한다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한 시라소니는 10m 이상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그대로 냇가쪽으로 달려왔고, 달려오는 탄력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솟구쳐올랐으며,

공중으로 뛰어오른 시라소니는 그대로 냇가를 뛰어넘으면서 왼손으로 김장손의 오른손을 붙잡는 동시에, 자신의 이마로 김장손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다.

 

마치 한편의 영화장면처럼 공중으로 뛰어오른 시라소니는 냇가를 뛰어넘으면서, 한손으로 김장손의 칼을 쥔 오른손을 붙잡았고, 동시에 박치기로 김장손의 이마를 세차게 들어 받았다.

 

뛰어오른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체중의 힘을 실어 들이받은 시라소니의 박치기 한방으로 칼잡이 김장손은 그대로 쓰러져 혼절하고 말았다.

 

신의주 최고의 칼잡이를 상대로 맨손인 시라소니는 오직 박차기 한방으로 군말없이 KO시켜버린 것이다.

 

한번 스치키만 해도 목숨이 달아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인 칼을 가진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시라소니는 박치기 한방으로 간단하게 그를 쓰러뜨린 것이다. 시라소니의 싸움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소니, 평안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과의 대결

 

시라소니의 싸움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싸움기술과 힘을 지니고 있다.

 

특히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는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 기술은 시라소니만의 전매특허이며, 두둑한 배짱과 뛰어난 싸움기술을 지닌 시라소니는 조선과 만주, 중국의 쟁쟁한 국제주먹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면서 그만의 놀라운 싸움신화를 이어나갔다.

 

시라소니는 싸움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만큼 대단하다. 시라소니는 어느곳이든 싸움을 잘하는 강자가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그들을 찾아가서 그 강자들과 싸워서 꺾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1936년 시라소니가 21살이 되던 시기에, 그는 또다른 엄청난 싸움모험을 벌이고야 만다.

 

북한의 안주지역에는 박두성이라는 걸출한 싸움꾼이 있었는데, 키가 육척장신에다 힘이 천하장사인 그는 원래 뛰어난 씨름꾼이었으며, 전국씨름대회에 나가서 10마리나 되는 황소들을 타냈던 씨름장사 출신이었다.

 

그 당시 북한지역에서는 두명의 대단한 싸움꾼이 있었는데, 한사람은 평양의 이화룡이었고, 또다른 한사람은 안주의 박두성이었다.

이 당시 시라소니는 신의주에서는 최고의 주먹 대접을 받았지만 아직 다른지역에는 진출하기 전이서 신출내기 싸움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당시 싸움 관록면에서도, 힘에서나 이화룡보다는 박두성이 한 수 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안주의 박두성을 북한의 최고싸움꾼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신의주 지역의 난다긴다하는 싸움꾼들을 모조리 제압한 시라소니는 21세의 나이에 신의주의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한 상태였는데,

안주의 박두성이 평안도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라소니는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싸움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혼자서 혈혈단신으로 안주로 박두성을 무작정 찾아갔다.

 

시라소니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그를 찾아가 쓰러뜨리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미가 또다시 발동했다.

바로 이러한 시라소니의 싸움에서의 강한 자존심 때문에, 시라소니와 박두성의 세기적인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열차를 타고 안주로 찾아간 시라소니는 안주역의 뒷골목을 배회하면서, 수소문한 끝에 박두성과 조우할 수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 자신을 다급하게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평안도 최고주먹의 사나이 박두성이 먼저 시라소니가 있는 안주역전 앞으로 다가왔다.

 

평안도 최고의 주먹이 되기 위해서, 그동안 숱하게 많은 싸움들을 치러왔던 어깨가 딱 벌어진 육척장신의 사나이 박두성이가 시라소니 앞으로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건넸다.

 

이 당시 시라소니의 키는 175cm 였으며, 시라소니의 몸무게는 70kg밖에 안되는 좀 마른 체구의 보통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박두성은 시라소니에게 대뜸 니가 나를 보자고 했다며!, 너는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누구냐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에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내레 신의주에 사는 이성순인데, 남들이 나를 시라소니라고 부르디, 내레 오늘 누가 더 쎈디 님자와 한판 붙어보러 왔수다!’라고 맞받아쳤다.

 

천하의 싸움꾼 박두성은 시라소니의 이 당돌한 말 한마디를 듣고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고 기가 막혔다. 세상에, 싸움으로 잔뼈가 굵은 천하의 박두성에게, 난생 처음 보는 삐쩍 마른 어린놈이 와서는 느닷없이 자신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두성은 셀 수 없이 많은 씨름대회에 출전해서 10마리가 넘는 황소를 타냈을 뿐만아니라, 엄청난 괴력과 파워를 지닌 천하의 장사인데다가 그의 싸움의 주특기는 바로 박치기로서,

거구의 육척장신의 몸으로 들이박는 그의 강력한 박치기 한방을 맞는다면, 왠만한 거물들도 그대로 기절해버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싸움에는 이골이 난 인물이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평안도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닉네임을 붙였을까?

 

북한지역의 난다긴다 하는 거물급 주먹들을 모조리 다 꺾고, 함경도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천하의 박두성에게 이렇게 삐쩍마른 시라소니가 감히 싸우자고 도전해왔으니, 어이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기가 막혔던 박두성은 그냥 시라소니를 확 밀어버렸고, 그리고는 박두성은 그대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두성은 시라소니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단지 시라소니를 깐죽거리는 양아치 정도로만 여겼기 때문에, 그냥 시라소니를 밀어서 야코를 죽이려한 것인데,

이당시 너무도 방심했던 박두성은 시라소니를 그냥 밀어서 싸움을 빨리 끝내려고 한 것이다.

 

박두성이 두손으로 확 미는 바람에, 뒤로 밀리면서 시라소니는 뒤에 있는 사람의 발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넘어진 상황이 되자, 박두성이 곧바로 달려와서 시라소니의 복부를 발로 밟아버렸다.

 

박두성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명치까지 얻어맞은 시라소니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복부를 얻어맞고 누워있던 시라소니는 그순간 다음 공격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잠시동안 숨을 가다듬은 시라소니는 곧바로 일어났고, 그대로 돌진하면서 박두성에게 박치기공격을 가했다.

 

그렇지만 박두성은 싸움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싸움의 베테랑이었고,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풋내기가 결코 아니었다.

 

운동신경이 워낙 뛰어났던 박두성은 시라소니의 박차기공격을 재빨리 피해버렸는데, 또다시 시라소니의 두번째 박치기공격이 이어졌고, 또다시 박두성은 왼쪽으로 신속하게 피해버렸다.

 

이렇게 시라소니의 회심의 두 번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는 박두성의 위력적인 공격이 개시되었다.

 

박두성은 자신의 솥뚜껑만한 오른주먹을 날려서 시라소니의 턱을 정통으로 가격했고, 얻어맞은 시라소니는 잠시 몸을 비틀거렸다.

 

괴력이 엄청 강했던 박두성은 두손으로 시라소니의 왼쪽팔을 잡아챘고, 그대로 회전을 하면서 시라소니를 공중으로 집어던져버렸다.

 

182cm에 몸무게 100kg의 거구에서 품어져나오는 엄청난 파워를 지닌 박두성의 두팔에 이끌려서 공중으로 날아간 시라소니는 그대로 땅바닥으로 내평겨쳐졌다.

 

그런 다음에 박두성은 또다시 강력한 오른발킥으로 쓰러진 시라소니의 가슴을 가격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위력의 킥공격을 받은 시라소니는 눈앞이 아찔했고, 잠시동안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시라소니가 쓰러져서 끙끙거리자, 박두성은 이제 싸움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고, ‘정말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손을 털면서 싸움을 끝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박두성의 오만이 낳은 방심이자 치명적인 실수였다. 시라소니는 그렇게 공격 몇 번으로 쉽게 끝낼 수 있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결코 아니었다.

 

자신이 공격을 당하면서도 그 다음 공격의 수를 판단하는 것이 시라소니였다.

시라소니는 가슴공격을 당한 후 일시적인 고통을 느꼈지만, 그 순간에도 머리속으로는 박두성과의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난 후, 누워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용수철처럼 튕기며 튀어오르면서 그대로 박두성의 이마를 박치기로 받아버렸다.

 

시라소니의 박치기는 그대로 박두성의 이마에 하는 소리를 내면서 적중되었고, 박두성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이뤄진 시라소니의 기습적인 박치기공격을 받은 박두성은 충격을 받고 쓰러진 것이다. 그렇지만 싸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박두성은 곧바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시라소니는 박두성과의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고, 박두성과의 10m 거리를 유지해놓은 상태였다.

박두성이 혼미해진 정신으로 일어나자, 시라소니는 곧바로 달려가는 탄력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붕 떠올랐고 그대로 공중걸이 박치기로 박두성의 이미에 들이받아 버렸다.

 

하는 소리와 함께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가 정통으로 박두성의 이마에 작렬했고, 이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 한방을 얻어맞은 박두성은 그대로 쓰러져서 기절하고 말았다.

 

평안도지역에서 새로운 싸움의 역사가 창조되는 순간이었고, 이제 평안도지역 아니 북한지역의 최고의 싸움꾼 타이틀을 박두성에서 시라소니에게로 넘어오게 되었다.

 

박치기의 제왕 박두성을 또다른 박치기의 황제 시라소니가 공중걸이 박치기로 쓰러뜨린 것이다.

그동안 평안도지역 뿐만아니라 북한지역에서 최고의 강자로 군림해왔던 박두성을 신의주의 신출내기 싸움꾼인 시라소니가 완벽하게 쓰러뜨린 것이다.

 

이때부터 시라소니는 북한지역의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이소식은 북한전역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평양의 오야붕 이화룡도 이 때 이후로는 시라소니의 실력을 인정하고는 그를 융숭히 대접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평안도의 기라성 같은 주먹들을 꺾고서 새로운 강자로 우뚝 솟아오른 시라소니는 이후 신의주는 물론 만주와 중국을 오가면서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벌여갔고, 그 때마다 또다른 승리의 역사를 계속 만들어나갔다.

  

 

시라소니의 1 40의 목숨건 대결

 

시라소니의 일대 40의 대결은 시라소니를 천재적인 싸움꾼으로 부각시켰던 대단한 전투로서, 다른 그 어떤 싸움꾼들도 결코 이룩해내지 못한 시라소니만의 독보적인 업적으로 남아있는 싸움이다.

 

1 40의 싸움은 시라소니가 다른 싸움꾼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대단한 싸움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시라소니는 역대의 모든 맞대결 싸움에서 단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데, 여기에 더해 시라소니는 혼자서 40명의 적들과 목숨을 건 대결을 펼쳤고,

이 불리한 싸움에서 시라소니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용감히 싸움으로 그는 또하나의 눈부신 싸움신화를 이룩했다.

 

시라소니는 싸움을 할 때에 결코 상대방의 숫자에 신경쓰지 않으며, 수십명의 상대방과 싸울 때에도 마치 한명과 싸우는 것처럼 싸운다는 것이 그의 독특한 싸움전법으로,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배짱과 용력을 지녔는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소니의 관심사항은 상대방의 숫자가 아니라 수십명과 싸우더라도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것 그 자체이다.

 

시라소니는 상대방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또한 상대방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돌진해서 그들을 전부 쓰러뜨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다.

 

시라소니가 싸움을 하기 전에, 가장 많이 한 말은 누가 더 쎈디는 실제 붙어봐야 하지 않갔어?’ 바로 이 말인데, 시라소니는 권위만 내세우거나 말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실전싸움만을 추구했던 진정한 싸움꾼이었다.

 

중국 하북성의 천진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1940년 경 이 천진에는 카네미야라는 오야붕이 자신만의 주먹조직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조선인들을 상대로 횡포를 일삼고 있었다.

 

카네미야는 일본이름을 가진 조선인으로 천진에서 장사를 하는 조선족들을 뻥뜯어 먹는 등 조선인들을 괴롭히는 못되고 악랄한 깡패두목이었는데, 그는 일본경찰에 아첨해서 자신의 주먹조직을 유지해나가고 있던 친일파였다.

 

그런데 1940년 경 천진시에서 장사를 하던 시라소니의 고향친구가 카네미야일당에게 붙잡혀서 그들의 아지트에 억류되고 말았다.

 

시라소니의 친구는 카네미야에게 세금을 적게 낸다는 이유로 카네미야조직의 아지트로 끌려가서 엄청나게 얻어맞고 구금되고 말았다.

 

카네미야의 조직원들에게 심한 고문과 모진 구타를 당한 시라소니의 친구는 카네미야조직의 건물에 구금된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같은 소식은 그 친구의 부인을 통해서 만주에 있던 시라소니에게 전해졌고, 그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시라소니는 엄청난 분노감에 사로잡혔다.

 

먹고 살겠다고 중국에까지 건너가서 장사를 하는 착한 사람을 수십명의 깡패들이 달려들어 사람을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패고 감금까지 하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라소니는 절대로 약자와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설사 약자가 먼저 시라소니에게 싸움을 걸더라도 그는 그냥 웃으면서 그 싸움을 피한다고 한다.

 

시라소니는 오직 강자들만을 상대로 싸우는데, 그는 의협심이 무척 강한 사람으로서, 특히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보면 반드시 끝까지 쫒아가서 그들을 모두 꺾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자기 고향친구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카네미야일당에게 붙잡혀서 집단구타를 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시라소니는 그의 의협심에 뜨거운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같은 소식에 격분한 시라소니는 무작정 천진으로 카네미야를 찾아갔다.

카네미야의 아지트는 천진시의 외곽 야산아래에 있는 커다란 일본식 건물이다.

 

카네미야 아지트에 수십명의 조직원들이 포진해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시라소니는 오직 혼자서 그 카네미야의 아지트로 찾아간 것이다.

혼자서 카네미야와 맞대결을 펼쳐서 자신의 고향친구를 구출해 내오겠다는 심산이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비겁함이나 비굴함을 모르고 살아왔던 시라소니는 자신이 카네미야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하면, 그가 당당히 그 대결에 응해올 줄로 믿고 있었다.

 

그렇게 시라소니는 혈혈단신으로 카네미야의 아지트로 처들어갔고, 그 카네미야숙소의 마당에는 수십명의 카네미야 조직원들이 포진해 었었다.

 

카네미야 숙소 바로 앞까지 걸어간 시라소니는 카네미야방을 향해서 밖으로 나와서 나와 일대일로 대결을 펼치자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대결제안을 하고난 후, 카네미야는 방안에서 나오면서, 시라소니에게 자기 부하들과 먼저 싸울 것과 자기 부하들과의 싸움에 이긴다면 그 때에 자신과 일대일 싸움을 하자고 비굴한 역재안을 했다.

 

그 당시 카네미야 아지트의 마당에는 카네미야 부하들 40명이 포진해 있었다. 카네미야는 아주 비겁하고도 시라소니와의 일대일 대결을 회피하려 하고 있었고, 대신 자기부하 40명을 동원해서 시라소니 한사람을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카네미야에게 집단폭행을 당하고 붙잡혀 있는 고향친구를 구출해내기 위해서는, 시라소니가 반드시 40명의 조직원들을 물리쳐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만일 시라소니가 이대로 물러선다면 잡혀있는 고향친구는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의협심이 강했던 시라소니는 1 40의 말도 안되는 이 싸움을 시작했다. 시라소니는 카네미야의 조직원들을 향해서 밖으로 나가서 싸우자 라고 큰소리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곧바로 건물 밖으로 나갔고, 그 바로 뒤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카네미야 숙소 뒤에 있는 널따란 야산에서 친구를 구하기 위한 시라소니의 1 40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먼저 야산쪽으로 앞장을 서서 나갔던 시라소니가 갑자기 뒤로 돌아서면서 뒤따라온 카네미야 조직원들에게 전광석화와도 같이 주먹과 발길질을 휘둘렀다.

 

시라소니 혼자서 상대해야하는 적병의 수는 40명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대하는 적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이 관건이었고, 시라소니는 먼저 기습 선방을 날려서 두명의 조직원들을 쓰러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또다른 조직원을 항해 시라소니의 박치기가 불을 뿜었고, 또한 시라소니의 왼쪽 발차기에 또다른 조직원이 쓰러졌다.

 

이렇게 싸움이 시작된 초반에 시라소니는 적의 조직원 5명 정도를 쓰러뜨릴 수 있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카네미야 부하들은 자기조직원이 삽시간에 다섯명이 쓰러져버리자, 눈독에 불이 나면서 여러명이 시라소니에게 동시에 공격해 들어왔다.

 

시라소니가 아무리 싸움의 천재라고 하지만, 수십명의 조직원들이 동시에 포위공격해오는 상황에서는 그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시라소니는 잽싸게 맨앞의 돌격대원을 오른발로 턱을 차서 쓰러뜨린 후에, 곧바로 뒤쪽에 있는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혼자서 수십명의 조직원들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처한 시라소니는 카네미야 조직원들을 뒤쪽에 있는 숲속으로 유인했고, 숲속에서 지형지물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수십명의 적군들과 싸움을 벌여나갔다.

 

1 40의 싸움에서는 널은 벌판보다는 나무와 돌 같은 지형지물이 많은 숲속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뒤에 나무나 바위를 등지고 싸운다면, 뒤에서 공격해오는 기습공격을 막을 수가 있게 된다.

 

아군은 오직 혼자뿐인 시라소니는 수십명의 조직원들이 동시에 공격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숲속의 두 개의 고목나무 사이로 카네미야 조직원들을 유인해냈고, 두 개의 나무틈 사이에 들어가 조직원 한사람씩을 상대로 해서 그들을 쓰러드려 나갔다.

 

두 개의 나무 사이에 들어간 시라소니는 달려드는 조직원의 복부에 정권을 꽂아넣어 쓰러뜨리고 난 후, 또다시 달려드는 또다른 조직원을 앞발차기로 턱을 가격해서 쓰러뜨렸고,

이렇게 계속해서 달려드는 조직원들을 박치기와 발차기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쓰러뜨려 나갔다.

 

천부적인 강력한 주먹과 탁월한 싸움기술을 보유했던 시라소니는 이렇게 두나무 사이의 좁은 협로의 잇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적의 조직원들을 차례로 쓰러뜨려나갔고,

마침내 적의 중간보스급으로 보이는 거구의 사내와 맞붙게 되었다.

 

적들이 거의 반정도가 쓰러지고 난 후, 190cm 정도 되는 거구의 사내가 시라소니에게 돌진해왔고, 시라소니는 발차기로 그의 명치를 걷어찬 후에 잽싸게 박치기로 그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고,

순식간에 거구의 사내는 손한번 써보지 못한 채 그대로 대자로 쓰러지고 말았다.

 

중간보스급 되는 거구의 사내가 마치 고목나무처럼 쓰러져버리자, 나머지 조직원들을 겁을 집어먹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서려는 자가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30여분이 흘러간 후에, 카네미야 조직원의 20명이 쓰러진 상황이 되었고, 시라소니의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적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카네미야 조직원 40명 중 절반를 쓰러뜨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휴전이 성립되어 버렸다.

 

자신들의 조직원들 20여명이 대자로 누워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 되자, 카네미야 조직원들을 겁을 집어먹고 더 이상 싸울 전의를 상실해버린 것이다.

자신들 모두가 달려들어 봤자, 신출귀몰한 싸움꾼 시라소니를 결코 쓰러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당시 시라소니와 싸움을 벌였던 남은 조직원들은 모두 그곳에서 물러났고, 다시 카네미야건물쪽으로 들어갔다.

 

적군 수십명과 싸우느라 많이 지쳤던 시라소니도 야산 옆에 흐르는 계곡물가로 가서 물을 벌컥 마셨고, 그 후 시라소니는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몸을 다시 재정비했다.

 

이렇게 몸을 다시 재정비한 시라소니는 또다시 카네미야건물 마당으로 들어갔다.

시라소니가 다시 카네미야 아지트로 들어서자, 남아있던 카네미야 부하들 중 아무도 시라소니를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라소니의 뛰어난 싸움실력을 몸소 겪었던 그 조직원들은 시라소니를 두려워하여, 그의 앞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시라소니는 뚜벅뚜벅 발길을 재촉해서 카네미야 방앞에서 멈추었고, 그리고 그 방문앞에서 시라소니는 네 부하들을 물리쳤으니, 이제 너와 내가 일대일로 한판 붙자!’고 외쳐댔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세 번을 외쳐대자, 방문이 슬그머니 열리고 마침내 카네미야가 방안에서 뛰쳐나왔는데, 놀랍게도 카네미야는 시라소니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시라소니의 대단한 싸움실력을 지켜봤던 카네미야는 시라소니 맞대결을 포기한 채, 비굴하게도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고는 항복을 표시하였다.

 

자신의 부하 40명과의 싸움을 전혀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던 시라소니의 대단한 용력과 탁월한 싸움능력에 완전 질려버린 카네미야는 시라소니 앞에 무릎을 꿇었고, 항복을 한 것이다.

 

천진시를 진동시킬 만한 천진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던 주먹조직의 오야붕 카네미야는 부하 수십명이 보는 앞에서 비굴하게도 시라소니에게 무릎꿇고 항복을 하였다.

 

그 후 카네미야는 시라소니의 친구를 풀어준 것은 물론, 친구의 치료비와 거액의 위자료까지 지급해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시라소니의 ‘40 1의 대결이었고, 시라소니는 오직 혼자서 40명을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벌여 20명을 쓰러뜨리면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이 위대한 싸움의 승리로 시라소니는 싸움천재’ ‘싸움귀재라는 닉네임이 붙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김두한, 신마적, 김기환, 상하이박 등 기라성 같은 싸움꾼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 중 그 어떤 주먹도 결코 이룩해내지 못한 기상천외한 싸움의 업적을 시라소니만이 이룩해낸 것이다.

 

시라소니는 뛰어난 싸움실력과 기술, 그리고 두둑한 배짱을 갖고 있다는 점도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죽을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서 혼자서 40명의 대군과 맞섰던 그의 높은 의협심이 승리를 쟁취해낼 수 있었다는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혼자서 40명의 적군과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에, 만일 신마적이나 김기환, 김두한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궁금하다.

 

과연 그들도 시라소니처럼 혼자서 용감하게 40명의 적군과 당당히 싸워나갔을까? 결코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아무리 대단한 주먹들인 신마적, 김기환, 김두한일지라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달아나거나 싸움을 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두한은 전성기시절에 10명의 적군과 혼자서 맞서 싸웠던 것은 있었다. 그렇지만 10명과 40명은 커다란 차이이고,

40명의 적군이라면 제아무리 김두한이라고 해도 결코 싸움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말도 안되는 싸움에서 어떻게든 물러났을 것이라고 본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시라소니는 다른 싸움꾼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1 40의 싸움은 오직 시라소니만이 할 수 있는 업적인 것이고, 시라소니는 자신이 싸우는 상대가 몇 명인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그의 생각은 오직 싸움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혼자서 약자를 구하기 위해 의로운 싸움을 계속 벌여나갔던 시라소니를 사람들은 협객이라고도 부르곤 했다.

 

이외에도 시라소니의 싸움신화는 만주와 중국대륙에서 더욱 더 큰 빛을 발하게 된다.

 

만주에서 이상대의 주먹조직과 신마적 주먹조직과 출동했던 대결에서도 시라소니는 큰 성과를 거두었고, 만주를 뛰어넘어 북경과 상해에서도 일본야쿠자들을 상대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눈부신 싸움신화를 이룩해나갔다.

 

다음에 시간이 나는 데로 만주 봉천에서 신마적일당과 싸웠던 일화와 북경에서의 싸움일화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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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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