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언가 탄허스님의 한국의 미래예언과 한반도통일 예언, 일본열도 침몰설과 지구대재앙과 종말예언

 

노스트라 다무스와 에드가 케이시 같은 인물들은 세계적인 예언가로 명성이 높은데, 우리나라에도 이들 못지않게 유명한 예언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적 중요한 사건들을 예언했을 뿐만아니라, 족집게처럼 맞추면서 유명해진 한국판 노스트라다무스라고 할 수 있는 예언가 탄허스님이 그 주인공이지요.

 

동양학의 대가라고 알려진 탄허스님은 특히 주역과 화엄경에 정통하셨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지력이 뛰어나고 가장 영험한 예언가입니다.

 

탄허스님은 1913년도에 출생하여 1983년도에 돌아가셨는데, 60,70년대에 불가에서 활동하시면서 여러 가지 굵직굵직한 예언들을 많이 하였고,

또한 그의 예언들은 대부분 완벽하게 적중하면서,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예언가이자 석학입니다.

 

탄허스님은 미래의 운세를 예측하는 주역과 정역에 (조예가 깊었으며) 심오한 지식을 갖고있었으며, 그는 젊은 시절에 일찍 절에 출가해서 오랜 수련을 쌓으면서 동양학에 통달할 정도로 심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탄허스님은 생전에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예언들을 살펴보면 만인이 탄복할 정도로 높은 예언적중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탄허스님은 여러경로를 통해서 인류와 지구미래에 대해 수많은 예언들을 남겼는데, 장차 지구인류는 자연재해와 핵으로 인해 전 세계인류의 70%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도 내놓았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세계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게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언도 내놓았습니다.

 

탄허스님의 예언을 살펴보면, 노스트라다무스나 에드가 케이시와 필적할 정도로 높은 예언적중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탁월한 예언가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실로 놀랍고도 감탄할 만한 일입니다.

 

- 탄허스님의 적중한 예언 -

 

탄허스님은 한국전쟁을 예언해서 적중시켰는데, 연도와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도 정확하게 맞췄다고 합니다.

 

또한 탄허스님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패망할 것도 예언했습니다. 탄허스님은 그 이유로 ‘미국은 서방이라서 금(金)이지만, 베트남은 남방이라서 화(火)이다’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즉, 화(火)가 금(金)을 녹이는 원리와 같이,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하면, 반드시 금은 불 안에서 녹아버리기 때문에, 미국은 필연적으로 패배하게 된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은 박정희대통령이 총에 맞아 암살당한다고 예언을 했는데요. 박정희대통령의 얼굴관상을 보면, 쇠가 들어가게 생긴 관상이기 때문인데, 쇠는 바로 총과 총탄을 의미하므로, 박대통령은 반드시 총에 맞아 죽는다고 풀이했습니다.

 

탄허스님은 일본 고베대지진을 예언해서 적중시켰는데, 6,430명의 사망자수와 피해자수도 정확하게 적중시켰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은 1983년에 71세의 나이로 입적했는데, 자신이 죽은 후 12년 뒤에 일어날 고베대지진을 마치 실제로 본 사람처럼 정확하게 예언하고 적중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답니다.

 

또한 탄허스님은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을 예언해서 적중시켰으며, 자신이 죽는 날짜까지도 예언했습니다. 탄허스님은 자신이 죽는 날도 미리 예언해서 적중시켰는데, 그의 예언은 단지 10시간 차이만 날 뿐, 날짜는 정확히 적중시켰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은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로 핵을 가진 나라는 위험에 처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2011년도에 태평양해역 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원전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해,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요.

 

후쿠시마원전폭발사고는 40년전에 말했던 탄허스님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된 것이어서, 큰 놀라움을 주고있습니다.

 

- 탄허스님의 도래하지 않은 미래예언 -

 

이처럼, 탄허스님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예언을 하고 그대로 적중시켜서 세계적인 예언가의 반열에 올랐던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탄허스님이 과거에 적중시킨 예언 못지않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예언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양학에 정통했던 탄허스님은 주역과 정역을 조합하고 풀어서 명쾌한 논리로 미래의 현상들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특히 탄허스님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예언도 내놓았을 뿐만아니라, 인류사회의 미래에 대한 예언도 해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탄허스님의 예언은 인류사회의 미래를 보다 포괄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에서 예언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탄허스님의 도래하지 않은 예언 중에서 큰 주목을 끄는 예언은 바로 ‘일본열도침몰설’입니다.

 

탄허스님은 북극에 있는 빙하들이 대규모로 녹아내려서 일본열도의 2/3가 바다속으로 침몰한다는 예언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탄허스님은 일본열도가 침몰하는 이유도 설명했는데요.

 

지구속에서 뜨겁게 끓고있는 불기운이 북극의 빙산지역으로 들어가서, 빙하들을 녹아내리게 만들고, 그 거대한 빙산의 물줄기가 낮은지역에 있는 여러 섬들을 침수시키게 되는데, 그 때에 발생한 빙하의 거대한 물줄기쇄도로 인해 일본열도가 침몰한다고 합니다.

 

이 때에 무려 일본열도의 70%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일본사람들이 희생당한다고 하며, 살아남은 일부사람들은 나머지 30%의 비침수지역이나 한국으로 이주해서 살길을 찾게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본이 엄청난 대재앙을 겪으며 큰 위기에 처하게되면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커지게 되며, 남은 영토가 크게 축소된 일본은 한국의 영향권 으로 들어와 한국에 복속되어 살아간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은 이처럼 일본이 상상초월의 대재앙을 겪게되는 이유에 대해 인과응보의 법칙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에게 훌륭한 문화자산을 전수해준 스승같은 나라 한국에 대해, 오랫동안 수많은 침략과 약탈행위를 일삼아왔는데, 이처럼 일본조상들이 저지른 잔인한 만행에 대한 업보가 적용되면서, 그같은 대재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한반도침략을 저지른 조상들의 업보 때문에, 후대의 일본인들은 자신의 땅 70%를 잃어버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된다는 원리입니다.

 

탄허스님은 중국이 분열된다고 예언을 하셨는데요. 장차 중국은 여러민족들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서로 출동하면서 여러 영토로 분열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국이 분열되면서 중국의 힘이 약해진 사이에, 국력이 더욱 커진 우리나라가 요동지역으로 진출해서 요동지역을 수복하고, 만주의 일부분이 한국영토로 귀속된다고 예언했습니다.

 

탄허스님은 정역시대에 이르게되면,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인물이 많이 나와서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고, 한반도에 평화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예언했습니다.

 

또한 탄허스님은 머지않은 시기에 위대한 지도가 출현해서 한반도를 통일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새롭게 건설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탄허스님은 한반도의 통일은 미국의 금풍이 불고난 후, 빨간색의 남방화운이 충천하면, 통일이 임박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한국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통일이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탄허스님은 통일은 어느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고 예언했습니다.

 

탄허스님은 북한에 마치 아이들이 성냥갑을 갖고 불장난을 하다가 성냥갑이 확 타버리듯이, ‘캄캄한 전체주의’의 광풍이 석달동안 한반도를 엄습해온 후에, 비로소 한반도에 통일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즉, 탄허스님은 한반도의 통일이 평화롭게 오는 것이 아니라, 통일의 징조로서 홍역을 치르는 것처럼 혹독한 계엄사태와 같은 충격적인 북풍이 밀려온 후에야, 통일이 온다고 설파하셨는데요.

 

북한에 ‘캄캄한 전체주의적 징조’가 나타날 경우, 통일이 임박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통일이 결코 평화롭게 오는 것은 아니며, 홍역을 치르는 것처럼 충격적인 북풍이 훠몰아친 후에, 한국에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미국의 도움을 받아 통일이 이룩된다는 겁니다.

 

탄허스님이 예언한 북한의 ‘캄캄한 전체주의적 징조’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거치고난 후에야 한반도통일이 이룩된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북한지도자가 평화를 해치는 철권독재통치를 강화시켜나가면서 한국과 극한대결상태를 만들어, 한반도긴장을 최고조로 올리는 그 어떤 무력도발을 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북한이 또다시 핵폭발실험을 실시하여, 한반도 긴장상태를 최고조로 올리는 그런 행동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아뭏튼 탄허스님은 한반도통일의 구체적인 시기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이런 ‘캄캄한 전체주의적 징조’가 나타난 후에야 비로소 한반도통일이 이룩된다고 예언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통일이 어느날 갑작스럽게 일어난다고 하니, 우리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통일을 대비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탄허스님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놀라울만한 예언도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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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은 한국이 미국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 큰 열매를 맺게되며, 한국이 장차 세계를 뒤흔들만한 엄청난 대성공을 이룩해낸다고 예언했습니다.

 

정역으로 보면, 미국은 신부에 해당하고 한국은 신랑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신부인 미국이 신랑인 한국으로 시집오는 형국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신부의 헌신적인 내조를 받은 신랑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것처럼, 미국의 아낌없는 원조를 받은 한국이 장차 큰발전을 이룩하게 된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은 장차 우리나라가 미래에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될 것이라고 놀라운 예언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세계를 구원할 정신문화가 크게 일어나서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게된다고 합니다.

 

즉, 한국에서 일어난 정신문명이 크게 꽃을 피우면서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한국이 세계를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배하게 된다고 하며, 이로서 한국은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위대한 선각자들이 많이 배출이 되고, 이들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면서 한국의 정신문화를 전파하고, 선구자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 열린다고 합니다.

결국 한국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선진국이자, 세계의 중심국가로 올라서게 된다고 합니다.

 

탄허스님은 이렇게 한국의 미래에 대해 핑크빛예언, 긍정적인 예언들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과연, 탄허스님이 예언한 데로, 한국이 통일을 이룩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미 탄허스님의 예언의 일부는 실제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서 질병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빈민구제사업과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선행을 배풀고 있습니다.

이러한 봉사활동으로 인해 한국인들이 세계인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고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K-POP과 한류가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세계의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K-POP과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아랍과 아프리카를 지나서, 유럽과 남아메리카를 정복한 뒤, 지금은 북아메리카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한국의 K-POP과 한류가 세계에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세계의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같이 K-POP과 한류가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면서 세계최고의 문화로 각광받고 있는 현상을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다는 탄허스님이 예언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60,70년대를 살았던 탄허스님이 오늘날 세계인들의 중심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K-POP과 한류의 확산현상을 미리 예측했다고 하니, 그의 뛰어난 예지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류와 K-POP에 열광하고 있고, 한국의 우수한 문화가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현상이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 세계의 일등국가가 된다는 탄허스님의 예언이 실현될 전조현상이 아닐가 사료됩니다.

 

아뭏튼 40년 전에 사망한 탄허스님의 예언대로 우리나라가 세계인들의 정신문화를 지배하는 세계의 일등국가, 중심국가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민족적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한반도의 미래, 지구인류의 미래 예언 -

 

탄허스님은 장차 한반도의 지형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고 예언했습니다.

미래에 한반도에 ‘서고동저’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한반도의 동쪽땅 100리는 침강하지만, 서쪽땅 200리는 융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 지구의 자전축이 23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로 돌고있는데, 미래에는 기울어진 자전축이 원래대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구자전축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해서 지구의 지형도 엄청난 변화를 겪게된다고 합니다.

 

지구자전축의 대변동으로, 한반도의 서쪽지역은 융기해서 바다속의 해저부분이 땅으로 솟아오른다고 하며, 동쪽지역은 침강하여 많은 지역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동쪽지역보다 육지로 솟아오르는 서쪽지역이 두배 이상 많기 때문에, 한국영토는 오히려 더 크게 넓어진다고 합니다.

 

지구가 자전축이 바뀌고, 북극의 빙산이 녹으면서 지구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가 더욱 성숙한 완성체로 변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할 과정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지축이 23도 기울어진 상태인 지금의 지구는 미성숙의 시대이지만, 지구의 지축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지구는 비로서 성숙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구의 자전축이 바로 세워진 후에, 비로서 지구는 결실의 시대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성숙이고 결실이며, 새로운 개벽이라고 탄허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구가 결실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인류는 불가피하게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고 합니다.

지구자전축 변동사태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지구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난다고 하며, 이 때 지구인류의 70%가 희생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지구의 대규모 지각변동과 대참사를 겪고난 후, 곧바로 도래하는 결실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큰 복락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유토피아세상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탄허스님의 예언에 의하면, 대규모지각변동이 일어난 후에 열리는 세상은 유토피아세상으로, 악한 사람들은 모두 제거되고 착한 사람들만 살아가게 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합니다.

 

세계인구의 7할이 사라진다는 탄허스님의 미래예언이 무척 끔찍하기만 한데요! 미래에 제발 이 예언만큼은 일어나지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만,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올라선다는 탄허스님의 예언은 우리나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듣기좋고 흐믓하기 그지없습니다.

 

K-POP과 한류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많은 세계인들이 한국을 흠모하고 한국의 문화를 찬양하는 등 지금 전세계에 한류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탄허스님이 예언하신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올라서기 위한 그 전조현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장차 중국이 분열되면서, 한국이 잃어버린 만주땅을 되찾게 된다는 탄허스님의 예언도 우리민족에게 큰 희망을 주는 예언이 아닐 수 없으며, 크게 주목할 만한 예언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탄허스님의 예언처럼, 한반도통일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탄허스님은 주역과 정역을 풀이해서 한국과 인류의 미래세계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예언을 한 아시아의 최고의 석학이자, 최고의 예언가입니다.

 

동양의 최고예언가로 불리우는 탄허스님이 우리나라와 미래세계에 관한 많은 예언들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들이 대부분 무척 충격적이면서 파격적인 내용들이어서 놀라움을 금치못하겠습니다~

 

과연 탄허스님의 미래 예언들이 실제로 적중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며, 큰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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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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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와룡산 세방골 성서 초등학생 살인·암매장사건의 전말과 목격자, 개구리소년 사마원인

 

1991년 3월 26일 오전 8시경, 대구시 달서구에 살던 성서초등학생 다섯명이 개구리(도룡농알)을 주우러 간다고 나갔다가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도룡농알을 줍겠다고 나갔던 다섯명의 초등학생 소년들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입니다.

 

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영되면서,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약하고 어린 다섯명의 소년들이 없어진데 대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동정여론이 일어나면서, 우리사회에 엄청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랍니다.

 

1991년 3월 26일, 와룡산에 도룡뇽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던 13살 우철원, 12살 조호연, 11살 김영규, 10살 박찬인, 9살 김종식 등 다섯명의 소년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다섯명의 아이들이 돌아오지않자, 당시 경찰과 군인 등 32만명을 투입해서 아이들이 갔던 와룡산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군인과 경찰, 민간자원자들까지 동원되어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단 한명의 아이도 찾지못하고 그 흔적조차도 발견하지 못하면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묻히게 되었습니다.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아니라, 아이들의 사망원인조차도 제대로 규명하지못한 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이 때부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소년들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2002년도에 와룡산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전격 발견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됩니다.

 

1991년 3월 26일에 와룡산에 올라가 도토리를 줍던 주민에 의해 계곡에 널부러진 유골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유골들이 바로 개구리소년의 유골임이 확인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답니다.

 

이날, 김종식군을 비롯한 5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간 이유는 사실 도룡뇽알을 찾으러 간 것이었는데, 도룡뇽이 매스컴에 의해 개구리로 잘못 보도되면서,

세상에는 개구리를 찾으러 간 소년들로 잘못 보도되었던 것이며, 그 이후 ‘개구리소년’으로 굳어지지된 것입니다.

 

당시 5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여러명의 마을주민들이 목격했으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2시간 내에 갔다 올 수 있을까?’라는 말을 주고받는 소리를 들은 목격자도 있습니다.

 

이날 12시경, 우철원과 같은반이었던 김경열군과 이태석군이 와룡산입구에서 5명의 아이들을 목격했고, 잠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며, 또한 와룡산기슭에 사는 마을주민이 이날 2시경에 다섯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마을주민들이 5명의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목격담이지요.

 

그러니까, 1991년 3월 26일 오후 2시경, 와룡산기슭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후, 그 후 다섯명의 아이들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도룡뇽알을 찾으러 와룡산에 갔던 다섯명의 개구리소년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그런데, 또다른 소년 함승훈군에 의해서, 또다시 아주 중요한 증언이 나왔습니다.

 

같은날 다른 일행들과 함께 와룡산에 올랐던 함승훈은 이날 12시경 산 위쪽에서 아주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두 번 연속해서 들었다고 합니다.

그 비명소리는 너무도 날카롭고 끔찍해서 다시는 듣고싶지 않은 소리였다고 함승훈은 회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다섯명의 아이들은 와룡산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되었고, 그날 저녁 7시 50분경, 부모들의 신고에 의해 경찰과 주민들이 출동해서 와룡산을 샅샅히 수색했지만, 다섯명의 개구리소년들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 사건을 가정불화로 인한 아이들의 가출사건으로 보고 초등수사에 소극적이었는데, 이같은 경찰의 엉뚱한 수사방향으로 인해서, 아이들을 조기에 찾아내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정부당국이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한 후, 대구지방경찰청에 합동수사본부를 차리면서 본격적인 수사를 벌였고,

1995년까지 5년동안 32만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다섯명의 개구리소년들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2002년 9월, 개구리소년들의 유골 발견, 사망원인

 

이렇게 30만명 이상의 경찰과 군인을 총동원해가며 아이들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아이들을 찾는데에 실패하면서 영구 미제사건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2002년 9월 26일, 놀랍게도 성산고등학교 뒤쪽 와룡산중턱에서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전격 발견되었습니다.

 

2002년 9월 26일,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주민이 어린이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들을 발견했는데, 이 유골들은 바로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인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다섯명의 아이들은 와룡산의 동쪽 중턱 계곡에서 한데 엉켜있는 자세로 유골상태로 발견되었는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범인의 DNA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유골이 한데 엉켜있는 점, 그리고 현장에 구덩이의 흔적이 없는점 등을 근거로 들면서 추운 날씨에 아이들이 길을 잃고 헤메이다가 체온저하로 숨졌다는 자연사를 주장했는데 반해,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을 근거로 아이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타살설을 주장했습니다.

 

개구리소년의 유골이 발견된 곳은 구 육군 제50보병사단의 사격장 부지여서, 탄피를 모으러갔던 아이들은 군인이 쏜 오발탄에 의해서 타살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실종된 지 11년만에 아이들의 유골은 발견되었지만, 범인의 DNA 같은 중요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개구리소년들의 사망원인을 놓고, 자연사다, 사고사다, 타살이다 등 여러가지 주장이 제기되면서 치열한 논쟁만 가열되었습니다.

 

경찰은 파헤쳐진 소년들의 유골을 본 후, ‘상식적으로 볼 때, 타살흔적은 거의 없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다’라는 성급한 주장을 내놓아서, 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법의학팀이 수개월동안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을 정밀하게 조사를 벌인 끝에, 개구리소년들이 타살되었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중에 우철원, 김종식, 김영규의 두개골에는 여러개의 손상흔이 남겨져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만약 아이들이 그냥 추운 날씨 때문에 체온저하로 숨졌다면, 그들의 신체에 손상흔적이 남지않았을 텐데, 아이들의 두개골에는 뭔가 날카로운 도구에 맞아 깊게 파진 손상흔적이 남겨져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손상흔적은 아이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예리한 도구나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아서 그 충격으로 숨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경찰은 아이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된 그 범행도구를 밝혀내지 못했답니다.

 

◆ 개구리소년들의 사망원인, 타살 가능성 유력

 

이제,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유골에 남겨진 손상흔뿐이고, 이 손상흔적을 만들어낸 범행도구가 무엇인지가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 버니어 캘리퍼스에 의한 타살

 

그런데, 22년 6월, 개구리소년의 구체적인 범행도구를 지목하는 글이 온라인게시판에 올라와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글에 따르면, 소년들 두개골의 손상흔과 비슷한 흔적을 내는 도구는 ‘버니어 캘리퍼스’라는 공구라고 합니다.

 

그 제보자는 소년들 두개골의 상처흔적을 보자마자, ‘어, 이 도구는 버니어 캘리퍼스잖아!’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공고다닐 때에 이 ‘버니어 캘리퍼스’를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잘 알고있다는 겁니다.

 

버니어 캘리퍼스는 길이나 높이 등 기계의 수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측정도구의 일종으로, 앞뒤쪽 부분이 날카롭게 날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버니어 캘리퍼스의 날카로운 날부분으로 사람의 두개골을 가격했을 때에, 개구리소년들 두개골에 난 상처와 비슷한 상흔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버니어 캘리퍼스

 

이 제보자의 주장에 따르면, 와룡산부근에는 본드를 흡입하는 불량한 고등학생들이 있었는데, 산에 오른 소년들이 이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고,

이 불량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비행을 숨기기위해서 자신들을 목격한 개구리소년들을 버니어 캘리퍼스로 살해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가설은 실제로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한 적이 있는 제보자가 내세운 가설인데, 당시 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가설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유력한 가설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와룡산부근에서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하는 고등학교가 있는지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런데, 와룡산 인근에서 아주 가까운 한 공업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공고에는 전자계열과 화공과밖에 없고, 기계과는 없다고 합니다.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하는 과는 기계과인데, 이 공업고등학교는 기계과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개구리소년사건과 연관성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해당 공업고등학교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발생한 1991년도부터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한번도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은 와룡산인근 마을에서부터 대구전지역으로 대대적인 탐문수사를 벌여왔습니다.

특히 경찰은 와룡산 인근의 중고등학교 자퇴생 930명을 포함해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공단종업원 1,232명 등 2,000명이 넘는 청소년과 학생들을 일일이 수사했지만, 그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조사팀에서 제보자가 살해의 도구라고 지목한 ‘버니어 캘리퍼스’로 유골을 내리칠 경우, 어떤 상흔이 남는지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두개골모형에 지점토를 붙여서 실제와 비슷한 두개골모형을 만든 후, 실제상황과 똑같이 ‘버니어 캘리퍼스’로 그 두개골을 내리쳤습니다.

버니어 캘리퍼스로 두개골을 내리쳤을 때, 버니어 캘리퍼스의 뒤쪽으로 내리쳤더니, 개구리소년의 두개골에 나타난 상처흔과 유사한 상흔이 나타났습니다.

 

실험결과, 제보자가 주장한 데로, 실제 개구리소년을 살해한 도구는 ‘버니어 캘리퍼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답니다.

 

즉, 와룡산에 올라온 개구리소년들에게 누군가가 나타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버니어 캘리퍼스로 그들의 두개골을 내리쳐서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 체온저하로 인한 자연사, 경찰 추정

 

제보자의 주장대로 개구리소년들은 산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날카로운 도구로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는데요, 이것은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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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찰은 이런 타설설에 동의하지 않고, 개구리소년들이 추운날씨 때문에 산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개구리소년들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은 와룡산 중턱에 있는 너비 320cm, 높이 80cm의 계곡이었습니다.

 

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와룡산은 산세가 높고 험해서 어른들도 처음 이 산으로 들어오면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물며, 초등학생인 다섯명의 어린아이들이 이 산속으로 들어와서 길을 잃고 헤메이다가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저체온증에 결려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근거로 개구리소년들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계곡으로 몸을 피한 점과 다섯명의 아이들이 서로 부등켜안은 자세로 숨져있는 점을 들었습니다.

 

즉, 경찰의 입장은, 다섯명의 개구리소년들은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것이 아니라,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저체온증으로 인해 자연사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경찰의 주장은 좀 논리에 맞지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초등학생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개구리소년들은 여러차례에 걸쳐서 와룡산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 소년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자연사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약하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경찰 주장대로 만약에 소년들이 자연사했다면, 개구리소년들의 두개골에 난 상처흔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개구리소년들의 두개골에는 분명히 굵게 깊게 파인 상처흔적들이 여러개 나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예리한 둔기로 소년들의 두개골을 내리쳐서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찰이 주장하는 저체온증으로 인한 자연사는 타당성이 거의 없고, 범인을 잡지못한 자신들의 책임을 돌리기 위한 ‘책임전가’라고 판단됩니다.

또한 경찰은 당시 국과수에 의뢰했는데, 국과수에서는 소년들의 두개골 상처와 똑같은 상처를 낼만한 공구는 없다는 결과를 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에한 조사팀에서 행한 실험에서 소년들의 두개골 상처와 유사한 상처흔적을 낼만한 공구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버니어 캘리퍼스’와 ‘전지가위’입니다.

 

버니어 캘리퍼스 뿐만아니라 전지가위도 개구리소년들 두개골에 난 상처와 유사한 상처흔을 내는 공구로 밝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은 버니어 캘리퍼스나 전지가위로 소년들의 두개골을 내리쳐서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대구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은 타살이냐, 자연사냐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아직 뚜렷한 결론이 나지않은 상태입니다.

 

◆ 개구리소년 유골터에서 탄두 대량 발견, 군인 사격훈련에 의한 피살?

 

그런데, ‘대구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에서 또다른 의혹이 불거지고 있으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곳은 와룡산의 동쪽 성산고등학교 뒷쪽의 중턱이었어요.

경찰은 32만명을 동원해서 와룡산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했는데도 불구하고,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와룡산의 동쪽지역은 제대로 수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이 30만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해서 수색하였지만, 이상하게도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역은 제대로 수색하지않았다고 하니, 정말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이 사건은 개구리소년들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수사했기 때문에,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무성의하고 안이하게 수사를 했습니다.

 

만일 경찰이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와룡산 동쪽지역을 제대로 수색했더라면, 어쩌면 개구리소년들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안이하고도 형식적인 수색활동을 벌인 경찰 때문에 개구리소년들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겁니다!

 

그런데, 개구리소년의 유골이 발견된 그 계곡에서 ‘탄두’가 함께 발견되어서 놀라움을 주고있습니다.

즉, 군인들이 총으로 사격을 할 때 발사되는 ‘탄두’가 개구리소년들의 유골 근처에서 함께 나왔는데, 탄두 138개가 들어있는 우유팩도 근처에서 함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구리소년의 죽음과 탄두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개구리소년들이 다니는 성서초등학교 뒤쪽 1km 지점에 와룡산이 있는데, 학생들은 이 와룡산에 곤충이나 도룡뇽을 잡으러 가기도 하고, 때론 총알이나 탄피를 주우러 많이 다닌다고 합니다.

 

아파트가 많이 밀집해있는 대구의 이곡동 부근에 90년대에는 군대 사격장이 있었으며, 아이들은 이 사격장 근처로 총알이나 탄피를 주으러 많이 다녔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점은 바로 이 사격장에서 가까운 인근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수색활동을 벌였던 경찰은 이 사격장쪽으로는 수색을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탄피를 주우러 다녔다는 정보를 얻지못했기 때문이랍니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점은 사격장 인근지역인데, 당시 경찰이 이 지역을 수색하지 않는 바람에,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된 것이지요.

 

경찰이 좀 더 적극적이고 성심껏 대응했더라면, 경찰이 사격장 인근지역을 촘촘히 수색했더라면, 개구리소년들을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점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처럼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주변에서 대량의 탄두가 발견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은 군부대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하고있던 군인들이 혹시나 잘못 사격하는 바람에 개구리소년들을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겨났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 사격장을 관할하는 부대는 50사단이었는데, 50사단 군관계자의 따르면, 아이들이 실종된 그 날에 그 어떤 부대활동도 전혀 없었으며, 해당부대원들의 사격훈련 또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개구리소년 유골의 손상흔이 총상과 관계가 있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유골과 거의 같은 모의유골을 만들어놓고, 사격을 가하는 실험을 실시하였는데, 개구리소년의 유골에 있는 손상흔적은 총탄에 의한 손상흔과 다르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3월 26일 오후 4시경에, 소년들과 군인을 함께 보았다는 한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날 오후 4시경에 초등학생 소년들이 와룡산 중턱에 있었는데, 독수리마크가 새겨진 빨간모자를 쓴 군인이 나가라고 호통을 쳐서, 아이들을 다른곳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종사건이 일어난 3월 26일에 개구리소년들은 군인들과 동선이 겹치는 곳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목격자에 의해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의 군대 관계자는 그날 부대원의 훈련이나 이동이 전혀 없었다고 전혀 다른말을 했습니다.

 

군 관계자가 목격자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 증언을 한 것인데, 그러면 그날 부대원들의 훈련이나 이동이 전혀 없었다는 군대 관계자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사건당일에 개구리소년들의 동선과 군부대원의 동선이 서로 겹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군부대원에 대해 치밀한 수사를 벌였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군인들에 대해서 거의 수사를 벌이지않았다고 합니다.

 

목격자의 증언과 여러가지 정황들에 의하면, 군인들을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의 중요한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벌였어야 마땅했는데, 이상하게도 경찰은 군인들을 놓쳐버린 겁니다.

 

91년 3월 26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개구리소년들의 시간차별 이동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날 개구리소년들은 8시 40분경에 성서초등학교 앞에 있었고, 9시 4분경에 항공대입구를 지나서 12시경에 쌍마섬유 앞까지 왔다가, 오후 2시경에 와룡산 불미골입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개구리소년들은 오후 4시경에 무학사 뒤편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개구리소년들은 불미골의 동쪽 중턱지점에서 유골이 되어 발견되었답니다.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은 아직 범인의 윤곽도 찾지못했고, 소년들의 사망원인 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의 단서는 위에서 설명한 데로, 저체온증으로 인한 자연사, 산에서 만난 불량청소년의 ‘버니어 캘리퍼스’나 ‘전지가위’를 사용한 타살, 인근 군부대원들의 실탄발사 오발사고에 의한 타살 등 세가지 중 하나에 의해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됩니다.

 

소년들의 두개골에 나타난 상처흔적을 볼 때에, 여기서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산속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서 ‘버니어 캘리퍼스’나 ‘전지가위’같은 날카로운 공구에 의해 가격당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되는데요.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있으나, 경찰은 범인을 잡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범인을 검거해서 남은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과 무사안일하고 소극적인 수사 때문에,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함으로써, 어쩌면 살릴 수도 있었을 불쌍한 다섯명의 소년들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사건은 정말로 안타까운 사건이며, 희대의 미스테리한 미제사건입니다.

경찰 32만명을 투입하면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과 과학수사 미흡으로 11년 동안 사건의 단서조차 찾지못했습니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을 발견한 장소, 와룡산 동쪽 중턱 계곡, 성산고등학교 뒷쪽

 

그리고 11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지만, 범인의 윤곽은 커녕, 아직까지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사망원인 조차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구리소년사건은 대구경찰청의 장기미제수사팀에서 맡아 재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대구경찰청의 장기미제수사팀에서 개구리소년사건을 재수사를 담당하면서, 여러 제보와 증거물 재감정 등 다각도로 수사를 벌여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빙성있는 단서를 찾지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기미제 사건인 개구리소년 암매장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의지와 국민들의 관심과 제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더욱 더 진일보한 수사기법을 사용해서 하루빨리 그 잔인한 범인을 검거해서, 억울하게 죽은 소년들과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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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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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과 환생 경험담과 사례,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

미스터리 파일 2022. 7. 18. 22:36

전생과 환생 사례체험담,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람은 한번 죽으면 끝일까요?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죽으면 고작 80~90년 의 짧은 인생인데,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죽음 이후의 또다른 생이 있는 것일까’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고작 80년이라고 하는 짧은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면, 정말 너무 허무하고 무상한 일이지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우리가 죽은 이후에 또다른 삶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큰 궁금증을 가져왔답니다.

 

그래서 현대에 접어들면서 ‘환생’과 ‘전생’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환생’은 사람이 죽은 후, 그사람의 영혼은 죽지않고 살아남아서 또다른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전생’은 이렇게 환생한 사람이 바로 전에 다른 사람으로 살았던 과거의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환생’과 ‘전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환생한 사람은 반드시 전생을 갖고 있습니다.

 

즉, 사람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영혼은 살아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다시 환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 환생한 사람들 중에는 가끔씩 과거의 생인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소개해드리겠어요! 우리가 실제로 환생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결코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단, 아래에 전생경험담과 실제 전생의 사례들을 보고서, 여러분들이 스스로 독자적인 판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인간이 환생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전생이 있는지를!~

 

◆ 전생 경험담과 사례들

 

- 알레포의 전생과 환생이야기 -

 

시리아의 골란고원의 한마을에서 알레포라는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알레포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붉은반점을 갖고 태어났는데요. 알레포는 어려서부터 말을 아주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레포는 3살이 되던 해부터 매우 이상한 말을 하기시작했는데요.

알레포는 ‘내이름은 원래 하페즈였어요’ ‘엄마, 무서워요! 어떤 남자가 나를 죽였어요!’

 

3살이라면, 아직 글자도 못쓰고, 신문이나 인터넷도 못읽는 정말 아주 어린 나이인데, 3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렇게 살인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알레포의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는 대수롭지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알레포는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서 자신이 어떤 남자에게 살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3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의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계속 전해들은 부모님은 결국 아이가 말했던 그 마을로 찾아가보았습니다.

알레포가 제시한 마을로 직접 찾아간 부모님은 그 마을 주민에게 ‘하페즈’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마을주민은 ‘하페즈’를 아주 잘 안다고 말하면서, ‘하페즈는 4년전에 실종된 청년이다’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4년 전에 이 마을에서 ‘하페즈’라는 청년이 일하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않았다고 하며, ‘하페즈’는 경찰로부터 실종으로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그 마을을 걷던 알레포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갔고, 언덕 위에서 멈춰서면서, 이 언덕밑을 파보라고 말했답니다.

뭔가 이상한 징후를 느낀 마을주민들은 곧바로 그 언덕밑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 땅속에서는 놀랍게도 사람의 백골시신이 발견되었답니다. 그리고 알레포는 그 시신을 가리키면서 ‘아흐메드가 나를 죽인 후, 여기에 내 시신을 묻었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알레포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는데요, ‘아흐메드가 흉기로 내 머리를 내리쳐서 죽인 후, 여기에 묻었어요’라고!

 

결국 ‘하페즈’라는 청년은 ‘아흐메드’에게 죽임을 당한 후, 이곳에 시신으로 매장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아흐메드’라는 남자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합니다.

 

알레포의 부모님은 경찰을 대동한 후, 그 마을에 사는 ‘아흐메드’라는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알레포는 아흐메드에게 범행동기와 범행상황, 범인의 이름, 백골의 위치 등 당시 범행이 일어났던 구체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집어내자, 얼굴이 창백해진 아흐메드는 몸을 벌벌 떨면서 달아났고, 추격해온 경찰에게 붙잡힌 아흐메드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말았답니다.

 

결국 3살베기 알레포의 전생기억으로 4년전에 일어났던 아흐메드의 하페즈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졌고, 살인범 아흐메드는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레포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붉은 반점 갖고있었는데, 이 붉은반점의 위치와 백골의 머리에 난 상처의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합니다.

 

즉, 알레포의 머리에 난 붉은반점은 그가 전생에서 살해당할 때 입었던 상처의 흔적이었던 겁니다.

 

글도 전혀 읽은줄 모르는 3살베기 아이가 이 모든 걸 직접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3살베기의 어린아이가 이렇게 복잡한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편집해서, 지어낸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생과 환생을 대입시키지 않는다면,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즉, 3살베기 알레포가 실제로 전생을 기억해내지 않고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전생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3살배기 아이가 자신이 전생에서 묻혔던 시신의 장소까지 정확히 찾아낸다는 것은, 정말 믿어지지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경찰도 밝혀내지못했던 4년전 하페즈 살해사건의 범인을 3살베기 어린이의 전생기억으로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었답니다.

 

- 캐머런의 전생이야기 -

 

2000년도에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캐머런 매콜리는 2살 때부터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하기시작했답니다.

 

캐머런은 엄마에게 ‘내가 전에 살았던 곳은 바라섬에 있는데, 하얀색집이었어’ 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캐머런은 ‘그 하얀집에서 엄마,아빠,형과 나, 그리고 강아지랑 같이 살았어!’라고 말을 했답니다.

 

캐머런은 엄마가 한번도 말하거나, 가르켜준 적이 없는 ‘바라섬’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요.

캐머런이 말한 ‘바라섬’은 캐머런이 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무려 250km 이상 떨어진 아주 먼 곳이며, 단 한번도 캐머런이 가본 적이 없는 섬이랍니다.

 

그리고 바라섬은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사람들이 거의 찾지않는 외딴 바다에 있는 작은섬이었습니다.

 

캐머런은 엄마에게 이 바라섬에서 같이 살았던 아빠의 이름은 세인 로버트슨이며, 아빠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했답니다.

캐머런은 이 바라섬에서 화장실이 3개나 있는 하얀집에 살았으며, 마당에는 넓은 잔디가 있었고, 집에서 흑백점박이 무늬가 있는 강아지를 키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캐머런은 침실창문에서 해변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정원에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점도 이야기했답니다.

 

이처럼, 나이 어린 캐머런은 자신이 전생에 살았던 바라섬에서의 삶을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해주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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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부터 캐머런은 자신이 살았던 바라섬의 하얀집으로 데려가달라고 엄마에게 수시로 떼를 쓰고 고집을 피웠다고 합니다.

 

캐머런이 계속해서 엄마한테 자신의 집에 데려가달라고 요구하자, 부모님은 아이를 아동심리전문학자에게 데려가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담결과, 캐머런은 임의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알고있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캐머런을 데리고 바라섬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캐머런 부모님은 그 바라섬의 향토사학자를 만났고, 그 향토사학자로부터 그 바라섬의 북쪽지역에 하얀집이 있었고, 60~70년대에 실제로 로버트슨 일가가 그 집에 살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캐머런과 부모님이 함께 방문한 바라섬의 하얀집(실제 사진)

 

그리고 부모님은 캐머런을 데리고 그 하얀집을 직접 방문했는데요. 바라섬 북쪽의 해안가에 그림과도 같은 하얀집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간 캐머런은 ‘내가 드디어 우리집에 왔구나!’라고 말하면서 너무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집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캐머런이 말한데로 화장실이 3개가 있었고, 또한 침실에서 창문을 통해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정원의 한쪽에는 캐머런이 자주 이야기했던 비밀통로가 있는걸 확인했다고 합니다.

 

캐머런이 2살 때부터 이야기했던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로 확인되었답니다.

 

2살밖에 되지않은 어린아이 캐머런이 자신이 사는 곳으로부터 250km나 떨어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딴 섬에 있는 하얀집의 구체적인 형상을 정확하게 진술한다는 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가 캐머런은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신문이나 인터넷을 볼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일치되는 이야기를 해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전생을 대입하지 않고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캐머런은 자신이 전생에 살았던 전생의 삶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캐머런은 60~70년대까지 바라섬의 하얀집에서 로버트슨의 아들로 살다가 죽었을 것이고, 그 후 2000년도에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다른 부모님의 아들로 환생한 후, 바라섬의 하얀집에 살았던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낸 것이랍니다.

 

- 하난의 전생과 환생이야기 -

 

1962년 레바논의 한 마을, 20대 여성 하난은 심장이 좋지않아서 자주 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난은 첫째딸 레일라와 둘째딸 갈라레를 낳은데 이어, 셋째아들까지 출산한 후,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답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않았다는 슬픈 예감이 든 하난은 남편에게 ‘나는 이제 삶이 얼마 남지않았으니, 곧 당신곁을 떠날꺼야!

비록 내가 떠나더라도 슬퍼하지 말고 내 자녀들을 잘 키워주길 바래! 그리고 나는 꼭 다시 환생해서 돌아올꺼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남긴 하난은 몇 년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2년 뒤에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하난이 죽은 몇 년 후 다른 마을에서 수잔이라는 딸이 태어납니다.

수잔은 2살이 될 무렵, 엄마한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수잔은 엄마에게 ‘나는 하난이야, 내 딸은 레일라’라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리고 수잔은 또다시 엄마에게 ‘갈라레와 파루크도 내 애기야!’ 등 이상한 이름을 막 이야기합니다.

 

2살배기 수잔은 이같은 이상한 이름들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했고, 수잔의 부모님은 딸이 언급한 이름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수소문 끝에, 수잔의 부모님은 다른 마을에서 수잔이 이름을 언급한 하난의 가족들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드디어 수잔의 가족은 하난의 가족이 모여있는 하난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어린 수잔은 하난의 가족들 이름을 한사람씩 정확히 다 맞추었다고 합니다.

 

2살배기 수잔은 생전 처음보는 하난의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가족 전체의 이름들을 다 맞추었을 뿐만아니라, 수잔은 종이에다 7자리의 숫자를 썼습니다.

 

그런데, 수잔이 종이에다 적은 7자리의 숫자는 바로 하난가족의 집 전화번호였다고 합니다.

 

하난가족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답니다. 생전 처음보는 2살배기 아이가 자기가족들의 이름을 모두 맞추었을 뿐아니라, 집전화번호까지 정확히 알고있으니, 모두들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 2살인 수잔은 아직 어려서 말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짧게 짧게 끊어서 말을 하곤 했지요.

수잔은 하난의 첫째딸 레일라와 둘째딸 갈라레를 보고서 ‘옛날 수술 전의 보석’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하난이 죽기 직전에, 그녀는 자신의 오빠에게 자신의 보석들을 두 딸들에게 나눠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수잔이 ‘옛날 수술 전 보석’이라는 말은 자신이 전생에서 하난으로 살았을 때, 오빠에게 했던 유언을 다시 말한 것이랍니다.

 

이러한 수잔의 행동을 모두 목격한 하난의 가족들은 수잔은 죽은 하난이 다시 환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수잔은 몇 년 전 두 딸과 한명의 아들을 낳고 심장병으로 일찍 사망한 하난의 환생녀였으며, 다시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수잔은 자신이 죽기 직전에 남편에게 약속한데로 남편과 가족 앞에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비록 2살배기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고작 2살배기 어린아이가 수잔의 두명의 딸 이름과 수잔이 살아있을 당시의 모든 상황을 전부 맞추었기 때문에, 수잔은 하난의 환생녀라는 것을 모든 가족들이 확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수잔이 나이가 들어서 성인의 되었을 때, 그녀의 얼굴모습이 하난의 생전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남편에게 다시 환생해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수잔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수잔의 얼굴과 아주 흡사한 모습으로 다시 가족들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세명의 전생경험담 사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전생사례들은 모두 팩트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입니다.

 

이 세건의 팩트 사례들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며, 전생과 환생을 대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생과 환생이 존재한다고 하는 이 무거운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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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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