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홍콩모델 인플루언서 애비 최(초이) 살인사건의 전말과 살해이유, 재산과 범인 남편

 

애비 초이 - 1994년 7월 11일생, 현재 나이 만 28세

 

얼마전 홍콩의 미녀모델이자, 홍콩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플루언서 여성이 매우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애비 초이는 홍콩의 유명한 모델이자, 12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기 인플루언서입니다.

애비 초이는 현재 나이가 28세의 늘씬한 몸매를 가진 홍콩미인으로, 홍콩은 물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기모델이자 배우입니다.

 

프랑스의 유명잡지의 표지모델을 장식할 정도로 한창 떠오르는 모델이었던 20대의 모델 애비 초이는 2월 21일날 갑자기 실종신고가 접수되었고,

그로부터 3일 후인 2월 24일날 사망한 그녀의 시신이 홍콩 룽메이 주택의 냉장고에서 발견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애비 초이의 시신이 발견된 주택은 다름아닌 그녀의 시아버지가 최근에 임대계약을 했던 주택이라고 합니다.

 

또한 애비 초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전 남편인 알렉스 퀑의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딸을 만나러 갔던 길이었는데, 그 이 후 그녀는 실종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은 애비 초이의 사망사건에 그녀의 전남편과 시댁식구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수사를 진행해나갔습니다.

 

◆ 20대 홍콩모델 애비 초이 살인사건의 전말, 범인

 

20대 홍콩모델이자 인기 인플루언서인 애비 초이 살인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애비 초이는 1994년 홍콩의 아주 부유한 집안에서 딸로 태어나서 매우 유복하게 자라났고, 그녀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남편 알렉스 퀑을 만나서 결혼에 골인합니다.

결혼한 후, 애비 초이는 홍콩배우와 인기모델을 병행하면서 홍콩과 글로벌 패션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글로벌스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또한 애비 초이는 프랑스 패션매거진 로피시엘 표지모델로 발탁되면서 파리 패션위크에도 참석했으며, SNS로 여러 명품 브랜드를 광고하는 등 인기 인플루언서로도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20대의 홍콩모델 애비 초이는 국제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끌면서 승승장구했지만, 그녀의 남편 알렉스는 특별한 직장이 없이 놀고먹는 사실상의 백수(무직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돈’이었어요. 홍콩에서 인기모델이자 연예인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활동했을 뿐아니라, 유명 인플루언서로 활동했던 애비 초이는 엄청난 재력가였다고 합니다.

 

재벌2세이자, 유명한 모델이었던 애비 초이의 재산은 무려 167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돈은 결코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말았습니다.

 

애비 초이는 알렉스와 결혼한 후, 두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가사와 일을 병행해나갔지만, 그녀의 남편은 직장도 없이 허구헌날 그녀에게 돈을 뜯어가는 등 한심한 무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알렉스 뿐만아니라, 남편의 형과 시부모등 시댁식구들까지도 돈을 잘버는 애비 초이에게 기생충처럼 달라붙어서 마구마구 돈을 뜯어갔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돈을 뜯어갈 궁리만 하는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엄청난 환멸을 느낀 애비 초이는 결국 남편 알렉스와 3년만에 이혼하고 맙니다.

 

이혼 후, 애비 초이는 새로운 남편 크리스 탐을 만나 재혼을 했습니다. 애비 초이가 재혼한 새 남편 크리스는 탄차이쌀국수 체인점 설립자의 아들로서 외식업계를 운영하는 부유한 사업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애비 초이에게는 전남편 알렉스와의 사이에 8살과 10살의 두명의 자녀가 남아있었고, 두 자녀는 전남편 알렉스가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전남편 알렉스가 두 자녀의 양육을 맡았지만, 그가 돈을 전혀 못버는 무직자였기 때문에, 애비 초이는 자녀 양육을 위해서 전남편에게 매달 계속해서 생활비를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애비 초이는 이혼 후에도 전남편 뿐만아니라, 전남편의 형과 전남편의 시부모님에게도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미 이혼한 전남편 시댁식구들에게까지도 경제적인 지원을 계속해주었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낳은 두자녀에 대한 양육을 잘해주기를 바랬던 엄마의 마음 때문이었답니다.

 

애비 초이는 전남편 알렉스와 2015년도에 이혼했는데도 불구하고,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2023년까지 8년 넘도록 재정적 지원을 계속해주었습니다.

 

애비 초이는 원래 심성이 무척 고와서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주려는 그런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애비 초이는 8년에 걸쳐서 전 남편에게 롤렉스시계를 비롯해서 옷, 가방 등 고가의 액서서리들을 사주었습니다.

 

이혼한 후에도 전남편은 돈을 잘버는 애비 초이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면서 끈덕지게 돈을 줄 것을 요구했고, 그녀는 전남편에게 아낌없이 많은 돈을 지급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전남편 알렉스에게는 형 안토니가 있는데, 안토니는 직장에 다니다가 해고되는 바람에 무직자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애비 초이는 전남편의 형 안토니를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할 운전기사로 채용해 월급을 주면서, 그의 생계를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애비 초이는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이 살 고가의 저택도 자신의 돈으로 구입해서 제공해주었습니다. 애비 초이가 시댁식구들이 살게 하기 위해서 구입한 저택의 가격은 무려 1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남편의 가족 전부가 이미 이혼해서 남이 된 애비 초이의 돈으로 먹고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 알렉스와 애비 초이

 

그런데, 이렇게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을 먹여살리면서, 자신의 연예활동을 활발히 벌여나가던 애비 초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맙니다.

 

2023년 2월 21일, 애비 초이가 갑자기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는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습니다. 원래 이날 애비 초이는 자신의 딸을 데리러 외출했다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종된 애비 초이를 찾기 위해서 경찰이 출동하여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애비 초이는 실종된 지 3일이 지난 2월 24일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홍콩도심지로부터 30분 거리에 있는 룽메이 해안가의 한 주택에서 애비 초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주택의 냉장고에서 그녀의 토막난 시신의 일부가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그 주택 인근에서 그녀의 또다른 시신의 일부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주택에서는 그녀를 살해하는데 사용된 도구 즉, 육류분쇄기와 전기톱같은 도구와 애비 초이의 가방과 신분증, 카드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그 주택에서 발견된 시신에 대한 유전자 DNA검사를 실시한 후, 그 훼손된 시신이 애비 초이의 것임 확인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주택에서 애비 초이의 신분증과 가방, 카드도 함께 나왔기 때문에, 누군가가 애비 초이를 그 주택으로 유인해서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했다고 경찰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애비 초이를 그 주택으로 유인해서 이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경찰은 먼저 애비 초이 전남편 가족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벌였습니다.

 

생전에 애비 초이는 전남편 알렉스를 포함해 시댁식구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었는데요. 그 이유는 자신의 두자녀를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이 맡아 길렀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경찰은 그녀의 주변사람들로부터 애비 초이와 시댁식구 간에 돈 문제를 놓고 심한 갈등과 다툼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경찰 조사 결과, 애비 초이의 시신이 나온 그 주택은 몇 주 전에 시아버지 퀑카우가 임대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즉, 몇 주 전 시아버지 퀑카우가 구입한 그 주택에서 애비 초이의 시신과 가방, 신분증, 카드가 나온 것이랍니다.

 

또한 그 주택에는 가구가 하나도 없는 비어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시아버지 퀑카우가 애비 초이를 살해하기 위한 장소로 삼기위해 그 집을 임해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애비 초이의 전남편 알렉스 퀑과 친형 안토니, 시아버지 퀑카우와 시어머니 등 일가족 네명을 에비 초이의 살인 및 시신 훼손유기혐의로 전격 체포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애비 초이와 전남편 알렉스 퀑, 그리고 시댁식구들간에 수천만 홍콩달러의 금전문제를 놓고 벌어진 싸움 때문에 촉발된 살인사건이라고 합니다.

 

전남편 알렉스 퀑과 형, 시아버지, 시어머니 등 시댁식구들이 애비 초이를 그 집으로 유인한 후, 그녀의 재산문제로 한바탕 다툼을 벌인 끝에,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이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밝혀졌습니다.

 

오로지 돈 때문에, 전남편의 일가족 전체가 작당해서 이혼한 전 부인을 잔인하게 토막살해한 이 사건은 홍콩시민들에게 엄청난 전율과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경찰이 애비 초이의 시댁식구들을 검거할 당시에, 전남편인 알렉스 퀑은 도망가려고 시도했는데, 그는 쾌속정을 타고서 통총이라는 선착장에서 쾌속정을 타고 홍콩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곳에 잠복중이던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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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체포될 당시에 전남편 애비 초이는 수중에 무려 6억 7천만의 금품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거액의 돈은 아마도 알렉스가 전부인 애비 초이를 살해한 후, 그녀의 카드로 인출한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됩니다.

 

경찰의 지속적인 수사결과, 애비 초이를 살해한 주범은 전남편 알렉스가 아닌 그녀의 시아버지인 65세의 퀑카우라고 합니다.

 

시아버지인 퀑카우는 애비 초이를 살해하기 위해서 그 주택을 직접 임대했고, 적극적으로 범행을 주도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시아버지 퀑카우가 그 주택에서 애비 초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의 일부를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고 합니다.

 

시아버지인 퀑카우와 시댁식구가 그 집에서 빠져나와 자동차에 타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된 점, 그리고 그 집에서 애비 초이의 시신과 카드, 범행에 사용된 도구들이 발견된 점 등의 증거물이 확보되면서,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을 애비 초이의 살해범으로 전격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 시아버지 퀑카우와 전남편 알렉스 퀑의 직업과 정체

 

그런데 놀랍게도 범행을 주도한 시아버지 퀑카우는 원래 홍콩의 경찰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퀑카우는 홍콩경찰 경장으로 장기 근무해왔으며, 경찰 재직 중에 여러 가지 공을 세워서 일등훈장까지 받았던 베테랑경찰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아버지 퀑카우는 오랫동안 경찰로 복무하다가 2005년도에 터진 성폭행사건에 연루되어서 불명예 퇴직했다고 합니다.

퀑카우는 2005년도에 여성성폭행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그 수사로 알게된 피해여성에게 은밀히 접근해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해여성의 신고로 경찰에 입건된 퀑카우는 자신이 몸담고있는 경찰의 비호를 받고 협상을 벌였는데, 그는 즉시 경찰직에서 퇴직하는 조건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즉, 시아버지 퀑카우는 경찰로 복부하다가 성폭력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퇴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전남편 알렉스 퀑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무직자였을 뿐만아니라, 전형적인 사기꾼이었습니다.

 

부인 에비 초이의 경제적 도움에 의존해서 먹고살았던 전남편 알렉스 퀑은 외부에 자신이 재벌2세인 것처럼 자신을 홍보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이 재벌2세라고 거짓 위세를 부리고다니면서, 종종 주변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채팅사이트에 가입해서 네명의 동성애자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들을 상대로 금을 고가에 팔 수 있다고 속이면서 8억대의 사기를 쳤고, 결국 경찰의 수배자명단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알렉스 퀑은 최근까지도 사기죄로 수배를 받아왔다고 합니다. 즉, 알렉스 퀑과 그의 아버지 퀑카우는 원래 둘 다 사실상 범죄자였던 것입니다. 세 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던가요?

 

이렇게 알렉스 퀑과 그의 아버지 퀑카우는 자신의 본성을 버리지못하고 또다시 착하디착한 부인이자 며느리인 에비 초이를 상대로 씻지못할 엄청난 패륜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또한 알렉스 퀑은 홍콩 익스프레스은행에 무려 3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있었고, 그 빚을 갚지않아서 채무추심까지 받고있었던 상태라고 합니다.

 

애비 초이와 남편의 친형 안토니

 

이쯤되면 전남편 알렉스 퀑은 신용불량자일 뿐만아니라, 전형적인 백수건달에다, 파렴치한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거기다가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지못한 체, 전부인의 도움으로 먹고사는 인간말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계를 도와주는 전부인에게 고마워할 줄도 모른 체, 오히려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가족과 공모해서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은 정말 처음 보겠습니다.

 

◆ 에비 초이 살해이유

 

에비 초이가 전남편 가족들이게 지원해준 고가의 집이 있는데, 이 집은 100억이 넘는 으리으리한 고급주택이라고 합니다.

2019년도에 에비 초이는 이 주택을 자신의 돈으로 직접 구입해서 전남편과 시댁가족들이 살게끔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당시 이 집의 구입금액은 에비 초이가 전부 지불했지만, 이 집의 명의는 시아버지 퀑카우의 명의로 했다고 하는데요. 이 집을 시아버지의 명의로 해 둔 이유는 세금을 탈루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애비 초이가 100억대가 넘는 이 주택을 처분하려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미 자신과 이혼한 전남편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의 돈 100억원을 들여서 구입한 이 집을 그냥 놔둘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고, 이미 다른 남자와 재혼한 애비 초이는 거액이 들어간 이 집을 빨리 처분해서 그 돈을 회수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애비 초이가 이 집을 처분하려고 시도하자, 시아버지 퀑카우는 노발대발하면서 이 집의 처분을 결사반대했다고 합니다.

시아버지 퀑카우는 애비 초이에게 ‘너 이 집 팔기만 해봐라! 너 죽여버린다!~’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즉, 이 고가의 집 처분문제 때문에, 애비 초이와 시아버지를 비롯한 시댁식구간에 다툼이 생겼고, 이러한 재산문제로 인한 갈등과 다툼이 원인이 되어서 애비 초이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애비 초이는 현재 재혼한 남편과는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않은 상태여서, 만일 그녀가 사망한다면, 그녀의 재산은 전남편인 알렉스와 두 자녀들에게 상속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전남편 가족들이 그녀를 살해할만 한 또다른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놀랍고도 참혹한 살인유기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홍콩의 인기배우이자 유명 인플루엔서인 애비 초이가 자신이 금전적으로 생계를 도와주었던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이 합심해서,

은혜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재산을 탈취할 목적으로 그녀를 이토록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니 말입니다!

 

시댁가족 전체가 협작해서 돈많은 상속녀이자 며느리인 애비 초이의 재산을 노리고 그녀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전대미문의 살인유기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애비 초이가 가진 재산은 무려 167억원이라고 하며, 그녀가 이토록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있었기 때문에,

전남편과 시댁식구들이 그녀의 막대한 재산을 탈취하기 위해서 이같이 잔악한 살인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돈이 너무 없어도 걱정이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네요!~

 

만일, 에비 초이가 재산이 별로 없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어쩌면 그녀는 이토록 끔찍한 죽음을 당하지않고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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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

미국 존 에프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과 범인과 배후, 재클린 증언

사랑방 이야기 2023. 5. 22. 22:23

미국 존 F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과 진짜 범인, 암살파일, 재클린의 증언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대통령은 과연 누구한테 암살을 당했을까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아폴로 달착륙 프로그램 등 많은 개혁정책을 추구하면서 전미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케네디대통령은 1963년 11월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매우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했는데요.

 

표면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의 존 F. 케네디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에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리 하비 오스월드가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날, 리 하비 오스월드는 댈러스시내의 한 교과서 보관건물 6층에 숨어있다가 케네디대통령의 차량이 지나가던 시점에 총 세발을 쏘아서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했던 것인데요.

 

이같은 오스월드의 케네디대통령 암살에 대해 오랫동안 여러 가지 석연치않은 의문점등이 계속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오스월드는 도주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그로부터 2일 후, 텍사스주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석연치않게 사망하고 맙니다.

 

오스월드를 죽인 잭 루비는 마피아와 관련이 있는 자였는데, 그는 재판을 받던 도중에 석연치않은 이유로 감옥에서 병사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은 외형적으로는 리 하비 오스월드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CIA의 음모설, FBI의 개입설 등 여러가지의 음모설이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케네디의 죽음은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케네디대통령 암살에 있어서 CIA 음모론이 크게 제기되었는데, 그 당시 공산주의국가 쿠바와 소련의 연대로 인해 미국의 안보는 큰 위협을 받고있었습니다.

 

이에 CIA는 케네디대통령에게 가짜 태러를 일으켜서 쿠바와 공산권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명분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평화를 원했던 케네디대통령이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그는 암살당했습니다.

 

CIA는 케네디대통령이 CIA를 해체하려한다고 불안해하는 상태에서, 이같은 CIA의 제안을 거부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CIA가 배후에서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하도록 공작을 꾸몄다는 설입니다.

 

당시는 냉전시대로,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특히 CIA 공산주의종주국인 소련을 극도로 혐오했는데,

케네디대통령이 소련에 평화제스처를 보내는 등, 소련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불만이 컸습니다.

 

이러한 케네디대통령의 소련에 대한 굴종적인 모습,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있었던 CIA가 케네디대통령 암살을 기획했다는 설입니다.

 

그런데, 여기 케네디대통령 암살에 관해 매우 신빙성 높은 증언이 나오고 있어서 큰 주목을 끌고있습니다.

 

◆ 케네디대통령 죽음의 진실을 밝힌 부인 재클린의 증언

 

암살 당시 케네디대통령은 46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직을 3년을 재직한 후, 재선을 1년 정도 남긴 상태였습니다.

당시, 젊고 유능한 대통령으로 재선이 확실시되던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많은 미국인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케네디대통령의 암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워런위원회가 구성되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지 해병대출신의 교과서 보관직원에 불과했던 오스월드가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할 만한 특별한 목적이나 정치적 동기도 찾지못했고,

그 배후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암살범도 또다시 다른 자에게 살해당하고 그 살해범도 감옥에서 죽는 등 매우 석연치않은 의혹점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워런위원회는 섣불리 오스월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음으로써,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지 48년 후인 2011년도에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증언한 충격적인 자료가 공개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여사가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한 사람은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라고 증언해서 큰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케네디대통령의 맏딸인 캐롤라인은 케네디의 암살의 비밀이 담긴 테이프를 전격 공개했습니다.

 

이 비밀테이프에는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몇 개월 후에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가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와 8시간동안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비밀테이프에는 놀랍게도 케네디대통령을 죽인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힌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즉, 이 비밀테이프에서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는 케네디를 암살한 자는 린든 존슨 부통령이라고 명쾌하게 증언하고 있어서,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을 죽이도록 뒤에서 조종한 배후인물이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라고 재클린여사는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린든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을 암살하도록 사주했던 것일까요?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가 밝힌 당시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62년 10월, 미국을 발칵 뒤짚어놓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첩보정찰기에 의해서,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가 건설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미국의 앞마당에 소련의 핵미사일기지가 건설된 것으로, 이것은 미국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쿠바땅은 미국의 마이애미 해변의 바로 코 앞에 있는 매우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당시는 냉전시대로,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경쟁 등 모든 부문에서 세계 패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이 예민한 시기에 소련의 핵을 배치할 수 있는 미사일기지가 미국의 코앞인 쿠바땅에 전격 배치되었던 것으로, 이것은 미국에 있어서 엄청난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미국과 소련간에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되자, 케네디정부의 강경파들 사이에서 우리가 먼저 소련과 쿠바에 선제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들이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존슨부통령과 미군장성등 강경파들은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소련과 쿠바에 선제공격을 감행해야한다는 강경대응 주장들을 내놓았는데요.

 

그렇지만, 케네디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만일 쿠바사태로 인해 미국이 군사공격을 감행하게 되면, 제3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고 판단했고,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흐루시초프 소련서기장을 직접 만나 협상을 진행해서,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않겠다는 조건으로 쿠바에서 소련의 미사일기지를 철수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대통령이 이렇게 쿠바미사일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하자, 존슨부통령 등 케네디정부의 강경파들은 케네디대통령에게 큰 불만을 갖게되었습니다.

 

존슨부통령을 위시한 강경파 장성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케네디대통령이 소련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초강대국인 미국의 위신이 크게 추락하게 되었다고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케네디대통령의 유약한 외교정책을 크게 비난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케네디대통령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계획마저 세우고 있었고, 실제로 1965년도까지 베트남에서 미군을 전부 철수시킨다는 플랜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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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존슨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군수산업이 밀집해있는 텍사스출신으로,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변자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존슨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전쟁이 일어나야만 자신들의 정치적 텃밭인 텍사스의 군수산업이 크게 부흥할 것이고, 그래야만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굳건해질 뿐만 아니라, 정치후원금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슨부통령과 강경파들은 텍사스주의 군수산업체와 서로 공생하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의 전쟁반대 정책과 베트남에서의 미군철수정책에 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평화만을 외치면서 소련등 공산국가에 유약하게 대응하고있는 케네디대통령을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 당시 존슨대통령 등 강경파들 사이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소련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케네디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위신을 떨어뜨렸다!’는 자조섞인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이렇게 존슨부통령과 강경파 장성들 사이에 케네디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점점 고조되어 나갔습니다.

 

즉, 쿠바 미사일사태로 미국과 소련간에 전쟁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위기사태에서 케네디대통령이 흐루시초프와 만나 회담하면서, 미국과 소련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데땅트시대가 열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과 소련 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전쟁위험이 사라지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게된 군수산업체 관계자들과 그들의 비호세력인 존슨부통령 등 강경파세력은 케네디대통령에 대해 깊은 반감을 품게됩니다.

 

결국 이렇게 케네디대통령의 정책에 반감을 품게된 존슨부통령과 강경파세력이 비밀리에 케네디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모의했고, 그들의 암살음모에 의해서 케네디대통령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재클린여사가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의 전모입니다.

 

재클린여사의 주장에 의하면, 케네디대통령을 지지세가 약한 텍사스주 댈러스지역을 방문하도록 강력히 주장한 자도 바로 존슨부통령이라고 합니다.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이 지지기반이 약한 텍사스에 가서 연설해야만 다음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케네디대통령이 텍스스로 가도록 유도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의 재선을 돕기위해서가 아니라, 존슨부통령의 계획 아래 케네디를 살해하기 적합한 장소인 달라스로 케네디대통령을 유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쿠바의 미사일사건과 베트남의 미군철수 등 소련과 미국의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군수업체가 몰려있던 텍사스에서는 케네디의 인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던 상황에서,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을 텍사스 달라스로 유인해서 손쉽게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케네디대통령은 존슨부통령의 주장대로 텍사스주의 달라스로 유세하러 방문했다가 오스월드가 쏜 총에 맞아 전격 암살당하고 맙니다.

 

케네디대통령은 오스월드가 쏜 총 두발을 머리와 목에 맞고 곧바로 사망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이 전격 사망함으로써, 부통령인 린든 존슨이 궐위된 대통령직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즉, 케네디대통령의 사망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바로 존슨부통령이었지요.

 

존슨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이 죽자마자, 달라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대통령취임선서를 서둘러 진행했습니다.

존슨부통령은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달라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서둘러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던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선서를 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 당시 재클린여사의 눈에는 마치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의 죽음을 기다린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존스부통령은 케네디대통령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을 뿐만아니라, 64년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해서 당선되는 행운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케네디대통령이 죽지않고 계속 살아있었다면, 존슨부통령은 대통령직 승계도 불가능했을 뿐만아니라, 64년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도 나갈 수 없던 처지였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네디대통령의 사망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바로 존슨부통령이었지요.

그러므로, 존슨부통령이 케네디대통령 암살사건의 배후인물이라는 재클린여사의 주장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남편 케네디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재클린여사를 바로 옆에 세워놓고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선서를 하는 존슨부통령의 모습이 매우 뻔뻔스러워 보인답니다.

 

이렇게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여사는 여러가지 근거를 대면서 존슨부통령을 케네디대통령 암살의 배후인물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재클린은 이런 육성테이프를 자신이 죽은 후 50년 동안 공개하지 말 것을 유언했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가족을 향한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케네디도서관의 금고에 보관되어왔던 재클린의 육성테이프는 2011년 케네디의 맏딸 캐롤라인에 의해서 전격 공개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1963년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존 F 케네디대통령, 그는 과연 존슨부통령의 음모에 의해 암살당한 것일까요? 케네디대통령의 죽음의 진실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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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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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이미지) 배경화면 없애기, 지우기,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 어플 프로그램

 

요즘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분들 부쩍 많아졌지요. 그런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난 후, 그 사진의 배경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내가 찍은 사진속의 인물은 마음에 드는데, 문제는 사진 인물 뒤에 나오는 배경화면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이지요.

 

많은분들이 인물사진의 배경 때문에 고민들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사진속의 인물은 잘 나왔는데, 그 인물과 뒷 배경이 서로 조화가 안되서 사진 전체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만큼 뒷배경이 사진속 인물의 퀄리티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사진속 뒷 배경을 지우거나, 배경을 다른 배경으로 바꿔주면 문제는 해결된답니다.

이것을 소위 ‘누끼따기’라고 하는데요. ‘누끼따기’는 사진의 배경을 없애고, 특정 이미지(인물)만 살리는 것을 말하지요.

 

오늘은 사진의 인물 뒷 배경을 없애거나, 배경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어요.

 

◆ 사진의 배경(색)을 없애기, 바꾸는 방법

 

사진을 찍었는데, 배경화면이 후질근해서 인물이 확 죽어버리는 경험을 많이들 하셨을 겁니다.

이럴 경우, 배경화면이나 배경색을 지우거나, 다른 배경으로 바꾼다면 인물이 훨씬 살아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사진속에서 인물만 남기고 배경을 지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종래에는 배경지우기 위해서 보통 포토샵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토포샵을 사용해서 사진속 배경 지우는 것이 보통 힘든 고역이 아닙니다.

포토샵을 이용해서 인물 뒤의 배경을 지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손이 무척 많이 갑니다. 한마디로 말해 거의 '노가다'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포토샵을 이용하지 않고도, 훨씬 더 편하고 간단하게 인물 뒷 배경을 지우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리무브비지’라는 앱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리무브비지’라는 어플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사진속 배경을 없애는 방법을 시도해보겠습니다.

 

‘리무브비지’는 스마트폰의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셔서 무료로 다운받으면 됩니다.

먼저,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서 ‘검색어’에 ‘리무브비지’를 입력해서 조회합니다. ‘리무브비지’는 영어로 ‘remove.bg' 즉, 배경화면을 제거해주는 앱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면, 아래 이미지처럼 ‘리무브비지’가 나타나게 되고, ‘설치’를 클릭해서 다운로드를 받습니다. '리무브비지'는 무료로 다운받아 설치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 휴대폰에 ‘리무브비지’ 어플을 다운로드 받은 후, 이것을 클릭해서 엽니다.

‘리무브비지’를 열면, 아래 이미지처럼 사진을 업로드할 수 있는 페이지가 뜹니다. 여기서 하단에 있는 ‘업로드 이미지’를 클릭합니다.

 

그러면, 리무브비지 앱에서 본인의 사진 및 미디어에 접근하도록 하용하시겠습니까? 라고 문구가 나오며, 여기서 ‘허용’을 클릭합니다.

여기서 접근을 허용해주어야만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페이지가 나타나고, 여기서 카메라를 찍을 것인가, 또는 갤러리에서 이미지를 가져올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나오는데요.

‘카메라’는 지금 바로 사진을 찍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구요.

 

여기서는 기존에 저장되어 있는 ‘인물사진’을 가져와서 작업할 것이기 때문에, ‘갤러리’를 클릭합니다.

 

그러면, 내 휴대폰의 갤러리 안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이 쫙 나타나고, 그 중에서 작업하기 원하는 이미지 하나를 클릭합니다.

 

그러면, 선택한 사진의 배경을 지우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시간은 짧게는 5초에서 길게는 1,2분 정도 걸립니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앱을 종료하면 안되며 차분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뒷 배경이 지워진 사진을 불러와 보면, 인물뒤의 배경이 투명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뒷 배경이 지워진 사진에 만족하신다면, 1번의 ‘다운로드’를 클릭해서, 휴대폰의 갤러리에 저장하면 됩니다.

 

인물사진의 배경지우기 작업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렇게 배경이 지워진 사진의 배경은 투명하게 (또는 하얗게) 보입니다.

 

그런데, 단지 배경을 투명하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배경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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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배경을 다른 색이나 다른 멋진 배경으로 바꾸기를 원한다면, 위의 이미지에서 2번의 ‘에디트(편집)’을 클릭합니다.

 

‘에디트(편집)’을 클릭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화면들이 나타난답니다.

 

첫 번째 줄에는 ‘blur(흐림)’으로 배경의 흐림 정도가 다른 배경들이 전시되어 있고, 두 번째 줄에는 ‘포토’로 여러 가지 아름다운 배경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세 번째 줄에는 다양한 색상의 배경색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배경사진이나 배경색상을 보길 원한다면, 손가락을 이용해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에서 드래그하면, 또다른 사진이나 색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배경사진 또는 배경색상을 클릭하면, 위에 있는 자신의 사진의 뒷배경이 선택한 배경화면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배경사진이나 배경색상이 마음에 든다면, 상단 우측의 ‘화살표시(다운로드)’를 눌러서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설명할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요. 위의 편집창을 보면, 중간부분에 ‘ERASE/RESTORE'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배경색이 희미하거나, 색상이 또렷하지 않을 때에는 인물과의 경계선부분이 좀 불분명하게 따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ERASE/RESTORE'를 클릭해서 경계선부분을 보정할 수 있는데요.

 

‘ERASE(지우기)’를 클릭한 후,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인물과 배경과의 경계선의 지저분한 부분을 지울 수가 있고, ‘RESTORE(복원하기)’를 클릭해서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금방 지웠던 부분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 상단의 ‘오른쪽 화살표’ 탭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할 수 있는 탭입니다.

 

자, 지금까지 사진의 배경화면을 지우거나, 배경화면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리무브비지’를 다운로드 받으셔서, 위에 설명한 순서대로 따라하신다면, 사진 배경 지우기와 다른 배경으로 바꾸기를 손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리무브비지’를 사용하면, 사진 배경 지우기와 다른 배경으로 바꾸기를 매우 간단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휴대폰으로 사진 배경 지우기와 다른 배경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려드렸는데요.

 

휴대폰이 아닌 컴퓨터로 사진 배경 지우기와 다른 배경으로 바꾸기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사이트로 들어가서, 위에서 설명한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하시면, 사진 배경 지우기와 다른 배경으로 바꾸기를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remove.bg/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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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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