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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18 모나코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젊은시절의 미모, 사망원인과 남성편력 3

 

(허리우드 최고미인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미모와 죽음이유, 화려한 남성편력

 

그레이스 켈리 19291112~1982914(향년 54세 사망), 169cm

 

역대 허리우드여배우 중에서, 최고의 미인은 누구일까요

 

사람들마다 보는 취향이 달라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분석가들은 대체적으로 그레이스 켈리를 허리우드의 최고미인으로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0년대에 영화전문저널에서 해마다 세계최고 미인을 뽑아서 발표했는데, 리즈 테일러와 그레이스 켈리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최고미인 1위에 선정되곤 했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아한 자태와 청순한 미모를 가진 그레이스 켈리를 세계 최고의 미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사람들이 동의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1950년대에 활동했던 미모와 연기력이 뛰어난 허리우드여배우입니다.

 

하이눈모감보’ ‘백조같은 영화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레이스 켈리는 역대 허리우드여배우 중에서 최고의 미녀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여배우였습니다.

 

 연기력도 뛰어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눈부시게 빼어난 미모를 간직했던 여배우로서, 전세계의 올드팬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배우가 바로 그레이스 켈리가 아닐까 합니다.

 

50년대에 혜성처럼 허리우드에 입성한 그녀는 하이눈’ ‘모감보’ ‘나는 결백하다’ ‘상류사회같은 명작품에 출연해서 열연을 펄쳤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크게 히트하면서, 그레이스 켈리는 전세계인들의 큰 사랑을 받는 은막의 여왕으로 우뚝 솟아올랐으며

50년대 당시에 세계인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녀는 사실상 만인의 연인과도 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미모와 연기력, 세련된 매너 등 세계톱스타로서의 모든 자질을 골고루 갖춘 그레이스 켈리는 50년대 당시 허리우드의 보물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단순히 얼굴만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연기력도 대단했는데,

54년도에는 영화 '갈채(회상속의 연인)'에 출연해 대망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따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도 갖추고 있었지요.

 

세기적인 미녀라고 불리울 정도로 탁월한 미모를 갖췄을 뿐만아니라, 뛰어난 연기력까지 갖추고 있던 그녀였지만, 그레이스 켈리는 데뷔 6년째인 1956년 돌연 모나코의 왕 레니에 3세와 결혼하면서 영화계를 완전 은퇴하고 맙니다.

 

세기적인 미인이라는 칭송을 받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던 그레이스 켈리는 사실 영화계에 데뷔해서 출연한 영화는 고작 11편밖에 되지않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영화배우로 활동한 기간도 6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고, 영화편수도 얼마 되지않았지만, 그레이스 켈리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가 당대의 위대한 걸작품들이었고, 그녀는 세기적인 미인라고 불리울만큼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떨쳤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기절정의 시기에 그레이스 켈리는 왜 갑자기 영화계에서 은퇴했던 것일까요?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과 음모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왕 레니에 3세와 결혼했고, 모나코의 왕비가 되면서, 영화계를 완전히 은퇴하고 말았답니다.

 

그레이스 켈리가 영화촬영을 위해서 프랑스의 남부지방을 방문했을 때, 모나코의 왕 레니에 3세로부터 초대를 받아 모나코궁전으로 들어가 두사람은 처음으로 상봉하게 된 것이 계기가되어 두사람은 서로 친분관계를 맺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1년 후, 레니에 3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레이스 켈리의 집을 찾아갔고, 그레이스 켈리에게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를 주면서, 정식으로 청혼을 했답니다.

세상에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하는데, 거절할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는 19564월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세기적인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두사람의 결혼식은 인공위성으로 생중계되어서 전세계의 국가에 방영되었답니다.

 

세기적인 미녀이자 은막의 여왕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의 왕 레니에 3세의 결혼식은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그때까지 아무도 알지못했던 지중해의 작은 도시국가 모나코는 전세계인들의 큰 주목을 받게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결혼이 순수한 결혼이 아니라, 어떤 음모에 의한 정략결혼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있습니다.

 

, 레니에 3세가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한 것은 순수한 사랑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음모 때문에 결혼한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레이스 켈리는 28살의 나이에 모나코의 왕 레니에 3세와 결혼해서, 캐롤라인공주와, 알베르왕자, 그리고 스테파니공주 등 21녀를 낳아서 기르면서 외형적으로는 잘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녀는 1982년 돌연 교통사고를 당해서 5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일각에서는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결혼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의도된 정략결혼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두사람이 결혼하기 전, 모나코는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해있었답니다.

그 당시 모나코는 프랑스남부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도시국가였는데, 국가재정이  열악했을 뿐만아니라, 경제가 매우 낙후된 상태라서 프랑스에 합병될 위기에 처해있었지요. 

 

프랑스는 앞으로 모나코가 국가재정을 확충하지 못하고, 경제발전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모나코를 강제로 합병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모나코는 잘못하면 프랑스에 합병될 위기에 처했는데, 그 때에 선박왕 오아시스와 레니에 3세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타개책을 마련하게 됩니다.

 

선박왕 오아시스가 제시한 타개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허리우드의 여배우와 레니에 3세의 결혼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허리우드여배우를 잘 섭외해서, 모나코에서 그 여배우와 레니에 3세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그 결혼식을 올리는 이벤트를 전세계에 알려서, 전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나코라는 나라를 세계인들에게 알려서, 모나코의 여러 관광지로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략은 모두 선박왕 오아시스가 레니에 3세에게 알려준 전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모나코의 왕 레니에 3세는 허리우드의 인기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에게 공작을 벌여서 결국 결혼하는 데 성공했고, 두사람이 결혼식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답니다.

 

그리고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높은 인지도를 이용해 모나코는 엄청난 관광특수를 누리게 됐고

세계의 수많은 부호들을 모나코로 끌여들일 수 있었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는 세계적인 부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결국,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결혼을 성사시킴으로써, 모나코는 프랑스에 합병을 피할 수 있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그레이스 켈리의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도를 이용해서, 망할 뻔했던 모나코는 망하지 않고, 기사회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나코는 세계적인 유명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처럼, 그레이스 켈리는 단지 모나코의 회생을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자였을 뿐이라고 음모론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모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답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여름별장에서 휴가를 마치고 모나코왕궁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했는데, 옆에서 함께 타고있던 스테파니공주는 무사했지요.

 

이같은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과 사망이유

 

그레이스 켈리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혹스러운 부분이 많고, 그녀의 죽음에도 모나코왕실의 음모가 서려있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1982914일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사고를 당해서, 54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여름별장에서 휴가를 보낸 후, 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서 모나코왕궁으로 가던 중, 자동차가 도로옆의 낭떠러지로 추락해서 그녀는 젊은나이에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당시 그레이스 켈리가 직접 운전을 했다고 하며, 함께 차를 타고가던 스테파니공주는 무사했는데, 오직 그녀만이 사망했는데, 이같은 그레이스 켈리의 교통사고에 의혹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가 자동차사고를 당한 후, 곧바로 구조팀이 오지않고 장시간 방치되었다는 점도 의혹점이고요.

사고가 일어난 후, 현장에 있던 자동차와 유품들을 곧바로 치워버려서 증거를 없앴다는 점도 큰 의혹점입니다.

 

이 당시 그레이스 켈리는 운전석에, 그녀의 딸 스테파니공주는 그 옆좌석에 탔었는데, 오직 그레이스 켈리만 죽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스테파니공주는 멀쩡했다는 점도 큰 의혹점이랍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것은 사고사가 아니라, 모나코왕실에서 의도적으로 꾸며낸 음모에 의해서, 그레이스 켈리가 죽임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그레이스 켈리의 여러 행실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모나코왕실은 어떤 방법을 써서 그레이스 켈리를 죽여놓고, 마치 교통사고가 일어나서 그레이스 켈리가 죽은 것처럼, 사고사로 위장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가 딸 스테파니공주와 함께 탄 자동차를 몰고가다가, 도로옆의 절벽의 낭떠러지로 자동차가 추락해서 사망했다고 하는데요.

진짜로 자동차 추락사고로 사망했다면, 그레이스 켈리 혼자서만 죽을 게 아니라, 함께 타고있는 딸 스테파니공주도 같이 사망하는 것이 정상이랍니다.

 

자동차가 37m 아래의 낭떠러지로 추락했는데, 그레이스 켈리 혼자서만 사망하고, 그 옆에 타고있던 딸 스테파니공주는 약간의 타박상만 입은 체, 멀쩡하게 살아있었는데, 이 점이 의혹점이라는 겁니다.

 

많은사람들이 이처럼 그레이스 켈리 사망의 음모설을 주장하자, 모나코왕실은 스테파니공주를 내세워서, 다음과 같은 해명자료를 발표했답니다.

 

당시에 뇌졸증을 앓고있었던 그레이스 켈리가 술을 먹은 상태에서 운전을 했고, 몽롱한 상태에서 부주의에 의한 운전실수로 인해, 자동차가 벼랑으로 추락했다고 해명을 했었답니다.

 

모나코왕실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 켈리의 사망과 관련한 음모론과 논란은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더 가열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나코왕실은 처음에는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끌던 그레이스 켈리의 역할이 필요했었기 때문에, 그녀와 레니에 3세와의 결혼을 승낙했고

또 그레이스 켈리의 높은 명성 때문에, 보잘 것 없는 작은 도시국가인 모나코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돈많은 관광객들이 모나코로 몰려들게 됩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향수를 느끼고 싶었던 유럽의 수많은부호들과  관광객들의 모나코에 대한 방문이 쇄도하게 되면서, 모나코는 일약 유럽에서 가장 인기 높은 관광명소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모나코는 그레이스 켈리의 명성 때문에, 유럽의 관광대국이 되었고, 모나코는 엄청난 관광수익과 카지노수익을 벌게 되면서, 유럽의 경제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답니다.

 

그레이스 켈리 때문에, 모나코는 왕실의 후계자문제도 해결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와지면서 프랑스로부터의 흡수합병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중해 풍요로운 독립국가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레이스 켈리의 존재감은 모나코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았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레이스 켈리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고향과 허리우드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병에 걸려서, 점점 정신적으로 퇴락해갔다는 점입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레니에왕과 결혼한 후, 두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 등 세명의 자녀를 낳아기르면서, 모나코의 왕비로서 겉으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 그레이스 켈리는 미국 허리우드를 무척 그리워했다고 하며, 좁은 왕궁생활에 무척 답답함을 느끼고, 적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국에 대한 향수병 때문에 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알콜과 약물에 중독되어, 매일같이 술과 약물에 의존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심한 알콜중독에 빠진 그레이스 켈리는 수시로 파티를 열어서 여러명의 남성들을 만나서, 숱한 염문을 뿌렸다고 합니다.

 사실 그레이스 켈리는 허리우드에서 활동했을 당시에도, 남성편력이 대단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뭏튼 그레이스 켈리는 초기에는 모나코를 경제적 부국으로 만드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모나코의 홍보대사의 품위를 잃어버리고, 사고만치는 골치 아픈 존재로 전락해버렸던 겁니다.

 

점점 심해지는 알콜중독과 숱한 외갓 남성들과의 염문 등 모나코왕비로서 더 이상의 효용가치가 사라진 그녀를 더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모나코왕실은 그녀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레이스 켈리 사망의 음모론인데, 영국의 황태자비 다이애나의 죽음과도 유사한 점이 있어서 놀랍기만 합니다.

 

과연, 그레이스 켈리사망의 음모론이 사실일까요? 그레이스 켈리가 생전에 우울증과 심한 알콜중독에 걸린 것은 사실이라고 하며, 또한 그녀가 문란한 사생활에 빠져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단지, 그녀가 여러명의 남자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다는 부분은 너무 사적인 부분이라서, 루머는 많이 나돌지만,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지요.

  

그런데, 한 미국작가에 의해서, 그레이스 켈리의 젊었시절의 남성편력이 공개되어서 큰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남성편력

 

위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그레이스 켈리는 남성편력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1994년 영국작가 로버트 레이시는 그레이스 켈리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었던 그레이스 켈리의 문란한 사생활과 남성편력을 폭로했습니다.

 

작가 로버트 레이시는 그레이스 켈리의 어머니와 형제들, 학교친구와 선생님 등 주변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해서, 그레이스 켈리의 사생활과 남자관계를 샅샅이 조사했고, 그자료들을 토대로 책으로 엮었는데

얌전할 것만 같았던 그레이스 켈리의 수많은 남성들과의 남성편력이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엄청난 경악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청순하고 순수할 것만 같았던 그레이스 켈리였지만, 실상 그녀는 생전에 숱한 남성들과 염문을 많이 뿌리고 다녔습니다.

 

젊은 시절에 그녀의 주변에 있던 남성들은 대부분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하는 것이 핵심이어서, 놀랍기만 합니다.

  

17살 때에 그레이스 켈리는 뉴욕연극학교 친구인 알렉상드르 다르시와 수시로 만나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18세 때에 그레이스 캘리가 뉴욕의 연극학교에 다니고 있던 시절에, 당시 그녀는 연극투어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연극투어 중 자신의 연극학교교사 돈 리처드슨과 자연스럽게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녀는 교사 돈 리처드슨과 4년 동안 교제를 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그녀와 관계를 가진 돈 리처드슨과 알렉상드르 다르시의 증언에 따르면

그레이스 켈리는 남자의 손이 그녀의 무릎에 닿기만 해도 황홀경을 느끼는 스타일이어서, 그녀는 곧바로 남자의 품에 안겨버릴 정도로 헤픈 여자라고 밝히고 있어서, 놀라움을 주고 있답니다.

 

또한 그레이스 켈리의 부모님과 형제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의 대부분의 남자주인공과 숱한 염문을 뿌렸다고 합니다.

 

1952년도의 그레이스 켈리가 최초로 주연을 맡은 영화 하이눈에서 함께 출연했던 남자주연배우 게리 쿠퍼는 당시 나이가 51세로, 23세인 그레이스 켈리보다 28살이나 많은 아버지 같은 배우인데, 그녀는 케리 쿠퍼에게 대담하게 대쉬해서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3년도에 영화 모감보에 함께 출연했던 주연배우 클라크 게이블과도 핑크빛염문을 뿌렸는데

당시 클라크 게이블 51세로 24살인 그레이스 켈리보다 27살이 많은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두사람은 나이를 초월해서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1954년도에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 갈채에 함께 출연했던 남자배우 빙 크로스비와도 뜨거운 열애에 빠졌다고 하며, 그녀는 부모님한테 빙 크로스비와의 결혼에 대해 승낙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영화의 또다른 남자 주연배우 윌리엄 홀덴과 관계를 맺은 다음에, 마음의 변심이 일어나서, 그녀와 빙 크로스비와의 결혼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하네요.

 

또한 1954년도의 영화 원한의 도곡리다리에 함께 출연한 남자배우 윌리엄 홀덴과도 깊은 정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와 스테파니공주

 

그리고 그레이스 켈리는 54'다이얼 M을 돌려라' 에서 함께 출연했던 레이 밀런드와는 동거까지 했다고 합니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레이 밀런드와의 동거생활이 들통나는 바람에 레이 밀런드의 부인이 눈치를 챘고, 결국 두사람은 별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5년도에 출연한 영화 나는 결백하다를 촬영하기 위해서, 찾아간 프랑스의 리비에라해변 촬영 때부터, 그레이스 켈리의 염문행각은 잠시 멈추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 프랑스 리비에라해변 촬영 때에, 그레이스 켈리는 자신의 미래의 남편 레이니왕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지요.

 

프랑스의 리비에라해변에서 나는 결백하다를 촬영하던 시기에, 그녀는 모나코왕 레니에 3세로부터 모나코왕궁으로 초대를 받았고

모나코왕궁을 방문했던 그녀는 레니에 3세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며, 결국 그 이듬해 두사람은 결혼하면서, 그레이스 켈리의 수많은 염문들은 수면 아래로 묻혀버리게 됩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수많은 염문스캔들을 모두 다 알고있었던 그녀의 소속사 MGM영화사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적인 은막의 여왕으로 떠오른 그레이스 켈리의 이미지훼손을 막기 위해서, 주변사람들의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는등 그녀의 스캔들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주었다고 합니다.

 

이같이 그녀의 소속사 MGM영화사의 철저한 관리와 신비주의 전략 때문에, 남성편력이 풍부했던 그레이스 켈리는 그녀의 숱한 염문행각들은 모두 수면아래로 가라앉았고

그녀는 허리우드에서 가장 청순하고 우아한 미인여배우로 명성을 떨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나코왕 레니에 3세와 결혼함으로써, 잠시 멈춘 것 같았던 그레이스 켈리의 남성편력이 영원히 없어질 수는 없었고, 그녀는 중년의 나이가 되자, 또다시 염문행각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중년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레이스 켈리는 세월이 점점 지날수록 남편 레니에왕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합니다.

 

원래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그레이스 켈리는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궁중생활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잊기위해서 파티에서 젊은남자들을 만나서 또다시 숱한 염문을 뿌렸습니다.

  

그렇게 얌전할 것만 같았던 청초한 미인 그레이스 캘리가 이렇게까지 화려한 남성편력을 지니고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기만 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겉으로는 청순하고 티끌하나 없을 만큼, 깔끔하고 예쁜 외모를 갖고있었지만

속으로는 엄청나게 불타오르는 뜨거운 욕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그녀의 뜨거운 욕정은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고, 선천적인 특성은 절대로 없어지질 않는답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죽기 직전에도 자신보다 16살이나 어린 38살의 젊은 남자와 깊은 관계를 갖고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레이스 켈리와 남편 레니에 3세의 관계는 매우 나빴다고 하며, 두사람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편과 그레이스 켈리의 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그녀가 갑자기 자동차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레이스 켈리 사망의 음모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허리우드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라고 칭송받고 있는 만인의 연인 그레이스 켈리가 그 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숱한 남성들과 염문행각을 벌인 스캔들의 여왕이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레이스 켈리가 남성편력이 화려하다고 해서, 결코 그녀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레이스 켈리를 그냥 아름다운 여배우로서만 기억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출연한 모감보, 하이눈, 나는 결백하다 등 그녀의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성편력 같은 은밀한 사생활까지 들춰내서 비판하고 문제시하는 것은 한 여배우의 사생활을 너무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레이스 켈리의 화려한 염문행각들은 그냥 잊어버리고, 그녀가 출연한 멋지고 재미있는 영화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켈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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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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