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이유, 결혼과 이혼사유, 히트곡 ‘Burning Love’ 노래듣기 

 

오늘은 50, 60년대를 풍미했던 세기적인 로큰롤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0~60년대에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리울만큼 20세기에 문화적으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미국의 록팝가수랍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와 떨리는 듯한 개성 짙은 노래기법과 감미로운 목소리를 지닌 박력과 카르스마 넘치는 멋진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던 미국의 대중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가 죽은 지 벌써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와 그의 노래를 잊지못하는 수많은 팬들의 마음속의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작곡가로서, 팝가수로서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50년대부터 60년대를 넘어 70년대까지 오랫동안 대중적인 사랑과 인기를 끌면서 로큰롤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돌연 77년도에 43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아서, 전세계인의 수많은 팬들에게 커다란 아쉬움을 남겨놓았답니다.

 

잘생긴 외모와 박력있고 멋진 목소리, 그리고 눈부실 정도로 황홀한 무대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영원히 불멸할 것 같은 세기적인 인기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너무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그는 과연 어떤 이유로 그렇게 허무하게도 대중들의 곁을 떠났던 것일까요?

 

이 게시글에서는 20세기 중반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 최고의 로큰롤가수로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결혼과 사망의 미스테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1956년도에 미국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Heartbreak Hotel"라는 데뷔곡을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데뷔하자 마자 곧바로 스타덤에 오르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는 ‘Love Me Tender’ ‘All Shook Up’ ‘Jailhouse Rock’ 등의 그의 발표곡들이 연이어서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외에도 ‘Blue Hawaii’ ‘stuck on you’ ‘Can't Help Falling In Love’ ‘Burning Love’ ‘My Boy’ 등 77년도까지 17개의 노래들을 빌보드차트의 1위에 올려놓는 등 엄청나게 많은 곡들을 히트시켰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스마트하고 잘생긴 외모덕분에 30편이 넘는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가수 못지않게 배우로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당시 미국전역에서 가장 많은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로 대중적인 톱스타로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거듭해나갔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60년대 중후반 허리우드 영화출연에 집중하는 관계로 오랫동안 가수활동을 하지않았기에, 그는 몇 년 동안 가수로서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73년도에 하와이공연을 화려하게 펼쳐 멋지고 독특한 무대퍼포먼스를 펼쳐서 전세계의 수많은 대중들의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재기에 성공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개최한 하와이공연 음반은 빌보드 음반차트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히트를 쳤었고

그의 하와이공연은 전세계의 15억 인구가 시청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결혼과 이혼, 그 후에 찾아온 약물중동과 슬럼프

 

그런데, 엘비스 프레슬리가 재기에 성공했던 하와이공연 이후에, 그는 석연치않은 이유로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고, 이 후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67년도에 미군 대위의 딸 프리실라 블라우와 결혼해서 외동딸 리사 마리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두사람은 73년도에 전격 이혼함으로써 파경을 맞았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인 프리실라와 결혼 6년만에 이혼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엘비스 프레슬리는 나중에 자신은 생애중 단 한명의 여자만 사랑했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그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 프리실라였습니다.

 

이처럼 엘비스 프레슬리가 순애보적인 사랑을 나눴던 부인 프리실라와 결혼 6년만에 전격 이혼한 것은 대중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해로할 것만 같았던 두사람이 이혼한 것과 그 이혼사유에 대해 커다란 궁금증을 갖게되었는데요.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의 이혼이유는 1차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도와 방탕한 생활 때문이라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수많은 영화촬영과 공연활동으로 인해서 바쁜 활동을 벌여나갔기 때문에, 아내 프라실라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렇게 바쁜 활동 때문에 아내 프리실라와 대화를 나누지못하고 부부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서, 두사람 사이가 무척 소원해졌습니다.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멤피스 마피아'라고 불리우는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면서 술과 약물, 여자를 탐닉하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런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수시로 밖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부인 프리실라를 내버려두기 일쑤였고, 프리실라는 밤마다 독수공방을 해야했습니다.

 

프리실라와 엘비스 프레슬리 사진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외부에서 연예활동을 벌이면서 주변의 많은 여배우와 외갓여성들과 숱한 스캔들을 일으켰고, 외도를 즐겼습니다.

 

이런 엘비스 프레슬리의 잦은 외도와 스캔들을 겪고난 후, 크게 실망한 프리실라가 결국 엘비스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또한 프리실라의 다른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는데요. 엘비스 프레슬리가 외부활동으로 자주 집을 비우고 바깥으로 나돌자

집에 혼자 남아 외로움에 사무쳤던 프라실라가 호신술을 가려쳐주던 태권도사범과 눈이 맞아 하루밤 정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들통이 나면서 프리실라와 엘비스 프레슬리와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서 결국 두사람이 합의이혼했다고 합니다.

 

결국 두사람의 이혼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도로부터 갈등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지요.

 

 

세계적인 톱스타로서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먼저 바람을 피웠고이에 자극을 받은 그의 부인 프리실라가 맞바람을 피우면서 두사람 사이에는 금이 갔고

결국 두사람은 합의이혼을 하면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원인

 

 

프리실라와 이혼한 후,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 상실감 때문에, 매일같이 과도하게 음식을 먹는 폭식증증세가 심해지고, 또한 심한 약물중독에 빠지게 된답니다.

 

이렇게 폭식증과 약물중독에 걸려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1977816 엘비스 프레슬리는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에 있는 자택의 욕조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는 안타깝게도 42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이유는 그가 크게 불어난 살을 빼기 위해 과도하게 약물을 복용해왔는데, 그 과도한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짜 사망원인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약물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설은 그가 세계적인 로큰롤스타로서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명목상의 사망원인이었고, 그가 사망한 진짜이유는 바로 '변비'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후, 실시한 부검에서 그의 대장에서 엄청난 양의 대변이 검출되었다고 하며

그의 몸무게가 갑작스럽게 불어난 이유도 만성변비로 인해 그의 대장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지인들에 의하면, 생전에 엘비스 프레슬리는 변을 보지못해서 무척 힘들어했고, 항상 그는 대변이 마려운 상태가 지속되는 엄청난 고통속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특히 도너츠와 파운드 케이크 같은 달콤하고도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군것질을 좋아한 그는 그런 달콤한 음식들을 많이 폭식을 했지만, 식후 대변을 제대로 보지못하는 변비증세로 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대변을 제대로 보지못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몸속에는 계속 변이 축적되면서 그의 몸이 더욱 망가졌고, 그가 화장실에서 변을 보기위해서 너무 과도한 힘을 쓰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사망했다고 하는 설입니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주치의가 변비때문에 고생하는 그를 위해 항문이식수술을 귄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변비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설이 점점 힘을 얻고있는 추세입니다.

 

그렇지만, 사망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몸속에서 많은 양의 변 못지않게 많은양의 약물도 함께 검출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망에는 변비와 약물중독의 두가지가 모두 함께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미국 팝역사상 20년 동안 17곡을 빌보드차트 1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43세의 젊은 나이에 변비와 약물중독이라는 매우 석연치않은 이유로 사망했다고 하니, 그의 죽음이 매우 안타깝고 애절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뭏튼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지,  4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엘비스 프레슬 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등, 그의 생존설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어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망한 지 40년이 넘도록 그의 생존설루머가 퍼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에 끼쳤던 그의 문화적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으며

아직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그를 잊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30여년 동안 세계인들로부터 로큰롤의 황제로 추앙을 받았던 20세기 최고의 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그럼,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버닝 러브를 함께 들어보면서 젊은 리즈시절의 그의 멋진 모습을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Burning Love’ 노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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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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