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의 최고 미녀여배우 정윤희의 나이 최근근황, 남편 조규영회장
정윤희 나이 1954년 6월 4일생 65세, 키 160cm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미녀여배우는 누구일까 하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배우가 한명 있답니다.
바로 70년대를 미모 하나로 주름잡았던 여배우 정윤희가 아닐까 합니다.
여배우 정윤희는 1970, 80년대에 가장 촉망받던 인기여배우로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면서 활발하게 연기활동을 펼쳤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랍니다.
정윤희는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 조각칼로 빚어놓은 듯한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 등 우아하고 선굵은 미모로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던 70년대의 대표적인 한국미인 여배우입니다.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아시아 최고의 미인이라고 엄청난 찬사를 했을 정도로 정윤희의 미모는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은 바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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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특히 정윤희의 미모에 대한 칭송이 대단했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외국여배우로 정윤희를 선정했을 정도였고, 그 덕분에 정윤희는 일본항공 달력의 메인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또한 정윤희는 일본의 도쿄가요제의 시상자로 선정되어서 도쿄가요제의 시상식에 서기도 했는데,
이 당시 일본의 각종매스컴에서는 정윤희를 동양최고의 미녀라고 대서특필했을 정도랍니다.
이 당시 일본의 한언론은 일본의 여배우 100명을 다 합친다고 해도 정윤희 한사람의 미모를 당해낼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답니다.
이 당시 홍콩 최고의 액션스타였던 성룡이 정윤희의 미모에 홀딱 반했고, 그녀를 짝사랑했었다는 비밀스러운 고백을 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성룡이 70년대에 한국에 자주 와서 무술액션영화를 많이 찍었었는데, 그 당시 성룡이 한국에 자주 와서 영화를 찍었던 이유는 성룡이 한국의 정윤희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하며,
성룡은 정윤희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애정도 생겼기 됐다고 합니다.
70년대 후반에 실제로 성룡은 정윤희를 몇 번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고 고백을 한적이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유독 우리연예계에 미녀여배우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세명의 여배우들이 우리 영화계를 주름잡고 있었답니다.
바로 유지인, 장미희, 그리고 정윤희 등 세명의 여배우들이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서 상한가를 치면서, 인기절정을 달리고 있었답니다.
그 외에도 김창숙, 서미경, 한혜숙 같은 미녀여배우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적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70, 80년대에는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신트로이카로 불리우면서, 가장 뜨거운 인기의 절정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랍니다.
정윤희는 1975년도에 ‘욕망’이라는 영화로 우리연예계에 데뷔했는데, 그 후 그녀의 빼어난 미모와 연기력이 인정받으면서,
‘청춘극장’ ‘나는 77번 아가씨’ ‘꽃순이를 아시나요’ ‘죽음보다 깊은 잠’ ‘사랑하는 사람아’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아벤고공수군단’ 등 굵직굵직한 명작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뿐만아니라 정윤희는 드라마에도 출연해 매우 인상깊은 연기를 펼치면서, 시청자들의 큰 환호를 받았는데, 1977년 라이벌인 장미희와 함께 ‘청실홍실’에 출연해서 연기경쟁을 펼치면서, 더욱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당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청실홍실’에 출연한 정윤희는 당시 장미희와 한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연적관계를 형성하면서, 실연을 당한 비련한 여주인공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단번에 톱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답니다.
당시 정윤희와 장미희가 함께 출연한 드라마 ‘청실홍실’은 7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청실홍실’의 70% 시청률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영원한 넘사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윤희는 당시 최고의 미녀들만 뽑힌다는 쥬리아화장품의 광고모델에 발탁되어 그녀의 무공해미모를 과시하기도 했답니다.
당시 그녀의 라이벌인 유지인은 쥬단학화장품광고의 전속모델로 활동했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신트로이카 미녀여배우로 불리웠던 세명의 미녀인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그 당시에 가장 예쁜 여배우로 손꼽히던 시절이었는데
이 세명의 여배우가 거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이들 세명의 미인 중에서도 정윤희가 미모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정윤희를 70,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신트로이카는 60년대의 트로이카 미녀여배우들에 빗대어서 붙인 말인데, 60년대의 트로이카 여배우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이랍니다.
정윤희는 한번도 타내기 힘들다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80년과 81년 두 번씩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미모 못지않게 연기력도 뛰어났습니다.
또한 정윤희는 백상예술대상의 여자 최우수연기상도 두 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70~80년대에는 정윤희의 전성시대로 불리울 정도로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쳤답니다.
이로써 정윤희는 단지 얼굴만 예쁜 여배우라는 꼬리표를 떼고,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명실상부한 진정한 연기자로서 공인받았던 겁니다.
이렇게 정윤희는 은막에서 화려한 스포츠라이터를 받으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84년도에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미녀여배우의 갑작스러운 은퇴는 바로 조규영과의 결혼 때문이었답니다.
이 당시 정윤희는 중앙건설 회장 조규영과의 스캔들이 터져서 큰 화재가 되기도 했답니다.
당시 많은 언론들로부터 당대의 최고의 미녀여배우 정윤희와 중견건설업체의 조규영회장이 부적절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윤희와 조규영회장과의 열애소식은 정윤희를 사랑하는 대중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다주었는데, 조규영은 당시 부인과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이죠.
이 스캔들 때문에 정윤희는 최정상급 여배우라는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고, 이 불륜스캔들 때문에 정윤희는 간통죄로 고소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었고, 방송출연금지 처분까지 받게 되면서, 정윤희의 전성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졍윤희와 조규영 두사람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84년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아뭏튼 정윤희는 70, 8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서의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조규영회장과 결혼에 골인하면서,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하고 맙니다.
정윤희는 비록 조규영과의 스캔들로 인해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남편 조규영과 결혼 후에 30년 넘게 금슬 좋은 부부애를 과시하면서 1남 1녀를 키우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해오고 있답니다.
◆ 정윤희 남편 조규영회장의 파산과 친아들의 죽음
정윤희의 남편 조규영은 그 당시 상당히 잘 나가는 건설회사인 중앙건설의 후계자이자, 최고경영자로 전도유망한 CEO였습니다.
조규영회장이 운영하는 중앙건설은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중견건설회사로 전국 곳곳에 중앙하이츠빌라를 건설하면서, 한 때 크게 번성했던 건설회사입니다.
중앙건설은 ‘중앙하이츠빌라’라는 트랜디한 아파트 건설로 80~90년대에는 크게 번창해나갔고, 결국 사업규모를 크게 확대하면서, 전국 곳곳에 많은 아파트를 건설해나갔습니다.
84년 결혼할 당시의 정윤희와 남편 조규영 사진
그런데 글로벌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너무 과도한 투자와 무리한 사업규모 확장으로 인해 중앙건설은 채산성이 악화되어, 재정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중앙건설은 전국적인 아파트건설 확대로 미분양아파트가 점점 늘어났고, 결국 중앙건설은 커다란 영업손실을 겪게 되었습니다.
중앙건설은 막대한 영업손실로 인해서, 여러 금융기관에 엄청난 빛을 지게 되었고,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채, 결국 2014년도에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고, 법원의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답니다.
중앙건설은 여러 금융기관에 엄청난 부채를 지게 되었고, 급기야 조규영회장과 정윤희가 함께 살고있던 압구정동 아파트(60평)가 국민은행으로부터 경매처분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국민은행은 중앙건설의 부채를 회수하기 위해서, 저당잡혀 있던 조규영회장의 압구정동 아파트를 경매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중앙건설의 국민은행에 대한 부채는 20억이라고 하지만, 다른 금융기관들의 부채까지 모두 합치면, 중앙건설의 공식적인 부채는 52억이나 된다고 하는데, 시가 25억원하는 압구정동 아파트를 처분한다 해도, 많은 부채금액이 남아있게 되는 셈입니다.
또한 조규영회장의 경기도 일산에 있는 480억대의 땅도 하나은행의 부채를 갚지못해서 압류조치되고 경매처분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아니, 한 때 잘나가던 조규영회장과 70년대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명성을 높였던 정윤희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답니다.
그런데 정윤희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정윤희는 조규영과 결혼해서 조규영과 전처사이의 자녀 1남1녀를 슬하에 두고 있었고, 별도로 자신과 조규영 사이에 낳은 친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정윤희가 직접 낳은 그 막내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생활 중,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면서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바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그 정윤희의 막내아들은 정밀부검을 실시한 결과,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정윤희의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자식이 객지에서 약물중독으로 사망함으로써, 정윤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사료된답니다.
이렇게 정윤희는 말년에 친아들의 급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남편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부도라는 이중고를 함께 겪으며, 엄청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정윤희는 이러한 악재를 겪으면서도 매우 의연하게 생활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정윤희의 주변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정윤희는 자신에게 닥쳤던 이런 불행들을 모두 의연하게 극복하였고, 현재 시부모님도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가정에 더욱 충실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성당에도 성실하게 다니는 등 천주교신자로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병원봉사활동 등 천주교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 사이에 정윤희는 ‘얼굴도 마음도 모두 예쁜 자매님’으로 불리우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정윤희는 화장도 거의 하지않은 체로 외출하고,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하며, 누가 보아도 그저 평범한 아줌마 같은 모습이라고 하는데,
한때 대한민국을 휘청거리게 했을 정도로 대단한 톱스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매우 소탈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합니다.
정윤희의 최근모습 사진
정윤희는 1954년생으로 지금 나이가 65세인데, 그녀의 미모는 여전히 아름답다고 하네요.
70, 80년대에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한없이 설레이게 했던 최고미녀 여배우 정윤희가 이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살고있다고 하니,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답니다.
그런데 정윤희가 인기절정의 시기인 70년대 후반에 놀랍게도 두 번이나 음반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77년도에 정윤희는 핫트레코드사에서 제작한 음반에 참여해서 발표한 것으로,
‘왜 내가 슬퍼지나요’와 ‘목마른 소녀’ ‘그대는 모르리’ 등 3곡이 수록되어 있답니다.
이곡들 모두 정윤희가 직접 불렀다고 하는데, 정윤희가 가창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자만, 당시 최고의 미녀여배우로서 상한가를 치고 있던 정윤희가 직접 부른 노래라고 하니, 매우 신선한 느낌이 든답니다.
정윤희의 노래 ‘목마른 소녀’는 정윤희의 매우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곡인데,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하겠어요!
정윤희의 ‘목마른 소녀’ 노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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