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와 여성편력, 부인 손드라 로크와의 사랑과 이별, 서부영화

 

- 클린트 이스트우드 프로필 -

 

생년월일 - 1930년 5월 31일 (나이 92세)

고향 -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키 - 193cm

배우자 - 디나 이스트우드 (1996년–2014년), 매기 존슨 (1953년–1984년)

자녀 - 스콧 이스트우드, 프랜체스카 이스트우드, 앨리슨 이스트우드

수상 - 아카데미 작품상, 아카데미 감독상, 골든 글로브 감독상

데뷔 - 1955년 영화 ‘해저괴물의 복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뛰어난 연기력과 개성 강한 카르스마를 발휘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허리우드 영화계의 전설적인 명배우이다.

 

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이탈리아식 서부영화에 출연해서,

개성 강한 연기력과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 ‘오락서부극’의 히어로로 우뚝 솟아올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60년대 중반 출연했던 서부영화는 정통서부극과는 달리 멋지고 통쾌한 스릴만점의 총싸움과 생동감과 전율감 넘치는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줌으로써,

짜릿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주면서 전세계의 관객들에게 엄청난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마카로니 웨스턴’ 서부영화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60년대 중반 출연해 열연을 펼친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등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액션스타로 우뚝 솟아올랐다.

 

이 세편의 서부영화들이 크게 히트하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주가가 급상승했고,

그 후 그는 허리우드에 진출해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 ‘대도적’ ‘파이어 폭스’ ‘더티 해리’ 같은 형사스릴러 영화에 출연,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허리우드 특급스타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마초같은 멋지고 핸섬한 마스크에 뛰어난 연기력까지 겸비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개성 짙은 카리스마까지 지니고 있어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는 히트제조기 같은 존재감이 부상했다.

 

60~80년대도 한창 인기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는데,

‘어둠속의 벨이 울릴 때’ ‘황야의 스트렌저’ ‘무법자 조지 웰즈’ ‘파이어 폭스’ ‘용서받지 못한자’ ‘매드슨 카운티의 다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메리칸 스나이퍼’ 같은 걸작품들은 그가 주인공과 감독을 모두 맡은 1인 2역의 영화들로서, 모두 크게 히트했던 손꼽히는 걸작품들이다.

 

이처럼 미국영화 역사상 커다란 한 획을 그으면서 영화배우로서 영화감독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맹활약을 펼쳤던 전설적인 서부영화의 히어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는데,

그는 겉으로 보여지는 젊잖은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수많은 여배우들과 화려한 스캔들을 뿌렸던 소문난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허리우드영화계에서 무려 20명이 넘는 여배우들과 화려한 스캔들을 뿌렸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손드라 로크와의 10년 넘게 연인관계를 이어오면서 발생한 애증이야기가 ‘서프라이즈’에 소개되면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손드라 로크의 사랑과 전쟁, 낯 뜨거운 애증관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손드라 로크는 함께 여러편의 영화에 같이 출연하면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뜨거운 관계였다.

 

두사람이 영화에서 만나 연인관계가 되었던 70년대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손드라 로크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는데,

영화촬영을 함께 했던 두사람은 서로 눈이 맞아 자연스럽게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급기야 두사람은 서로 동거까지 하면서 떨어질 수 없는 뜨거운 사이가 되었다.

 

두사람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무법자 조지 웨일즈’ ‘건틀릿’ ‘서든 임팩트’ ‘더티 해리’ 등 6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두사람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급기야 두사람은 각자 자신의 배우자와 이혼하면서 두사람은 함께 본격적인 동거생활에 돌입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원래 1953년도에 매기 존슨과 결혼해서 80년대 중반까지 30여년간 함께 살아왔는데,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손드라 로크와 정분이 나는 바람에, 84년도에 조강지처 매기 존슨과 이혼하고 말았다.

 

이 당시 손드라 로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기가 상당히 높아졌고, 그런 그녀에게 여러 영화사에서 영화출연 제안이 쇄도했다.

 

당연히 여배우로서 톱스타가 되기를 원했던 손드라 로크는 캐스팅제의가 온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했지만, 그녀가 출연제의를 받을 때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번번히 그녀가 영화출연을 못하도록 막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드라 로크가 영화에 출연해 자신처럼 또다른 남자와 염문을 뿌릴까봐 두려웠던 것이고, 그는 손드라 로크가 오직 자신이 만든 영화에만 출연하길 바랬던 것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녀에게 ‘나의 영원한 연인이 되어달라’고 말하면서, 그녀가 다른 영화출연을 못하도록 맹렬하게 막았다.

 

이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보호막과 그늘에 가려져서 숱한 영화출연 제안을 거절하면서 그의 내연녀로만 살았던 손드라 로크는 점점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결국 그녀는 영화계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깜찍한 미모와 안정감 있는 연기력으로 톱스타로 올라설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다 갖춘 손드라 로크였지만,

그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과잉보호와 방해공작으로 인해 영화출연이 봉쇄당하면서, 마침내 영화계에서 잊혀진 존재로 전락했다.

 

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배우와 영화감독을 겸업하면서 1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 큰 흥행성공을 거뒀고,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쓸면서 승승장구했다.

 

이렇게 두사람이 함께 동거하는 동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톱스타로 큰 성공을 이어갔지만, 손드라 로크는 여배우로서는 오히려 쇠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또한 두사람이 동거하는 동안 손드라 로크는 두번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이상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녀가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게 막았고, 그녀가 임신한 아이들을 모두 낙태시켰다.

 

즉, 손드라 로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강요에 의해서 여배우의 활동을 포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두 번씩이나 임신한 아이를 낙태시켜야 했는데, 이것은 사실상 그녀가 여자로서의 삶을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드라 로크가 또다시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불임수술까지 강요했고, 그로서 그녀는 영원히 임신할 수 없는 여인이 되고말았다.

 

1986년 손드라 로크는 처음으로 영화감독을 맡으면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랫보이’가 큰 화제가 되면서 그녀는 영화감독으로서 첫출발하게 되었고,

그 후 그녀는 영화 ‘임펄스’의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헐리우드영화계에 감독으로 인정받으며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손드라 로크가 헐리우드 감독으로서 인정받으며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자,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돌연 그녀와의 관계를 끊고 결별을 선언했다.

 

그녀가 허리우드에서 감독으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것에 반대해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녀가 감독으로 진출해 큰 주목을 끌자, 클린트는 손드라 로크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손드라 로크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녀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그녀를 집에서 쫒아버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아이를 두 번씩이나 낙태까지 하면서 14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손드라 로크를 일방적으로 쫒아냈고, 그 후에 그는 또다른 여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염문을 뿌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14년간 동거를 하면서, 불임수술까지 받으면서 그에게 헌신했던 손드라 로크가 그로부터 헌신짝처럼 버림받게 되자, 그녀는 완전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고, 정신적인 큰 충격을 받아 유방암에 걸리는 등 인생 자체가 망가져버렸다.

 

이처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클린트로부터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손드라 로크는 클린트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그녀는 클린트를 상대로 계약 위반, 정서적 고통, 도난물품 소지 등의 혐의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일년 반 동안 이어진 소송에서 손드라 로크가 승소하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20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위자료를 그녀에게 지급할 것을 선고받았다. 거기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녀에게 매달 생활비까지 별도로 지급해야 했다.

 

그런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드라 로크와의 소송을 통해서 여러명의 허리우드 여배우들과 여러차례 뜨거운 염문을 뿌린 사실들이 모두 드러났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 세버그, 알리 맥그로우 등 수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던 스캔들 제조기임이 드러났고, 더욱이 손드라 로크와 함께 살았던 80년대 중반에는 제슬린 리브스와의 사이에서 몰래 두아이를 낳기까지 했다.

 

클린트는 손드라 로크를 영화에도 출연못하게 집안에 가둬두면서, 자신은 그녀 몰래 수많은 여성들과 성적 쾌락을 즐기면서 손드라 로크를 톡톡히 배신했다.

 

이같이 클린트의 혼외 스캔들이 들통이 나면서, 그동안 정의의 기사 같은 젊잖은 이미지를 갖고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미지와 도덕성을 땅에 떨어졌고, 많은 대중들이 그의 이기적인 행동에 크게 실망하게 됐다.

 

그 후 손드라 로크는 다시 영화감독으로 허리우드에 진출해서 감독활동을 벌였나갔지만, 유방암이 재발하면서 몸이 쇠약해진 그녀는 큰 활동을 벌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감독으로 몇편의 영화연출을 맡았지만, 큰 주목을 받지못했던 손드라 로크는 2018년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던 중 74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반면,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드라 로크와 헤어지고난 후, ‘용서받지 못한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여러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거나, 감독을 맡아 활동하면서, 영화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 손드라 로크와 이별 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다른 결혼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혼한 후에 영국 여배우 프랜시스 피셔와 만나 동거를 했고, 또한 클린트는 1996년 뉴스 기자 디나 루이스와 눈이 맞아 또다시 결혼했는데, 당시 그녀는 클린트보다 35세나 어린 젊은 여성이었다.

 

이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부인 디나 루이스는 결혼한 후 18년 동안이나 해로하면서 딸까지 낳아 잘 살아왔는데, 2013년도에 돌연 두사람은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만다.

 

그런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여성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나이 91세가 되던 2014년도 자신보다 나이가 33세나 어린 58세의 크리스티나 산데라와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하는 등 엄청난 노익장을 과시했다.

 

크리스티나 산데라는 랜치호텔 레스토랑의 여직원으로 근무하는 미모의 젊은 금발여성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소유인 랜치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클린트와 눈이 맞아 33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젊고 예쁜 여성들과 쉽게 연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무리 과거의 명배우, 명감독이었다고 하더라도 90세가 넘은 나이에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미인과 결혼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무래도 돈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부인 크리스티나 산데라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돈과 재산가치는 무려 4,600억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는 왠만한 재벌 이상의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런 엄청난 재산 때문에,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않은 90이 넘은 그에게 젊은 미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젊잖고 준수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수많은 여성들과 숱한 스캔들을 뿌렸던 당대의 유명한 난봉꾼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주로 자신과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상대 여배우들과 많은 염문을 뿌렸는데, 카트린느 드뇌브, 진 세버그, 손드라 로크, 조 앤 해리스, 프랜시스 피셔, 알리 맥그로우 등 20명이 넘는 여배우들과 뜨거운 스캔들을 뿌렸던 전형적인 바람둥이였다.

 

그렇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황야의 무법자’ ‘더티 해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용서받지 못한자’ ‘앱솔루트 파워’ 같은 걸작품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세기적인 스타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만을 하늘같이 섬겼던 손드라 로크를 헌신짝처럼 버렸던 행위는 분명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가 일생동안 이룩해놓은 영화인으로서의 훌륭한 업적은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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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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