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인 미남배우 아랑 드롱(알랭 들롱)의 결혼과 부인, 안락사, ‘태양은 가득히의 줄거리 내용

 

알랭 들롱 - 1935년 11월 8일생, 나이 88세

 

프랑스의 미남배우 알랭 들롱의 최근 근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60~70년대에 세계 최고의 미남배우로 불리우던 알랭 들롱이 최근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인데요.

 

세계적인 미남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알랭 들롱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니, 정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답니다.

 

3월 19일자로 전해진 프랑스신문에 따르면, 프랑스의 미남배우 알랭 들롱은 자신의 건강이 더욱 악화된다면, 자신을 안락사시켜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알랭 들롱은 현재 나이가 88세로 고령이며, 몇 년 전 뇌졸중이 악화되어서 수술까지 받은 적이 있지요.

 

이제 나이 8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건강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알랭 들롱은 자신의 큰아들 안토니 들롱에게 ‘장차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프랑스매체 르포앵은 아랑 드롱의 아들 안토니 들롱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안토니 들롱은 ‘들롱이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그렇게 해야할 상황이 되면, 안락사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또한 안토니 들롱은 자신이 아버지 알랭 들롱의 임종을 자신이 곁에서 지키기로 약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알랭 들롱 스스로도 몇 년 전에 ‘그렇게 해야할 상황이 닥치면 주저하지 않고 안락사를 택할 것’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습니다.

 

알랭 들롱은 현재 프랑스가 아닌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는데, 스위스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알랭 들롱은 법적으로 '안락사'에  문제가 없는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랭 들롱은 2019년도에 뇌졸중으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는데, 회복되고 난 후, 그 때부터 알랭 들롱은 스위스에 쭉 거주해왔습니다.

 

항상 수식어에 ‘세기적인 미남배우’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로 전세계의 많은 팬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프랑스의 명배우 알랭 들롱이 이제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답니다.

 

알랭 들롱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남배우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이지요.

 

그는 카트리느 드뉘브, 장폴 베르몽드 등의 프랑스명배우들과 함께 프랑스영화의 전성기였던 60,70,80년대에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이면서,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했던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남배우입니다.

 

특히 알랭 들롱은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7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개봉관에서 ‘빅건’ ‘암흑가의 두사람’ ‘볼사리노2’ ‘시실리안’ ‘래드선’ 등의 알랭 드롱의 액션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연속적으로 히트했고,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한국팬들이 생겨났답니다.

 

알랭 들롱은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스타일의 미남배우가 아니라, 좀 천박하고 퇴폐적이며 반항아 스타일의 미남배우라는 특징을 갖고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퇴폐적이고 반항아적인 이미지 때문에, 알랭 들롱은 ‘태양은 가득히’ ‘암흑가의 두사람’ ‘시실리안’ ‘스콜피온’ 같은 범죄형사물에 단골로 출연해서 카리스마 있고 개성짙은 연기를 선보이면서, 범죄영화의 히로인으로 큰 인기를 끌었나갔답니다.

 

◆ 알랭 들롱의 결혼과 부인들, 스캔들

 

알랭 들롱은 총 네 번의 결혼(동거 포함)을 했고, 네 번 모두 이혼(결별)을 했답니다.

알랭 들롱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함께 살았던 여인은 총 4명으로 로미 슈나이더, 나틸리 들롱, 미레유 다르크, 로잘린 반 브레멘 등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들이지요.

 

알랭 들롱의 첫사랑은 독일여배우였던 로미 슈나이더입니다.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는 1958년 영화 ‘사랑은 오직 한 길’에 함께 출연하면서 서로 사랑에 빠졌고, 두사람은 곧바로 약혼까지 하면서, 이후 5년 동안 뜨거운 사랑을 이어나갑니다.

 

그런데, 알랭 들롱이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는 바람에 두사람 사이에 금이 갔고, 두사람은  사귄지 5년만인 1963년도에 헤어졌고, 서로 남남이 되고맙니다.

 

그렇지만, 알랭 들롱은 로미 슈나이더와 결별하고난 후에도, 그녀와 여러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등 그녀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지속해나갔으며, 로미 슈나이더가 사망하기 전까지 그녀와 친한 친구관계로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알랭 들롱은 로미 슈나이더야말로 자신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해준 자신의 ‘진정한 첫사랑’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녀에 대한 뜨겁고도 끈끈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답니다.

 

알랭 들롱의 두 번째 여인은 바로 프랑스 여배우 나탈리 들롱입니다. 나탈리 들롱은 알랭 들롱이 법적으로 유일하게 결혼을 했던 그의 공식적인 부인이지요.

 

알랭 들롱과 나탈리 들롱은 1964년부터 1969년도까지 5년동안 결혼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69년도에 두사람은 나탈리 들롱의 경호원사건 때문에 갈등이 생겨서 이혼하고 맙니다.

 

알랭 들롱의 두 번째여인 나탈리 들롱은 프랑스에서 여배우이자, 모델이면서 영화감독까지 지냈던 유명인이지요. 나탈리 들롱은 한 때 프랑스의 섹스심볼이라고 불리워졌을 만큼 관능미와 섹시미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이지요.

 

나탈리 들롱은 1962년 알랭 드롱과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되었고, 결국 두사람은 1964년도에 결혼을 하게됩니다.

두사람 사이에 아들 안소니 들롱이 태어났는데, 5년간 이어진 결혼생활 끝에 두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 결국 이혼하고맙니다.

 

두사람이 이혼하게된 이유는 나탈리 들롱의 경호원 마르코비치 사건 때문이랍니다.

 

나탈리 들롱의 경호원 마르코비치는 두사람이 결혼한 후에도, 두사람의 신혼집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었으며,

그는 자신이 경호원임을 내세워서 알랭 들롱과 나탈리 들롱의 침실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두사람의 결혼생활을 방해했고, 두사람 사이에 금이 가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랍니다.

 

알랭 들롱과 나탈리 들롱이 은밀히 연애하는 사적인 공간까지 수시로 침범하는 경호원 마르코비치 때문에, 화가난 알랭 들롱이 그가 더이상 드나들지 못하게 막자, 그가 알랭 들롱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합니다.

또한 마르코비치는 나탈리 들롱이 속옷을 입은 사진까지 알랭 들롱에게 보내는 등 알랭 들롱에게 심한 도발을 서슴치않고 해댔습니다.

 

알랭 들롱과 나탈리 들롱은 나탈리의 경호원 마르코비치 때문에, 결혼생활에 큰 갈등이 생겨서 두사람 관계가 나빠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경호원을 두둔하는 나탈리와 알랭 들롱은 더욱 사이가 악화되면서 두사람은 결국 이혼하게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나탈리 들롱의 경호원 마르코비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와 사이가 나빴던 알랭 들롱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형사재판까지 받게되었지요.

 

알랭 들롱은 자신이 마르코비치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강력히 항변했고, 알랭 들롱은 무려 7년간의 재판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된답니다. 한 때, 권력층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의 도움을 받은 알랭 들롱이 처벌을 면죄받았다는 루머도 나돌았답니다.

 

알랭 들롱의 세 번째 여인은 발랄하고 관능적인 미모를 과시했던 프랑스의 모델이자 영화배우인 미레유 다르크입니다.

알랭 들롱과 미레유 다르크는 볼사리노에 함께 출연하면서 연인관계가 되었고, 이 후 두사람은 15년 동안 함께 동거하면서 연인관계를 유지했는데, 1982년도에 두사람은 결별하고 맙니다.

 

두사람의 결별이유는 미레유 다르크의 지병 때문에 아이를 갖지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합니다.

알랭 들롱은 미레유 다르크와 결별한 이후에도 두사람은 좋은 친구관계를 오래동안 유지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미레유 다르크가 2017년도에 뇌출혈로 사망하자, 알랭 들롱은 엄청나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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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의 네 번째 여인은 네덜란드의 모델이자 미스 네덜란드 출신 로잘리 판브레멘입니다.

알랭 들롱과 로잘리 판브레멘은 31살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사람은 1987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함께 동거를 해왔답니다.

 

두사람 사이에 딸 아누슈카 들롱과 아들 알랭 파비앙 들롱이 태어났으며, 아들 알랭 파비앙 들롱은 지금도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영화수는 총 85편이며, 그 중 82편이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지요.

 

알랭 들롱의 히트작품은 여러편이 있지만, 그의 대표작품은 뭐니뭐니해도 ‘태양은 가득히’가 아닐까 합니다.

 

 

◆ 알랭 들롱의 최고의 히트작품 ‘태양은 가득히’의 줄거리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무명의 배우였던 알랭 들롱을 프랑스 최고배우로 스타덤에 올려놓았

던 그의 출세작이며, 유럽을 넘어 전세계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쳤던 기념비적인 영화이지요.

 

알랭 들롱의 대표작 ‘태양은 가득히’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어서 한국 젊은이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유명한 영화입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은 주인공 ‘톰 리플리’역을 맡아서 근육질의 몸매와 매혹적인 눈빛으로 전세계인들을 사로잡으면서 세계적인 미남배우라는 칭송을 받았고, 동시에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치게됩니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돈많은 친한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의 재산과 그의 애인을 가로채는 비열하고 냉정한 냉혈한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개성있게 연기해내면서 알랭 들롱의 냉정한 연기력과 냉혹함을 선보이면서, 전세계의 관객들에게 엄청난 전율을 안겨주었고, 알랭 들롱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해 이 영화는 세계적인 불후의 걸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알랭 들롱은 귀족적이고 낭만적인 미남배우가 아니라, 퇴폐적이고 반항아적인 미남배우로서의 자신의 독보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답니다.

 

그럼, 이제부터 알랭 들롱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그의 히트작품 ‘태양은 가득히’의 줄거리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 영화 ‘태양은 가득히’ 줄거리 -

 

평소 야심만만한 성격에 일확천금으로 부자가 될 것을 꿈꾸고 있는 청년 톰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인 필립과 친한 친구사이인데요,

 

어느날 톰 리플리는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필립을 집으로 데리고오면, 50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필립을 만나러갑니다.

당시 필립은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서 로마에 가 있었고, 돈많은 필립은 미모의 애인 마르쥬와 함께 술과 유흥을 즐기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있었지요.

 

세사람이 함께 만나서 필립의 호화스러운 요트를 타고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요.

 

필립의 요트를 타고 함께 여행을 가는 과정에서, 필립은 친구 톰 리플리를 온갖 심부름을 시키면서 하인처럼 대접하였고, 톰 리플리는 자신을 하인대접하며 무시하는 필립에 대해 마음속으로 엄청난 분노감과 굴욕감을 느끼게된답니다.

 

그런데, 필립과 함께 탄 요트에는 필립의 애인 마르쥬가 있었는데, 필립이 톰 리플리를 머슴처럼 부려먹고 막대하자, 그걸 말리는 마르쥬!

톰 리플리는 자신을 편드는 필립의 미모의 애인 마르쥬를 속으로 은근히 짝사랑하게 됩니다.

 

필립의 장난으로 톰 리플리는 작은 구명보트로 떠밀려났고, 톰이 탄 구명보트에 연결된 요트의 로프가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바다 한가운데에서 오랫동안 표류하게된 톰 리플리는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게됩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필립이 다시 구명보트에 고립된 톰 리플리를 구조해내지만, 톰 리플리는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게되고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품게됩니다.

 

톰 리플리는 필립과 애인 마르쥬의 사이를 이간질해서 마르쥬가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이제 요트에는 톰 리플리와 필립 단 둘만이 남게됩니다.

 

이때부터 톰 리플리는 그동안 마음속으로 품어왔던 복수를 실행에 옮기게됩니다.

톰 리플리는 필립과 카드놀이를 하던 중에, 품속에 감춰뒀던 칼을 거내서 필립을 찔러 살해하였고, 그의 시체를 마포자루에 넣고 밧줄로 꽁꽁 묶어서 바다속으로 집어던집니다.

 

그 후 배에서 내린 톰 리플리는 필립의 신분증과 서명을 교묘하게 위장해서 수표를 발행해서 필립의 돈을 탈취해서 마구 소비해버립니다.

 

이 당시 톰 리플리는 필립의 이름으로 빌린 호텔방에 숙박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찾아온 필립의 친구 프레디에게 톰이 필립을 사칭한 사실이 들통나버리자, 필립의 친구 프레디마저 살해해서 폐가에 있는 우물속에 던져버립니다.

 

더욱이 톰 리플리는 필립이 친구 프레디를 죽인 후 달아났다는 거짓루머를 필립의 가족과 인구들, 애인 등 주변에 퍼뜨립니다.

그리고 톰 리플리는 필립의 은행계좌에 있는 많은돈을 찾아서 갈취한 다음, 필립이 자신의 전재산을 모두 마르쥬에게 양도한다는 가짜 유서를 쓰고 자살한 것으로 위장해버립니다.

 

이러한 톰 리플리의 기만공작에 필립의 가족, 친구들, 경찰들까지 모두 감쪽같이 속았고, 이사건은 톰 리플리의 의도대로 필립이 살인을 저지른 후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뜻대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은 후, 톰 리플리는 필립의 애인 마르쥬를 찾아가 그녀를 위로하면서 두사람은 정이 들고, 두사람은 연인관계가 됩니다.

 

이렇게 톰 리플리는 자신이 치밀히 세운 계획대로 일이 척척 진행되면서, 필립의 전재산을 모두 상속받게 된 마르쥬와 연인이 되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이 사건을 모두 마무리지은 톰 리플리는 마지막작업으로 살인의 마지막흔적인 요트를 한 보트회사를 통해 매각을 대행시켰는데요.

 

톰 리플리가 내놓은 그 보트를 사기위해 찾아온 고객에게 그 보트의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보트를 육지로 인양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요.

 

놀랍게도,육지로 끌어올려진 그 요트의 밑바닥 스크루에서는 필립의 시체를 싸멘 마포자루가 걸려있는 것이 발견되었답니다. 그 마포자루를 열어본 고객과 보트회사 관계자들을 그 안을 본 후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요.

 

놀랍게도 그 마포안에는 부패한 필립의 시체가 들어있었답니다.

 

톰 리플리가 필립을 죽인 후, 그 시신을 마포에 넣고 그 마포를 밧줄로 꽁꽁 묶어서 바다속으로 집어던졌는데요.

바다속으로 던져진 그 마포자루에 달린 밧줄이 그만 톰 리플리가 타고있던 요트의 스크루에 걸렸고, 그리고 그 시신을 담은 마포자루는 배에 연결된 체 계속 따라다녔던 겁니다.

 

이렇게 해서 완전범죄를 꿈꾸었던 톰 리플리의 살인사건은 경찰에 의해 포착되었고, 결국 톰 리플리는 그를 추적해온 경찰에 체포되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자신의 꿈은 높지만 그 꿈을 실현시킬 능력도 없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거짓말을 남발하다가 자신마저도 그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게되는 망상장애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이 ‘리플리 증후군’은 바로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주변사람들에게 거짓말을 남발해 자신마저도 그 거짓말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면서 파렴치한 범죄를 서슴치않은 주인공 ‘톰 리플리’의 이름에서 따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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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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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드의 육체파 미녀여배우 소피아 로렌의 영화 해바라기줄거리, 남편, 사진

 

 소피아 로렌 - 1934920일생 나이 87

 

이탈리아가 낳은 가장 매혹적인 여배우를 한명 꼽으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여배우가 바로 소피아 로렌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력적인 미녀여배우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실바노 망가노, 로산나 포데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 모니카 벨루치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 여배우들이 이탈리아출신의 미녀여배우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출신으로서 허리우드영화사에 스카웃되어서 가장 큰 인기를 끌면서 가장 큰 활약상을 보여준 미녀여배우는 단연 소피아 로렌이라고 할 수 있다.

 

도도할 정도로 오똑 솟은 콧날과 터질듯한 풍만한 육체를 지닌 넘사벽수준의 매혹적인 글래머 여배우가 바로 소피아 로렌이며

이탈리아가 낳은 20세기의 가장 풍만하고 아름다운 글래머여배우로 손꼽히는 여배우는 소피아 로렌이다.

 

소피아 로렌은 20세기형 아름다움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뇌쇄적이면서 글래머스한 매력을 지녔던 육체파 미녀여배우이다

나중에 나온 글래머여배우 모니카 벨루치와 육체적으로 섹시한 매력을 풍기는 등 비슷한 매력을 풍기면서 서로간 닮은꼴의 여배우라는 평도 받고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소피아 로렌은 여러 가지 다양한 팔색조 매력을 지닌 여배우로서, 단순히 섹시글래머스한 매력을 어필하는 모니카 벨루치보다 훨씬 더 고품격스럽고, 훨씬 더 많은 스펙을 자랑하는 여배우다.

 

때로는 터질듯한 풍만한 육체적인 매력을 지닌 섹시한 여배우로서 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수에 찬 고뇌하는 지성미를 간직한 여배우로서의 매력을 동시에 풍기는 등 한마디로 말해 팔색조같은 다중적인 매력을 지녔던 여배우가 바로 소피아 로렌이다.

 

소피아 로렌보다 20살이나 어리고 후배인 모니카 벨루치가 171cm의 큰 키로 볼륨감 높은 몸매를 과시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반해

소피아 로렌은 모니카 벨루치보다 3cm나 더 큰 174cm의 엄청나게 큰 키와 조각같은 볼륨 몸매, 완벽하게 균형잡힌 조각몸매를 트레이드마크로 해서 1950년대부터 이탈리아와 미국 허리우드 영화가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보여주면서 단번에 세계적인 톱스타로 우뚝 솟아오른 기념비적인 여배우다.

 

소피아 로렌은 57년도에 영화 해녀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육감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하면서 섹시의 심벌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한 때 유럽의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육체파 여배우다.

 

 

영화 해녀에서 터질듯한 풍만한 가슴과 불륨 몸매를 과시하면서, 대표적인 이탈리아 미녀여배우로 각인됨과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소피아 로렌은 

그 후, 허리우드에 본격 진출해 엘시드’ ‘로마제국의 멸망’ ‘아라베스크’ ‘카산드라 크로싱등의 허리우드 걸작품에 출연해서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겸비한 불세출의 여배우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특히 소피아 로렌은 60년도에 이탈리아 영화 두여인에 출연해서 뛰어난 내면의 연기를 선보이면서

유럽 여배우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세계적인 톱스타로 올라가는 발판을 마련했고, 이 때부터 그녀의 허리우드영화 진출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해녀사랑의 변주곡’ ‘돈키호테등에서 터질듯한 풍만한 몸매 과시로 육체파 여배우로서의 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기도 했지만,

소피아 로렌의 진정한 매력은 그녀의 육감적인 매력에서만 찾는 것은 넌센스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소피아 로렌은 영화 엘시드로마제국의 멸망’ ‘해바라기등의 걸작품에서 보여주듯 감각적인 내면의 연기를 더욱 잘 표현하는 등 육감적인 연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내면의 연기에 더 뛰어난 감각을 지닌 내면연기의 달인이라고 평가하는 편이 소피아 로렌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평가라고 생각된다.

  

 

소피아 로렌은 그녀 자신의 최고의 걸작품인 엘시드해바라기’,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보여준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과 영혼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각적인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마력과 영혼적인 울림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소피아 로렌의 매력과 가치를 외형적인 육체에서 찾을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녀의 영혼의 무게가 실린 연기력에서 찾아야만 그녀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영화들은 무수히 많지만, 특히 소피아 로렌이 출연해서 그녀의 매력과 연기력이 큰 빛을 발휘했던 영화를 꼽는다면, ‘엘시드’ ‘로마제국의 멸망’ ‘해바라기등의 세편의 영화를 꼽을 수 있다.

 

소피아 로렌이 1961년도에 출연한 엘시드는 그녀 특유의 내면적인 영혼연기가 특히 돗보이는 영화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아버지가 명예를 두고 검투를 벌이다가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사랑하는 연인에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 변질된 애인 로드리고에 대해 엄청난 복수심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백작의 딸 히메나의 고뇌하는 내면적인 연기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내어 영화 엘시드의 품질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주인공이 바로 소피아 로렌이다.

 

다른 여배우가 똑같은 배역을 맡아 연기했더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소피아 로렌만의 우수와 고뇌에 찬 명품 내면연기가 큰 빛을 발휘함으로써, 영화 엘시드는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두는 60년대 최고의 걸작품이 될 수 있었다.

 

 

소피아 로렌과 찰톤 헤스톤이 주연으로 출연해 명품연기를 선보였던 영화 엘시드1961년도 당시 무려 3,000만불의 엄청난 흥행수익을 거두었던 그녀의 출세작으로 유명한 영화다.

 

또한 소피아 로렌의 또다른 대표작품으로 유명한 영화가 바로 해바라기이다.

  

 

또한 영화 해바리기에서 사랑하는 남편이 전쟁에 출전한 후 행방불명되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게 되어버리자, 아내로서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남편을 이역만리 먼 길을 마다않고 홀홀단신 러시아까지 수소문해가면서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찾아냈지만

이미 수십년 만에 만난 꿈에 그리웠던 남편 곁에는 현지에서 결혼한 새로운 아내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설움과 한스러움에 애절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영혼이 서린 내면연기가 큰 빛을 바란다.

 

결국 이미 새아내를 맞이한 남편을 남겨두고 홀로이 돌아오는 지오반나의 고뇌와 우수에 젖은 내면연기는 소피아 로렌아 아니면, 

그렇게 리얼하고 섬세한 표현연기는 창조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될 만큼 소피아 로렌의 내면연기는 뛰어나다.

  

그만큼 소피아 로렌은 50년대 초반 때 풍만한 육체적인 매력을 발산하면서 유럽의 육체파배우의 심볼이라고 평가받기도 했지만

60년대 이후 엘시드’ ‘로마제국의 멸망’ ‘해바라기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드높였던 명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는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오는 고뇌하는 내면연기가 더욱 큰 빛을 발휘했고, 세기적인 걸작품을 만들어놓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피아 로렌은 1960년대 이후부터는 풍만한 육감적인 매력의 소유자에서 감각적인 내면연기자로서

그리고 고뇌하는 지성미를 지닌 연기파 여배우로 진화한 한 그녀의 이미지가 관객들의 가슴에 더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소피아 로렌의 결혼과 남편

  

소피아 로렌은 평생을 오직 한 남자와의 사랑과 결혼생활을 한 모범적인 여배우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이자 허리우드의 인기여배우로서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를 풍미한 여배우지만, 그녀는 오직 남편 한사람과의 사랑에만 충실했고, 결코 단한번도 한 눈 팔지않은 지조가 강한 여성으로 유명하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은 영화제작자인 카를로 폰티로 그녀와는 21살의 나이차이가 난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 카를로 폰티는 이탈리아태생으로서 38년부터 영화제작을 시작해서 50년 동안 닥터 지바고’ ‘등 세계적인 명작품 150편을 제작했던 이탈리아출신의 세계적인 영화제작자이다.

  

소피아 로렌이 50년도에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를 만나서, 영화계에 진출하면서 그의 영화에 출현하면서 영화배우로서 입지를 굳혔고그녀는 남편 카를로 폰티의 많은 조력을 받으면서 여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소피아 로렌이 남편 카를로 폰티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미 남편 카를로 폰티는 유부남인 상태였고, 두사람의 사랑이 어찌나 뜨거웠던지두사람은 1957년도에 사실상 둘만의 혼인식을 치뤘지만

중혼을 인정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법적 제한에 걸려서 법적 소송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두사람의 결혼을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남편 카를로 폰티가 정식 이혼하고 난 후, 두사람이 결혼할 때까지인 1966년도까지 소피아 로렌은 9년을 기다린 끝에야, 카를로 폰티와 정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피아 로렌은 남편 카를로 폰티가 폐합병증으로 사망하는 2007년도까지 41년 동안의 긴 결혼생활 동안 허리우드의 수많은 미남배우들로부터 수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그녀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단 한명의 남편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킨 절개 높은 여배우로 유명하다.

 

육체파 여배우로서 워낙 육감적인 매력이 뛰어났던 소피아 로렌의 글래머스한 매력에 매료되었던 케리 그란트 등 수많은 허리우드 남성배우들이 그녀에게 수도없이 많은 추파를 던졌지만

그녀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그녀의 유일한 남편인 카를로 폰티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평생을 한 남자에 올인해 끝까지 정조를 지켰던 지극히 모범적인 아내이자, 지조높은 여배우로 유명하며,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소피아 로렌의 영화 해바라기줄거리

 

순수한 사랑으로 만나 결혼한 신혼부부 지오반나(소피아 로렌)와 안토니오(마스트로얀니)는 신혼의 단꿈도 깨기 전에 전쟁이 발생하여 남편 안토니오를 전장으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아내 지오반나가 가장 기다리는 소식은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남편 안토니오의 귀환 소식이랍니다.

 

아내 지오반나는 남편이 전장터에서 보내왔던 편지들을 바라보며 남편이 전쟁의 참화속에서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사진을 들고 이역만리 먼 러시아로 남편을 찾아 떠납니다.

 

오직 남편이 살아있을 거라는 확신 하나로 여러지역을 전전하면서 남편을 찾아헤메이는 아내 지오반나는 수소문 끝에 남편이 살고 있는 지역을 알아냅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남편이 살고있다는 시골가의 한 작은 집에는 젊고 예쁜 러시아여인이 빨래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앙증맞게 재롱을 부리는 예쁜 딸까지 있었지요.

 

이 젊고 예쁜 여인과 어린 딸이 자기가 평생을 찾아왔던 남편의 처자식임을 지오반나는 직감적으로 알게 됩니다.

 

 

오래전 어느날 우크라이나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다 죽어가는 한 이탈리아남성을 극진히 간호해 구해주었던 생명의 은인인 러시아여인과 지오반나의 남편은 그러한 사연이 인연이 되어 오래전에 결혼했던 것이며 딸까지 낳았던 것입니다.

 

남편의 새로운 아내가 된 젊은 여인에게서 지난 과거의 일들을 들으며 고뇌하는 지오반나! 꿈속에서도 그리워했던, 꿈속에서도 찾아헤메이었던 남편이지만 이시점에서 자신이 포기하는 것만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가련한 비운의 여인이 되어버린 지오반나의 모습을 

소피아 로렌의 감각적인 표정연기를 통해서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소피아 로렌의 그러한 표정의 순간적인 변화 모습들이 관객들에게 엄청난 슬픔과 감동을 가져다 주었던 감동어린 영화랍니다.

 

남편이 귀가하는 시간에 남편을 마중나가는 젊은 부인을 따라 전남편 안토니오를 보기위해 기차역으로 나가는 지오반나! 기차가 곧 모습을 보이고 행색이 초라한 한 남성이 지치고 초라한 모습으로 플랫폼으로 내려옵니다

그 남성이 바로 지오반나가 수년간을 찾아헤멨던 전남편 안토니오랍니다.

 

남편 안토니오를 그토록 갈망했지만 정작 남편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태연하게 돌아서는 지오반나는 덤덤하게 기차를 올라타서 다시 남편과 두 번째 생이별하고 맙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오열하는 지오반나!

 

 

그렇게도 그리웠던 남편과 두 번이나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지오반나는 이제 남은 일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남편을 영원히 지워버리는 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는 집에 남아있던 남편의 모든 액자사진을 떼어내며 짓밟아버립니다.

 

사랑의 배신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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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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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카, 율 브린너 주연의 허리우드 뮤지컬영화 왕과 나줄거리, 율 브린너의 사망원인

 

1956년도에 제작된 유명한 허리우드 고전영화 왕과 나는 당대의 명배우 율 브린너와 데보라 카가 열연했던 흥미진진한 뮤지컬 영화이다.

 

18세기 중엽 태국의 시암왕국의 왕실을 배경으로 하는 허리우드영화로, 영화내용 자체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주인공으로 나온 율 브리너의 카리스마 넘치는 박력넘치는 연기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준다.

 

그리고 율 브린너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 데보라 카의 황홀한 아름다움과 명품 연기는 영화의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고 있다.

 

허리우드 고전영화 중에서도 최고로 품질이 높고 잘된 영화를 꼽으라면, 두 개를 꼽을 수가 있는데, 바로 십계왕과 나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허리우드 고전영화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동의하실 거라고 믿는다.

 

1956년 작품 왕과 나는 율 브린너가 실제로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아 순회공연을 해왔던 작품인데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율 브린너가 더욱 실감나게 연기를 잘 소화해냄으로써, 영화의 재미와 품격을 한층 더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율 브린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솟아오르면서 50~60년대 수많은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그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간다.

 

특히 율 브린너의 트레이드마크인 빡빡 대머리는 바로 이 영화 왕과 나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이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율 브린너는 그때부터 계속 빡빡 대머리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왕과 나의 품격와 재미를 올려놓아준 또 한명의 배우가 당대의 미녀스타 데보라 카이다.

 

청순하고도 우아한 매력의 소유자 데보라 카는 가정교사 안나 역할을 맡아 왕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과 왕실 예의범절문제로 보수적인 시암왕과 티격태격 충돌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서서히 키워나가는 로멘틱한 구도가 재미있고 상큼하게 그려지고 있다.

 

겉으로는 매우 엄격하고 고집쎈 태국의 왕이지만, 근대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시암왕(율 브린너)에게 서서히 매료되어가는 영국의 우아한 미망인 데보라 카의 명품연기가 한층 돗보이는 흥미진진한 영화이다.

 

미국 허리우드 영화계에서 당대 최고의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기의 달인 율 브린너의 카리스마 넘치는 영화가 바로 왕과 나이면서,

허리우드에서 가장 고전적인 미인으로 알려진 데보라 카의 우아한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영화 또한 왕과 나이다.

 

1940~60년대 최고의 기품있는 우아한 배우로 손꼽혔던 데보라 카는 원래 영국 스코틀랜드출신의 여배우다.

 

영국에서 연극과 영화에 번갈아가면서 출연하면서 우수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데보라 카는 흑수선에서 청순하고도 기품있는 수녀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고

흑수선의 히트로 데보라 커는 단번에 헐리우드로부터 초청장을 받고, 허리우드의 MSM영화사에 영입되어 수많은 명작들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과 우아한 미모를 발산하면서 허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다.

 

데보라 카는 허리우드로 이적해서 훌륭한 명작품들에 여러편 출연했는데, ‘퀴바디스’ ‘왕과 나’ ‘여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어페어 투 리멤버등 당대의 손꼽히는 걸작품에 출연해서 큰 명성과 인기를 얻게된다.

  

 데보라 카는 영화에서 고상하고, 기품있는 정숙한 귀부인의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나중에 데보라 카는 자신의 역할이 너무 고고한 스타일로 정형화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데보라 카의 미모가 위낙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고품격의 우아한 미모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녀의 이미지가 귀부인스타일로 고착화되던 중, 데보라 카는 1953지상에서 영원으로란 영화에 출연해

바람난 유부녀 역할을 맡아 버트 랑카스타와 해변에서의 파격적인 키스씬을 벌여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해주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의 그녀의 요염하면서도 대담한 러브신연기는 데보라 카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연기변신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매우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데보라 카는 위에서 열거했듯이 허리우드 역사상 길이남을 만한 수많은 걸작품들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카데미상을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불운한 여배우였다

물론 그녀가 아카데미상에 6번이나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정작 상은 한번도 타내지못했다.

 

그런데 1994년도에 미국영화협회에서 흠잡을 데 없는 우아함과 아름다움, 완벽한 연기로 영화에 기여한 데보라 카라고 그녀를 칭송하면서, 뒤늦게 오스카공로상을 수여함으로써, 데보라 카의 오랜 염원과 한을 풀어주었다.

 

사실 데보라 카는 우아한 미모와 더불어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혀리우드의 몇 안되는 훌륭한 여배우인데

그녀가 왜 젊은 시절에 아카데미상을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는지가 큰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데보라 카는 두 번째 남편인 피터 비에텔과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파킨슨병으로 20071016일에 잉글랜드 서포크에 있는 자택에서 8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가 사망했을 때, 영국의 BBC방송국은 영국의 가장 성공적인 수출품이자 영국의 아름다운 장미가 졌다고 전하면서, 깊은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율 브린너는 60~70년대에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야성미가 넘치는 박력있는 연기력으로 전세계에 수많은 팬덤을 보유했던 허리우드의 전설적인 명배우이다.

 

빡빡머리와 날카롭게 노려보는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눈매를 간직한 율 브린너는 '왕과 나' '십계' '솔로몬과 시바여왕' '황야의 7' ‘아나스타샤등 굵직굵직한 걸작품들에 출연해서

 

명품연기를 선보여주었던 허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연기자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율 브린너가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국적인 마스크로 유명했는데, 그의 혈통에는 몽골리안이 섞여있다고 하는 점이다.

 

, 그의 할아버지는 러시아계였고, 그의 친할머니는 몽골계인 브리야트인이라고 하며, 따라서 그는 어렸을 적에 만주에 살면서 타이제 칸이라는 몽골식 예명을 쓰기도 했다.

 

율 브린너는 블라드보스토크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부친이 만주와 한국을 오가면서 벌목사업을 했기 때문에, 율 브린너는 유년시절 한 때 한국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율 브린너가 만년에 한국과 아시아를 많이 그리워했었다고 그의 아들 록 브린너가 전하기도 했다.

 

율 브린너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4개국어에 능통한 매우 다재다능한 재능을 지닌 배우로, 13세 때부터 프랑스 파리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고, 한 때는 서커스단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서커스묘기를 부리다 떨어져 부상을 입은 것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무대에 진출하면서 연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국적인 마스크를 가졌다는 이유로 뮤지컬 왕과 나의 태국왕으로 전격 캐스팅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명배우로의 길을 걷게 된다.

 

율 브린너는 198565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원인은 폐암때문이라고 한다.

율 브린너는 매일같이 담배를 하루 1~2갑씩 피우는 대단한 꼴초였고, 주변사람들이 그의 흡연을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담배를 피웠다.

 

결국 그는 폐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 그 때부터 금연을 했지만, 이미 심각하게 진행된 폐암으로 인해 65세로 사망했다.

 

왕과 나의 줄거리 내용

 

18세기 중반 인도차이나반도의 시암왕국(지금의 태국)의 몽쿠트왕은 영어와 라틴어 능통한 왕으로 자신이 다스리는 시암왕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영국과 보링조약을 체결하고, 

자유무역을 허용하고 자발적으로 서방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는 개혁조치를 단행하는 매우 합리적이고 영특한 왕이다.

 

 시암왕은 외세의 힘에 무조건 굴복하여 경제권을 상실당한 다른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왕국의 주권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발적으로 개방 및 개혁정책을 추구하면서 시암왕국의 근대화를 주도해나가게 된다.

 

시암왕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영국출신의 미망인 데보라 카를 가정교사로 영입해서 왕실에서 함께 기거하도록 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게된다.

 

자유분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영국여인과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엄격한 시암왕 율 브린너는 

자녀들에 대한 예절교육과 왕실전통을 놓고, 서로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불타오르는 걸 느낀다.

 

겉으로는 퉁명스럽고 귄위주의 적이지만, 부드럽고 깊은 속마음을 지닌 시암왕에게 서서히 매료되어가는 데보라 카와 그녀의 우아한 미모에 역시 빠져가는 시암왕은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묘한 사랑의 마법에 빠지게 된다.

 

사랑은 국경과 지위를 초월한다는 명언이 실감나는 영화인데, 문제는 두사람이 사랑의 묘약에 빠져갈 무렵 결국 사소한 오해가 발생하게 되고, 우아한 영국미망인 데보라 카는 시암왕을 떠나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안타깝게도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는 영화다.

 

 결국 한 왕국의 통치자로서 시암왕은 사랑보다는 자신의 조국과 전통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고, 영국미망인은 관습과 관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떠나가게 된다는 다소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코미디요소와 오페라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이다.

 

영화 왕과 나는 영국미망인 안나가 저술한 자서전을 각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화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여인 안나가 태국의 시암왕국을 방문해서 실제로 실존인물인 차크리 왕조 4대 국왕인 몽쿠트 왕(1804~1868)과 겪었던 사실을 영국으로 돌아와서 저술한 자서전이 바로 영화 왕과 나의 시나리오가 됐다.

 

당시 안나가 자서전을 소개했을 때, 태국 시암왕국에서는 안나와 몽구트왕의 로멘스를 전면 부정했다고 한다.

태국의 근대화를 이끈 위대한 개혁군주인 몽구트왕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지, 아니면 안나의 자서전에 허구가 가미되었는지는 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뭏튼 역사상으로 실존했던 태국국왕과 영국인 가정교사 간의 로멘스라는 주제 자체가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시키에 충분한 만큼,

이것이 연극으로 먼저 만들져서 큰 반향과 인기를 끌면서, 56년도에는 영화로제작되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고, 허리우드 고전영화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전설적인 걸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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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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