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글래머스타 여배우 윤미라의 젊은시절 미모와 결혼안한 이유, 양말공장사장과 불륜스캔들

 

우리나라의 탁월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70~80년대를 풍미했던 글래머여배우가 한명이 있는데요. 바로 여배우 겸 탤런트 윤미라입니다.

 

윤미라는 70년대만 해도 섹시미와 관능미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섹시스타였답니다.

 

지금은 드라마에서 주로 어머니나 아줌마역할을 하고 있지만, 젊은시절에 윤미라는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셀레이게 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글래머스타였답니다.

 

청순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스타를 ‘청순글래머’라고 하는데, 70년대의 윤미라가 바로 ‘청순글래머’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답니다.

 

윤미라는 70년대 당시 동양적인 외모의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었던 시절에, 커다란 눈동자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매우 이국적인 미모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윤미라의 커다랗고 부리부리한 눈동자는 수많은 남성관객들의 마음을 녹이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70년대 당시 무척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답니다.

 

윤미라는 69년 영화 ‘사랑하고 있어요’로 데뷔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섹시글래머스타로 각광을 받았고, 41편이 넘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랍니다.

 

그리고 윤미라는 한때 미국 허리우드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왔을 정도로, 그 미모가 외국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았답니다.

 

윤미라는 1세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세명의 스타가 은퇴하였던 1972년도부터 70년대 후반까지 한혜숙과 함께 우리 연예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인기여배우였지요.

 

이렇게 한 시대를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여배우로 주름잡았던 윤미라가 실은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아름다웠던 그녀가 미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시나요?

 

놀랍게도 윤미라는 오랫동안 촉망받는 여배우로서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결혼을 하지않은 독신녀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혼한 게 아니라, 결혼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윤미라는 완전무결한 미혼녀입니다.

윤미라는 1951년생으로서 지금 나이가 73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싱글로 혼자살고 있다고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남자들이 눈이 삐어도 한참 삔 것 같습니다. 이런 미녀를 독신으로 살 게 만들다니!

 

한때에 대한민국을 뒤흔들 정도로 초절정 미모를 간직하면서 수많은 남심들을 셀레이게 했던 글래머스타가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신으로 살고있다니 말입니다!

 

여배우 윤미라가 결혼을 하지않은 데에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여배우 윤미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해부해보도록 하겠어요!

 

◆ 윤미라의 프로필과 출연영화

 

나이 - 1951년 12월 18일 (73세)

신체 - 168cm, 몸무게 55kg

출생지 - 전북 정읍

학력 - 광주여자고등학교

가족 - 2남 3녀 중 장녀

 

윤미라는 어렸을 적부터 미모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윤미라에게 여배우가 되어보라구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어렸을 적부터 남들과 다른 두드러진 미모와 섹시한 관능적인 매력을 듬뿍 갖고있었던 윤미라는 동네미인으로 소문이 났구요.

 

1969년 당시 김수용감독 등 우리나라 감독들이 합동으로 신인여배우 모집하는 공고를 냈는데, 여고를 갓졸업한 윤미라는 신인여배우 모집에 응모하여,

5,000명이 지원하는 선발대회에서 윤미라는 16명 중 한명으로 당당히 뽑혔답니다.

 

1969년도에 영화 '사랑하고 있어요'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윤미라는 그 후 여러편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동하다가

1973년 영화 '처녀사공'에 남궁원과 함께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크고 시원시원한 눈과 이국적인 마스크로 브라운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윤미라는 70년대 후반까지

'아내들의 행진' '바보 용칠이' '황금마담' '딸삼형제' '여수대탈옥' '옥중녀' '부초' 등 수십편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가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지요.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겸비한 윤미라는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과 인기를 얻었고, 77년도에는 영화 '고가'로 '대종상'의 최우수 여우상을,

78년에는 영화 '부초'로 '백상 예술대상'의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합니다.

 

이 70년도의 시기가 윤미라의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시기에 윤미라는 신트로이카 3인방에 견줄만큼 높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70,80년대 섹시한 여배우가 엄유신, 이미지, 윤미라 등 세명이 대표적이었는데, 그 중 단연 윤미라가 가장 크게 각광을 받던 여배우였답니다.

 

윤미라의 키는 168cm로 70년대에는 웬만한 모델보다 더 큰 키에 볼륨몸매를 갖고 있었고,

한국판 마릴린 몬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윤미라의 섹시미와 관능적인 몸매는 정평이 나 있답니다.

 

특히 윤미라는 영화 '남사당'에서 섹시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하면서, 많은 남자들의 로망으로 자리잡았답니다.

 

윤미라는 78년대 후반에 허리우드의 테렌스 영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오 인천'에 스카우트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1978년도에 영화 '007'을 만들었던 명감독 테렌스 영이 연출하는 허리우드 영화 '오! 인천'이 한국에서 로케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을 한국여배우 중에서 선발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테렌스 영감독은 '오! 인천'의 여주인공을 뽑기위해 한국여배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는데요.

 

한국의 내노라하는 여배우들 30명이 응모해서 모두 떨어지고 난 후, 윤미라가 31번째로 응모해서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여배우 최초로 윤미라가 드디어 허리우드영화에 진출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당시 윤미라의 개런티는 5천만원이었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에 해당되는 커다란 금액이었다고 해요.

 

자기 혼자의 실력으로 당당히 허리우드영화에 스카웃되었던 윤미라는 영화촬영을 막 시작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유부남과의 불륜사건'이 터져나오게 된답니다.

 

윤미라가 유부남인 양말공장 사장과 눈이 맞아서 연애를 했다는 것이지요.

이 불륜스캔들로 인해서 윤미라의 허리우드영화 진출은 모두 무산되고 말았답니다.

반응형

영화 '오! 인천'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서 본격적으로 허리우드영화에 진출하려던 윤미라의 꿈은 때아닌 '불륜스캔들'로 인해서 모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답니다.

 

◆ 윤미라의 유부남과 불륜스캔들 사건

 

이렇게 윤미라는 70년대에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면서 대표적인 섹시글래머 스타로 각광을 받았는데,

그만 70년대 후반 뜻하지 않게 불륜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답니다.

 

70년대 후반에 터진 윤미라와 양말공장 사장과의 '간통사건'이 그것인데요.

 

윤미라가 대종상과 백상 등 좋은 상들을 휩쓸면서 인기의 고공행진을 펼쳐나갈 무렵인 70년대 후반에

그녀는 양말공장 사장과의 불륜사건으로 인해서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답니다.

 

윤미라가 유부남과 불륜을 맺어서 간통으로 고소를 당했던 겁니다.

지금은 간통죄가 없어졌지만, 70년대만 해도 간통죄는 엄청 커다란 죄악이었으며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았답니다.

 

더욱이 대중적으로 모범을 보여야만 하는 연얘인이 간통죄에 휘말린다면 그 스캔들만으로는 그여배우는 여자연예인으로서 생명이 끝나는 겁니다.

 

1979년 29세의 윤미라는 35세의 양말공장 사장 홍씨와 간통을 한 혐의로 홍씨의 부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답니다.

그런데 윤미라는 단순한 간통혐의 말고도 사기죄로도 함께 고소를 당하고 말았지요.

 

홍씨의 주장에 의하면, 자신은 윤미라와 78년도에 10차례에 걸쳐서 동침을 했고, 돈 10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미라가 빌려간 돈을 전혀 갚지않는다는 이유로 홍씨는 그녀를 사기죄로 고소했답니다.

그러자 윤미라는 자신과의 사적인 부분을 모두 까발린 홍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맞고소를 했답니다.

 

이렇게 고소사건으로 인해서 두사람의 관계가 드러나자, 홍씨의 부인이 두사람을 상대로 '간통죄'로 고소하기에 이른 겁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법정에서 '간통죄'와 '명예훼손죄' 그리고 '사기죄' 등 여러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답니다.

 

홍씨가 1,000만원의 돈을 빌려줬다는 주장에 대해서, 윤미라는 200만원은 자신을 동생으로 삼은 기념으로 그냥 준 것이고,

나머지 800만원은 어머니의 사업자금으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윤미라는 홍씨가 자신에게 돈 1000만원 중 800만원을 빌려준 것은 인정했답니다.

그렇지만 윤미라는 홍씨가 주장하는 자신과의 동침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답니다.

 

윤미라는 돈을 빌린 적이 있지만, 홍씨와 동침은 결코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답니다.

남자쪽에서는 여러번 동침을 했다고 주장하고, 여자쪽에서는 절대로 동침을 하지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윤미라와 홍씨는 서로간 다른 주장을 하면서 팽팽하게 맞서면서 재판을 받았답니다.

두사람이 서로간에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판은 무지하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결국 재판은 3년을 끌게 되며, 그 기간 동안 윤미라는 일체의 연기활동을 하지 않은 채로 재판에만 몰두하게 된답니다.

 

결국 3년이 지난 후에 윤미라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법원에서는 윤미라의 간통혐의가 없다는 것과 사기죄가 아니라는 것을 선고하게 됩니다.

 

윤미라는 유부남 홍씨와의 '간통사건' 재판에서 비록 승소는 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많이 실추되고 맙니다.

허리우드진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때아닌 간통사건에 휘말린 윤미라는 수년 동안 영화도 찍지못하고 그녀의 이미지만 크게 실추되고 맙니다.

 

아뭏튼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윤미라는 명예를 회복할 수는 있었지요.

윤미라는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난후,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기생활을 해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답니다.

 

윤미라와 홍씨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두사람은 광고를 찍는 문제로 만났는데 홍씨가 윤미라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답니다.

그래서 두사람은 친하게 지내는 관계가 되었는데요. 이당시 홍씨는 자신이 유부남인 사실을 숨기고 윤미라를 만났던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홍씨가 유부남인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윤미라는 곧바로 홍씨와 결별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홍씨는 돈까지 주면서 정성을 다한 윤미라가 자신을 매몰차게 차버리자, 그것에 앙심을 품고서 그녀와의 관계를 친한 신문기자에게 모두 까발리고 만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홍씨는 윤미라를 사기죄로 함께 고소를 한 것이지요.

 

아뭏튼 사건이 일단락되고 난 후, 윤미라는 다시 영화 출연제의를 받았고, 영화 '여자의 이 아픔을'에 출연하면서 제기에 성공할 수 있었답니다.

 

◆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

 

윤미라에 관해서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이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것일 겁니다.

윤미라는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최고의 미녀여배우였는데, 도대체 결혼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그녀는 왜 결혼을 하지않았던 걸까요?

 

 

전성기때의 윤미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고 합니다. 모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70년대 윤미라의 인기는 지금의 '소녀시대'의 인기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윤미라는 왜 결혼을 하지않았을까요?

 

윤미라가 결혼을 하지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자기집안의 사실상 가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미라는 집안의 맏딸이자 가장으로서 아래로 2남 3녀의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지요.

 

사실상 가장이었던 윤미라는 가족들의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했고,

5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모두 공부시키고 대학까지 보내는 등 그녀가 모든 동생들의 양육을 책임졌다고 합니다.

 

밖에서는 바쁘게 연기활동을 하면서, 집에서는 동생들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하면서, 바쁘게 생활했던 윤미라에게는

한가롭게 남자들과 연애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연기와 동생들 양육에만 전념을 쏟다보니, 접근해오는 남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윤미라는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매우 극심해서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에도 지극정성을 다했답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을 부양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그녀는 남자와 만나는 것 자체를 멀리했던 겁니다.

어쩌면 윤미라의 도도하면서도 완고한 성격도 그녀가 독신으로 살도록 하는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성격이 도도하고 완고한 사람은 이성과 연애하기가 무척 힘들답니다.

 

그리고 윤미라가 결혼하지 않은 또다른 이유는 그녀를 간통사건에 휘말리게 했던 홍씨에 대한 실망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윤미라는 처음에는 홍씨가 총각이라는 거짓말에 속아서 그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리고 홍씨의 여러가지 비열한 행동을 보고는 남자에 대한 실망감이 엄청 컸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처럼 만나서 데이트를 한 남자에 대해서 커다란 실망감을 갖게된 그녀는 남자전체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되었을 겁니다.

 

이렇게 남자에게 크게 데이고 실망한 그녀는 그 후에 남자를 멀리했을 것이고, 남자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한 남자에 대한 불신감은 자칫 남자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번질 수 있답니다.

 

이렇게 윤미라는 다섯명이나 되는 동생들 뒷바리지하느라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놓쳐버렸고,

더욱이 '간통사건'에 연루되어 남자에 대해서 커다란 불신감을 생겼던 것 등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인해서 결혼을 멀리하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실들을 토대로 해서 추정을 한 것일 뿐이고요.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진짜이유는 오직 윤미라의 가슴속에만 간직되어 있을 것이고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윤미라는 불륜스캔들을 극복하고 난 이후부터는 영화보다는 주로 tv드라마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최근까지도 드라마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은 그녀는 드라마에서 어머니역이나 아주머니역으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드라마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7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독신으로 살고 있는 그녀는 '외롭지 않냐?'라는 질문에 애인은 없지만, 주변에 남자친구들이 있어서 외롭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알고지내는 남자친구들은 그녀를 만날 때면 꼭 부인과 함께 나온다고 합니다.

70이 훨씬 넘은 윤미라는 아직도 결혼에 대한 핑크빛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윤미라는 얼마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결혼기사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우회적으로 결혼에 대한 소망을 피력했답니다.

 

70이 훨씬 넘은 그녀가 아직도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윤미라는 한번쯤은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자선사업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답니다.

 

70, 80년대에 최고의 섹시글래머 스타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윤미라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는 좀 안타까운 사연을 전혀드렸는데요.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도 매우 당당하고 활기차게 방송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어서,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정말 멋지게 보입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윤미라는 정말 멋지고 대단히 매력적인 배우라고 느껴진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서 계속 뵈었으면 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반헬싱
,

여배우 한혜숙의 젊은 리즈시절의 미모, 70년대 청순미인, 최근근황, 결혼하지않은 이유

 

한혜숙 - 1951년 8월 20일생 나이 68세

 

연예인 중에 대표적인 골드싱글이 있는데요. 바로 70년대에 인기 미녀스타로 풍미했던 한혜숙입니다.

한혜숙은 70년대에 우리나라 TV드라마에서 최고로 인기가 높았던 탤런트였답니다.

 

한혜숙은 1970년대 TV드라마는 물론 CF광고모델로서도 활발한 활약을 펼치면서, 70년대의 우리나라 미녀여배우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감이었지요.

 

70년대에 드라마스타로는 김자옥도 있었고, 김영애도 있었지만, 한혜숙이 가장 예쁘고, 가장 섹시한 여배우로서 많은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답니다.

 

1970년대 초반 드라마 ‘꿈나무’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하명중과 호흡을 맞추었던 한혜숙은 그야말로 아주 여성스러운 ‘청순글래머’의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청순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춘 ‘청순글래머’의 원조는 바로 한혜숙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의 우리 연예계의 미인으로는 김태희, 송혜교를 꼽을 수 있는데, 한혜숙은 1970년대에 가장 대표적인 미인으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한혜숙은 지금의 김태희와 송혜교보다 훨씬 앞선 70년대에 원조미인으로 불리워졌던 여배우랍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미인의 계보를 설명하자면, 60년대에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트로이카여배우들이 주름을 잡았고,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의 신트로이카가 각광을 받았지요.

 

그런데 구트로이카여배우들과 신트로이카여배우들 사이의 중간시기인 70년부터 75년까지는 한혜숙이 가장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한혜숙은 1970년도에 MBC 문화방송에 제2기 탈랜트로 데뷔를 하였는데,

71년도에 또다시 KBS의 드라마 주연급탈랜트 모집에 응모해서 당선되었는데, 무려 3500 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1위로 뽑혔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3500 대1의 경쟁률에서 당선된 역할을 KBS드라마 ‘꿈나무’의 여주인공역이었고, 이 ‘꿈나무’에서 청순하고 참신한 이미지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한혜숙의 얼굴은 그 당시 다른 연기자들의 얼굴과는 다른 모습이었지요.

70년대 당시만 해도 TV드라마에서 동양적인 이미지의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는데,

한혜숙은 서구적인 마스크와 세련된 이미지를 갖고 방송에 나왔다는 자체가 대단한 센세이션이었답니다.

 

그 당시 다른 여배우들보다는 키도 더 크며, 날씬한 에스라인에다 서구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고, 새로운 스타일의 미인으로 각광을 크게 받았답니다.

 

한혜숙의 키는 164cm인데, 70년대 당시에는 여자로서는 상당히 큰 키에 속했답니다.

 

그 당시 한혜숙과 입사동기인 김자옥은 동양적인 미인소리를 들었지만, 한혜숙은 서구적인 미녀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두 여배우가 그시대에 가장 큰 인기를 끌면서 서로 연기경쟁을 벌였답니다.

 

한혜숙은 71년도에 그녀의 첫대뷔작인 ‘꿈나무’에서 청순한 여고생으로 분해 참신하고 청순한 매력을 선보이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리고 75년도에 우리 TV드라마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에 역시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당대 최고의 인기탤런트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서구적인 시원시원한 마스크에 콧날이 오똑한 그녀의 모습은 도도하면서도 가존심 강하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공주 또는 귀족녀 같은 인상을 풍기면서, 많은 남자들의 로망 같은 존재감이었답니다.

 

70년대 초중반은 한혜숙이 가장 큰 인기를 끌던 시기였고, 그시대의 대표적인 미인으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한혜숙이 70년대에 얼마나 잘 나갔냐 하면, 한혜숙은 원조 빅3 스타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혜숙은 길이 남을 만한 3개의 대작품에서 최초로 주인공을 맡았다는 겁니다.

 

‘구미호’와 ‘춘향전’ 그리고 ‘토지’의 주인공을 최초로 맡았던 원조가 바로 한혜숙이라고 합니다. 물론 다 TV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이랍니다.

 

70년대애 TV드라마에서 1대 구미호역을 한혜숙이 맡았고, 역시 1대 춘향이역을 그녀가 맡았을 뿐만아니라, 1대 ‘토지’의 여주인공 서희역을 한혜숙이 맡았다고 합니다.

 

‘구미호’와 ‘춘향전’, ‘토지’의 여주인공역할은 오직 톱스타만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인데, 그 배역을 한혜숙이 최초로 맡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혜숙은 3대 걸작품의 원조 여주인공이라고 하는데요.

 

‘구미호’와 ‘춘향전’ ‘토지’는 한혜숙이 출연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TV드라마로 리바이벌되면서, 또다시 계속해서 만들어졌는데요.

 

한혜숙이 이들 3대 명작품에 초대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연기를 잘해내었고, 그 기초를 튼튼히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이들 3대 명작품이 계속해서 리메이크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원조가 또하나가 더 있습니다.

 

화장품 CF광고는 모든 여자연기자들의 최고의 꿈이랍니다. 여자로서 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화장품 광고모델로 발탁이 되면, 톱스타로 발전할 수 있는 지름길을 얻는 셈이지요!

 

그래서 모든 여자연기자들은 화장품 광고모델에 발탁되기를 갈망하고 있는데요.

한혜숙은 1971년도에 최초로 아모레 화장품광고를 찍어서, 아모레 화장품 광고 모델의 원조가 되었답니다.

 

한혜숙은 71년도 KBS 데뷔함과 동시에, 아모레 하이톤 화장품 광고모델에 발탁되어서, 아름다움을 맘껏 뽐냈답니다.

 

3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한혜숙이 선발되자, 태평양화학 화장품회사에서 그녀의 세련된 미모를 높이 평가하고 그녀를 화장품광고 전속모델로 선발했던 겁니다.

 

한혜숙은 71년도에 태평양화학의 화장품모델로 선발되어서 3년 동안 전속모델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미인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한혜숙을 광고모델로 발탁했던 태평양화학은 지금의 퍼시픽화장품 회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장품회사이지요.

 

이로써 한혜숙은 최고의 미인만이 맡을 수 있는 ‘춘향전’의 춘향이와 ‘토지’의 서희역, 아모레화장품의 전속모델 등을 모두 꾀참으로써, 70년대 당시에 당대 최고의 미녀탤런트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70년대에, 포린텍스 옷감 광고모델과 대포린 이불광고모델, 비바리 허벌샴푸 광고모델 등 여러가지 CF광고모델을 맡아 찍으면서, CF퀀으로도 명성을 높여나갔답니다.

 

원래 여자연기자가 미모가 뛰어나고 인기가 좋으면,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물론 CF모델도 많이 찍게 되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 1971년 당시의 한혜숙의 프로필

 

나이 - 21살

키 - 164cm, 몸무게 51kg

5남매 중에 맏딸

최종학력 - 덕성여고 졸업

 

1970년 mbc 방송국 데뷔, 1971년 kbs 방송국 데뷔

kbs 10기 탤런트 모집에 수석으로 합격

취미 - 등산

종교 - 불교

 

위의 프로필은 1971년도에 발간한 주부생활에 실린 한혜숙의 프로필입니다.

 

한혜숙의 키 164cm는 지금의 여자 키로도 중키가 넘는 키로서, 70년대 당시에는 여자들 중에서 매우 큰 키에 속했으며, 70년대 중반 당시 다른 여자연기자들에 비해서, 한혜숙이 가장 날씬하고 우월적인 몸매를 갖고있었다고 합니다.

 

얼굴 뿐아나라 몸매도 뛰어난 한혜숙이었기에, 그래서 남성팬들이 더욱더 한혜숙에 열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혜숙은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하면서, 톱스타의 입지를 굳혀나갔으며, 이후에는 영화에도 출연해서 호평을 받았답니다.

한혜숙은 70년대 후반 영화 ‘족보’와 ‘상록수’ 같은 대작품에 출연해서, 선굵은 연기를 벌여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놓기도 했었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혜숙이 출연한 영화들이 별로 많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이 흥행에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혜숙은 성격이 매우 꼿꼿하고 보수적인 성품이어서,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호스티스영화들에 출연하는 것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반응형

왜냐하면 외모와는 달리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을 가진 한혜숙은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벗는 연기를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에, 그 당시 유행하던 호스티스물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혜숙은 영화에는 별로 출연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지만 한혜숙은 TV드라마에서는 최고로 인기를 끌면서 각광을 받았답니다.

 

한혜숙은 1970년대의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로 명성이 높았던 만큼, 성격도 매우 꼿꼿하고 도도한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지고 있답니다.

 

80년대 초반에 한혜숙의 도도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1980년대 초반부터 KBS방송국에서는 모든 연기자들이 명찰을 걸고, 방송국에 출입하도록 규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여의도에 있는 KBS본관에 한혜숙이 현관으로 들어왔는데, 그날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원이 한혜숙에게 표찰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한혜숙은 깜빡잊고 명찰을 갖고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한혜숙이 명찰을 안갖고 왔다고 말하면서 그냥 지나치려고 하자, 그 젊은 경비원이 한혜숙의 출입을 완강히 저지시켰다고 합니다.

80년대 초반이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혜숙을 다 알고있던 시기였지요.

 

그러자, 화가 단단히 난 한혜숙은 자신의 하이힐을 벗어서 그 젊은 경비원의 머리에다 세차게 찍어버렸답니다.

그리고 한혜숙의 하이힐에 얻어맞은 그 젊은 경비원은 머리에 피까지 흘리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소위 80년대 초반 ‘한혜숙의 경비원 폭행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경비원의 머리를 하이힐로 찍고난 후, 한혜숙은 그 경비원에게 ‘너, 진짜 내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라고 말하고는 방송국으로 올라갔다고 하네요.

 

한혜숙이 예쁜 얼굴만큼, 매우 도도하고 대쪽 같은 그녀의 성품을 매우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이 겉으로 드러난 청순한 미모와는 달리, 성격은 매우 강하고 대쪽같은 성품을 지녔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70, 80년대 전성기를 지나서, 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많지는 않지만, 간간히 드라마에 출연을 계속해왔는지요.

 

2006년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여주인공의 어머니역을 맡아서 열연을 펼쳐서 극의 완성도를 높여놓았는데, 이 드라마로 연기대상 백상을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윤정희와 이태곤의 젊은 두 남녀주인공을 제치고, 어머니역의 한혜숙이 연기대상을 받은 것이어서, 그녀의 연기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시청률이 40%를 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2009년도 MBC 드라마 ‘보석비빕밥’을 끝으로 더이상 드라마에 출연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 한혜숙,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이유

 

한혜숙은 70년대 가장 매혹적인 여배우였지만, 또한 누구보다도 의혹점이 많은 여배우랍니다.

그녀에 대한 가장 큰 의혹점은 한혜숙이 지금까지도 한번도 결혼을 하지않고 혼자 독신으로 산다는 점이랍니다.

 

70, 80년대에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고, 돈과 명예도 얻을 만큼 얻었던 한혜숙이 혼자 살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한혜숙은 지금까지 평생을 혼자 독신으로 살아왔다고 하니, 정말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한국의 대표적인 골드싱글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70, 80년대에 탁월한 미모와 글래머스한 몸매, 뛰어난 연기력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기여배우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혜숙은 2000년대 초반에 한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

한혜숙은 자신의 연기생활에는 100% 만족한다고 밝혔지만, 한 여자로서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답니다.

 

여자로서의 삶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한혜숙이 가슴속에 결혼을 하지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아픔과 회한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혜숙이 나이 30살 때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요. 아버지는 임종하기 전에,

한혜숙에게 ‘내가 죽고나면 네가 이 집안의 가장이 된다, 너는 항상 몸가짐을 깨끗이 하고, 네가 가장으로서 동생들을 잘 돌봐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이런 아버지의 유언을 가슴속 깊이 새겨놓았던 것인데, 그녀가 몇십년간 연기활동을 벌여오면서,

단 한번도 스캔들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녀가 아버지의 유언을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혜숙은 동생이 4명이나 있는 집안의 장녀랍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한혜숙이 자기집안의 가장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요. 한혜숙의 어머니는 가정밖에 모르시는 분이셨다고 해요.

 

한혜숙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연기활동을 하면서, 동생들을 극진히 돌봐주고 동생들의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해왔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네명의 동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면서 모든 경비를 혼자서 다 짊어졌으며, 사실상 가장노릇을 완벽하게 수행해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혜숙이 밖에서는 연기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살았고, 안으로는 4명의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남자를 만나 연얘를 할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가장노릇을 하느라, 네명의 동생들을 간수하느라, 연기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던 한혜숙이었기에, 그녀는 연얘에 대해 관심을 끊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하게 되면, 이성을 만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위해서 바쁘게 살아가다보면, 이성을 만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젊었을 때에 실제로 경험했던 사실이랍니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노총각이 되고 말았지요.

 

아마 한혜숙도 네명의 동생들을 모두 잘 뒷바라지해서 대학까지 다 보내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전념하다 보니, 자신이 결혼해야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결국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동생들 뒷바리지하는 것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한혜숙은 천사와 같은 마음씨를 지닌 대단한 여성이라고 느껴진답니다.

 

그리고 그녀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격 또한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도록 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고 여겨진답니다.

 

또한 한혜숙은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하며, 신앙심이 대단히 깊다고 합니다.

한혜숙의 깊은 신앙심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게 했던 또다른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세상에 때묻지않고, 자신을 항상 정결히 하면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강한 신앙심과 뚜렷한 주관이 그녀가 독신으로 살도록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사실 한혜숙이 전혀 연얘를 안한 것은 아니랍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절색의 미녀인데, 한혜숙을 남자들이 가만 나뒀겠습니까? 한혜숙이 젊은 시절에 그녀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소위 ‘칠공자’라고 불리워졌던 집안 좋고, 재력좋고 잘생긴 재력가의 남자였는데, 그 남자가 어찌나 끈질기게 한혜숙을 쫒아다녔는지, 한혜숙은 그만 그 남자에게 완전 질려버렸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계속 거절해도 그 남자가 끝도 없이 계속 대쉬하는 바람에, 한혜숙은 남자 전체에 대한 불신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깨끗하고 패어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완고하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어서,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쉬하는 그런 남자는 딱 질색이라고 합니다.

 

결국 한혜숙은 그 남자를 완벽하게 거절해서, 다시는 곁에 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한혜숙은 총 세 번에 걸쳐서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혜숙은 무척 도도하고 콧대가 센 여자였고, 완고한 성품이었기에 남자와 연예하는 것이 서툴렀다고 하네요.

 

자기관리를 잘하는 한혜숙은 세 번에 걸쳐 사귄 남자들과는 깨끗하게 헤어지고, 뒤끝없이 정리해버렸다고 합니다.

보수적이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한혜숙은 남자를 오래 사귀지않고 빨리 정리했다고 합니다.

 

한혜숙은 평소에도 시간만 나면, 절에 가서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성격도 보수적인데다가, 불교에 대한 신앙심도 깊은 그녀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함에 의해서, 자기 스스로를 독신의 늪에 가둬높지 않았나 생각된답니다.

 

완벽한 삶을 추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중에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카톨릭신앙심이 깊은 여성신도는 자신은 하나님과 결혼했다고 하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혜숙도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틀림없이 비구니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지인들에게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한혜숙의 보수적이고 강한 신앙심,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리고 네명의 동생들을 끝까지 뒷바리지하겠다는 책임감 또한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던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대를 풍미했을 만큼 최고의 미모를 바탕으로 70년대 톱스타로서, 수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있는 현실이 무척 낮설게만 느껴진답니다.

 

한혜숙은 1951년생으로 이제 나이가 74세가 되었네요. 그런데 한혜숙은 젊은 시절 못지않은 미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혜숙이 박정희대통령에게 당했다는 루머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70년대 박정희가 독재정치를 펼쳐나갈 무렵에, 박정희대통령에게 얼굴 예쁜 많은 여배우들이 당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었답니다.

 

사실 박정희대통령에게 당한 여배우들이 한두명이 아니지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있는 비밀이랍니다.

한혜숙도 박대통령에게 끌려가서 강제로 S폭행을 당했다는 루머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확인되지않은 루머일 뿐이며, 너무 맹신하지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혜숙이 가장 잘 나갔던 시절은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펼쳤던 70년대와 겹치는 시기였기에, 한혜숙이 박정희대통령에게 당했다는 루머는 나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의 서슬 퍼런 독재정치가 펄쳐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같은 루머는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한혜숙은 2007년 드라마 ‘보석비빔밥’을 끝으로 그 이후에는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은둔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들리는 전언에 의하면, 한혜숙은 어머니가 몸이 몹시 편찮으셔서 어머니 병 간호에 전념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혜숙은 틈틈이 절에 다니면서 불공드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혜숙이 과거에 한 방송에서 한 말이 뒷가에 멤돈답니다.

한혜숙은 한 방송에서 ‘자신은 아직도 남자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으며, 남자와 팔장을 끼고 덕수궁돌담길을 함께 거니는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한혜숙이 좀 더 젊은 나이에 저런 꿈을 꾸었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재벌부인이 되고도 남았을 겁니다.

한혜숙이 지금의 나이에도 소녀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하니, 그녀는 정말 순수한 여성성을 잃지않은 것 같습니다.

 

한혜숙은 최근 연기활동 대신 각종 불교행사에 참여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원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은 한혜숙은 연기활동은 포기한 체, 불교행사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원로배우들의 사망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어서 걱정인데, 아무쪼록 한혜숙이 탈랜트로서 다시 대중들앞에 나타나서 활동하는 모습 보고싶습니다!

 

하루빨리 한혜숙이 은둔생활에서 벗어나서 다시 방송에 복귀해서, 드라마에서 멋지게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응형
Posted by 반헬싱
,

에이핑크 출신의 청순미인 손나은의 미모와 성형설 논란, 성형전후 사진

 

과거에 한참 잘 나가는 인기걸그룹 ‘에이핑크’!, 몇 년 전에 신곡 ‘1도 없어’를 발표해서 커다란 인기를 끌고있는 무려 13년차이나 된 장수걸그룹이랍니다.

 

에이핑크는 2011년도에 ‘몰라요’로 데뷔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3년이나 된 올드걸그룹이네요.

정말 세월이 유수와도 같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에이핑크는 데뷔 이후 ‘마이마이’ ‘노노노’ ‘러브’ ‘미스터츄’ ‘파이브’ 그리고 ‘1도 없어’까지 무수히 많은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던 우리 아이돌계의 대표적인 대세걸그룹이었지요.

 

에이핑크가 이렇게 오랫동안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어왔던 비결은 바로 에이핑크의 청순함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 해요!

우리나라 아이돌역사상 가장 청순한 걸그룹을 하나 꼽으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걸그룹이 바로 ‘에이핑크’가 아닐까 합니다.

 

에이핑크의 멤버는 박초롱, 윤보미와 정은지, 그리고 김남주와 오하영, 손나은의 6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에이핑크의 여섯 멤버들 모두 다 개성있고 각자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답니다.

 

그런데 에이핑크의 멤버 중에서 가장 예쁜 멤버는 어떤 멤버일까 궁금해할 수 있지요.

정말 에이핑크에서 굳이 최고로 예쁜 멤버 한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두명의 멤버가 그 후보로 떠오르는데요.

 

과거 인터뷰에서 에이핑크의 박초롱은 에이핑크 멤버 중 윤보미를 가장 예쁜 멤버로 꼽았답니다.

그리고 또다른 예능프로에서 윤보미는 가장 예쁜 멤버로 오하영을 꼽기도 했지요.

 

그런데 오하영은 에이핑크 중 막내이기 때문에, 윤보미가 막내인 오하영에게 점수를 후하게 준 것 같아요.

사실 오하영은 예쁘다기 보다는 색시한 스타일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군요.

오하영이 몸메가 좋고 멋은 있지만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런데, 에이핑크 멤버중 가장 예쁜 멤버로 많은 사람들이 꼽고 있는 멤버는 바로 손나은과 윤보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에이핑크 데뷔 초기부터, 소속사에서 에이핑크의 비주얼대표로 가장 많이 밀어주었던 멤버는 손나은이랍니다.

 

에이핑크의 손나은이 가장 깜찍하고 가장 청순미가 넘치는 멤버였답니다.

그래서 남성팬들로부터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던 멤버가 바로 손나은이었답니다.

 

많은 팬들은 손나은의 별명을 ‘에이핑크의 중심’ ‘에이핑크의 센터’라고 지어주기도 했었지요.

‘에이핑크의 중심’이라는 것은 바로 에이핑크의 비주얼의 중심을 의미한답니다.

 

- 손나은 프로필 -

 

즉, 손나은이 에이핑크 멤버 중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한 멤버라는 뜻이랍니다. 그럼 손나은의 간단한 프로필을 알려드릴께요!

 

손나은 1994년생으로 현재 나이 31세

손나은의 키 168cm, 몸무게 49kg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과 재학 중

가족 -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손새은

포지션 - 에이핑크의 서브보컬

종교 – 천주교신자

소속사 - YG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에이핑크의 초창기 뮤직비디오들을 살펴보면, 뮤비에서 가장 많이 얼굴을 많이 비추는 멤버는 바로 손나은이었답니다.

손나은의 얼굴이 가장 귀엽고 예쁘니까, 손나은을 무대의 센터에 놓고 가장 많이 노출시켰던 겁니다.

 

그래서 손나은에게 또다른 별명이 붙었는데, ‘손나예쁜’이라는 별칭도 붙었답니다.

 

윤보미도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쁘지만, 예능방송에서 ‘고릴라연기’ 등 너무 망가지는 예능을 많이 해서, 그녀의 예쁜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어버렸답니다.

 

그리고 윤보미는 예쁜 공주 같은 이미지보다는 예능을 잘하는 ‘만능 예능돌’로서의 이미지만 많이 부각되어 버렸지요.

 

그런 반면에 손나은은 데뷔 이래 줄곧 에이핑크 중에서 가장 여성스럽고 청순미 넘치는 신비주의 스타일, 공주 같은 청순미녀 이미지만을 줄곧 유지해왔답니다.

 

거기다가 손나은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날씬한 에스라인 몸메를 자랑하고 있답니다.

마치 신이 빚어놓은 것 같은 손나은의 날씬하게 쫙 뻗은 몸매는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랍니다.

 

얼굴도 귀여우면서 예쁘고, 몸매도 우월하고 거기다가 춤까지 기가 막히게 잘추는 손나은은 에이핑크에서 여신 같은 존재감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아왔답니다.

 

그리고 몇년 전에 손나은은 싸이의 노래 ‘뉴페이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그녀의 청아한 아름다움이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청순미와 여성미를 가득 풍기는 여신 같은 손나은을 대중들을 가장 예쁜 멤버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 활동하는 아이돌 중에서, 레드벨벳의 아이린, 투와이스의 쯔이, 그리고 에이핑크의 손나은을 가장 예쁜 미녀 삼인방으로 꼽을 수 있답니다.

 

적어도 에이핑크의 손나은은 현역 여자이이돌 중 최고의 미인 3위안에 손꼽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보여집니다.

 

손나은이 최근 화장품광고와 좋은데이 광고 등 여러편의 CF광고를 찍은 것은 그녀의 미모가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받고있다는 좋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답니다.

 

또한 손나은은 에이핑크 멤버 중에서 최초로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답니다. 손나은은 80년대 호러영화의 리메이크작인 ‘여곡성’에 여주인공으로 전격 출연해서 큰화제를 뿌리기도 했답니다.

 

비록 손나은이 출연한 영화는 귀신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손나은은 귀신역할이 아닌 여주인공 역할을 연기했는데, 이것은 에이핑크 멤버 중 손나은이 최초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에이핑크 중에서 가장 예쁘다는 평가를 받는 멤버가 손나은인데, 비주얼의 중심 손나은이 최근 성형논란에 휩싸여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손나은은 에이핑크가 컴백하기 직전인 6월경부터,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네티즌들 간에 성형논란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답니다.

에이핑크가 신곡 ‘1도 없어’로 컴백하기 전에 인터넷에 노출된 그녀의 모습은 정말 본래의 손나은 외모와는 여러부분에서 달라져 있었답니다.

 

이렇게 달라진 손나은의 외모를 놓고, 일각에서는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강력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렇지만 또다른 일각에서는 손나은이 성형수술을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래의 컨셉에 맞게 화장을 종전과 다르게 변형했고, 컴백을 위해서 심한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에 얼굴이 달라 보인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연 손나은은 성형을 한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화장술의 변화 때문에 얼굴이 달라보이는 걸까요?

 

손나은의 얼굴은 원래 귀엽고 부드러운 느낌의 청순한 얼굴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변화된 손나은의 얼굴은 눈매가 날카롭고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샤프한 느낌이 강하게 든답니다.

 

그리고 무멋보다도 손나은의 콧날이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답니다.

과거 손나은은 사실 콧대가 높지 않았고, 동그란 형태의 전형적인 동양여성의 코를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손나은은 콧날이 더 높아진 것이 사실이며, 눈매도 윤곽이 매우 뚜렷해지고 날카로와진 모습이랍니다.

 

누가 보더라도 최근의 손나은의 모습은 과거의 손나은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라보인답니다.

 

눈과 콧날 두부분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에, 손나은이 성형을 한 것이 맞다고 보여집니다. 아무리 화장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화장으로서 콧날을 세울 수는 없는 법이랍니다.

 

그런데 몇년전 손나은은 한 방송에 출연해서 자신의 성형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왠만해서 혼자서는 절대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손나은은 왠일인지 최근 최초로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답니다.

 

손나은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전과는 다르게 매우 솔직하고 유머스러운 입담을 과시했답니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손나은은 과거 에이핑크 데뷔 초창기 시절에, 수많은 선후배 남성들이 자신에게 데이트신청을 해왔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답니다.

물론 당시 소속사에서는 에이핑크 멤버들의 연애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나은은 이같은 데이트신청을 모두 다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디오스타’의 MC 윤종신이 대뜸 손나은에게 ‘자연미인이 맞느냐’ 라는 얄궂은 질문을 했답니다.

이에 대해 손나은은 ‘저를 처음 뵙지요?’라면서 윤종신의 질문을 비켜갔는데요.

 

그러자 윤종신이 또다시 ‘만약 성형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형을 잘 한 것이다’라고 언급했답니다.

이러한 윤종신의 언급에 대해 손나은은 ‘관리 좀 하고있어요’라고 솔직한 답변을 했답니다.

 

많은 시청자들로서는 손나은의 ‘얼굴 관리를 한다’는 말을 성형을 한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즉, 손나은은 윤종신의 성형의혹관련 질문을 부정하지만 않고, 솔직한 태도로 긍정하는 말을 한 것이랍니다.

 

한편으로는 손나은이 성형으로 더욱 이목구비가 뚜렷해졌고, 더욱 세련되어 보인다는 좋은 평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에이핑크 멤버 중 손나은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팬들 상당수는 이번 손나은의 외모변화에 적지 않게 실망했을 겁니다.

 

왜냐면 오랫동안 손나은을 좋아했던 팬들은 그녀의 과거의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얼굴을 더욱 좋아했기 때문이랍니다.

 

성형 전의 손나은의 외모는 매우 청순한 이미지였고, 상큼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답니다. 그리고 많은 그녀의 팬들은 그렇게 청순하고 상큼한 손나은의 미모를 좋아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변화된 손나은의 얼굴은 예전의 청순하고 귀여운 모습은 사라지고, 이목구비의 선이 뚜렷해지면서, 매우 세련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답니다.

 

이젠 더이상 과거 손나은의 청순하고 상큼한 모습을 볼 수 없게되어, 많은 팬들이 무척 섭섭해하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예전의 손나은은 성형을 안해도 충분히 예쁜 얼굴이었는데, 굳이 성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랍니다.

 

성형을 하기전의 손나은의 미모는 명실공히 에이핑크의 넘버원이었답니다.

‘에이핑크의 비주얼의 중심’이라는 닉네임도 손나은이 성형하기 전에 얻었던 별칭이랍니다.

 

그런데 굳이 성형을 해서 얼굴에 변화를 줌으로써, 어떻게 보면 손나은의 과거의 얼굴을 좋아했던 팬들에게 매우 커다란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는 것이랍니다.

 

더욱더 예뻐지고 싶은 여자들의 욕망 때문에, 이렇게 무리하게 성형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20,30대 여자연예인의 90% 정도가 성형을 했기 때문에, 손나은이 성형을 했다고 해서 그녀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과거의 그녀의 풋풋하고 귀여운 얼굴을 좋아했던 팬들의 아쉬움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비록 손나은이 성형을 해서 얼굴이 더욱 날카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손나은은 여전히 예쁘답니다.

 

손나은의 외모의 변화에 많은 사람들이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차차 변화된 손나은의 외모에 적응할 것입니다.

 

현재 손나은은 좀 더 세련되고 도시적인 여성의 외모로 바뀌어 있답니다.

이처럼 좀더 세련되고 샤프한 이미지로 바뀐 손나은의 변한 얼굴을 더 좋아하는 팬들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저는 과거 수줍음을 잔뜩 머금은 그녀의 커다란 눈과 통통 부풀어오른 귀여운 볼살, 상큼하고 정감어린 그녀의 동양적인 부드러운 얼굴을 더욱 좋아한답니다.

그런 손나은의 원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움만 가슴에 남아있답니다.

 

그렇지만 변화된 손나은도 여전히 예쁜 것은 사실이기에, 앞으로도 손나은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손나은이 이번에 라디오스타에 혼자 출연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예능프로그램에 더 많이 출연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에 라디오스타에 홀로 출연한 손나은은 말도 자연스럽게 잘하고, 분위기도 잘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무척 신기했답니다.

그동안 손나은은 예능과는 거리가 먼 멤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편견이었다는 것을 이번 라디오스타를 보고서 깨닫게 되었지요.

 

손나은이 에이핑크로서 방송에 나왔을 때, 너무 말을 하지않고 있었기에 그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생긴 겁니다.

이렇게 예능프로에 나와서 자신에 관한 여러가지 사연들을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손나은은 말도 제법 잘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이제 손나은이 한편으로서는 에이핑크의 멤버로서 활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서는 혼자서 많은 예능방송에 출연해서, 자신만의 멋진 매력과 멋진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해나가길 바랍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손나은의 신비주의와는 이별을 고하세요! 말 잘하는 손나은이 또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선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현재 손나은은 걸그룹 에이핑크에서 탈퇴를 한 후,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에이핑크는 손나은이 빠진 4인체제로 운영하게 되었지요.

손나은은 원래 연기자로 성공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녀가 에이핑크에서 탈퇴해서 연기자로 활동하는 것은 예견되었던 일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손나은은 에이핑크를 탈퇴한 후, 드라마 ‘고스트닥터’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드라마 ‘대행사’에도 강한나라는 주인공으로 출연해 인상깊은 연기력을 선보여주었고, 2024년도에는 드라마 ‘멜로하우스’에 역시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나은은 에이핑크를 탈퇴한 후, 오히려 연기자로서 성공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 손나은, 귀신영화 ‘여곡성’ 출연

 

한편 손나은은 공포영화 ‘여곡성’에 출연해서 주인공으로 활약을 펼쳤습니다.

‘여곡성’은 원래 1986년도에 만들어진 귀신영화인데, 이번에 다시 리메이크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이 ‘여곡성’에서 손나은은 중견배우 서영희와 함께 출연을 했는데요. ‘여곡성’은 손나은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라서 대중들의 큰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서영희는 손나은의 시어머니로 분하고, 손나은은 서영희의 며느리로 분해서 서로간의 팽팽한 연기대결을 펼쳤습니다.

 

공포영화 ‘여곡성’은 유서깊은 양반집의 아들의 결혼식날, 그 집안에 원한을 품고있는 악귀가 그 집안에 침투해 들어가서, 그 집안에 세아들들을 모두 죽이면서 그 집안은 풍비박산나게 된다는 줄거리의 공포영화입니다.

 

손나은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셋째며느리 옥분이로 분해서 집안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악귀와 끝까지 맞서서 싸우는, 아주 지혜롭고 용감한 여장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평소에 청순하면서 가녀린 스타일의 손나은이 공포스러운 귀신영화에 출연해서, 어떠한 모습으로 귀신과 싸우게 될지가 관전포인트이지요.,

 

집안을 망가뜨리려는 귀신과 맞서서 집안을 지켜내려는 셋째며느리의 당찬 모습을 손나은이 멋지게 연기를 펼쳐서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손나은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공포영화 ‘여곡성’은 2018년 11월 8일 개봉되어 절찬리에 상영되었지요. 물론 이 영화는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손나은이 첫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나은이 영화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최근 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자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 에이핑크를 탈퇴한 손나은이 더욱 멋지고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쳐서 연기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반응형
Posted by 반헬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