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사람들의 혐오감과 공포감이 함께 작용해서 무시무시하고 참혹한 이미지의 늑대인간의 형태가 창조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렇게 사람들의 공포감속에서 늑대의 난폭하고 잔인한 습성에 과장이 더해지고 어느순간 저주의 대상으로 형상화된 ‘늑대인간’이라는 주제가 탄생하게 되고 이것이 영화화되어,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운 ‘늑대인간’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유럽의 ‘늑대인간’ 영화는 유럽사람들의 늑대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심이 발단이 되어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의 구미호보다도 더 크게 인기를 끄는 인기영화의 케릭터로 발전했다.
이러한 ‘늑대인간’ 영화로서 가장 업그레이드된 영화가 바로 ‘나자리노’인 것이다. 유럽사람의 혐오의 대상이던 늑대와 아름다운 여성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사람들의 혐오감을 넘어
새로운 호기심과 흥밋거리를 제공하면서 늑대인간 영화들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치게 된다.
오랜기간 동안 인간들 주변에서 피해를 끼쳐주던 늑대는 사람의 무한한 상상력이 보태져서 급기야 반인반수의 늑대인간으로 영화속에서 되살아났고,
‘늑대소년’ ‘울프맨’ ‘늑대인간’등으로 늑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이 생겨나게 됐다.
이러한 많은 ‘늑대인간’영화들 중에서 관중들에게 진한 감동과 영화의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었던 늑대인간 영화를 꼽자면, ‘나자리노’를 꼽을 수 있다.
늑대인간 영화 ‘나자리노’는 아르헨티나에서 74년도에 만들어진 영화로, 조시 카메로와 라우타로 무루아가 주연을 맡고 레오르나도 파비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로,
70년대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를 정도로 크게 히트를 쳤던 흥행에도 성공한 화제의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 나자리노는 7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서 최고의 흥행을 거두면서 우리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놓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7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개봉관에서 손익분기점이 5만명이었던 시절에 무려 35만명의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이다. 물론 그해 관객동원 1위에 오르는 금자탑을 세웠을 정도다.
영화만 히트한 것이 아니라, 영화 ‘나자리노’의 주제가인 'When a child is born'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고, 영화와 주제가가 동시에 동반히트를 치는 엄청난 태품을 몰고왔던 영화가 ‘나자리노’이다.
70년대 중반 FM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의 토요일 인기팝송 순위에서 ‘나자리노’의 주제가가 1위를 차지했을 뿐아니라 수개월 동안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로 ‘나자리노’ 주제가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영화와 주제가가 동시에 대히트를 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영화 ‘나자리노’의 감동이 그만큼 크고 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감미롭고 달콤한 멜로디의 영화 ‘나자리노’의 주제가는 7080세대인 올드팬들의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추억같은 아름다운 곡으로 남아있다.
물론 영화 ‘나자리노’도 불우하고 처참한 늑대인간과 아름다운 여인간의 순수하고도 생사를 초월한 사랑이야기에 수많은 관객들이 무한한 감동과 신선한 재미를 느꼈던 것이고, 이 영화는 아마도 7080세대들에게 70년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추억의 영화로 가슴속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 ‘나자리노’가 오랫동안 많은 대중들의 가슴속에 감동을 적셔줄 수 있었던 것은 늑대인간 나자리노와 여주인공 크리셀다의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알고싶다’ 1012회에서는 3천원짜리의 국수로 연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린 대박국수집 여사장 김춘자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다루어서, 시청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경남 김해에서 막국수집을 운영해오던 여사장 김춘자씨는 어느날 갑자기 소리소문도 없이 실종되어 버렸다. 그것도 한참 번성했던 국수집을 나두고서 어디론가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경남 김해에서 맛좋기로 소문난 유명한 맛집을 운영해오던 김춘자씨는 매일같이 하루도 거르지않고, 자신이 운영하던 국수집에 새벽 5시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담백하고 맛깔스러운 국수를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제공해왔던 아주 모범적인 여사장이었다.
맛이 좋기로 소문이 크게 나서, 방송에도 소개될 정도로 김춘자의 국수집은 크게 대박을 터뜨렸고, 장사는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식사때마다 김춘자의 국수집은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부산과 광주, 대구에서도 손님들이 방문할 정도로 큰 성공을 이루었는데, 2009년 5월 19일날 아침, 왠일인지 여사장 김춘자씨는 자신의 국수집에 출근하지 않았으며, 그후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음식점장사가 호황을 누리면서 번영해가고 있던 시기에,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었던 여사장 김춘자씨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만 것일까? 그녀가 실종되었던 2009년 5월 19일 이후, 김춘자 여사장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춘자 여사장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김춘자씨의 소문난 국수맛은 최고급 멸치를 사용한 육수가 맛의 비결이라고 한다.
고작 3천원만 내면 먹을 수 있는 맛좋고 값이 저렴한 김춘자씨의 국수는 하며. 그녀의 국수집에는 빗틈이 없을 정도로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김춘자씨는 특히 맛좋은 국수로 널리 소문이 났는데, 그녀의 국수맛의 비결은 최고급 멸치를 사용한 육수가 맛의 비결이라고 한다.
고작 3,000원의 가격으로 맛좋고 저렴한 김춘자의 국수는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그녀의 국수집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따고 한다.
김춘자의 국수집은 경남 김해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손꼽히던 국수집이지만, 이제 그녀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그 맛깔스럽고 구수한 국수는 다시는 맛볼 수가 없게 됐다.
그녀가 실종된 2009년 5월 19일부터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녀의 국수집은 문이 닫힌채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평소에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과 성실성으로 주위의 칭송을 받았던 김춘자씨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돌연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가출을 했는지, 아니면 납치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살아있다면 자녀들이 있는 자신의 집이나 식당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전혀 나타니지 않고 있어서 실종된 김춘자는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따.
2009년도에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진 김춘자는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소식 한번 안전해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실종되었을 당시 53세였던 김춘자사장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61세가 되는 셈이다. 손님들에게 항상 친절했고 자신의 일에 그토록 성실했던 김춘자사장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2009년도 5월에 실종된 김춘자사장은 2015년도 12월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녀의 자식들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는 그녀의 어머니 김춘자의 소재를 찾기위해서 엄청난 발품을 팔았다고 한다.
자식들입장에서는 만약 어머니 김춘자가 사망했더라도 그녀의 시신만이라도 찾기를 원하고 있지만, 시신조차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사라졌던 마지막날인 2009년 5월 19일 아침 8시경에 국수집으로 출근한 종업원은 평소와 다른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한다.
매일같이 먼저 출근해서 보여야할 김춘자사장이 그날만큼은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김춘자사장이 먼저 출근해서 새벽 5시부터 국수에 들어갈 육수를 한창 끓이고 있어야 정상이지만, 그날 아침에 국숫집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사장은 없었으며, 그녀의 승용차는 골목길에 댕그런히 놓여있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6년동안 국수집을 운영해왔지만, 개업 이래 최초로 김춘자사장의 부재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에, 여종업원은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실종되어 버린 김춘자사장은 그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
그녀의 자녀들은 처음에는 일시적인 가출이 아닌가, 잠시 어딘가 바람을 쐐러간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1년, 2년, 5년, 계속해서 무심한 시간만 흘러가고, 그녀의 행방은 전혀 오리무중으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실종되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매출 1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잘나가는 대박국수집을 운영하던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가출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스스로 가출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춘자사장이 실종되었을 당시에 마지막으로 그녀를 목격했던 장본인은 바로 국수집의 종업원이었다.
종업원의 설명에 의하면, 2009년 5월 18일 밤 9시 30분경에 김춘자사장과 종업원은 마지막으로 국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10시경에 김춘자사장은 자신의 자가용을 탄채로 퇴근했었다고 하며, 이것이 종업원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것으며, 그 다음날 아침부터 김춘자사장은 결근하고는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김춘자사장의 승용차가 가게 앞에 서워져 있었다고 한다. 주인없는 차만 댕그런히 놓여져 있는 것인데, 종업원은 그 차를 갖다놓은 사람은 김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숫집 앞에 놓여져있는 그 차의 앞바튀가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는데, 김춘자사장은 한번도 이런식으로 주차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 다른사람이 그녀의 자동차를 대신 몰고와서, 국수집앞에 세워놓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춘자사장의 승용차를 대신 갖다세워놓은 그 주인공이 김춘자의 실종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춘자사장은 사라졌고, 그녀의 자동차를 대신 갖다놓았다면, 그 사람이 그녀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전날 밤을 기억하는 종업원의 말을 들어보면, 단서가 될만한 부분이 있다. 종업원은 그 전날 밤에 김춘자사장이 퇴근 전에 누군가에게 갖다줄 국수를 만들었고, 퇴근할 때에 그 국수를 자동차로 갖고갔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 ‘김춘자 실종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될만한 형상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실종되었던 5월 19일 새벽 1시 47분경에, 김춘자사장의 무쏘자동차가 국수집 근처로 들어오는 것이 CCTV 영상에 잡혔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이 전날 밤 10시경에 타고나갔던 그 무쏘차가 그 다음날 새벽에 다시 국수집으로 되돌아왔던 것인데, 그 김춘자사장의 차를 몰고왔던 사람은 김춘자사장은 아니었고 중년의 남자라고 한다.
바로 그당시에 김춘자를 대신해서 김춘자의 승용차를 대신 몰고왔던 그 남자가 김춘자를 없어지게 만든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당시 CCTV영상에 김춘자의 차를 대신 몰고와서 주차했던 그남자의 모습도 찍혔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김춘자의 차를 주차하고 나오면서, CCTV에 찍힌 그 남자의 모습은 선명하지가 않고, 모자를 잔뜩 눌러써서 얼굴을 확인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그 CCTV영상을 국과수에도 의뢰해보았지만, 그남자의 얼굴을 판독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재판에서 그 CCTV영상은 전혀 증거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한다.
CCTV영상에는 그 용의자의 옷차림과 그의 걸음걸이만이 어렴풋이 나타났을 뿐이라고 하며, 그남자의 얼굴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을 사라지게 만든 중요한 용의자를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잃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남자가 김춘자사장을 죽인 살인범일 수도 있는 데 말이다.
그런데 이 CCTV영상을 본 김춘자의 아들은 어렴풋이 나온 이 영상속의 주인공을 자신이 알고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김춘자의 아들은 이 CCTV영상속의 남자는 평소 국수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단골손님이었다고 하며, 그는 트레일러기사인 강두식이라고 주장했다.
평소에 어머니 국수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을 종종 보아왔던 아들은, CCTV영상속의 남자가 그 트레일러기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은 그당시 53세의 중년남자로, 그 국수집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종업원들도 얼굴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막연한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강두식을 ‘김춘자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전격 그를 체포해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CCTV영상과 여러정황으로 볼 때에, 사건전날 밤 김춘자사장은 자신이 만든 국수와 과일을 갖고서, 강두식이 있던 트레일러 주차장쪽으로 차를 몰고갔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은 김춘자사장이 실종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김춘자사장을 처치하고 난 후에, 강두식은 증거인멸 차원에서 그녀의 자동차를 다시 국수집앞으로 되돌려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조사에서, 강두식은 CCTV영상속의 인물이 자신이 절대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고 하며, 자신은 그날 결코 김춘자사장을 만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 CCTV영상을 국과수에 의뢰해서 판별을 요구했지만, 국과수에서도 그 CCTV영상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한다.
CCTV영상은 너무 흐릿하게 나왔고 화질이 안좋았기 때문에, 그 남자의 얼굴을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었으며, 단지 그 남자의 체형과 옷차림, 걸음걸이 형태만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가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CCTV영상으로 그 용의자의 얼굴확인은 불가능했지만, 김춘자의 아들과 종업원은 CCTV영상속의 남자가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임을 확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 특이한 걸음걸이나 체형이나 덩치가 국수집에 자주 왔던 트레일러기사 강두식과 너무도 흡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살인사건의 수사에 있어서, 개인적인 판단은 과학적인 수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하며, 국과수의 검사결과를 더욱 존중하고 있는 경찰은 CCTV영상 속의 남자가 강두식임을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과 국과수가 CCTV영상속의 인물이 강두식임을 확신하지 못하면서, 이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버린다.
그런데 이사건은 한 택시기사의 제보로 인해서, 반전이 일어난다. 김춘자사장이 실종되었던 당일 새벽 2시경에, 한 택시기사가 강두식을 김춘자의 국수집에서 태워서 트레일러 주차장으로 내려주었다고 한다.
그 택시기사는 사건당일 새벽 2시경에 김춘자 국수집앞에서 택시를 탔던 강두식의 얼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를 트레일러 주차장에 내려줬다고 한다.
이것은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이 사건당일 새벽에 김춘자의 국수집 앞에 갔었다는 증거가 되며, 그것은 강두식이 김춘자의 자동차를 몰고서 국수집 앞에 주차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CCTV영상속에서 김춘자의 차를 몰고왔던 그 용의자가 강두식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그런데 또다른 중요한 단서가 강두식의 트레일러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강두식소유의 트레일러 속에서 김춘자의 DNA혈흔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춘자가 실종전에 마지막으로 통화를 나눈 사람이 바로 강두식이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가지 단서와 정황증거들이 확보되었고, 드디어 경찰은 강두식이 김춘자사장을 사라지게 만든 강력한 용의자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은 실종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강두식과 통화를 나누고 그가 주문했던 국수와 과일을 자신의 자동차를 이용해서 강두식의 트레일러가 있는 곳으로 날라다 주었을 것이고, 김춘자사장은 강두식의 트레일러 속에서 사고를 당하고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지만 법원에서는 이상하게도 강두식에게 살인죄를 선고하지 않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은 강두식에게 자동차 불법사용만으로 기소를 했을 뿐이며,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두식이 범행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고 하며, 강두식이 김춘자를 살인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강두식이 김춘자를 살인했을 당시에, 살인도구로 사용된 흉기나 김춘자의 시신, 또는 그 당시의 목격자 등 살인과 관련된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찰은 강두식에 대해서 살인죄로 기소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강두식의 트레일러 속에서 나온 김춘자의 혈흔애 대해서 강두식은 김춘자가 흘린 코피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강두식의 말에 의하면, 트레일러 속에서 강두식과 김춘자는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김춘자가 코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강두식은 자신의 목과 팔에 난 상처도 고향집에 가서 풀베다가 난 상처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강두식이 범인일 것이라는 여러 가지 정황증거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춘자 살인의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였기에, 용의자 강두식을 살인죄로 처벌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특히 피해자 김춘자의 시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사건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잃게만든 것이다.
피해자의 시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 피해자가 현재까지도 죽지않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개연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시신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인죄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살인죄 재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서는 살인하는 데에 사용된 범행도구와 그 범행도구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 그리고 그 범행도구의 사용에 의해서 죽은 피해자의 시신의 존재라고 한다.
이렇게 결정적인 살인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황증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의자 강두식은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됐고, ‘김춘자 실종사건’은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강두식은 그당시 자동차를 불법사용한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1년이라는 가벼운 징역형만을 선고받고 복역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춘자 실종사건’과 관련해서 또다른 정황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실은 김춘자가 오랫동안 트레일러기사 강두식과 돈거래를 해온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김춘자는 죽기 전에 강두식에게 11번이나 돈을 송금해주었다고 하며, 총 5천만원의 돈을 강두식에게 온라인 송금해준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주변 부동산업자의 전언에 따르면, 김춘자는 3층짜리 건물을 건축할 계획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춘자는 건물건축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 투자처가 바로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이었다고 한다.
김춘자사장은 강두식에게 1년 동안 자신의 돈을 투자했던 것인데, 김춘자가 사라졌던 마지막날 밤 그녀는 그동안 투자했던 돈을 받기 위해서, 강두식을 찾아갔던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돈과 관련된 살인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돈을 빌려줬다가 돈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 돈을 빌렸으나 갚을 상황이 안된 사람이 돈을 갚지않으려고 살인을 저지른 경우가 많이 일어난다.
김춘자가 전혀 남남의 관계인 강두식에게 거금의 돈을 그냥 줬을 리는 없고, 분명히 그에게 돈을 투자했거나, 돈을 빌려 줬을 것이며,
사건 당일날 밤 김춘자는 자신의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강두식에게 갖을 것이고,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두사람간에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두사람간에 돈 때문에 트레일러 안에서 충돌이 있어났다는 것은, 강두식의 트레일러 속에서 검출된 김춘자의 혈흔을 보면 충분히 추정할 수가 있다.
김춘자사장은 제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이므로, 그 당시까지 나타났던 여러 가지 정황들을 살펴보더라도 그녀는 강두식에 의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두식은 구체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차량 불법사용 혐의만으로 1년의 징역형만 선고받고 말았을 뿐이다.
국수집 여사장 김춘자는 강두식의 재산증식을 위한 목적달성에 사용된 도구일 뿐이었며. 강두식이 목적달성이 이루고 난 후에, 더이상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어진 김춘자사장은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제거대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즉 김춘자사장은 투자의 목적으로 돈을 지속적으로 강두식에게 송금해주었지만, 처음부터 사기를 쳤던 강두식은 나중에 자신의 사기행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그는 김춘자사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강두식은 김춘자의 국수집을 자주 드나들면서, 순진한 김춘자사장에게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현혹시켜서 그녀의 돈을 투자하게 만들었지만, 이것은 그녀의 돈을 가로채기 위한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결국 김춘자사장이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고 찾아오자, 자신의 사기행각을 감추기 위해서, 더 이상 필요가치가 없어진 김춘자사장을 제거하는 것이 그가 빛진 돈을 탕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은 이제는 돈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더 이상 골치아픈 존재로 전락하고만 김춘자사장을 자신의 트레일러로 유인해서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면서,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원래 강두식은 김춘자사장 말고도 다른 음식점들의 여사장들에게도 접근해서 큰돈을 벌게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현혹시켜서 많은 돈을 편취해갔다고 한다.
그래서 강두식은 여러 음식점사장들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를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강두식의 여러 사기행각들을 보더라도, 강두식이 김춘자사장에게 사기행각을 벌여서 돈을 갈취해갔다는 것은 충분히 추정해볼 수 있는 부분이며, 그 돈을 갚는 문제 때문에 그녀를 살해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강두식은 여러곳의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면서 여사장들만을 골라서, 돈을 갈채하는 사기행각을 많이 벌여왔다고 한다.
그 후 강두식은 사람들에게 투자를 미끼로해서 사기를 쳐서, 사기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2016년 4월에 출소했다고 한다.
주변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강두식은 도박에 깊숙이 빠져들어서 3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도박으로 날렸다고 한다.
이렇게 도박으로 인해서 입은 손실을 매꾸기 위해서, 강두식은 순진한 여러 음식점 여사장들에게 접근해서 돈을 사기치고 편취해간 것으로 보인다.
김춘자사장이 트레일러기사 강두식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그녀의 시신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여러가지 정황증거들은 강두식이 김춘자사장을 살해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지만, ‘김춘자 실종사건’은 시신이나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범인을 알고서도 처벌하지 못하는 매우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이 되어버리고 있다.
손님들에게도 친절하고 성실했던 김해국수집 여사장 김춘자 실종사건은 자칫하면 영구 미제살인사건으로 남게될지도 모른다.
경찰이 끝까지 수사를 계속 진행해서 ‘김춘자 실종사건’의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해, 범인을 강력하게 처벌해주길 바란다.
8년 동안이나 베일속에 가려져있던 김춘자 실종사건이지만, 경찰이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총동원해서 합리적인 수사를 벌여나감으로써, 반드시 진짜범인을 잡아 법정최고형으로 처벌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