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이스라엘과 중동간의 6일전쟁의 결과와 원인

사랑방 이야기 2018. 1. 12. 13:08

3차 중동전쟁, 이스라엘의 6일전쟁의 기적과 결과.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과 아랍연맹간에 벌어진 ‘6일전쟁은 제3차 중동전쟁이라고도 불리우고 있지요.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 4개국이 연합해서 벌어진 이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랍지역에서 가장 작은 영토와 가장 적은 인원을 보유한 이스라엘이 당시 아랍의 강대국인 이집트를 비롯한 4개국의 아랍국가들을 상대로 확실하게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던 ‘6일전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의 전쟁이었습니다.

 

196765일부터 10일까지 딱 6일간 전쟁이 벌어진 이유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전쟁이 멈추었기 때문이랍니다.

 

아랍지역에서 제1차 중동전쟁과 제2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에는 늘 살얼음을 밟는 듯한 정치적·군사적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지요.

 

 

1차 중동전쟁과 제2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패한 이집트와 중동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나세르 지도자가 국명을 아랍연합 공화국이라고 부르면서, 아랍국가들의 통합을 부르짖었고, 이집트를 아랍국가의 맹주로 만들기 위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나갑니다.

이런 와중에 이집트의 나세르는 아랍국가들의 공적인 이스라엘에 대해 연일 정치적 공세적 발언을 이어나갑니다.

 

19675월 이집트는 홍해 사이에 있는 티란해협을 봉쇄하고 이스라엘의 에일라트 항구 접근을 막는 조치를 취합니다.

 

 

또한 이집트의 나세르는 이스라엘과 전쟁이 벌어지면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전쟁분위기를 돋구고,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게 됩니다.

 

실제로 이집트는 비무장지대로 남아있던 시나이반도에 무장병력들을 전진배치시켜서, 군사적 긴장을 한껏 높여놓습니다.

 

이집트 지도자 나세르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아랍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함인데, 반 이스라엘 행보를 통해서, 아랍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이집트 주도하에 아랍국가들을 통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아랍지역의 군사적 강국인 이집트의 이같은 반이스라엘 조치들이 주변 아랍국가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집트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집니다.

 

이집트의 티란해협 봉쇄와 군사적 전진배치에 위협을 느꼈던 이스라엘은 먼저 이집트에 선제공격을 감행합니다.

 

 

196765일 이스라엘은 수많은 전투기들을 출전시켜서 이집트의 공군기지를 맹렬히 폭격하였고, 기습을 당한 이집트는 자국의 공군기들을 출전시켜서 대항하지만, 곧바로 이집트 공군은 궤멸당하고 만답니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군참모총장이 지휘한 이 당시의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은 바로 예방전쟁이라고 불리우게 되며, 이러한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공격은 대성공을 거두고 이집트는 참패를 당하고 맙니다.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은 이집트 공군기지로 날아가서 맹폭격을 가해고, 이집트 전투기들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는데,

이당시 이집트는 공군기 450대 중 300대가 파괴될 정도로 엄청난 참패를 당했고, 이스라엘은 완전한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공군전투에서 승리를 점한 상태에서, 이집트군과의 지상전투에서도 또다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이스라엘의 가공할만한 기습공격에 놀란 이집트군은 시나이반도에서 곧바로 군대를 철수하고,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전쟁에서 밀리게 된 이집트의 나세르는 이스라엘과 국경분쟁을 겪고있는 시리아와 요르단, 레바논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해줄 것을 요청하게 되고, 이들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도 전쟁이 벌어집니다.

 

전쟁이 아랍주변국가들로 확대되어 나가자, 이스라엘은 신속하게 공군기를 출동시켜서 시라아, 요르단, 레바논의 공군기들을 격파해버렸고, 이들 국가의 공군기 100대가 파괴되어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이들 국가와 지상전투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는데, 골란고원을 지키던 시라아군은 이스라엘군의 기습공격에 놀라서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고,

동예루살렘과 요단강 서안에 출동해있던 요르단군도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고 퇴각해버립니다.

 

‘6일전쟁은 이스라엘군의 기습공격이 큰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아랍 4개국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쟁취한 전쟁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고작 800명만이 사망한데 반해, 아랍연합군은 무려 21,000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전쟁으로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 요단강 서안, 골란고원을 새로 얻게된 이스라엘은 영토가 3배로 크게 확장되었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요르단이 점령하고 있던 동예루살렘과 요단강 서안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당시 동예루살렘과 요단강 서안지역에 살고있던 팔레스타인 30만명이 살던 지역을 떠나서 난민이 되었습니다.

 

65일부터 610일까지 전쟁이 벌어진 후, 유엔의 권유에 따라 611일날 즉각적으로 휴전협상이 벌어졌고, 전쟁에서 크게 패한 이집트등 아랍국가들은 휴전협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제3차 중동전쟁은 6일만에 전쟁이 종료되었답니다.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의 병력은 5만명에 불과했지만, 아랍연합국들의 병력은 24만명으로 이스라엘군은 절대적으로 병력이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군은 뛰어난 전술과 선진화된 작전수행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공군기와 최첨단 무기들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무기의 성능면에서 아랍군대보다 훨씬 우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군은 전체적인 병력규모면에서는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뛰어난 전술작전 능력과 선진화된 무기체계, 그리고 전격적인 기습공격으로, 낙후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아랍국가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숫자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전술작전으로 싸워서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전쟁이었습니다.

 

‘6일전쟁은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영광을 안겨주었고, 아랍국가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치욕과 수치를 안겨주었답니다.

 

‘6일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이 얻었던 영토인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는 이집트에 되돌려 주었지만,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요단강서안은 지금까지도 계속 점령하고 있어서, 중동의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획득했던 요단강 서안지역에는 현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이 함께 살고 있어서, 두 민족간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답니다.

 

 

이스라엘이 67‘6일전쟁때 획득하여 지금까지 계속 점령하고 있는 요단강 서안지역에서는 아직도 300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들이 거주하고 있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들에게 요단강 서안의 일부지역(18%)만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팔레스타인들과 이스라엘인 간의 갈등과 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서,

언젠가 미래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또는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과의 6일전쟁에서 전쟁승리의 영광과 넓은 영토를 얻었지만, 미래에 가장 큰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독립문제를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요단강 서안지역에서, 팔레스타인들의 독립운동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6일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50년간 계속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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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여아 고준희양 실종살해사건 사망원인, 친부 암매장

사랑방 이야기 2018. 1. 11. 22:36

전주 고준희양 사망사건, 시신암매장 살해범은 친부 또는 내연녀

 

전북 전주에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5세 여아 고준희양은 친아버지의 자백으로, 4월달에 사망하였으며 군산의 야산에서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20171229일에 고준희양 친부와 계모의 어머니가 함께 고준희양 시신유기혐의로 전격 구속되었고, 31일날에는 준희양 친부의 내연녀도 구속되었답니다.

 

고준희양 친부의 내연녀가 이번에 구속된 이유는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죽은 고준희양 시신을 유기하고 암매장하는 데에, 내연녀도 함께 가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랍니다.

 

처음에는 준희양 친아버지와 내연녀의 어머니 두사람이 준희양 시신을 함께 유기하고 암매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속된 준희양 친부에 대해 정밀조사한 끝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1231일날 전주지방법원은 내연녀(준희양의 계모) 이씨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이유로 내연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전주 덕진경찰서는 내연녀를 전격 구속했습니다.

 

 

이로써 전주 고준희양 실종암매장사건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습니다.

, 고준희양 사망과 암매장에 관련된 아버지와 의붓 외할머니, 계모 등 세사람이 모두 구속되었고, 수사에 급물살을 타게 되었답니다.

 

경찰에 구속되어 강도 높은 조사를 받던 고준희양 아버지는 당초의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이렇습니다.

 

당초 고준희양은 20171118일날 실종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준희양 아버지가 준희양이 1118일날 실종되었다고 전주 덕진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뻘건 거짓말이었습니다. 경찰이 준희양 친부를 구속하고 집중추궁한 끝에, 준희양 아버지로부터 진술번복을 이끌어냈답니다.

 

고준희양 아버지는 작년 11월이 아닌 4월달에 준희양이 사망했고, 사망한 준희양 시신을 군산의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자백했답니다.

 

 

그러니까 준희양이 1118일 전주 우아동의 의붓 외할머니집에서 실종되었다고 하는 첫진술은 모두 거짓말임이 드러났답니다.

고준희양 아버지와 계모, 의붓 외할머니 등 세사람이 짜고서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랍니다.

 

고준희양은 외할머니집이 아닌 아버지와 내연녀가 함께 살고있는 아파트집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내연녀(준희양 계모)가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426일 낮부터 준희양은 몸이 아팠다고 하며,

그 다음날인 27일 아침에 준희양을 승용차에 실고서 이동하는 과정에서 준희양은 숨졌다고 하며, 이후 숨진 준희양 시신을 차로 실고가서 군산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준희양의 시신을 군산의 야산에 암매장하고 유기하는 데에 준희양 아버지와 의붓 외할머니 뿐만아니라, 내연녀도 함께 동참했다고 합니다.

 

 

고준희양 사망원인

 

그렇다면 고준희양은 어떻게 사망하게 된 것일까요?

 

경찰조사에서 고준희양 친부는 준희양을 결코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답니다. 그런데 경찰의 집중적인 추궁 끝에, 준희양 친부는 준희양을 폭행한 사실을 자백했답니다.

 

 

준희양이 사망하기 하루 전날인 426일날에 준희양 친아버지는 운다는 이유로 준희양을 발로 세차례나 밟았다고 합니다.

 

친부가 폭행한 전후로 준희양은 몸이 아팠다고 합니다. 아마도 친부가 준희양을 폭행했기 때문에 준희양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고준희양은 사망하기 하루전날에, 다리를 다쳐서 발에서 고름이 나왔다고 하는데, 친부와 계모는 전혀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6일 저녁에 준희양이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부가 준희양을 발로 밟는 등 폭해을 했다고 합니다.

 

준희양 친부가 발로 밟는 등의 폭행도 준희양을 죽음으로 이르게 만든 원인의 하나로 보입니다. 물론 준희양 아버지는 자신이 준희양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요.

 

고준희양이 사망할 당시에 친부의 내연녀도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하며, 준희양 시신을 암매장할 때에도 함께 도와줬다고 합니다.

고준희양 아버지는 내연녀도 준희양을 자주 폭행했다고 진술했답니다.

 

그러니까 고준희양이 사망하기 전날에 친부도 준희양을 폭행하고 계모도 준희양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고준희양 친부는 준희양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과 내연녀가 준희양을 구타한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직도 준희양 친부는 준희양은 몸에 아파서 자연사한 것처럼 진술하고 있지만, 죽기 하루전날까지 준희양은 아버지와 계모로부터 여러번 심한 구타와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고준희양의 사망은 아버지나 계모로부터 구타를 당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답니다.

 

아직까지 고준희양의 정확한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준희양 시신 검식결과, 준희양의 뒤쪽의 갈비뼈 3대가 부러져있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하는데요.

 

준희양 아버지는 준희양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자신과 계모가 준희를 폭행한 것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준희양이 사망하기 하루전날에 계모와 아버지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한 것이 준희양의 사망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답니다.

 

준희양 사망과 관련해서, 우리가 현재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준희양은 친부와 계모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해서 사망했거나, 학대로 인해서 죽었을 수도 있답니다. 어쩌면 친부나 계모가 준희양을 직접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물론 가해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정황근거들을 종합해보면, 고준희양은 아버지나 계모로부터 폭행치사 또는 학대치사를 당했거나, 직접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준희양은 절대로 자연사하거나, 단순히 병사한 것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2017426일 고준희양이 사망할 당시의 정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작년 426일날 준희양이 몸이 몹시 아팠다고 하며, 그 다음날에 아버지와 내연녀가 준희양을 자동차에 태우고 가고있을 때에, 준희양은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이 당시 준희양이 아팠을 때와 숨을 거두기 전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친부와 계모가 119구급대에 전화를 해서 구조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준희양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준희양 친부나 계모는 119에 구조요청을 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지요.

그리고 준희양이 죽고난 후에 그 시신을 엉뚱하게도 내연녀의 어머니집으로 데려갔다가, 다시 군산의 야산으로 이송해서 암매장해버린 것입니다.

 

그당시 제일 먼저 해야하는 것은 몸이 아픈 준희양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받게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픈 준희양을 그냥 방치하고 있다가,

준희양이 사망하자 서둘러 준희양을 암매장한 것은 이들이 준희양을 폭행치사 또는 학대치사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랍니다.

 

어쩌면 친부와 내연녀가 준희양을 직접 살해했을 수도 있답니다.

당시 준희양은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이 약했다고 하며 내연녀의 아들과도 종종 다투었다고 하는데요.

 

친부와 내연녀가 함께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준희양이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두사람이 공모해서 준희양을 살해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답니다.

 

, 고준희양의 사망원인은 다음의 3가지 중 하나라고 판단됩니다.

 

1 학대치사 또는 폭행치사

2 밥을 굶기는 등 유기치사

3 직접 살해

 

 

 

고준희양이 폭행치사 또는 살해당했을 근거들

 

고준희양의 사망원인은 아버지나 계모의 지속적인 폭행에 의한 학대치사 또는 폭행치사이거나, 아픈 준희양을 고의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게 하거나, 밥을 굶겨서 죽이는 유기치사, 그리고 두사람이 준희양을 직접 죽이는 살해의 세가지 중 하나일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와 계모가 준희양을 살해했거나, 폭행치사했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아픈 준희양을 병원에 한번도 데려가지 않았다는 것과 사고 전날 준희양을 두사람이 번갈아서 폭행했다는 것이 그 근거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아버지와 계모가 준희양의 사망사실을 계속 숨겨왔다는 점도 이들의 살해나 폭해치사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답니다.

 

자신의 자식이 죽었는데, 사망신고도 하지않고, 죽은 사실을 8개월 이상 계속 숨겨왔다는 사실과 이미 죽은 아이에 대해 실종신고를 했다는 점은 살해 가능성을 높여놓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준희양의 죽음을 숨겼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뭔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준희양 죽음에 자신들이 어떤식으로든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 준희양 죽음을 숨겨올 수밖에 없는 것이랍니다.

 

또한 친부와 계모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에서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이 혈흔에서 준희양과 친부, 계모의 DNA가 함께 검출되었다고 하는데요.

 

 

 

어것은 준희양이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친부와 계모의 어떤 행동이 있었다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답니다이것도 준희양이 폭행치사나 살해되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한 고준희양의 감식결과, 준희양의 갈비뼈가 3대가 부러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것은 누군가의 외력이나 구타에 의해서 갈비뼈가 부러진 것을 의미하므로, 이것도 준희양이 폭행치사나 살해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근거는 또 있습니다. 준희양이 사망하기 전인 3월달에 아버지와 계모와 함께 살고있을 때에 준희양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린이집 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319일날 어린이집에 왔던 준희양은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교사들이 치료를 해줬다고 합니다.

또한 그당시 준희양은 식사를 하지못할 정도로 혀가 부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준희양은 머리에 봉합수술을 받았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흔적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이당시는 고준희양이 친부와 계모와 함께 살고있을 때인데, 이들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학대를 받았다는 또다른 근거가 될 수 있답니다.

 

, 준희양은 친부와 계모의 아파트에 함께 살고있는 동안에, 친부와 계모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등 학대를 계속 받았다는 것이며, 이런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들이 준희양을 죽음으로 몰고간 근본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준희양의 친부와 계모는 준희양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증거들을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친부와 계모가 준희양을 어떤 방법으로든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답니다.

 

만일 친부와 계모가 준희양을 폭행치사 또는 살해했다면 그 살해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준희양은 20171월달까지 친모와 함께 살았는데, 친모가 준희와 2명의 아들을 포함해서 3명의 자녀를 혼자 키웠다고 합니다.

 

준희양 친부는 옆집에 사는 지금의 내연녀와 눈이 맞아서, 준희양 친모를 버렸다고 하는데요.

 

준희양 친모는 준희양 친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였고, 겅제적으로 너무 열약한 상태라서 혼자서 자식 3명을 키우기가 힘들어서 준희양을 아버지집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년 3월달부터 준희양은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계모의 아들과 함께 살게되었지요.

그런데 준희양은 미숙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몸이 약해서 갑상샘 기능 저하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준희양이 몸이 약하고 병치레를 자주 하고, 또한 한 살 많은 계모의 아들과 종종 다투었기 때문에, 아마도 친부와 계모는 두사람의 결혼생활에 준희양이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끝에, 준희양을 사망게 이르게한 것으로 판단된답니다.

 

5살베기 어린 고준희양을 친아버지와 계모가 공모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하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으며, 준희양이 너무도 불쌍하고 가엾기만 합니다.

 

자기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어린아이를 돌보아주기는 커녕, 폭행치사나 학대치사로 사망에 이르게 한 행동은 인간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될 아주 잔악스러운 악행이 아닐 수 없답니다.

 

더욱이 친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신의 나이 어린 친딸을 이렇게 잔안하게 폭행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친아버지라는 사람은 자신의 딸이 죽은 이후에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연극까지 꾸몄다고 하니,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인간말종이 아닐 수 없으며, 사이코패스로 보입니다.

 

전주 고준희양 사건은 경찰이 더욱 치말한 수사를 벌여 이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내서, 이들이 범행이 들어날 경우 반드시 법정최고형으로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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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219’ 홀리 홈 대 크리스 사이보그 페더급타이틀전 경기, 홀리 홈 판정패

 

크리스 사이보그 전적 - 211911무효, 172cm (나이 33)

홀리 홈 전적 - 1114패키 172cm (나이 35)

(경기후 전적)

 

오랜만에 UFC의 여자격투기 최강을 가리는 볼만한 경기가 펼쳐졌다.

 

12312017년의 마지막 날에, 미국 라스베이거스 티모바일 아레나에서

벌어진 ‘UFC219’의 여자페더급타이틀전 경기에서 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가 도전자 홀리 홈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3-0 판정승을 거두었다.

 

여자 밴텀급챔피언 출신인 홀리 홈은 외곽을 돌면서 아웃파이팅을 펼치면서 날카로운 펀치를 날렸고,

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는 강력한 훅과 킥을 날리면서 홀리 홈을 압박하는 등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진 끝에, 챔피언 사이보그의 근소한 판정승으로 끝났다.

 

20177월 토냐 어빈저를 KO로 물리치고 UFC 여성패더급 챔피언에 올랐던 크리스 사이보그는 가장 강한 도전자 홀리 홈을 물리치고 1차방어전에 성공함으로써, 롱런가도를 달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는 원래 인빅타FC 여자페더급챔피언으로 3명의 도전자들을 모두 두들겨패고 KO로 물리친 막강한 펀치력과 타격기술을 지닌 최강의 여자파이터로 소문난 선수다.

 

크리스 사이보그는 201811패의 전적에서 88%KO율을 지닌 여자선수로서는 가공할만한 KO율을 기록하고 있는 KO머신이다.

 

그녀가 만난 왠만한 선수들은 모두 그녀의 막강한 강펀치와 무자비한 타격을 받고 초반에 KO되기가 일쑤일 정도로, 크리스 사이보그는 여자격투기계에서는 사실상 적수가 전혀 없는 최강의 파이터로 명성이 높은 선수다.

 

그런데 크리스 사이보그에게 도전한 홀리 홈은 비록 판정패하기는 했지만, 아웃파이팅을 펄치면서, 날카로운 펀치와 킥을 터뜨려서 챔피언 사이보그의 코피를 터뜨릴 정도로 사이보그를 많이 괴롭히는 등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쳐서 눈길을 끌었다.

 

 

여자격투기계의 최강의 챔피언이라고 불리우던 크리스 사이보그는 비록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1회전부터 3회까지 내내 코피를 흘리면서 경기를 치를 정도로 고전을 해야만 했고, 경기 내내 코피를 흘리는 등 체면을 꾸기게 됐다.

 

도전자 홀리 홈은 2015년는 전설의 밴텀급챔피언인 론다 로우지를 단 2회에 완벽하게 KO시키고 여자 밴텀급챔피언에 오르면서, 큰 인기와 화제를 모았던 선수다.

 

그렇지만 홀리 홈은 1차방어전에서 안타깝게도 미샤 테이트의 쵸크기술에 걸려서 타이틀을 잃게 되었고,

그 후 20172월달에 저메인 드 란다미와의 페더급타이틀전에서 판정패를 하는 등, 석연치않은 경기를 펼치면서 3연패를 당하였다.

 

 

 

이렇게 3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홀리 홈은 20175월달 베치 코헤이아와 겨뤄 강력한 하이킥으로 3회전 KO승을 거두면서, 다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너무도 막강한 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에게 판정패함으로써, 결국 무관의 제왕으로 남게 됐다.

 

두 선수 경기의 채점결과는 49-46. 48-47, 48-47으로, 챔피언 사이보그가 근소한 차이로 판정승을 거뒀다.

 

크리스 사이보그는 여성격투기선수 중 가공할 만한 KO펀치를 보유한 무시무시한 여성파이터로서, 과거 론다 로우지도 그의 도전을 피할 정도로 막강한 여자파이터이다.

 

이번 경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사이보그의 완벽한 승리를 점쳤을 정도로 그녀의 승리가 예상되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사이보그는 그녀의 경기경력에서 최초로 코피를 흘리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고,

비록 승리는 했지만 도전자 홀리 홈을 확실하게 KO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홀리 홈이 조금만 더 적극적인 파이팅을 펼쳤더라면, 어쩌면 무승부도 가능했을 정도로 홀리 홈이 선전한 경기였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홀리 홈은 사이보그에 패배함으로써 최근 14패를 기록하는 등 하향세를 겪고 있어서, 앞으로 그녀의 UFC에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고, 그녀의 앞길이 불투명하게 됐다.

   

1라우드부터 5라운드까지 홀리 홈은 아웃파이팅을 펼치면서 치고빠지는 전법과 클린치전법을 펼쳐서, 사이보그의 인파이팅공격을 피해 다녔고, 반면 크리스 사이보그는 홀리 홈을 따라다니면서 강력한 펀치를 날리면서 압박작전을 펼쳤다.

 

 

 

전반적으로 강펀치를 자주 적중시켰던 크리스 사이보그가 점수면에서 다소 앞섰지만, 홀리 홈이 간간히 던진 날카로운 펀치와 킥이 사이보그의 안면에 터지면서 크리스 사이보그는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코피를 흘리면서 경기를 해야만 했다.

 

반면 홀리 홈은 사이보그의 강편치를 여러번 맞아서 오른쪽눈이 퉁퉁 부어올랐다.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두선수가 날카로운 펀치와 킥을 주고받으면서 난타전을 벌였고,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홀리 홈이 종종 클린치작전을 펼쳐서 사이보그의 러슁파이팅이 여러번 차단당하곤 했다.

 

 

  그렇지만 3라운드 종료 무렵에, 사이보그의 강력한 펀치 3방이 홀리 홈의 안면에 적중되면서, 홀리 홈은 큰 데미지를 입고 그로키상태로 몰렸지만, 공이 울려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회전 후반부분에 홀리 홈이 강력한 좌우 스트레이트펀치를 사이보그의 얼굴에 터뜨리면서, 사이보그는 또다시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홀리 홈은 치고 빠지는 아웃파이팅과 클린치기술로 사이보그의 강력한 타격공격을 어느정도 봉쇄할 수 있었지만,

사이보그의 강펀치와 킥이 간간히 홀리 홈의 안면에 적중되면서, 사이보그가 점수면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고, 경기결과는 크리스 사이보그의 3-0 판정승으로 귀결됐다.

 

이 경기로 인해서, 크리스 사이보그는 자신이 UFC 여자격투기계의 최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해 보였고, 홀리 홈은 자신의 두번째 UFC 챔피언의 꿈이 무산된 아쉬운 경기가 되고 말았다.

 

홀리 홈을 이긴 사이보그의 다음 경기상대가 누군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화이트 UFC대표가 사이보그의 다음 경기상대로 아만다 누네스를 지목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15일 화이트대표는 야후스포츠와의 회견에서, 밴텀급챔피언 아만다 누네스가 크리스 사이보그와 경기를 갖고 싶어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두선수간 경기를 성사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화이트대표는 같은 UFC의 여자밴텀급챔피언과 여자페더급챔피언간의 대결을 추진할 의도를 갖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선수간의 대결을 아만다 누네스가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크리스 사이보그는 아만다 누네스와의 경기를 별로 탐탐치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사이보그는 페더급체급의 파이터를 도전자로 맞기를 원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사이보그는 자신의 SNS에 올린글에서 페더급출신의 여러 선수들에게 도전할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연 앞으로 밴텀급챔피언 아만다 누네스와 페더급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간 경기가 성사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데, UFC대표의 의지가 워낙 큰 만큼, 두챔피언 간의 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UFC219’ 크리스 사이보그 대 홀리 홈 경기 동영상

 

 

 

 

 

 

 

 

홀리 홈 대 베치 코헤이아 여자밴텀급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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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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