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미녀 신은하의 미모와 언니 신은희, 탈북스토리

연예인 핫토픽 2018. 2. 13. 19:04

이만갑탈북녀 신은하 탈북이야기와 나이, 언니

 

이만갑에 나오는 탈북녀들 중 미모면에서 김아라와 함께 톱으로 손꼽히는 탈북여성이 바로 신은하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만갑에 나오는 탈북여성 중 김아라가 가장 예쁘다고 하고, 또다른 사람들은 신은하가 가장 예쁘다고 할 정도로,

방송 이만갑에서 신은경은 미모를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탈북미녀랍니다.

 

방송 이제 만나러 갑시다에서 항상 맨 앞줄에서 천사 같은 초롱초롱한 커다란 눈망울과 다소곳한 환한 모습으로 앉아서, 이만갑방송을 화사하게 빛을 내주는 청순가련형의 탈북미녀 신은하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신은하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신은하는 중앙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왔으며, 현재 나이는 31살이며, 북한에 있을 때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신은하는 2003년 탈북해서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남한으로 입국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북한에서도 공주처럼 다복한 집안에서 귀여움 많이 받고 자랄 것 같은 귀티 나고 우아하고 세련된 미모를 자랑하는 신은하이지만, 그녀가 북한에서 겪은 탈북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드라마보다도 더 드러매틱한 험난하고 기구한 탈북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외관으로 보기에는 마치 공주처럼 귀티가 줄줄 흐르고 부잣집 외동딸 같이 우아하고 예쁘장한 신은하가 북한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시련속에서 살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여러번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살아남은 그녀의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이야기는 엄청난 놀라움과 충격을 주고 있답니다.

 

북한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결국 탈북에 성공했던 심은하의 기적과도 같은 탈북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은하의 기막힌 탈북스토리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던 신은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족전체가 탈북한 케이스랍니다.

 

신은하의 나이 12살 때에 언니 신은희와 함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무작정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탈북해 들어갔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가족이 탈북하게 된 이유는 종교활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신은하의 어머니는 중국을 오고가면서 보따리상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중국의 한 무역상으로부터 녹음테이프들을 건네받았고, 그것들을 북한의 주민들에게 나눠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런데 그 테이프는 목사의 설교와 찬양 내용이 들어있는 기독교홍보 테이프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홍보용테이프인 줄도 모르고,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그 테이프를 갖고 북한으로 돌아왔던 어머니는 그만 북한 보위부요원에게 곧바로 발각되고 말았답니다.

 

잘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종교활동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테이프를 소지하고 있다가 걸린 어머니는 북한당국으로부터 곧 처벌받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됐고,

신은하의 부모님은 12살의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를 데리고 서둘러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네식구는 처음에는 무작정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의 왕청으로 갔답니다.

 

신은하가족이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에 중국 공안당국으로부터 세 번이나 검열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중국신분증이 없었던 신은하와 가족들은 중국 공안요원으로부터 검열을 당하기만 하면, 곧바로 적발되어서 북한으로 다시 송환될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 속에서, 신은하와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잘 모르는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 번이나 마주친 중국 공안요원들은 이상하게도 신은하와 그 가족을 검열하지 않은 체 그냥 통과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이 세 번의 위기의 상황을 무사히 돌파한 신은하의 가족에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랍니다.

 

이렇게 중국 공안요원들을 따돌린 신은하가족은 왕청에 있는 중국의 지인의 집에 찾아가서 그 집에 언쳐서 함께 살게 되었답니다.

 

신은하가족이 들어가 살게 된 그 집 주인은 조선족인데, 과거에 북한을 드나들면서 보따리 장사를 했었는데, 북한에서 신은하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랍니다.

 

그런데 신은하가족이 탈북해서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오니까, 테도가 돌변해서 신은하가족을 마치 머슴처럼 부려먹었다고 합니다.

과거에 신은하 부모님이 도움도 주고 했었는데, 처지가 바뀌니까 우습게 보고 신은하 부모님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겁니다.

 

결국 신은하가족은 그 중국 조선족지인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그 집에서 쫒겨났고, 네명의 식구가 정처없이 떠돌다가 산 속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속을 헤메다가 남들이 버려놓은 빈 닭장을 발견하였고, 신은하의 가족은 쥐들이 들끓는 그 닭장에 들어가 북한보다 더 못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중국 지인으로부터 쫒겨났던 그 시기가 추운 겨울철이라서, 닭장으로 사용하던 빈 움막집도 신은하가족에게는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신은하가족은 북한에서 체포되기 직전에 도망치듯이 탈출해 나오느라, 돈도 폐물도 없이 빈손으로 나왔고,

중국 지인집에서도 쫒겨나왔기 때문에, 먹고살 수 있는 식량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어머니와 아버지 네식구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빈손으로 산속의 움막집에 들어와서 살아가야만 하는 암담한 상황에 처했답니다.

 

신은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산속을 헤메였는데, 마침 쥐굴을 발견하였고, 그 쥐굴속에는 쥐들이 저장해놓은 쌀과 옥수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쥐들이 겨울철에 먹고살기 위해서, 산속의 굴에 식량들을 저장해놓은 식량창고를 발견했는데, 신은하 아버지가 그 굴을 파서 쥐들의 식량창고에 있는 쌀과 옥수수를 가져와서 식구들이 함께 끼니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가족들이 희망을 갖고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으로 왔지만, 아무 재산도 갖고 오지못했던 신은하가족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북한보다도 훨씬 더 못한 비참하고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 공안당국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 신은하가족은 산속에서 숨어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산나물과 칡뿌리를 캐먹는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4년 동안 계속 산속 움막집에서 살아갔다고 합니다.

 

 

신은하가족은 산속에서 매일같이 먹을 것을 찾아 헤메이면서 그날그날을 간신히 끼니를 때우는 등,

수없는 나날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정말로 원시인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중국 공안당국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쳤고, 움막집에 있던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곧바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외출하고 없는 상황에서,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중국 공안경찰에 체포되어, 결국 북한으로 다시 송환되었다고 합니다.

 

신은하는 언니와 함께 중국 산속에서의 4년 동안의 움막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북한으로 강제 입국당하고 말았답니다.

   

신은하 신은희 자매의 청진의 탈북자수용소의 억류생활

 

신은하 자매는 북한 청진에 있는 도집결소에 들어갔고, 이 때부터 고통스러운 수용소생활을 하게 된답니다.

신은하와 언니가 함께 억류되어 있던 이 수용소에서는 산속 움막집보다도 훨씬 더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 수용소에서 신은하 자매는 매일같이 고된 노동에 동원되었고, 매일같이 굶주림과 학대를 당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수용소에서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장염으로 죽어나갔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장염은 약을 먹으면 얼마든지 날 수 있는 가벼운 질병이었지만, 북한 수용소에서는 약이나 치료를 전혀 해주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제대로 먹지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허약해진 수용자들은 이처럼 가벼운 질병에 걸려도 그대로 사망하기 일쑤랍니다.

 

이 수용소의 생활이 얼마니 열악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으로 예가 아닐 수 없답니다.

 

 

산나물과 칡뿌리를 캐먹던 산속 움막집생활이 오히려 이 곳 수용소생활보다 더 나았다고 할 정도로, 신은하 자매의 수용소생활은 엄청 비참했다고 합니다.

 

수용소에서 식량으로 먹었던 것이 고작 소금을 뿌린 국수죽이었다고 하며, 매일같이 배고픔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리고 이곳 수용소에서 신은하 자매는 남자들도 하기 힘든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수용소에 수용된 여자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벽돌 나르기를 해야하며, 오후에는 시멘트를 날라야 하며, 저녁때에는 농사일을 해야 한답니다.

 

 

밥도 아주 적게 주면서, 연약한 여자들에게 이처럼 고된 죽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병약해져서 매일같이 죽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게 된답니다. 신은하와 신은희도 이런 고된 죽노동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17세 밖에 안된 연약한 신은하가 남자들도 하기 힘든 무거운 시멘트를 지고 날랐다고 하는데, 제대로 먹지 못해서 힘도 없는 신은하가 무거운 시멘트를 나르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살 많은 언니 신은희가 동생이 힘들어할 때마다 동생의 시멘트를 대신 날라주면서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용소에서의 힘든 노동생활을 하면서도 신은하는 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용소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신은하 언니 신은희의 뜨거운 동생사랑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신은하가 그토록 고된 수용소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언니 신은희의 큰 도움과 보살핌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어느날 신은하 자매가 서로 다른 수용소로 나눠져서, 헤어지게 되는 상황이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20살이된 언니 신은희는 단련대라고 하는 강제노동소로 들어가야 됐고, 동생 신은하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꽃제비수용소로 들어가서 두 자매가 서로 헤어지게 되는 상황이 찾아왔답니다.

 

부모님도 없는 상태에서 힘들어도 서로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상대였는데, 이처럼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는 서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은 그녀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언니 신은희가 동생과 헤어질 수 없다고 소장실로 찾아가서, 울부짖으면서 애원한 끝에, 두 자매는 헤어지지 않고 함께 꽃제비수용소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꽃제비수용소는 북한에서 나이 어린 거지아이들을 모아놓은 수용소인데, 이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굶주림에 시달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신은하 자매가 이 곳 꽃제비수용소에 들어온 것은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이곳 꽃제비수용소는 밥이나 식량은 제대로 주지 않지만, 감시가 느슨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소에 비해서 탈출하기가 용이한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꽃제비수용소에 있으면서 함께 생활하던 신은하 자매는 기회를 틈타서 이곳을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답니다.

 

신은하 자매의 두번째 탈북

 

그리고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꽃제비생활을 하던 신은하 자매는 또다시 탈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답니다.

 

중국에 있던 어머니가 두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 브로커를 보내왔던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신은하 자매를 찾아낸 두명의 브로커는 그녀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장마철이라서, 두만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건너가기가 힘든 상황이었답니다.

 

  언니 신은희(좌측)와 신은하(우측) 사진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각각 브로커에 끈을 연결하고 튜브를 사용해서 가까스레 헤엄을 쳐서 두만강을 건너갔는데, 언니 신은희는 두만강을 손쉽게 건너갔지만,

동생 신은희는 브로커에 연결된 끈이 끊어져서 거친 물쌀에 휘말려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두만강의 거센 물줄기에 떠내려갔던 신은하는 수영도 전혀 못해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두만강의 깊은 물속에서 떠내려가던 신은하는 운좋게도 중국의 강기슭 쪽으로 휩쓸려오게 됐고, 이때에 브로커가 재빨리 신은하를 건져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쌀에 떠내려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신은하는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신은하 자매는 중국에서 극적으로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 당시에는 이미 아버지는 중국 공안당국에게 걸려서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었다고 하네요.

홀로 남은 어머니가 두딸을 데려오고 위해서 힘든 식모생활을 하면서 간신히 돈을 모아서, 브로커에게 비용을 주고 두 딸을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딸을 극적으로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간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실어증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아버지가 다시 북한으로 끌려갔고, 움막집에 도둑이 들어서 돈을 많이 빼앗겼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아서 실어증까지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두 딸을 극적으로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은하가족에게 또 한번의 기적이 찾아온답니다.

신은하의 언니 신은희는 북한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위해서 매일같이 울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의 담벼락에 매일같이 찾아가 무릎 끓고서 하나님,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매일같이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하얀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서, 아버지가 6개월 후에 돌아올 것이니, 더 이상 울지않아도 된다는 계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 신은하의 아버지는 기적처럼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북한으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탈북에 성공해서 돌아왔던 것이랍니다.

 

신은하의 탈북이야기는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처롭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답니다.

 

이토록 예쁘고 고상하게 생긴 신은하가 이처럼 북한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사실은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 사실입니다.

 

 

신은하는 탈북과정에서 여러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처럼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기적처럼 위기를 극복해내고, 탈북에 성공할 수 있었답니다.

 

신은하가 험난한 수용소생활을 견대내고, 북한을 두 번이나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은하와 신은희 두자매의 돈독한 우애와 사랑이 그토록 고되고 험난했던 수용소생활을 극복해내고, 탈북을 성공시킨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두자매의 뜨거운 우애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 하늘이 감동해서, 이와같이 기적과 같은 탈북이란 선물을 선사해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남한으로 입국해서, 이제 온가족이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은하가 이젠 방송 이만갑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미녀스타로 각광받고 있으며, 방송의 감초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답니다.

 

반듯하고 청순하게 생긴 미모를 자랑하는 신은하는 최근 다큐멘터리영화 독도의 영웅들에도 출연하는 등 방송뿐만 아니라 연기쪽으로도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답니다.

 

이만갑에서 아름다운 미모와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신은하가 앞으로 방송인으로 더 크게 발전해서, 스타급 연기자로 큰 성공을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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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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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탈북미녀 배우 김아라의 미모와 탈북스토리

연예인 핫토픽 2018. 2. 6. 15:36

이만갑탈북미녀 김아라의 탈북과정 이야기, 키와 나이

 

 

 

2012년부터 방송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아름다운 청순미모를 뽐내고 있는 탈북미녀 김아라가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방송 이만갑에는 한송이, 신아라 등 많은 탈북미녀들이 출연하고 있지만, 특히 탈북여성 중에서 가장 탁월한 미모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탈북녀는 바로 김아라입니다.

 

김아라는 초기 이만갑에 출연할 때부터 티아라의 지연과 닮은 미녀라고 인식되면서, 눈에 띄는 미모로 많은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왔답니다.

 

김아라의 프로필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보도록 하죠!

김아라는 함격북도 회령출신이며, 2003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입국했고, 2009년 중국을 탈출해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답니다.

 

그리고 김아라는 1991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28세이며, 키는 162cm이고 국민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방송활동과 연기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므로 그녀의 직업은 배우랍니다.

 

 

김아라는 과거에 한국 여배우 고아라를 너무도 좋아해서, 자신의 이름에 아라를 붙여서 김아라란 예명을 만들어서 이만갑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임시적으로 만든 그녀의 예명이 계속 진짜이름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2009년도에 한국에 입국해서 명지전문대 뷰티아트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국민대학교 연극과에 재학 중인 김아라는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여러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이고 있답니다.

 

김아라는 2015년도에 웹드라마 아는 사람에 출연해서 탈북여성 김연희역을 맡아 아주 실감나게 연기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또한 김아라는 2016년도에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에서 한류부문 MCN상을 수상하면서 전도유망한 방송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아라는 방송 이만갑출연 외에도 최근 MBC드라마 위대한 유혹자에 출연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으며,

2018년도 7월 개봉 예정인 원더풀 고스트에도 출연하는 등 영화쪽에도 진출해서 본격적인 연기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북한 탈북녀 출신으로 이렇게 드라마와 영화, 예능프로그램 등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상까지 받은 탈북녀는 아마도 김아라가 최초가 아닐까 하는데,

앞으로 김아라는 탈북출신으로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여배우가 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답니다.

 

김아라는 크고 맑은 두눈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시원시원한 마스크와 청순미모를 지니고 있어서, 연기력만 가다듬는다면 앞으로 유망한 연기자로 크게 성공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방송 이만갑에 출연해서 상큼발랄한 미소와 함께 청순 미모를 한껏 뽐내면서 이만갑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탁북미녀 김아라의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 북한에서의 이야기와 탈북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마치 티아라의 박지연이나 김태희를 연상시킬 정도의 청순한 미모를 짙게 풍기고 있는 탈북녀 김아라가 북한에 있을 때에는 하수구에 떨어져 있는 음식까지 주워먹을 정도로 많이 굶주렸다고 실토를 해서,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답니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과거에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하며, 심지어 산속에서 움막집을 짓고 혼자서 살기까지 했다고 고백을 했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랍니다.

 

 

탈북미녀 김이라가 탈북하기 전 북한에서 살고있을 때에,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김아라는 북한에서 어린 나이에 목숨을 걸고서 중국으로 탈출을 감행했고, 중국에서 또다시 한국으로 탈출했고, 한국에 온 김아라는 모진 고생 끝에 한국 여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김아라는 북한에서 학대받고 핍박받던 삶을 살다가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인생역전에 성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랍니다.

그녀가 과거 북한에서 겪었던 고난의 삶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슬프고 참혹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삶은 수도없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던 위태로운 삶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만큼 북한에 있을 때의 김아라의 생활은 처참했고,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고 합니다.

 

저렇게 청순하고 예쁜 미녀가 어떻게 저런 가시밭길을 걸어왔는지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참혹한 삶은 모두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이야기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탈북 배우 김아라의 탈북스토리

 

김아라는 북한에 살 때에, 어머니는 중국으로 건너갔고 아버지가 실종된 상태에서, 계모로부터 숱한 구박과 천대를 받으면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아라가 처음부터 이런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요. 원래 김아라는 함경북도 회령출신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었다고 합니다.

 

김아라가 아주 어렸을 때에, 아버지는 탄광에서 근로자로 일하고 있었고, 30평대의 주택에 살 정도로 가정형편도 넉넉하고 여유로왔다고 합니다.

이때는 부모님과 함께 오붓하고 살던 시기라 김아라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런 안락한 삶이 9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고, 북한경제가 파탄나면서 김아라의 아버지는 졸지에 직장을 잃어버렸다고 하며, 아버지의 실직으로 김아라 가정의 경제형편이 매우 나빠지게 되었답니다.

 

점점 가계의 금고가 바닥이 나버리자, 김아라의 부모는 살던 집을 팔아버리고 그 집판 돈으로 먹고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아라의 30평 크기의 주택이 고작 옥수수 10kg의 돈밖에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아라는 집을 팔고서 벌레와 쥐들이 들끓는 아주 초라한 판자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 집에서도 남은 돈을 다 쓰고 난 뒤에 먹고살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고,

가정형편이 더욱 어려워지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주 다투게 되었고, 가정불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돈을 벌기위해서 중국으로 떠나버렸고, 김아라와 어린 여동생, 그리고 아버지 세사람이 함께 살게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아버지는 산에서 산나물을 캐어와 그것을 식량으로 삼았는데, 김아라는 와버지와 함께 그 산나물을 깨끗이 씻어서 장마당에 내다팔면서 김아라 식구들은 간신히 끼니를 이어나갈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김아라의 아버지는 국가로부터 몇고랑의 땅을 분배받을 수 있었고, 그 분배받은 땅을 가꾸고 농작물을 재배해서, 어느정도 생계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김아라의 나이는 고작 8살에 불과했는데, 어머니가 떠나버린 후라서, 8살의 김아라가 어린 여동생을 직접 돌보아주었다고 하며, 집에서 밥을 짓는 등 김아라가 어머니역할을 대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국으로 건너간 김아라 어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자, 홀아비가 된 아버지는 그만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재혼한 이 계모 때문에 김아라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이 나고 김아라에게 크나큰 불행이 찾아오고 말았답니다.

 

세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계모는 아버지 몰래 김아라를 심하게 구박하고 학대를 가했습니다.

계모는 자신의 친자식들에게만 좋은 음식을 먹이는 등 정성을 다하면서도, 김아라는 아주 노골적으로 따돌렸고 학대를 가했답니다.

 

이렇게 계모가 김아라를 모질게 구박하고 학대를 가하자, 이를 알게된 김아라 아버지가 계모에게 항의를 하면서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 심한 부부싸움이 일어났답니다.

 

두사람이 싸운 후에 계모의 오빠들과 사촌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김아라의 아버지에게 집단 폭력을 가했고, 아버지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계모의 집안사람들로부터 몰매를 맞았던 아버지는 그 후에 완전 행방불명되어 버렸고, 더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그당시 아버지가 가출한 것인지, 누군한테 살해를 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나이가 어린 김아라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도 없는 처지였답니다.

 

 

이 당시 김아라의 나이는 세상물정 모르는 고작 10살 밖에 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김아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주일 지나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 후 아버지를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아라를 유일하고 돌보아주었던 김아라의 친아버지가 사라지고 나니, 김아라는 완전 고아나 마찬가지의 신세가 되었고, 포악한 계모는 김아라에게 더욱 심한 학대를 가했다고 하며, 심지어 나이 어린 김아라에게 집에서 나갈 것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김아라는 고작 10살의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쫒겨나고 말았답니다.

 

아버지와 결혼할 때에 세명의 자식을 데리고 빈손으로 집으로 들어왔던 계모는 김아라의 아버지를 사라지게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김아라마저 집에서 쫒아버리고는 집까지 빼앗고 말았답니다.

 

어쩌면 계모가 친정오빠들과 합세해서 김아라의 아버지를 살해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답니다.

 

이렇게 집에서 맨몸으로 쫒겨나왔던 이 당시 김아라의 나이는 고작 10살이었답니다.

 

 

한참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인 10살의 김아라는 이때부터 그 누구의 돌봄을 받지못한 체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김아라는 아버지가 경작을 했던 그 텃밭으로 갔고, 그 텃밭 바로 언덕 위에 조그만한 움막집을 짓고 혼자서 살았다고 합니다.

 

고사리 같은 조그마한 손으로 손수 돌들을 날라왔고, 냇가의 진흙을 퍼와서 돌을 얹고 진흙을 발라서 아주 야트마한 움막집을 만들었고, 그곳에 혼자 살게 되었답니다.

 

그 당시 김아라의 동생은 외삼촌집에 맡겨서 살게 되었는데, 김아라의 외삼촌도 형편이 매우 어려워서 김아라까지 맡아서 키울 형편이 못되었다고 합니다.

 

10살밖에 안된 김아라가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혼자서 이같이 움막집을 지었다고 하니,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평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움막집을 짓고 혼자 살게된 김아라는 밤에는 이 움막집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아버지가 경작했던 텃밭에서 야채를 재배해서 간신히 야채와 무를 먹으면서 끼니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언덕위의 움막집에서 밤에 홀로 잘 때에는 가끔 산짐승들이 다가올 때도 있어서, 어린 마음에 두렵고 무서워서 밤잠을 설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홀로 살아가던 김아라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밭고랑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길가를 지나가던 아버지의 옛친구분이 홀로 울고있는 김아라를 발견했고, 김아라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그 친구분이 김아라를 입양해서 자신의 집에서 살게해 주었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집에서 쫒겨나 생사의 문턱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던 김아라는 간신히 아버지의 친구분 집에 앙녀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아버지 친구집에서 양녀로 들어가 살게된 후 또다시 그 친구분의 누이집으로 양녀로 들어가서 살았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김아라는 중국으로부터 뜻밖의 희소식이 전달받게 되었답니다.

 

오래동안 소식이 끊겼던 중국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오게된 것인데요.

중국의 어머니가 드디어 중국에서 기반을 잡고서 사람을 보내서 김아라에게 연락을 취해온 것입니다.

 

남의 집을 전전하면서 살아갔던 김아라는 드디어 중국에 있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았고, 중국의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서 북한을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니다.

 

이때가 김아라 나이가 13살인데, 어머니가 보내준 브로커를 따라서 천신만고 끝에 압록강을 건널 수 있었고, 결국 김아라는 중국에 있는 어머니의 곁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어머니가 김아라를 일찍 찾지못했던 것은 어머니가 중국에서 경제적 기반을 잡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고, 김아라가 집을 자주 옮겨다녀서 찾지못했기 때문이랍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난 김아라는 중국에서 잠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의 보호아래 안전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온지 6년이 지난 후인 2009년도에 김아라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아라가 한국에 온 이 때가 김아라의 나이 19살이었다고 합니다.

 

  '이만갑'에 함께 나오는 신은하(좌편)와 김아라(우편)

 

북한에서 오랜 기간 동안 부모님 없이 살아왔던 김아라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온 김아라는 중등교육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하는데, 2년만에 중등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명지전문대를 거쳐 지금은 국민대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학구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아라가 북한에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여려운 일을 다 겪고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면서,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입국한 이야기는 정말 슬프고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답니다.

 

이토록 공주같이 예쁜 김아라가 이정도로 한많고 가슴아픈 어린 시절의 사연이 있을 줄을 전혀 예상도 하지도 못했답니다.

 

이처럼 김아라는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북한에서 매우 고달픈 시절을 보냈는데, 그녀는 하루에 밥 한끼 제대로 먹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크나큰 시련과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꿋꿋하게 그 난관을 극복해내고, 한국으로 건너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김아라가 정말로 대견스럽고 장하기만 합니다.

김아라의 탈북스토리는 정말 인간승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 합니다.

   

김아라는 방송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에 너무 형편이 어려워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발육상태가 나빠서, 피부도 안좋고 키도 작다고 자신을 비하해서 말했는데요.

 

 

김아라의 이런 말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데, 오히려 김아라는 다른 탈북여성들보다 몸매도 좋고 키나 피부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뿐만아니라,

방송에 출연하는 탈북여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탈북여성으로 큰 스포트라이터를 받고 있는 중이랍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큰 역경과 시련을 겪었던 김아라이지만, 그녀는 선천적으로 부모의 우수한 혈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빛이 번쩍뻔쩍 빛나는 명품 미모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답니다.

 

김아라가 북한에서 생과사를 넘나드는 참혹한 삶을 모두 이겨내고,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인기여배우로 성장해나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장하고 보기 좋습니다.

 

탈북미녀 김아라는 최근 방송과 영화에서 매우 활발한 연기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어서, 마치 김아라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랍니다.

 

김아라는 tvN막돼먹은 영애씨시즌16에 김아라 역으로 출연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으며, MBC드라마 위대한 유혹자에 출연해 중국어 개인교사 역을 맡아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중이랍니다.

 

또한 김아라는 영화에까지 진출했는데, 금년 7월 개봉예정인 원더풀 고스트에 출연해서 마동석과 함께 열연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생과사의 고비를 여러번 넘기면서 고생을 많이 했던 김아라가 과거의 역경을 모두 극복해내고, 한국에서 제2의 힘찬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는데,

그녀가 정말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여배우로 성장해나가길 큰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몇 년전부터 이만갑에 출연하고 있는 김아라는 이만갑의 인기를 올려주는 마스코트같은 존재감으로 급부상했는데, 많은 한국남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인기 높은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답니다.

 

이제 김아라는 방송 이만갑에서 없어서는 안될 보석같은 존재감으로 이만갑을 가장 빛내주는 미녀스타로 우뚝 솟아올랐답니다.

 

김아라는 한국에서 팔색조 같은 여배우로 성공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했는데, 그녀가 더욱 자신을 연마하고 발전을 거듭해서 한국사람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톱스타급 여배우로 성공하길 간절히 고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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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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