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홍길동전의 줄거리내용, 주인공 실존인물설, 만화영화
‘홍길동전’은 조선시대의 최고의 문장가인 허균이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이지요.
허균이 광해군시절 공주목사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과거시험 출제위원으로 있을 때에 시험부정에 연류되어서 부임 5개월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답니다.
허균이 전북 부안에 유배를 갔을 때, 허균이 머물렀던 부안의 정사암터에서 그의 유명한 소설 ‘홍길동전’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허균은 조선시대의 뛰어난 시인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문객인데, 광해군시절 때에는 동부승지와 예조판서라는 높은 벼슬도 했었던 조선의 유력한 정치인이자,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이 매우 높은 인물입니다.
또한 허균이라는 인물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조선시대에 있어서 아주 획기적인 사회개혁을 주창했던 개혁주의자이자라는 사실입니다.
허균은 봉건사회의 악습과 신분차별제도의 철폐를 부르짖었던 개혁주의자이자 혁명이론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적서차별의 철폐를 부르짖었으며, 사회적인 평등과 민중으로부터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당대의 탁월한 개혁주의자였습니다.
신분차별제도와 서얼차별제도의 타파를 주장하고, 탐관오리의 척결을 주장했던 허균은 너무 급진적인 개혁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시대를 수백년 앞서간 뛰어난 사상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 때에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반역자로 낙인찍혀서 사형당하고 말았답니다.
허균은 비록 역모사건에 연류되어 죽임을 당했지만, 그는 ‘홍길동전’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고,
그가 남긴 ‘홍길동전’에는 그시대의 모순된 봉건주의적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사회개혁을 추진하려는 그의 심오한 사상을 남겨놓았답니다.
홍길동은 조선 세종시절에, 좌의정인 홍상직의 서얼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등 서자로서 심한 신분차별을 당한 후,
집을 떠나서 도적집단의 소굴로 들어가서 신기한 도술을 부리는 등 그곳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둡니다.
그리고 홍길동은 무장조직 활빈당을 조직하여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후,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들를 때려잡고,
불상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의적활동을 벌였던 조선시대에 최고의 의적집단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홍길동은 단순한 도적패가 아니며, 탐관오리 같은 부패하고 사악한 관리들을 척결해나갔고,
불쌍하고 소외된 백성들을 구제해주는 등 백성편에 서서 양반들의 부조리와 맞서 싸웠던 의적이자, 당대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길동이 만들었던 조직 ‘활빈당(活貧黨)’은 그 의미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활동을 하는 집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허균이 홍길동의 주인공인 ‘홍길동’이 단순한 도적패가 아니라, 백성을 구제하고 도와주는 의로운 의적집단임을 명백히 정의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홍길동이 우두머리가 되어 조직한 ‘활빈당’은 외형상으로는 남의 재물을 도적질을 하는 일종의 도적패인 것은 사실이지만, 홍길동과 활빈당은 항상 백성들을 수탈하는 탐관오리와 포악한 양반들의 재물만을 도적질하였고,
그렇게 빼앗은 재물을 불쌍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등 서민들을 구제해주는 의로운 의적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홍길동은 단순한 도적패는 결코 아니며, 오히려 당대의 의로운 영웅이자, 정의의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탐관오리와 양반들의 횡포와 탄압으로 인해서 무자비한 수탈과 학대를 당했던 불행한 서민들의 가난과 설움은 홍길동의 의적활동으로 인해서, 많이 치유되고 구제를 받았다고 합니다.
즉, 홍길동은 탄압과 수탈을 당해서 가난한 서민으로 전락했던 불우한 백성들을 구제해주고, 도와줬던 그 시대의 정의로운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국가에서 임명했던 지방의 탐관오리들은 온갖 가짜명목을 내세워서 백성들의 제물을 마구 수탈해갔기 때문에, 그들이 오히려 도적이나 다름없었고, 도적패라고 알려진 홍길동의 활빈당은 실제로는 도적이 아니라, 반대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해주었던 서민들의 수호자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패하고 백성들의 수탈을 일삼았던 탐관오리와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분배해주며, 도와줬던 홍길동을 어찌 도적패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백성들에게 온갖 구실을 붙여서, 그들의 재산을 탈취해갔던 지방수령들이야말로 진짜 도적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부패했던 양반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척결하면서, 신분차별이 없고, 평등한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홍길동은 그시대의 정의로운 영웅인 겁니다.
그렇지만, 국가조정에서는 양반과 지방관서의 재물을 빼앗아가는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죠!
조정에서는 홍길동을 사악한 도적패라고 규정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군사를 출동시켜 전방위적인 군사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홍길동은 신기하고 영험한 도술과 무예를 발휘해서, 싸우는 족족마다 관군들을 모두 물리치고, 체포망을 빠져나갔습니다.
매번 엄청난 군사를 동원해서 공격해들어가도, 신기한 도술와 무예를 발휘하는 홍길동을 결코 잡을 수 없었던 조선조정은 마지막으로 홍길동을 회유하기 위해서 협상을 제안하게 됩니다.
왕은 홍길동에게 병조판서 자리를 재수하겠다는 제안하지만, 이러한 왕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홍길동은 자신의 모든 무리를 이끌고, 나라를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홀연히 사라집니다.
그 후, 홍길동은 바다 너머에 있는 섬으로 건너가서 그곳을 점령한 후, 자신의 나라인 '율도국'을 세웠고,
그곳의 왕으로 등극한 홍길동은 30년 동안 그 나라 백성들을 잘 다스려서, 태평성대를 이룩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줄거리내용입니다.
그런데,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작가가 만들어낸 단순한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존재했던 실존인물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허균은 1612년도 부안의 정사암터에서 책 '홍길동전‘을 집필했다고 알려졌는데,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실제로 ‘홍길동’이라는 의적이 존재했었다고 하는데, 연산군 때에 탐관오리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던 실존인물인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허균이 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겁니다.
◆ 홍길동이 실존인물이라는 근거
1490년 12월 29일에 작성된 연산군 때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의금부 위관 한치형이 홍길동에 관해 왕에게 고했던 기록이 있는데,
강도 홍길동이 갓꼭대기에 옥장식을 달고, 붉은 허리띠를 두른 옷차림을 한 채, 관군에 사로잡혔다고 보고하였다고 합니다.
이 연산군 때의 기록이 홍길동에 관한 첫번째 기록입니다. 그당시 홍길동은 도적이었답니다.
그리고, 1524년 중종 실록에 따르면, 조선조정에서 홍길동을 잡기 위해 대대적으로 토벌을 벌였는데, 활빈당은 충청도 공주지역에 산성을 쌓고, 토벌을 방어하며, 저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연산군일기의 연산군 6년 때 기록에는,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고 명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소설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던 홍길동은 조선왕조실록에 세 번이나 명문으로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가 비슷한 시기인 연산군 ~ 중종 때인 조선 중기시절에, 실제로 도적 홍길동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들을 근거로 볼 때에, 홍길동은 소설속의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연산군 시절에 실제로 도적으로 활동했던 실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모든 성씨의 유명인물의 기록인 ‘만성대동보’에도 함경도 경상절도사인 홍상직의 둘째아들이 ‘홍길동’이라고 기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도, 홍길동의 아버지의 이름을 ‘홍상직’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실존인물인 홍상직과 이름이 같으며, 홍길동의 아버지 홍상직은 역사적 실존인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조선왕조실록과 만성대동보 같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인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홍길동은 15세기 연산군 때에 서자로 태어나서, 의적활동을 벌였던 실존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세기가 지난 16세기 때의 학자 허균이 실존인물 홍길동을 모티브로해서 ‘홍길동전’을 집필했던 겁니다.
또한 홍길동에 대한 또다른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일본에는 ‘홍가와라’라는 의적이 있었는데, 홍길동이 바로 ‘홍가와라’라는 것입니다.
‘홍가와라’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던 당대의 영웅이자, 그지역의 수령이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유구왕조 시절에는 조정이 일반백성에 대한 수탈과 탄압이 극심해서, 백성들이 살기 힘들었던 시대라고 합니다.
더욱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있던 백성들은 엎친데 덮진 격으로, 도적때들의 잦은 출몰과 수탈로 더욱 힘들고, 피폐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혼란한 시기에 ‘홍가와라’라는 협객이 나타나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도적때들을 물리치고, 백성의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홍가와라’는 그지역의 도적때들을 소탕하고, 백성들을 탄압하는 유구왕조에 대항해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그지역의 위대한 수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가와라’라는 이름은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오키나와에서 일본식으로 불렀던 발음이라고 합니다.
즉, 유구왕조의 폭압에 맞서서 싸우고, 도탄에 빠졌던 오카나와의 백성들을 구제해주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던 당대의 영웅 홍가와라는 조선에서 건너간 홍길동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일본에는 원래 ‘홍’씨성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하며, ‘홍’씨성은 타지역에서 이주해온 인물의 성씨라고 일본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지요.
그리고 오키나와는 옛날에는 ‘유구국’이라고 불리웠는데, 이 유구국이 홍길동이 세웠던 이상국가 ‘율도국’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홍가와라가 오키나와에 왔던 그 시기에 ‘풍년기원 행사’와 돌잔치행사, 줄다리기 같은 새로운 풍습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풍습들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없었던 풍습들이며, 조선의 고유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새로운 풍습들은 조선에서 오키나와로 건너간 홍길동과 그의 추종세력이 그곳에 새롭게 전수해준 풍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당시 홍가와라가 활동했던 본거지는 오키나와의 구지천성인데, 최근 구지천성에서 조선의 화폐인 ‘해동통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구지천성의 해동통보도 홍가와라가 조선에서 건너간 홍길동이라는 것을 증거해주는 또다른 증거품일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근거들을 살펴볼 때, 홍가와라는 조선에서 자기 추종세력을 거느라고 건너간 ‘홍길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세운 이상국가 ‘율도국’은 일본의 오키나와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본의 학자들은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현재까지 홍길동이 오키나와의 ‘홍카와라’라는 주장에 대해, 학자들 간에도 열띤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허균이 지은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오키나와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웠던 홍가와라일까요? 그리고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이 정말 오키나와일까요?
앞으로 학자들이 더욱 치밀하게 연구조사활동를 벌여서, 그 진위를 속시원히 밝혀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홍길동 만화영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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