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우미관의 주먹황제 김두한의 싸움실력과 일화, 신마적, 시라소니와의 대결

 

오늘은 여덟살 때 고아가 되어 맨주먹 하나로 조선의 최고의 주먹으로 우뚝 올라섰던 김두한의 일대기와 싸움일화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과거 일제시대 때 종로 우미관일대를 장악하면서,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 바로 김두한이다.

 

김두한이 우리 주먹세계에서 이룩해놓은 성과는 실로 대단한데, 그가 17살 때에 종로최고의 강자로 군림하던 구마적에 도전해 KO시키고,

연이어 19세 때 신마적과 대결을 펼쳐서 쓰러뜨리는 등 혁혁한 싸움전과를 이루면서 일약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우뚝 솟아올랐던 우리나라 주먹계의 레전드 같은 존재감이다.

 

원펀치의 달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펀치와 완력이 무척 강했던 김두한은 약관 19세의 나이에 우리나라의 최고의 노른자위 땅이던 경성(서울)의 종로통을 장악하면서 최고의 오야붕으로 군림했던 우리주먹계의 전설적인 존재감이다.

 

오죽하면 전세계의 무도인 200인과 싸워 이겼다는 최배달 조차도 자신이 김두한과 맞대결을 벌인다면,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고백할 정도인가!~

 

잇뽕(한방)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주먹 한방이 무척 강했던 김두한은 주먹뿐만 아니라, 발차기실력도 엄청 빠르고 강했으며, 공중으로 붕붕 날으면서 가격하는 그의 날아차기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김두한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종로 우미관에 진출한 후, 구마적, 신마적, 마루오까, 뭉치, 제비, 김후옥, 하야시 주먹집단, 일본의 야쿠샤 등 기라성같은 수많은 강자들을 쓰러뜨리면서 종로를 포함한 경성의 최고의 주먹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 후에도 김두한은 경성의 오야붕에 만족하지 않고, 수원과 대전, 대구, 목포와 광주, 부산, 그리고 평양까지 진출해서 자신의 주먹나와바리를 한반도전체로 확장시키면서, 명실상부한 조선의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이렇게 한사람이 서울의 주먹세계를 장악한 후에도 멈추지않고, 한반도 전지역으로 진출해서 모든 대도시를 장악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서는 경우는 김두한 외에는 그 누구도 성사시키지 못한 오직 김두한 만이 이룩한 그만의 기적 같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김두한의 주먹과 싸움실력, 그리고 배짱과 야망이 엄청나게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부분이다.

 

김두한은 이미 십대 때에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오야붕이 되려는 엄청난 야망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두둑한 배짱과 뛰어난 주먹실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주먹황제로 올라섰던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상권이 가장 발달한 경성(서울)의 최고의 노른자위땅인 종로 우미관을 장악하는 자가, 경성(서울)의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갈 수 있었고, 경성(서울)을 장악한 주먹은 한반도전체의 최고주먹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김두한은 종로 뒷골목에서 큰오야붕이라고 불리우는 두명의 거대한 주먹 구마적과 신마적을 번갈아 쓰러뜨리면서,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섰던 입지전적인 싸움꾼이다.

 

그런데, 혹자들은 김두한이 구마적과 신마적 같은 나이가 훨씬 많은 대선배와 싸워서 쓰러뜨렸다는 싸움전과를 그의 동생들이 꾸며내어 만든 거짓전과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고작 17세에 불과한 김두한이 자신보다 대선배이자 나이도 훨씬 많은 큰오야붕 구마적, 신마적에게 서열을 뛰어넘어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김두한은 라디오방송 ‘노변야화’에서 자신이 분명히 구마적, 신마적과 싸움을 벌여서 모두 쓰러뜨렸다고 육성증언한 바가 있다.

그리고 김두한이 구마적과 신마적을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결코 종로의 최고오야붕으로 등극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두한이 종로의 뒷골목에서 어떻게 구마적과 신마적과 싸움을 벌였는지, 그 상세한 과정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다.

 

 

◆ 김두한, 구마적, 신마적과 대결

 

구마적은 종로통에서 기골이 장대하고, 괴력이 엄청 쎈 천하장사로, 종로 1가에서 3가를 주름잡던 막나니 싸움꾼이었다.

그런데 김두한은 1934년도 불과 17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10살이나 더 많은 구마적 고희경에 도전장을 던졌고, 군말없이 그를 실신KO시켰다.

 

이 당시 김두한은 종로 뒷골목에서 군소 주먹집단의 오야붕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구마적과 신마적은 보다 큰 주먹조직을 운영하는 서열이 훨씬 높은 큰오야붕으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당시 구마적은 우미관극장의 기도부장을 역임하면서, 어린 동생이나 뒷골목의 건달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패는 등 악명이 매우 높았고, 이런 포악한 구마적의 횡포에 반기를 든 김두한이 날을 잡아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주먹계의 서열을 뛰어넘는 김두한의 대담한 도전은 종로통의 최고주먹으로 올라서겠다는 김두한의 야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종로뒷골목의 많은 건달들에게 자신의 뛰어난 싸움실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속셈도 함께 갖고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두한은 종로뒷골목에 있는 구마적의 사무실로 가서 ‘고형님, 저와 잠깐 얘기좀 합시다!’라고 말했고, 구마적은 ‘야, 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할 말이 있다는 거야?’라고 응대를 했다.

 

김두한은 구마적에게 ‘오야붕 정도라면, 주먹은 강한 자에게 써야지, 왜 형님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없고 약한 동생들을 두들겨 팹니까?’ ‘제가 오늘 형님 손 좀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국, 종로뒷골목의 우미관극장 앞에서 김두한 대 구마적의 맞대결이 벌여졌다.

구마적은 자동차 앞부분을 잡고 번쩍 들어올릴 정도의 괴력을 가진 엄청난 장사였고, 덩치는 남산만 하게 컸고, 주먹은 솥뚜껑만하게 컸다.

 

90kg의 구마적과 68kg의 김두한의 싸움은 외관상으로는 상대가 되지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구마적의 완전한 KO승으로 끝날 것으로 기대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구마적이 김두한을 향해 오른주먹을 날렸다.

이 때 김두한은 순간적으로 공중으로 몸을 날려서 구마적의 가슴을 오른발로 걷어찼다.

 

구마적의 공격보다 김두한의 발차기공격이 한템포 더 빨랐기 때문에, 김두한의 발차기에 가슴을 얻어맞은 구마적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렇지만, 주먹 못지않게 맷집도 상당히 쎘던 구마적은 잠시동안 쉬고난 뒤, 씩씩거리면서 다시 일어나서 다시 김두한에게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김두한은 또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몸전체의 체중은 실은 이단옆차기로 구마적의 턱을 정확히 강타했다.

김두한이 두발로 구마적의 얼굴을 ‘탁’하고 차자, 구마적은 ‘억~’하는 비명과 함께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김두한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두 번의 발차기공격에 천하의 구마적은 단 한번의 공격도 못한 채, 그대로 실신 KO당하고 말았다.

 

약관 17살의 김두한이 종로뒷골목에서 최고의 오야붕으로 떵떵 거리던 구마적을 간단하게 발차기 두 번의 공격으로 KO시켰으니, 엄청난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씨름장사로 그리고 괴력의 소유자로 우미관극장의 기도부장 자리에 올랐고, 종로뒷골목의 건달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면서 최고의 오야붕으로 군림해왔던 천하의 구마적이 약관 17세의 김두한에게 보기좋게 KO패당하면서, 종로의 1인자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종로의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하길 원했던 김두한의 소원이 곧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김두한이 진정으로 종로의 최고주먹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은 또다른 마적, 신마적을 반드시 꺾어야만 했다.

 

김두한은 구마적을 꺾은 후부터, 자신의 뛰어난 주먹실력을 바탕으로 많은 부하들을 포섭해서 자신의 주먹조직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936년도에 김두한은 구마적과 함께 종로통의 양대오야붕이었던 신마적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김두한이 신마적에게 도전하게된 직접적인 계기는 신마적이 김두한의 두 부하들을 때렸기 때문이다.

 

두명의 김두한 부하들이 종로뒷골목에서 신마적에게 인사를 안했다는 이유로 신마적에게 두들겨맞고 돌아오자, 김두한은 신마적에게 도전할만한 좋은 명분이 생겼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신마적은 당시 종로통에서 구마적과 팔씨름을 겨뤄 유일하게 지지않았던 엄청난 완력의 소유자이다.

신마적은 종로 YMCA의 운동부로 들어가 내노라하는 운동부학생들과 겨뤄서 모두 쓰러뜨리고, 운동부 학생패의 우두머리가 된 인물이다.

 

신마적은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를 나온 인텔리로 일본유학까지 갔다가, 일본인의 차별을 받고 일본학생들을 두들겨팬 경력 때문에, 한국으로 되돌아왔던 인물이다.

 

신마적은 고학력을 갖고있었지만, 일제치하에 일본인들의 차별정책으로 사회진출을 하지못한 채, YMCA에 들어가 운동부에 터를 닦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YMCA운동부에서 우두머리노릇을 하던 전 만주웰터급챔피언출신 권투선수 해학기와 맞승부를 벌여, 그를 쓰러뜨리고 새로운 YMCA 학생패의 두목으로 올라섰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신마적은 180cm의 큰 키에 힘이 대단한 장사인데다, 유도실력이 매우 출중했고 주먹도 무척 강했으며, YMCA에서 운동깨나 하는 학생건달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YMCA 학생패의 우두머리로 올라섰을 정도로 싸움실력도 뛰어난 인텔리주먹이었다.

 

신마적은 종로 뒷골목의 맥주집에서 우연히 만난 구마적과 시비가 붙어 팔씨름으로 승부를 겨뤄 유일하게 구마적과 무승부를 기록했던 경력을 갖고있는데,

그 때문에 구마적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그로부터 ‘마적’의 칭호를 부여받고, 종로통의 새로운 마적 ‘신마적’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때부터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던 신마적 엄동욱은 구마적과 함께 종로통에서 ‘양대 최고의 오야붕’으로 행세를 하면서 종로뒷골목의 주먹세계를 군림해나갔다.

 

그런데, 십대의 김두한이 구마적을 꺾고 종로의 새로운 왕좌로 올라섰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36년도에 드디어 김두한은 신마적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김두한은 앤젤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신마적에게 다가가 ‘형님, 형님이 제 두 동생들을 때리셨다지요, 아니, 힘없고 불쌍한 동생들을 왜 팹니까? 오늘을 제가 형님을 좀 때려야겠습니다, 자 밖으로 나가시죠!’라고 말하면서 앤젤맥주집 밖에서 나온 후, 김두한과 신마적간의 일대일 맞대결이 벌어졌다.

 

김두한은 15세 때 종로3가에 있는 한 당수도장의 옥상에다 샌드백을 설치해놓고, 2년동안 정권때리기와 발차기공격을 훈련했다.

이렇게 당수를 배우면서 특별훈련을 거듭한 김두한은 어느새 발차기의 명수가 되었고, 실제싸움에서는 주먹보다도 발차기를 더 많이 활용했다.

 

김두한의 발치기는 정말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나게 빠르고, 위력적이었고, 그가 주먹계의 왕좌를 차지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완될 비밀병기로 작용했다. 

 

1936년 11월경, 발차기의 명수 김두한과 유도의 달인 신마적간의 종로의 최고오야붕 자리를 놓고 피를 말리는 맞대결이 벌어졌다.

 

신마적이 자신의 유도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김두한을 붙잡으려고 먼저 손을 뻗어왔다.

 

이때 만일 김두한이 신마적에게 붙잡히기라고 한다면, 신마적이 유도기술을 써서 그를 공중으로 집어던질 것이고, 그러면 김두한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충격으로 허리가 부러져서 반병신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두한이 신마적과 싸워 이기려면 그에게 붙잡히지 않고, 아웃파이팅을 펼쳐서 최단시간내에 싸움을 끝내야 한다.

 

김두한은 신마적이 뻗친 손을 피하면서 잽싸게 몇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 다음, 김두한은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김두한은 양발차기로 신마적의 가슴을 정통으로 걷어찼다.

 

김두한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양발차기를 맞은 신마적으로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싸움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뚝심의 신마적이 아닌가! 신마적은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곧바로 일어나서 다시 싸울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김두한이 쏜살같이 몸을 날려 오른발로 신마적의 턱을 정통으로 걷어찼다.

김두한의 오른발강타를 턱에 얻어맞은 신마적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은 신마적의 복부에 김두한의 세번째 발차기공격이 가해졌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신마적은 배를 부여잡고 ‘윽’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당시 김두한은 나이가 약관 19살이었고, 신마적은 26살이었다.

천하에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싸움짱이었던 신마적이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김두한에게 주먹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처참한 KO패를 당했다.

 

그것도 수많은 종로상인들과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마적은 어린 김두한에게 주먹 한번 써보지못하고, 처참하게 패하는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1936년 11월경 김두한은 19살의 나이에 종로통의 최고의 오야붕이었던 구마적과 신마적을 모두 쓰러뜨리고, 종로의 새로운 일인자로 우뚝 솟아올랐다.

 

구마적과 신마적을 쓰러뜨린 뒤에도, 김두한은 종로의 또다른 강자인 재비, 뭉치, 김후옥 같은 주먹들과 겨뤄서 모두 쓰러뜨린 후, 명실공히 종로 최고의 주먹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렇게 종로를 석권한 김두한은 자신의 나와바리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 광화문과 서대문,  마포와 영등포, 왕십리 등 서울의 전지역의 주먹조직들을 차례로 정복해나갔고,

얼마되지 않아 김두한은 서울의 모든 지역을 장악하면서, 명실공히 경성(서울) 전체를 아우르는 경성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섰다.

 

한편, 김두한에게 처절하게 패한 신마적은 턱와 갈비뼈 4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3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1937년 2월, 3개월간 입원치료 끝에 퇴원한 신마적은 김두한에게 패했다는 절망감과 수치심을 견디지못하고, 7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군말없이 서울을 떠나서 만주로 이주해갔다.

 

만주로 이주해간 신마적일행은 만주 봉천의 유조구거리에서 새로운 아지트를 마련하고, 그곳에 정착한 조선인주먹들을 모아서 새로운 주먹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하고, 또다시 만주에서 제2의 주먹세계를 펼쳐나갔다.

 

그런데, 김두한은 경성 최고의 주먹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김두한은 야망이 무척 큰 사람이다. 그는 서울의 주먹황제로만 만족하지 않았고, 한반도전체의 주먹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엄청난 야심을 갖고 있었다.

 

김두한은 곧바로 부하들을 시켜서 수원과 인천, 대전과 대구, 광주와 목포, 그리고 부산의 주먹계까지 차례로 정복해나갔고,

뿐만아니라 북쪽에 있는 개성과 평양까지 정복해나가는 등 한반도 대부분의 주먹계를 장악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나이 23살이 되던 1940년도에 김두한은 한반도의 거의 모든 지역의 주먹계를

평정하면서, 그는 한반도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의 주먹의 자리까지 올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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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두한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딱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신의주였다.

 

한반도전체를 아우르는 오야붕이 되기를 바랬던 김두한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리고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모든 지역들의 주먹계를 평정했지만, 오직 신의주 한곳만은 평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두한이 한반도 북쪽끝 변방의 신의주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곳에 시라소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 김두한부하들의 신의주 진출과 김두한과 시라소니의 헤게모니싸움

 

한반도전역의 대부분을 평정한 김두한은 마지막 남은 신의주를 점령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하들을 신의주로 진출시켰다.

 

1940년경 김두한부하들은 신의주의 주먹계를 장악하고 있는 신의주의 오야붕 정팔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김두한부하들은 정팔에게 김두한이 이끄는 우미관조직에 복속해들어올 것을 요구했다.

 

김두한측에서 신의주주먹들에게 요구한 조건은 이렇다. 평소에는 신의주 주먹조직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도록 하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우미관에서 내리는 결정에 따르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신의주 주먹조직이 김두한조직의 하부기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의 이화룡도 이같은 김두한조직의 요구에 동의했다고 한다. 이화룡은 김두한조직과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그들의 요구에 적당히 동의를 하고, 김두한부하들을 돌려보낸 것이다.

 

그렇지만, 신의주의 정팔은 김두한조직의 복속요구에 대해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처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의주의 실질적인 오야붕은 정팔이 아닌 시라소니였기 때문이다.

 

당시, 시라소니는 만주로 진출해서 만주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였고, 그가 신의주에 없는 관계로 시라소니의 후배벌인 정팔이 그를 대신해서 오야붕노릇을 하고 있었다.

 

즉, 정팔은 시라소니가 없는 신의주에서 시라소니의 대리인노릇을 하고 있었기때문에, 이러한 중요한 사안에 대해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시라소니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팔은 김두한부하들에게 결정을 내릴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고, 다음번에 부하를 보내서 결정사항을 통보해주겠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답변을 듣은 김두한부하들을 일단 정팔의 말을 믿고 경성(서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도록 신의주로부터 답장이 돌아오지 않자, 더 이상 참다 못한 김두한은 신의주주먹들을 손봐주기로 결정했다.

 

김두한은 우미관 주먹조직에서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김병수와 털빠진 개고기를 행동대장으로 삼아 40명의 별동대원들을 특별 선발했고, 그들을 급히 신의주로 파견보냈다.

 

김두한부하 40명이 신의주로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은 정팔은 안전한 은신처로 급히 숨어들었고, 김두한부하들은 신의주 번화가와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건달들을 찾아 두들겨패면서 온갖 행패를 다 부리고다녔다.

 

이같은 소문을 들은 정팔은 급히 만주 봉천에 있는 시라소니에게 특사를 파견했다. 

시라소니는 ‘내가 없는 신의주에서 경성의 똘만이들이 감히 활개를 치고 다닌다고!’라고 말하면서 만주에서 곧바로 신의주로 돌아왔다.

 

신의주로 돌아온 시라소니는 정팔의 사무실의 뒷방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내 정팔의 사무실로 김두한의 별동대 40명이 들이닥쳤다.

 

사무실로 들어온 행동대장 김병수는 정팔에게 이젠, 더 이상 머뭇거리지말고 우미관조직에 복종하라고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이어 또다른 행동대장 털빠진 개고기는 ‘만일 우리요구를 거부한다면, 신의주전체를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꺼야!’라고 협박을 가했다.

 

그러자, 뒷방에 대기하고있던 시라소니가 문을 활짝 열고나오면서, 김병수와 털빠진 개고기에게 ‘너희들 어데서 굴러먹던 아새끼들이네! 내러 시라소니야, 너희들이 뭔데 감히 감놔라 배놔라 하는 기야!’라고 일갈을 퍼부었다.

 

이어 시라소니는 ‘더이상 말썽부리지말고 빨리 돌아가라우! 그렇지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줄 알라구!’라고 호통쳤다.

 

그러자, 털빠진 개고기는 시라소니에게 ‘이게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야! 시라소니고 뭐고간에, 우리말을 안들으면 두들겨패서 병신을 만들어버릴꺼야!’라고 협박했다.

 

시라소니는 먼저 두사람에게 ‘괜히 동생들까지 피해 보지않게 우리끼리 맞대결을 벌여 승부를 결정짓자!’라고 제안했고, 이 제안으로 시라소니 대 두명의 행동대장간의 맞대결이 벌어졌다.

 

사무실밖의 공터로 나온 후, 시라소니와 김두한부하들 간에 싸움이 시작됐다.

김병수가 앞으로 나오자, 시라소니가 먼저 오른주먹과 발차기의 연속공격으로 김병수의 턱과 복부를 정통으로 강타했고, 김병수는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털빠진 개고기가 앞으로 나오면서 솥뚜껑같은 오른주먹을 시라소니를 향해 휘둘렀고, 이를 살짝 피한 시라소니가 전광석화와 같은 박치기를 날려 그의 이마를 된통으로 들이받았다.

시라소니의 박치기 한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털빠진 개고기는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다.

 

김병수가 주춤거리면서 다시 일어나자, 시라소니는 잽싸게 그에게 몸을 날려 박치기로 그의 이마를 들이받았고, 쓰러지는 김병수의 옆구리를 강력한 무릎찍기로 찍어버리자, 김병수는 ‘억!’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시라소니가 엄청난 스피드로 연속된 선제공격을 가해서, 순식간에 두명의 행동대장을 한꺼번에 쓰러뜨렸다.

 

시라소니가 쓰러뜨린 김병수와 털빠진 개고기는 김두한부하 중에서도 싸움실력이 뛰어난 실력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대로된 공격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시라소니의 엄청난 스피드와 싸움기술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시라소니가 김두한의 행동대장 두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는 모습을 본 김두한의 부하들은 깜짝 놀라면서 겁을 집어먹고 머뭇거렸다.

이때에 정팔의 부하 20명이 달려들면서 김두한 부하 40명과 집단패싸움이 벌어졌다.

 

시라소니가 선두에 서서 발차기와 박치기 공격으로 김두한부하 몇 명을 쓰러뜨렸고, 이어 정팔부하들이 김두한부하들에게 달려들어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정팔부하들의 사나운 공격들이 더욱 거쎄어지자, 수세에 몰린 김두한 별동대원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면서, 곧이어 겁을 먹고는 모두 줄행랑을 치고말았다.

 

김두한이 신의주를 복속시키려고 자신의 부하 40명을 신의주로 출동시켰지만, 시라소니의 두둑한 배짱과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걸려 뒨통으로 당한 채, 완전히 기가 죽어서 여러명의 부상자만 발생시키면서 전원이 서울로 쫒겨오고 말았다.

 

김두한은 서울의 오야붕이 된 후, 한반도 전역의 주먹계를 장악하는데 성공했지만, 유일하게 시라소니가 딱 버티고 있는 신의주만큼은 장악하지 못했다.

이것은 시라소니는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보지못할 만큼, 최강의 싸움꾼이라는 것을 증명해준 사건이다.

 

그 후 6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해방이 된 그 이듬해인 1946년 2월 신의주와 만주에 있던 시라소니가 느닷없이 서울에 나타났다.

 

해방이 된 후, 남한으로 넘어온 정팔이 서울에서 자신의 주먹조직인 중앙극장파를 결성한 후, 신의주에 특사를 파견해서 시라소니를 서울로 모셔온 것이다.

 

정팔이 평안북도출신의 주먹들을 모아 중앙극장파를 결성했고, 이화룡이 평안남도출신 주먹들을 모아 명동파를 결성하면서, 두 집단간에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서로 반목하는 사이가 됐다.

 

황병관, 맨발의 주먹 같은 거물급주먹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명동파가 중앙극장파를 파워에서 압도해나가자, 수세에 몰리게된 중앙극장파의 정팔은 힘의 균형을 이루기위해서 신의주에 있는 시라소니를 급하게 모셔왔던 것이다.

 

서울로 들어온 시라소니는 명동파의 이화룡을 찾아갔고, 이화룡조직의 2인자인 맨발의 주먹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는데,

키 190cm가 넘는 거인 맨발의 주먹에게 전광석화같은 박치기를 날렸고, 이 박치기 한방으로 맨발의 대장을 KO시키면서, 서울에서의 첫전과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같은 시라소니의 위력을 목격한 이화룡은 시라소니의 중재에 적극 협력하면서 명동파와 중앙극장파간의 반목을 해소될 수 있었고, 두 세력이 연합전선을 형성하면서 사실상 한개의 세력으로 통합된다.

 

처음으로 서울로 온 시라소니는 도착하자마자, 대뜸 주변사람들에게 ‘디금 서울에서 누가 데일 쎄디?’ 라고 물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당시의 서울의 최고주먹은 김두한이었고, 김두한이 이끌고있는 우미관조직은 우리나라 주먹계의 최대의 조직이자, 주먹계의 메카와도 같은 존재감이었다.

 

1946년 2월의 어느날 시라소니는 관철동의 종로회관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고향친구이자 역도선수인 이영환을 만나 함께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이날 시라소니가 이영환을 만났던 종로회관은 최고의 주먹황제인 김두한의 아지트였고, 김두한의 나와바리에 속한 곳이었다.

 

시라소니가 사전예고도 없이 감히 김두한의 아지트를 찾아간 것으로, 그 당시 주먹계에서는 시라소니가 김두한에게 도전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대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시라소니는 과거 신의주에 진출한 김두한의 부하들을 흠씬 두들겨패서 쫒아낸 전력으로 김두한과 악연이 있지않은가!

 

이때 시라소니가 다른 장소도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김두한의 아지트인 종로회관을 찾아간 것을 두고, 시라소니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시라소니는 자신보다 쎄다는 사람이 있으면, 기어코 그를 찾아가 도전해서 반드시 쓰러뜨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싸움에 있어서 자존심이 엄청 쎈 시라소니는 자신보다 더 강한 주먹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 스스로 일인지하(일인지하) 만인지상(만인지상)의 싸움꾼으로 남길 원했다.

 

어쩌면 시라소니는 종로회관으로 향하면서 마음속으로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알려진 김두한과의 맞대결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시라소니가 종로회관에 나타나자, 김두한꼬붕이 그의 출현사실을 즉시 김두한에게 보고했다.

 

김두한은 과거 자신이 아끼는 중간보스급 동생 두명을 KO시킨 신의주의 걸출한 싸움꾼 시라소니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또한 자신의 아지트를 예고도 없이 쳐들어온 시라소니에게 손 좀 봐주고 싶었다.

 

종로회관으로 김두한일행이 들어왔는데, 김두한은 신영균, 김삼수, 문영철, 김무옥, 김병수, 이상욱, 홍만길, 털빠진 개고기, 김관철 등 중간보스급 부하들 10여명과 함께 들어왔다.

 

이때 종로회관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 일부가 일어나 김두한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고, 김두한도 이들을 향해 인사로 응답했다.

이곳은 김두한이 즐겨찾는 그의 아성이라, 김두한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좀 떨어진 좌석에 앉아있던 이영환도 김두한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고, 김두한도 그에게 답례를 했다.

그 때 이영환 앞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뒤를 힐끔 돌아보면서, 김두한을 빼꼼히 쳐다봤다.

 

김두한의 동생 김병수가 단번에 그가 시라소니임을 알아차렸고, 그는 김두한에게 ‘저자가 시라소니라는 놈입니다’라고 고해바쳤다.

그 말을 들은 김두한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리면서 한순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김두한은 이날 꼬붕의 보고를 통해 시라소니가 종로회관으로 들어온 것을 알고있었고, 그래서 싸움 잘하는 중간보스급 동생 10명을 거느리고 종로회관에 들어온 것이다.

 

김두한은 과거에 동생들이 시라소니에게 당한 악연이 있던 그를 손봐주겠다고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는데,

시라소니가 제발로 호랑이굴로 기어들어왔으니, 김두한으로서는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향해 ‘시라소니, 너 이새끼 정말 잘 만났다! 네가 감히 호랑이굴로 들어오다니, 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그리 알아!

일전에 신의주에 갔던 내동생들을 왜 그렇게 두들겨팼냐! 오늘 내가 너를 아주 죽여주마!’라고 말하며 시라소니에게 시비를 걸었다.

 

느닷없이 김두한의 욕지거리를 듣게된 시라소니는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네가 김두한이냐!’라고 대꾸했다.

 

시라소니는 이어 김두한에게 ‘내레 경성 최고의 오야붕이 김두한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구만!’

‘그런데, 님자가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 욕지거리를 하다니, 처음 신고식치고는 이거 좀 심하구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다시 김두한에게 ‘전부터 김두한과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거 잘 됐구먼, 우리 이렇게 만났으니 누가 쎈디 한번 붙어보자우!’라고 말하면서 시라소니는 일어나서 잠바를 확 벗어제꼈다.

 

시라소니의 이 도발적인 말과 함께 김두한부하들이 일제히 일어났고, 그 중에 김두한의 경호원이었던 김관철이 황급히 일어나더니, 곧바로 시라소니를 향해 뛰어갔다.

 

김관철이 달려오면서 그대로 솥뚜껑 같은 오른주먹을 시라소니의 면상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이 때 대단한 이변이 발생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김관철이 고목나무가 쓰러지듯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김관철이 달려오면서 시라소니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찰라, 시라소니가 한템포 더 빠르게 박치기로 김관철의 이마를 들이받아버렸고,

동시에 넘어지는 그의 옆구리에 강력한 무릎치기로 찍어버렸고, 이 두방의 연속공격을 받은 김관철은 주먹 한번 내뻗지못하고 그대로 KO당하고 말았다.

 

시라소니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두번의 공격에 거구의 김관철이 맥없이 뻗어버리자, 김두한의 부하들은 크게 놀라면서 긴장감에 휩싸였다.

 

키가 184cm에 몸무게가 130kg이나 나가는 기골이 장대한 막강한 싸움꾼으로 김두한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김두한의 경호원으로 발탁된 김관철이다.

그런 김관철이 자신이 모시는 형님에게 모욕적인 반말을 하는 시라소니를 손보려고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김관철이 공격 한번 못해보고 시라소니의 딱 두방의 공격에 개구리처럼 바닥에 쭉 뻗었으니, 김두한부하들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10여명의 부하들은 김두한의 지시가 있으면, 곧바로 시라소니를 공격할 테세였다.

이렇게 시라소니와 김두한일행 간의 누가 먼저 공격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태가 잠시동안 이어졌다.

 

그러자, 갑자기 김두한이 껄껄껄 하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김두한은 시라소니에게 ‘참으로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라소니란 사람이 우리구역에 들어왔다기에 어떤 사람인가 한번 보고싶어서 이렇게 나왔던 겁니다’라고 부드럽게 말하는게 아닌가!

 

김두한은 아까와는 완전 딴판으로 시라소니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인데, 우리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지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명동의 이화룡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보 다 연배이시니 앞으로 제가 형님으로 대우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화해를 권했고, 시라소니도 흔쾌히 김두한의 화해요청에 응하면서 두사람은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되었다.

 

거물은 거물을 알아보는 법, 영웅은 또다른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다.

이렇게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대결을 펼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김두한은 싸움 대신 화해하는 쪽을 택했다.

 

김두한은 주먹도 쎄지만, 주먹 못지않게 두뇌회전과 상황판단이 무척 빠른 사람이다.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싸움 대신 화해를 했던 이유는 사실 김두한으로서는 조직도 없이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시라소니와 싸워서 이겨봤자 본전이고, 만일 진다면 그는 졸지에 오야붕자리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시라소니를 상대로 위험부담이 큰 싸움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시라소니에게 손을 내밀어 동지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때의 김두한과 시라소니의 화해를 놓고 사람들간의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에 김두한이 시라소니의 위력에 겁을 먹은 나머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말하면서, 시라소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소문까지 떠돌아 다녔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당시 시라소니와 대적한 상태에서 김두한은 자신의 쟁쟁한 부하들 10여명과 함께 있었고, 그의 동생들 모두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주먹들이어서, 시라소니와 한판 붙으면 어떻게 될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두한이 부하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자신의 관활구역 한복판에서 혈혈단신 혼자서 찾아온 시라소니에게 굴복하여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전혀 상황에 안맞는 설정이다.

 

이 당시 김두한이 시라소니의 도전을 받아주지 않고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대우해준 것 때문에, 김두한이 마치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은 것처럼 뜬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뜬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돌고돌아 김두한이 진짜로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은 것으로 와전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당시 김두한은 29살이었고, 시라소니는 31살이어서, 김두한이 자신보다 2살 연배인 시라소니를 예의상 형님으로 대우해준 것 뿐이며,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굴복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때의 상황에서 실제로 시라소니와 김두한일행이 싸움을 벌였다면, 누가 이겼을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라소니가 비록 김두한의 경호원 김관철을 쓰러뜨렸다고 해도, 김두한 곁에서 10여명의 싸움 잘하는 중간보스급 동생 10명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소니가 김두한의 나와바리 한복판에 들어가서 10명이 넘는 김두한일행과 당당하게 맞서면서 김두한으로 하여금 싸움을 회피하게 만들 정도로 시라소니의 두둑한 배짱과 용력만큼은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아뭏튼 시라소니의 도전을 김두한이 회피했기 때문에, 비록 두사람이 싸우지않았더라도, 사실상 시라소니의 판정승이라고 본다.

 

그런데, 한국 최고의 주먹황제라고 불리워졌던 김두한과 동양 최고의 싸움꾼이라고 불리워졌던 시라소니간의 맞대결이 벌어질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김두한의 기권으로 역사적인 맞대결이 이뤄지지않아 진정한 한국 최고주먹을 가려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만일 이 때에 김두한과 시라소니간의 일대일 맞대결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승자가 누가 되었을지 무척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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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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