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그녀들’의 일본미녀 사오리의 프로필과 직업, 최근 근황

 

후지모토 사오리 - 1989년생 현재 나이 33살

 

요즘 ‘골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여자연예인 축구대회가 방송되면서, 월드클라스팀의 사오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축구실력을 발휘하면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면서 곡예와도 같은 축구실력을 뽐내면서 큰 인기를 끌고있는 인물은 바로 후지모코 사오리라는 일본출신 여성인데요.

 

‘골때리는 그녀들’의 여자축구경기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면서, 사오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골때리는 그녀들’의 인기를 한층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하고있는 사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후지모토 사오리의 프로필과 직업

 

후지모토 사오리는 원래 일본여성으로서 1989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33살이구요.

154cm의 아담한 키에 41kg의 몸무게를 가진 사오리는 원래 일본 요코하마에서 살았으며, 요코하마에 있는 페리스대학을 졸업했답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대학까지 나온 사오리가 한국으로 오게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사오리는 한국방송을 보고 너무 큰 흥미를 느껴서 방송인이 되기위해서 한국으로 오게되었다고 합니다.

사오리가 한국으로 오게된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바로 K-POP 때문인데요.

 

사오리는 한국의 K-POP스타 동방신기의 공연을 보고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후지모토 사오리는 처음에 동방신기를 보고 홀딱 반했고, 동방신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결국 그녀는 한국에 대한 크나큰 호감을 느끼면서 한국에 오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오리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페럴림픽 홍보대사를 하게된 것이 그녀가 한국에 정착하게된 직접적인 계기라고 합니다.

 

사오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페럴림픽 홍보대사를 하면서, 평창에 거주하며 동계올림픽에 대한 취재도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를 일본에 송출하는 역할을 했는데요.

 

후지모토 사오리는 페럴림픽 장애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스포츠 활동을 보고,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페럴림픽 현장에서 노인들이 장애선수들과 수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자신도 수화를 배우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후지모토 사오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페럴림픽의 홍보대사를 하면서, 느꼈던 장애선수들과의 수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한국 수화에 푹 빠진 것이 그녀가 한국에 정착하게된 진짜 이유라고 합니다.

 

사오리는 수화를 배워 장애인과 소통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 정착해 수화를 배웠다고 합니다.

 

한국어를 잘못하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일도 어려운 일인데, 한 술 더떠서 한국의 수화를 배우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렇지만 사오리는 도서관에 파묻혀 열심히 공부했고, 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시험에 도전했고, 외국인최초로 1차 필기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고 합니다.

 

사오리는 이렇게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수어에 푹 빠졌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전세계 농인분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으로 퍼포먼스 수어를 만들었고, 그것을 세계의 농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유튜브에 올려 제공하는 일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사오리가 이렇게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퍼포먼스 수어로 만들어 올린 이유는 장애를 가진 농인들이 이 노래를 듣고, 힐링과 위안을 얻어서 보다 더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사오리가 만들어 올린 콘텐츠는 단순한 댄스콘텐츠가 아니라 그녀의 율동 하나하나가 농인들을 위한 수어이며, 이러한 수어들을 음악의 율동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 화려하고 멋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오리의 발상!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과연 보통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오리는 보통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농인들의 문화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독특한 수어퍼포먼스를 만들어서, 농인들의 마음에 힐링과 위안을 안겨주고자 했던 겁니다.

 

낮선 이웃나라에 와서, 불우한 장애인들에게 위안을 주기위해서 수어콘텐츠까지 만들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노력하는 사오리의 따뜻한 마음씨가 정말 대견하지 않습니까? 사오리의 이런 봉사정신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오리는 대학다닐 때에 한국에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온 적이 있어 그 때에 한국에 진한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오리는 동계올림픽 때에 다시 한국에 왔고,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서울에 있는 수어전문학원에 다니면서 수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후지모토 사오리는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하루 11시간 동안 한국어와 수어 공부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사오리가 한국수어를 익히기 위해서는 농인문화, 한국어, 통역기법,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야만 했고, 결국 사오리가 한국에 온지 3년이 지난 현재, 한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고, 농인들과의 수어도 능숙하게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오리는 수어통역사 자격시험의 필기시험까지 합격할 정도로 큰 발전을 하게 되었지요.

사오리는 앞으로 수어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농인, 청인들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싶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답니다.

 

사오리는 이제 한국에 거주한 지, 3년이 되었답니다. 사오리가 한국에 올 때에, 그녀의 부모님은 엄청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오죽하면, 부모님은 굳이 한국에 가려거든 부모자식간의 연을 끊고 가라 하고 말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오리는 2018년 한국으로 건너왔고, 그 후 그녀는 한국에서 방송인이자, 수어아티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사오리는 한국에 온 후, 2018년 ‘생방송 오늘 저녁’에 출연해 먹방을 보여주면서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고, 이 당시 사오리는 ‘한식먹방 요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놀라운 스타킹, 매불쇼, 비정상회담, 대한외국인, 골때리는 그녀들 등 계속해서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답니다.

 

사오리는 작년 2월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을 맞이해서, 가수 이적의 노래 ‘당연한 것들’을 한국 수어로 창작해서 콘텐츠로 만들었고,

이것을 전세계의 농인과 청인들이 한국수어에 공감할 수 있도록 유튜브에 올려 공개했답니다.

 

그 후에도 사오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방탄소년단의 노래 ‘ON’과 ‘다이너마이트’를 수어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렸답니다.

사오리는 자신의 유튜브채널에 K-POP노래를 수어로 창작해서 만든 콘텐츠를 올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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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후지모토 사오리의 프로필과 직업, 그녀가 한국에 오게된 이유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어요!

 

◆ ‘골때리는 그녀들’ 사오리의 뛰어난 활약으로 월드클라쓰팀 4강 진출

 

사오리는 현재, SBS 예능방송 ‘골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해 월드클라쓰팀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팀의 에이스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SBS에서 수요일마다 방송되는 예능프로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자연예인들이 팀을 나눠서 토너먼트 경기를 치러서 우승을 겨루는 여자 연예인축구대회랍니다.

 

이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월드클라쓰팀에 소속된 사오리가 엄청나게 축구를 잘한답니다.

사오리는 월드클라쓰팀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민첩하며, 가장 개인기가 좋은 팀의 에이스로 활동하는 선수죠.

 

‘골 때리는 그녀들’ 전체 선수들 중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박선영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바로 사오리인데요.

키와 체구는 아주 작지만, 운동신경이 아주 뛰어나고 엄청 빠르고 민첩한 사오리는 월드클라쓰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선수지요.

 

불나방팀과의 경기에서 유일하게 첫골을 터뜨린 선수도 바로 사오리였지요. 비록 월드클라쓰팀이 불나방팀과의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지만,

7월 14일날 월드클라쓰는 개벤져스와 조별 예선 마지막경기를 치뤘답니다.

 

이 경기에서 월드클라쓰팀이 개벤져스에게 비기거나, 진다면 예선탈락해서 본선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답니다.

월드클라쓰가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벤져스에게 1-0 이상의 성적으로 이겨야한답니다.

 

전반 10분, 후반 10분 총 20분 동안 월드클라쓰와 개벤져스가 피를 말리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월드클라쓰가 1:0으로 승리하는 쾌거를 이뤘답니다.

이날 월드클라쓰가 개벤져스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에이스인 사오리가 큰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개벤져스는 지난번 설날 경기 때, 준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막강한 팀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월드클라쓰가 개벤져스를 꺾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답니다.

 

이번 월드클라쓰 대 개벤져스경기에서 골을 떠뜨린 사람은 구잘선수랍니다.

그렇지만, 사오리는 여러번에 걸쳐서 개벤져스의 골대 근처로 진격해 들어가서 여러번 슛팅을 날리면서 큰 위협을 가했답니다.

 

이렇게 사오리의 기습적인 적진돌파와 슛공격은 개벤져스 수비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월드클라쓰가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았습니다.

 

비록 슛을 성공시킨 선수는 구잘이었지만, 전광석화처럼 빠른 스피드로 개벤져스의 골대 앞으로 기습적으로 돌파해 들어가서 날카로운 슛을 날리면서, 개벤져스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든 선수는 사오리였답니다.

 

이번경기는 본선진출권이 걸려있는 중요한 경기라서, 양팀 선수들간에 매우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는데요.

후반전에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던 안영미와 이경실, 사오리가 삼중충돌하는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답니다.

 

이 충돌사고로 이경실은 팔에 부상을 입고 퇴장하고 말았고, 안영미는 왼쪽눈에 부상을 입어서 붕대투혼을 펼쳤답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사오리는 아무런 부상을 입지않았기에, 계속해서 경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답니다.

 

수비선수 안영미가 무모하게 달려들고 강력한 테클을 걸어서 사오리가 다칠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여러번 벌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사오리는 전혀 다치지않고 자기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답니다.

 

안영미와 이경실이 가장 빠른 공격수인 사오리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여러번에 걸쳐 더티한 플레이와 위험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오히려 다친 사람은 가해자 안영미와 이경실이었고, 피해자인 사오리는 전혀 다치지않고 말짱했는데, 이것은 정말 천운이 따른 기적이 아닐 수 없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반듯하고 착하게 살아온 사오리의 심성을 가륵하게 생각한 하나님이 그녀를 지켜주셨기 때문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사오리는 수비진과 공격진 양쪽을 오가면서 전천후선수로 맹활약을 펼친 끝에, 월드클라쓰가 개벤져스에게 승리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답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않는 사오리의 전천후활약에 힙입어 구잘이 슛을 성공시킬 수 있었고, 전반에 터뜨린 1:0의 상황은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역전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 결국 월드클라쓰가 개벤져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답니다.

 

월드클라쓰 선수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맨땅에 누워서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최진철감독과 포옹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날 경기에서 패배한 개벤져스는 예선탈락으로 본선경기에 진출할 수 없게되었고, 경기에 승리한 월드클라쓰는 A조에서 불나방팀과 함께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 격렬한 경기에서 작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사오리는 개벤져스 선수들의 더티한 반칙행위를 계속 당하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말했답니다.

사오리는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상대선수들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말하면서 위로를 해주곤 했답니다.

 

정말 사오리는 얼굴도 예쁘고 귀엽지만, 그녀의 심성은 착하고 훌륭했답니다.

 

사오리는 몸이 불편한 농인들을 위해서 스스로 수어를 배우고 익혀서, 농인들을 위한 수어퍼포먼스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등 청각장애자를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것 하나만 보아도 사오리가 얼마나 착한 심성을 가졌는지, 그녀의 인성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승리를 위해서 수단방벙을 안가리고, 위험천만한 더티플레이를 일삼는 개벤져스 선수들의 도발에도 항상 웃는 얼굴로 대응하면서,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로 일관했던 사오리는 이번 ‘골때리는 그녀들’ 시즌2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아름다운 선수가 아닐 수 없답니다!

 

개벤져스팀은 실력으로도 졌고, 매너면에서도 졌습니다. 그렇지만 페어플레이로 일관한 월드클라쓰팀은 실력으로도 이겼고, 매너로도 이겼습니다!

 

사오리가 출전한 ‘골때리는 그녀들’의 시청률 6.4%에서 10%까지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골때리는 그녀들’은 뉴스를 빼놓고는 동시간 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골때리는 그녀들’은 SBS에서 매주 수요일밤 9시경에 방송하고 있으니, 못보신 분들은 한번 보시길 바래요!~ 결코 후회하지 않을실 거예요~

 

오늘은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민첩함과 뛰어난 개인기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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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

70년대 최고의 하이틴스타 임예진의 미모와 러브스토리, 결혼, 남편 최창욱의 직업

 

오늘은 7080시대의 미녀스타 임예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임예진은 70년대에 많은 하이틴영화에 출연하면서 젊은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대표적인 청춘스타이지요.

 

임예진은 앳되고 순수한 미모로 70년대 하이틴영화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하이틴스타입니다.

 

그녀는 ‘여학생’이라는 학생잡지에 표지모델을 하면서 처음으로 데뷔하게 되었고,

1974년도에 중학생의 신분으로 불교영화 ‘파계’에 전격 출연하였는데, 이 영화에서 여자로서 최초로 삭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라 노출연기를 감행해서 큰 화제를 뿌렸던 주인공이랍니다.

 

70년대에는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해서 전면에 내세운 하이틴영화들이 큰 붐을 일으키던 시대였지요.

그러한 붐 한가운데에 임예진이 있었고, 임예진은 여러편의 하이틴영화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면서 최고의 하이틴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1976년도에 ‘진짜 진짜 좋아해’를 비롯해 ‘소녀의 기도’ ‘이런 마음 처음이야’ ‘여고졸업반’ ‘아무도 모를 거야’ 등 소녀 취향 물씬 풍기는 순수하고 맑은 감성의 고교생영화에 임예진이 출연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녀가 출연영화마다 흥행대박 행진을 이어가면서 ‘임예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답니다.

 

그 당시 우리영화계는 유신정권의 검열로 침체기에 빠져있었는데, 임예진은 연속으로 하이틴영화에 출연해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 우리영화계의 부흥을 이끌었던 당대의 최고의 하이틴스타였습니다.

 

그녀가 데뷔한 후 수년동안 임예진은 하늘을 찌를 듯 최고의 하이틴스타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연예인 책받침스타의 원조같은 존재감이었습니다.

1976년에는 그녀는 연예인수입 순위 1위를 기록했을 정도랍니다.

 

이렇게 70년대 중반에 10대 학생들의 전폭적인 환호와 열광을 받으면서 하이틴스타로 등극했던 임예진은 70년대 후반부터 소녀티를 벗어버리고 성인영화에 출연하는 등 연기변신을 시도하게 됩니다.

 

대학생이 된 79년도에 임예진은 신성일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땅콩 껍질 속의 연가’에 출연해 성숙한 연기를 펼치면서 이미지변신을 시도했지만,

그녀의 소녀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만을 보아왔던 대중과 매스컴으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으면서 좌절하게 되었고, 1980년 이후 심한 슬럼프에 빠지게됩니다.

 

하이틴영화에서 순수하고 맑은 소녀역할을 많이 맡아서 ‘청순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임예진, 그렇지만 이러한 임예진의 소녀감성의 이미지가 나중에 그녀가 성인연기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됩니다.

 

임예진은 1970년대 중반에 앳되고 순수한 소녀같은 미모로 하이틴영화의 아이돌로 큰 각광을 받았고, 이 때만해도 ‘국민여동생’ 같은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1978년부터 임예진은 하이틴영화의 한계를 느끼고, 이미지변신을 시도하면서 성인영화에 본격 출연하게되는데요.

임예진은 이대근과 함께 영화 ‘불’에 출연해 파격적인 성인연기를 펼치면서, 소녀로서의 이미지를 완전 벗어버립니다.

 

또한 임예진은 신성일과 함께 성인영화 ‘땅콩껍질 속의 연가’에 출연해 파격적인 누드촬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답니다.

 

영화 ‘땅콩껍질 속의 연가’의 임예진

 

이렇게 임예진이 성인영화에 출연해 파격적인 연기를 펼친 이유는 그녀에게 굳어진 하이틴스타로서의 소녀같은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답니다.

 

왜냐하면, 임예진은 1977년도까지만 해도 고교생영화의 히로인으로서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 반듯한 이미지의 대명사였기 때문이지요.

 

임예진은 데뷔 후 3년동안 무려 18편의 고교생영화에 연속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그녀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져있던 상태였지요.

 

그런데,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녀가 주도해왔던 하이틴영화가 재탕, 삼탕되며 식상해지면서 점점 쇠락의 길로 빠져들었고, 이제 성인연기자로의 변신을 꿈꿨던 임예진은 누드촬영 같은 파격연기로 이미지변신을 시도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국민여동생’으로서 반듯하고 깨끗한 이미지만을 바래왔던 대중들은 그녀의 파격변신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그녀에게 대중들로부터 거쎈 질타가 이어졌답니다.

 

임예진은 이같은 질타로 인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고, 성인영화는 고작 4편 정도 출연한 후, 활동을 멈추게된답니다.

 

임예진은 하이틴스타로서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성인배우로서는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녀의 성인배우 도전은 사실상 실패하고 만답니다.

 

이렇게 하이틴스타에서 성인배우로의 변신을 제대로 하지못하면서 공백기를 갖던 시기에, 임예진은 돌연 드라마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TV드라마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게 된답니다.

 

그녀는 79년도에 드라마 ‘하얀민들레’를 비롯해 ‘안국동 아씨’ ‘친구야 친구’ ‘겨울해바라기’ ‘사랑과 야망’ 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70년대의 하이틴스타로서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한 후, 이젠 주연·조연을 가리지않는 전천후연기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임예진은 김수현이 집필한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김수현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김수현사단의 일원이라고 할만큼 수많은 김수현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치게된답니다.

 

그녀가 출연한 김수현각본의 드라마로는 ‘사랑합시다’를 비롯해 ‘내일’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작별’ ‘무자식 상팔자’ 등 대부분 인기가 높았던 작품들이며, 임예진은 이들 드라마에서 감칠맛 나는 맛깔스럽고 구수한 연기를 선보이면서, 극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렸답니다.

 

또한 임예진은 2000년대 후반부터는 여러편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감칠맛나는 입담을 과시하면서, 프로그램의 재미를 올려주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답니다.

 

◆ 임예진의 연애, 결혼과 남편 직업

 

임예진은 1989년 4월 최창욱과 결혼을 했는데, 그녀의 남편 최창욱은 그녀가 진행자로 출연한 어린이프로그램의 조연출이었고, 두사람은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조연출의 인연으로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한 사이랍니다.

 

임예진은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30살 때 최창욱과 결혼해, 슬하에 1명의 딸을 두고 있습니다.

 

임예진과 남편 최창욱은 나이가 서로 동갑이며, 최창욱은 MBC방송국의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임예진남편 최창욱은 원래 학교 영어교사였는데, 직장을 그만 둔 후, 잠시 방황하다가 1986년에 MBC방송국에 입사한 후, PD, 드라마 기획개발센터장, 드라마 1국장등을 역임하는 등 MBC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아 일해온 MBC의 중역이랍니다.

 

임예진남편 최창욱은 1992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거북이의 꿈’을 연출한 후, 수많은 인기드라마를 연출해왔던 MBC의 베테랑 PD입니다.

그는 작년 3월에 MBC 등기이사겸 본부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최창욱은 MBC 드라마 ‘궁’ ‘환상의 커플’ ‘마의’ 등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작들을 만들어내기도 한 기회통이라고 합니다.

 

임예진은 과거 한 방송에서 자신의 연애담을 고백했는데요.

‘이상형과 결혼했더니, 살면 살수록 남편이 더욱 좋아진다’고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과시했답니다.

 

남편 최창욱은 임예진과 사귈 당시에는 조연출이었는데, 우연히도 임예진과 최창욱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두사람간의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그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임예진과 최창욱을 엮어주려고 툭하면, 그녀한테 녹화테이프를 최창욱한테 전해주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임예진은 PD의 부탁으로 최창욱에게 테이프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자주 했었고, 그 때마다 최창욱이 고맙다고 말하면서 임예진에게 차도 사주고, 밥도 사주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임예진과 최창욱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두사람이 친해질 무렵, 임예진이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같이 식사나 하실래요’ 라고 데이트를 제안했고, 남편 최창욱이 흔쾌히 응하면서 본격적인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임예진은 중학교 때부터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 연기활동을 하느라, 학교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는 지식이 많고 똑똑한 남자를 원했는데, 잘생기고 멋진 남자보다는 똘똘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이 좋았고, 남편이 딱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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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은 그녀의 남편 최창욱이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순박한 인상에다 교육자집안에서 자랐다는 점이 맘이 들어 결혼했는데, 살면 살수록 더욱 좋아지는 사람이라고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과시했답니다.

 

사실 임예진남편 최창욱은 고교시절부터 임예진을 무척 좋아했던 임예진의 광팬이었다고 하네요.

최창욱은 임예진을 만나기위해서 방송국에 들어왔다고 할 정도로, 그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최창욱이 방송국에 입사하게된 계기가 있는데요. 최창욱은 원래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퇴직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때 문득 한 잡지표지모델로 나온 임예진을 보고 그녀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결국 MBC방송국에 입사하는데 성공, PD와 연예인으로 두사람의 만남이 성사되었던 겁니다.

 

즉, 임예진남편 최창욱은 결혼 전부터 임예진의 열혈팬이었답니다.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데이트를 하게된 최창욱과 임예진은 1989년 4월 2년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결혼 후 임예진은 딸 한명을 낳았답니다.

 

남편 최창욱은 임예진을 끔찍하고 사랑하는 아내바보로 유명하답니다.

임예진이 명절날 시댁에서 일을 하고있을 때, 남편 최창욱은 갑자기 주방에 들어와 ‘여기서 뭐하고 있어? 우리 집사람은 이런 거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하면서 임예진을 끌고 나올 정도로 아내를 아껴주고 끔찍이 사랑해준다고 합니다.

 

임예진은 남편 최창욱에 대해 ‘내일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임예진은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이랑 결혼했고, 마음도 너무 잘 통하고, 이제까지 함께 살면서 단 한번도 실망을 주지않은 사람이다’고 말하면서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과시했답니다.

 

항간에는 임예진이 남편과 이혼했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임예진은 남편 최창욱과 결혼 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금슬좋게 잘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임예진이 한 방송에 출연해 남편과 20년 동안 각방을 쓰고있다고 고백해서 놀라움을 주고있는데요.

 

방송 ‘동치미’에서 임예진은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각방을 써야한다’면서 ‘저희는 20년 동안 각방을 썼다’고 말했답니다.

 

임예진은 ‘저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 남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또 저는 불을 환하게 켠다’고 말했는데요.

자신과 남편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 서로 각방을 쓰는 게 서로 편리했고, 이런 편리함 때문에 20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각방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그녀는 ‘방송을 끝내고 새벽에 들어와서 막 잠든 시간인데, 남편이 자신의 1인용침대에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조만간 문을 잠그고 자려고한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임예진의 남편은 상당한 원칙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절대로 남에게 빚을 지면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임예진·최창욱 부부는 결혼한 지 30년만에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고 합니다. 임예진은 2년전에야 비로서 자기집을 장만했다고 하는데요.

정말 놀랍게도 70년대 최고의 하이틴스타였던 임예진이 결혼한 지 30년동안 내집없이 전세를 전전했다고 합니다.

 

절대로 빚을 내어 집을 사면 안되는다는 남편의 고지식한 원칙 때문에, 집을 사고싶어도 집을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임예진은 2년 전에 남편 몰래 은행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고야말았답니다. 

 

인기높은 유명한 하이틴스타 출신 연예인 임예진이 30년만에야 비로소 자기집을 구입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큰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있는데요.

임예진의 남편은 그야말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온 청백리의 표상같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이런 청렴결백한 삶을 잘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면서 함께 원앙같은 부부의 삶을 살아온 임예진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임예진은 결혼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과 알콩달콩한 애정을 주고받으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임예진딸은 미국에서 유학을 했는데, 공부 잘 하기로 소문난 모범생이라고 합니다.

 

현재 임예진은 방송3사의 여러 드라마에서 어머니역 같은 조연으로 출연해, 감칠맛나는 감초연기로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임예진이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는 남편과 행복하고 평온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서 정말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도 임예진이 여러 방송과 드라마에 출연해 맛깔스러운 좋은 연기하는 모습 계속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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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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