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지인의 젊은시절 미모와 영화, 전남편 이혼사유

연예인 핫토픽 2018. 3. 18. 22:31

 

유지인의 젊은시절 영화들과 나이, 이혼사유와 이영하와의 스캔들

  

유지인 1956127일생 (나이 63).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사, 석사 , 키 164cm 

 

오늘은 신트로이카여배우의 한사람으로서, 70, 8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유지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970년대 유지인은 청순하고 이지적인 미모로 영화와 안방극장에서 사랑 많이 받았던 인기높은 여배우였답니다.

 

70년대 TV가 보급되고나갔던 그시절, 유지인은 드라마 서울야곡에서 매우 청순한 이미지와 인상적인 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요.

 

특히 유지인은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미모로 70년대를 대표하는 미인 3인방 중 한사람으로 매우 지명도 높은 여배우로 이름을 떨쳤는데요.

 

동양여성 같지 않은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눈망울과 가늘면서도 오똑한 콧날, 얇고 가지런한 잎술 등 세련되고 이지적인 미모를 가진 유지인은 70년대 당시에는 청순미의 상징과도 같은 대단한 존재감이었답니다.

 

지금은 수많은 화장품들이 즐비하지만, 70년대만 해도 국내에 화장품회사는 3개사 밖에 없었으며,

배우들이 화장품모델에 뽑힌다는 것은 미스코리아 진에 뽑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답니다.

 

70년대 당시 화장품CF모델에 발탁된다는 것은 최고미인으로 공인받는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리고 화장품모델에 발탁된 여배우들은 그 미모를 인정받아서 톱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이지적이고 세련된 미모를 간직한 유지인은 그녀의 출중한 미모가 인정받아 쥬단학화장품의 전속모델로 스카웃되어 수년동안 화장품모델로 활동하게 된답니다.

 

70년대의 또다른 그녀의 라이벌인 정윤희도 다른 화장품모델에 발탁되어 유지인과 정윤희는 안방극장과 영화에서 미모와 인기를 겨루는 라이벌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답니다.

 

젊었을 적의 유지인은 허리우드의 미인 그레이스 켈리를 매우 닮은 미모로 눈길을 끌었답니다.

유지인은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청순미모를 간직했는데, 허리우드의 미녀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도도하면서도 이지적인 미모를 연상케 해준답니다.

 

반면 정윤희는 뚜렷한 이목구비와 선굵은 미모로 눈길을 끌었답니다. 이지적이고 청순한 미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지인을 선호했고,

동양적이면서 조각같은 미모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정윤희를 선호했으며,

깔끔하면서 단아한 매력을 가진 장미희를 좋아하는 대중들의 많이 있었답니다.

 

이렇게 70년대에는 유지인과 정윤희, 장미희가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를 3분할하면서, 서로 미모와 인기의 경쟁을 펼치면서 60년대 트로이카에 이어 신트로이카 3인방을 형성하면서,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들로서 맹활약해 나갔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거의 10년 동안 우리나라 여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유지인과 정윤희, 그리고 장미희의 3인방들이었답니다.

 

이들은 70~80년대 우리나라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해서,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시대를 이끌어갔던 최고의 인기여배우들이랍니다.

 

이들 미녀 트로이카 3인방 중에서도 유지인이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그녀의 독보적인 매력인 청순한 미모와 지성적인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유지인은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나서 70년대 후반부터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얼굴만 예쁜 여배우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렸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미인들 가운데, 초창기에 얼굴만 예쁜 여배우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여배우가 3명 정도 있는데요.

70년대 전반의 유지인과 90년대의 이영애, 그리고 2000년대 김태희가 그런 여배우로 인식되었던 여배우들이었는데요.

 

즉 얼굴은 엄청나게 예쁜데, 연기력이 잘 받쳐주지 않아서 예쁜 얼굴 덕분에 주연배우자리를 쾌찮다는 평가를 받던 여배우들을 의미한답니다.

 

유지인도 70년대 중반 처음 영화에 출연했을 때와 몇편의 영화들에서 얼굴만 예쁜 여배우로 평가받기도 했답니다.

 

그렇지만 유지인은 각고의 노력과 풍부한 연기경험을 쌓으면서 혼과 육신을 다해 열정적인 연기력을 펼침으로써,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선보이면서 얼굴만 예쁜 여배우라는 딱지를 금방 뗄 수가 있었답니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에서 과거에 죽은 줄 앓았던 남편과 현재의 부잣집 아들 출신의 새남편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매우 인상적이고도 차원 높은 연기를 펼치면서,

유지인은 탁월한 미모 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연가파 여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날로 발전하는 연기력을 통해서, 열정적이고도 뛰어난 연기를 펼친 유지인은 79년도에 TBC 동양방송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거머쥐게 되었고, 같은 해에 영화 심봤다로 대종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냅니다.

 

또한 유지인은 1980년도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여자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면서, 70, 80년대를 대표하는 완벽한 연기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또한 유지인의 미모와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만 머문 게 아니라, 아시아 여러나라에서도 인정받게 되는데요.

영화 가시를 삼킨 장미1980년도의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타내면서, 유지인의 미모와 연기력은 아시아 여러나라들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답니다.

 

유지인의 영화활동 경력

 

유지인은 여고 3학년에 다닐 때인 1973년도에 일찌감치 TBC 동양방송의 공채 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답니다.

 

그다음해인 1074년도에 중앙대학교 1학년생이었던 유지인은 그녀의 빼어난 미모가 소문이 나 있던 터라,

방송국관계자의 추천을 받아서 새롭게 제작되는 영화 그대의 찬손의 여주인공 공모에 응모하게 되었답니다.

 

이 영화 그대의 찬손의 여주인공 공개모집에 응모한 유지인은 놀랍게도 23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답니다.

 

이때 유지인이 응모한 23001의 경쟁률은 우리나라 여배우 응모사상 최고의 경쟁률로 기록되고 있으며, 유지인은 하늘 같이 높은 이 경쟁률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어서 영화 그대의 찬손의 여주인공 자리를 꽤찰 수 있었답니다.

 

유지인이 이처럼 23001의 높은 경쟁률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눈에 띄는 세련된 미모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이렇게 데뷔하면서부터 출중한 미모를 과시했던 유지인은 1977년도 TBC 동양방송의 드라마인 서울야곡의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슬프고도 애절한 연기력을 펼쳐보이면서, 드라마 서울야곡의 인기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드라마 서울야곡이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유지인의 인기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게 된답니다.

 

이 드라마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된 유지인은, 같은해의 또다른 드라마 청실홍실의 여주인공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정윤희와 장미희와 함께 70, 80년대를 대표하는 신트로이카구도를 형성하면서,

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톱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유지인은 영화계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는데요. 1978년도 영화 마지막겨울에서 이영하와 함께 열연을 펼쳤는데, 마지막겨울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고,

79년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 내가 버린 남자는 그해에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흥행여배우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유지인은 그 외에도 영화 청춘의 덫’ ‘가시를 삼킨 장미’ ‘심봤다’ ‘바람불어 좋은날’ ‘피막등 여러편의 흥행작품에 출연해서 큰 성과를 펼치면서 그야말로 70, 8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여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답니다.

 

1980년경 유지인은 연예인 소득 1위에 올랐을 정도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유지인의 전성시대라고 할만큼 상도 많이 타고 돈도 많이 벌면서, 높은 인기와 명예를 누리던 최고의 리즈시절이었답니다.

 

또한 유지인은 영화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가장 먼저 대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이때가 유지인 연기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답니다.

 

물론 유지인의 뒤를 이어 80년도에 정윤희도 대종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고, 장미희는 1983년도에 영화 적도의 꽃으로 대종상을 수상했답니다.

   

유지인의 결혼과 이혼, 이영하와의 관계

 

이렇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서 수많은 드라마와 총 48편의 영화에 출연해서 맹활약을 펼쳤던 유지인은

1986년 내과의사인 전남편 조태봉과 결혼하면서 연예계에서 사실상 은퇴하게 되며, 가정주부에 전념하게 되었답니다.

 

유지인은 86년도에 동갑내기인 31살의 경찰병원 내과의사인 조태봉과 결혼을 하면서 은막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유지인과 조태봉은 3년전에 용평스키장에서 만나서 은밀하게 교재를 해왔다고 합니다.

 

유지인남편 조태봉은 충남 대전출신으로 한양대학 의대를 나왔던 재원이었고, 조태봉의 아버지는 대전에서 개인병원을 개업하고 있었기에, 조태봉은 대전에서 아주 잘 나가는 명문가문 출신이었답니다.

 

조태봉의 집안은 지역유지이자 명문가문이었기에, 조태봉이 여배우 유지인과 결혼하는 것을 엄청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세상에 자식 이길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결국 조태봉과 유지인은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서 결혼에 골인하게 된답니다.

 

장래가 출중한 내과의사와의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 유지인은 그후 두명의 딸(조희수와 조연수)을 낳아 기르면서, 연기활동을 잠정 중단한 채 대전의 시집에 들어가서, 가정주부생활에만 매진해나갔답니다.

 

유지인의 두 딸 조희수와 조연수는 모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큰딸 조희수는 미국회사에 취직해서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딸 조연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는데, 유지인은 딸들에게 연예인을 시킬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정생활에 충실했던 유지인은 결혼생활 16년만인 2002년도에 갑자기 이혼을 하게 된답니다.

 

의사인 남편과 두명의 사랑스런 딸, 그리고 유복한 가정환경 등 남부럽지 않은 가정생활을 해왔던 유지인이 평생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2002년도에 갑자기 이혼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매우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해왔던 유지인의 이혼은 대중들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유지인 16년간의 결혼생활 중에 거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고,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에만 전념을 해왔는데요.

 

그렇게 모범적으로 주부생활을 해왔던 유지인의 갑작스러운 이혼의 사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답니다.

 

유지인의 이혼사유는 유지인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주변인들을 통해서 유지인과 남편 사이에 성격차이 때문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지인은 외모는 조신하고 여성스럽지만 성격은 시원시원하고 호방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유지인은 대전에서 시댁에 들어가 살았기 때문에, 자유롭고 호탕한 성격을 지닌 그녀가 시부모를 모시고 함께 살면서, 말못한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답니다.

 

유지인과 남편 사이에 특별히 큰 갈등이나 외도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유지인과 전남편의 이혼에는 두사람의 성격차이와 시댁과의 갈등이 큰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유지인 스스로 방송에 출연해서, ‘이혼으로 불편한 것들을 다 떼어버리니까 아주 속이 편하더라’ ‘아이들이 반듯하게 잘 커서 지금 내마음속엔 행복만이 가득하다고 말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롭고 호방한 성격을 지닌 유지인은 틀에 박힌 결혼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연기생활을 벌여나가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유지인이 이혼에 대해서 전혀 후회나 부정적인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유지인은 전남편과 성격차이와 시댁과의 틀에 박힌 관계에서 오는 굴레의 틀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답니다.

 

유지인은 2002년도에 이혼을 하고난 후, MBC 미니시리즈 삼총사로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된답니다.

 

그렇게 연예계에 다시 복귀한 유지인은 MBC 주말드라마 회전목마KBS 일일연속극 금쪽같은 내새끼를 비롯해서, ‘분홍립스틱’ ‘역전의 여왕’ ‘청담동 스캔들’, 그리고 2015년도에는 일일드라마 마녀의 성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오면서,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듯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답니다.

 

결혼생활 16년간의 억압되어 펼치지 못했던 연기활동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유지인은 오히려 이혼후에 수많은 드라마들에 출연해서 더욱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답니다.

유지인이 이혼 후부터, 지금까지 무려 22편이나 되는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왔답니다.

 

유지인은 1956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63세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그녀는 젊은시절 못지않은 단아하고 은은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60이 넘은 나이로 얼굴에는 다소 주름이 끼어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지인은 젊었을 때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답니다.

 

2002년도에 이혼을 한 유지인은 이혼 후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재혼을 하지않고 독신으로 지내오고 있답니다.

 

유지인의 최근근황을 보면, 그녀는 2016년도 마지막 드라마 마녀의 성에 출연한 이후 다음차기작에는 아직 출연하지 않고 있지만,

교양음식프로인 알토란에는 계속 고정개스트로 출연하고 있으며, ‘알토란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16년간의 길고도 긴 결혼생활, 그리고 틀에 박히기를 싫어하는 성격의 유지인은 이혼 후 다시 16년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재혼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유지인은 방송활동 열심히 하면서, 자신의 사랑스런 두딸과 함게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유지인과 두 딸

 

어쩌면 유지인은 다시 재혼을 하지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70, 80년대의 톱스타였던 그녀가 맘만 먹었다면, 벌써 여러번 재혼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유지인은 그정도의 미모와 인기를 보유하고 있지요.

 

유지인은 전성시기절에도 스캔들이 전혀 없는 깨끗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갖고있었고, 자기관리를 아주 잘하는 여배우로 소문이 나 있었답니다.

 

엄격한 군인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반듯하고 모범적인 인성을 갖고 있는 유지인이 남자들을 멀리하고 자기관리를 너무 철저하게 하는 바람에, 점점 재혼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보여진답니다.

 

당분간 유지인의 재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유지인과 이영하와의 스캔들이야기가 퍼지나온 적이 있는데요. 이영하가 부인 선우은숙과 2007년도에 결혼생활 26년만에 이혼을 했는데요.

 

그당시 나온 루머가 이영하가 다른 여자와 사귀어서 이혼을 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유지인이 이영하와 친하게 지냈다는 두사람의 교제설이 나돌기도 했답

니다.

마치 이영하와 유지인 두사람이 교제하는 바람에, 이영하와 선우은숙이 이혼하게 된 것처럼 잘못된 루머가 퍼지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유지인과 이영하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담 때문에 이같은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인데요.

 

사실 유지인과 이영하는 동문이라고 합니다. 두사람은 같은대학인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왔으며 대학원도 함께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지인과 이영하는 젊었을 때에 둘다 톱스타였기 때문에, ‘마지막겨울등 여러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해왔기 때문에, 친구같이 막연한 사이였다고 해요.

 

이영하와 유지인은 2000년대 이후에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함께 다녔고, 와인스쿨도 함께 다녔던 동문이자 친한 클라스메이트였기 때문에, 학교식당에서도 밥도 같이 먹고,

같은 동문들끼리 모여서 회식도 같이 하는 바람에, 두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여러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같은대학원 동문출신인 두사람이 함께 강의를 듣고 친하게 지내는 바람에 남들이 두사람의 관계를 오해한 듯하다고 이영하가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영하와 유지인은 그냥 동문으로서 막연한 친구사이에 불과할 뿐이지, 그런 관계는 결코 아니라고 합니다.

 

이영하는 아는 지인으로부터 이영하와 유지인 두사람이 팔짱을 끼고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는 전언을 들었다고 하는데요.

 

같은 대학원동문으로서 막연하게 지내왔던 털털한 성격의 이영하와 호방한 성격의 유지인이 학교주변에서 회식을 하면서, 같이 있었던 것을 남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을 것으로 보인답니다.

 

대학원동문 회식자리에서 두사람 외에도 여러명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항상 유명연예인들은 남들의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마도 두사람이 교제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왔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사람의 스캔들 루머가 나돌았기 때문에, 요즘 이영하는 막연한 친구로 지내왔던 유지인과는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도안되는 스캔들에 매우 놀란 보수적인 성격의 유지인이 친구 이영하와의 만남을 완전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70, 80년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녀여배우로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유지인이 지금 독신으로 지내면서 그녀만의 고고한 품위와 아름다움을 잃지않고 방송에서도 활치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유지인이 드라마에서 좋은 배역을 맡아서 그녀의 완숙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자신의 품위와 고고한 미모를 잃지않는 유지인은 7080세대의 영원한 마음속의 연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유지인이 20살 때인 이 시기에 노래를 직접 부르는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인데요. 유지인이 왜 70,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미인인지는 아래 동영상을 보신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실 줄 믿습니다.

 

 

1975년도에 유지인의 노래하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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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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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현의 최근모습과 성형설, 영화 ‘천녀유혼’줄거리

연예인 핫토픽 2018. 3. 13. 19:33

 

왕조현의 최근얼굴과 근황, 천녀유혼’ 주제가영상 

   

2018년도 신년을 맞이해서 또다시 왕조현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왕조현은 80, 90년대에 천녀유혼등 수많은 판타지무협영화에 출연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홍콩여배우랍니다.

 

왕조현은 172cm의 늘씬한 키와 크고 초롱초롱한 눈과 뚜렷한 이목구비에 청순한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당시 한국과 일본매스컴으로부터 동양최고의 미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중국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랍니다.

 

왕조현은 그녀의 대표작인 천녀유혼1,2, 3편까지 찍었고 또다른 판타지무협영화 화중선’ ‘동방불패2’를 찍는 등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쳤는데,

2004년 영화 미려상해를 끝으로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면서, 영화계에서 완전 은퇴하고 말았답니다.

 

왕조현은 이미 2000년대 전반에 은퇴하고 난 후, 현재는 캐니다 밴쿠버에서 독신으로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한때 동아시아를 뒤흔들 정도로 눈부신 미모를 발산하면서 수많은 남성들을 설레이게 했던 절새미인 왕조현이 현재까지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답니다.

 

20182월 왕조현의 최근 근황이 다시 전해지면서 왕조현의 소식에 목말라하는 많은 팬들의 궁금증과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왕조현의 최근 근황

 

왕조현은 212일 캐나다 벤쿠버의 한 쇼핑센터에서 한 팬에게 그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하네요.

금년 212일 왕조현은 밴쿠버의 한 쇼핑센터에서 자신의 애완견을 안고서 쇼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왕조현은 머리를 올림머리로 묶고 있었고, 후드티에 블랙코트를 걸친 편안한 옷차림으로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여전히 왕년의 스타답게 눈에 쏙 띄는 스타일리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를 알아본 팬이 왕조현에게 다가가서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자고 요청을 했는데, 왕조현은 지금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하면서 부드럽게 사진촬영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왕조현은 함께 사진을 못찍게 되어 아쉬워하는 팬에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살고, 늘 건강에 조심하라는 덕담을 해줬다고 합니다.

 

  2017년도 9월의 왕조현 사진

 

왕조현은 비록 사진촬영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환한 미소와 함께 매우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하며, 그 팬은 왕조현이 성격이 털털하고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20182월 왕조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해인사를 전하는 글과 웃자라는 문구를 남기면서, 전세계의 팬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사진들을 올리면서 새해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2017년도 9월과 2018년도 2월에 왕조현이 올린 자신의 사진을 보면, 정말로 그녀가 과거의 아름다웠던 자신의 미모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든답니다.

 

왕조현은 한 때 이상하게 변한 얼굴사진들이 나돌아서, 많은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전년도에 이어 금년 설날 때 왕조현이 올린 사진을 보면, 원래의 왕조현의 모습을 많이 되찾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정말 왕조현은 천의 얼굴을 한 팔색조 같은 스타라는 느낌이 든답니다.

 

현재 왕조현의 자신의 과거의 외모를 100%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80~90% 정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든답니다. 왕조현은 어떻게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 그지 없답니다.

   

한때 일그러진 얼굴이 포착되어서 전세계의 팬들에게 엄청난 쇼킹을 주었던 왕조현이랍니다.

 

왕조현의 교통사고설, 성형설

 

2012년도경 중국의 웨이보에 왕조현의 이상하게 변한 외모가 찍힌 사진이 올라와서 큰 충격을 주었던 일이 있었답니다.

 

대만의 지하철에 타고있던 왕조현을 한 시민이 찍어서 올린 사진이었는데, 왕조현의 모습이 너무나도 흉하게 변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당시 많은사람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답니다.

 

또한 왕조현이 2013년경에 대만에 명절을 세러갔다가 백화점에서 시민에게 찍힌 또다른 사진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얼굴이 전과 다르게 심하게 일그러지고 흉한 모습으로 변해있어서, 왕조현의 수많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답니다.

 

왕조현은 2002년도 영화 미려상해를 끝으로 캐나다로 이민가서 계속 칩거생활을 해왔는데, 은퇴한 후 10여년 만에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답니다.

 

왕년에 동양최고의 미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완벽하고도 청순한 미모를 지녔던 왕조현이 이렇게 얼굴이 변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들이 퍼져나갔습니다.

 

왕조현의 얼굴이 저렇게 심하게 변한 이유에 대해, 교통사고설과 성형설이 가장 크게 대두되었답니다.

 

즉 왕조현이 차를 몰고 운전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얼굴을 심하게 다쳤고, 얼굴 부상을 치료하면서 성형수술을 했는데, 성형수술이 잘못되어서 얼굴이 흉칙하게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왕조현이 그토록 심하게 얼굴이 변한 이유는 교통사고설성형설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고, ‘교통사고설성형설이 정설처럼 굳어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왕조현은 자신의 성형설에 대한 루머가 퍼져나가자, 2013년경 중국의 한 TV에 나와 자신의 루머에 대해 해명하는 영상을 공개했는데요.

 

2013년도 왕조현 사진

 

이 해명영상에서 왕조현은 자신에 대한 교통사고나 성형설에 대해 완강히 부정했으며, 누가 무슨 이유로 이같이 쓸데없는 루머를 퍼뜨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답니다.

 

또한 왕조현은 자신은 캐나다에서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의 안부를 전해주었답니다.

 

왕조현은 2분 분량의 이 짧은 영상에서, 자신의 외모가 변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전혀 하지않은 채, 자신에 대한 성형설은 거짓된 루머이고,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만 전한 것이랍니다.

 

이렇게 왕조현의 교통사고설성형설은 확인되지 않은 채로 의혹만 더욱 가중되어 나갔답니다.

 

이렇게 왕조현의 변한 외모에 대해 뚜렷한 원인을 찾지못하고 의혹만 커져가는 상황에서 2015년도에 왕조현의 또다른 사진이 올라왔고, 또다시 왕조현의 외모가 화제가 되었답니다.

 

2015년도에 왕조현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녀의 사진을 보니, 놀랍게도 예전의 왕조현의 모습을 많이 회복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또다시 화제가 된 것이랍니다.

 

왕조현은 1967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52세나 되는데도, 여전히 젊고 청초한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6년도부터 2018년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왕조현의 사진들의 모습에서 왕조현은 과거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어느정도 되찾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답니다.

 

아직까지도 리즈시절의 왕조현의 초절정 미모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최근의 왕조현의 모습은 전성기시절 모습의 80~90% 정도는 되찾은 듯한 모습이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왕조현의 외모가 자주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왕조현의 외모의 변화는 이런 연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왕조현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교통사고와 성형설이 정답이라고 보입니다.

 

왕조현이 교통사고로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성형수술을 했지만, 잘못된 성형수술로 인해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조현은 자신의 옛얼굴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또다시 성형수술을 했던 것이고, 여러번의 성형수술을 계속 반복한 끝에,

2015년 이후부터 드디어 왕조현은 원래의 모습과 흡사한 얼굴로 되돌아왔다고 보여집니다.

 

이럿듯 왕조현은 자신의 본래의 얼굴을 되찾기 위해서, 여러번에 걸쳐서 성형수술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왕조현의 외모가 여러차례 변해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답니다.

 

지금도 왕조현의 외모는 전성기시절의 초절정 미모는 완전 되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원래 얼굴의 85% 정도까지는 복원할 수 있어서, 팬의 한사람으로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된답니다.

   

왕조현의 영화 천녀유혼

 

왕조현은 80~90년대에 수많은 영화들을 많이 찍었지만, 그래도 왕조현의 최고의 대표작으로 천녀유혼을 빼놓을 수는 없답니다.

영화 천녀유혼은 왕조현을 아시아의 톱스타로 올려놓은 그녀의 최고의 히트작이랍니다.

 

  2018년 2월 찍은 왕조현 사진, 다시 과거의 미모를 되찾아 간다는 느낌이다

 

영화 천녀유혼1987년도 홍콩에서 만든 판타지귀신영화랍니다. 그렇지만 천녀유혼은 무섭고 섬뜻한 귀신영화가 아니라, 예쁘고 요정같은 미모의 귀신이 나오는 판타지하면서 슬픈 귀신영화랍니다.

 

전성기시절 동양 최고의 미인으로 불리웠던 왕조현이 예쁜 귀신으로 분해서, 자신의 불가역적인 슬픈 운명과 싸워나가면서,

인간과의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해나가는 색다른 주제를 다룬 귀신영화인 천녀유혼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최고로 히트쳤던 홍콩영화랍니다.

 

천녀유혼에서 슬프고 가련한 귀신역할로 분해서 멋지고 실감나는 연기력을 펼쳐보였던 왕조현은 그 출중한 미모와 청순하고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답니다.

 

왕조현이 열연한 천녀유혼은 비록 귀신영화의 장르에 속하지만, 기존에 제작된 괴기스러운 귀신영화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로맨스와 낭만이 가미된 환상적인 판타지 로맨스 귀신영화로서,

슬픈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힌 착하고 예쁜 귀신의 판타지한 내용 전개로,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감동을 배가시켰던 매우 특별한 귀신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조현의 천녀유혼은 판타지 요정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제낀 80, 90년대의 최고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천녀유혼의 높은 인기로 인해서, 1990년도에 천녀유혼2’가 다시 만들어졌고, 1991년도엔 천녀유혼3’까지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을 만큼, 80, 90년대의 동아시아에는 천녀유혼 신드롬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멋지고 판타지한 명작품은 결코 나올 수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5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천녀유혼 줄거리 내용 -

 

살인마들이 들끓고 있던 명나라 시대에 이같은 살인자들을 잡기해서 거액의 현상금이 내걸리게 되었고,

현상금을 노리는 무사들은 크게 한몫을 잡기 위해서 현상금 수배자들을 추격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등 혼란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었다.

 

깊은 산속을 헤메이던 세금징수원 영채신(장국영)은 누군가가 알려준 아주 오래된 절 난약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난약사로 찾아가던 중 근처 숲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늑대들을 만난 영채신은 죽을 위기를 무릎쓰고 겨우겨우 달아나서 한밤 중에 난약사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약사에는 이미 두사람의 불청객들이 와있었는데, 서로 평생 원한관계를 갖고 대적해왔던 연적하와 하후형이라고 하는 강호의 무사들이었는데,

이 두사람은 난약사에서 만나 서로최고의 무사 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때마침 난약사에 도착한 영채신은 이 두명의 무사 사이에 끼어들어서, 두사람을 화해시켜서 대결을 무산시킨다.

 

그런데 이 난약사는 오래전부터 미모의 귀신이 나타나서 지나가던 나그네들을 유혹해서 살해한다는 무시무시한 괴담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절인데,

이와같은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세리 영채신은 무작정 난약사로 들어가서 여장을 푼다.

 

이곳의 귀신전설의 주인공은 바로 섭소천(왕조현)’인데, ‘섭소천은 한때 잘나가던 대감집의 딸이었는데,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일가족 모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고, ‘섭소천의 시신은 한 나무 아래에 묻혔는데,

그 지역의 영혼계를 다스려왔던 나무귀신이 섭소천의 영혼을 소유해버리고 그녀가 다시는 환생하지 못하도록 막고있었다.

 

천년묵은 나무귀신은 섭소천의 양부모가 되어서 소천을 압박해서 살아있는 인간을 잡아오도록 하였고, 사람의 정기를 먹고서 자신의 양기를 보충해왔던 것이다.

 

예쁜귀신 섭소천

 

천년묵은 나무귀신의 양기를 보충시키기 위해서 섭소천은 이용만 당하는 노예신세로 전락했으며, 자신은 결코 원치 않았는데도,

나무귀신의 명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산사람을 홀려서 나무귀신에게 갇다바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섭소천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후에도, 또다시 나무귀신에게 짓밟히고 그의 꼭두각시가 되면서, 그녀의 영혼마저도 억압받는 처량한 귀신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강호에서 '천지무극 건곤차법'의 고살수의 무예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춘 연적하는 이 요귀들을 모조리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마침 또다른 무사 하후형은 강물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씻고 있었는데, 이 때애 처녀귀신 섭소천이 나타나서 그를 유혹해서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였고,

결국 나무귀신의 마수에 걸린 하후형은 자신의 모든 정기를 나무귀신에게 빼앗겨버리고, 그의 육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난약사에 들어와서 여장을 풀고 있는 세금징수원 영채신은 그 절 가까이에서 아름다운 가야금소리를 듣게 되고, 그 가야금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간다.

난약사 부근의 널따란 호수의 한복판에 아담한 정자가 세워져 있었고, 그 정자안에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 소천이 가야금을 치고 있었다.

 

처녀귀신 섭소천은 나무귀신의 명을 받고 젊은남자를 홀리기 위해서, 가야금을 타고 있었는데, 따마침 가야금소리에 홀려서 나타난 영채신을 포획하려고 했지만,

영채신의 때묻지않고 순수한 마음씨에 큰 감동을 받게 된 섭소천은 오히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섭소천은 영채신을 가엾이 여기고는 그에게 앞으로 다시는 자신을 찾지말라고 말하곤 헤어진다.

 

소천이 귀신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영채신에게 다음날에 또다시 섭소천을 찾아왔고, 섭소천은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고 찾아온 나무귀신의 하녀를 트릭을 써서 쫒아내면서 영채신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다시만난 섭소천과 영채신은 그날밤 처음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로서 사람과 귀신간의 순수한 사랑이 시작되게 된다. 하루밤을 함께 보낸 두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그런데 숲속에서 우연히 만난 영채신과 연적하, 무사 연적하는 영채신에게 섭소천이 실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고, 영채신은 숲속에 있는 소천의 무덤을 발견하고 그녀가 귀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채신은 섭소천이 귀신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소천을 다시 만나게 되며, 섭소천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이유로 계속 피하는 영채신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신이 억울하게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모두 얘기해준다.

 

섭소천은 마지막으로 영채신에게 자신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영채신은 그녀의 환생을 위해서 그녀의 유골을 그녀의 고향땅으로 가져가 가족들 곁에 묻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연적하는 이번기회에 모든 요괴들을 잡아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귀신사냥에 나서게 된다.

 

한편 방에 함께 있던 영채신과 섭소천은 나무귀신의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게되었고, 때마침 나타난 연적하는 나무귀신과 결투를 벌여서 영채신을 구출해내었지만, 소천은 끝내 흑산대왕에게 끌려가고 만다.

 

섭소천은 지옥의 대왕인 흑산대왕과의 혼인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영채신과 연적하는 섭소천을 구출하기 위해서 함께 지옥으로 쳐들어갔고, 그곳에서 흑산대왕과 그 부하들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여서 마침내 흑산대왕을 없애버리고, 연적하와 영채신, 섭소천은 간신히 현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현세로 돌아오던 도중에 갑자기 날이 밝는 바람에, 섭소천의 영혼은 영채신과 기약도 하지못한 체, 다시 저승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로써 처녀귀신 섭소천은 현세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고, 그녀의 영혼은 호리병속으로 완전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살아남은 연적하와 영채신은 섭소천이 다시 세상에 환생할 수 있도록 장사를 지내주었고, 언젠가는 다시 이세상에 환생할 섭소천을 만날 날을 꿈꾸며 영채신은 새로운 인생의 길을 떠나간다.

 

 

천녀유혼 주제가 엽천문의 여명불요래노래 동영상

 

 

 

 

 

왕조현의 리즈시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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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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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갑’ 탈북미녀 한송이의 탈북스토리와 현재근황

연예인 핫토픽 2018. 3. 12. 21:13

 

탈북소녀 한송이의 탈북과정, 이만갑 하차, 나이

 

오늘은 탈북녀 출신 방송인 한송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한송이는 방송 이제 만나러 갑시다에서 깜찍하고 귀여운 외모와 톡톡 튀는 듯한 도드라진 말투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던 대표적인 탈북미녀랍니다.

 

한송이는 방송 이만갑을 통해서 귀엽고 애교감 넘치는 맨트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주었고,

솔직하고 친화력 높은 자태로 이만갑의 시청률을 높이는데 견인차역할을 했답니다.

 

한송이는 한때 이만갑방송에서 가장 빼어난 미모 3인방으로 인정받고, ‘이만갑의 대표적인 미인아이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감으로, ‘이만갑의 고정개스트로 출연을 해왔답니다.

 

이만갑방송에는 미녀 3인방이 있는데, 김아라와 신은하, 그리고 한송이가 그 주인공들인데, 한송이는 방송 이만갑에서 가장 예쁜 북한미녀로 인정받았던 미인 3인방 중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아라가 다소 차갑고 도도한 미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한송이는 친화력 있고 귀엽고 부드러운 미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답니다.

다소 차가운 미녀 이미지의 김아라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한송이를 더욱 선호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한송이의 톡톡 튀는 듯한 말투와 깜찍한 애교가 넘쳐흐르는 귀여운 이미지는 남성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한 정도로 매력적이랍니다.

 

한송이는 북한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가 당자금 사업을 하는 분이시라, 가정형편이 넉넉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한송이의 아버지는 김정은자금을 관리하는 사업소의 소장의 신분에 있었기 때문에, 일정한 수익을 올릴 수가 있었기에 한송이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형편이었다고 해요.

 

또한 한송이어머니는 아버지의 뒷배경으로 무역과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서 북한에서의 가정형편은 매우 좋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송이도 틈틈이 엄마를 도와서 중국과의 밀무역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송이의 북한에서의 원래 직업은 간호사라고 하는데요.

 

한송이는 원래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간호사가 될 것을 강권했기 때문에,

한송이는 가수의 꿈을 접고서 간호사양성소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송이는 간호사양성소에서 6개월 가량 간호사교육을 받고 간호사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한송이는 우연히 남한의 방송CD를 접할 수 있었고, 남한의 노래와 드라마를 보고서 큰 감동을 받았고, 남한을 동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송이의 탈북과정 스토리

 

한송이가 살던 지역은 양강도의 혜산으로, 이곳은 중국과 북한이 만나는 접경지역으로 비교적 한국의 방송이나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역이랍니다.

 

중국의 장사꾼들이 들어오거나, 북한의 밀무역꾼들이 중국을 드나들면서 남한의 가수들의 노래나 남한드라마들을 가져와서 공급해주기 때문에, 이 혜산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노래나 드라마를 많이 접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한송이는 한국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천국의 계단’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같은 한국드라마들도 많이 시청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송이는 남한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나오는 권상우와 송혜교를 보면서 남한연예인들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남한드라마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송이는 드라마의 OST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듣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송이는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를 보고 홀딱 반했다고 하며, 남한에서 이렇게 예쁘고 쾌활한 걸그룹이 멋지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서, 남한이 자유롭고 활기찬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송이는 북한당국의 감시를 피해서 몰래 숨어서 보았던 남한의 걸그룹노래와 드라마를 보고서 자유로운 한국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고,

자신도 소녀시대같은 걸그룹이 되기 위해서 한국으로 탈북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원래 노래하기를 좋아했고, 한 때 가수가 되는 것을 꿈꾸었던 한송이는 소녀시대의 윤아 같은 멋지고 아름다운 가수가 되어서,

상속자들의 주인공인 이민호 같은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할 꿈을 품고서, 한국으로의 탈출할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송이는 2013년도 어느날 친구집에 며칠밤 동안 지내다올 목적으로 친구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어머니한테는 혼자 사는 친구집에서 며칠 밤만 자고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친구집으로 갔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을 나간 한송이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친구집에서 밤을 세워서 며칠동안 친구가 보여준 한국드라마 상속자들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답니다.

 

한국드라마 상속자들을 보면서, 이민호의 멋진 모습과 한국의 발전된 문화와 풍요로운 삶에 큰 감명을 받았던 한송이는 마침내 친구와 함께 탈북해서 한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소녀시대의 멋진 퍼포먼스, 그리고 남한드라마 상속자들의 멋진 이민호의 모습을 본 한송이는 한국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한 나머지, 부모님에게는 얘기하지도 않고서 친구와 함께 곧바로 압록강을 건넜답니다.

 

한송이는 원래 압록강지역에서 밀수를 했었기 때문에, 국경을 지키는 북한군인들과 안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송이는 안면이 있는 북한군인에게 중국에 물건을 갖고오겠다는 거짓말을 하고서, 그 길로 압록강을 넘어서 중국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압록강을 넘어간 친구는 사전에 섭외한 브로커를 만나서 그를 따라서 떠나갔지만, 브로커가 없었던 한송이는 혼자만 남아 외톨이신세가 되었답니다.

 

탈북과 한국입국에 대한 전혀 사전준비를 하지 않고 무작적 압록강을 건넌 한송이는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답니다.

그 당시 한송이는 밀무역을 할 때에 알고지내던 중국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한송이는 현재 탈북해서 오갈 데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면서 그 중국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그리고 그 중국사람의 주선으로 한송이는 장백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 접선이 닿았다고 하며, 그 교회목사의 도움으로 집사의 집에 들어가서 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브로커도 없이, 무작정 압록강을 넘어 오갈 데 없는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된 한송이는 천군만마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답니다.

 

그 장백에 있는 한인교회는 한국인목사가 운영하는 교회이며, 북한에 은밀히 기독교를 전파하기도 하고, 북한의 탈북자를 도와주는 그런 교회였답니다.

 

한송이는 이곳 교회의 목사의 전도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기독교신자가 되었으며, 이 교회의 도움으로 무료로 브로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북한에서 탈불해서 한국으로 오려면 수천만원의 돈을 들여서 브로커를 사고, 그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야만 탈북해서 한국으로 올 수가 있답니다.

브로커의 비용은 1천만원 ~ 3천만원까지 하며, 이 비용은 북한돈으로 엄청난 고비용에 해당한답니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나 돈도 없이 무작정 중국으로 넘어간 한송이는 브로커를 살 돈도 전혀 갖고있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 교회의 도움으로 공짜로 브로커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행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송이는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서 연길시로 갔고, 연길시에서 버스를 타고 2차행선지인 산동반도로 들어갔으며, 다시 산동에서 쿤밍으로,

또다시 쿤밍에서 다시 라오스의 국경지대 부근으로 차를 타고 갔습니다.

 

한송이는 연길시에서 쿤밍까지는 버스로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갔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송이의 탈북과정은 매우 멀고도 험난한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오스국경을 넣는 난코스가 남았는데, 한송이는 중국과 라오스와의 국경지대에서 다시 8시간 동안 험난한 밀림지대를 헤치고 걸어갔다고 합니다.

 

수없이 많이 몰려드는 모기떼들과 피를 빨아먹는 수많은 벌레들과 고투를 벌이면서 빽빽한 나무와 숲이 우거진 밀림지대를 8시간 동안 걸어서,

간신히 중국국경을 넘어서 라오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코스가 하나가 더 남았는데, 이번에는 매콩강을 건너는 길이라고 하며, 이 매콩강을 건너야만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매콩강에는 악어들이 우글거리는 악어들의 서식지라고 합니다. 이 매콩강을 건너다가 악어에게 공격을 받아서 잡아먹힌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이 매콩강은 사나운 악어때가 우글거리는 험악한 강이랍니다.

 

한송이를 포함해서 10명의 탈북민들이 작은 쪽배를 함께 타고서, 악어때들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악전고투 끝에 매콩강을 건너갔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태국의 땅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이 태국까지만 가면 북한탈출의 90%는 성공했다고 할 수가 있지요.

 

왜냐하면 태국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국가라서, 한국에 매우 우호적이어서 한국의 대사관에서 탈북민들의 탈북과 한국입국을 물신양면으로 도와주기 때문이랍니다.

 

오랫동안 탈북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데로 지친 한송이와 탈북민들은 그곳 태국에서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으며, 태국경찰은 이들 탈북민들을 탈북수용소로 데려갔답니다.

 

태국의 탈북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 그 후에는 태국주재 한국대사관이 개입해서 탈북민들의 한국입국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또한 탈북민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등 모든 경비는 한국대사관에서 부담한다고 합니다.

 

북한을 탈출해서 천신만고 끝에 태국의 탈북민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한송이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드디어 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으니, 한송이는 감동이 복받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결국 한송이는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을 탈 수 있었고, 201312월달에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답니다.

 

한송이가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왔던 시기가 201312월이었고, 그 당시 한송이의 나이는 꽃다운 21살이었답니다.

현재는 그때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한송이의 현재 나이는 26살이랍니다.

 

북한에 부모님과 형제를 모두 남겨놓고 오로지 혼자서만 탈북을 시도했던 한송이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겠습니까?

참으로 혼자서 이같은 모진 고생을 다 견뎌내고 이겨낸 한송이가 정말로 대단한 여자로 느껴진답니다.

 

이렇게 혼자서 한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한 한송이는 현재 한국에 잘 정착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현재 한송이는 혼자서만 한국으로 왔고, 그녀의 부모님과 동생은 모두 북한에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랍니다.

 

한송이의 고향인 북한의 혜산지역은 국경지역이라서 휴대폰으로 통화가 가능한 지역이라고 해요.

 

한송이는 어머니가 보고싶을 때마다 휴대폰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곤 한답니다. 북한에 있는 한송이의 부모님들은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한송이의 소원은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한국으로 모셔와서 온가족이 한국에서 옹기종기 모여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송이는 언젠가는 북한에 있는 부모님을 남한으로 모시고 올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한송이는 수년 동안 방송 잘살아 보세이만갑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방송활동을 해왔고, 종종 강사로서 강연활동도 열심히 있습니다.

 

한송이는 깨알같이 귀엽고 예쁜 비주얼과 톡톡 튀는 재미있는 말투로 이만갑방송의 흥미와 신선함을 이끌어왔던 대표적인 탈북미녀랍니다.

 

한송이의 귀엽고 깜찍한 모습을 보기위해서 많은 남성시청자들이 이만갑을 즐겨보았을 정도로,

한송이는 이만갑의 깜찍한 마스코트역할을 톡톡히 하였고, ‘이만갑의 시청율을 올려놓는 견인차역할을 해왔답니다.

 

그런데 작년 후반기부터 한송이가 이만갑방송에 더이상 출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송이는 2014년도부터 2017년도까지 거의 3년 동안 계속 출연해왔던 이만갑에 더이상 출연하지 않고 있어서,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상태랍니다.

 

방송 이만갑에 고정개스트로서 미모귀여움의 상징이었던 한송이가 방송 이만갑출연이 중단되어서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송제작사에서 2017년 하반기에 전면적인 출연진개편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 개편과정에서 수년 동안 출연해왔던 한송이가 출연진에서 제외되었고, 윤설미가 대신 그 빈자리를 매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이것은 이만갑방송의 신선함을 불어넣기 위해서, 몇 년에 한번씩 출연진을 개편하는 방송사의 자연스러운 행사랍니다.

그렇지만 한송이를 좋아했던 팬분들의 입장에서는 섭섭한 마음이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재 한송이의 근황이 궁금하다면, 유투브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습니다. 한송이는 이만갑방송을 그만둔 후부터, 유투브에서 개인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유투브를 방문하면 한송이를 볼 수 있답니다.

또한 한송이는 아프리카티비에서도 BJ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방송에서 한송이의 깜찍하게 귀여운 모습과 톡톡 튀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탈북미녀 한송이의 탈북스토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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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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