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갑’ 탈북녀 신은하 탈북이야기와 나이, 언니
‘이만갑’에 나오는 탈북녀들 중 미모면에서 김아라와 함께 톱으로 손꼽히는 탈북여성이 바로 ‘신은하’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만갑’에 나오는 탈북여성 중 김아라가 가장 예쁘다고 하고, 또다른 사람들은 신은하가 가장 예쁘다고 할 정도로,
방송 ‘이만갑’에서 신은경은 미모를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탈북미녀랍니다.
방송 ‘이제 만나러 갑시다’에서 항상 맨 앞줄에서 천사 같은 초롱초롱한 커다란 눈망울과 다소곳한 환한 모습으로 앉아서, ‘이만갑’ 방송을 화사하게 빛을 내주는 청순가련형의 탈북미녀 ‘신은하’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신은하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신은하는 중앙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왔으며, 현재 나이는 31살이며, 북한에 있을 때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신은하는 2003년 탈북해서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남한으로 입국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북한에서도 공주처럼 다복한 집안에서 귀여움 많이 받고 자랄 것 같은 귀티 나고 우아하고 세련된 미모를 자랑하는 신은하이지만, 그녀가 북한에서 겪은 탈북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드라마보다도 더 드러매틱한 험난하고 기구한 탈북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외관으로 보기에는 마치 공주처럼 귀티가 줄줄 흐르고 부잣집 외동딸 같이 우아하고 예쁘장한 신은하가 북한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시련속에서 살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여러번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살아남은 그녀의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이야기는 엄청난 놀라움과 충격을 주고 있답니다.
북한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결국 탈북에 성공했던 심은하의 기적과도 같은 탈북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신은하의 기막힌 탈북스토리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던 신은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족전체가 탈북한 케이스랍니다.
신은하의 나이 12살 때에 언니 신은희와 함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무작정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탈북해 들어갔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가족이 탈북하게 된 이유는 종교활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신은하의 어머니는 중국을 오고가면서 보따리상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중국의 한 무역상으로부터 녹음테이프들을 건네받았고, 그것들을 북한의 주민들에게 나눠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런데 그 테이프는 목사의 설교와 찬양 내용이 들어있는 기독교홍보 테이프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홍보용테이프인 줄도 모르고,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그 테이프를 갖고 북한으로 돌아왔던 어머니는 그만 북한 보위부요원에게 곧바로 발각되고 말았답니다.
잘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종교활동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 테이프를 소지하고 있다가 걸린 어머니는 북한당국으로부터 곧 처벌받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됐고,
신은하의 부모님은 12살의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를 데리고 서둘러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네식구는 처음에는 무작정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의 왕청으로 갔답니다.
신은하가족이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에 중국 공안당국으로부터 세 번이나 검열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중국신분증이 없었던 신은하와 가족들은 중국 공안요원으로부터 검열을 당하기만 하면, 곧바로 적발되어서 북한으로 다시 송환될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 속에서, 신은하와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잘 모르는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 번이나 마주친 중국 공안요원들은 이상하게도 신은하와 그 가족을 검열하지 않은 체 그냥 통과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이 세 번의 위기의 상황을 무사히 돌파한 신은하의 가족에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랍니다.
이렇게 중국 공안요원들을 따돌린 신은하가족은 왕청에 있는 중국의 지인의 집에 찾아가서 그 집에 언쳐서 함께 살게 되었답니다.
신은하가족이 들어가 살게 된 그 집 주인은 조선족인데, 과거에 북한을 드나들면서 보따리 장사를 했었는데, 북한에서 신은하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랍니다.
그런데 신은하가족이 탈북해서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오니까, 테도가 돌변해서 신은하가족을 마치 머슴처럼 부려먹었다고 합니다.
과거에 신은하 부모님이 도움도 주고 했었는데, 처지가 바뀌니까 우습게 보고 신은하 부모님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겁니다.
결국 신은하가족은 그 중국 조선족지인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그 집에서 쫒겨났고, 네명의 식구가 정처없이 떠돌다가 산 속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속을 헤메다가 남들이 버려놓은 빈 닭장을 발견하였고, 신은하의 가족은 쥐들이 들끓는 그 닭장에 들어가 북한보다 더 못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중국 지인으로부터 쫒겨났던 그 시기가 추운 겨울철이라서, 닭장으로 사용하던 빈 움막집도 신은하가족에게는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신은하가족은 북한에서 체포되기 직전에 도망치듯이 탈출해 나오느라, 돈도 폐물도 없이 빈손으로 나왔고,
중국 지인집에서도 쫒겨나왔기 때문에, 먹고살 수 있는 식량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어머니와 아버지 네식구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빈손으로 산속의 움막집에 들어와서 살아가야만 하는 암담한 상황에 처했답니다.
신은하는 배가 너무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산속을 헤메였는데, 마침 쥐굴을 발견하였고, 그 쥐굴속에는 쥐들이 저장해놓은 쌀과 옥수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쥐들이 겨울철에 먹고살기 위해서, 산속의 굴에 식량들을 저장해놓은 식량창고를 발견했는데, 신은하 아버지가 그 굴을 파서 쥐들의 식량창고에 있는 쌀과 옥수수를 가져와서 식구들이 함께 끼니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가족들이 희망을 갖고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으로 왔지만, 아무 재산도 갖고 오지못했던 신은하가족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북한보다도 훨씬 더 못한 비참하고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 공안당국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 신은하가족은 산속에서 숨어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산나물과 칡뿌리를 캐먹는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4년 동안 계속 산속 움막집에서 살아갔다고 합니다.
신은하가족은 산속에서 매일같이 먹을 것을 찾아 헤메이면서 그날그날을 간신히 끼니를 때우는 등,
수없는 나날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정말로 원시인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중국 공안당국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쳤고, 움막집에 있던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곧바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외출하고 없는 상황에서,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중국 공안경찰에 체포되어, 결국 북한으로 다시 송환되었다고 합니다.
신은하는 언니와 함께 중국 산속에서의 4년 동안의 움막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북한으로 강제 입국당하고 말았답니다.
◆ 신은하 신은희 자매의 청진의 탈북자수용소의 억류생활
신은하 자매는 북한 청진에 있는 도집결소에 들어갔고, 이 때부터 고통스러운 수용소생활을 하게 된답니다.
신은하와 언니가 함께 억류되어 있던 이 수용소에서는 산속 움막집보다도 훨씬 더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 수용소에서 신은하 자매는 매일같이 고된 노동에 동원되었고, 매일같이 굶주림과 학대를 당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수용소에서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장염으로 죽어나갔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장염은 약을 먹으면 얼마든지 날 수 있는 가벼운 질병이었지만, 북한 수용소에서는 약이나 치료를 전혀 해주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제대로 먹지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허약해진 수용자들은 이처럼 가벼운 질병에 걸려도 그대로 사망하기 일쑤랍니다.
이 수용소의 생활이 얼마니 열악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으로 예가 아닐 수 없답니다.
산나물과 칡뿌리를 캐먹던 산속 움막집생활이 오히려 이 곳 수용소생활보다 더 나았다고 할 정도로, 신은하 자매의 수용소생활은 엄청 비참했다고 합니다.
수용소에서 식량으로 먹었던 것이 고작 소금을 뿌린 국수죽이었다고 하며, 매일같이 배고픔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리고 이곳 수용소에서 신은하 자매는 남자들도 하기 힘든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수용소에 수용된 여자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벽돌 나르기를 해야하며, 오후에는 시멘트를 날라야 하며, 저녁때에는 농사일을 해야 한답니다.
밥도 아주 적게 주면서, 연약한 여자들에게 이처럼 고된 죽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병약해져서 매일같이 죽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게 된답니다. 신은하와 신은희도 이런 고된 죽노동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17세 밖에 안된 연약한 신은하가 남자들도 하기 힘든 무거운 시멘트를 지고 날랐다고 하는데, 제대로 먹지 못해서 힘도 없는 신은하가 무거운 시멘트를 나르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살 많은 언니 신은희가 동생이 힘들어할 때마다 동생의 시멘트를 대신 날라주면서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용소에서의 힘든 노동생활을 하면서도 신은하는 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용소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신은하 언니 신은희의 뜨거운 동생사랑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신은하가 그토록 고된 수용소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언니 신은희의 큰 도움과 보살핌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어느날 신은하 자매가 서로 다른 수용소로 나눠져서, 헤어지게 되는 상황이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20살이된 언니 신은희는 단련대라고 하는 강제노동소로 들어가야 됐고, 동생 신은하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꽃제비수용소로 들어가서 두 자매가 서로 헤어지게 되는 상황이 찾아왔답니다.
부모님도 없는 상태에서 힘들어도 서로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상대였는데, 이처럼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는 서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은 그녀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언니 신은희가 동생과 헤어질 수 없다고 소장실로 찾아가서, 울부짖으면서 애원한 끝에, 두 자매는 헤어지지 않고 함께 꽃제비수용소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꽃제비수용소는 북한에서 나이 어린 거지아이들을 모아놓은 수용소인데, 이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굶주림에 시달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신은하 자매가 이 곳 꽃제비수용소에 들어온 것은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이곳 꽃제비수용소는 밥이나 식량은 제대로 주지 않지만, 감시가 느슨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소에 비해서 탈출하기가 용이한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꽃제비수용소에 있으면서 함께 생활하던 신은하 자매는 기회를 틈타서 이곳을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답니다.
◆ 신은하 자매의 두번째 탈북
그리고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꽃제비생활을 하던 신은하 자매는 또다시 탈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답니다.
중국에 있던 어머니가 두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 브로커를 보내왔던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신은하 자매를 찾아낸 두명의 브로커는 그녀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장마철이라서, 두만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건너가기가 힘든 상황이었답니다.
언니 신은희(좌측)와 신은하(우측) 사진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는 각각 브로커에 끈을 연결하고 튜브를 사용해서 가까스레 헤엄을 쳐서 두만강을 건너갔는데, 언니 신은희는 두만강을 손쉽게 건너갔지만,
동생 신은희는 브로커에 연결된 끈이 끊어져서 거친 물쌀에 휘말려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두만강의 거센 물줄기에 떠내려갔던 신은하는 수영도 전혀 못해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두만강의 깊은 물속에서 떠내려가던 신은하는 운좋게도 중국의 강기슭 쪽으로 휩쓸려오게 됐고, 이때에 브로커가 재빨리 신은하를 건져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쌀에 떠내려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신은하는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신은하 자매는 중국에서 극적으로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 당시에는 이미 아버지는 중국 공안당국에게 걸려서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었다고 하네요.
홀로 남은 어머니가 두딸을 데려오고 위해서 힘든 식모생활을 하면서 간신히 돈을 모아서, 브로커에게 비용을 주고 두 딸을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딸을 극적으로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간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실어증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아버지가 다시 북한으로 끌려갔고, 움막집에 도둑이 들어서 돈을 많이 빼앗겼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아서 실어증까지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두 딸을 극적으로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은하가족에게 또 한번의 기적이 찾아온답니다.
신은하의 언니 신은희는 북한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위해서 매일같이 울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의 담벼락에 매일같이 찾아가 무릎 끓고서 ‘하나님,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매일같이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하얀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서, 아버지가 6개월 후에 돌아올 것이니, 더 이상 울지않아도 된다는 계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 신은하의 아버지는 기적처럼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북한으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탈북에 성공해서 돌아왔던 것이랍니다.
신은하의 탈북이야기는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처롭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답니다.
이토록 예쁘고 고상하게 생긴 신은하가 이처럼 북한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사실은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 사실입니다.
신은하는 탈북과정에서 여러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처럼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기적처럼 위기를 극복해내고, 탈북에 성공할 수 있었답니다.
신은하가 험난한 수용소생활을 견대내고, 북한을 두 번이나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은하와 신은희 두자매의 돈독한 우애와 사랑이 그토록 고되고 험난했던 수용소생활을 극복해내고, 탈북을 성공시킨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두자매의 뜨거운 우애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 하늘이 감동해서, 이와같이 기적과 같은 탈북이란 선물을 선사해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남한으로 입국해서, 이제 온가족이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은하가 이젠 방송 ‘이만갑’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미녀스타로 각광받고 있으며, 방송의 감초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답니다.
반듯하고 청순하게 생긴 미모를 자랑하는 신은하는 최근 다큐멘터리영화 ‘독도의 영웅들’에도 출연하는 등 방송뿐만 아니라 연기쪽으로도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답니다.
‘이만갑’에서 아름다운 미모와 재미있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신은하가 앞으로 방송인으로 더 크게 발전해서, 스타급 연기자로 큰 성공을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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