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 운반의 미스테리, 세계 7대불가사의

미스터리 파일 2018. 1. 17. 00:12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거인석상의 미스터리, 크기와 만든 원주민 정체

 

남아메리카 칠레 부근의 남태평양에는 이스터섬이라는 한적한 섬이 있는데, 이 이스터섬에는 매우 신비롭고 진기한 돌유적물들이 세워져있어서, 정말 대단한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이스터섬의 둘레를 따라서, 수백개나 되는 대형 석성들이 마치 이 섬을 방어하는 것처럼 섬둘레를 따라 쭉 세워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무척 진기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자아낸다.

 

이스터섬의 이 거대한 석상들은 모아이석상이라고 불리우는 신비로운 돌유적물인데, 무게가 수십톤이나 되고 크기도 20~30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석상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돌유적물들을 누가 어떤 기술을 써서 만들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등 그 정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한 건조물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우고 있다.

 

이 모아이섬은 1722년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가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이 모아이섬에는 흰 피부를 지닌 3.000명 가량의 원주민들이 살고있었다고 한다.

 

 

그 탐험가가 남태평양에서 이 모아이섬으로 배를 타고 오는 동안에, 이 섬의 둘레를 마치 병풍처럼 수백개가 넘는 석상들이 쭉 줄지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 섬을 수비하는 수비병들이 늘어서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그 탐험가는 이렇게 크고 무거운 돌유적물들이 수백개 이상 섬의 둘레에 세워져있는 광경을 보고, 그 엄청난 크기와 규모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800개가 넘는 이 거대한 무게의 석상들을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만들었으며, 또한 이렇게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해왔는지, 온통 미스테리하고 신비로왔다고 한다.

 

이 이스터섬에는 라파누이라는 흰색피부를 지닌 원주민들이 현재 살고 있는데, 이들도 이 모아이석상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관해서 전혀 알지못한다고 한다.

 

단지 이들은 모아이석상을 신처럼 숭배하고 신성시하고 있으며, 건물을 지을 때에는 모아이석상보다 더 낮은 높이로 짓는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모아이석상은 신처럼 신성시되고 있으며, 신성불가침 그 자체라고 한다.

 

 

이스터섬의 집이나 건물은 높이가 3m를 넘지 않는다고 하는데, 모아이석상 중에 가장 작은 것이 3.5m이기 때문이다.

 

모아이석상의 미스테리

 

엄청난 크기와 엄청난 무게를 지닌 수많은 모아이석상들을 어떻게 만들어서, 섬의 해안가로 어떻게 운반해왔는지가 정말 미스테리한 사항이다.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은 높이가 가장 작은 것은 3.5m에 불과하지만, 상당수의 석상들이 20m~30m 높이로 상당히 높으며, 모아이석상의 무게는 작게는 20톤에서 크게는 90톤까지 엄청난 무게를 자랑한다.

 

또한 이렇게 크고 무거운 석상이 총 887개나 되며, 887개의 거대한 석상들이 이스터섬 둘레를 따라서 쭉 줄지어서 세워져 있다고 한다.

 

높이 20m~30m에 무게 90톤까지 되는 이 거대한 돌 880개를 어떤 방법으로 섬 외곽으로 운반해왔는지가 정말로 대단한 미스테리이다.

기술이 많이 발달한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이렇게 무거운 돌석상들을 880개나 만들어서 운반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아이석상들은 기원후 4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지금같이 첨단 건축기술이나 첨단 운반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4세기경에

이렇게 거대하고 무거운 887개나 되는 석상들을 어떻게 만들어서 운반할 수 있었는지가 커다란 수수께끼가 아닐 수가 없다.

 

 

1톤의 돌도 상당히 무거운데, 그보다 몇십배나 더 무거운 20톤에서 90톤에 이르는 거대한 800개가 넘는 석상들을 지금같이 타워크레인이나 트럭이 없었던 4세기에, 어떤 방법으로 운반할 수 있었는지가 정말 미스테리하고 커다란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에 관한 가설들

 

수십톤이 넘는 거대한 크기의 모아이석상 800여개를 어떻게 만들어서 운반할 수 있었는지가 가장 큰 미스테리인데, 이에 관해서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스터섬은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아주 고립된 섬인데, 우리나라 제주도의 1/11 크기 밖에 되지않은 작은 섬일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문명과는 거리가 먼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 거주해오던 아주 낙후된 섬이다.

 

이렇게 고립되고 낙후된 섬에서, 어떻게 저렇게 거대한 크기의 모아이석상들이 수백개나 제작되어 해안가로 운반하는 대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가 커다란 미스테리로 제기되고 있다.

 

모아이석상에 관한 첫 번째 가설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선진화된 부족에 의해서 모아이석상이 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아주 오랜전 시기에 어떤 선진화된 문명을 가진 집단이 이 이스터섬에 집단으로 이주해왔고, 다른 부족들보다 더 선진적인 기술을 갖고 있던 그 집단이 전부족이 합세하여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들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 부족집단은 다른 부족들보다 훨씬 더 선진적인 문물을 가진 부족이라서, 최첨단 건축기술과 운반수단을 갖고 있었고, 이 부족집단은 모아이석상들을 만들어 세운 후에, 다시 이 섬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 근거로 현재 이스터섬에 살고있는 원주민들은 조상들로부터 옛날에 '짧은 귀부족''긴 귀부족'들이 모아이석상들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모아이석상을 만들었다는 그 부족의 정확한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 부족들이 현재 원주민들의 직접적인 조상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그런 이야기를 선조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칠레에 살고있던 주민들이 이스터섬에 건너와서 종교적인 행위로 이같은 모아이석상들을 만들어 세웠는 것이다.

 

 

칠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이스터섬에서 가장 근접해있는 나라인데, 과거 한때에 칠레에 살고있던 주민들이 종교적인 행사의 일환으로 이스터섬으로 건너와서 대량으로 모아이석성을 제작해서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드는 것이 모아이석상들은 대부분 하늘을 바라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터섬에는 모아이석상들이 총 887개나 되는데, 이 중 880개의 석상들이 전부 하늘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석상들의 눈이 공통적으로 하늘쪽을 주시하는 이유는 하늘에 있는 신이나 절대적인 존재를 경배하는 숭배하는 표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모아이석상들을 제작해 세운 그 집단은 하늘의 신을 숭배하는 종족으로서, 자신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숭배의 종교행위로 이렇게 대규모 모아이석상들을 만들어 세웠고,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늘을 바라보도록 형태를 갖춘 종교적인 상징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적인 상징물을 만든 주체는 이스터섬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대 칠레의 주민들일 것이라는 예기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이스터섬은 칠레가 다스리는 칠레의 관할지역이다.

 

 

이 가설이 그럴 듯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모아이석상들은 4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4세기경의 칠레는 지금보다 훨씬 낙후되고 기술적으로 문명이 매우 뒤떨어졌던 시대인데,

문명이 뒤떨어진 그 시대에 어떻게 20~90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로 된 석상 887개를 어떻게 만들어서, 또 어떻게 운반할 수 있었는지가 커다란 미스테리이다.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은 총 887개이고 이스터섬의 둘레는 20km이다. 이 모아이석상 887개가 섬의 내륙 안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의 해안가에 줄지어 세워져 있는데, 모아이석상들은 섬 해안가의 20km의 둘레를 따라서 쭉 줄지어 있다고 한다.

 

특히 887개의 모아이석상들이 내륙에서 만들어져서, 섬의 해안가쪽으로 모두 이송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겁고 거대한 돌 모아이석상을 어떤 방식으로 운반해올 수 있었는지가 최대의 관건이자 미스테리인 것이다.

 

옛날에는 무거운 돌을 운반할 때에는 여러대의 통나무를 바닥에 깔고 운반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 여러대의 통나무들을 바닥에다 줄지어 깔아놓고, 그 위로 무거운 돌을 밀어서 이동시키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들처럼 800개가 넘는 석상들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통나무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터섬의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잔디만이 깔린 벌판지역이고, 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스터섬 자체가 나무가 거의 없는 황량한 벌판으로 된 지역이라서, 800개가 넘는 돌들을 운반시킬 재료가 전무한 곳이다. 이 점도 커다란 미스테리인 것이다.

 

고대의 시기에 문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매우 낙후된 칠레의 주민들이 수십톤이나 되는 무거운 석상 887개를 어떤 방식으로 운반했는지가 정말 의문스러울 뿐이며,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사실상 운반이 불가능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나온 또다른 가설이 외계인의 제작설이다.

 

 

세 번재 가설은 외계에서 이주해온 외계인들이 이스터섬에서 모아이석상들을 제작해 세웠거나, 그 기술을 전수해주었다는 가설이다.

 

고대시기였던 4세기경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수십톤이나 되는 모아이석상 800개 이상을 제작해서, 해안가로 이송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본다.

 

고대의 시기에 하늘로부터 일단의 외계인세력이 UFO를 타고서 이스터섬으로 내려왔고,

그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최첨단 기술과 최첨단 건축기법을 사용해서 이 거대한 모아이석상들을 제작해서, 해안가로 운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외계인이 떠난 후에도, 외계인들로부터 최첨단 기술을 전수받은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이 외계인의 기술을 활용해서, 계속해서 모아이석상들을 만들어 운반했다고 한다.

 

그 원주민들은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하늘로 떠난 후에, 자신들에게 우수한 문명과 기술을 선사해준 그 외계인들을 숭배하고 신으로 모시게 되었고,

모아이석상을 하늘을 바라보는 형태로 제작한 이유도 그 외계인에 대한 숭배의 표시라고 한다.

 

이 가설에 의하면 모아이석상을 제작한 주체는 외계인들이거나, 그 외계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고, 그 외계인을 섬기는 추종 원주민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모아이석상이 하늘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현상을 어느정도 설명해줄 수 있는 가설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외계인설은 이론상으로는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보여지지만,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모아이석상을 만든 원주민부족의 멸망설?

 

그래서 나온 또다른 가설은 이스터섬의 선주민들이 직접 모아이석상을 만들었고, 결국 그결과 원주민부족 전체가 멸망했다는 가설이다.

 

과거에 이스터섬은 지금과는 달리 나무가 풍성했고 과실들이 풍부했던 정글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스터섬은 거의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황량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고대의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이 이스터섬의 수많은 나무들을 모조리 벌목하고 남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대시기의 어느 시점부터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모아이석상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세우기 시작했다.

 

이스터섬을 다스리는 종교지도자의 명령으로 이스터섬의 부족 전체가 동원되어서, 수십년 동안 모아이석상을 대량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만든 모아이석상들을 운반하기 위해서 섬에 있는 나무란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서 수많은 모아이석상들의 운반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식행위이기 때문에 해마다 계속해서 진행되어 왔는데, 이렇게 대를 이어서 계속해서 모아이석상들을 다량으로 만들었고, 그 때마다 섬에 있는 울창한 산림들은 끊이없이 베어져서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모아이석상의 운반수단으로 수십년 동안 수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소모된 결과, 오늘날과 같이 이스터섬이 나무 한점 없는 황량한 황무지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나무가 없어진 것은 모아이섬 부족원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원래 모아이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로 카누를 만들어서, 그 카누를 타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고사는 부족원들이었다.

 

경제활동의 대부분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로활동이었는데, 모아이석상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들이 모두 사라져버리자,

부족원들은 더 이상 카누를 만들 수가 없게 되었고, 카누를 만들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주식인 물고기를 더 이상 잡을 수가 없게 됐다.

 

또한 나무가 사라지자,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과실들도 전부 사라져버렸고, 결국 원주민들은 그들의 주식인 물고기와 과실을 모두 얻을 수가 없게되어, 굶주림 끝에 멸종이 가속화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식량이 고갈나자,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살아 남아있던 원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살인을 하고, 식인을 하는 처참한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살아남은 일부의 사람들 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육행위가 벌어졌고, 그 결과 이스터섬의 원주민 전체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모아이석상 제작 때문에, 이스터섬 원주민 전체가 멸종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스터섬에 살고있는 주민들은 한참 후에 칠레나 타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드는 것이 모아이석상의 눈과 모자의 훼손이다.

 

지금의 모아이석상들은 눈과 모자가 없는 것이 많지만, 일부의 모아이석상에는 모자와 눈이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자와 눈이 훼손된 것들이 많이 있다.

 

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원래 모아이석상들은 대부분 모자와 눈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 모아이석상을 만들어서 신처럼 숭배했던 원주민들은 모아이석상 숭배 때문에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굶어죽게 되고, 자신들의 삶이 망가져버리자, 그에 대한 원망의 표시로 모아이석상의 눈과 모자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모아이석상에 붙어있었던 모자와 눈이 사라져버리거나, 훼손되어 버린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이론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지만, 그래도 다른 가설에 비해서는 어느정도 타당성이 높은 가설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한 부족을 멸망시켰던 원흉인 모아이석상이 오늘날에는 전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이스터섬으로 불러오는 최고의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은 남태평양의 가장 멋지고 근사한 관광유적지가 되어서,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아이석상을 보기 위해서 이스터섬을 많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모아이석상은 과거에는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의 파멸을 가져다준 비극의 원흉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관광수익을 안겨다 주는 효자 같은 존재감이 되었다.

 

지금까지 모아이석상에 관한 여러가지 가설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중에서 모아이석상의 외계인 제작설과 원주민 멸망설 등 이 두가지가 가장 타당성이 높은 가설로 판단되는데,

앞으로 학자들이 좀 더 치밀한 연구조사를 벌여서 모아이석상의 정확한 진실을 속시원히 밝혀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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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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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히트팝송, 보니엠의 노래 ‘Sunny’ 듣기, 프랑크 패리언의 가짜그룹 이야기

 

  70,80년대에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룹 보니엠의 숨겨진 이야기가 알려져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보니엠은 3명의 여성과 한명의 남성댄스로 구성된 4인조 혼성그룹으로서,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써니’ ‘리버스 오브 바빌론’ ‘Happy Song’ 같은 노래만 들어도 흥이 절로 나는 히트곡들을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70,80년대를 대표하는 독일의 혼성그룹이다.

 

보니엠은 당시 유럽에서 독보적인 그룹이었던 아바의 인기에 필적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으로서,

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레코드점이나 음악다방 등에서는 보니엠의 히트곡 써니리버스 오브 바빌론이 쉴세없이 흘러나왔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그렇기 70,8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보니엠이 놀랍게도 원래는 가짜그룹이었다는 사실이 서프라이즈를 통해서 밝혀져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보니엠은 1976년도에 ‘Sunny’를 발표하자마자, 독일싱글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아니라,

리버스 오브 바빌론은 당당히 영국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그리고 ‘Daddy Cool’3,5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그야말로 70, 80년대의 유럽에서는 보니엠이 주름잡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고, 아시아에서도 보니엠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2004, 보니엠의 프로듀서였던 프랑크 패리언은 갑자기 그룹 보니엠이 원래는 가짜그룹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1974년도에 독일의 프로듀서인 프랭크 페리언은 보니엠이란 전혀 생소한 이름으로 ‘Baby Do You Wanna Bump'라는 곡을 발표한다.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이 만들어 발표한 곡 ‘Baby Do You Wanna Bump'은 레게와 디스코리듬을 혼합해서 만든 신나고 경쾌한 노래인데, 발표후 뜻밖의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이 당시에는 프랭크 패리언이 정식으로 프로듀서로 데뷔하기 전이었는데, 그는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르바이트할 당시에 그가 틈틈이 음악공부를 하면서 만들어놓은 흑인스타일의 노래가 ‘Baby Do You Wanna Bump'였고, 이 노래를 별 기대도 하지않고서 그룹 보니엠이란 이름을 붙여서 음반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전혀 기대를 하지않고 프랭크 패리언이 장난삼아 발표한 이곡 ‘Baby Do You Wanna Bump'이 뜻밖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독일음악차트 상위에 랭크되었다.

 

이곡이 크게 히트를 치니까, 여러 곳의 방송국에서 출연섭외가 빗발치듯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 ‘Baby Do You Wanna Bump'을 부른 그룹 보니엠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그룹이었다는 사실이다.

 

 

‘Baby Do You Wanna Bump'은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이 시험 삼아서 만든 노래였고, 프랭크 패리언이 낮은 저음으로 노래의 일부를 불렀고,

그리고 무명여성가수들이 코러스를 넣어서 급조해서 만든 노래였으며, 노래의 대부분이 멜로디로 되어 있는 곡이라서, 프랭크 페리언은 이곡이 그렇게까지 히트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Baby Do You Wanna Bump'를 부른 보니엠이라는 그룹은 존재하지도 않은 그룹이었고, 그룹 이름만 존재할 뿐, 멤버가 단 한명도 없는 그룹이었다.

 

보니엠이라는 그룹명도 당시 호주에서 만든 인기드라마의 이름인 보니에서 따왔으며,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름인 미첼M자를 따와서, ‘보니엠이라는 그룹명을 즉흥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곡이 발표 이후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수많은 방송국들로부터 그룹 보니엠의 출연요청이 쇄도한 것인데, 이곡을 만든 프랭크 페리언에게는 정말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은 그룹 보니엠의 노래가 이렇게 히트칠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보니엠은 대중들의 큰 인기를 받는 인기그룹의 대열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장차 유럽의 대음악가이자 프로듀서로 크게 성공하기를 바랬던 프랭크 페리언은 그룹 보니엠이 실체가 없는 가짜그룹이라는 것을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고,

만일 가짜그룹으로 노래를 발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그는 유럽음악계에서 매장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프로듀서 프랭크 페리언이 여러 지역에 사는 흑인들을 불러다가 급조해서 보니엠의 구성원들을 채워 넣었고, 결국 가짜그룹 보니엠은 노래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후에 진짜그룹으로 되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프랭크 페리언은 이 곡을 소개할 때에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들이 부른 노래라고 소개했었기 때문에, 전 유럽을 뒤져서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여성 몇 명을 찾아낼 수 있었고,

이 여성들과 흑인남성댄서 한명을 추가해서, 4명의 흑인혼성으로 이뤄진 진짜그룹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프랭크 페리언이 자신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급조해서 만든 그룹 보니엠은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시청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렇게 그룹 보니엠은 원래 멤버가 하나도 없는 가짜그룹에서 진짜그룹으로 급조해서 만들어진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급조해서 만들어진 그룹 보니엠이 그 이후에, ‘Sunny’ ‘Daddy Cool’ ‘리버스 오브 바빌론(Rivers of Babylon)’ ‘해비송같은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급조된 그룹 보니엠이 놀랍게도 유럽의 팝차트의 상위권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고, 1985년까지 6천만장의 엄청난 음반판매고를 올리면서, 사실상 유럽팝시장을 지배했던 최고의 그룹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룹 보니엠은 유럽을 넘어서 아시아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유럽그룹 최초로 1978년도에 공산국가인 소련에서 콘서트공연을 성황리에 진행하기도 했다.

 

70.80년대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던 최고의 그룹 보니엠에 이런 숨겨진 비화가 있었다고 하니, 절암 놀랍고도 신비롭기만 한다.

 

그렇지만 보니엠의 노래가 너무도 흥겹고 좋기 때문에, 그 그룹이 급조되어 만들어진 그룹이었다는 점은 별로 상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보니엠이 발표해서 부른 주옥같이 아름다운 노래 자체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그럼 70.80년대를 풍미했던 보니엠의 주옥같은 히트곡 써니리버스 오브 바빌론을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자!

 

 

보니엠의 히트곡 써니동영상

 

 

 

 

 

 

 

보니엠의 히트곡 리버스 오브 바빌론동영상

 

 

 

 

  

 

 

보니엠의 히트곡 써니가사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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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모란봉악단단장 현송월의 미모와 남편, 김정은 옛애인

사랑방 이야기 2018. 1. 15. 23:53

모란봉악단의 단장 현송월의 나이와 남편, 김정은과의 관계

 

남한과 북한이 115일 판문점에 있는 북한측 통일각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자회담을 열었답니다.

  

남한측에서는 이우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한 실무자들이 회담장에 나왔고,

북한에서는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을 단장으로 한 5명의 실무자들이 참석해서, 실무접촉을 가졌답니다.

 

그런데 눈길을 끈 것은 북한측 참가자 중 미모의 여성 현송월이 회담에 참가하고 있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답니다.

 

현송월은 북한참가단 중에서 유일한 여성으로 남북회담에 참가했으며, 군복 대신에 네이비색상의 세련된 정장을 입고 있으며, 짙은 아이라인 화장까지 곁들여서 북한 대표단의 서열 2위로서 이번 회담에 참석했답니다.

 

현송월은 이번 회담에 시가 2,500만원하는 초록색상의 에르메스 명품백을 들고나와서 시선을 집중시켰답니다. 과거에는 중국에 또다른 명품백인 샤넬백을 갖고 가기도 했답니다.

 

 

 

남북회담에 여성이 참가한 것은 매우 이레적인 일로서,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하는데요.

 

무엇보다도 현송월은 김정은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의 진짜 의도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답니다.

 

김정은의 옛얘인? 현송월은 과거의 인기가수이자, 모란봉악단의 단장

 

현송월이 누굽니까? 한때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옛애인으로도 알려졌던 북한의 인기여가수였던 인물이죠.

 

 

현송월은 보천보 전자악단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북한의 인기가수였답니다. 그런데 한동안 현송월에 대한 숙청설과 처형설이 나돌기도 했었고,

렇게 숙청설과 함께 현송월은 몇 년간 사라져버렸고,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졌던 현송월이 2015년 갑자기 모란봉악단의 단장으로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답니다.

거의 3년만에 북한의 걸그룹 악단이라고도 불리우는 모란봉악단의 단장으로 다시 나타난 현송월은 동시에 대좌의 게급까지 달고 나타난 것이지요.

 

또한 현송월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그 지위가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중앙위원회 후보는 노동당의 핵심 고위급요원들로서, 파워가 엄청나게 쎈 직책으로, 사실상 노동당을 이끌어나가는 핵심지도층이랍니다.

 

현송월이 숙청되었다는 루머를 뒤집어버리고, 몇 년 만에 파격적인 신분상승을 이루고, 모란봉악단의 단장이라는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난 것이랍니다.

 

그리고 현송월은 모란봉악단 단장이라는 직함 외에도 인민군 대좌라는 계급도 함께 갖고 있는데, 북한의 대좌계급은 일종의 대령계급이지만,

북한에서는 1개 사단의 책임자급이라서 우리남한의 사단장 정도 되는 계급이라고 합니다.

 

 

현송월은 한때 북한 김정은의 옛사랑이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답니다. 김정은이 2000년대 초반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부터,

한참 인기가수로 활동했던 현송월에 필이 꽂혀서, 현송월과 한동안 사귀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현송월과의 관계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고 하며,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은은 현송월과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지금의 부인 이설주와 결혼했다고 알려졌답니다.

 

그런데 이설주와 결혼한 김정은이 옛연인 현송월을 잊지못하고, 결혼 후에도 종종 현송월과의 만남을 이어왔다고 하는데요.

 

물론 이 김정은과 현송월의 연인설은 어디까지나 찌라시에서 나온 내용이라서, 100% 사실이라고 믿을 수만은 없는데요.

 

그런데 북한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김정은과 현송월이 연인관계라는 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나하면 현재 현송월은 결혼해서 남편과 딸까지 있는 유부녀이고, 또한 그녀의 나이가 실제로는 1979년생 40세의 나이로, 김정은보다도 4살이나 더 많으며, 현송월의 외모도 김정은이 좋아할 스타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현송월이 모란봉악단의 단장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만일 김정은과 현송월이 연인관계라고 하면,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절대로 그녀를 그 자리에 있게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든 이설주가 압력을 행사해서, 현송월을 모든 공식직위에서 끌어내렸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현송월은 김정은 부인 이설주의 엄청난 보복을 받아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리고 현송월이 김정은의 진짜 연인이라면, 김정은이 현송월을 숨겨놓고 몰래 만나는 것이 정상이지, 이렇게 공식적인 직함을 주고 대외활동을 하게끔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북한전문가들의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결혼까지 한 김정은이 자신의 애인이자 정부에게 공식직함을 주어서 대외활동을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몰래 숨겨놓고서 남몰래 만나는 것이 더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현송월이 김정은과 연인관계라든가, 옛애인이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루머가 사실은 찌라시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또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쩌면 현송월이 김정은의 옛애인인 것은 사실인데, 아버지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은이 이설주와 결혼한 후에, 두사람간의 연인관계를 끊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이후 김정은은 과거의 옛애인에 대한 두터운 신뢰의 표시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라는 높은 직함도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모란봉악단의 단장을 맡겼다고 보여진답니다.

 

그리고 현송월의 남편에 대한 예기인데요. 현송월의 남편은 군의 고위군관이라고 합니다.

 

이 현송월의 남편은 과거에 김정은과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는데요.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하기 훨씬 전에, 김정일은 김정은을 인민군 군대에 계급이 제일 낮은 하전사로 입대시킨 적이 있답니다.

 

 

 

김정일은 외국의 유학생활을 많이 해서 국내사정을 전혀 모르는 김정은이 인민군의 실태에 대해서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를 신분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은 체 인민군 군대로 입대시킨 것이랍니다.

 

그렇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체, 인민군 군대에서 하전사로 힘들게 생활했던 김정은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잘 돌봐주었던 군장교가 바로 현송월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되고, 정권을 잡은 후에 김정은은 과거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군장교를 잊지않고, 그를 고속승진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과거 군입대 시절에 핍박을 받았던 자신을 여러모로 돌봐주었던 그 직속상관의 은혜를 잊지 않고,

군고위직 간부로 승진시켜주었다고 하며, 또한 그 장교에게 인기가수 현송월과의 결혼도 주선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에, 자신에게 도움을 준 군장교와 현송월의 결혼을 주선해주었는데,

자신이 결혼까지 주선해준 현송월과 연인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예기라고 할 수 있답니다.

 

 

어쨌건 김정은이 현송월과의 연인관계는 차치하고 라도, 김정은이 현송월에 대해 큰 신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한갓 가수에 불과했던 현송월을 김정은은 작년 10월달에 230명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임명한 것과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악단인 모란봉악단의 단장의 지위까지 부여한 것을 보면,

연인관계를 떠나서 김정은이 현송월에 대해 절대적인 신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여자걸그룹 형태의 악단이랍니다. 모란봉악단은 남한의 인기걸그룹을 모방해서 만들었는데,

기존의 악단과는 달리 세련된 이미지와 발랄한 댄스까지 보여주는 현재 북한에서 가장 인기좋은 악단이랍니다.

 

이렇게 김정은의 절대적인 신임과 총애를 받고있는 현송월이 이번 남북 평창올림픽 실무회담에 전격 참석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현송월은 북한의 관현악단 단장의 자격으로 회담장에 나왔다고 하며, 북한측 대표단의 부대표의 지위로 참석했다고 합니다.

 

즉 현송월은 모란봉악단의 단장이 아닌, 관현악단 단장의 자격으로 이번 회담에 참석한 것이랍니다.

 

현송월이 모란봉악단의 단장의 지위를 바꾼 것은 모란봉악단은 온통 김정은을 찬양하는 일색의 노래들만 부르는 악단이라서, 이런 유형의 악단이 남한에서 공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현송월에게 모란봉악단이 아닌 관현악단의 단장의 직함을 붙여서 이번 회담에 참석한 것이랍니다.

 

현송월은 김정은의 정치적 멘토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북한측 참석자 중에서 사실상 현송월이 제1인자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현송월이 작년에 30대 후반의 나이에 노동당의 최고권력기구인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김정은의 절대적인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랍니다.

 

현송월이 30대 후반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올랐다는 것은 그녀가 김정은의 최측근이라는 것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지요.

 

 

비록 북한의 단장은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이지만, 이번 실무회담을 뒤에서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현송월이라고 합니다.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있는 현송월이 사실상 이번회담의 키를 쥐고있다고 보여집니다.

   

앞으로 북한은 세명의 실세 여성들이 김정은의 최측근으로서, 김정은과 함께 북한을 이끌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설주, 김여정, 현송월 이 세명의 여성들이 김정은정권의 가장 큰 실세로서, 북한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남북 실무자회담에 참석한 현송월의 미모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현송월은 이목구비가 크고 시원시원한 게, 여성적이면서도 선굵은 미모를 갖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설주가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한 미모를 갖고 있는데 반해, 현송월은 후덕한 인상에 육감적이고 요염한 매력을 풍기는 전형적인 동양미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북한전문가들은 현송월의 미모는 김정일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송월은 김정은의 연인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멘토 내지는 정치적 조언자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김정은과 현송월의 관계는 연인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결연관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현송월은 김정은 권력의 지지기반의 한 축이라고 보여진답니다.

   

참 그리고 15일 통일각에서 열인 남북 평창올림픽 실무자회담에서, 남북은 5개항을 합의해서 공동보도문 발표했답니다.

 

공동보도문에서 북한측은 모란봉악단이 아닌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의 140여명으로 구성된 올림픽예술단을 파견한다고 하며, 북측 예술단은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 강릉과 서울에서 각각 1회씩 공연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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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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