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갑’ 북한식당 종업원 탈북녀 한수애의 탈북이야기, 남편

 

요즘 ‘이만갑’에서 탁월한 미모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있는 탈북녀 한수애를 아십니까?

 

늘씬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로 탈북녀 중에서도 상당한 미인소리를 듣고있는 한수애는 현란한 말솜씨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방송 ‘이만갑’의 인기를 한층 높여주고 있는 '이만갑'의 마스코트같은 존재감이랍니다.

 

오늘은 눈에 띄는 미모와 재치있는 입담, 세련된 매너로 요즘 ‘이만갑’에서 한층 주가를 높여가고 있는 미녀 탈북녀 한수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수애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파견근무를 해왔던 북한종업원 출신이랍니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여종업원으로 근무하던 한수애가 그곳을 탈출해 한국으로 입국하게된 계기는 바로 한국남자와의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북한식당 여종업원으로 한국남자와 눈이 맞아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한국남자와의 사랑을 위해서 남한으로 극적인 탈출을 감행한 탈북녀 한수애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러브스토리’ 같은 영화나 다름없습니다.

 

그럼, 영화 러브스토리만큼 벅찬 감동을 주는 동남아시아에서 있었던 북한종업원 한수애와 남한남자와의 끈끈한 사랑과 탈북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어요!

 

◆ 한수애의 남한남자와의 사랑과 탈북스토리

 

한수애는 북한에서 22살 때에 동남아시아의 한 북한식당으로 파견나가 그곳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한국남자와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었고,

결국 사랑을 쫓아서 북한체제를 탈출해서 남한으로 입국했던 아주 극적인 탈북사연을 지닌 탈북녀이지요.

 

한수애는 22살 때에 파견나갔던 캄보디아에 있는 북한식당 즉, 평양냉면식당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여종업원이었는데,

어느날 그녀는 그곳에서 건축업에 종사하던 한국남자와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되었고, 결국 사랑을 쫓아 북한식당을 탈출해 한국으로 입국한 극적인 사랑의 여주인공이 된 탈북녀입니다.

 

한수애는 마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실사판처럼 매우 극적인 러브스토리를 펼쳤던 보기드문 케이스의 탈북녀입니다.

 

한수애는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수년동안 여종업원으로 근무했는데요. 어느날 같은 식당에서 근무하는 언니들로부터 한국출신의 단골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된답니다.

 

아주 멋지고 세련되고 매너좋은 남한손님이 그 북한식당에 단골손님으로 자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남한손님은 너무 멋지고 잘 생겨서 북한여종업원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높다는 소문이었지요.

 

그래서 한수애는 그 멋지다는 한국남성이 누굴까하고 진한 호기심을 갖게되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멋지다는 한국남성 손님이 그녀가 근무하는 북한식당에 방문을 했답니다.

 

참고로, 북한식당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개된 커다란 홀도 있지만, 은밀하게 내실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여러개의 방들이 별도로 갖추어져 있지요.

그리고 손님들의 예약을 받아서 북한여종업원이 방에 들어가 손님을 단독접대를 할 수 있게 되어있는 구조랍니다.

 

평소에 그 북한식당에서 한수애는 손님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는 공연을 자주 갖기 때문에, 능숙한 기타연주실력과 탁월한 미모를 갖춘 그녀는 현지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랍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남한손님은 또다시 그 북한식당을 방문했고, 룸안에서 한수애의 단독접대를 받도록 예약신청을 미리 해놓았답니다.

 

그 남한손님은 평소에는 여러명의 일행들과 함께 북한식당을 방문했었는데, 그날따라 그는 오직 혼자서만 방문하였고, 한수애가 단독으로 그 한국남성의 접대를 하게된 상황이었답니다.

 

두사람이 처음으로 식당내 룸에서 단독만남을 가진 상황, 그 한국손님은 뜻밖의도 한수애 앞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최근까지의 시시콜콜하게 자신의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한수애는 그 남한손님의 이야기를 손님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차분히 들어주면서 호응을 해주었답니다.

 

그렇게, 북한식당의 방에서 손님과 종업원으로 첫만남을 가진 후, 그 한국손님은 한수애의 접대에 만족을 느꼈는지, 그 후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그 북한식당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 남한손님은 1년 365일동안에 무려 370일 동안 그녀가 근무하는 북한식당을 찾아왔고, 찾아올 때마다 한수애에게 뜨거운 눈길과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그 한국손님이 그 북한식당을 자주 찾아온 진짜 이유는 한수애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며, 좋아하는 그녀를 보기위해서임은 말한 나위가 없는 사실이지요!

 

그 한국손님은 캄보디아에 있는 한국건설회사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는 한국근로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한국손님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북한식당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건강에 좋은 유자차와 우엉차 등 선물보따리를 한아름 안겨주고는,

급하게 뛰어나가다가 뒤돌아보면서 ‘안녕’하고 미소짓는 모습을 본 한수애도 그 한국남성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답니다.

 

한수애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왔던 그 한국손님의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고 홀딱 반하면서, 이제 그녀도 그 한국남성을 마음에 품게되었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어느날, 북한식당을 방문한 그 한국남성은 한수애에게 값진 시계를 선물로 주면서, ‘나 너랑 사귀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이 때부터 그 한국남성은 적극적으로 한수애에게 대쉬해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수애는 북한식당에 파견나온 북한여종업원으로서, 북한당국자들의 상엄한 감시와 엄격한 통제를 받는 처지였답니다.

 

그녀는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없었고, 특히 북한여종업원들은 남성들과 연애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만일 외갓남성과 연애한 것이 들통이 나면, 곧바로 북한으로 압송되어 큰처벌을 받게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수애는 그 한국남성을 마음속으로 좋아하면서도, 북한의 통제 때문에, 겉으로는 적극적인 표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요원들의 삼엄한 통제 때문에, 두사람은 주로 식당안의 룸에서만 두사람만이 통용되는 은밀한 교제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렇게 한국남성과 북한여종업원의 비밀연애가 북한식당 안에서 아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나갔답니다.

 

그때로부터 한수애와 한국남성의 비밀연애는 무려 3년 동안 식당안에서만 이어져나갔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북한식당 안에서 북한요원들의 감시를 피해 아슬아슬한 곡예와도 같은 비밀연애를 3년동안 이어나갔다고 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해외에 설치되어 있는 북한식당의 여종업원은 북한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기 때문에, 절대로 허락없이 외출이나 외박을 할 수도 없고, 더욱이 남성과의 연애는 절대금물입니다.

 

또한 그 식당안의 홀이나 방에는 모두 CCTV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두사람만의 은밀한 사랑행위를 나눌 공간이 전혀 없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사람이 식당 안에서만 무려 3년동안이나 비밀연애를 유지해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두사람의 사랑이 무척 뜨겁고 대단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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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 같으면, 이런 통제된 공간속에서의 비밀연애는 3년이 아니라, 3개월만 지난다면 숨이 막혀서 곧바로 포기했을 겁니다!

두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고, 얼마나 순수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답니다!

 

그 식당에서 유일하게 CCTV가 설치되어 있지않은 곳은 양쪽방 사이에 있는 길다란 좁은 복도! 이 좁은 복도에서 두사람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돈독한 애정을 쌓아나갔다고 합니다.

 

3년 동안 두사람의 유일한 사랑행위는 그 좁은 복도에서 서로 손잡기가 유일한 사랑행위라고 합니다.

CCTV의 유일한 사각지대인 좁은 복도에서의 손목잡기가 두사람의 가슴을 찌릿하고 설레이게 만드는 유일한 사랑행위였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만일 이런 연애를 하다가 보위부원에게 걸린다면, 한수애는 곧바로 북한으로 송환된다고 하며, 북한에서 자아비판을 한 후,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개인의 연애까지도 통제하고, 인간의 본성을 짓밟아버리는 지옥 같은 세계가 바로 북한이랍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북한체제를 옹호하고 김정은을 찬양하는 무리들이 한국에 많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한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 한국남성이 자신을 좋아하는 사실을 느낀 후, 한수애는 그 남자에게 ‘오빠! 나도 오빠를 똑 닮은 아이를 낳고싶어’고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답니다.

 

그리고 그 한국남성은 한국으로부터 어머니와 가족들을 초빙해서 그 북한식당으로 데리고와서 그녀를 인사시켰다고 합니다.

그 한국남성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한수애를 한국으로 데려와서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어머니될 분은 자신의 아들과 결혼할 여성을 보기위해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까지 날아온 겁니다.

 

북한식당에서 은밀하게 시어머니와 시댁식구까지 모셔놓고, 일종의 상견례를 치렀던 겁니다.

그 시어머니될 분은 한수애에게 ‘엄마한테 와! 진짜 딸처럼 잘해줄께!~’라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두사람은 서로의 애정을 주고받으면서, 북한식당내에서 아슬아슬한 사랑을 3년 동안 유지해왔답니다.

 

한수애와 한국남성은 이미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는데, 문제는 한수애가 그 북한식당을 어떻게 탈출해서 한국으로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수애가 북한식당을 탈출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할 엄청난 모험이며, 24시간 동안 상엄한 감시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 때 한국남성이 고안해낸 한수애를 탈출시키는 방법은 ‘납치 자작극’을 벌이는 것이었답니다.

만일 한수애가 자발적으로 북한식당을 탈출해서 도망간다면, 북한에 남겨진 한수애의 부모님은 큰 화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수애가 자발적으로 탈출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납치되는 연극을 고안해낸 것이지요.

 

그 한국남성이 돈을 주고 납치자작극을 벌일 현지 용역요원들을 모집해서, 그들로 하여금 한수애를 납치하도록 작전을 꾸몄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를 북한식당에서 납치하는 납치자작극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리고 크게 실의에 빠진 한국남성은 캄보디아 파견근무가 끝나면서 한국으로 돌아갔고, 캄보디아에 남겨진 한수애는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고 엄청난 가슴앓이를 합니다.

 

자신이 좋아했던 한국남성이 한국으로 떠난 후, 마음의 병이 얻은 한수애는 급기야 건강까지 크게 악화된 상황,

한수애가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을 눈치챈 북한요원은 그녀를 북한으로 송환할 결정을 내립니다.

 

이제 자신이 북한으로 송환되면, 자신이 사랑한 한국남성을 영원히 볼 수 없게된다는 사실을 감지한 한수애는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싶은 심정으로 한국에 있는 그 남성에게 전화를 겁니다.

 

한수애는 전화를 통해 한국오빠에게 자신이 곧 북한으로 송환된다는 사실과 보고싶다는 말을 건냈고, 그 소리를 들은 그 한국남성은 곧바로 캄보디아로 날아왔답니다.

 

‘이제, 다시는 서로 헤어지지 말자’고 다짐한 두사람! 한국남성은 또다시 한수애를 탈출시킬 납치자작극을 꾸며서 실행시킵니다.

 

한수애와 동료언니가 함께 시내에서 쇼핑을 한다는 구실로 북한식당으로부터 같이 외출하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수애와 동료언니가 같이 시내로 나갔고, 두사람이 복잡한 시장통거리를 거닐며 쇼핑을 할 때, 미리 잠복해있던 용역요원들이 손살같이 한수애를 낚아채서 자신들의 차에 태웁니다.

 

그리고 그 차에 타고있던 한국오빠와 한수애는 함께 차를 몰아서 아주 먼 지역으로 쏜살같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 국경부근의 은밀한 곳에서 4일 동안 숨어지냈던 두사람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한국으로 입국하는데 성공했답니다.

 

이렇게 두사람이 극적으로 북한식당을 탈출해서 2016년도에 무사히 한국으로 입국한 후,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삶을 살고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북한식당을 매일같이 찾아와서 한수애와 비밀연애를 즐겼던 그 한국남성은 바로 지금 한수애의 하나뿐인 남편이랍니다.

 

두사람은 캄보디아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고, 북한식당에서 3년동안 은밀하게 비밀연애를 이어오다가 한국으로의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매우 흔치않은 케이스랍니다.

 

한수애와 남편의 캄보디아 북한식당에서의 아슬아슬한 3년간의 사랑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안겨줄 만큼 정말 아름답고, 순수해서 마치 한편의 영화같습니다!

 

현재 한수애는 한국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같이 잘 살고있으며, 토끼같은 딸까지 낳아 기르며 주부로서의 행복한 삶을 살고있답니다.

 

모진 고초와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고 한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한 탈북녀 한수애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고,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딸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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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

이만갑 탈북녀 정유나의 탈북이유와 탈북스토리, 프로필과 나이

연예인 핫토픽 2021. 3. 23. 21:07

 

탈북미녀 정유나의 탈북이유와 탈북스토리, 프로필, 정유나의 영어실력

 

오늘은 방송 '이만갑'에서 산뜻한 미모와 톡톡 튀는 언행으로 인기를 끌고있는 탈북미녀 정유나에 대한 탈북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유나는 방송 '이만갑'에서 신은하, 김아라와 함께 탈북미녀 3인방으로 불릴 정도로 북한여성답지 않게 우아하고 세련된 미모로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셀리이게 하는 전형적인 평양미녀입니다.

 

정유나는 탈북녀답지않게 영어를 유창하게 잘합니다. 정유나는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잘해서 한 때 세계 3대 투자가인 짐 로저스의 수행비서와 통역관을 담당하기도 했답니다.

정유나가 이처럼 영어를 잘할 수 있게된 이유는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받았고, 영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기 때문이랍니다.

북한에서는 원래 중학교때부터 학생들에게 러시아를 필수로 가르쳤는데, 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된 후, 더이상 러시아어가 중요하지않게 된 상황에서, 북한 중학교에서는 러시아어와 함께 영어도 함께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이시기에 중학교에 다녔던 정유나는 의무적으로 영어반에 편입되어 매일같이 영어수업을 들어야했고, 워낙 학교에서  스파르타식으로 영어를 철저히 교육시켰기때문에, 

정유나도 자연스럽게 영어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온 결과, 오늘날 영어회화를 잘할 수 있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대표적인 미녀탈북녀이자, 방송 '이만갑'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하고있는 정유나는 어떻게 해서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는지, 그녀의 아슬아슬했던 탈북스토리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어요!

- 정유나 프로필 -

나이 - 1988년생 (34세) 
출생지 - 평안북도 강계시 화경면 신적리(자강도 전천군 신적리)
키 - 160cm 
가족 - 1남 1녀중 막내
학력 - 김정숙교원대학 음악과
데뷔- 2017년 '이제 만나러 갑니다 '
탈북시기 - 2008년 21세 때에 탈북해 한국 정착 
특기 - 유창한 영어회화

◆정유나의 탈북이유와 탈북스토리

정유나는 1988년도 북한의 자강도 전천군 신적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북한 군관으로 근무하고 계셨는데, 대대참모장을 하고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으로서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셨기에, 집에서도 군관인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때문에, 정유나는 어렸을 적부터 엄친딸로 반듯하게 자라났습니다.

정유나는 북한에서 비교적 높은 신분이셨던 군인장교 아버지덕택도 있고, 집안에서 정미소를 운영했기 때문에, 그래도 북한에서는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남부럽지않게 윤택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정유나는 출신성분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정숙교원대학에 들어가 음악을 전공하면서 북한에서 전형적인 인텔리코스를 밟아나갔고, 그녀는 북한에서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북한에서 풍요롭고 유복한 생활을 해왔던 정유나가 무슨 이유로 탈북하게 되었을까요? 

 

정유나가 태어난 자강도는 군사시설과 군수공업시설이 밀집된 지역이라서, 타지역사람들은 당국의 허락이 없으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고립된 지역입니다.


외부로부터 영향을 전혀 받지않는 고립된 지역이었고, 군관장교이셨던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자랐던 정유나는 어려서부터 사상이 매우 투철한 소녀로 자라났답니다.


정유나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투철했다고 하는데, 그녀는북한에 있을때, 자신은 장군님을 위해 총과 폭탄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한껏 드높았던 정유나였지만, 그녀는 함경북도 회령에 소재한 김정숙 교원대학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사상에도 서서히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답니다.

정유나가 다녔던 김정숙 교원대학은 두만강 바로앞에 있었는데, 두만강 너머가 바로 중국 만주지역이었고, 이지역은 중국의 무역상들이 많이 드나드는 지역으로서 중국으로부터 많은 외부정보들이 들어오는 지역이었답니다.


바로 이런 지역적특성이 정유나가 사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지요.

그 회령시는 중국으로부터 자본주의풍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이었는데, 그 회령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TV를 볼 때도 주로 한국드라마나 K-POP방송만을 보았고, 옷도 세련된 한국패션을 따라입고, 노래도 한국노래를 즐겨불렀을 정도로 온통 한국풍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김일성사상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했던 정유나였지만, 정유나는 그녀가 대학에 다녔던 회령지역의 자본주의풍과 한국문화에 영향을 받게되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문화와 한국연예인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정유나는 어느날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한 한국드라마를 보았는데, 그 한국드라마는 동아시아에서 한류를 급속도로 퍼뜨리는데 일등공신역할을 했던 최고의 한류드라마 '가을동화'였다고 합니다. 

일본과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의 많은국가들로 하여금 한류에 푹 빠지게 만들었던 그 유명한 인기최고의 한류드라마 '가을동화'를 본 정유나는 

그 때부터 그토록 투철했던 그녀자신의 김일성사상과 투철한 충성심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는 한국과 한국연예인에 대한 동경심과 애정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우연히 보았던 가을동화의 남자주인공 송승헌과 원빈을 보고서, 저렇게 멋지고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사는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생기게 됐고, 

이렇게 한국드라마와 문화에 온통 마음이 빼앗긴 정유나로 하여금 한국사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크게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즉, 김일성사상이 투철했던 정유나는 그녀가 대학을 다녔던 지역인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본 한국드라마 때문에, 한국에 가고싶은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겁니다.

또다른 탈북녀 한송이는 북한 회령에서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감동받아서 한국으로의 탈북을 결심했었는데, 

마찬가지로 정유나 또한 한국드라마 '가을동화'를 보고서 한국에 가고싶은 희망을 품게된 것이지요.

 

정유나나 한송이는 모두 회령시에서 탈북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두사람 모두  한국드라마와 한국 K-POP을 본 후, 한국에로의 탈북을 결심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한국문화의 파급력을 한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뀌게 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회령에서 정유나는 한국드라마와 한국문화를 접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나날이 커져만갔고, 급기야 그녀는 21세 때인 2008년도에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많은 탈북사건들 때문에, 국경선의 감시가 삼엄했고, 중국측 지역에서도 감시가 심했던 시기였답니다.

그렇지만, 워낙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컸던 정유나는 브로커를 따라서 두만강 도강을 시도했고, 간신히 두만강 건너편 언덕에 도착했을 때에는 북한측지역으로부터 총탄이 날아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긴박했던 순간에 정유나는 본능적으로 '하나님 살려주세요!'를 외쳤고, 비로서 그녀는 무사히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고, 마침내 중국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브로커(길잡이)의 안내를 받아서 무사히 중국땅을 밟았던 정유나였지만, 브로커가 더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녀 혼자서 중국택시를 잡아타고 용정시로 향했습니다.

 

어렵사리 두만강을 넘은 정유나였지만, 용정시로 향하는 길목마다 수없이 많은 중국검문소를 통과해야하는 과제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유나의 탈북과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탄 택시의 기사는 조선족이었고, 그 기사는 정유나가 탈북인인 줄 눈치챘고, 그녀를 중국공안에 고발하는 대신 그녀의 탈북을 자발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용정시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많은 중국 공안검문소에서 그 기사는 정유나가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기사의 임기웅변으로 인해서 정유나는 여러번 검문을 받으면서 위기를 겪었지만, 단 한번도 안 걸리고 무사히 용정시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답니다.

 정유나는 탈북할 때에 오직 혼자서만 탈북을 했습니다. 정유나는 집에서 아버지돈 1300불을 몰래 훔쳐서 탈북을 시도했는데요. 


그 당시 아버지는 김정일에 대한 투철한 충성심을 가진 고급 군관장교였기 때문에, 만일 정유나가 탈북한 것을 알기라도 한다면, 당장 북한보위부에 신고해서 그녀를 잡는데에 혈안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 아버지의 엄격한 성미를 잘 알고있었던 정유나는 부모님과 형제에게는 전혀 알리지않은 채, 오직 혼자서만 탈북을 시도했던 겁니다.

 

정유나와 어머니 김신애

 

그런데, 정유나의 탈북을 오직 어머니 한분만 눈치채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유나가 전날에 집에서 TV에서 한국드라마를 본 후, 그다음날 새벽 4시가 탈북을 위해 몰래 집을 빠져나올 때,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가 뒤따라 나와서 정유나의 팔을 잡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정유나에게 '너 지금 어디 가냐?'하고 물었고, 정유나는 어머니에게 모기만한 목소리로 '남조선에 간다'고 솔직히 대답했답니다.
그러자, 정유나 어머니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않고 있다가 '같이 가자'라고 말하면서 정유나를 기차역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기차역에 도착한 어머니는 정유나에게 '우리 유나는 바윗돌위에 올려놓아도 산다' '이 나라는 비전이 없다'고 말하면서 탈북을 위해 떠나가는 정유나를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격려해주었다고  합니다.

딸을 보내는 어머니는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유가 전혀 없고, 이세상에 우리나라처럼 인간의 권리를 짓밟는 나라는 없다'고 말하면서, 어머니는 딸의 장래를 위해서 탈북을 시도하는 정유나를 한껏 격려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국땅으로 건너간 정유나는 수소문끝에 브로커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브로커의 도움으로 10여명의 일행과 함께 태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답니다.
정유나일행은 태국에서 경찰에 붙잡혔지만,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라서 경찰은 그녀와 일행을 수용소에 넘기지않고, 그냥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만일 탈북자가 수용소에 들어갔다면,  한국까지 오는데에  수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후, 정유나일행은 태국 방콕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코리언하우스' 간판을 보고 그 집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한국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으로의 입국을 시도하게됩니다.

11명의 정유나일행은 그 코리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도움으로 한인이 운영하는 방콕교회를 알게되었고, 그 방콕교회의 선교사의 도움으로 비행기표를 받아서 한국으로의 입국에 성공하였답니다.

 

◆ 정유나 아버지,어머니,오빠 등 정유나가족의 기적같은 탈북성공


그런데 정유나가 탈북하여 한국행을 하고있는 동안, 북한에서는 정유나 탈북사실이 북한당국에 발각되었고, 정유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의 탈북때문에 국가보위부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그렇게 딸의 탈북때문에 국가보위부에 체포된 정유나 부모님은 6개월동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당한 후, 간신히 풀려났습니다.

그 후 정유나 아버지는 정유나를 붙잡겠다는 이유로 스스로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원래 정유나 아버지는 자신과 북한을 배반하고 탈북한 딸을 다시 데려가기 위해 탈북해서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에서 너무나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딸을 보고서 오히려 감동을 받았고, 이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는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정유나 어머니 또한 정유나와 남편의 뒤를 따라서 한국으로의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정유나 어머니는 탈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브로커를 고용해 국가보위부원에서 뇌물을 주고 탈북을 시도했는데,

그 보위부원이 밀고하는 바람에 탈북에 실패하고, 보위부에 붙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답니다.

한달동안을 안전부 구류소에 갇혀서 취조와 고문을 받았지만, 정유나 어머니는 끝까지 탈북한다는 계획을 실토하지 않았고, 고향에 방문하려 했다고 말하면서 버텼는데,

그 덕분에 그녀는 강제수용소가 아닌 단련소 6개월형을 선고받고, 단련소에 감금되어 6개월간 노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딸이 모두 탈북해서 북한당국으로부터 요시찰 감시대상으로 낙인찍혔던 어머니였지만,

그녀는 강인한 정신력과 뚝심으로 잘 버텨내는 바람에, 그녀는 6개월간 강제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풀려날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1차탈북에 실패한 정유나 어머니는 남한에 있는 딸과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또다시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정유나 어머니의 두번째탈북은 인신매매선을 통해서 이뤄졌는데요. 

 

정유나 어머니는 인신매매선에 스스로 들어가서 중국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정유나 어머니는 그 인신매매단에게 자신은 남한에 있는 오빠를 만나기 위해서 남한으로 가야한다고 남한행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돈욕심이 생긴 인신매매단은 정유나어머니를 미끼로 해서 큰 돈을 챙기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 인신매매단은 정유나 어머니를 통해서 남한에 있는 정유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 매매단은 어머니의 한국입국을 미끼로 정유나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했고, 결국 정유나는 그 돈을 지불하면서 간신히 어머니를  한국에 입국시킬 수 있었답니다.

 

이 당시 정유나와 아버지는 정유나 어머니를 입국시키기 위해 인신매매단에 지불한 돈을 마련하게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 거액의 돈을 빌리기 위해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을 수개월동안 찾아다니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간청을 했고, 간신히 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정유나 부녀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정유나 어머니를 한국으로 입국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 북한에 마지막으로 남은 오빠를 또다시 탈북시켜서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정유나는 7년에 걸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까지 모두 탈북시켜서 온가족이 전부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답니다.
온가족 4명이 모두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던 것은 정유나에게 그야말로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고, 꿈에 그리던 일이었습니다.


탈북하다가 죽은 사람도 수없이 많고, 탈북하다가 중국수용소에 끌려가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정유나는 자신이 먼저 탈북하고 난 후, 7년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 등 가족을 모두 차례로 탈북시켜 한국으로 입국시키는데 성공했답니다.


정유나가 두만강을 건너면서 도와달라고 기도했던 하나님의 도움 때문이 아닌가, 정말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정유나의 신기한 종교적 체험과 기적같은 탈북성공

 

그런데, 정유나가 태국 방콕에 있을 때에 신기한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정유나가 방콕교회에서 선교사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에, 눈앞에서 예수님을 보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고 하는데요.

 

방콕교회에서 선교사님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에, 갑자기 눈앞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한 분이 앉아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유나자신은 온통 금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정유나가 뒤를 돌아다보니, 자신의 뒤쪽에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 세사람이 모두 금가루를 뒤집어쓰고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정유나는 교회에서 선교사님과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이같이 예수님의 환상을 직접 보았고, 북한에 남겨놓고온 가족 전부를 실물처럼 보았다고 합니다.

이 때 정유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실물처럼 또렷하게 보았다고 하는데요.

 

이 당시는 정유나가 태국 방콕교회에서 선교사님의 보호를 받고 있던 시절이었고, 정유나의 가족들은 모두북한에 그대로 남겨진 상태였습니다.

정유나가 탈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신께서 정유나에게 예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기적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환상을 본 후에, 정유나는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고, 그 후 정유나는 자신의 가족들을 모두 한국으로 입국시키는일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렇게 정유나가 자신은 물론 가족 전부를 한국으로 입국시켰던 것은 방콕교회에서 신께서 그녀에게 형상을 통해서 미리 예견해주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정유나의 탈북과 한국입국은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녀가 탈북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그녀에게 손을 뻗쳤고, 그 고초 때마다 정유나는 기적처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답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위기때마다 외쳤던 그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한국에 입국한 정유나는 한국에서 미용기술을 배워서 오랫동안 미용사로서 활동하면서 한국에서의 정착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정유나는 2017년도에 '이만갑'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만갑'의 미녀탈북녀로서 큰 인기를 끌면서 활발한 방송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정유나는 유튜브계정을 만들고, 자신의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면서 인기유튜버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정유나가 북한에서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 탈북에 성공한 후, 가족까지 모두 탈북시켜서 한국에서 행복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흐믓하고 보기 좋습니다.

정유나의 한국정착 성공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정유나가 방송에서 더욱 멋진 모습으로  활발한 방송활동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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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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