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스잔나 주제가) 진추하의 70년대 명곡 ‘One Summer Night’ 듣기

 

 

미국영화 러브스토리가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처럼, 70년대 중반에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홍콩판 러브스토리 같은 영화가 한편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적이 있었지요.

 

1976년 한·홍합작영화 사랑의 스잔나가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되어 수많은 한국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큰 감동을 선사해주었고,

영화의 여주인공 진추하는 이 영화 하나로 단번에 아시아의 톱스타로 우뚝 솟아올랐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녀아이돌 스타로 각인되어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답니다.

 

여주인공 진추하는 영화 사랑의 스잔나에서 백혈병에 걸려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연약하고 가녀린 여주인공 추하의 역할을 실감나게 잘 연기하면서, 한국관객들에겐 사랑스러운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가슴 깊게 각인되었답니다.

 

사랑의 스잔나에서 여성스럽고 청순한 모습으로 특히 남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진추하는 당시 상당히 높은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스잔나 신드롬진추하 신드롬현상이 일어났을 정도였답니다.

 

이 슬픈 멜로영화 사랑의 스잔나76년도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되어 무려 17만명의 그 해 최다관객 동원의 금자탑을 세웠을 정도로 크게 히트했던 영화랍니다.

 

 

 

그 당시는 관객 3만명 동원하는 것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17만명 관객 동원은 지금의 수백만 관객 동원과 맘먹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도 크게 히트를 쳤지만, 영화 사랑의 스잔나주제가인 ‘One Summer Night’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더군다나 영화의 주제가 원썸머나잇을 여주인공 진추하가 직접 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썸머나잇별이 빛나는 밤에의 팝송 1위 차트를 몇주간 휩쓸었을 정도로, 한국젊은이들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1976년도에 서울의 길거리의 수많은 레코드점과 음악다방을 진추하의 ‘One Summer Night’이 온통 점령하다시피 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이처럼 진추하가 주연으로 열연한 사랑의 스잔나의 상영으로 인해서, 영화와 주제가가 동시에 함께 히트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답니다.

 

영화 사랑의 스잔나OST원썸머나잇은 굉장히 청량감 있고 감미로운 아름다운 곡이랍니다.

 

특히 진추하의 나긋나긋하면서 청명한 목소리는 정말 압권인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렇게까지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여성스로운 진추하의 보이스와 달콤하고 환상적인 멜로디가 하모니를 이루면서,

마치 천상의 속삭임 같이 신비롭고도 심금을 한없이 울리는 노래가 바로 ‘One Summer Night’이랍니다.

 

사랑의 스잔나OST ‘원썸머니잇은 진추하 혼자서 부른 것은 아니며, 당시 홍콩의 인기아이돌인 아비와 함께 듀엣으로 불렀답니다.

 

 

그렇지만 원썸머나잇은 진추하가 직접 작곡한 노래로서, 진추하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답니다.

 

진추하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진추하는 홍콩의 가수겸 배우인데,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홍콩은 물론 한국과 일본,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시아 톱클라스의 싱어송 라이터랍니다.

 

진추하는 원래 영화배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해요! 그녀는 단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만을 추구하고자 했었다고 합니다.

 

진추하는 피아노를 전공해서 피아노 치는 실력이 수준급 이상인데, 피아노를 치면서 여러 음악들을 스스로 작곡하게 되었고,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 ‘Dark Side of Your Mind’를 갖고 1974년도에 홍콩유행창작 가요제에 출전해서 최우수 가창상최우수 작곡상의 두가지 상을 동시에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답니다.

 

 

남들은 한개의 상도 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진추하는 가요계에 데뷔하자마자, 동시에 최고의 상을 두 개나 타내었던 것이고,

시 홍콩의 언론들은 음악실력이 뛰어난 천재옥녀가 나타났다고 대서특필했을 정도로, 진추하의 출연은 홍콩에서는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답니다.

 

이렇게 홍콩유행창작 가요제에 출전했을 당시의 진추하의 나이는 고작 18살에 불과했답니다.

 

그런데 진추하는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얼굴도 당시 출전여가수 중에 가장 예뻤고, 영화배우 빰칠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미모를 갖고 있어서, 홍콩매스컴에선 그녀에게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1976년 골든하베스트 영화사의 송존수감독은 아주 슬픈 멜로영화를 하나의 제작을 준비중이었는데,

TV의 스페셜방송에 출연한 진추하의 아름다운 비쥬얼을 보고서 홀딱 반해서 진추하를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전격 발탁하게 됩니다.

 

그때 송존수감독이 구상했던 영화가 바로 사랑의 스잔나였고, 진추하는 뛰어난 노래실력과 미모를 인정받아서 영화 사랑의 스잔나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답니다.

 

영화 사랑의 스잔나는 진추하가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라고 하며, 가수의 길을 가고자했던 진추하는 이렇게 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랍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인기가수가 얼굴이 예쁘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가 봅니다.

 

 

영화 사랑의 스잔나에는 원썸머나잇’ ‘졸업의 눈물’ ‘생명지광’ ‘토미톰톰등 진추하가 작곡했던 모든 노래들이 영화의 OST로 들어갔을 정도인데,

진추하의 작곡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영화 사랑의 스잔나는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한국의 동아흥행이 공동으로 합작해서 만든 한홍합작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여주인공은 홍콩의 진추하가 맡고, 남자주인공은 한국배우 이승룡이 맡아서, 출연진이 홍콩과 한국을 번갈아 오고가면서 영화를 찍었답니다.

 

진추하가 처음으로 출연해서 한국에까지 와서 촬영했던 추억의 영화 사랑의 스잔나의 감미로운 주제가 ‘One Summer Night’은 한국과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진추하를 아시아의 아이돌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명곡이랍니다.

 

그리고 진추하의 원썸머나잇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애창되면서, 7080세대의 가슴을 셀레이게 하는 명곡으로 남아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원썸머나잇의 인기는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되는데, 아이돌가수인 이소은과 김형중이 듀엣으로 함께 원썸머나잇을 불러서 신세대층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 후에도 키스피아노와 드렁큰타이거도 함께 듀엣으로 불러을 뿐만 아니라, 실력파가수 박정현도 원섬머나잇을 편곡해서 불렀을 정도로 ‘One Summer Night’은 특히 한국에서 만큼은 생명력이 강한 불멸의 명곡이 되고 있습니다.

 

그 후 진추하는 또다른 한·홍합작영화 추하 내사랑을 한국으로 와서 촬영했으며, 이 영화도 한국인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많이 끌었답니다.

 

진추하는 계속해서 자신이 직접 작곡해서 제9집 앨범까지 발표했으며, 영화에도 계속 출연해서 10편의 영화에 출연한 다음,

1981년도 고작 25살의 나이에 말레이시아의 재벌인 라이온클럽의 종정삼회장과 결혼하면서, 영화계와 가요계에서 완전 은퇴하고 말았답니다.

 

진추하의 남편 종점삼은 화교로서 라이온클럽의 회장인데, 그가 경영하는 라이온클럽은 말레이지아에 320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상사로, 연매출 6조 6천억원을 벌어들이는 엄청나게 큰 재벌회사랍니다. 

 

최근에 진추하도 남편의 회사의 일부를 물려받아서 대표를 맡고 있는데, 중국에 61개의 백화점을 거느린 백성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하네요. 

 

진추하는 세명의 딸을 슬하에 두고 있으며, 큰딸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서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막내딸은 K-POP의 광팬으로서 특히 가수 비의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진추하는 1957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62세입니다.

 

이렇게 진추하는 일찍 가요계를 떠났지만, 그녀가 만들어 불렀던 주옥같은 노래들은 영원히 우리들 곁에 남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감을 안겨다주고 있습니다.

 

 

그럼, 70년대 중반 한국젊은이들에게 크나 큰 감동을 선사해 주었던 영화 사랑의 스잔나의 명주제가인 원썸머나잇을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진추하의 히트곡 원썸머나잇노래 동영상

 

 

 

 

 

 

  

 

 

 

 

 

 

 

 

  

 

 

 

 

 

 

 

 

One summer night / 가사와 해석

   

One summer night

the stars were shining bright

One summer dream

made with fancy whims

That summer night

my whole world tumbled down

I could have died if not for you

 

어느 여름밤 별님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의 꿈 공상의 날개를 활짝 편

그 여름 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모든 세상은 무너져 내리고

난 죽어버렸을지도 몰라요

 

Each time I pray for you

my heart would cry for you

The sun don't shine again since you've gone

Each night I think of you

my heart would beat for you

You are the one for me

 

당신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매일 밤 당신을 생각하고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해 두근거립니다

저에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Set me free

like the sparrows up the tree

Give a sign

so I would ease my mind

Just say a word

and I'll come running wild

Give me a chance to live again.

 

날 자유롭게 해 주세요 나무 위 새들처럼

한가닥의 표시라도 해 주세요 내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한 마디만 해 주세요 그러면 거침없어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Each time I pray for you

my heart would cry for you

The sun don't shine again since you've gone

Each night I think of you

my heart would beat for you

You are the one for me.

 

당신을 위해 기도 할 때마다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매일 밤 당신을 생각하고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해 두근거립니다

저에게는 당신밖에 없는 걸요

 

One summer night

the stars were shining bright

One summer dream

made with fancy whims

That summer night

my whole world tumbled down

I could have died if not for you

 

어느 여름밤 별님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의 꿈 공상의 날개를 활짝 편

그 여름 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모든 세상은 무너져 내리고

난 죽어버렸을지도 몰라요

 

Each time I pray for you

my heart would cry for you

The sun don't shine again since you've gone

Each night I think of you

my heart would beat for you

You are the one for me

 

당신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 않습니다

매일 밤 당신을 생각하고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해 두근거립니다

저에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반헬싱
,

미국 터핀부부 13명의 자녀 쇠사슬로 감금 학대한 엽기사건

사랑방 이야기 2018. 1. 19. 16:16

터핀부부, 부모가 13명 자녀를 쇠사슬로 묶어 감금 학대한 엽기사건

 

최근 미국에서 한 부부의 엽기적인 자녀학대 사건이 발생해서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답니다.

남도 아니고 친부모가 자신의 13명이나 되는 자녀를 매우 잔악한 방법으로 학대한 사건이라서 놀라움을 주고 있는데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평범해보이는 가정집에서 2살부터 29세까지의 13명 자녀들을 집안에 감금해두고, 짐승처럼 쇠사슬로 묶어서 학대를 일삼은 백인 중년 부부가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여, 미국전체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답니다.

 

118일 캘리포니아주의 리버사이드검찰청은 13명의 친자식들을 학대한 혐의로 56세의 데이비드 터핀과 49세의 루이즈 터핀 부부를 기소했다고 합니다.

 

터핀부부는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살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가정의 부부인데요.

터핀부부는 2010년 텍사스주에서 이곳 캘리포니아주로 이사오기 전부터, 13명의 자녀들을 구타하고 감금하는 등의 학대를 저질러왔다고 합니다.

 

터핀부부는 자녀들을 몇개월씩 침대와 가구에 묶어두거나, 쇠사슬로 채워두는 매우 엽기적인 방법으로 자녀들을 학대하기도 했답니다.

 

 

114일 마침내 터핀부부의 17살 되는 딸이 집에서 몰래 탈출해서 경찰에 신고함으로서, 터핀부부의 오랜 학대사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답니다.

 

집에서 몰래 탈출해서 119에 신고한 17세 소녀는 밥을 오랫동안 굶어서 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고, 10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와 몸이 작았고 성장상태가 매우 지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터핀부부의 자녀는 2살의 유아부터 29세의 성인까지 총 13명이었는데, 이들 자녀중 6명은 미성년자이고, 7명은 성년자들이랍니다.

 

터핀부부는 이들 13명의 자녀들에게 종종 밥을 굶기고 구타를 했으며, 심지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밧줄이나 쇠사슬로 묶어서 감금했다고 합니다.

 

 

터핀부부가 텍사스에 살 때에는 부부가 아이들과 다른집에 따로 살면서 아이들에게 음식만을 던져줬고, 자주 아이들을 구타하고 호흡을 막는 방법으로 체벌과 학대를 가했다고 합니다.

 

이들을 조사한 담당검사의 설명에 따르면, 터핀부부는 결코 부모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가혹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자녀들을 학대했다고 합니다.

 

터핀부부는 처음에는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는 방법으로 학대를 해오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녀들을 점점 잔인하고 사악한 방법으로 학대해왔다고 합니다.

 

13명의 자녀들은 터핀부부로부터 너무 심한 학대를 받은 나머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져서,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터핀부부의 자녀에 대한 학대방법은 상당히 처참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하네요.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밥을 굶기기, 욕설을 하고 구타하기, 수개월동안 가구나 침대에 묶어두기, 그리고 쇠사슬에 채워서 꼼짝 못하게 하기 등의 매우 가혹한 방법으로 학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또다른 끔찍한 방법으로 자녀들을 학대했는데, 1년에 한 번 이상 몸을 씻도록 허용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화장실사용도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터핀부부는 학대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자녀들을 밧줄에 묶어두었다가, 아이들이 탈출을 시도하자 그 때부터는 쇠사슬로 아이들을 묶어 감금했습니다.

 

자녀들의 일부가 탈출해서 외부에 폭로하거나 경찰에 알린다면, 자신들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처럼 아이들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서 감금하는 끔직한 짓을 저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최소한 4년 동안 의료진의 진찰을 전혀 받지못했다고 합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터핀부부는 아이들의 화장실 사용도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인데요.

아이들이 화장실 사용도 못하게 해서 화장실바닥에는 오물들이 넘쳐났고, 이 때문에 집안전체에서 엄청난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아니, 자녀들의 화장실 사용을 못하게 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는데, 터핀부부 자신들도 그 지독한 악취에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이런 말도 되지 않은 엽기적인 행동을 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답니다.

 

신고를 받고 터핀부부의 집에 출동한 경찰은 이집에서 11세 아이와 14세 아이, 그리고 22살 자녀가 각각 침대에 묶어있는 것을 직접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런 터핀부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자녀들 중 일부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그 때마다 번번히 부모에게 붙잡혔다고 하며, 그 이후부터 탈출을 시도한 아이들에게는 쇠사슬과 자물쇠로 감금했다고 합니다.

 

 

이들 자녀중에는 가장 나이가 연장자인 29세 처녀도 있었는데, 몸무게가 고작

39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야위었고, 체중이 고작 12세 소녀의 상태와 같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쳐녀조차도 부모에게 저항하지도 못하고, 탈출을 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데요.

 

그만큼 터핀부부가 자녀들을 학대하면서도, 외부와 완전 단절시키고 철처하게 감시통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언론들은 수년간 지속적인 학대가 행해진 로스앤젤레스 동쪽의 리버사이드에 있는 터핀부부의 페리스주택을 고문하우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터핀부부는 자녀들을 굶기고 학대를 하면서도, 자신들은 배불리 먹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터핀부부는 라스베이거스의 유원지나 디즈니랜드로 자녀 모두를 데려가서, 가족사진을 함께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려서, 남들한테는 자녀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처럼 연기까지 벌였다고 하니, 더욱 놀랍기만 합니다.

 

터핀부부가 자녀들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학대한 이유로 아버지 데이비드 터핀의 사업실패를 들기도 하지만, 자식들을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끔찍하게 학대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짓이랍니다.

 

아버지 데이비드 터핀이 7년전에 사업을 하다가 파산했다고 하는데, 그 때부터 자녀들에 대한 학대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자녀들에 대한 학대가 시작되었을 수도 있답니다.

 

이 터핀부부는 경찰조사에서 자녀들을  학대한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부부는 자신들은 잘못한 게 전혀 없고, 왜 남의 집안에 일에 간섭하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로 따졌다고 합니다.

 

이들 터핀부부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비인격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터핀부부의 직업은 사설학교 운영허가를 받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놀랍기만 합니다.

 

검찰로부터 이들 터핀부부애개 적용된 혐의는 고문, 아동 및 부양성년 학대, 아동 방치, 불법구금 등 무려 12가지의 혐의나 되며, 이번에 기소가 되어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될 경우에는, 터핀부부는 94년의 징역형이나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말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랍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신의 친자녀들에게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학대를 가할 수가 있는지, 이들 부부의 정신에 큰 이상이 있는지, 정신병자가 아닌지 의혹스럽습니다.

 

물론 이들 부부는 정신병자가 아닌 맨정신으로 이같은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고 하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식을 키우고 돌볼 만한 능력이나 자질을 갖지못한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자식을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이들 터핀부부는 자식을 키울 의지가 전혀 없는 무책임하고 사악한 사이코패스가 분명해 보입니다.

 

자식들은 자신의 노리개가 아닌 우리사회의 소중한 인격체인데, 자녀들에게 이렇게 참혹한 학대행위를 가한 이들 터핀부부애개 법의 엄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 터핀부부는 이미 인격을 포기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보입니다.

살인범도 자기자식만큼은 끔찍이 사랑하는 법인데, 천륜을 저버리고 끔찍한 패륜범죄를 저지른 이들 사이코패스 부부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궁금할 뿐입니다.

 

 

반응형
Posted by 반헬싱
,

사자와 호랑이의 실제싸움 대결, 사파리의 포철과 호걸 싸움 역사

 

호랑이와 사자가 싸운다면, 과연 누가 이길 것인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큰 관심사가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이 아닐까 한다.

 

서양사람들은 과거 로마의 상징이었던 사자가 호랑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동양사람들은 아시아의 상징물과도 같은 호랑이가 이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들 중에는 멋진 갈기를 휘날리는 숫사자의 멋진 위용에 압도된 나머지, 사자가 이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의 승자를 가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맹수들간에 직접 싸움을 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과거 로마시대에 실제로 사자와 호랑이간의 싸움이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유럽세계를 재패했던 로마의 지도층들은 향락생활에 빠져들면서, 자신들의 볼거리를 즐기기 위해서 콜롯세움이라는 경기장을 만들었고,

그 콜롯세움에다 실제로 사자와 호랑이들을 이송해 놓고, 종종 두 맹수간의 싸움을 시켰고 그 광경을 보고 즐겼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로마의 상징이었던 사자가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는 콜롯세움에서 사자 대 호랑이간에 싸움을 시켰는데, 그 결과는 사자들의 참패였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콜롯세움에서 벌어진 사자와 호랑이간의 싸움에서 예상을 깨고 호랑이가 압도적인 비율로 사자를 이겼다고 한다.

 

9-1 정도의 비율로 호랑이가 사자를 이기자, 충격을 받은 로마인들은 결국 사자와 호랑이간의 싸움을 중지시켜 버렸다고 한다.

 

유럽의 패자인 자신들 로마의 상징으로 삼았던 사자가 호랑이에게 무참히 깨지자, 자존심이 상한 로마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상징인 사자가 깨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고대시기의 로마에서 호랑이가 사자를 이겼다는 기록이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창경원에서도 두 맹수간의 싸움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복원되었지만, 일제시대부터 70년대까지 창경원은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동물원이었다.

 

과거 창경원의 수의사를 거쳐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동물부장으로 있었던 김정만씨의 설명에 의하면, 사자와 호랑이가 싸울 경우에 호랑이가 이길 확률이 90% 정도 된다고 한다.

 

 

김정만부장은 과거 창경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에, 실제로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당시 창경원에는 사자의 우리와 호랑이의 우리가 바로 옆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고 사자 우리와 호랑이 우리 사이에 낮은 담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태풍과 함께 비바림이 몰아쳤고, 사자우리와 호랑이우리를 막고있던 담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그 담의 높이가 낮아지게 됐다.

 

이때에 호랑이우리에 있는 숫호랑이 한 마리가 그 낮은 담장을 뛰어올라서 사자의 우리로 넘어갔다고 한다.

담장을 뛰어넘은 그 숫호랑이는 아직 성체가 안된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좀 어린 호랑이였는데, 성질이 난폭하고 호전성이 강한 호랑이였다고 한다.

 

그 숫호랑이가 사자를 보더니 호전성이 살아났고, 곧바로 숫사자에게 달려들면서 숫호랑이 대 숫사자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그 숫호랑이와 싸운 숫사자는 완전히 다자란 커다란 성체사자로 사자우리의 최고의 우두머리였고, 덩치도 그 숫호랑이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런데 두 맹수간의 싸움에서 나이 어린 호랑이가 사자를 압도해나갔고, 덩치가 더 큰 숫사자는 호랑이에게 계속 얻어맞고 뒤로 밀리기만 했다.

 

 

호전적이고 용맹한 호랑이의 위세에 겁을 먹고 위축되었는지, 그 커다란 숫사자는 결국 호랑이와의 싸움을 하다가 도망쳐버렸다고 한다.

좁은 우리에서 달아나던 숫사자는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자, 그만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자신보다 덩치가 더 작은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숫호랑이와의 싸움에서 위세에 눌리고 겁을 집어먹은 커다란 숫사자가 덩치값도 못하고, 나무위로 피신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김정만 동물부장이 자신의 저서 동물의 세계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며, 실제로 그가 목격한 생생한 목격담이다.

 

김정만 동물부장의 설명에 의하면 사자가 덩치는 크고 힘은 좋지만, 호랑이는 사자보다도 더욱 빠르고 민첩하며, 호랑이가 배짱과 근성도 더욱 강하며,

호랑이가 싸움기술에서도 더 우위에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호랑이가 사자를 이길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김정만부장 이외에도 수많은 동물전문가들도 사자와 호랑이의 대결에서 호랑이가 이길 확률이 더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용인 애버랜드 사파리의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자와 호랑이간의 싸움이 실제로 벌어졌던 곳이 있는데, 바로 용인 에버랜드의 동물사파리라는 곳이다.

이 애버랜드 사파리는 1990년대 초부터 사자와 호랑이를 합사시켜서 운영해왔다.

 

 

 

5,000평의 커다란 사파리 안에 사자들과 호랑이들을 함께 방사해서 두맹수가 함께 서식해왔는데, 당연히 두 맹수간에는 사파리의 제왕자리를 놓고, 수없이 많은 혈투가 벌어져왔다.

 

애버랜드의 사파리에서 가장 볼만한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이 벌어졌던 것은 1995년경으로, 이 시기에 사자파의 왕 포철 대 호랑이파의 우두머리 호걸간의 피말리는 싸움이 벌어졌다.

 

원래 사자는 아프리카의 최고의 포식자로서 백수의 제왕 노릇을 해왔고, 호랑이는 아시아에서 최고의 상위포식자로 동물의 제왕 노릇을 해왔기에, 두 최강의 맹수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서식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서로 최고의 패자가 되기 위해 두맹수 간의 피말리는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새로 만난 맹수들간에는 당연히 서열을 정해야만 하고, 그 서열싸움을 통해서 최고의 통치자가 나타나게 되는 게 동물세계의 당연히 섭리이다.

 

그런데 포철과 호걸 싸움이 있기 전에도 이들의 선조들 간에도 서열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 포철의 아버지인 알렉산더가 사파리에 들어온 후 사자파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호걸의 아버지인 일지매도 당시 사파리에서 호랑이파의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도 알렉산더 대 일지매 간에 사파리 최고의 제왕자리를 놓고 판단 승부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 싸움에서 호랑이의 우두머리 일지매는 매우 신출귀몰한 싸움기술을 발휘해서 사자파의 왕 알렉산더를 크게 압도해갔다.

 

일지매는 다가오는 알렉산더를 붕 위로 뛰어넘고는 알렉산더의 꼬리쪽을 물고늘어지면서 공격했고,

다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알렉산더를 뛰어넘는 등 알렉산더에게 큰 혼란을 주면서 치고빠지는 파이팅을 펼쳐서 알렉산더의 혼을 빼놓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알렉산더에게 달려들어 알렉산더의 목줄을 잽싸게 물어버렸다.

 

거의 10cm에 이를 정도로 긴 호랑이 일지매의 송곳니에 목줄을 강하게 박힌 사자 알렉산더는 송곳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버렸고, 호랑이 일지매의 KO승으로 끝났다.

 

이 싸움이 사파리에서 벌어진 사자 대 호랑이의 최초의 싸움이었다고 한다.

애버랜드 사파리에서 벌어진 사자 대 호랑이간의 최초의 싸움에서 호랑이 일지매가 사자 알렉산더에게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사자 알렉산더는 사파리에서 병실로 후송되어버렸고, 몇 년 뒤에 알렉산더의 아들 포철과 또다른 호랑이파의 우두머리 호걸이 사파리의 제왕자리를 놓고, 또다시 한판 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1세대 사자와 호랑이들이 내실로 퇴진 한 후에, 1990년대 중반 2세대 사자와 호랑이들이 사파리로 새롭게 투입되었는데, 사자파에서는 포철이 가장 강했고 싸움도 제일 잘했다.

 

포철은 간이방사장에서 벌어진 숫사자 네 마리간의 토너먼트 싸움에서, 발군의 싸움실력을 발휘해서, 모든 숫사자를 제압하고는 최종 승리를 거머줘었다.

 

포철은 토너먼트싸움에서 올라온 결승전에서 최고의 라이벌인 천하를 두들겨팬 후에 결국 최종적으로 승리를 해서, 사자파의 우두머리로 우뚝 솟아올랐다.

 

많은 사육사들이 포철이야말로 역대 사자가운데에서 가장 싸움실력이 뛰어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호랑이파에서도 결코 무시 못할 막강한 호랑이 한 마리가 존재했는데, 바로 호걸이다. 호걸은 용맹할 뿐만 아니라, 힘도 쎄고 싸움기술이 매우 뛰어난 길거리 싸움꾼이다.

 

호걸은 사파리에 입성하자마자, 다른 호랑이들인 호식이 호구 등을 모조리 쓰러드리고, 당당히 호랑이파의 우두머리로 올라섰던 뛰어난 싸움꾼이었다.

이렇게 호랑이파의 우두머리로 우뚝 솟아오른 호걸은 사파리 전체의 제왕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호걸이 사파리전체의 제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 바로 사자파의 우두머리 포철이었다.

 

사자왕 포철 대 호랑이와 호걸의 싸움 역사

 

그런 호랑이파의 우두머리 호걸이 1995년 초겨울 사자파의 왕 포철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호걸과 포철 간에 피말리는 싸움대결이 펼쳐졌다.

 

 

1995년 초겨울 호랑이파를 평정해서 일인자가 된 호걸은 사자파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당돌하게도 바위 위에 누워있던 사자파의 우두머리 포철에게 시비를 걸었다.

 

당시 한가롭게 바위 위에 누워있던 포철에게 다가온 호걸은 당돌하게도 앞발로 포철을 쳐서 싸움을 걸었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느닷없이 한 대 얻어맞은 포철이 일어나서 응전하면서 호랑이와 사자간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포철과 호걸은 싸움이 시작된 후, 초반에는 서로간에 앞발 주먹으로 치고받으면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렇게 초반전에 사자 포철과 호랑이 호걸이 서로 앞발로 때리면서 공방을 주고받았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감에 따라 사자 포철이 호걸에게 더 많이 얻어맞으면서 수세에 몰리게 됐다.

 

사자와 호랑이간의 싸움에서는 싸움기술과 스피드에서 차이가 났다. 사자는 싸울 때에 세발로 선 상태에서 오른쪽 앞발 하나로 상대를 공격히는데 반해, 호랑이는 두발로 선 상태에서 두 앞발을 동시에 사용해서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한다.

 

 

 

그리고 사자는 단타공격을 주고 하는데 반해, 호랑이는 두 앞발로 연타공격을 잘한다. 그러니 사자와 호랑이가 싸울 때에는 사자가 한 대 때리면 호랑이는 네 대를 때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자와 호랑이가 싸움을 벌이면, 사자가 호랑이에게 더 많이 얻어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포철과 호걸이 그랬다. 사자 포철이 세발로 선 상태에서 오른쪽 앞발 하나로 공격할 때에, 호랑이 호걸은 두발로 선 상태에서 두 앞발로 연속적으로 포철의 안면을 가격했다.

 

포철이 한 대를 때릴 때에 호걸은 두 앞발로 네 대 이상 연속적으로 가격을 했고, 호걸의 연속적인 펀치를 계속 얻어맞은 포철은 고통을 느끼게 됐고, 결국 포철은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이때에 포철이 땅바닥에 드러누운 것은 항복의 표시가 아니라, 호걸의 펀치세례를 맞지않기 위해서 수비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사자 포철이 갑자기 누워버리자, 호걸은 처음에는 어떻게 공격할지 좀 난감해했다.

그렇게 누운 상태에서 포철은 앞발로 세차게 호걸의 안면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포철의 강타를 얻어맞은 호걸은 화가 단단히 났고, 곧바로 호걸의 포철의 그 앞발을 강하게 물어 제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호걸에게 자신의 앞발을 세차게 물린 포철은 엄청난 통증을 느꼈고 물린 앞발을 빼내고는 잽싸게 다시 일어났다.

 

포철이 다시 일어난 후 포철과 호랑이 호걸이 서로 마주보는 상태가 됐다.

이렇게 사자 포철과 호랑이 호걸은 한동안 마주 서서 서로를 노려보았고, 잠시 후 두맹수는 일제히 공중으로 도약했다.

 

서로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포철과 호걸은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다시 땅위로 내려왔을 때에는 포철은 호걸에게 물린 상태가 됐다.

 

포철과 호걸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을 때에, 호걸이 먼저 재빨리 포철의 목덜미를 물었고, 곧바로 땅위에 내려앉았다.

 

 

호걸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서 재빠르게 포철의 목덜미를 물어버렸고, 목덜미를 강하게 물린 포철은 호걸의 잇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포철이 호걸에게 자신의 목덜미를 물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호걸은 결코 포철을 문 잇빨을 풀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문 잇빨을 흔들어서 포철의 목에 박힌 송곳니는 더욱 깊숙이 박히게 됐다.

 

호랑이의 송곳니에 정확하게 목덜미를 물리면, 왠만해서는 그 잇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호랑이의 송곳니는 10cm로 매우 길며 송곳니의 하단부분이 구부러져 있어서, 한번 박힌 송곳니에서 좀처럼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다.

 

호랑이와 사자 같은 맹수들의 싸움패턴은 이렇다. 호랑이와 사자는 처음부터 상대방의 목덜미를 물지는 않고 처음에는 상대방의 안면을 앞발로 계속 때려서 상대방의 힘을 빼놓는 전법을 쓰며,

이렇게 상대방이 힘이 빠지고 그로키상태가 되면, 그 때서 피니쉬공격으로 상대방의 목덜미를 물고 그것으로 싸움은 끝나게 된다.

 

 

사자 포철이 지친 상태에서 호걸로부터 목덜미를 물렸으니, 이제 싸움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호걸의 송곳니에 목덜미를 물린 포철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여러번 울부짖었지만, 호걸은 끝까지 포철을 문 잇빨을 놓지않았다.

 

 

이런 상태가 계속 진행된다면, 사자 포철은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호걸은 문 잇빨을 결코 놓지 않았고, 이런 상태가 거의 10분 가까이 지나자, 포철의 몸은 쭉 늘어져버렸고,

사육사들은 포철이 죽는 것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육사들은 포철을 구출해주기로 두맹수간 싸움에 개입했다.

 

숫사자 한 마리에 가격이 천 만원이 넘는 가격인데, 포철이 죽는다면 동물원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사육사들은 잽싸게 물호스를 가져와서 호랑이를 항해 물대포를 쏘아댔다. 이렇게 소방호스로 세찬 물대포를 쏘아댔는데도 호걸은 문 잇빨을 놓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육사들이 탄 스트롤카를 몰아서 호랑이의 엉덩이부분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스트롤카로 세차게 들이받자 그 때서야 호걸은 포철을 물었던 이빨을 놓았고, 포철은 그대로 뻗어버렸다.

사육사들은 호걸을 물대포를 다시 쏘아 떼어놓고, 포철을 후송 조치했는데, 포철은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만약 야생의 상태였더라면, 사육사들이 개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포철은 호걸에게 물려서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이처럼 호걸이 사자의 우두머리 포철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싸움기술과 스피드에 있어서 호랑이가 사자보다 한수 위이기 때문이다.

 

사자와 호랑이 싸움에서는 호랑이가 훨씬 더 빠르고 싸움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일대일의 싸움에서는 대부분 호랑이가 사자를 이긴다는 것이다.

   

용인 애버랜드 사파리에서의 역대 호랑이와 사자간의 싸움을 살펴보면, 일대일 싸움에서는 대부분 호랑이가 이겼다.

단 사자는 일대일 싸움이 아닌 단체싸움에서만 이겼을 뿐이다.

 

포철이 초기에 동생 인철과 함께 집단으로 호랑이들을 공격해서 호랑이를 제압한 바가 있는데,

이 때는 일대일 싸움이 아닌 동생들과 단체로 호랑이 한 마리씩을 공격해서 제압했던 것이며, 그래서 포철이 집권초기에는 호랑이들을 물리치고 사파리의 제왕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랬는데, 사파리의 제왕자리를 공공연히 노리고있는 호걸이 포철에게 다가가 일대일 싸움을 걸었고, 싸움에 말려들은 포철이 호걸과의 일대일 싸움을 벌인 결과, 포철이 처절하게 패배하였고, 사파리 제왕의 타이틀을 호걸에게 넘어갔다.

 

사파리에서 두맹수 간 싸움에서 단체싸움에서는 사자가 이겼지만, 일대일 싸움에서는 대부분 호랑이가 이겼다.

알렉산더와 일지매의 싸움에서 호랑이 일지매가 승리했고, 포철과 호걸과의 싸움에서 호랑이 호걸이 이겼다.

 

 

또한 2000년 중반에 들어서서 아이디와 테크노 형제가 사파리의 새로운 제왕으로 올라섰을 때에도 아이디와 테크노 형제가 집단으로 호랑이를 한 마리씩 공격해서 호랑이를 제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디와 테크노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사자파의 우두머리역할을 했지만, 이들은 일대일 싸움에서는 호랑이에게 패배했다.

 

아이디는 호비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확실하게 패했고, 또한 아이디와 테크노는 각각 호랑이 16강과도 일대일 싸움을 벌였는데, 둘 다 16강에게 무참히도 깨져버렸다.

 

2012년도에 사자파의 왕으로 우뚝 올라섰던 싸움짱 레오도 집단싸움에서는 백호들을 제압해 나갔지만, 백호파의 보스 칸과의 일대일 싸움에서는 예상외로 얼굴을 한번 크게 물리고는 코피를 흘리면서 달아나버렸다.

 

2012년도의 레오는 역대 사자왕 중에서도 가장 터프하고 강했던 강자였는데, 그렇게도 강했던 레오가 자신보다 덩치가 더 작은 백호 칸에게 단 한번 머리를 물리고는 충격을 받고서 싸움을 기권해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자와 호랑이간의 실전싸움에서 단체싸움에서는 사자파가 우세한 것이 사실이지만, 일대일 싸움에서는 대부분 호랑이가 이긴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대 애버랜드 사파리기자가 사파리를 드나들면서 기록한 기록물을 근거로 하여 작성한 것이다.

  

 

이제 기록보다는 실제 싸움을 직접 감상해보도록 하겠다. 아래 동영상은 1950년대 허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의 한 장면인데,

이 영화속에서는 서커스단에서 키우던 사자와 호랑이가 우리속에서 실제로 싸웠던 싸움장면을 그대로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310초간 벌어진 싸움에서, 호랑이가 사자를 계속 압박하면서 최종적으로 호랑이가 사자의 목줄을 물어서 호랑이가 승리한 싸움이 되었다.

 

사육사들이 물대포를 쏘아서 말렸기에 망정이지, 사육사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사자는 여지없이 죽었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용인 애버랜드 사파리의 포철과 호걸의 싸움과 매우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으니, 이 동영상을 보면서 포철과 호걸의 싸움을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사자와 호랑이의 실제 싸움 동영상

 

 

 

 

 

 

반응형
Posted by 반헬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