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모란봉악단단장 현송월의 미모와 남편, 김정은 옛애인

사랑방 이야기 2018. 1. 15. 23:53

모란봉악단의 단장 현송월의 나이와 남편, 김정은과의 관계

 

남한과 북한이 115일 판문점에 있는 북한측 통일각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자회담을 열었답니다.

  

남한측에서는 이우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한 실무자들이 회담장에 나왔고,

북한에서는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을 단장으로 한 5명의 실무자들이 참석해서, 실무접촉을 가졌답니다.

 

그런데 눈길을 끈 것은 북한측 참가자 중 미모의 여성 현송월이 회담에 참가하고 있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답니다.

 

현송월은 북한참가단 중에서 유일한 여성으로 남북회담에 참가했으며, 군복 대신에 네이비색상의 세련된 정장을 입고 있으며, 짙은 아이라인 화장까지 곁들여서 북한 대표단의 서열 2위로서 이번 회담에 참석했답니다.

 

현송월은 이번 회담에 시가 2,500만원하는 초록색상의 에르메스 명품백을 들고나와서 시선을 집중시켰답니다. 과거에는 중국에 또다른 명품백인 샤넬백을 갖고 가기도 했답니다.

 

 

 

남북회담에 여성이 참가한 것은 매우 이레적인 일로서,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하는데요.

 

무엇보다도 현송월은 김정은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의 진짜 의도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답니다.

 

김정은의 옛얘인? 현송월은 과거의 인기가수이자, 모란봉악단의 단장

 

현송월이 누굽니까? 한때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옛애인으로도 알려졌던 북한의 인기여가수였던 인물이죠.

 

 

현송월은 보천보 전자악단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북한의 인기가수였답니다. 그런데 한동안 현송월에 대한 숙청설과 처형설이 나돌기도 했었고,

렇게 숙청설과 함께 현송월은 몇 년간 사라져버렸고,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졌던 현송월이 2015년 갑자기 모란봉악단의 단장으로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답니다.

거의 3년만에 북한의 걸그룹 악단이라고도 불리우는 모란봉악단의 단장으로 다시 나타난 현송월은 동시에 대좌의 게급까지 달고 나타난 것이지요.

 

또한 현송월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그 지위가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중앙위원회 후보는 노동당의 핵심 고위급요원들로서, 파워가 엄청나게 쎈 직책으로, 사실상 노동당을 이끌어나가는 핵심지도층이랍니다.

 

현송월이 숙청되었다는 루머를 뒤집어버리고, 몇 년 만에 파격적인 신분상승을 이루고, 모란봉악단의 단장이라는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난 것이랍니다.

 

그리고 현송월은 모란봉악단 단장이라는 직함 외에도 인민군 대좌라는 계급도 함께 갖고 있는데, 북한의 대좌계급은 일종의 대령계급이지만,

북한에서는 1개 사단의 책임자급이라서 우리남한의 사단장 정도 되는 계급이라고 합니다.

 

 

현송월은 한때 북한 김정은의 옛사랑이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답니다. 김정은이 2000년대 초반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후부터,

한참 인기가수로 활동했던 현송월에 필이 꽂혀서, 현송월과 한동안 사귀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현송월과의 관계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고 하며,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은은 현송월과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지금의 부인 이설주와 결혼했다고 알려졌답니다.

 

그런데 이설주와 결혼한 김정은이 옛연인 현송월을 잊지못하고, 결혼 후에도 종종 현송월과의 만남을 이어왔다고 하는데요.

 

물론 이 김정은과 현송월의 연인설은 어디까지나 찌라시에서 나온 내용이라서, 100% 사실이라고 믿을 수만은 없는데요.

 

그런데 북한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김정은과 현송월이 연인관계라는 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나하면 현재 현송월은 결혼해서 남편과 딸까지 있는 유부녀이고, 또한 그녀의 나이가 실제로는 1979년생 40세의 나이로, 김정은보다도 4살이나 더 많으며, 현송월의 외모도 김정은이 좋아할 스타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현송월이 모란봉악단의 단장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만일 김정은과 현송월이 연인관계라고 하면,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절대로 그녀를 그 자리에 있게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든 이설주가 압력을 행사해서, 현송월을 모든 공식직위에서 끌어내렸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현송월은 김정은 부인 이설주의 엄청난 보복을 받아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리고 현송월이 김정은의 진짜 연인이라면, 김정은이 현송월을 숨겨놓고 몰래 만나는 것이 정상이지, 이렇게 공식적인 직함을 주고 대외활동을 하게끔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북한전문가들의 이런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결혼까지 한 김정은이 자신의 애인이자 정부에게 공식직함을 주어서 대외활동을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몰래 숨겨놓고서 남몰래 만나는 것이 더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현송월이 김정은과 연인관계라든가, 옛애인이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루머가 사실은 찌라시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또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쩌면 현송월이 김정은의 옛애인인 것은 사실인데, 아버지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은이 이설주와 결혼한 후에, 두사람간의 연인관계를 끊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이후 김정은은 과거의 옛애인에 대한 두터운 신뢰의 표시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라는 높은 직함도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모란봉악단의 단장을 맡겼다고 보여진답니다.

 

그리고 현송월의 남편에 대한 예기인데요. 현송월의 남편은 군의 고위군관이라고 합니다.

 

이 현송월의 남편은 과거에 김정은과 아주 친밀한 관계였다고 하는데요.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하기 훨씬 전에, 김정일은 김정은을 인민군 군대에 계급이 제일 낮은 하전사로 입대시킨 적이 있답니다.

 

 

 

김정일은 외국의 유학생활을 많이 해서 국내사정을 전혀 모르는 김정은이 인민군의 실태에 대해서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를 신분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은 체 인민군 군대로 입대시킨 것이랍니다.

 

그렇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체, 인민군 군대에서 하전사로 힘들게 생활했던 김정은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잘 돌봐주었던 군장교가 바로 현송월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되고, 정권을 잡은 후에 김정은은 과거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군장교를 잊지않고, 그를 고속승진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은 과거 군입대 시절에 핍박을 받았던 자신을 여러모로 돌봐주었던 그 직속상관의 은혜를 잊지 않고,

군고위직 간부로 승진시켜주었다고 하며, 또한 그 장교에게 인기가수 현송월과의 결혼도 주선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에, 자신에게 도움을 준 군장교와 현송월의 결혼을 주선해주었는데,

자신이 결혼까지 주선해준 현송월과 연인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예기라고 할 수 있답니다.

 

 

어쨌건 김정은이 현송월과의 연인관계는 차치하고 라도, 김정은이 현송월에 대해 큰 신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한갓 가수에 불과했던 현송월을 김정은은 작년 10월달에 230명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임명한 것과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악단인 모란봉악단의 단장의 지위까지 부여한 것을 보면,

연인관계를 떠나서 김정은이 현송월에 대해 절대적인 신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여자걸그룹 형태의 악단이랍니다. 모란봉악단은 남한의 인기걸그룹을 모방해서 만들었는데,

기존의 악단과는 달리 세련된 이미지와 발랄한 댄스까지 보여주는 현재 북한에서 가장 인기좋은 악단이랍니다.

 

이렇게 김정은의 절대적인 신임과 총애를 받고있는 현송월이 이번 남북 평창올림픽 실무회담에 전격 참석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현송월은 북한의 관현악단 단장의 자격으로 회담장에 나왔다고 하며, 북한측 대표단의 부대표의 지위로 참석했다고 합니다.

 

즉 현송월은 모란봉악단의 단장이 아닌, 관현악단 단장의 자격으로 이번 회담에 참석한 것이랍니다.

 

현송월이 모란봉악단의 단장의 지위를 바꾼 것은 모란봉악단은 온통 김정은을 찬양하는 일색의 노래들만 부르는 악단이라서, 이런 유형의 악단이 남한에서 공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현송월에게 모란봉악단이 아닌 관현악단의 단장의 직함을 붙여서 이번 회담에 참석한 것이랍니다.

 

현송월은 김정은의 정치적 멘토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북한측 참석자 중에서 사실상 현송월이 제1인자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현송월이 작년에 30대 후반의 나이에 노동당의 최고권력기구인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김정은의 절대적인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랍니다.

 

현송월이 30대 후반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올랐다는 것은 그녀가 김정은의 최측근이라는 것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지요.

 

 

비록 북한의 단장은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이지만, 이번 실무회담을 뒤에서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현송월이라고 합니다.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있는 현송월이 사실상 이번회담의 키를 쥐고있다고 보여집니다.

   

앞으로 북한은 세명의 실세 여성들이 김정은의 최측근으로서, 김정은과 함께 북한을 이끌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설주, 김여정, 현송월 이 세명의 여성들이 김정은정권의 가장 큰 실세로서, 북한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남북 실무자회담에 참석한 현송월의 미모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현송월은 이목구비가 크고 시원시원한 게, 여성적이면서도 선굵은 미모를 갖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설주가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한 미모를 갖고 있는데 반해, 현송월은 후덕한 인상에 육감적이고 요염한 매력을 풍기는 전형적인 동양미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북한전문가들은 현송월의 미모는 김정일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송월은 김정은의 연인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멘토 내지는 정치적 조언자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김정은과 현송월의 관계는 연인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결연관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현송월은 김정은 권력의 지지기반의 한 축이라고 보여진답니다.

   

참 그리고 15일 통일각에서 열인 남북 평창올림픽 실무자회담에서, 남북은 5개항을 합의해서 공동보도문 발표했답니다.

 

공동보도문에서 북한측은 모란봉악단이 아닌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의 140여명으로 구성된 올림픽예술단을 파견한다고 하며, 북측 예술단은 평창올림픽 기간 중에 강릉과 서울에서 각각 1회씩 공연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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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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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최고의 주먹 김두한의 싸움실력, 신마적과 대결

사랑방 이야기 2018. 1. 15. 15:36

야인시대의 최고의 주먹, 김두한의 싸움기술, 신마적과의 실제싸움

 

조선 최고의 주먹은 누구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 사이에 가장 재미있는 주제가 싸움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역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주먹은 누구일까 하고 판단해본다면, 여러명의 기라성같은 싸움꾼들이 떠오르곤 한다.

 

조선시대에 장길산과 임꺽정 등이 자기지신의 나와바리를 구성하고, 당대의 제일 강한 장사로 그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조선 최고의 주먹을 논할 때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한사람 있다. 바로 일본 강점기 때에, 경성의 한복판인 우미관골목을 지배했던 경성의 오야붕 김두한이 그 주인공이다.

 

조선 후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달래가면서, 주먹 하나로 포악한 일본야쿠자들과 내노라하는 강자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경성 최고의 오야붕으로 우뚝 솟아오른 인물이 바로 김두한이다.

 

김두한은 해방 전 일본강점기 시대에 남한지역에서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조선 최강의 주먹으로 떠오르면서 경(서울)의 주먹세계를 평정한 후,

나중에는 한반도 전지역으로 자신의 주먹세계를 열어나갔던 불세출의 주먹이자 싸움꾼이었다.

 

 

김두한이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하기 전에, 먼저 경성(서울)의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하게된 계기는 1930년대 당시 최강의 주먹이라고 불리우던 두사람 즉, 구마적과 신마적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두한을 조선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서게 했던 그 발판이 된 두 인물, 구마적과 신마적과 김두한간에 벌어졌던 일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두한, 구마적 고희경에게 도전장을 던지다

 

원래 김두한은 만주에서 독립활동을 벌이던 북로군정서의 독립군사령관이었던 김좌진장군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일본경찰로부터 독립군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어머니가 병사하는 바람에, 김두한은 외갓집에 맡겨져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외갓집에서 가출했던 김두한은 수표교 다리밑에서 거지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좀 들면서 청소년 시절에는 우미관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는 원노인으로부터 도움과 지원을 받아서. 우미관부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우미관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면서 남몰래 독립군 지원활동을 하고 있었던 원노인은 김두한이 김좌진장군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에, 김두한에게 종종 곰탕국을 끓여주면서, 청소년기의 김두한을 여러모로 보살펴주곤 했다.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었던 김두한이었지만, 그는 원노인이 종종 끓여주는 영양만점의 곰탕과 설렁탕을 먹으면서 거대한 기골과 강인한 체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김두한은 원노인의 주선으로 종로에 있는 당수도장에 입관해서 2년 간 무술을 연마해나갔는데, 훗날 김두한의 뛰어난 발차기실력과 싸움실력은 바로 이 당수도장에서 수련하면서 키웠던 무예연마의 결과라고 본다.

 

당수는 일본의 무술인데, 지금의 가라데의 전신이라고 보면 되며, 일제시대 때에는 보통 가라데를 당수라고 많이 불렀다.

 

그런데 이렇게 김두한을 물신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원노인이 사망하면서, 김두한은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과거 어린 시절에 거지생활을 하던 자신을 친자식처럼 돌봐줬던 원노인 때문에 김두한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미관골목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원노인이 사망 한 후에도 김두한은 계속 우미관 뒷골목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원래 술집이 많고 번성한 유흥가에는 깡패들이 극성을 부리기 마련이다. 돈이 많이 몰리는 유흥가에서는 주먹들이나 깡패들이 많이 몰려들기 마련이고, 유흥가와 돈, 주먹들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들로서, 서로 유기적인 밀착관계를 맺기 마련이다.

 

술집은 그지역의 최고 주먹에게 돈이란 세금을 상납하게 되고, 그 댓가로 주먹들은 그 술집에서 난동부리는 술꾼이나 건달로부터 그 술집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1930년대 당시 우미관 뒷골목은 서울에서 고급술집들이 가장 많은 서울 최대의 번화가였기 때문에, 내노라하는 주먹들이 여러명 몰려있었다.

 

조선극장과 우미관바, 종로회관, 그리고 각종 요리집, 술집과 까페등 고급스럽고 화려한 유흥주점들이 즐비해 있는 우미관골목은 이 당시에는 조선 최고의 상권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달콤한 꿀이 많이 있는 꽃밭에는 꿀벌들이 많이 꼬이는 것처럼, 서울 경제의 일번지라고 할 수 있는 우미관골목에 당대의 기라성 같은 주먹들이 여러명 포진해 있었다.

 

 

우미관 뒷골목에는 힘좋고 싸움 잘하는 오야붕 여러명이 군웅할거 하고 있었는데, 그시대의 오야붕들로 구마적, 신마적, 뭉치, 제비 등이 우미관 뒷골목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외에도 김기환이라는 걸출한 주먹도 있었는데, 그는 몇 년 뒤에 일본형사를 때린 죄목으로 인해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난 후, 오랜 감옥생활을 하게되면서, 우미관을 떠나있게 된다.

 

이들 오야붕들은 우미관에서 각기 각자의 주먹조직과 나와바리를 형성하면서, 오야붕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종로 우미관 뒷골목의 오야붕 중에서 가장 강했던 최고의 오야붕이 두사람 있었는데, 바로 구마적과 신마적이 그 주인공들이다.

 

김두한은 원래 우미관의 한 모퉁이를 관할하고 있는 김기환의 주먹조직 밑으로 들어가서 그 조직원으로 있었는데, 야심이 강한 그는 김기화조직으로부터 서서히 독립해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김두한은 원래 야심이 무척 강한 사람으로, 자신이 장차 우미관 최고의 주먹이 되고자 했던 야심만만한 인물이다.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항상 최고가 되고자 했던 김두한은 결코 남의 밑에서 안주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가 김두한은 1930년대에 176cm로 키도 큰 편이고, 집안 내력 자체가 통뼈에다가 기골이 장대했고, 힘도 상당히 강했다고 한다.

또한 김두한은 수년간 당수(가라데)를 배우고 연마했기 때문에, 주먹도 강했고 특히 발차기실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런 김두한은 우미관 뒷골목시절의 김기관조직에 가담해 있을 때부터, 뛰어난 싸움실력을 선보인 바가 있었다.

 

 

 

김두한은 나이 16세 때에 벌써 우미관 뒷골목에서 두명의 건달들을 때려눕혔고, 또한 관철동 야시장에서 김기환주먹조직의 중간보스급 건달과 일대일 맞대결을 펼쳐서 군말없이 그를 때려눕힌 적이 있다.

 

나이 고작 16살 밖에 안된 그가 이렇게 뛰어난 싸움실력을 발휘한 것을 알게된 오야붕 김기환은 그 때부터 김두한을 눈여겨 보게 되었고, 나중에는 김두한을 자신의 후계자감으로 생각했을 정도다.

 

김두한은 김기환 밑에 있을 때에도 그 조직하에서 자신만의 별동부대를 따로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었고, 김기환조직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했다.

 

우미관에서 김두한이 싸움실력이 좋다는 소문과 함께 김두한이 동생들을 관대하게 잘 대해준다는 소문이 함께 나면서, 김두한 밑으로 동생급 건달들이 몰려들게 되었고, 1934년경 김두한이 17세 되던 해에 벌써 그는 부하 30명을 거느린 소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김두한은 이 시기에 벌써 자신이 장차 종로와 우미관의 최고의 오야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김두한이 종로와 우미관의 최고오야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꺾어야될 두명의 강자가 있었다.

 

역대 우미관 뒷골목에는 가장 강한 주먹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구마적과 신마적이 버티고 있었고, 김두한은 이들 두명의 강자들을 꺾지 않는다면 결코 우미관의 최고주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김두한이 먼저 꺾어야 할 상대는 당시 우미관바와 조선극장에서 기도주임을 하고 있는 큰오야붕 구마적 고희경이었다.

 

 

조선극장에서 기도주임을 하면서, 우미관의 오야붕으로서 큰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구마적은 힘이 상당히 쎈 천하장사였다.

그는 팔씨름을 해서 우미관 뒷골목의 힘쎈 건달들을 모두 제압했을 정도로 힘이 쎄기로 유명했다.

 

구마적이 얼마나 힘이 쎄냐하면, 그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구마적이 한 때 종로 3가에 있는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했었는데, 그 당시 구마적은 동료와 함께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한 적이 있었다.

 

그 자동차는 바퀴가 고장이 나사 자동차를 떠올린 상태에서 수리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구마적이 두손으로 그 거대한 자동차의 앞부분을 번쩍 들어올렸고, 다른 동료는 구머적이 차를 들어올린 동안에, 그 자동차의 앞바퀴를 갈아줬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구마적의 엄청난 괴력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날에 일어났는데, 그 다음날 또다른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할 때에, 구마적은 이번에는 아예 한손으로 자동차의 앞부분을 들어올렸고, 다른 한손으로는 담배를 잡고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왼손으로 담배를 잡고 피우면서, 다른 오른손으로 자동차 앞부분을 들어올리고 있었다고 하며, 이를 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소문이 퍼졌고,

많은 건달들이 구마적의 괴력에 엄청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를 만나면 굽신굽신거리면서 형님으로 대우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구마적이 엄청난 괴력을 바탕으로 우미관 뒷골목에서 여러 건달들을 힘과 싸움으로 제압하고는 우미관 최고의 오야붕으로 등극했고, 그는 최고의 오야붕에 걸맞게 조선극장의 기도주임으로 취임해 있었다.

 

당시에는 최고의 주먹이 그지역의 가장 큰 극장의 지배인이나 기도주임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니까 종로 아니 서울에서 가장 큰 극장인 조선극장의 사실상 지배인이었던 구마적은 종로 최고의 주먹으로 대우받게 된 것이다.

 

 

김두한이 종로와 우미관의 최고의 오야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마적이라는 산을 넘어야만 했다.

 

당시 1934년도로 우미관의 소조직을 거느리고 있던 김두한은 나이가 고작 17세인데 반해, 구마적 고희경은 30살로 김두한보다 11살 가량 더 많은 큰 형님뻘 되는 오야붕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두한은 구마적에게 기어코 도전하고야 만 것이다. 그당시 종로에서 이름을 쩌렁쩌렁 울렸던 구마적은 조선극장에 몰래 들어와 공짜구경을 하던 청소년들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곤 했다.

 

일제치하에 가난했던 시절이라, 집없는 부랑자나 고아가 많았던 시절에, 집없는 아이들이 때로는 조선극장에 들어가 몰래 잠을 자기도 했는데,

이렇게 몰래 들어갔던 걸린 사람들은 서슬퍼런 구마적에게 걸려서 엄청나게 얻어맞고 쫒겨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김두한의 부하들 몇 명이 바로 구마적에게 걸려 두들겨맞았던 것이다. 그런 소식은 곧바로 김두한의 귀에 들어갔고, 김두한은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7살이나 많은 대선배를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대선배를 주먹으로 쓰러뜨릴 때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주먹세계에서 다른 건달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다른 건달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아야만, 자신의 주먹조직을 더욱 크게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마적이 자신의 동생 여러명을 흠씬 두들겨 패버린 것이며, 김두한에게는 구마적에게 도전할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김두한은 곧바로 조선극장의 기도주임실로 구마적을 찾아갔고, 구마적에게 잠깐 이야기하자고 말을 건냈다.

그러자 구마적은 나이도 어린 놈이 감히 자신에게 뭘 볼게 있다고 아는 체하냐면서 욕을 해댔다고 한다.

 

그러자 김두한은 제가 형님의 아지트인 조선극장에서 형님을 패면, 형님의 체면이 떨어질 것이니, 조용한 바깥으로 나가서 일을 치릅시다고 말하면서, 노골적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천하의 구마적에게 김두한이 먼저 도전장을 던진 것이고, 이로써 두사람은 우미관 뒷골목의 조선극장의 뒷마당으로 나갔고, 김두한 대 구마적간의 맞대결이 벌어졌다.

 

조선극장 뒷마당으로 나가자 마자, 김두한이 먼저 신속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김두한의 발차기기술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고 한다.

 

 

특히 공중으로 붕 날라서 차버리는 김두한의 발차기는 엄청 위력적이고 강했다고 한다. 김두한의 이런 발차기기술은 그가 당수도장에서 수 년간 피땀흘리면서 수련해서 얻었던 고급싸움기술이다.

 

 

조선극장 뒷마당에 나가자 마자, 김두한이 재빠르게 몸을 날려서 두발로 구마적은 안면을 강타했고, 난데없는 김두한의 이단발차기를 얻어맞은 구마적은 !’ 하면서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쓰러진 구마적이 몸을 일으켜서 일어나자, 그가 일어나는 순간 김두한의 두 번째공격인 오른발 발차기 공격이 구마적의 턱에 그대로 적중되었고, 또다시 충격을 받았던 구마적은 그대로 KO되고 말았다.

 

김두한은 우미관골목에서 최고의 오야붕 행세를 하던 구마적을 단 두 번의 발차기 공격으로 침몰시켜 버린 것이다.

 

 

  종로의 주먹세계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미관 뒷골목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오야붕으로 군림했던 천하장사 구마적이 고작 17살의 나이 어린 김두한에게 주먹 한번 내뻗지 못하고, 단 두방이 발차기공격으로 완벽하게 KO패당하고 만 것이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우미관은 물론 종로와 서울 일대로 퍼져나갔고, 주먹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되었다.

 

약관의 김두한이 싸움으로 잔뼈가 굵은 오야붕 구마적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은 당연히 우미관의 또다른 오야붕 신마적의 귀에도 들어갔다.

 

신마적은 이소식을 듣고서 나이도 한참 어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감히 대선배를 쓰러뜨리다니, 정말로 당돌한 녀석이다!, 언젠가는 내가 손을 보아야겠다라고 동생들 앞에서 큰소리쳤다고 한다.

 

구마적과 신마적은 서로 다른 주먹조직을 갖고 있었지만, 서로 대립하기 보다는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오히려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신마적은 자신보다 2살이 많은 구마적을 예의상 형님으로 불러주었고, 구마적도 신마적의 실력을 인정하고는 그를 섭섭지않게 대우해주고 있었다.

 

구마적이라는 큰 산을 넘은 김두한은 자신이 우미관골목의 최고의 오야붕이 되기 위해서는, 신마적이라는 또다른 큰 산도 넘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김두한과 신마적 엄동욱의 대결

 

김두한과 신마적의 대결에 앞서 신마적이 어떤 인물인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마적은 다른 주먹들과는 달리 상당히 먹물을 많이 먹는 인텔리출신의 주먹이었다.

 

 

신마적의 본명은 엄동욱으로 원래 보성전문(지금의 고려대학교)2년 중퇴하였다가, 일본에 유학까지 갔다가 돌아온 유학파였으니, 주먹치고는 상당한 인텔리에 속하는 희한한 주먹이다.

그런데 신마적은 힘과 싸움에 있어서는 천하에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인물이었다.

 

신마적은 일본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1930년경부터 서울 종로의 YMCA로 들어가서 운동부학생들을 모두 제압한 후, YMCA 학생패들의 우두머리로 올라섰던 대단한 싸움꾼이다.

 

신마적은 YMCA에 들어가자 마자, 원래 YMCA 운동부의 우두머리였던 강펀치의 소유자 해학기를 군말없이 쓰러뜨리고, 새로운 YMCA의 학생패의 오야붕으에 올라섰던 것이다.

 

신마적은 당시 180cm의 키에 떡 버러진 어깨에다 힘과 완력이 무척 쎘으며, 일본에서 배운 유도와 씨름실력이 수준급 이상인 당대의 뛰어난 싸움꾼이었다.

 

우미관골목에서 최고의 주먹은 구마적이 아니라 신마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단지 신마적이 자신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구마적을 형님이라고 예우했을 뿐이지, 싸움실력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 수 위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두사람간에는 일화가 있는데, 바로 팔씨름대결이 그것이다. 우미관 뒷골목에서 구마적과 신마적이 우연히 맥주집에서 만나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었다.

 

1930년대 전반 구마적이 엄청난 힘을 과시하면서, 우미관 뒷골목을 누비고 다닐 때에, 지역유지들과 어울려서 한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술집에 신마적이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구마적으로부터 시비를 당했다.

 

구마적은 신마적이 자신의 아지트인 술집에 학생패거리를 데리고 들어오자 아니꼬운 마음이 생겼던 것이고, 구마적은 주변 지인들이 보는 상황에서 신마적에게 시비를 걸었다.

 

 

 

구마적은 신마적에게 요즘 힘도 없는 애들이 우루루 패거리를 몰고다니면서, 잘난 체 하고 다니는 데 정말 볼쌍 사납다!’라고 신마적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이 말은 듣은 신마적은 구마적에게 다가가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가 하고 되물으면서 두사람간에 시비가 빚어졌다.

 

그러자 구마적이 신마적에게 자신과 팔씨름을 해서, 네가 얼마나 힘이 좋은지를 증명해보이라고 일갈을 건넸다.

 

지역유지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에 구마적과 신마적의 팔씨름대결이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신마적이 천하장사인 구마적을 팔씨름으로 꺾었다고 한다.

 

자동차의 앞부분을 손으로 잡고 번쩍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천하장사인 구마적을 신마적이 팔씨름으로 당당히 꺾은 것이다.

자기 스스로도 엄청나게 놀란 구마적은 신마적의 힘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이긴 신마적을 구마적은 새로운 마적이라는 의미로 신마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고희경을 구마적으로, 엄동욱은 신마적으로 구분해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원래 고희경은 그냥 마적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었는데, 그런데 새로운 마적이 나타났으니, 자신은 ()’ 자를 붙여서 구마적이 된 것이다.

 

신마적이 힘이 천하장사인 구마적을 팔씨름에서 이겼다는 일화를 보더라도 신마적이 얼마나 힘이 쎈 괴력의 소유자인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마적은 유도의 고단자로서, 유도실력이 상당해서 그와 싸움이 붙은 왠만한 상대들은 그에게 한번 붙잡힐 경우엔 공중으로 집어던져졌다가 떨어져서 팔다리에 골절상을 당하게 마련이다.

 

즉 신마적은 힘과 유도실력, 주먹의 삼박자를 지닌 당대의 탁월한 싸움꾼이었고, 그가 일본 유도부 학생패거리들을 두들겨팬 사건은 그를 우미관의 최고의 주먹의 자리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1933년경 신마적은 우미관 뒷골목의 맥주집에서 동생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맥주집에 경성제국대학에 다니는 일본인 유도부학생패거리들이 몰려들어왔다.

 

그리고 이 일본인 유도부패거리들은 그 술집에서 서빙을 하던 햔국여성에게 다가가 성희롱을 하는 몰쌍 사나운 상황이 벌어졌고, 이를 말리는 술집주인에게 폭행까지 해댔다.

 

평소에 직선적이고 성격이 불같은 신마적이 이런 일본학생들의 조선여성을 희롱하는 짓거리를 보고 엄청난 분노를 느꼈고, 그 일본유도부 패거리들을 제지하면서, 신마적과 10명의 일본유도부 패거리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신마적은 맨앞에 있던 덩치좋은 일본학생을 주먹을 날려서, 곧바로 쓰러뜨리고, 옆에 있던 다른 일본학생 두명을 업어치기로 쓰러뜨렸다.

 

신마적은 또다른 일본학생들을 발차기와 주먹으로 연거푸 쓰러뜨리면서, 또다른 일본학생의 허리춤을 붙잡고 공중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공중으로 날아간 그 일본학생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기절해버렸고, 신마적의 괴력에 의해서 7명이나 되는 일본유도부 학생들은 순식간에 대자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남아있던 일본유도부 학생들은 신마적의 괴력에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고 그대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동생들이 개입할 여지없이 신마적 혼자서 10여명의 일본 유두부학생들을 제압해버린 것이다.

 

신마적의 이런 가공할만한 싸움이야기가 우미관 일대에 퍼지면서, 신마적은 구마적과 함께 우미관골목의 최고의 오야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종로와 우미관 골목의 최고의 주먹을 꿈꾸고 있던 김두한은 구마적을 쓰러뜨린지 2년 후인 1936년 초겨울날, 19세의 나이로 자신보다 9살이 나 많은 신마적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김두한이 신마적에게 도전해서 화려한 발차기공격을 퍼부으면서 신마적을 공격하는 멋진 장면들이 연출된 적도 있었다.

 

 

구마적은 이미 쓰러뜨렸으니, 이제 남아있는 마지막 거물인 신마적을 아예 확실하게 요절내고 난후, 자신이 종로바닥의 최고의 옥좌에 등극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렇게 기회를 엿보던 김두한에게 어느날 신마적과 싸울 만한 명분이 생긴 것인데, 우미관골목에서 자신의 동생 두명이 신마적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했다는 이유로 흠씬 두들겨맞고 돌아온 것이다.

 

평소엔 점잖다가도 술만 먹고 나면 성질이 매우 난폭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신마적이 또다시 주먹을 휘두렀던 것이다.

 

김두한은 동생이 두들겨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동생들을 데리고 우미관 뒷골목의 엔젤맥주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엔젤맥주집에서 10여명의 동생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있는 신마적에게 곧바로 다가간 김두한은 형님, 나이 드신 형님이 힘없고 저항할 능력없는 어린 동생들을 두둘겨패는 것은 형님으로서 도리가 아니지요.

제가 오늘은 형님을 좀 때려야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신마적에게 도전한 것이다.

 

성질이 불같은 신마적은 김두한의 당돌한 이 말을 듣고는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한다.

 

원래 신마적은 다리춤에 단도 두자루를 달고 다닌다고 하며, 김두한도 단도 한자루를 몸에 숨기고 다녔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성에 진출한 일본야쿠자들이 으레 단도나 검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김두한의 제의로 서로가 갖고있는 칼을 동생들에게 맡기고, 맥주집 앞마당으로 나간 두사람, 김두한 대 신마적간의 역사적인 싸움대결이 펼쳐졌다.

 

김두한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신마적과 거리를 넓히고 싸워야 했고, 신마적에게 붙잡히지 말아야만 했다.

 

괴력이 천하장사인 신마적에게 팔이나 허리춤이 붙잡히는 순간에는 그대로 공중으로 던져져서 떨어지게 되므로, 그렇게될 경우에는 팔이나 다리, 허리에 골절상을 입어서 그대로 KO패당하기 십상이다.

 

김두한은 최대한 신마적과 거리를 넓게 벌리면서 외곽을 돌면서 기회를 보았고, 이 때에 신마적이 김두한을 잡기 위해서 달려 들어왔다.

이 순간 김두한은 재빠르게 공중으로 몸을 도약했고, 곧바로 오른발로 신마적의 안면을 강타했다.

 

공중으로 솟구쳐서 내려오는 탄력을 이용한 김두한의 강력한 발차기가 그대로 신마적의 양미간을 강타했고, 큰 충격을 받은 신마적은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쓰러졌던 신마적은 곧바로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김두한의 왼발이 일어나는 신마적의 가슴팍을 거쎄게 걷어차버렸고, 연달아서 김두한의 오른발킥이 신마적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이 두 번의 발차기공격으로 신마적은 또다시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충격을 상당히 받은 신마적이었지만, 또다시 신마적은 바닥을 집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김두한이 마지막 공격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2년전에 구마적을 한방에 쓰러뜨린 그의 독보적인 무기인 이단발차기였다. 김두한은 온몸의 힘을 다 모아서 회심의 이단발차기를 신마적의 안면에 날렸다.

 

김두한이 몸전체의 체중을 실어서 공중으로 몸을 날려, 그대로 두발로 신마적의 안면을 강타한 것이다.

김두한의 이단발차기가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마적의 안면을 강타했고, 신마적은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가면서 땅바닥에 쓰러졌고, 세 번째로 쓰러진 신마적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공방이 벌어질 줄 알았던 김두한과 신마적의 대결은 뜻밖에도 김두한의 일방적인 KO승으로 끝이 났다.

김두한이 뛰어난 두뇌플레이와 탁월한 싸움기술을 발휘해서, 우미관의 최고의 싸움꾼인 신마적을 완벽하게 KO시켜 버린 것이다.

 

쓰러진 신마적은 동생들에 의해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신마적은 턱이 골절되고 갈비댓 4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3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93619세의 나이로 김두한이 드디어 우미관 최고의 주먹 신마적을 꺾고, 종로의 최고의 주먹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종로의 가장 큰 보스이자 양대산맥이었던 구마적과 신마적을 모두 다 쓰러뜨린 김두한은 이제 명실공히 종로의 최고의 주먹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종로통에는 구마적과 신마적 말고도 또다른 거물주먹들이 있었는데, 종로골목에서 또다른 거물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가라데의 고수인 뭉치와 괴력의 싸움꾼인 제비가 있었다.

 

김두한은 신마적을 쓰러뜨린 후에, 뭉치와 제비에게도 도전장을 던지고, 이들과 일대일 맞대결을 펼쳐서 이들을 보기좋게 KO시켜 버렸다.

 

김두한은 종로에서 가장 쎈 오야붕들인 구마적과 신마적, 뭉치, 제비등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종로의 최고의 오야붕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런데 야망이 원체 컸던 김두한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고, 서울 전지역의 주먹세계를 점령하길 원했다. 항상 최고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했던 김두한은 종로를 차지한 후에도, 서울전역으로 자신의 주먹나와바리를 확장해나갔다.

 

이후에 김두한은 시구문의 역도 씨름패들에게 도전해서 모두 쓰러뜨렸고, 동대문패와 서대문패(동양극장)에 쳐들어가서 모조리 쓰러뜨렸으며,

그 외에도 스카라극장과 국도극장파, 사지골패와 한강장사패들도 모두 쓰러뜨리면서, 서울의 전지역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거침없는 주먹행보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는데,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김두한은 자신의 주먹조직을 전국으로 확장시켜 나갔다.

 

인천을 시작으로 해서 수원, 용인, 청주, 전주, 광주, 목포, 부산까지 거의 남한지역 대부분을 자신의 주먹나와바리로 만드는데 성공했을 뿐만아니라, 그 후에는 북쪽으로 진출해서 개성과 평양을 점령하였고, 안주에 이어 급기야는 신의주에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김두한은 고작 23세 때인 1940년도에 한반도 거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을 자신의 주먹나와바리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조선 최고의 전국구주먹으로 성장해 있었다.

김두한은 고작 23세 때에 마침내 자신이 꿈꾸워왔던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됐다.

 

김두한이 신의주로 진출할 때에는 신의주의 최고의 싸움꾼인 시라소니를 만나게 되고, 김두한의 부하들이 시라소니에게 엄청나게 두들겨맞고 돌아오게 된다.

 

김두한동생들이 시라소니와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게시글을 올려서 소개하기로 하겠다.

 

한편 김두한에게 두들겨맞고 만신창이가 된 신마적은 1937년 초에 7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게 된다.

신마적은 만주 봉천에서 자신만의 거대한 주먹조직을 만들었고, 만주에서의 제2의 주먹신화를 활짝 열어나간다.

 

만주 봉천에서는 시라소니가 신마적의 나와바리(구역)에 나타나서, 시라소니와 신마적간의 알력과 대결이 펼쳐지기도 하는 등 흥미진진한 싸움전설들이 또다시 만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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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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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 빼는 음식, 귀리우유 만드는 법과 효능

건강 & 보양식 정보 2018. 1. 14. 15:50

만물상복부지방 빼는 법, 천연지방청소부 귀리우유만들기

 

만물상에서 아주 획기적으로 뱃살 빼는 방법을 소개해서 큰 화제가 되고있답니다.

 

뱃살이 너무 늘어나서 고민하시 분들이 많이 있죠. 특히 앉아서 근무하는 사무직회사원분들은 움직임이 너무 적어서 뱃살이나 내장지방이 쉽게 쌓인답니다.

 

뱃살(똥배)이 늘어나고 아랫배가 나오면, 보기에도 볼쌍 사납지만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뱃살과 내장지방이 늘어나면, 당뇨와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확률을 높여놓기 때문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된답니다.

 

하루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사무직근로자들은 몸의 움직임이 적기 때문에, 뱃살과 지방이 쉽게 쌓일 수밖에 없답니다.

 

많이 움직이고 운동을 함으로써 우리가 먹은 지방질을 체내에서 연소시켜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죠!

그래서 현대인들 중에는 뱃살과 내장지방이 쌓인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랍니다.

 

 

이렇게 체내에 계속 쌓인 지방은 혈관으로 들어가서 혈관속에 계속 축적 되면혈전을 형성해서 피의 순환을 막아서,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경색 등의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고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답니다.

 

특히 아랫배에 쌓인 뱃살이 당뇨나 심혈관계질환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아랫배에 쌓인 뱃살이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그 과도한 지방으로 인해 혈당치가 올라가서 당뇨병에 걸리게 되고, 그 뱃살속의 지방의 일부가 혈관으로 들어가서 고지혈증, 심혈관질환을 유발시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뱃살과 몸속에 쌓인 지방을 빼주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랍니다.

 

특히 아랫배에 쌓인 뱃살지방을 빼주는 것이 성인병을 예방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답니다.

 

 

뱃살을 빼주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식탐을 줄이고 과도한 음식섭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지요.

바쁘게 일하시는 주부들이나 직장인들은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지요. 또한 음식량을 줄이는 것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랍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뱃살과 지방을 빼줄 수가 있을까요?

 

가정의학 전문의 고정아씨가 효과적으로 뱃살 빼는 방법을 추천해 주셨답니다.

그동안 뱃살과 고도비만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획기적으로 살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물상에서 고정아 전문의가 추천해준 방법대로 3명의 참가자가 10일 동안 특정한 음식을 먹고 실험을 했답니다.

그런데 10일이 지난 후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는데요. 3명의 참가자 전원이 몸무게가 빠지고 뱃살도 많이 줄어들었답니다.

 

 

심험 전에는 52세의 참가자 정씨는 허리둘레가 93cm였는데, 10일간의 실험실시 이후, 허리둘레가 82.5cm로 줄어들었답니다.

10일간 실험실시 후에 허리둘레가 10.5cm나 줄어들었답니다.

 

정씨는 체중도 실험전의 72.8kg에서 실험 후엔 66.5kg으로 6.3kg이나 감소되었고, 체내의 중성지방 수치도 179mg에서 89mg으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답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도 정씨와 비슷한 수준으로 몸무게와 허리둘레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았답니다.

 

10일의 실험으로 인해서 체중과 허리둘레가 이렇게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었는데요, 만일 몇 개월을 지속했더라면, 체중과 허리둘레가 훨씬 더 큰 폭으로 줄어들었을 겁니다.

 

 

참가자 세명이 모두 10일 동안에 특정한 음식을 섭취한 후에, 이렇게 뱃살과 지방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세명의 참가자들의 뱃살과 지방을 쏙 빼주었던 음식은 바로 귀리우유였습니다.

귀리우유는 강정아 전문의가 추천해준 것이랍니다.

 

참가자들이 아침마다 계속해서 먹은 것은 뱃살과 지방을 쏙 빼주는 천연지방 청소부 귀리우유라고 합니다.

10일 동안 아침식사 대신에 이 귀리우유한잔을 매일같이 마셨고, 그 결과 10일 후에는 의미있을 정도로 체중과 뱃살이 빠지는 효과를 보게 되었답니다.

 

 

귀리우유의 효능

 

귀리는 유럽에서 ‘10대 슈퍼푸드으로 선정되었던 건강식품이며, 필수 아미노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몸에 좋은 미네랄도 많이 함유되어 있는 식품이랍니다.

 

귀리에는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있을 뿐만아니라, 칼슘도 많이 함되어 있어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영양과 골격구성에 좋고, 노인분들의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또한 귀리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장속을 촉촉하게 해주고 장의 연동운동을 활발하게 해주기 때문에, 변비를 해소시켜주고 장건강에도 좋답니다.

 

귀리에는 염증억제효소가 들어 있어서 염증을 억제해주고, 피부를 개선시켜 주어서, 귀리를 많이 섭취하면 피부도 맑아지고 좋아진다고 합니다.

 

특히 귀리 속에는 베타글루칸이라는 효소가 있는데, 이 베타그루칸이 체내의 지방을 흡착을 해서, 배변활동으로 통해 몸밖으로 배출시켜 준다고 합니다.

 

이 귀리 속의 베타그루칸은 우리 인체 내로 들어오면, 쌓여있는 지방과 혈관속에 쌓인 지방을 분해해서 몸밖으로 빼내주는 지방킬링 효소라고 합니다.

 

외국의 한 실험에서, 귀리를 하루에 3g씩만 섭취했는데도 몸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23%나 줄여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귀리는 혈관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기 때문에, 심혈관질환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답니다.

 

귀리가 이렇게 체내의 중성지방과 콜테스테롤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당뇨병과 동맥경화. 뇌혈관질환 등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뱃살도 빼주고 고도비만도 해소해주는 등 다이어트에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귀리가 훌륭한 건강식으로 인정받아서, 아침식사 대용으로 많이 섭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몸에 좋은 효소를 지니고 있는 귀리가 우유를 만나게 되면, 끈적이는 상태로 변화되어 25배 크기로 불어나고, 이것을 섭취했을 때 포만감을 상승시켜 준답니다.

그래서 귀리우유 한잔만 먹어도, 든든하고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아침식사 대용으로 좋다고 합니다.

 

우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칼슘, 철분, 비타민,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완전식품이라서, 귀리를 우유에 섞어서 먹으면, 아침 식사대용으로 충분한 한끼식사가 될 수 있답니다.

 

귀리와 우유가 조합하면, 건강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나 완벽한 식품이 될 수 있답니다.

 

 

귀라와 우유를 섞어서 매일같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한잔씩 섭취하면, 뱃살과 내장비만도 빼고,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등의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귀리가 몸에 좋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귀리는 통곡물이기 때문에, 너무 많이 섭취하면 소화불량 사태가 일어날 수 있어서, 귀리는 하루 17g 정도(숫갈 2스푼)만 섭취하는 게 좋답니다.

   

귀리우유 만드는 법

 

귀리는 가격도 저렴한데, 500g7,000원인데 반해, 귀리 500g2,500원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적답니다.

 

1. 귀리를 보통 크기의 그릇에 잔뜩 넣고, 그 위에 귀리가 다 잠길 정도로 찬물을 잔뜩 붓고 귀리를 30분 정도 불려준다. 귀리는 통곡물이라서 그냥 요리해먹으면 거칠기 때문에, 물에 불려서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부드러운 맛을 원한다면 물에 3시간 불려줘도 된다.

 

 

2, 불린 귀리를 후라이팬에 넣고, 귀리의 물기가 빠지고 갈색이 되도록 10분 정도 중불로 볶아준다.

 

 

3, 우유 200g에 볶은 귀리 두 큰술을 넣어 섞어주면, ‘귀리우유가 완성된다.

 

 

귀리를 미리 많이 볶아놓은 후에. 이것을 냉장실에 넣어두고 매일같이 우유에 타먹어도 됩니다. 단 귀리볶은 것은 냉장고에서 4일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답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귀리우유 한잔씩만 마시면, 뱃살도 쏙 뺄 수 있고, 다이어트는 물론 당뇨병, 심혈관질환 같은 성인병 예방에도 좋습니다.

단 아침식사는 먹지 말고, 이 귀리우유 한잔을 아침식사 대용으로 드셔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귀리의 부작용

 

귀리가 몸에 좋은 효능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귀리에는 퓨린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통풍을 유발할 수도 있고, 너무 과다하게 섭취하게 되면 신장결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과다하게 먹는 것은 삼가시는 게 좋습니다. 신장이 안좋은 분들은 섭취를 삼가는 게 좋습니다.

 

특히 임신초기에 먹을 경우에는 유산의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하니, 가급적 임산부는 안드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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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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